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德厚の野望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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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326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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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릉각. 가산을 등지고 연못를 장식하듯 기화이초를 둘러 싸놓은 이곳은 심가장에서 대빈 大賓을 맞이하는 곳으로 요즘은 연일 베풀어지는 향응으로 떠들썩했다. 덕왕부에 나온 주 집사와 초빙을 받은 양주의 유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진수성찬이 쌓여 있고, 옆에는 일급 기녀들이 노래와 춤 그리고 과실같이 탐스러운 몸으로 취흥을 돋우고 있었다.  

"강남은 참 풍요로운 곳이오."

암행어사 출두 직전의 탐관오리의 전형을 연출하던 덕후는 주안석을 차지한 채 불쑥 소감을 내뱉었다. 뼈가 없도록 술잔을 높이 드는 모습에 객들도 허허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뇌리에 스치는 상념도 대동소이했다.

-거시기만 안 떼었지, 하는 작태는 환관이랑 다를 바가 없군. 이래서 강북 촌놈이란.

근 일 주일간 주 집사와 얼굴을 마주하며 이모저모 재 본 결론은 호가호위하는 자라는 것이다.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듯 나름 치밀하고 똑똑한 구석이 있으나 상대들은 불행히도 관계와 상계에 노회한 인물들이다. 주 집사의 엉큼한 속셈은 훤히 읽혔다고 믿었다.

금보옥이 주 집사의 소재를 알린 이후 그가 머무는 곳에 배첩이 세 자리 숫자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연회가 벌어지는 동안 제 풀에 떨어져 나가거나 축객령등으로 남은 이들은 대략 열 명 안팎 하였다. 심우량을 필두로 이매가, 강부자, 고소영, 장보질 외에 복건의 여옥전, 만수강, 부길추, 한매일 등이었다. 다들 양주 일대에 쟁쟁한 향신들이었다.

“왕야께옵서는 경사에 계실 때부터 강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셨소.”
-이 땅의 부가 탐이 난다는 소리이렷다?

속으로 자체 번역을 하며 겉으론 맞는 말이라는 듯 흐뭇하게 고개를 끄떡여준다.

“황상과 왕야의 성덕이 이곳에까지 두루미치고 있음을 알았으니, 이 지역의 미거한 촌민의 대표들로서 광영이 아니라 할 수 없겠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심우량이 좌중을 돌아보며 동의를 구하자 잘 짜인 반주처럼 옳소!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시 주악이 울리면서 한 순배가 돌았다.

“헌데 말이오. 왕야께서는 한 가지 마음에 안 드셔하는 것이 있는 것 같더이다.”
“허어, 그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혹시 성의 문제가 아닌지요?”

심우량은 진정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으면서 내심 돈지랄 얼마나 해야 할까 계산했다. 그 뿐만 아니라 모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주 집사로 분한 덕후는 그것이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재정은 문제가 되지 않소. 대체 황실을 어떻게 보는 것이오!”

덕후의 과장된 호통에 심우량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본디 덕후와 심우량은 아주 초면은 아니었다. 금보옥의 곁에 있을 때 스치듯이 본 적은 한 두 번 있을 테니까. 그러나 포인트 분장으로 사람 인상이 확 바뀌듯이, 주 집사로 분한 덕후도 이 자리에서는 약간 손질은 거친 상태였다. 후일, 주집사와 덕왕의 인상착의가 상당히 닮았다는 떡밥을 위한 포석이었다. 그걸 모르는 심우량은 속으로 덕후를 씹었다.

-어떻게 보긴. 만 귀비의 자식이면 초록이 동색 아닐꼬.

당금 주상인 성화제는 만 귀비의 치마폭에 놀아나고 있고, 황실 소유의 사유지를 늘이려고 기를 쓰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전국적으로 토지 겸병 현상이 일어나는 가운데 그 정도가 유독 심했다.

원래 명초의 조세는 이갑제에 의한 나와바리(?) 별 현물징수가 원칙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은의 대납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약 백년간의 안정기로 인해 건국초와 달리 생산력 확대로 곡물 값이 하락하고, 창고에 20년 치 양곡이 쌓여 썩어만 가는 등 현물징수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뚝심 있게 추진한 은납세의 진행은 관리와 지주의 편의만 봐준 결과로 변했다. 아직 은을 소유하지 못하거나 곡물을 직접적으로 내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으로 전가되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갑제 자체 모순까지 겹쳐 기존에 땅 파먹고 사는 일로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견직물을 짜내는 부업 등에 매달리게 되거나, 그도 감당하지 못하는 일부는 땅과 처자를 팔는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그도 아니면 신개간지를 찾아다니는 유민이 되기도 했다.

