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德厚の野望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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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904회 작성일 17-02-1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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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관도의 행인은 셋으로 불어났다. 일행으로 보이기에는 아니다 싶고, 남남이라고  하기에도 그러한 간격을 점하면서 염미홍은 부아가 치밀었다. 이런 외진 길에 만났으면 같이 동행을 청해주는 것이 예의다. 더군다나 둘은 젊은 남자이고 자신은 소녀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소년 무사는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뒤에 귀인이라는 작자는 부채 너머로 힐끗힐끗 돌아보는 게 노회한 마나님이 첩실을 흘려보는 것 같아서 은근슬쩍 비위를 건드렸다.

-저 두 놈, 혹시 오입쟁이들 아냐? 나 같은 미소녀를 봐도 꿈쩍도 안하는 걸 보니.

염미홍은 자신의 미모가 총각이나 한량들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잘 안다. 일찍이 세파의 풍랑에 단련된 터라 눈치와 머리 회전도 빨랐다. 채 피어나지 않는 미소녀는 흑룡방주의 수청건 처럼 노려지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호감이나 떡고물을 얻는 반사이익도 쏠쏠하다는 것을 체득했다.

"쇠파리가 꼬였나, 이 놈의 말이 자꾸 꼬리춤을 추는군?"

덕후가 말 궁둥이를 때려치는 시늉을 하면서 크게 중얼거렸다.

-저것이!

자신을 풍자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염미홍은 발끈했지만, 입을 열면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못들은 척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입질이 없자 덕후는 방법을 바꿨다.

"항주까지는 얼마나 걸리려나. 엉치뼈가 슬슬 저려오는구먼."
"항주에 볼 일 있어요?"

이때다 싶은 염미홍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좁히며 물었다.

"그렇다오. 항주와 소주라면 역시 꾸냥들 보러 가는 것이 아니겠소?"
"어머나, 풍류공자이시군요."
"하하하, 그 정도 수양은 없다오. 그냥 떡치러가는 거지."

덕후는 두 손으로 엉덩이를 움켜쥐는 시늉을 하면서 허리를 과장되게 들었다 내렸다했다. 염미홍은 그 천박한 행동에 눈쌀을 찌푸렸으나 천연덕스럽게 미소를 꾸몄다.

"항주에는 미녀만 유명한 게 아니에요. 볼거리도 많고 도박장도 성황이죠."
"돈놀이는 관심없소. 그 거 할 짬있으면 떡 치는 비용에 죄다 쏟아붙겠소."
"도박을 하면 돈을 불릴 수 있다구요?"
 "하지만 열에 셋 밖에 안되지. 아니 하나도 될까말까? 그럴 바에는 나머지 일곱이나 아홉에 의지하는 게 명철보신의 길이지."

덕후는 쥘부채를 쥐락펴락했다. 염미홍은 의외라는 듯 덕후를 새삼스럽게 보았다. 괴벽이 있는 한량인 줄 알았더니 단순히는 아닌 듯 했다. 아까 소년 무사의 칼이 코 앞에 있었을 때도 여상스러운 자세였다. 염미홍의 눈이 반짝였다. 대어를 낚을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뇌리를 찌르르하게 울렸다.

"항주에 아는 댁이나 사람이 있나요?"
"없다오. 남경 쪽에는 있긴 하지만. 그리고 떡치러 갈 때는 홀가분한게 좋지."
"그럼 제가 안내해드릴까요? 항주가 제 앞마당이거든요."
"호오, 나더러 아가씨를 고용하란 말씀?"
"에헤헤, 아가씨 까지 높은 신분은 아니구요. 겸사겸사 죠. 아까 저를 도와주셨으니 최소한 바가지를 쓰는 일이 없도록 해드릴게요."
"그거 눈물나는 호의이구려. 하지만 필요 없소."

넘어갈듯 하다가 덕후는 딱 잘라 거절했다. 거진 거래가 성사되었다고 여긴 염미홍으로서는 뜻밖의 반전이었다. 무안함과 분노가 치밀었다. 당장 "싫음 말아, 이 새끼야!"  란 소리가 목청까지 치솟는 것을 가까스로 참는다. 염미홍은 하늘을 보면서 한숨을 푹 토했다.

-우와, 오늘 성질 많이 죽었다.

"아가씨는 뭐가 그렇게 울분이 많소? 잘만하면 역수가를 들을 수 있을 것 같구먼."

