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德厚の野望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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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222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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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군도의 서전에서 패배한 대상련의 사기는 급속도로 떨어져있었다. 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조기 철수하여 남은 전력을 온전히 보존했고, 보타암의 검후의 활약과 련주가 직접 출동하여 궤멸된 선봉을 일부 수습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대상련은 항주만 지척까지 출몰하는 해선을 손 놓고 구경해야하고, 련주인 금보옥은 가신들에게 트집을 잡혀 한동안 설교를 들어야했다. 련주로서 신중하지 못하고 필부로서 경솔하게 나갔다는 점이었다. 금보옥은 인내를 가지고 받아들였다. 개중에는 정익훈이나 금천효 같이 친인처럼 돌봐주었기 때문에 잠자코 들어준 부분도 있지만, 나머지는 기 싸움이었기 때문에 금보옥은 인화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달래고 어르면서, 간혹 선을 넘는 이에게는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덕후와 우희선 만큼은 아니나, 집단의 생리와 이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밝은 그녀였다. 겉으로는 완벽히 내숭을 잡아도 속은 너덜해진 금보옥이 거처로 돌아왔을 때는 우희선과 소월하가 서신을 펼쳐놓고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둘은 금보옥이 다가오자 자리를 내주었다.

"희소식이 있어요."

소월하가 서신을 집어 금보옥에게 내밀었다. 금보옥은 서신을 주욱 읽어내렸다. 다 읽어낸 그녀의 입가에는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세휘가 보고한 육로군의 결과였다. 배수진과 조직력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는게 요지였다.

"육전에 승리를 거두었으니 한시름을 놓을 수 있겠군요."
"보고대로라면, 현상유지가 고작일 뿐 더 이상 진격할 역량이 없어요. 해전으로 적을 격파한 뒤에 복주 진공해야 돌파구가 마련될 거예요."

소월하의 지적에 금보옥은 가만히 있었다. 의미를 되새기는 듯 했지만, 얼마전 우희선이 한 말이 떠올랐다. 주도권을 자신에게 주기 위해서란 말. 서신에는 염미홍과 형욱의 활약이 적혀있지만, 주도자인 덕후의 이름과 행적은 하나도 기술되어 있지 않았다.

"한쪽 날개가 꺾인 셈인데, 반격을 가할까요?"
"머리가 하기 나름이죠. 육전에는 패했다지만 실질 전력은 많이 남은 편이고, 해전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으니 항주까지 제압할 수 있도록 기세를 실어주는 편도 좋죠."

덕후가 알려준 용위수의 성격은 별호가 말하듯 패도적이다. 그리고 상관세가 밑에 인내하며 전복을 꾀할만큼 모략도 지니고 있다. 직선적인 성격이라면 육로군의 패배에 격분하여 출정, 분열한 육로군을 수습하여 반격에 나설 수 있다. 다만 항주를 제압하고 절강의 문파들을 정리할 때 유혈을 상당수 감당해야할 것이다.

좀 더 노련하게 군다면, 지왕준이 항주만을 완벽히 장악할 때를 노려, 결전 병력을 투입하여 중심부를 제압하고 가지들을 쳐가는 방법도 있다. 그쯤 전황이 바뀐다면 분열된 문파들도 승리에 혹해 용위수가 아쉬운 소리를 안해도 저들끼리 단합하여 열심히 거들 것이다.
 
심가장의 일을 떠올린 금보옥은 아마도 후자에 무게가 기울어졌다. 그러나 금보옥은 다시 사고를 가다듬었다. 주도권을 쥐기 위해 혹은 내 자신이 일의 중심이 되고 싶어하기에 상대가 그렇게 나오길 바라는 것은 아닌가? 세 번 생각한 끝에 둘에게 견해를 밝혔다. 확신은 하지 못하여 겸손하게. 우희선과 소월하는 대등한 입장에서 조언자로, 아랫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련주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어요. 용위수는 대리자 입장에 있기 때문에 장기전이나 출혈을 감당하며 싸울 입장이 아니에요. 그 점에 있어서는 우문 천강이 훨씬 안정적이죠."

서쪽에 귀를 늘 열어두는지 소월하는 우문세가와 영호세가의 일을 간략하게 언급했다. 작전은 순조로워 우문천강이 직접 출군하고, 영호세가도 동서로 발이 묶인 형국이라 많은 전력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도 우문세가보다는 배에 가까운 수를 파견을 했지만.

