야설 건곤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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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160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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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一擲

제3권 제34장 무림성 (武林城)



장 "빙화."


"주인님 ."


백룡은 격동을 금치 못했다.


그는 빙화를 자신의 처소로 데리고 왔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서기가 바쁘게 빙화가 손을 잡은 것이다.


"어떻게 나를 알아 보았소?"


그는 말을 놓지 못했다. 그 동안 빙화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된 듯했다. 그녀의 눈빛은 전처럼 몽롱하지 않았으며 말도 분명했다.


빙화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주인님의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빙화에게 주인님은 첫 남자이셨는 걸요."


빙화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그런 모습은 몹시 매력적이었다. 백룡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빙화. 나에게 주인이라 부르지 마시오. 이제 그대는 어엿한 여인이 되지 않았소?"


그러나 빙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언제까지고 주인님의 여자입니다. 설사 주인님께서 저를 버리신다고 해도 ."


빙화가 눈시울을 붉혔다. 백룡의 가슴이 아려왔다.


이제까지 그는 그녀의 존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다. 그런데 빙화는 지금까지도 그를 처음 그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빙화."


그는 가만히 그녀를 안았다. 빙화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아! 보고 싶었습니다. 빙화는 한시도 주인님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침상 위에 걸터앉았다. 빙화는 얼굴을 붉혔으나 그의 옆에 앉았다.


"대체 어찌된 일이오?"


"주인님께서 갑자기 사라지셨을 때 뇌정각을 온통 뒤졌어요, 그러나 어디에서도 주인님을 찾지 못하다가 ."


"못하다가 ?"


"바로 지금의 마후(魔后)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 !"


"뇌정각의 구층에 마후님이 있었어요. 저는 멋도 모르고 마후님에게 주인님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가 그만 ."


빙화는 고개를 떨구었다.


"마후님은 무서웠어요. 저는 그분에게 잡혔어요."


백룡은 비로소 그녀가 염화봉과 함께 있는 이유를 알았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마후는 빙화에게 어떻게 대해 주었소?"


"마후님은 절 시녀로 삼아 주셨어요."


백룡은 한순간 긴장했다.


'그렇다면 염화봉과는 ?'


그는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한 가지 묻겠소. 솔직히 대답해 주어야 하오."


빙화는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빙화가 어떻게 주인님을 속인단 말인가요?"


그녀의 눈빛은 지순하기 그지없었다. 도리어 그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백룡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너무나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오. 어쩌면 그 일로 인해 빙화와 내가 서로 적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오."


순간 빙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제가 주인님과 적이 된다고요?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요?"


백룡은 탄식했다.


"세상 일이란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오. 빙화."


빙화는 여전히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빙화는 마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마후님은 ."


문득 빙화의 얼굴에 두려움이 어렸다. 그녀는 어떤 일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후님은 사람이 아니에요. 너무나 무서운 분이에요. 빙화는 마후님을 벗어나지 못해요. 아아 !"


빙화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으며 떨었다. 백룡은 깜짝 놀라 그녀를 안았다.


"빙화! 왜 그러오? 이 곳은 다만 빙화와 내가 있을 뿐이오."


빙화는 그제야 진정했다. 그러나 아직도 겁먹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 보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마후님께서는 주인님을 잘 모시라고 했어요. 저는 명을 따라야 해요."


백룡은 기가 막혔다.


'대체 염화봉이 어떻게 했길래 빙화가 이토록 두려워 한단 말인가?'


그는 잠시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빙화는 마후를 좋아하고 있소?"


빙화는 흠칫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에게 잘 해주셨어요."


백룡은 탄식했다.


"잘 들으시오. 빙화. 나는 그녀를 죽여야 하오."


순간 빙화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굳어졌다.


"뭐 뭐라고 하셨나요?"


"마후는 나의 원수요. 나는 그녀를 죽일 것이오."


"안 돼요!"


갑자기 빙화는 소리 질렀다. 백룡은 깜짝 놀라 얼른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침상으로 쓰러뜨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만일 그가 사비청이 아니라는 것이 발각 당하게 된다면 그는 설사 하늘을 오르는 재주가 있다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 아닌가?


기라성같은 마도고수들이 운집해 있는 광양장에서 그 혼자의 힘으로 빠져 나가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빙화를 깔고 누운 그는 청력을 돋구어 방원 40여 장을 둘러 보았다.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와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그의 귀에 접촉되었다.


