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나의사랑나의어머니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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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8,198회 작성일 17-02-0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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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엄마와 나 사이에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새로운 쾌락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엄마와 나는 달콤한 늦잠을 즐기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잠이 깬 엄마는 나의 자지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더 자고 싶었지만 자지를 통하여 느껴지는 감미로운 촉감에 어렴풋이 잠을 깨며 습관처럼 엄마의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그런 상태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가 입고있는 잠옷을 벗기고는 나를 똑바로 눕혔다.
나의 자지 근처에 엄마의 따스한 숨결을 느껴졌다.

엄마는 뺨으로 나의 자지를 한 동안 비벼대다 갑자기 내 자지를 입에 물고 내가 엄마의 젖꼭지를 빠는 것처럼 내 자지를 빨기 시작하였다.

그 최초의 아찔한 자극은 나를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빠트려 버렸다.
엄마의 부드러운 혓바닥이 내 자지를 휘 감을 때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짜릿한 감촉이 나의 조그마한 자지를 통하여 나의 머릿속에 강렬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 느낌은 나에게 있어서 놀람, 그 자체였다.

전에 엄마는 한 번도 이렇게 해 준 적이 없었다.
놀라움도 잠시, 나는 어느새 엄마가 촉촉한 입으로 자지를 빨아주는 것과 입술과 혀로 자지
를 문지르는 감촉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깔끄러운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잔잔한 털이 돋아 나있는 엄마의 보지가 내 얼굴 위에 있었다.
엄마는 나의 자지를 빠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내게 엄마의 살 구슬을 빨아달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별로 내켜하지 않자 엄마는 장난스럽게 보지로 내 얼굴을 누르고 숨을 못 쉬게 만들었다.
나는 숨이 막혀오자 고개를 도리질하며 빠져 나오려고 해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가 하는 수 없이 항복을 하자, 엄마는 상냥하고 달콤한 말로 다시 나에게 엄마의 살 구슬을 빨아 달라고 했다.

나는 별로 마땅치 않아 투덜거리며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엄마의 살 구슬에 입을 대었다.
처음 맛보는 엄마의 살 구슬은 약간 새콤하면서 조금 짭짤한 것 같았다.
나의 입술과 혓바닥이 엄마의 보지 살 구슬에 닿자 갑자기 엄마가 얕으막한 신음을 흘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듣자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쉬지 않고 열심히 얼마동안 엄마의 살 구슬을 빨다 보니 어느덧 엄마의 체중이 내게로 쏠려왔다.
그러자 다시 숨이 막히고 힘이 들었다.

나는 잠시 빠는 것을 멈추고 엄마에게 답답하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자 엄마는 우리의 위치를 반대로 바꾸고 다시 자지와 보지 빨기를 계속했다.

이제 나는 다소 행동이 자유로워져서 엄마의 보지를 자세히 보며 내가 빨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빨며 눈으로도 볼 수 있었고, 엄마가 내 얼굴을 향해 엉덩이를 들어올려 밀어 부쳐도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내가 엄마의 살 구슬을 빨 때마다 엄마도 나의 자지를 거칠게 빠는 것을 보고, 나는 엄마가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가끔씩 엄마의 살 구슬을 혓바닥으로 굴릴 때마다 엄마의 입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토해 내었다.

그날 아침, 나는 다른때와 달리 별로 힘들이지 않고 금방 엄마를 오르가즘으로 이끌 수 있었다.

그 후 한참 동안의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엄마의 살 구슬을 핥는 속도와 강약을 조절하면서 엄마를 약올리고, 거의 미치게 될 정도까지 이르게 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어쨋든 나는 이 날 최초로 경험한 느낌-엄마의 보지를 핥고, 엄마도 내 자지를 빨아주던 그 감미로운 느낌-이 나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버렸는지 지금도 가끔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면 바지 속의 자지가 불쑥 솟아오르곤 한다.

이제 엄마와 나는 목욕할 때나, 잠 자기전, 잠에서 깨어 침대에 누운 채,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서로의 보지와 자지를 빨았다.
엄마가 오르가즘을 느끼고 나면, 나는 엄마의 다리 사이에 누워 엄마의 보지를 갖고 놀았다.

엄마는 내 자지가 어떻게 엄마의 보지 속으로 들어가는지 가르쳐줬지만, 아직 어린 내 자지는 엄마의 보지속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고 힘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보지 속으로 진입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엄마의 클리토리스에 나의 조그마한 좆대가리를 문지르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 하였다.
엄마와 나는 이렇게 서로에게 기쁨을 주며 남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엄마를 무척 사랑했고, 엄마 역시 나를 끔직히 사랑했다.
우리는 서로를 슬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았고, 항상 같이 붙어 다녔다.
사람들은 우리의 사랑스런 모자관계를 부러워했고,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엄마를 칭찬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잡초처럼 쑥쑥 자랐다.
내 몸과 자지도 무척이나 많이 자라서 이제는 엄마의 보지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커졌다.
그것은 엄마와 나의 즐거움을 배가시켰고, 내게 섹스의 진짜 즐거움이 무엇인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하여 주었다.

나는 아직 오르가즘을 느낄 만큼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보지 속에 자지를 넣고 있는 것이 그냥 좋았고, 내 자지는 엄마의 보지 속에 담겨 있을 때 영원토록 줄어들지 않고 일어서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튼 나의 자지가 엄마의 보지 속으로 들어 갈 수 있을 정도로 커지자 엄마는 내 위에 올라앉아 방아를 찧는 것을 좋아했고, 여러 번의 오르가즘을 느끼며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어댔다.
엄마가 방아찧기를 하지 않을 때면, 내가 엄마 위로 올라가 지칠 때까지 엄마의 보지 속에 펌프질을 하기도 했다.

그즈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는 옆치기 였다.
엄마를 옆으로 눕혀 한쪽 다리는 내 다리 사이에 두고, 다른 다리는 내 허리에 두른 자세였
다.

이 자세로는 내 자지를 엄마의 보지 속에 묻은 채로 쉴 수도 있었고, 더 오랫동안 엄마의 보지 속에 내 자지를 파묻을 수가 있어서 좋아했다.
엄마와 나는 자주 그런 자세로 잠이 들었다.

엄마의 따뜻하고 미끈거리는 보지 속에 자지를 넣고있을 때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나는 입으로든, 자지로든 우리의 기쁨을 즐길 수 있는 기회라면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엄마는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엄마가 대학에 들어 간 뒤로 엄마는 전 보다 훨씬 명랑하고 쾌활해졌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엄마와 같은 나이 또래의 친구처럼 대했고, 나는 7살의 나이에 비해 무척 조숙한 편 이었다.
아니, 조숙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대학을 다녔고 나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엄마는 대학을 다니며 치근덕거리는 남학생들에게 매우 쌀쌀맞고 냉정하게 대했고, 학교 생활에 방해가 될 어떤 스캔들도 만들지 않았다.
엄마와 꽤 친한 같은 과 학생들 조차도 엄마에게 아들이 있다 것을 몰랐다.

이렇게 엄마와 나의 비밀을 간직한 채 세월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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