"다음 전투가 저울추가 되겠군요."
"그래서 생각해둔 게 있는데...."

소월하는 백지를 꺼내고, 갈은 먹을 세필로 묻히고는 일필휘지로 그려갔다. 모든 정보가 머리속에 담겨있는 듯 거침없이 절강연안의 지리와 거점을 적어내렸다.

"계획을 설명하기 전에 동의를 받을게 있어요. 이 작전에는 선박이 꽤 많이 필요해요."
"건조중인 것들이 있지만, 배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물건이 아니라..."

강남 상인으로 수운에 밝은 금보옥은 조선술에 대해 전문적이진 않더라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그냥 바다에 잠시간 띄울 수 있을 정도면 돼요. 대상련의 재력이 아니라면, 이런 화려한 작전은 구상도 못하죠."
"그, 그렇군요..."

육로군 편성에 사비를 상당히 부었던 금보옥이다. 그런데 소월하의 말대로라면 한번 쓰고 버릴 것을 위해 돈을 또 부으라는 것이 아닌가. 상관세가를 제압하고 그들이 차지한 이권을 귀속시킨다면 확실히 나아지겠지만, 당분간은 허리 띠를 졸라매야할지도 모른다.

-옛날 반도국의 왕은 돈이 없어서 점심을 굶었다는데, 그게 이해가 가는구나...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금보옥은 겉으로는 그러마하고 끄떡였다. 어차피 지면 다 잃는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신 앞에 빚을 달아둬서 몸을 팔아야하는, 죽는 것보다 못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완벽을 연기하는 자신의 성정에 우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금보옥의 동의를 받아낸 소월하는 작전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이야기가 마무리 될 무렵, 금보옥과 우희선은 감탄한 눈초리로 소월하에게 향했다.

"상공께서 소 군사님을 무후에 견주었다는데 오늘에서야 실감하는군요."
"성공한 뒤에 하셔도 늦지 않아요. 소녀가 바닷길에 익숙한 이들의 경험과 증언을 최대한 첨부한 것이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실무자끼리 사전 조율할 필요가 있어요."

소월하는 신분도 높을 뿐만 아니라, 자신 못지 않게 똑똑한 두 여자에게 찬사를 받았다는 것에 속으로는 자부심이 높아지면서도 한 발 물러나는 겸양을 보였다. 염미홍 같은 우민(?)이라면 찬양하라고 콧대를 높이겠지만, 이 둘한테는 잘난 체를 하는 것은 실력이 뒷받침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저도 그 계책에 보태주고 싶은 게 있는데...."

우희선이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제안을 했다. 이번에는 금보옥 뿐만 아니라 소월하도 놀랐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무엇보다 상공의 위엄에 누가 되는 게 아닐지...."
"상공께서 덕왕부에서 성실히 업무를 보시며 만인의 귀감이 되실 것 같은가요?"

둘은 즉각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걸주나 수 양제의 유희를 흉내낸다면 모를까.
 
"사칭의 죄를 지는 것이지만, 그 정도 약점은 선물로 안겨드려야 앞이 편하죠. 상공의 수완이라면 재미있는 소재거리를 주셨다고 반길지도 모르고요."

주어가 빠져있지만, 총명한 둘은 금방 알아들었다. 도움없는 완벽한 승리는 윗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다. 어차피 한 배를 탄 입장에서 덕후처럼 속을 종잡을 수 없는 인간에게는 약점을 안겨주는 것이 방비책이 될 수 있다. 너무 앞서는 걱정이지만, 권모에 민감한 그녀들로서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방책이었다. 단지 양날의 검인 것은 심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희선은 제안은 효율성 측면에는 확실할 것 같아 결국 받아들였다. 금보옥은 전후 처리에 상공이 무언가 꿍꿍이를 꾸민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입을 열지는 않고 무언으로 긍정했다. 소월하가 입안한 작전에 우희선의 제안까지 더해지자, 금보옥 뿐만 아니라, 검후 행세하고 있는 우희선까지 남모르게 바빠졌다.

패전으로 부터 일주일 후, 남경에서 기묘한 공문이 날아들었다. 덕왕부를 증축하는데 필요한 물자를 대라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어려울 것 없이 내륙 수로를 이용해서 보낼 것이나, 이번에는 여러모로 곤란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금보옥이 주재한 회의에서 목청을 높였다.