한참 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빙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오."


빙화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뜨고 백룡을 올려다 보았다. 한순간 그녀의 눈 속에서 이상한 광채가 솟아났다.


"빙화는 아직도 주인님의 여자인가요?"


엉뚱한 질문이었다. 백룡은 뭐라고 이야기해야 좋을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만일 아니라고 한다면 빙화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또한 맞다고 한다면? 그는 난감했다.


빙화는 비록 미몽에서 눈을 떴으나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만 같았다. 더욱이 남녀간의 일에도 놀라울 정도로 무지한 것같았다. 그런 빙화가 자신을 영원한 주인으로 생각한다면 .


마침내 결정을 내린 백룡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빙화."


빙화의 속눈섭이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눈 속에는 안도감과 기쁨의 빛이 스쳤다. 그녀는 가만히 손을 들더니 백룡의 목을 감았다.


"안아 주세요. 주인님."


백룡은 그녀의 말대로 했다.


그의 입술이 빙화의 입술을 눌렀다. 입술이 맞닿자 빙화는 가늘게 떨었다. 그러나 곧 뜨겁게 반응했다. 놀라울 정도로 빙화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빙화는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빙화가 아니었다. 빙화에게 그가 첫 남자인 것은 확실했으나 유일(喩一)한 남자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백룡의 뇌리를 스쳤다.


'이럴 수가 .'


빙화의 혀가 뜨겁게 입술을 비집고 들어왔을 때 분명 백룡은 그것을 느꼈다. 예전의 빙화와는 완전히 달랐다. 빙화는 이제 확실히 다른 여인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정사(情事).


그 행위는 사람마다 다르고 장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러나 이번의 정사야말로 백룡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적지 않은 여인을 알고 있었고 남다른 재능(?)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빙화에게 완전히 말려들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바람(風), 구름(雲), 비(雨), 그 모든 것이 뜨겁게 뭉쳐 남과 여의 육체를 하나로 강타했다.


빙화가 환락의 여신이라면 백룡은 그 환락에 사로잡힌 남신이었다.



복우산(伏牛山) 천애령(天崖嶺).


대역사는 점차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림성(武林城).


천애령의 풍경을 바꾸어 놓은 거성(巨城)이 점차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정사의 무림인들이 이 공사에 동원되었으며, 막대한 황금과 인력으로 인해 놀라울 정도로 공사는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무림성은 방원 십 리(十里)에 걸친 백색의 석성(石城)을 축조했으며 내성외성(內城外城)을 포함한 전각과 누대 등은 가히 자금성의 규모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계절은 엄동이었으나 공사는 쉬지 않고 진행되었다.


무림성의 축성일은 원단(元旦)으로 내정되었다.


공기(工期)를 앞당기기 위해 인부들과 토목의 전문가들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재촉을 받았다. 그리하여 무림성의 위용이 점차 확실하게 드러나게 됨에 따라 강호 무림계는 더욱 동요하기 시작했다.



- 대체 무림성이 누구를 위해 축성되고 있는지 아는가?


- 글쎄, 그것을 아는 자가 없다네. 무림성주(武林城主)라면 곧 천하무림의 주인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사무림을 모두 장악한 인물은 무림사 이래 한 명도 없었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쩌면 그 전례가 깨어질 지도 모르네.



소문은 더욱 무성해졌다.


아무도 무림성에 얽힌 흑막을 아는 자는 없었다. 다만 입을 모아 말할 뿐이었다. 무림성주는 곧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일 것이라고.


무림성의 축성 사실은 황궁에도 알려졌다.


그러나 그 보고는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추상같은 권력을 지닌 인물로부터 묵살되었다. 그는 이렇게 일축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네. 그것은 강호무부들의 망상(妄想)이 빚어 낸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같은 것일 뿐이네."


이렇게 일축한 인물은 다름아닌 동창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문사릉이었다.


사상누각(砂上樓閣).


그것은 모래 위의 누각과 같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림성은 곧 허물어질 존재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러나 무림인들이 보기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무림성의 축성에 참여한 정사무림의 인물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당금무림의 기라성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강호인들은 갈증을 느꼈다.


