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청춘야망 -대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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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2,309회 작성일 17-02-0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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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밝았다.
옆에 에리코는 없었다.
한 번 더 관계를 갖은 뒤 어머니 방으로 돌아간 것이 기억났다.
(이런 곳이에서 아침을 맞을 줄은 전혀 예기치 못했다. 인생에는 예측치
못한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잠시 사색에 잠겨 있는데 문이 살며시 열리며 기모노 차림의 에리코가 들
어왔다.
<벌써 일어났네요? 잘 잤어요?>
기모노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소녀적인 것이라 어젯밤의 열정이 거짓말 같
았다.
<네.>
에리코는 그의 머리맡에 정좌했다.
<어머니는?>
<가게에 나갔어요. 근처 미장원에서 일해요. 졸리면 더 주무셔도 돼요.>
<아뇨, 슬슬 일어나야죠.>
<이불을 정리할게요.>
에리코가 이불을 걷었다.
마사키는 전라였다.
그의 몸은 아침의 생리적인 현상이 채 가시지도 안은 채 에리코의 출현으
로 힘찬 모습이었다.
그녀의 눈이 거기에 머물었다.
정감어린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뻗어 부드럽게 쥐고는 볼에 비벼댔다.
<건강하군요.>
<젊으니까.>
어린애가 인형에게 볼을 비비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음탕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사키는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세수하고 식사하세요.>
마사키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금 있다가. 근데 어머니가 무슨 말씀 없으셨나요?>
<하셨어요.>
에리코는 두 눈 가득 장난기를 머금었다.
그리고 마사키에게 매달려 왔다.
에이코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긴 키스 뒤에 입을 떼고,
<야단 맞았어요.>
<역시.>
에리코는 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그게 아니구요. 왜 그렇게 소란이냐고. 좀더 조용히 여자답게 처신하라구
요.>
<그럼 우리들의 행위 자체는 탓하지 않으셨다는 말인가요?>
<이미 저질러진 일인데 탓해도 소용없겠다고 생각하신 거겠죠.>
에리코는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었다.
<관대하신 분이군요.>
<처음이었어요. 남자가 내 방에서 잔 건. 때문에 좀 놀라셨나 봐요.>
에리코는 두 팔을 목에 감아왔다.
<마음 쓸 거 없어요. 어머니도 다 그렇게 해서 날 낳으신 거니까.>
에리코는 부부와 미혼 남녀의 차이를 생각지 않는 것 같았다.
<당신은 조금 특이한 면이 있어요.>
<그래요? 자, 이제 일어나세요.>
식사를 마치고 마사키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고 에리코는 집안일을 시
작했다.
눈을 감고 있으려니 요시코의 청순한 얼굴이 떠올랐다.
죄의식이 밀려왔다.
(남자로 태어난 이상 이 정도 일은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럼 요시코도 여자로 태어난 이상 역시 다른 남자에게 안겨도 된다는 뜻
인가?
(여자에게도 육체의 욕구는 있지만 그래도 요시코는 안돼.)
마사키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옆에 에리코가 자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전라였다.
마사키는 그녀의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저, 애인 있어요?>
<있어요.>
<그렇겠죠.>
<하지만 도쿄에 있진 않아요.>
<그럼 고향에?>
<네.>
<아름다운 여인?>
<네. 그 이야기는 그만 두죠.>
다른 여자와의 잠자리에서 요시코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었다.
<미안해요. 실망이네요. 애인이 있어서 그렇게 능숙했군요?>
<그녀와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른 연상의 여인들에게 배운 거예요.>
<어머나, 얄미워라.>
<당신도 연상의 남자에게서 배웠죠?>
<그건 그렇지만.>
<그럼 같은 거잖아요.>
어머니는 점심 시간에 고기를 사들고 돌아왔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에게 꽤 많은 질문을 했다.
마치 면접을 보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며 마사키의 옆에 다가서서는 귓속말을 하였다.
<임신만은 주의해 줘요.>
마사키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마사키는 와세다 문학도들의 우상인 단와 후미오에게 작품을 들고
찾아오라는 엽서를 받고는 동인들과 함께 축하주를 마셨다.
단와 후미오에게는 전국에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수많은 편지가 온다.
그래서 마사키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동인 작품 중 한 편을 선정하여 선배
님의 평을 듣고 싶다는 부탁의 편지를 보냈는데 정말 운 좋게 답신이 온 것
이다.
2차를 에리코가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서 하기로 했다.
학생들이 출입하기엔 부담감을 주는 고급 술집이지만 에리코가 특별히 주
인에게 할인 가격을 부탁하겠다고 장담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향한 것이다.
이미 에리코와의 일은 동인들에게 말한 바가 있었다.
단와 후미오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청년이,
<단와 후미오는 오늘밤 신주쿠에 있어요.>
라고 했다.
마사키가 놀라서 그를 보았다.
장발에 마른 체격과 창백한 얼굴이었다.
<네?>
<오늘 긴자에서 신작가 모임이 있죠. 12일회라고 알아요?>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모임 뒤 단와 후미오는 주로 제자들과 함께 신주쿠의 아키다야에서
한 잔 하죠.>
그때 에리코가 끼어들어 서로를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제 과선배인 하시모토 쇼오지 씨.>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사키 일행은 문단의 일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듯이 말하는 하시모토의 열띤 문학론을 안주삼아 경청했다.
12시가 되자 다른 손님들은 모두 돌아가고 하시모토와 마사키 일행만 남아
있었다.
시계를 보며 하시모토가 말했다.
<에리코, 이제 가도 되겠지? 갈 준비해.>
에리코가 당황했다.
<난 오늘밤 주인집에 묵을 거예요. 배웅 안해 주셔도 돼요.>
그러나 마사키는 그녀가 몰래 하시모토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 보였다.
은근히 에리코와의 잠자리를 기대하고 있던 마사키는 실망하며 그만 일어
났다.
<우리도 이제 돌아가자.>
에리코는 이미 여러 남자와 관계를 가졌을 것이다.
선배인 하시모토와도 그랬을 수도 있으며 놀랄 일도 아니다.
또 그것을 비난할 권리가 마사키에게는 없었다.

3일 정도 지나 학교에서 에리코를 보았다.
단정한 여대생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가방 속에 피임 기구가 있을 지 모른다.
얼핏 그런 생각을 하며 다가갔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마사키는 그녀와 하시모토와의 사이를 확인하고 싶
어졌다.
<그날 하시모토 씨의 집에 갔었나요? 아니면 여관?>
에리코의 눈에 곤란해 하는 빛이 역력했다.
얼굴을 붉혔다.
<그 사람 여관엔 가지 않아요.>
마사키의 질문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였다.
<좋아 하나요?>
<그냥, 그저 그래요. 그쪽도 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 일 말했어요?>
<아뇨.>
<오늘도 아르바이트하러 가나요?>
<네. 가게에 올래요?>
<오늘은 곧장 집에 가야해요. 내일까지 원고를 마쳐야 하거든요.>
<그럼 모레 올래요?>
<모르겠어요. 또 가더라도 그 선배가 있을 지 모르고.>
<아이, 다음엔 누가 있어도 당신과 나갈게요. 약속해요. 그러니 빨리 와
요.>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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