"하필이면 인수처가 해안가요? 그것도 들어본 적도 없는 어촌이라니?"
"그러게 말이에요. 일일이 맞춤을 한다고 원자재를 주문하는 것은 그렇다 칩시다. 남경에 장인들이 없는 것도 아닐텐데, 2차 가공을 굳이 그곳에서 하겠다니...앞뒤가 맞지 않아요."

우치명과 심우진을 비롯한 중역들이 이구동성으로 성토했다. 금보옥은 겉으로는 같이 당황한 척 조심스럽게 떡밥을 던졌다.

"본녀도 곤란하고 있습니다. 다만 들은 바로는....그곳에 시박사들이 파견되었다하네요."

시박사들은 무역을 담당하는 관리들이다. 명의 해금정책으로 무역은 오로지 감합에 의존하고 있었다.

"듣자하니 덕왕 전하는 예외적으로 남경에 봉지를 받았고, 기존의 친왕들과 달리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았다합니다. 가장 이문이 남는 장사라면 교역이 아니겠습니까?"

떡밥을 던지면 알아서 입을 연다. 금보옥은 입을 다물었지만 할 말은 다른 이들이 대신해주었다.

"새로운 항구를 만든다는 뜻인가...? 설마 왕야께서 직접 장사하시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닐겁니다. 우리에게 통문을 보낸 것을 미루어...협력을 바라는게 아닐까요?"
"으음...그렇다면 높으신 분들이 뭘 모르는 거겠구료."

이권의 발생과 개입은 대상련 특성상 민감하기 그지 없는 사안이다. 상관세가와 전쟁중이라는 것도 뒷전으로 물러나 계산을 하는데 바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상관세가를 치면 교역이 가장 큰 이권이 될 터였다. 그런데 바로 위에 왕부가 개입한다면 축소되거나 제약을 받을지도 모른다. 한 푼에 목숨을 거는 상인 특성상 꿈에도 꿀까봐 두려운 일이리라.

"마음 같아서는 이곳 항주나 상관세가를 멸한 뒤에 얻을 복주로 지정 해달라고 주청하고 싶지만....여러분들도 황실과 양주의 관계는 잘 아시겠죠."

금보옥의 무거운 어조는 그대로 중인들에게 그늘을 던졌다. 이들이 있는 강남(양주)은 원래 주원장과 척을 지던 장사성의 근거지였다. 장사성의 인망은 높은편이라, 주원장의 사람들도 그에게 투항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주원장은 장사성의 세력을 뿌리 뽑은 다음에 강남을 핍박했다. 세율도 다른 곳보다 2배 적용시킬 정도였다. 숨을 죽이면서 세월이 풀리면 낫겠거니 위로를 했지만, 정난지변으로 더 악화되었다. 영락제는 건문제와 강남을 동일시한 듯 남경을 버리고 북경으로 천도한 것이다. 그 뒤로는 아예 강북대 강남의 세력 구도로 굳었다.

풍요로운 부를 쥐고 있지만, 언제 빼앗길지도 모른다. 심만삼의 고사를 늘 가슴에 품고 있는 이들이다. 대상련의 성립도 여타 십패의 발흥처럼 무림문파로 세를 떨치기 보다는, 금대숭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영도하에 강남의 보호를 위해 뭉친 집단이었다. 막대한 세폐를 바치긴 했지만, 확실히 종전보다 황실과 관계도 개선되었다.

대상련을 황실의 주구로 보고 심가장에 지지를 보내는 이도 꽤 있었으나, 심가장이 박살나자 의지할 곳은 대상련 밖에 없었다. 다행히 금보옥은 이들의 지지를 받을 만큼 배포가 있었다. 세대교체로 흔들리던 대상련이 다시 재기하려는 찰나에 날아든 왕부의 통문은 곤혹스럽기 짝 없는 일이었다.

"우선....성의는 보여주어야할 것 같습니다."

금천효가 조심스럽게 의중을 정리하듯 발언했다. 좌중에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주 씨들이 이런 일에 대들면 얼마나 막장인지 아는 까닭이다.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고 대명률의 첫째 범죄, 대역을 뒤집어 씌울 것이다.