화가 되든 복이 되든 무림성이 빨리 축성되어 무림성주의 정체가 밝혀질 날을 고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겨울은 길었고 원단이 되기에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수천 년 무림사에서 정과 마는 양립할 수 없는 사이다. 물론 그것은 설명이 필요없는 말이다.


정도가 승하면 마가 지리멸렬해지고 반대로 마가 승하면 정도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상최대의 마세(魔勢)로 응집된 항산(恒山)의 광양장은 어쩌면 정과 마의 판도를 바꾸어 놓게 될힘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폐위된 비운의 황제 건문제가 복위를 꾀하기 위해 세웠던 미증유의 세력 뇌정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상최대의 복마전(伏魔殿)인 광양장은 무림성이 완성되는 순간 곧 천하무림의 지배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철혈신군 구양수는 뇌정각의 각주로서 진두지휘했다. 그는 지난날 한때 무림을 흔들었던 철혈문의 문주로서 나름대로의 야망을 품은 자였다.


그는 막 여체 속에 쾌락의 앙금을 분출(噴出)했다.


"흐음 !"


언제 안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계집이었다.


"헛헛 ! 너는 귀여운 계집이야."


여체는 마력에 가까운 쾌락을 그에게 선사했다. 아무리 주물러도 물리지 않는 육체였다. 구양수는 여체의 부드러운 유방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며 백치미를 풍기는 여인.


빙화, 바로 그녀였다.


침상 위에 누워 있는 빙화는 도무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육체는 오직 쾌락을 위해 만들어진 것과 같았다.


구양수는 흡족한 듯 웃으며 중얼거렸다.


"허허 . 마후께서 너를 밀천환궁으로 데려가셨던 이유를 알겠다. 그 곳에 다녀온 이후로 너는 노부를 완전히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그랬던가.


빙화의 변화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던가? 빙화의 흑진주같은 눈은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른한 오수에 잠긴 고양이처럼 침대 위에 누운 채 눈을 살풋이 내려감고 있었다. 자신의 육체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쾌락의 잔재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이십 년 전 도화강(桃花岡)이란 곳 . 낙향하여 시(詩)를 읊고 난(蘭)을 치던 문사와 그의 아름답고 현숙한 아내가 있었어. 그 문사의 이름은 난문곡(蘭文谷). 그분의 현숙한 부인은 감숙현(甘淑賢). 그리고 그들 부부에게는 늦게 본 딸이 하나 .'


놀랍게도 이 순간 빙화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겉으로는 비록 쾌락의 잔재를 즐기는 것같았으나 그녀의 뇌리 깊은 곳에서는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는 아득한 어떤 기억이 실타래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도화강은 아름다운 곳 . 어느날 그들 부부는 한 명의 무림인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고 갓난아이에 불과한 딸은 바로 그자가 데리고 갔어. 그 계집아이는 태어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채 밀폐된 수정관(水晶棺)에 옮겨진 후 어떤 대법에 쓰이기 위해 십팔 년간을 약수(藥水)에 담겨진 채로 그렇게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모습으로 .'


순간 빙화의 가슴에 따가운 느낌이 전해졌다.


"헛헛 . 무엇을 생각하느냐?"


구양수였다.


그는 턱수염을 빙화의 부드러운 유방에 비비고 있었다. 아직도 미련이 남은 것일까? 그는 옷을 입다 말고 빙화의 나신을 보고 다시 침상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구양수는 이미 칠순이 넘었으나 정력은 무궁했다. 구양수는 빙화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무림의 고수라면 나이를 극복할 수 있는 법이다.


"허허 . 너는 정녕 요물이다."


빙화의 눈이 빛났다.


'난문곡 부부를 살해하고 딸아이를 납치해간 자의 이름은 바로 .'


구양수의 몸이 무겁게 빙화의 몸을 눌러왔다.


어느새 그는 다시 옷을 벗은 후였다. 구양수는 도무지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었다. 빙화를 상대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20세 청년이라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너는 정말 흐음 !"


빙화는 무거운 체중과 함께 남자의 힘이 은밀한 부위로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녹아 흐를 듯한 사지를 움직였다.


그녀의 움직임은 아교처럼 끈끈해서 사나이의 혼백을 금방 흐물흐물 하게 만들었다.


"너는 으음 !"


구양수는 유방 사이에 얼굴을 묻고 화려한(?) 분출에 몸을 떨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자의 이름은 바로 구양수."


