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흡혈유희> -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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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198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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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만남


“괜찮소?”

“도움 감사드립니다.”


제갈지민의 물음에 홍의여인은 미처 대답하지 못했고 청의여인은 공손히 인사했다. 그걸 본 그는 한번 싱긋 웃어주고 이내 산적두목에게 고개를 돌렸다.


“피차간에 철천지원수를 진 것도 아니고 재수 없었다 치고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 게 어떻소?”

“야!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언니!”


홍의여인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고 청의여인이 황급히 그런 그녀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산적두목을 쳐다 볼 뿐이었다. 그러자 두목이 피식 웃었다.


“우리가 물러나겠다 하면 그냥 보내준다고?”

“그렇소. 공연히 무분별한 살생을 저지르고 싶지 않소.”

“하하핫!”


하늘을 보며 한참 웃던 산적두목이 웃음을 그치고 제갈지민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도 지지 않고 마주 보았다. 두목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너는 특이하군. 소위 부자집 도련님들은 우리 같은 산적들을 벌레 보듯이 취급하는데 ……. 내 이름은 진충이다. 너는?”

‘제갈세가의 제갈지민. 사정이 있으니 내 신분은 비밀로 해 주시오.’


그의 전음에 산적두목은 흠짓하는 표정을 짓더니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 그런가? 좋아, 가겠다.”

“예? 두목님!”


“이대로 그냥 돌아간다구요? 겨우 한 놈이 늘었을 뿐인데 …….”

“시끄럽다! 감히 내 명에 토를 다는 거냐?”


옆에 있던 산적 몇몇이 불만을 토했으나 그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일갈하자 조용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홍의여인이 발끈해서 나섰다.


“누구 맘대로 저놈들을 그냥 보내겠다는 거야? 저놈들은 …….”

“미안해요, 언니.”


어느 새 뒤로 다가선 청의여인이 그녀의 혈도를 제압했다. 순식간에 아혈과 마혈이 막힌 그녀가 무서운 눈으로 청의여인을 노려보자 청의여인은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제갈지민을 쳐다보았고 그가 피식 웃었다.


산적두목은 그걸 보고 호탕하게 웃으며 부하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그래도 뭐라고 투덜거리던 몇 놈이 있었으나 두목이 시범삼아 한 놈을 한 주먹에 때려눕히자 조용히 물러갔다. 산적들이 시아에서 사라지자 청의여인이 홍의여인의 혈도를 풀었다.


“연아! 너 정말 …….”

“정말 미안해요, 언니. 하지만 아무도 죽지 않고 끝났으니 잘 된 거잖아요. 우리 그냥 넘어가요, 예?”


연이라 불린 여인이 두 손을 모으고 사정조로 말하자 홍의여인이 짐짓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린 것을 눈치 챈 청의여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분 소저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아, 예.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

“맞다, 너는 뭔데 제멋대로 나선 거야?”


청의여인의 말을 가로막으며 홍의여인이 나서자 제갈지민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대번에 그녀의 성격을 간파한 것이다. 그의 미소를 본 청의여인이 얼굴을 숙였고 홍의여인 역시 가볍게 얼굴이 붉어졌지만 마치 그걸 숨기려는 듯 다시 소리쳤다.


“웃, 웃음으로 때우려고 하지 마! 내 질문에 대답해!”

“나는 그저 그대 같은 여인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을 뿐이요. 굳이 살상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소?”


“그, 그건 …….”

“그래요, 언니. 게다가 이 분은 바로 우리를 구해주신 은인이잖아요.”


청의여인이 재빨리 동조하자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지금껏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왔는데 저 남자의 미소만 보면 이상하게 말문이 막힌다. 그녀가 물러서자 청의여인이 화제를 돌렸다.


“저희는 화산파 제자들입니다. 언니는 본파 장문인의 딸인 악영소라고 하고, 저는 남화연이라고 해요. 저희 사부님이 장문인의 사제이시지요.”

“그렇군요. 저는 한유성이라고 합니다.”


“한소협이시군요. 실례지만 사문을 여쭈어 봐도?”

“스승님께서는 무림활동을 하지 않으셔서 ……, 아마 두 분 소저께서도 못 들어보셨을 겁니다.”


“은거고인이신 모양이군요.”

‘흥! 고인은 무슨 …….’


사매와 그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악영소는 내심 코웃음쳤다. 그저 그런 삼류무사라고 생각하자 그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든 제갈지민은 다소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화산파에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먼 곳까지 왔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우연히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이 근처에서 괴이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요.”


“어떤 일입니까?”

“젊은 처녀들이 실종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하는 군요. 벌써 석 달째고 사라진 것만 수십 명에 달해요.”


“아! 그래서 장문인의 명을 받고 조사하러 온 모양이군요.”

“그게 …….”

“연아! 무슨 말이 그리 많니? 어서 가자!”


어쩐 일인지 그녀가 머뭇거리자 홍의여인이 바로 그녀의 말을 막으며 짐짓 차갑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그녀가 다소 상기된 얼굴이었고 제갈지민은 그녀가 당황한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알만 하군. 그녀의 성격으로 미루어 아마도 …….’


그렇다. 사실 그들은 장문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떠났다. 물론 악영소가 명문정파의 제자로써 결코 방관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주장했고 남화연은 거의 반강제로 그녀에게 끌려 온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그대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 남화연은 그런 그녀와 제갈지민을 번갈아 보며 다소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막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사매, 드디어 만났군.”

“당, 당신은 …….”

“화 사형!”


장내에 또 다른 사내가 나타났다. 악영소는 당황하는 표정이었고 남화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새로 나타난 자 역시 제갈지민 또래의 청년이었는데 굵은 눈썹에 넓은 이마를 지녀 호남형으로 생겼다.


“어떻게 ……, 저희를 어떻게 찾았지요?”

“하오문의 도움을 받았다. 너희가 굳이 너희의 행적을 숨기지 않아 비교적 쉬웠다.”


화사형이라 불린 청년은 그렇게 대꾸하며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미미하게 얼굴을 찌뿌렸다. 비록 산적들 중 죽은 자는 없었고 모두 떠났지만 여기서 싸움이 있었다는 것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보아하니 여기서도 한바탕 한 모양이구나. 말썽은 그만 부리고 화산으로 돌아가자.”

“말썽이라뇨? 화사형은 왜 항상 저만 나무라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


악영소가 격한 음성으로 그에게 반박했다. 남화연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고 제갈지민의 얼굴에 이채가 서렸다. 그리고 사내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한결 싸늘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지금 뭐하는 것이냐? 게다가 외인의 앞에서 …….”

“언제까지 저를 어린애 취급 하실 꺼예요? 저도 내년이면 스무살이예요!”


그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반사적으로 물러선 그녀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검을 빼들었다. 그걸 본 그가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네가 내게 도전하겠다는 거냐?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 텐데?”

“에잇!”


그녀는 나직한 기합과 함께 그대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기습에도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는가 했더니 어느 새 검을 들고 있었다. 이후 몇 차례 검격을 나누었으나 금세 그녀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끝이다! 너를 강제로라도 데려가야 겠다!”

“닥쳐!”


흥분한 것인지 이제 그에게 반말로 대꾸하던 그녀가 그대로 매서운 기세로 칼을 휘둘렀다. 문제는 전혀 방어를 생각지 않는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동귀어진을 각오한 기세에 그가 처음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 때 두 사람 사이로 제3자가 끼어들었다.


‘따앙!’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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