"좋아요. 적의 상륙을 감지할만한 초계선들을 빼고 동원할 수 있는 배들은 모두 모으세요. 어쩌면 상관세가와 문제를 잘 해결할지도 몰라요. 제가 직접 인솔하겠어요."
"련주님이 직접 가시다니요."
"하면, 관리들이 전권이 걸린 문제를 들고 나오면 가부를 정할 수 있나요?"

반대하는 이들에게 위 질문을 던지자 헛기침이나 신통찮은 대답만 올 뿐이었다.

"두 말할 것없어요. 육전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언제 바뀔지 몰라요. 주력은 우리들이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금보옥의 발언은 회의를 매듭짓는 힘이 있었다. 드물게 만장일치로 파견을 결정하자 각자에게 임무와 할당치가 정해졌다. 상관세가와 전쟁 중에다가 왕부와 관련된 일이라 운송만은 금보옥이 전적으로 책임지기로 했는데, 만약 일이 탈 날 경우에는 그녀가 책임지는 것이므로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기존의 운송업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금품이나 협박을 나서서 해줘야할 판이었다.

이런 요란한 움직임에 항주에 세작을 심어둔 지왕준이 소식을 접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남경에 납품을 한다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털어버리면 알아서 무너져 내릴지도 모릅니다."
"바보같은 소리! 부담이 크다. 다른 곳도 아니고 왕부의 행사다. 잘못하면 관부가 개입할 수도 있다. 안그래도 십패 중에서 가장 관부를 등에 업은게 대상련 아니냔 말이다."

지왕준은 처음에는 그렇게 꾸짖었다. 그러나 서전에 승리의 맛을 단단히 본데다가 약탈품에 눈이 먼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근거렸다. 안들어주면 저들끼리 가 항주에 방화를 저지르겠다는 듯 극성을 부렸다. 결국 지왕준도 흔들렸다.

"항주에 방화를 저지른 계획은 위험하다. 보타암의 계집년이랑 련주 년도 보고로는 절정고수다. 굳이 이점을 포기하고 사지로 갈 필요가 있느냐?"

지왕준은 신중히 대처하면서 대상련이 언제 출항하나 유심히 감시하도록 했다. 지왕준에게 최선의 수는 용위수를 부르는 것이자만, 대상련을 무너뜨리면 얻게될 지분을 가급적 크게 가지고 싶었다. 자신의 전과를 최대한 부풀리며 용위수가 개입하는 것을 사전에 막고, 패전한 육로군을 지원하도록 글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게 함정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40척의 선박, 60척의 호위함이 항주만을 출항한다는 첩보가 오자, 지왕준은 연락을 위한 소선을 제외하고는 수중의 함선을 전부 동원했다. 저번 전투로 10척 이상으로 나포한 까닭에 100척이 넘는 대함을 보유한 지왕준은 이 기회에 대상련 함선을 모조리 깨드리고 항주만을 완전 수중에 넣을 작정이었다.

주산군도를 떠난 들은 척후배의 신호와 보고를 받으며 북상했다. 하루밤낮을 꼬박 나아가자 꼬리가 보였다. 상선은 보고대로 40척이 선두에 있고, 후위를 감싸듯이 60여척이 따라가고 있었다.

이쪽의 접근을 눈치챘는지, 북과 징 소리, 수번이 어지럽기 휘날리더니 60척이 속도를 늦췄다. 40척은 여전한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후후,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군."

빠릿하게 달아나야할 것들이 미적대는 것을 보니, 실린 게 많아서 속도가 별로나지 않는 듯했다. 지왕준은 선단 50척을 반으로 갈라 우회하여 40척을 덮치도록 했다. 해전의 역량에 있어서는 이쪽이 앞서니 60척이라 해도, 아군의 50척을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음?"

이쪽을 상대하기 위해 접근하는 대상련 선박 60척의 진형이 기묘했다. 정자형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수전은 육전과 달리 즉각적으로 선회하기가 어렵고, 측면과 후면 공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흥, 돌파해서 허리를 끊을 속셈이군. 저번에 당해놓고도 나름 궁리한 모양인데, 해전이라는 건 육전처럼 얕은 수로 극복될 성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지. 학익진이다. 중앙은 후퇴! 양익은 중앙의 속도에 보조를 맞추면서 감싸안는다!"