여기 모인 이들은 그런 부침 속에 충분한 자산을 보유하고, 여러 대를 걸치며 버린 땅을 사들이거나 혹은 혼인 정책으로 가세를 불리는 한편, 시책이 카멜레온 같은 조정으로부터 보호를 위해 관료가 되거나 일원으로서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지주들이다. 또한 전통적 유교 의식에 입각하여 광대한 제국에 다양한 지역 사회를 유지하고 행정의 공백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준 유력자로서 마인드가 형성되어 가는 중이었다.

심우량을 비롯한 이들이 덕왕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말고 높으신 담장 안에서 신선놀음하면 되는 것이다. 좀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공신력 있는 중개자 역할을 바라겠지만, 종놈을 보면 상전을 안다고 인간성에 대한 기대는 진즉에 버린 상태였다.

-설마하니 땅을 내놓으라는 것은 아니겠지?

심우량을 비롯한 이들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떠오른 생각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물씬 흘렀다. 헐값으로 강매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에흠! 왕야께서는 구변진의 일로 노심초사하고 계시오. 그렇다고 강남의 부가 차고 넘쳐 썩을 정도라고는 하나, 세관을 막 지으면 대략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소. 찬조금을 받는 것도 한 두 번이고...”

묘하게 거슬리는 소리를 한 덕후는 목소리를 은밀하게 낮췄다.

“해서 바닷길을 모색하고 있소.”
“예?”

심우량은 덕후와 만남 이래, 처음으로 멍청하게 반문을 하고 말았다. 비단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명나라는 해금령이 내려진 상태라 감합무역 외에 사무역은 금지 상태다. 뒷구멍으로 할 것은 다 하지만, 왕부의 측근이 이렇게 대놓고 말하니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감합의 규모를 늘리겠다는 거요. 그리고 세관을 꼭 대명천지에다 할 필요가 있겠소? 사이四夷들에게 바치게 하면 될 것 아니오! 오는 이들마다 인두세를 내라하면 황상의 성은이 저들 하나하나한테 비치는 줄 알 터이니 신명을 다해 받쳐 줄 것이오.”

심우량을 비롯한 중인들은 굳어버렸다. 이제 보니 어중간하게 똑똑한 놈이 아니라 거창하게 미쳐버린 놈인 성 싶었다. 감합무역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체류 비용을 조정에서 부담하기 때문이다. 헌데 이 특혜를 백지화 시키고 관세랑 인두세를 매기겠다고 하면 사무역만 기승부리는 결과만 조장할 것이다. 당장 무역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은 둘째 치더라도, 날이 갈수록 은의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 제대로 된 은광이 없어 주로 일본 등지 등에서 수입하는 처지다.(후일에는 유럽상인을 통해 멕시코 은이 대량 유입되어 기축통화로 쓰일 정도가 된다.) 이걸 조정의 편의에 따라 일방적으로 차단해버리면 약간 과장을 보태서 중원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터였다.

심우량들은 순간적으로 두 가지 계산을 했다. 미리 은을 사재기하는 경우나 다른 방도를 권하는 것. 단기 수익으로는 전자가 참 매력적이다. 그러나 천하로부터 영원히 매장당할 것이다.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기로 했다.

“탁월한 고견입니다만, 만이들이 우리와 같은 인의예신을 알겠습니까? 만세의 위업을 위해 교화를 시켜야겠습니다만, 백 년 이상은 걸리는 고로 우선은 천한 것들로부터 물꼬를 트는 것이 순리에 맞지 아니한가 싶습니다.”
“천한 것들? 상인들 말이오?”
“그들이 비록 사민의 말석을 차지한다고는 하나 대명제국의 백성입니다. 아국의 위엄을 높이고 충성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흐음, 과연 그렇게까지 할 만한 역량이 있을지? 만이들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대명제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제후국들이오.”
“대륙상인연합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알다시피 얼마 전 무뢰의 도당을 처단하는 수완을 보였으니 적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심우량은 금보옥과 소원한 사이지만 순망치한의 관계이므로 어쩔 수 없이 대상련을 추천했다. 딱히 그 외에 적임자가 없기도 하다. 주 집사도 그것을 알고 금보옥을 만나러 왔으리라. 그러나 덕후의 반응은 좀 달랐다.

