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도심의 언저리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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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2,252회 작성일 17-02-1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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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언저리_10.







정말 황당했다.




그 소리를,

그것도 이렇게 환한 대낮에,

더구나, 여자의 목소리로 듣게 되다니... ... .




정말, 이 집 집터가 안 좋아서 그런 걸까?

어째, 사람마다 하는 말 끝에 붙은 게 씨발년이냔 말이다... ... .




세상 좋은 말 다 어디에 두고,

하필이면 씨발년인지... ... .




‘너, 한 번만 더 우리 남편에게 전화하기만 해~!, 엉?’

‘이~ 씨이~! 발년아~!!!’

‘니가 그럴 수가 있어, 나한테? 엉?’

‘이~ 씨이~! 발년아~!!!’




내 심장에 엄청난 충격을 가한 사람은,

방금 전, 탐스러운 젖가슴을 보여 주던,

반지하 소규모 봉제공장에서 뒷마무리 청소를 하던 바로 그 여자였다.




그 여자가, 지하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계단으로 올라 오면서,

큼지막한 구식 핸드 폰에 대고 하는 말이,

바로 “이~ 씨이~! 발년아~!!!” 였던 것이다.




그 여자가 입고 있는,

꼭 미키 마우스 영화에 나오는 죄수복처럼,

희고 검은 가로 줄무늬가 교차한 니트 반팔 티셔츠가,

지금 “씨발년” 소리를 거침없이 해대는 그녀와,

바로 아까, 그 희고 풍만한 젖가슴의 주인과 동일인임을,

말없이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씨발년” 소리를 일부러 의도적으로 하는 것처럼,

평소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 그 소리를,

앞에 “씨” 자에 강세를 넣는 것처럼 그렇게,

뭔가 어색한 억양으로 “씨발년”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녀에게 별명을 하나 붙여 주었다.




“씨발년 여사”




보아 하니, 이 집터가 모르긴 해도

“씨발년” 소리 안하고는 못 배기는,

그런 곳인가 보다.




‘이러다 나도, 씨발놈 소리를 듣게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들과의 일을 남김없이 보여 준 그녀와 대화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한 흥분을 가눌 수 없던 처지에,




갑자기 벼락처럼 떨어진 그녀의 한마디는,

내 아랫배에 야릇한 통증을 상기시키게끔 했다.




마치, 그 한 겨울의 침투 훈련 때와 같은, 알싸한 배앓이... ... .




등 뒤에 감추고 있던, 담배는 필터 끝까지 생담배로 탄 채,

필터 끝부분이 열기로 녹아들어 쪼그라진 상태였고,

“씨발년 여사”의 “씨발년” 소리를 가만히 듣고 서 있기에는,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와 나는 너무나도 어정쩡해 보였다.




하얗고 발랄한 그녀는 어느 새, 얇은 여름 이불을 걷어서 들어갔는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빼꼼히 열어 놓은 문만이

그녀가 방금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음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 자리에 남은 나는 혼자 졸지에 도심 속의 원숭이가 되고 말았다.




엉거주춤한 채,

한 손에는 제 풀에 오그라들은 담배 꽁초를 들고,

오도 가도 못하고, 쭈볏 거리고 서있는 나... ... .




이게 바로 동물원에서 방금 탈출했다가,

사람들에게 들킨 원숭이 꼴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씨발년 여사”의 “씨발년” 소리는 듣지도 못한 것처럼,

서둘러 몸을 돌이켜 방으로 되돌아 온 나는,

드리워진 커텐에 몸을 최대한 숨기고,

“씨발년 여사”의 동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핸드폰에 “이~ 씨발년아~!” 소리를 되풀이하며,

혼자 씨근덕 거리던 “씨발년 여사”께서는,

골목으로 한참을 걸어 나가 버리는 바람에,




마치, 갑자기 천둥이 울리고,

하늘에서 날벼락이 울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빤짝 해가 나는 것처럼,

사람을 어리둥절하게까지 만드는 고요함이 손바닥만한 시멘트 바닥에 남아,

커텐 뒤에 숨어 있던 내가 나 스스로를 정말 원숭이 취급하기 시작하려는 순간,




짙은 화장을 한, “씨발년 여사”께서 까만 비닐 봉지를 하나 손에 들고는,

다시 바깥 골목에서 되돌아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곱상한 얼굴이었으나,

세월의 흔적을 애써 화장으로 감춘 것이,

어둑어둑해진 가운데에서도 얼핏 보였다.