느닷없이 빙화의 입에서는 쾌락의 신음대신 그런 말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구양수의 등 한복판에 무엇인가가 파고 들었다.


순간 마법과 같은 쾌락이 구양수의 늙은 몸을 관류했다. 구양수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그의 등을 파고든 물건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인의 섬섬옥수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너는 요물 "


그것이 구양수가 내뱉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는 축 늘어졌다.


철혈문의 무공을 가장 완벽하게 익힌 인물. 철혈문의 조사보다도 강한 성취를 익힌 그는 이미 금강불괴지신에 가까운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여인의 손이 그의 유일한 약점인 급소를 꿰뚫어 버린 것이다.


쿵!


구양수의 몸뚱이가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시신을 내려다 보는 빙화의 눈에서는 비로소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악마!"


이것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바로 그때였다.


"수고했다. 아이야."


문득 방 안에 괴이한 음성이 울렸다. 빙화는 돌아섰다.


언제 나타났는지 일신에 금의화복을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청수한 얼굴에 두 눈에서는 기광이 흐르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구양수는 너의 부모를 해치고 너를 사악한 대법에 사용한 자다. 네가 원수를 갚았으니 지하에 계신 너의 부모도 기뻐할 것이다."


그는 다름아닌 태태마존(太太魔尊)이었다. 그는 한때 뇌정각의 각주였으며 그 이전에는 마교(魔敎)의 혼자 남은 장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염화봉에 의해 실혼인(失魂人)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인물이 아닌가?


"헛헛 ! 백 소협, 이제 그만 나오시게."


문득 그가 그렇게 말하자 천정에서 소리없이 한 명의 금삼 청년이 떨어졌다. 백룡이었다.


"빙화."


그는 낮은 음성으로 불렀다.


"주인님 ."


빙화는 그의 품에 안겼다. 방금 전까지 구양수의 품에 안겨 그토록 격렬한 행위를 하였던 요녀의 모습은 간 곳이 없었다. 지금의 빙화는 그저 가련하게 흐느끼는 일개 여인에 불과했다.


백룡은 빙화의 나신을 가만히 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장삼을 벗어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의 눈에는 빙화가 결코 추해 보이지 않았다.


태태마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련한 아이네."


백룡은 빙화의 눈빛이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지나치게 심력을 소모한 것이었다. 그는 빙화의 혼혈을 짚었다. 그녀가 맥없이 잠들자 가만히 침상에 눕혔다.


"일단 염화봉의 오른팔은 제거된 셈이네."


태태마존은 구양수의 시신을 내려보며 말했다.


"노부는 수하로 하여금 구양수를 대신하게 할 셈이네. 암중으로 뇌정각의 주요인물들을 하나둘 제거할 생각이네."


'태태마존 . 이자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다. 과연 마교의 마지막 장로답다.'


그러나 백룡은 태태마존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염화봉을 제거하는 일에 문사릉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태태마존은 염화봉과 같은 무리였다. 염화봉도 마교출신이었던 것이다.


'마교 내의 세력 다툼 때문일가?'


태태마존은 백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엇을 생각하는 건가?"


백룡은 담담히 말했다.


"마후의 무공이 정말 그렇게 무섭단 말이오? 당신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요?"


태태마존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지나치게 무례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의 무공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네. 노부는 그녀의 삼초를 받지 못하네."


"구음진경이 그렇게 무서운 비급이란 말이오?"


"그렇네. 구음진경은 마교의 삼보(三寶) 가운데 하나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학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네."


"삼백 년 전의 장한미인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요?"


"장한미인도 구음진경을 익혔지. 그러나 그녀는 불과 오성(五成)밖에 익히지 못했으나 염화봉은 십성 이상을 익혔네. 장한미인을 능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네."


백룡은 생각을 가다듬었다.


'당년의 장한미인은 창궁객의 미인혈에 패했다. 나는 어느정도 미인혈의 오의를 깨달았다. 그러나 과연 염화봉에게 통할 지 의문이구나.'


이때 태태마존은 탄식하며 말했다.


"구음진경은 악마전(惡魔典)이라 할 수 있네. 일단 익히게 되면 무서울 정도로 속성하게 될 뿐더러 종내에는 인성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네."


백룡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세상에 구음진경을 꺾을 방법이 없단 말이오?"


태태마존의 눈이 한순간 빛났다.