역수가는 진시황의 암살을 시도한 자객 형가가 강을 건너면서 부른 노래이다. 시문에 어두운 염미홍이지만, 저잣거리에 이야기거리를 제법 들은 터라 덕후가 무슨 의도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깜냥은 있었다. 속은 부글부글 끓건만, 염미홍은 일부러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걱정이 되서요. 듣고 싶으세요?"
"신세한탄이라면 관둡시다. 온갓 쾌락을 즐기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공연히 우울한 이야기 따위를 들어서야 쓰겠소?"

덕후는 쌩긋 웃었다. 장광설을 토해내려던 염미홍은 숨이 막혔다. 분노와 억울함이 곂친  염미홍은 입매를 악물면서 덕후를 노려보았다.

"당신, 지금 날 가지고 노는거지?"
"그쪽은 날 속이려 들지 않았소? 그러니 눈높이를 해주는 것 뿐이오."

여인의 한기가 묻어나건만 덕후는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염미홍은 한참 덕후를 노려보다가 굳은 인상을 풀었다. 체념한 듯 꾸미는 듯한 얼굴이 사라졌다.

"제가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하면 공자는 어떻게 하실건가요?"
"아가씨가 원하는 만큼 책임을 져주지."

그 말에는 염미홍 뿐만 아니라 무관심을 가장하고 있던 형욱까지 덕후를 보았다.

"나는 곤경에 처한 아가씨를 외면할 만큼 무능력하지도 매정하지도 않소. 다만, 전후 사정도 모르고 휘둘리는 것은 딱 질색이오."

잠깐 망설이던 염미홍은 덕후에게 자신이 처한 신세를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원래 염미홍은 고아 출신이었다. 앵벌이 짓을 하다가 가극단에 자질이 눈에 띄어 예인의 길을 걸었다. 한 미모하는데다가 몸도 날렵하여 금새 가극단의 상징이 되었다.

"신임 흑룡방주란 작자의 취임식에 갔다가 일이 꼬였죠. 방주란 놈이 저를 보고 눈독들인 거예요.극단주도 날 평소 고까워하는 편이니 얼씨구나 하고 팔아넘긴거죠.일전에 밤톨만한 자지만 믿고 나한테 껄떡거리다가 혼쭐이 났거든요."
"저런, 막되먹은 놈이군!"

염미홍은 덕후가 맞장구쳐주는데 흥이나 계속 말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가 없었죠. 극단주 개  새끼가 받기로 한 백 냥을 천 냥으로 불려서 대상련 전표로 받은 다음에 야밤을 타고 날랐죠."
"저런! 극단주의 모가지가 남아있지 않았겠구먼."
"다 제 명이죠."

깔깔 웃던 염미홍은 이내 포옥,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창 일대는 흑룡방 영역이기 때문에 그곳만 벗어나면 무사할 줄 알았죠. 하지만 놈들이 어찌나 끈질긴지 계속 추적해오는 거예요. 쫌생이들 같으니."
"신임 방주의 취임식에 일어난 일 아니오? 방주 체면과 직접 연관 있다고 여긴 탓이지."
"흥! 그 딴 패륜아에게 무슨 체면이 있을까."

염미홍은 냉소했다. 현 방주 강일도은 전임 방주 강무제를 죽이고 강제로 오른 것이다. 정확히는 강일도가 강무제와 혈연을 부정하면서 참살 한 것이다.흑룡방이 아무리 사파 계열이라해도 부자지간은 천륜이라는 인식이 있는 시대다. 강일도의 파란장만한 계승은 무림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섣불리 움직이는 이들은 없었다.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십패는 나서서 상황을 주도한다면 자신들이길 바랐고, 다른 이들이라면 제제할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손을 써야할 시기를 가늠하는 동안 강일도는 화급히 정식 방주에 취임하여 내부를 단속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염미홍이 대담하게 천 냥을 갈취하며 도주한 이면에는 그런 계산이 깔려있던 것이다. 비록 오산으로 끝났지만. 이제 덕후의 말을 듣고보니 그럴 법도 했다.

"아무튼, 항주로 가려다가 아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까봐 중도에 방향을 바꿔서 북경행을 잡았어요. 그러던 도중에 공자님을 만난거죠."
"아가씨는 복이 있었나보군."
"그러게요. 그럼 이왕이면 복을 마저 누리게 도와주세요."

염미홍은 애교를 부리듯 한쪽 눈을 깜빡였다. 덕후는 짐짓 호기롭게 웃었다.

"내 그리 하리다."

둘은 언제 신경전을 벌였냐는 듯 죽이 맞아 시시덕 거렸다. 앞서 가던 형욱이 이유없이 짜증날 정도로. 염미홍이 덕후에게 다가가 손짓으로 은밀히 형욱을 가리켰다.

