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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9,976회 작성일 17-02-0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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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셔요.
번역에다 약간의 살을 붙여 올려 봅니다.
그럼...

「나의 사랑 나의 어머니」


< 에필로그 >


영동 고속도로 대관령 고개를 막 내려서던 짐을 잔뜩 실은 트레일러가 브레이크 파열되며 순식간에 중앙선을 넘어 우리가 타고 있던 자동차를 덮치는 바람에 우리 가족의 행복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엄마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다섯 살 난 나는 기적적으로 아무데도 다친 곳이 없었다.
엄마가 퇴원해서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나는 몇 달간을 보육원에서 보내야했다.

엄마는 겨우 15살에 아빠에게 강제로 당해서 나를 낳았다.
홀홀 단신으로 6.25때 월남하여 제법 알아주는 기업체를 만들어 운영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뒤를 이어 아버지가 사장이 되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빠의 회사에 사환으로 취직하여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엄마를 어느날 사장인 아빠가 강제로 범해 나를 임신시켰다.

스무 살 난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하여 보육원에서 나를 집으로 데리고 온 다음 몇 주 내내, 엄마와 나는 신문기자와 법정과 변호사 사무실에서 질문을 해대는 사람들 속에 묻혀 지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매스컴은 온통 아빠의 죽음과 엄마와 나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사십대의 대기업 사장이 스무 살된 여자와 다섯 살 난 아이를 감추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아빠와 엄마는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을 때부터 누가 무었을 물어도 알려주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했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보육원에 있는 동안 나는 누가 무었을 물어도 알려주지 말라는 아빠와 엄마의 그 말을 충실히 이행하였고 사실은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무엇이든 알아내려고 꼬치꼬치 묻는 사람들이 정말로 지겹고 무서워서였는지도 몰랐다.
얼마동안 이런 일들로 인해 시달린 나는 자연스럽게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우게됐고,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생활을 말하지 않게 됐다.

얼마의 날들이 지나자 상속문제 등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매스컴에서도 찾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엄마와 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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