"세상에 절대란 없네. 구음진경에도 물론 약점은 있지. 그러나 그 물건의 행방을 알 수 없으니 ."


백룡은 놀라 되물었다.


"어떤 물건을 말하는 것이오?"


"바로 삼보 중 나머지 이보(二寶)를 말하는 것이네."


"천마신경과 천마신검을 말하는 것이오?"


"바로 그렇네."


백룡의 가슴이 뛰었다. 천마신경은 포대강이 가지고 갔지 않은가?


"구음진경은 극음마공이므로 극양지물인 천마신경에는 상극이 되는 것이네. 천마신경을 통해 태양신공(太陽神功)을 연성하게 되면 염화봉을 꺾을 수가 있네."


" !"


"천마삼보를 남긴 것은 칠백 년 전의 한 쌍의 남녀였네. 그들은 마교의 비조가 되었는데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네."


태태마존의 입으로부터 아득한 상고무림의 비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구음진경을 남긴 여자가 마성에 빠지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남자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는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두 가지 비기를 남긴 것이네. 그 하나가 천마신경이고 나머지는 천마신검이네."


"천마신검의 어떤 점이 ?"


"천마신검은 천지간의 오행지기(五行之氣)를 포함하고 있는 영석(靈石)으로 만든 것이네. 오행지기는 마공의 극성일 뿐더러 구음마공을 무력화 시키는 힘이 있네."


백룡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그렇다면 천마신검의 행방은?"


"아쉽게도 천마신검은 행방불명이 되었네. 천마신경은 얼마전 무림에 나돌았다는 말이 있으나 역시 오리무중이고 ."


태태마존은 한숨을 쉬었다.


"염화봉을 꺾기 위해서는 그 두 가지 물건 중 하나를 찾아야 하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자네가 할 일이 한 가지 있네."


" ?"


"과거 뇌정각에서 활동하던 몇 사람을 구하는 일이네. 그들은 뇌정각의 내정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들의 일에 큰 힘이 될 것이네."


"어떤 인물들을 말하는 것이오?"


"지난날 뇌정각의 문창성을 지냈던 양몽경이란 자와 천외전주, 숭양전주 등일세."


백룡은 하마터면 표정을 드러낼 뻔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지옥갱에 있네."


그것은 도리어 그가 바라던 일이 아닌가? 태태마존을 바라보며 백룡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황산의 동쪽 기슭.


이른바 유황곡(硫黃谷)이라 불리는 이 곳엔 항시 시커멓고 매캐한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


유황광(硫黃鑛)이었다. 대륙제일의 유황산지가 바로 이 곳이었다.


유황광은, 금광, 은광 등과 마찬가지로 황법(皇法)이 정한 바에 따라 관(官)에서 관장했다. 따라서 이 곳의 모든 규칙은 관에서 정하며 감시하는 자들도 관병(官兵)일 수밖에 없었다.


유황광은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필요로 했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이 곳의 환경이 살인적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삼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나가기 때문이었다. 살인적인 독성을 지닌 유황연기 속에서 삼 개월을 버틴다는 것은 차라리 기적이라 해야 옳았다.


따라서 이 곳에서 노역하는 자들은 대개가 나라에 중죄를 진 자들이거나 강제노역에 끌려온 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죽어서야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비통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시의 눈빛을 번뜩이며 탈출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오늘은 새로운 노역자들이 도착했다.


인원은 약 사십 명. 하나같이 비교적 건장한 신체를 지녔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이미 죽음의 빛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공포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알몸에 가까운 상태, 발목에는 죽음을 예고하듯 굵은 쇠고랑이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곧장 유황동으로 향했다.


'아아 . 이제는 두 번 다시 세상을 볼 수 없겠구나.'


두 눈에 가득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그들도 이미 유황광의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유황광은 수직으로 백여 장 아래에 위치했다. 유황광의 가장 깊숙한 심장부인 이 곳에서 직접 유황을 캐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빨리빨리 해! 이 굼벵이들아! 어서 캐지 못해?"


짝! 짜악!


피골이 상접한 죄수들은 채찍이 휘둘러질 때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그들의 몸에는 이미 수십 개의 채찍자국이 나 있어 그 동안의 엄청난 학대를 말해주는 듯했다.


병들고 노쇠한 그들의 마음 속에는 오직 절망밖에 없었다. 희망이 남아 있다면 단 하나,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뿐이었다.