슬슬 거리가 좁혀질 찰나, 어린진으로 오던 대상련의 60척이 갑자기 산개했다. 급속항진으로 항로를 약간 틀어가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각 함대가 노와 노를 쏘고 있지만 그 폭발적인 전진에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저 놈들은 바다에서 죽을 작정인가!"

지왕준의 경험상 저 정도 급속항진을 하면, 노수들의 체력을 단기간에 극한으로 짜낸 것이다. 탈진하거나 한동안 노를 젓기 힘들 정도로 부림당한 것이다. 바다라는 고립된 터전을 몇 일이 아니라 몇 달 이상 달리는 만큼, 노를 젓는 자들에게는 강인한 체력과 끈기가 요구되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항상 습한 열악한 환경이기에, 주로 노예나 포로로 채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곧 넓은 바다에서 100척이 각자 엉켰다. 들이받은 배도, 역으로 당한 배도 있었지만, 대상련은 당초의 목적을 성공했다. 진형을 운용하지 못할 정도로 분산시킨 것이다. 일견 무식한 방법이지만, 해군 통솔에는 딸리는 대상련 입장에서는 백병전으로 출혈을 유도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지왕준의 용선에도 크기의 절반만한 함선이 와서 박혔다. 아니, 누대가 높아 뱃머리가 고개를 용선의 옆구리에 박은 꼴이었지만, 금보옥의 입장에서는 그 편이 유리했다. 그물다리 끝에 달린 갈고리와 다리를 올려 용선에 올라타기를 시도했다. 앞장 선 것은 금보옥이었다. 운룡보의 원형은 운룡팔식이고, 험난한 곤륜의 산세를 창룡처럼 표횰하게 오가게 만든 절세의 경신술이다.

금방 갑판에 오른 금보옥은 칼을 들고 그물과 다리를 작살내기 위해 덤벼드는 지씨 무사 둘을 권장으로 날려보냈다. 한 놈은 심장으로 경력을 보내 파괴하고, 다른 한 놈은 복부에 장타를 날려 안에서 파열시켰다.

홍안의 미소녀의 거침없는 손속에 누대에 바라보던 지왕준은 어이가 없었다. 계집아이의 손속이 저리 독할 줄이야! 문득 하오문주란 계집년한테 당한 하무태를 방심했거나 운이 없었다고 치부했는데, 눈앞의 광경을 보니 재고해야할 것 같았다.

"도를 가져와라!"

수하가 얼른 바치자 지왕준은 애병인 염왕도를 들고 누각을 내려섰다.

"계집! 순순히 항복하지 않으면 가랑이를 찢어주겠다!"

해적질로 뼈가 굵은 이답게 걸죽한 욕설을 퍼부으며 지왕준은 염왕도를 휘둘렀다. 살벌한 도세에 근처 있던 수하들이 분분히 피했다. 대상련 무사들이 충분히 올라올 동안 버티는 입장인 금보옥은 쉬이 피할 수 없었다. 급한 대로 진기를 운행하여 권격을 분출했다. 암경을 담은 질풍이 쏘아져갔다. 지왕준은 기합과 함께 염왕도에 도기를 일으켜 분쇄시켰다. 그리고 목을 날리듯이 횡으로 찍는다.

철판교의 수법으로 누운 금보옥은 팔꿈치로 지면을 쳐서 반동으로 숭첨각으로 턱을 노렸다. 신속한 반격에 지왕준의 안색이 변해 뒤로 세 발 물러났다. 어린 계집이라고 하기에 실전경험이 없는 줄 알았는데 풍부한 임기응변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누가 너를 사사했느냐?"
"복성으로 모용, 존함은 황이라고 하지요."
"천하제일권사!"

지왕준은 저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무림인으로 모용황의 전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사실 무공이나 세력으로 치면 연독고가 최고지만, 무인의 입장에서는 적수공권으로 강호무림을 거칠 것 없이 종횡한 모용황의 전설에 가슴이 더 두근거리는 법이다.

"흥, 모용 선배도 말년이 궁색했나보군. 그 절기를 돈내나는 계집년에게 넘기다니."
"직접 확인 해보시는 건 어떨지?"

사부가 모욕 받았음에도 금보옥은 화내지 않고 손을 까닥했다. 모용황의 처신에 대해 일말의 서운함을 간직하고 있는데다가, 그가 입버릇처럼 말한 무인은 실력으로 말하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지론에는 그녀 나름대로 찬성하는 편이었다.