“그럼 세관은 그 집단을 통해 걷으란 말인가?”
“촌무지렁이가 뭘 알겠습니까만....태조황제의 시책을 참고하면 무난하지 않겠습니까.”

이갑제 식으로 묶어서 세납을 받으란 소리였다. 심우량은 상식선에 말한 것이지만 덕후는 펄쩍 뛰었다.

“한 개인 혹은 집단에 전권을 맡기는 것은 자칫 폐해를 부를 수 있소! 그래서 태조황제께서도 승상제를 폐지하고 육부를 설치한 것 아니오.”

가장 큰 폐해는 황제독재체제지만 여기서 그걸 지적할 만큼 담이 크거나 혹은 명료하게 설명할 만큼 깨인 사람은 없었다. 재야에 몇 번 들을까 말까한 황제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니 다들 삼가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나마 시랑의 자리에 올랐던 심우량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태조황제의 정책을 엄밀히 적용하자면 여러 상단으로 분리해서 맡겨야하오. 허나 대상련은 적합하지 않소. 얼마 전 상인연합 해체를 권했더니 듣는 척만 하더군!”

덕후는 불쾌하다는 듯 씨근덕거렸다. 심우량 뿐만 아니라 장보질도 덕후가 자신들을 이 자리에 모은 저의를 어렴풋이 알듯 했다. 그리고 금보옥이 최고의 귀빈이라 할 수 있는 주 집사를 독점하지 않고 중인들에게 공개한 의도 또한.

-보아하니 주 집사는 대상련주 대신 우리들을 포섭하여 강남의 부를 뜻대로 하길 원하고, 대상련주는 여론을 조장할 수 있는 우리들을 방패로 내세워 왕부의 예봉을 피해보려는 듯하구나. 여기 남은 이들은 저 치 기준으로 회유 가능하거나 대항마로서 자격이 있다고 한 자리에 모은 것일 테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참 골치 아프게 생겼군!

현재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장보질은 그리 방관자적 진단을 내렸지만, 심우량은 약간 달랐다. 잘 만하면 가문의 부활(?)을 볼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선뜻 손을 잡기에는 황실에 때한 뿌리 깊은 불신, 그리고 눈앞의 상대가 좋은 파트너가 되어줄 지는 불확실했다. 기회를 잡았다는 눈빛을 갈무리한 채 심우량은 온화한 웃음을 머금으며 다독이듯이 권했다.

“이거 건의라고 해본 것이 주 집사님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아 송구할 따름입니다. 사죄의 뜻으로 이런 답답한 장내 말고 바깥에 경치 유람이라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근사근 나오자 주 집사도 자신이 너무 열을 냈다는 것을 자각했는지 헛기침과 함께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보면 간신배들의 야합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화기애애한 무드를 형성하며, 덕왕부 집사와 양주의 지주들은 사이좋게 잔치를 파했다.

부축하는 기녀들을 뿌리치며, 숙소로 돌아가던 덕후의 갈지 걸음은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자 차츰 정상으로 돌아왔다. 훅, 하니 내뱉는 숨결에는 찌든 주향이 배어 있었고, 들이 마시는 공기에는 청량한 풀 냄새가 밀려왔다. 어쩐지 자신이 독물이 된 것 같아 덕후는 고소를 물며 그대로 내원으로 향했다. 여인들이 머무는 전각들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우희선의 거처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일감 때문에 밖으로 나도는 다른 이들과 달리 우희선은 거의 내원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덕후의 여자들의 사이에 중심이 되고 있었다.

절정고수를 뛰어넘는 무위를 지닌 우희선이 덕후의 기척을 모를 리가 없다. 조용히 문을 열고 공손히 맞이하였다. 덕후도 말없이 들어가 상석에 앉아 우희선이 손수 내오는 차를 마셨다. 은은하게 떫은 차 맛이 마비된 혀를 일깨우자 덕후는 한동안 음미한 다음 불쑥 입을 열었다.