‘누굴까?’




오래 전, 군대 있을 때 물물교환을 하던,

그 아줌마와 많이 닮았다 싶기도 하고,

아니면, 어디서 본 얼굴인지는 몰라도,

많이 익숙해서, 참 편안하게 보이지기까지 한,

나로서도 알 수 없는 느낌을 주는,

그런 얼굴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전혀 기억이 안나네?’

‘그리 흔해 보이는 얼굴도 아닌 것 같은데... ... .’




그리고, 편안한 느낌 너머로,

오래 전 군대 시절의 물물교환과,

그 당시 있었던 일들이 마치 오래된 슬라이드 필름처럼,

그렇게 머리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더니,

차츰 그 회전을 점점 더 빨리 했다.




내가 근무하던 곳에는, 대대 정문 위병소 말고,

우리 중대가 있던 철조망 쪽으로 다닐 수 있는,

간이 출입구가 하나 있었다.




정문 위병소로 출입하기 곤란한 복장으로 부대 바깥으로 나갈 일이 있거나,

또는, 인근 국도에 심어 놓은 꽃들을 야음을 틈타 훔쳐 오거나,

아니면, 산으로 들로 싸리 작업을 위해 나가는 등등의 일을 할 때,

애용되는 출입문이었는데,




그런, 장소가 장소였던만큼,

그 출입문은 인근 43번 국도와 약 100미터 정도 거리에 있었고,

그 국도 가장자리에는 허름한 구멍가게와 공중전화 박스가 있었으며,

그 구멍가게는 종종, 우리 중대원들에게 맞춤 떡볶이와 쵸코 파이,

그리고 밤 몰래, 집에 전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가게 덕분에 나는,

2․4종계, 속칭 걸레라는 내 본연의 군 임무에 충실하여,

국민의 피땀으로 거둔 세금을 가지고 만든,

각종 세숫비누와 빨래 비누 등이 남아 도는 것을,

그냥 땅에 파묻어 버리는 만행으로 되갚는 것이 아니라,

그 구멍가게에 들고 가서, 그 당시 최고급이었던 담배 88과 바꾸거나,

갖가지 군것질거리로 바꿀 수 있었다.




이제 소대와 중대에서 어느 정도 중간 고참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쌩뚱맞게 다시 행정반에서 근무를 해서,

처음부터 다시 좆뺑이를 쳐야 한다는 사실에,

인사계와 중대장을 따라 다니며,

한 동안 행정반에는 죽어도 못간다고 악을 써봤지만,




가끔씩 일직사관으로 올라 와서 근무를 설 때마다,

“저 놈, 저거 아주 장난감 병정 같이 이쁘장하네?” 하며,

나를 귀여워 해주던 대대 보급과 선임하사 김 상사가,

대대 작전과장에게 사바사바 해설랑은,

나를 행정반으로 끌어 내렸던 터라,

맞춤 떡뽁이, 라면 등과의 물물교환은,

그런 억울함에 대한 보상과 같기도 했던 터였다.




뿐만 아니라, 실제 업무가 가지고 있는 파워도 제법이어서,

사병들에게는 피복과 전투화 및 장구류 등으로,

간부들에게는 시멘트와 목재 등으로 제법 하려고만 들면,

떠세 아닌 더세를 할 수도 있는 처지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 “슈퍼타이”인가 뭔가 하는 세제가 나와서 한참 유행하는 바람에,

다 닳아빠진 구둣 솔에 빨래 비누 묻혀 전투복을 박박 문질러 대는 빨래는,

이등병 딱지만 떼면, 슬그머니 손을 떼고는,

게나 고동이나 세숫대야에 빨래를 담가 놓던 시절이라,

그 잘난, 빨래 비누는 이미 공급 초과의 상태에 이른지 오래였더랬다.




아니면, 군발이들이라 원래 잘 씻지를 않는 것인지 어쩐지,

암튼, 군용 빨래비누, 세수비누, 치약 등은 창고에 나마 돌아서,

처치 곤란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으나,

묘하게도 휴지 만큼은 항상 모자랐다.