"건방진 년! 조금 있으면 상선을 털고 온 아군이 이리로 올 것이다. 그때도 여유만만한가 보자!"
"후후, 장사꾼의 속담 중에서 손해보았다는 말은, 절대 믿을 게 못된다는 소리가 있죠."

금보옥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 불길함을 떨치려는 듯 흉광을 번뜩이더니 손에 들린 염왕도가 번뜩 짖쳐들었다. 대기를 찢는 도명과 함께 금보옥은 얼른 고개를 틀었다. 육중한 생김새와 달리 빠른 쾌도였다. 몇 가작의 머리카락이 잘려가자 금보옥의 눈에 노기가 스쳤다.

염왕도의 묵빛이 안개처럼 지왕준에게 피어올랐다가 금보옥을 덮치듯이 휘몰아간다. 누가봐도 위태로운 상황이건만 금보옥은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양 권으로 머리를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며 다리가 구름 위를 밟는 것처럼 어지럽게 흔들렸다.

염왕도는 태산을 쪼갤듯이 기승을 부렸지만, 정작 지왕준은 당혹감이 치밀어올랐다. 계집이 취한 자세가 묘해서 좌우로 흔들거리는 듯하면, 자신의 도세를 모조리 비껴나가는 것이 아닌가. 엄밀한 도망을 뚫을 수 없어서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지만, 이대로 힘이 다하면 지는 것은 자신일 터이다.

"으랴아아아압!"

단전의 공력을 사지로 더욱 운행하면서 지왕준은 금보옥을 뱃머리쪽으로 몰아넣었다. 피할 수 없도록 구석으로 몰아넣어 잡거나 죽일 심산이었다. 전보다 폭풍같은 도세에 금보옥은 분분히 밀려났다.

모서리로 몰아넣는데 성공하자 지왕준은 필생의 힘을 다해 머리끝부터 사타구니까지 양단할 듯 내리쪼갰다. 좌우 이동에 제약을 받은 금보옥은 한껏 낮춘 상체를 튕겼다.

도세가 삼촌도 안되는 간격을 두서 머리를 비킨 금보옥의 움츠린 어깨 끝이 지왕준의 도를 움켜쥔 손가락들에 격돌한다.  도를 쥔 손이 부셔지는 듯한 고통 속에 지왕준은 눈을 부릅떴다. 금보옥도 파고들어 도세를 비껴냈다지만, 부딪친 부위가 은은히 아려왔다. 호신경으로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분질러지고 말았으리라.

"핫!"

금보옥은 통증을 기합으로 버무리며, 뒷다리에 힘을 주었다. 봉쇄에 실패한 듯 떨어지던 금보옥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져가 지왕준의 단전을 향해 무 자비한 권격이 정통으로 후려쳤다. 너무 근접거리라 피할 틈도 없었다.

"크아아아악!"

지왕준의 손에서 염왕도가 떨어졌다. 한 번 도를 떠내면 도로 꼽을 때까지 단단히 쥐고 있던 애병이건만, 수십 년동안 쌓은 내공이 흩어지는 판에 그런 것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끄으으으....도, 독한 년...."
"다 은사님의 가르침이죠."

어깨를 감싸쥐며 금보옥은 냉랭히 대꾸했다. 멀리서 관전하던 지씨 무사들이 수장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그보다 앞서 정익훈을 위시한 호위대들이 가로막았다. 곧 양자 사이에 피튀기는 혈전이 벌어졌다.

금보옥은 패자를 내려보며 아픔을 다스렸다. 모용황은 겉멋으로 성명절기를 전수한 것이 아니었다. 투로를 익히는데 형식만 한게 아니라 철저하게 실전을 곁들였다. 평생 천하를 주유하며 강자들과 견딘 모용황이다. 그런 그가  가르침을 베풀었으니 반쪽자리라도 얘를 잡는다는 수준을 넘는다.