40여 명의 죄수들은 가장 깊숙한 곳에 투입되었다.


그 곳은 열기와 유황연기가 가장 극심한 곳으로서 눈조차 뜨지 못할 정도였다.


휴르르르릉 !


기묘한 음향과 함께 거대한 불꽃이 혀를 널름거렸다.


그들 옆으로 죄수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느릿느릿 걸어갔으나 이 곳에서는 체력이 가장 강인한 자들로서 보통 죄수들보다 두 배 정도 더 일을 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여느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핏기가 없었으며 무표정했다.


대개 이 곳의 죄수들은 열흘이나 길어야 백일 정도를 버틸 뿐이었다. 지독한 열기와 유황의 독기가 살을 태우고 뼈를 녹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일 년 이상을 견디어 온 3인이 있었으니 . 그것은 실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들은 모두 노인(老人)들이었다.


노인들의 모습은 몹시 특이했다.


한 명은 오척도 되지 않는 난장이였고, 또 한 명은 머리고 수염이고 할 것 없이 온통 백색으로 탈색되어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빳빳한 검은 수염을 하고 잇었다.


'바로 저들이다.'


방금 전 지옥이나 다름없는 유황굴로 들어온 40명의 죄수들 중에서 그들을 보고 격동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청년이었는데 다른 죄수들과 달리 눈빛이 가라앉아 있는 자였다.


바로 다름아닌 백룡이었다.


'정말 교묘한 안배다. 이 곳이야말로 천하 어떤 뇌옥보다 완벽한 곳이 아닌가? 그들이 관(官)을 이용할 줄은 정말 몰랐다.'


백룡은 더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투두둑 !


그가 조금 힘을 주자 손목과 발목을 연결하고 있던 쇠사슬은 힘없이 끊어졌다.


"앗! 저놈이 !"


이때 그를 발견한 관병이 우르르 몰려와 에워쌌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다만 백룡의 몸이 빛살처럼 회전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파파팟!


그들은 거의 동시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양 노인!"


막 유황을 철바구니에 담고 있던 양천위는 흠칫했다.


" ?"


양천위는 자신 앞에 나타난 낯선 청년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비록 많이 초췌해져 있었으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담담했다. 옆에 있던 진자방과 곽릉도 일손을 멈추고 백룡을 바라보았다.


백룡이 재빨리 면구를 벗었다.


"자네는 !"


양천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백룡은 자신도 모르게 격동이 일었다.


"주천운이오, 양 노인."


순간 양 노인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으나 여전히 의혹의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룡의 얼굴은 병서보검협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로 약간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룡은 다급했다.


"시간이 없소이다. 그런데 세 분은 어찌하여 쇠사슬을 끊지 않으셨소?"


양천위가 쓴웃음을 지었다.


"무공을 잃었다네."


순간 백룡은 분노했다. 그러나 신속히 손으로 그들의 쇠사슬을 끊었다. 그는 세 노인의 쇠사슬을 제어한 후 말했다.


"갑시다."


"어디로 가잔 말인가?"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설명은 나중에 해드리겠소."


양천위와 천외전주 진자방, 곽릉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들 3인의 손을 잡은 백룡은 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무형잠형술을 펼쳐 한 가닥 연기가 된 채 그들의 신형은 유황광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신형을 날리며 백룡은 내심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행히 내게 세 알의 대환신단이 있다. 그것이면 이들의 잃어버린 무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천독교주(天毒敎主) 납파뢰(納破雷).


천하제일독문(天下第一毒門)의 문주인 그는 지금 음산한 달빛이 깔려 있는 황산의 기슭에 와 있었다.


그는 의문의 서찰을 받고 이 곳에 나온 것이었다.


서찰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대가 일문(一門)의 지존(至尊)이라면 혼자 나오시오.>




서명은 없었다. 다만 일시와 장소만 명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납파뢰는 운남 독강곡에 있는 천독교의 교주였다. 그의 천독교는 뇌정각의 비밀조직 중의 하나가 된 이후로 격상했다. 따라서 납파뢰는 새로이 천독전(天毒殿)의 전주가 된 것이었다.


납파뢰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둠에 삼켜진 수목들이 하늘을 향해 오만방자하게 팔을 뻗고 있었다.


휘이이잉!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때 문득 싸늘한 음성이 납파뢰의 고막을 울렸다.