“삼공은 앉아서 도를 논한다더니 그 말 대로군.”
“천녀가 아는 게 있어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는 그대의 부속물이라는 듯 지극히 자신을 낮춘다.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대답에 보통 남자라면 기뻐하겠지만, 덕후는 명백히 의심스러운 눈길이었다. 우희선은 뼛속까지 귀족 출신이다. 그것도 한 때는 정쟁에 의해 존엄은 커녕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몰락했다가 자수성가하여 실권을 잡은 케이스다. 이런 자들은 나락까지 떨어졌다 해도 일반인과 평등한 공감대를 형성하긴 어렵다. 오히려 영웅 서사시에 나오는 성장 및 재기를 위한 시련이란 인식에 가까울 것이다. 극복한 원동력에는 이상에 가까운 야심이나 명문대족이라는 선민의식도 깔려 있을 테고.

백련보다 만련이 강하듯, 우희선은 그런 존재였다. 공신의 후예라는 출신과 밀천회주라는 지위를 가지며 의무과 권리를 만분 활용할 줄 안다. 상위 계층 중에서도 정국을 뜻대로 주도할 수 있는, 극소수만 향유할 수 있는 역량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남경에 와서 왕비로 맞이하겠다는 소리를 듣자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조신하고 있으니, 덕후로서는 찜찜할 수 밖에.

선수들 사이에 짓궂게 탐문을 하듯 어조를 깐다.

“솔직히 말해줘.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바로 고칠 게.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두렵지 않지만 누나만은 정말 예외거든.”
“전에도 말했듯 삼종지도를 따르고자 할 뿐이야.”

평어로 돌아온 우희선의 말에 잠시 의미를 헤아리던 덕후는 무릎을 탁 하니 쳤다.

“말인 즉, 내 자리를 빼앗겠다는 거네.”
“어떻게 하면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니?”

우희선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잖아? 내조를 핑계로 나를 슬슬 전면으로 내세우겠다는 거 아냐. 뒷바라지는 자신이 다 할 테니까 나는 밖에서 공명을 드높여라, 대충 그런 거 아닌가?”

정곡을 찔렀는지 우희선은 잠시 말이 없다. 그러나 덕후를 보는 눈길은 애잔하게 떨렸다.

“그래서 싫으니? 동궁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숨죽일 수 밖에 없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잖니. 동궁 시절에 나를 도와준 것처럼 그들을 뒤에서 밀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 조정에 주목받지 않고자하는데 좋고....하지만...”
“내 위에 서려고 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우희선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덕후로서는 그녀들이 편하게 본령을 발휘할 수 있도록 스스럼없이 터놓는 처신이었지만, 우희선의 눈에는 아닌 듯 했다. 군신의 질서에 뼛속까지 새겨진 그녀다. 덕후의 기행과 파격에 알게 모르게 물든 면이 있어도, 다른 여자들이 기어오르는 것을 계속 좌시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이 시대 부인들의 입장이 그렇듯, 남편의 지위와 대접에 따라 자신의 고하에도 영향을 받는데, 그런 관점에서 아래 서열의 부인들이 난잡하게 구는 가풍(?)는 용인하기 어려웠으리라. 당장은 괜찮아도 왕부에 들어서 왕실의 일원이 되는 순간에도 이러면 웃음거리다.

덕후의 간섭만 없었으면 진즉에 규율을 잡았겠지만, 장본인이 방치를 원하는 것 같아서 모른 척했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압박을 줘서 조심하게 만들긴 했지만, 대범한 신경들이다보니 효과는 전무하다. 엉뚱하게 자신의 인지도만 올라간 상태다.

“조금은 더 이해해달라고. 다들 자유로운 강호 태생이니까.”
“지나친 자유는 방종이란다. 치인治人을 하려면 제가齊家는 해야 하지 않겠니.”

수신까지 거론하지 않는 것은 덕후에 대한 배려이겠지. 덕후가 전면으로 나서서 만사를 주관하여 군기를 잡는다면 우희선의 불만은 어떻게든 해결된다. 그러나 덕후 입장에서 몸만 살아있고 정신은 타성에 물들어버린 인형들만 얻는 결과만 낳는다. 남녀가 유별한 이 시대의  풍토에서 그녀들이 재능을 적극 발휘할 수 있는 것도, 다 덕후의 방치 형 내조(?) 덕인데, 정처의 의향대로 잡도리를 한다고 흔들어버리면 도로 아미타불이다.