"저 무사님은 누구세요?"
"나도 잘 모르오. 그저 보표(호위 무사)로 추천 받아 삼은 것이오."
"아까 손속을 보니 무척 잔혹하던데, 원래 성격도 그런가요?"
"글쎄, 이등병과 같다고 할지. 하지만 지켜보면 귀여운 점이 없진 않소. 당사자 뒤에 수근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나중에 직접 대화해보시오."

염미홍은 불가해한 눈빛으로 덕후와 형욱의 등을 번갈아보았다. 앞서 가지만 청각이 예민한 형욱은 다 들었다. 귓볼이 화끈거리는 것은 계절 아니게 바람이 불었기 때문일까. 둘은 형욱에게 관심을 옮겨항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염미홍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공자님, 아까 흑룡방도에게 한 말은 진심인가요?"

자신을 두고 간살하는 게 어떠냐는 발언을 끄집어낸 것이다.

"하하하, 아가씨는 그게 서운했나 보군? 눈에 보이는대로  믿을 수는 없으니, 반쯤은 선악을 구분하려는 의도에서 였소."

그럼 그 나머지 반은? 염미홍은 저도 모르게 질문하려다가 도로 삼켰다.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모호하게 웃는 덕후의 모습에 머리털이 쭈뼛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뒤이어 중얼거리듯이 한 말에 염미홍은 확신을 얻었다.

"여자의 감이라는 건 참 좋은거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고들 하던데."
"에헤헤, 제가 방금 무슨 소리를 했던가요? 어서 항주로 가야죠!"

염미홍이 도피하듯이 일부러 기운차게 외쳤다. 덕후는 피식 웃더니 질문했다.

"말은 탈줄 아시오?"
"마상 연극을 배워서 좀 탈 줄은 알아요."
"그럼 중간에 들러서 말 하나 사가지고 갑시다. 항주까지는 제법 먼데, 아가씨를 두 다리로 걷게 하는 것도 보기 그러니."

덕후의 말대로 염미홍은 회안에서 말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간만에 타는 것이지만 쉽게 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지옥은 그 다음부터였다. 마상 연극을 위해 잠깐잠깐 타는 것과 장거리 주행과는 별개였다. 남창에서 남직례 근처까지 도주한 염미홍도 체력 하나는 자신 있는 편이었지만, 마상에서 소모하는 체력은 훨씬 심했다. 이틀도 지나지 않아 염미홍은 허리 아래 엉치뼈와 허벅지가 아프다못해 끊어질 것 같았다. 쉬어갈 것을 호소할 때마다 덕후는 다음과 같은 말로 염미홍의 속을 긁어댔다.

"어허! 박자가 중요하단 말이오. 박자가! 예인이라면서 그런  기본적인 걸 잊으셨나? 장차 서방을 깔고 어떻게 요분질 할까 심히 걱정되는구먼!"
"아악! 남이 요분질 하든! 맷돌 굴리든! 쉬었다 가요! 네?"

염미홍도 지지 않고 바락바락 악을 써댔다. 둘의 수작질에 사이에 낀 형욱만 진절머리날 따름이었다. 형욱의 마음은 벌써 항주로 가 있었다. 형욱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은 며칠이 지난 뒤였다. 강행군으로 파죽음이 된 염미홍은 항주 근방의 마을에서 산 수레에 실려서 탈진과 근육통으로 끙끙 거리고 있었고, 덕후와 형욱은 항주의 성문에 들어섰다.

항주는 절강의 중심으로 남북을 잇는 대운하가 있어 교역의 중심지였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장사 뿐만 아니라 행락을 목적으로 오는 여객들이 많았다. 그리고 무림인도 심심찮게 보였는데 십패 중에 하나인 대상련의 본거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상련은 대륙상단연합의 준말이다. 중원 상권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금대숭을 개파조사로 있는 곳이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하지만 역시 귀찮은 파리들이 끊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 자신부터가 절정고수인 금대숭은 무림의 난세를 호기로 삼아 십패의 하나로 우뚝 섰다. 막강한 금력으로 무공과 영약을 닥치는대로 사들이고 고수들을 초빙하여 세력을 구축한 것이다.

한때는 항주 뿐만 아니라 남창까지 영역을 뻗치는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복주의 상관세가와 알력을 두고 차차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금대숭이 상계의 거두라면 복주의 토호인 상관 종민은 감합 무역 및 해외 사업의 거두였다. 그는 금대숭처럼 무학을 돈으로 마구 사들이지 않았지만 소림의 분타격인 남소림의 지원을 받고 동영의 검술과 인법을 가전무학과 접목하여 새로운 무공을 창안해냈다.