"납파뢰. 아직은 지존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구나."


"누구냐?"


납파뢰는 황급히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신형을 돌렸다. 순간 그는 흠칫했다.


달빛을 등에 지고 건장한 체격의 인영이 나타났다. 체격은 우람했으나 얼굴은 앳되 보이는 소년이기 때문이었다. 일신에는 황삼을 걸치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소년의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납파뢰. 포대숭이란 분을 기억하느냐?"


순간 납파뢰의 안색이 변했다.


"천약귀수 ! 넌 대체 누구냐?"


소년은 부드득 이를 갈았다.


"나는 그분의 손자 포대강이다."


" !"


다음 순간 납파뢰의 안색이 몇 차례 변했다. 이윽고 그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핫 ! 가소롭구나. 포대숭은 확실히 본교주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늙은이에게 너같은 손자가 있었느냐?"


포대강의 눈에 분광이 일었다.


"네놈은 조부님을 협박해 강호에 해를 끼치는 실혼단(失魂丹)을 제련하라고 강요했다. 조부께서는 양심에 위배되는 일이므로 거절을 하셨고 "


납파뢰는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 그는 노부의 손에서 달아났다. 그러나 노부는 놈이 숨어 있는 곳을 알아내고 수하인 후왕(吼王)을 보내 잡아오라고 명을 내렸다. 그런데 "


포대강이 차갑게 내뱉았다.


"그 짐승같은 놈은 죽었다."


납파뢰는 이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그랬겠군."


납파뢰가 천약귀수의 신단술(神丹術)을 이용해 실혼단을 만들려했던 것은 바로 뇌정각으로부터 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납파뢰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능글맞게 웃었다.


"꼬마야. 그래서 네가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냐!"


그는 점점 포대강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포대강은 일 년 전에 비해 체격이 더욱 커져 있었다. 칠 척의 거구로 성장한 것이었다. 그의 두 눈이 불덩이처럼 타올랐다.


"그렇다. 납파뢰! 이 포대강은 오늘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어리석은 놈! 너의 효심은 갸륵하나 본교주는 너 따위를 상대해줄 시간이 없다."


순간 납파뢰의 눈이 흑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의 눈은 흡사 먹이를 노리는 야수의 눈빛처럼 끔찍하고 잔인한 것이었다. 그는 등골이 오싹할 만큼 으시시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를 천독교비전의 혹살만독신무(黑煞萬毒神霧)로 녹여주마."


휘류류륭 !


시커먼 독무가 그의 몸을 에워쌌다. 서서히 그는 먹처럼 검게 변한 손바닥을 포대강을 향해 뻗었다.


우웅!


엄청난 경력이 밀려오는 순간 포대강의 두 눈이 찬란한 금광(金光)으로 변했다.


아니, 그것은 태양광이었다.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빛이 어둠을 환하게 밝혔다.


"태양신강(太陽神吁)!"


포대강의 장심에서 금광이 뻗었다. 납파뢰는 대경했다.


"헉! 그것은 "


너무나 놀란 나머지 그의 진기는 산산히 흩어지고 말았다. 포대강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크아아아악!"


화르르륵 !


납파뢰의 전신에서 화염이 일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마구 뒹굴었다. 최후의 발악이었다.


후류류류 !


불꽃은 인정사정없이 그의 몸을 핥으며 서서히 삼켜버리고 있었다.


잠시 후 한 줌의 재가 되어 그 자리에 수북이 쌓인 납파뢰의 몸을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속절없이 허공에 날려 보냈다.


실로 비참한 죽음이었다. 포대강의 굳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며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할아버지 . 봉 누나 . 결국 이 강아가 원수를 갚았어요!"


주르륵!


그의 구릿빛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강아야. 정말 훌륭하구나."


" !"


강아는 흠칫하며 몸을 돌렸다. 그의 앞에는 금삼 청년이 우뚝 서 있었다. 준수한 얼굴의 청년. 바로 사비청으로 변장한 백룡이었다.


포대강은 바짝 긴장해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백룡은 면구를 벗엇다.


"아! 백룡 형!"


포대강의 얼굴이 급격히 떨렸다. 그러나 그는 잠시 후 무엇을 생각했는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윽고 털썩!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용서해 주세요, 백룡 형!"


백룡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네가 이렇게 성장한 것만 해도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형님 ."