“다 우리 가족 편하고자 하는 건데....그만한 리스크....아니, 단점은 감수해야지. 정말 그럴 생각이 있었으면 저번에 왕지王旨 건 때 가만히 있지 않았지.”

왕명을 내렸다가 변덕으로 취소한 일을 거론하자 우희선은 살짝 한숨을 쉰다. 가슴팍이 미미하게 요동쳤다. 적을 속일 계략 겸, 상공이 경계를 사지 않도록 약점을 안겨주자는 취지로 한 것이지만, 마지막 의도는 덕후가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하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덕후는 다음부터는 미리 알려달라는 불평 한 마디로 덮어 두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여인들 사이에서는 왕지까지 사사로이 조정할 수 있는 우희선의 존재가 대폭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내키는 결과는 아니다.

덕후는 양 손바닥을 펼쳐 천천히 그러나 꽈악 움켜쥐었다.

“괜찮아, 누나. 정말로 중요한 건 놓지 않고 있으니까. 모래알이라도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단단히 아교를 칠해서 말이야. 이 추하고도 졸렬한 협잡도 착착 진행하고 있잖아? 사기는 뒷감당할 힘이 없는 놈들이나 하는 거고, 나처럼 권세만 있으면 지금처럼 칼 만 안든 강도질도 여반장이지.”

자신이 낮에 양주 유지들을 흔든 방법은 초보적이다 못해 생떼에 가깝다. 신분이 달랐다면 비웃음을 사거나 역습을 당했으리라. 그러나 진짜로 저질러버릴 수 있기 때문에 충돌하지 않고 알아서 긴 것이다. 이러니 다른 것은 다 버려도 권력만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후후, 웃는 덕후를 가만히 보던 우희선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강남의 공기가 네게 맞는 것 같구나.”
“응?”
“황도에서는 절대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잖니.”
“그건 누나도 마찬가지네. 이렇게 불평을 터뜨리니.”

둘 사이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이 떠올랐다. 딱히 강남이 아니라 황궁을 벗어난 어디에서든지 마찬가지 일 것이다. 고인 황도의 공기가 아니라 자유분방한 바깥 공기도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메마르고 닳은 듯한 웃음이지만, 둘에게는 숨은 상처를 핥는 것처럼 아릿하면서도 하나로 이어 진듯, 은밀한 교감이 이루어졌다. 덕후와 희선은 이끌리듯이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눈을 감고 입술을 탐해가기 시작했다.

귀밑을 쓸어 넘기며 덕후가 바라보자 우희선이 일어선다. 겉옷부터 하나하나 벗겨져 속옷만 걸친 상태였다. 덕후가 유일하게 선물을 하는 종류, 허벅지까지 올라온 검은 스타킹과 반쯤 비치는 팬티와 브래지어였다. 은은하게 깔리는 어둠 속에서 희멀건 나신은 덕후는 가운데 다리의 고환근이 수축하며 음경이 단숨에 발기하는 것을 느꼈다.

덕후의 시선이 평소의 멀뚱한 것이 아니라 야수처럼 성나 있자 우희선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도착적이고 은밀히 내부 심지에 불꽃을 당기는 것처럼 혈관을 타고 흐른다. 덕후가 와락 껴안자 우희선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헐떡였다. 브래지어가 잎새처럼 떨어지고 가슴에 덕후의 까칠한 혀가 빨고 살짝살짝 깨무는 것에 진저리를 쳤다. 가슴 뿐만 아니라 탄탄한 팔 근육이 피부 위를 누르고 척수를 훑으며 둔부를 꽉 쥐었다가 허벅지 안쪽을 쓸을 때마다 리듬을 타는 것처럼 우희선의 느린 호흡이 가팔라지며 심장이 쿵쿵쿵 뛰었다.

지속된 애무로 흥분이 정점에 달하자 유방이 부풀어 오르며 젖 무리가 확장되고 유두는 단단하게 발기했다. 하얀 피부는 혈류의 확장으로 도화 빛으로 물들어갔다. 변화는 가슴뿐만 아니라 하체의 입구에도 마찬가지였다. 붉게 충혈, 팽창하여 자신의 짝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아...아...앙...”