하지만 나는 치사하게 빤쓰나 런닝구는 안빼돌렸다.

나는 잉여 물품만 팔았다.

양심껏~!




무식한 말일지 모르지만,

빤쓰, 런닝구, 모두 그렇게 박스에 표기되어 있고,

또 그렇게 장부에 기록을 해야만 하니, 그렇게 기억을 할 뿐이다.




그런 소모품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 부대는 전군에서도 유명한 실험용 마루타 부대였다.

이런 것이 어떨까 하고 실험적으로 제작이 되면,

우선적으로 먹이고, 입히기고, 써보게 하는 그런 불쌍한 부대였다.




그런 우여 곡절 끝에 지급된 여군용 빤쓰... ... .




그걸 처음 받은, 어떤 놈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어? 이건 앞에 구멍이 없네요?’

그 말에 밑도 끝도 없이, 불출 업무가 귀찮기만 했던 나는,

‘씨팔 놈아 신형이야~ 그냥 입어~!’

하고 말았는데... ... .




곧 이어 부리나케 들이닥친,

대대 보급 선임하사관 김상사의 참담한 표정이라니... ... .




결국, 벌써 포장 뜯어 입은 놈들 것까지,

도로 벗겨 가져가는 해프닝으로,

저녁 나절이 시끌시끌 했지만,

그것을 한 번 입어 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주일 내내 실실 쪼개던 유하사가 갑자기 떠오른다.




그 인간 지금 뭐 하고 있을까... ... .




간부들은 막걸리 공장에 쌀 팔아 먹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시절이었고,

   (하긴 냄새나는 정부미를 누가 산단 말인가?)


김장철이 되면, 간부들에 의해 배추와 무, 고축가루 등속은 모조리 빼돌려지고,

소금물 들입다 붓기로 그저 용량 채우기가 기본이었던 시절이기도 했으니,

어찌 보면, 그런 내 물물 교환은 정말 귀여운 수준이기도 했다.




그러니, 구멍가게 아줌마와의 물물교환은,

그런 면에서도 땅 파고 묻는 수고보다는,

훨씬 더 큰 경제적 이점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이게 바로, 비교 우위라 카는기다~ 자슥아~’ 하며,

울산 출신 후임병에게 말도 안되는 경상도 사투리로,

장난스레 업무 인수인계를 하며,

물물교환에 대해서도 말을 하던 기억도 새록새록했다.




뿐만 아니라, 선배들로부터 전해오는,

구멍가게 아줌마와의 야릇한 일 또한, 비밀리에 전수했음은 물론이다.




물론, 내 이야기는 빼고... ... .




어딘지 모르게,

촌 구석에서 썩고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곱상한 얼굴과,

넉넉하고 푸짐한 살집이 있던, 그 구멍가게 아줌마... ... .




그녀에게는, 대대로 고참병들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었다.

치마만 두르면, 우체통을 보고도 딸딸이를 친다는 군발이들에게는,

밤마다 모포를 하얗게 적시게끔 만들기에 충분한,

정말, 어느 군부대라도 있을 법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는 부대원, 특히 후문 경비를 전담하는,

우리 중대원 중에서도 고참끼리 사이에서 쉬쉬하며 몇몇끼리만 이야기 하고 지내는,

그런 류의 이야기였다.




예를 들면, 몇 년 전 아무개 병장이,

어느 날, 밤중에 몰래, 후문 초소에서 보초를 서던 쫄따구들에게,

요 앞 공중전화에서 집에 전화 좀 걸고 온다며 스리슬쩍 빠져 나가서는,

그 아줌마와 정신없이 그 짓을 하고 있는 사이,




사단 일직사령이 갑자기 검열이 나와서는,

잠자던 아해들 대가리 숫자를 세다가,

한 마리가 빈다는 사실에 졸지에 비상이 걸렸고,




어리버리하게 자빠져 자다가,

갑작스런 사고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던 일직사관과 주번하사는,

사단 일직사령이 후문 초소 초병들을 족치는 것을,

그저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다가,




급기야, 사단 일직사령이 저 아래 공중전화 박스까지 한 달음에 뛰어 가는 뒤를,

그저 죽여 줍시오 하는 표정으로 뒤따라 갔으나,

허탕만 치고 올라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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