금보옥이 세기말 권왕님TS 나 우훗, 멋진 여자~♡ 가 되지 않는 것은 훈련 후에는 항상 비전의 약물에 온종일 몸을 담갔기 때문이다. 약물들은 난타당한 금보옥의 멍든 육신을 활성화시키면서 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탄성 있는 조직을 갖추도록 도와주었다. 피부는 물론 근육도 양이 아니라 질로 고도로 압축해서 어지간한 내력이 담긴 예기가 아니면 상처를 입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권사로서 놀라운 성취를 이룩했음에도, 신체는 좁은 어깨와 가는 팔다리, 유지방 등 부드러운 여성미를 잃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동안 쓴 약물의 비용이 억만금에 달하고, 고통이 불개미한테 전신을 물어뜯기고, 지지고 볶는 수준이라는 게 문제랄까. 눈 앞에 창검이 날아봐야 은사인 모용황의 주먹질만큼 무서울 것이며, 타격도 약물로 인한 고통을 능가할 리가 있을까?

순수하게 근접박투로 따지면 우희선도 양보한다.

"하...하지만, 전장....에서 승리하는 것은 우리....다....네 년은 살아나...지 못할...게다.."

입으로 내장부스러기를 쿨럭 토하면서 지왕준은 득의의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자신과 금보옥이 싸우는 동안 꾸역꾸역 밀려오는 대상련의 무사들 때문에 아군이 악전고투하고 있지만, 지왕준은 최후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왕준은 금보옥을 보자 굳었다.

금보옥은 일전에 지왕준이 보았던 웃음을 담고 있었다.

"저것은 설마?"
"화공이다!"

웃음의 답은 수하들에게 터져나왔다. 지왕준이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화광이 충천해 있었다. 바다 위에 장대한 화장식을 치르는 것처럼 함선이 모조리 화마에 휩싸이고 있었다. 지왕준은 눈을 꿈뻑였다. 설마 50척의 함선이 저렇게 되었단 말인가?

"연환계를 아시나요?"

금보옥의 조롱과 같은 물음에 지왕준은 가슴이 부글부글 끓었다.

"강담으로 돈벌이하는 이들이 읇조리는 야사지만, 일자사一字師라는 말처럼 도움이 되더군요."

삼국지에 전해지는 연환계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왕윤이 초선을 이용해 적을 이간 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벽전 때 방통이 계책을 써 조조의 함선을 하나로 엮어버려 화공 시 모조리 타버리게 만든 것이다.

소월하의 전술의 핵심은 수전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전으로 격파하는 데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개인전을 통해 다음 전투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머리가 되는 적의 전력을 꺾는 데 있었다. 그래서 적이 미끼를 물게 40척의 상선이라는 떡밥을 던져 전력을 분산시키고, 순간적인 비등세를 창출함으로서 머리를 잡는데 있었다. 그리고 떠난 전력이 돌아오지 못하게한 것이 연환계였다.

상선 40척의 안은 인화물을 잔뜩 싣고, 배를 인솔한 수부들은 하나 같이 목앵이나 뜰 것을 몸에 단단히 진 특공조였다. 갑판에는 검후를 비롯한 물질과 경신에 익숙한 고수들을 배치하여 지왕준의 해적선이 신나라 들이 받을 동안, 특공조가 불을 짜지르고 바다 위로 탈출하면, 고수들이 들이받이한 배가 벗어나지 못하게 쇠사슬과 추달린 밧줄로 엮어버린 것이다. 배와 배 사이를 오가며, 보통 장정도 들기 힘들 밧줄과 사슬을 짊어지고 묶기 위해 날 뛰는 것은 고수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절정고수인 검후는 해적들과 지씨무사들을 한 자루의 검으로 유린하면서 혼란을 부채질했다.

그 대참사에서 빠져나간 것은 고작 10척 뿐이었고, 그들도 우군이 60척에 격파당한 것을 보고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분명 일부 함대는 대상련 측이 전멸하고 아군이 기세를 올리는 쪽도 있었으나 한 번도 바다의 패자 자리를 내놓지 않았던 함선이 이토록 당한 것은 처음이라 지리멸멸했다.

"이제 끝을 봐야죠. 유언은 없나요?"

승리를 마무리 찍기 위해 금보옥은 지왕준에게 다가갔다. 표범이 쓰러진 맹수를 방심하지 않고 숨통을 끊으려는 듯 접근하는 듯한 모습에 지왕준은 흐흐 웃었다.

"크흐흐, 돈지랄하는 년한테 지다니...."
"과연, 그건 본녀로서 뼈 아픈 일. 그 빚은 상관세가한테 받아낼 예정이랍니다.."