설상가상으로 대상련 최대의 무력이었던 흑룡당이 이탈한 것이다. 당주 강무제는 야심찬 효웅으로 양 세력 다툼을 틈타 공백지인 남창을 손에 넣었다. 채 5년도 못되어 자신의 세력을 흑룡방으로 개명하고 주변 세력을 폭풍처럼 흡수해갔다. 보다 못한 금대숭이 상관 종민과 화친했을 때 흑룡방은 무시못할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죽 쒀서 남을 준 처지가 된 금대숭으로서는 홧병이 도질 일이었다. 그러나 셋의 세력비는 막상막하라 솥발처럼 교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그 즈음 다른 십패들도 저마다 확장을 멈추고 자신의 세력을 다독이고 있을 무렵이다.

원래 십패들은 어느정도 힘을 비축하고 다시 싸울 생각이었지만,보이지 않는 손이 짜맞춘듯이 서로가 견제하고 견제당하는 처지라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긴장 속의 평화가 수십 년을 흐르자, 난세를 헤쳐온 군웅들이 하나 둘 은거하거나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십패 내부에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평화를 좀 더 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금대숭에게는 뒤를 이을만한 후사가 없었다. 자식 복이 없었는지 손녀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금보옥는 총명하고 재지가 뛰어나 노년의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대상련의 대소사를 관장했다. 여인의 몸으로 가주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안 금대숭은 서자인 금천효를 대총관에 임명하여 아쉬운대로 금보옥을 보좌하는 체제를 마련했다. 대상련의 다음 가주는 금보옥의 남편이며, 전적으로 금보옥의 의사에 따라야한다는 유언을 남긴 채 몇 해 전 숨을 거두었다.

"항주에서 가장 화려한 주루가 어디오?"
"금화루에요....장원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으니까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끙, 소리를 내며 염미홍이 일러주었다. 덕후는 형욱을 시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금화루로 향했다.  금화루는 번화가의 뒤안길에 자리잡고 있으며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외부의 시선과 소음을 차단하고 있었다. 대문께로 가니 접수 담당이 나와 일행을 맞이하였다. 덕후는 다른 말하지 않고 대뜸 은자부터 안겼다.

"가장 좋은 방을 하나 주시오. 한 사흘 정도로 머물 생각이오."
"네. 술과 기녀는 어떻게 하오리까?"
"허허, 이 사람 눈치 참 없구먼. 첩이야 여기있고 미동도 있는데. 끼니나 제대로 챙겨주시구려."

덕후는 염미홍과 형욱을 가리키면서 천연덕스럽게 나무라는 시늉을 했다. 가만히 있다가 남색가로 몰린 형욱은 뜨악해졌다. 염미홍은 의심이 확인(?) 되자 고개를 끄떡이다가 첩이라고 한 것을 떠올리고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덕후는 두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뒤통수로 감지하면서도 모른 척 접객원의 안내를 받아 숙소로 들어섰다.

전각에는 현빈당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었다. 덕후가 자리잡은 숙소는 외진 곳으로 월동문 밖으로 오솔길과 인공 호수가 보이는 고즈녁한 곳이었다. 접객원이 물러나자 염미홍이 따지듯이 물었다.

"첩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여기서 떡을 치면 그리 되지 않겠소?"
"그놈의 떡! 떡! 소리 좀 그만해요! 전 진지하게 묻는거라구요."
"후훗, 아가씨의 몸에 관심이 있소이다."

덕후가 쥘부채를 들어올리면서 음흉한 시선을 던졌으나 염미홍은 픽 웃었다. 동행하는 동안 덕후의 성격을 나름 파악했기 때문에 느닷없이 덮칠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염미홍의 반응이 시원찮자 덕후는 흥이 깨진 얼굴을 했다.

"아가씨가 북경행을 한 것 중에 하나가 흑룡방의 행사를 막아 줄 배경이 없어서가 아니겠소? 그렇다고 이 몸이 무슨 대단한 영웅호걸이라 흑룡방을 혈혈단신으로 쳐들어가 박살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실은 가능하다. 흑룡방주를 포함한 문도 전원이 덤벼들어도 정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싱하형 멘트를 빌려도 충분하다.

"그렇다고 아가씨가 위기에 처할 때 매번 어딘가 정의 오타쿠...크흠, 아군처럼 나타나 구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오? 그렇다면 흑룡방도 어찌 못할 배경을 얻어두는 게 이득이라 보오."
"당신 신분이 뭔데요?"

염미홍이 묻자 형욱도 궁금했는지 솔깃한 표정이었다. 덕후는 빙그레 웃었다.