포대강은 그의 다리를 안고 어깨를 들먹였다. 백룡은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다만 네가 천마신경을 잘못 익혀 주화입마가 될까 그것이 걱정되었을 뿐이다."


그 말에 포대강은 고개를 들고 커다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언뜻 그의 눈에 치기가 떠올랐다.


"헤헷! 제가 뭐 바본가요? 강아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 태양신공을 다만 오성(五成)까지 밖에 연마하지 않았단 말이에요.


백룡이 웃었다.


"십성(十成)이 넘으면 주화입마 한다는 걸 알고 있었느냐?"


포대강은 대답 대신 자신의 품에서 목갑을 꺼냈다.


"돌려드리겠어요. 십성(十)까지 익힌다는 것은 저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어요. 형님이라면 또 모를까 "


백룡은 그것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웬지 마음이 착잡했다.


'결국 내게 도로 돌아왔군.'


그는 포대강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다음 순간 백룡은 포대강의 키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것에 놀랐다.


"녀석, 이제 다 컸구나."


포대강은 히죽 웃었다.


"이젠 제가 형님의 짐이 아니라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예요."


"하하! 정말 그럴 것같구나."


백룡은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밝은 느낌이 드는 웃음이었다.



반듯한 암반이 깔려 있는 산정(山頂).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 삼라만상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정오(正午)의 일륜이 천마신경에 떨어지는 순간,


번쩍!


강렬한 태양광이 일직선으로 뻗었다.


"음!"


짧은 신음이 터짐과 동시에 눈부신 광채가 백룡의 몸을 에워쌌다. 백룡은 온몸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던져진 것처럼 엄청난 열기가 그의 몸을 빠른 속도로 휘돌았다.


옆에서는 포대강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엇인가를 읊고 있었다.


"천지간(天地間)에 가장 양성(陽性)이 강한 것은 바로 일광(日光)으로 ."


그가 읊고 있는 것은 태양신공(太陽神攻)의 구결이었다.


백룡은 포대강이 읊는 구결을 따라 운공을 했다. 다음 순간 체내의 극양지가가 무섭게 폭증되었다.


그의 체내에는 이대 극양지기(二大極陽之氣)가 있었다. 한 가지는 빙화와의 결합때 얻어진 것이고, 또하나는 음양천도(陰陽天桃)의 기운을 흡수한 것이었다.


이 순간 태양신공의 신비한 작용으로 그것들은 몇 배로 증폭되며 무섭게 하나(一)로 합류하고 있었다.


쿠쿠쿠쿵 !


혈맥이 확장되며 삽시에 노도처럼 온몸의 피가 치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꽝!


정수리서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까지 엄청난 열류가 관통했다.


"성공이에요!"


포대강은 기쁨에 찬 음성으로 외쳤다. 백룡은 우뚝 선 채 중얼거렸다.


"정말 천하제일의 신비한 보물이구나."


그는 천마신경으로 인해 내공이 극한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는 한순간에 태양신공을 9성(九成)까지 익혔다. 그러나 그 이상은 일부러 억제했다. 마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유보해 두기로 한 것이었다.


그때였다.


포대강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그는 한 곳을 바라보며 부르짖었다.


"저 저걸 좀 보세요!"


" !"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 백룡의 눈이 커졌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천마신경의 반사광이 한자루 검(劍)에 떨어지며 그것은 태양의 각도가 바뀜에 따라 자리를 서서히 이동해가고 있었다. 그 검은 백룡이 진령산의 한 빙동(氷洞)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태양광이 이동하면서 검집에 글씨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서서히 전자체(箋字體)의 문자가 드러고 있었다.


백룡은 검집에 나타나는 문자를 읽어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天) 마(魔) 신(神) 검(劒) >


"오오 ! 이것이 바로 천마신검이었단 말인가!"


백룡은 전율과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백룡은 놀란 가슴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검집에서 검을 뺐다. 그러나 검은 여전히 칙칙한 녹이 슬어 있었다.


그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대한 발견이었다. 만일 그 검이 천마신검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더라면 무림은 어쩌면 영원히 암흑에 잠겼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녕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나 할까?


" ."


검을 주시하고 있는 백룡의 맥박이 뛰었다.


오후의 햇빛이 눈부신 장막을 형성한 가운데 그는 석상처럼 한동안 그 자리에 굳어 손에 든 검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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