금보옥의 수도가 지왕준의 천령개를 후려쳤다. 하무태에 이어 용위수의 날개 하나가 꺾이는 순간이었다. 지왕준이 쓰러지자 그때가지 저항하던 지씨 무사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련주님이 수괴를 죽였다!"

기세를 탄 대상련의 무사들이 노도처럼 공격했다. 갑판 위에 픽픽 쓰러지는 시신들이 급속도로 늘었다. 금보옥은 지씨 호위대를 물리치고 다가오는 정익훈에게 명했다.

"저자의 목을 베어 고물에 높이 다세요. 대상련의 승리입니다."
"예! 봉행하겠습니다."

정익훈은 종래의 태도와 달리 금보옥의 무위를 보고는 처음으로 금대숭을 대하는 것처럼 공경의 자세를 취했다. 원훈들의 마음을 산 것, 금복옥에게는 얻을 것이 없는 승리 속에서 유일하게 보상이 되었다.

이 날, 가을의 해전은 대상련의 승리로 끝났다. 출정한 100척에 가까운 지왕준의 선박중 귀함한 것은 어둠의 가호를 받은 30척에도 못 미쳤다. 반면 대상련은 나포한 선박까지 합치면 90척에 가까운 함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수리를 해야할 것이 태반을 넘는데다가 피해도 감수하고 들이친 덕분에 항주만에 돌아온 것은 꼬박 사흘 뒤였다. 그러나 십패 중에서 바다의 패자라고 거들먹거리던 상관세가를 해전에서 격파한 것은 큰 쾌거였다.

항주만으로 귀환한 무사들과 달리 중역을 비롯한 수뇌들은 침중했는데, 승리한 것은 반갑지만, 기일을 어겼으니 무슨 트집을 잡지 않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금세 풀어졌다. 다음 왕지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계획이 변경 되었으니 취소하고 다음 명이 있을 때 협조하라는 것이다. 대상련의 중역들은 안도하면서, 칩거한 왕의 품성이 변덕스러움 이라는 것에 근심하기 시작했다. 먹물이 들어간 자들은 왕명의 가벼움을 한탄하며 우국충정에까지 전이시켰고, 입이 거친자는 덕후를 안주감 삼아 씹어댔다.

덕후는 본의 아니게 마누라들 덕분에 수명연장의 꿈을 착실히 이루는 중이었다.

 

 


해전 끝입니다. 아, 저는 강북에 삽니다. 그리고 언급한 강남은 명대의 기록을 참고한 것이고요, 쳅터 4의 배경과 연관 있기 때문에 적은 것입니다. (현실의 강남과 대비하지 마시길...^^;) 특정인물들은 예외입니다. 까려고 등장시킨 것이니까요.(인마)

그건 그렇고, 야한 것이 별로 없어서 죄송합니다.(쿨럭) 처음에 공언했다시피 전작들에 억지로 넣어서 쓴 맛을 보아서 말입니다. 전에 말했듯, 전개상 자연스러운 H가 아니면 굳이 넣지 않을 의도입니다.

뭐, 네이버3에 충분히 말초적인 글도 많고 저도 즐겨보는 편이니 갈음하겠습니다.(먼산) 사실 이글을 네이버3 외에 연재하기는 난감합니다. 소라는 플래시 광고 도배가 되어서 꺼려지고, 조알은 돈독이 올라서 노블레스인가 유료 결제하라하고...일반 싸이트에다가 팔딱 뛰는 촟잉들을 낚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에만 빌붙어 연재하는 것입니다.(굽신)

련주님 무위는 제가 설명이 부족했군요. 수련하는 장면이라도 넣어야하나....일단, 련주님이 지닌 무공은, 재구성...그러니까, 양판소 모드에 주인공(한 기수)이 쓸 성명절기입니다. 최상승 절기에다가 거기 최종보스까지 무너뜨리는 신물(?)입니다. 일단 련주님은 반절만 익혔기 때문에 나머지 반절을 익히자 급속도로 발전한 거고요. 계단을 밟듯이 성장이라기보다는, 여태까지 한쪽 팔다리를 묶고 있다가 그 제약이 급 풀린 것이지요. 언제 쓰게 될지 모릅니다만(영영 안 쓸 수도 있습니다만), 쓴다면 수련과 박투를 중점으로 초안을 맞추려고 합니다. 거기에 등장한다면 전수자쯤으로 역할배정 받겠죠. 덕후가 있으니 이어지진 않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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