"대상련의 신임 가주 쯤으로 해둘까."
"거짓말! 지금은 금보옥인가 하는 여자가 가주 대리로 있다구요."
"훗, 사실은 비밀리에 태중혼약한 사이라든가."
"좀 진지하게 못해욧!"

염미홍의 목소리가 커졌다. 덕후는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어이쿠야, 아가씨가 목청에 서까래가 다 엎어지겠소."

여전히 씩씩 거리는 염미홍이다. 형욱의 얼굴도 싸늘해졌다. 농짓거리할 여유가 없음을 안 덕후는 슬슬 본심을 꺼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될 것이오. 나는 금보옥과 연을 맺기 위해서 항주로 온 것이니까."
"흥, 그게 쉽게 될까요? 대상련의 문턱이 닳도록 찾아들고 있지만 번번히 퇴짜를 당하고 있다고요. 노류장화의 오줌까지 지리게 하는 한량부터 난다긴다 하는 세도가도 그녀를 어찌해보려다가 패가망신 당한게 한 두번이 아닌걸요. 하물며 공자님쯤이야?"

사정을 잘 아는 염미홍이 빈정거렸다. 덕후는 끄떡하지 않고 진지한 표정을 해보였다.

"내게는 이루어야 할 야망이 있소이다. 대상련은 그 일보에 지나지 않소."

십패 중에 하나를 고작 첫 걸음이라 말하는 표현에서 염미홍과 형욱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 꿈은 무엇인가요?"

덕후는 가만히 사언시를 읊조렸다.

복지부동,
무사안일,
주지육림,
안부낙도.(빈궁할 빈 대신 부자 부로 바꿔치기 함.)

"....."

형욱과 염미홍의 신형이 크게 휘청거렸다. 엄청난 탈력감이 둘을 덮친 것이다. 그러나 덕후는 진심이라는 기색을 지우지 않았다.

"이것이야 말로 남아대장부라면 마땅히 지향해야할 목표가 아니겠소? 비록 머나먼 이상향일지라도."
"남아대장부가 그런데 쓰이는 말이 아닐텐데요."

정신적으로 큰 타격 받았음에도 덕후에 대해 밉살스런 마음에 지적하는 염미홍이다.

"다를 바 없소. 흔히들 출세하고 영욕을 누린다고들 말하는데 궁극적으로는 자기 만족과 일족의 편안함을 위해서가 아니오? 이 몸, 사정상 철밥통 관리가 될 수 없는 처지이나, 가장 풍요로운 강남 땅에서 부귀안락을 누리며 조용히 살다 갈 생각이오."

염미홍은 저 인간이 당장 문전박대를 받을 거라는데 자신 있었다. 혹시 자신이 구명줄이라고 잡은 게 썩은 동아줄을 고른 것이 아닌지 암담해졌다.

"아가씨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군."
"같군이 아니라 믿지 못하겠어요. 그 집에서 원하는 것은 대상련을 경영할 인재를 원하는 거지, 공자 같은 기둥서방을 원하겠어요?"
"그럼 내기해볼까? 만약 내가 금보옥에게 인정을 받으면 정말로 내 첩이 되어야 하오. 만약 아가씨 말대로 거절당한다면 북경에 터를 잡을만한 집과 돈을 주겠소."

덕후의 제안에 염미홍은 발로 바닥을 탁탁 치며 고민하는 표정이엇다. 손해볼 것은 없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남아일언은?"
"자지와 같소."
"... 관둘래요."

염미홍은 등을 돌리며 당장 나갈 기세였다. 덕후는 형욱을 불러가며 못가게 호들갑을 피웠다. 한참 후 염미홍은 뚱한 얼굴로 도로 앉았고,  덕후는 실없는 말로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는데 바빴다. 형욱은 그 모습이 체신머리 없게 보였다.

 



덕후의 야망는 저것입니다.하지만 그 XX의 야망 패러디라서 주변이 가만히 냅둘지...~_~

TS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연재를 하면서 TS 요청 받은 일은 없는데 좀 뜻 밖임.; 뭐, 굳이 바라시는 분은 그저 형욱 군(?)만 바라봐주세요. (모리 란마루가 컨셉이니까요. 성격은 반대지만.;)

머리가 지나치게 좋다, 라는 의견이 있는데 사실 주인공의 지력은 255....(퍽!) 케릭터 메이킹 시 참고한 모델 중에 하나가 [마쓰나가 히사히데] 입니다.

고로, 오덕후 주인공은 맞지만 다른 오덕후 주인공들과는 좀 틀립니다.(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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