우희선의 신음이 덕후에게 자극제가 되어 덕후는 몸을 실을 듯이 덮쳤다. 기세가 거셌는지 우희선의 몸이 균형을 잃고 땅 위로 넘어지려했다. 바로 뒤에 의자가 있어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풍만한 가슴을 반쯤 돌린 채, 긴 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기며 물기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은 이루말 할 수 없이 선정적이다. 특히 지탱을 위해 쭉 뻗은 한쪽 다리의 종아리와 발목, 그리고 다른 한쪽은 의자 위에 무릎을 댄 채 발뒤꿈치를 드러낸 모습에는 페티심을 자극하였다.

그것을 보자 덕후는 지금까지 조급한 성적 충동이 가라앉으면서 유희를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희선이 움직이려하자 급히 제지했다.

“그대로 있어봐.”
“이, 이렇게?

여자의 소중한 부분을 남김없이 드러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우희선은 가만히 있으려했다. 그러나 성애의 도중이라 엉덩이가 움찔하며 들쳐졌다.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덕후는 자신의 자지를 꺼내 달덩이 같은 둔부의 쪽 사이를 벌리고는 천천히 진입하였다. 성기를 받아들이자 윤활유로 잔뜩 젖었던 입구는 처음에는 시침떼듯 단단히 물려있었으나 적극적인 구애에 반기듯이 흡입하였다.

“아...아...더...깊이..!”

수컷의 진입에 암컷의 신음은 커져간다. 늘 비어있던 공간에 충만한 충족감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듯 우희선의 몸은 덕후의 왕복에 박자를 맞췄다. 가슴이 흔들리고 허리도 율동에 맞춰 요염하게 흔들렸다. 발기를 유지한 채 질구를 유린해자가 사우나에 들어간 것처럼 땀이 얇게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무산의 구름과 같은 오르가즘에 오르며 입을 반쯤 열며, 허덕이는 우희선의 얼굴에는 황홀감이 만연해 있었다. 이 자리에는 밀천회주나 왕야란 구속에서 벗어나 한 여자로서 한 남자와 성교를 하는 것이었다.

육체들의 연주는 정신의 교감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 외적 경계는 무의미해졌다. 배척하고 분리 된 세계에서 둘은 서로를 탐닉하며 섞어갔다. 그건 굉장히 달콤하면서도 동시에 씁쓸한 맛이었다. 부패하기 직전의 것이 당도가 높은 것처럼, 농익은 포도주가 시큼하고 알딸딸하게 혀끝을 당기는 것처럼 둘은 상대에 대한 말초적 충동과 어둠에 이끌려 취해갔다.

우희선이 절정에 이를 때와 맞춰 덕후의 음경에서 대량의 정액이 사출되었다. 리드미컬하게 쏟아진 정액은 질구 안의 자궁벽을 향해 달려갔다. 씨를 받아들이기 위해 골반께로 상승했던 자궁은 입구를 열어 감로수를 마신 듯이 수용했다.

사정을 끝낸 덕후의 거친 호흡을 어깨 위로 느끼며 우희선은 아랫배에 느껴지는 만복감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섹스로 인해 폭주하던 감각기관들이 느릿하게 평상시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질구는 힘을 잃어가는 자지를 토닥이듯이 감싼 상태였다. 어느새 둘은 좁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듯한 상태가 되었다.

한 차례 절정을 마친 우희선은 나른한 느낌과 빗물을 받아들인 꽃처럼 생기 있어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뜻을 알아챈 덕후가 고개를 숙였다. 서로의 입술을 포갰다. 격렬한 충동이 아니라 후희, 식후의 만끽이었다. 덕후가 몸을 빼려하자 우희선이 못하게 막았다.

“왜?”
“뽑지 마, 미끌미끌 해....흘리는 건 싫어.”

초점이 맞지 않는 몽롱한 눈을 하여 기대자 덕후가 다정하게 껴안았다. 목에 걸친 팔뚝에 기대듯이 우희선이 손가락이 올라왔다. 들어올리 듯이 잡은 힘을 주자, 반동으로 하체가 꾸욱 밀착해 덕후의 음경을 영원히 삼키겠다는 듯 밍기적 거렸다. 덕후는 우희선의 의도를 읽고는, 잠시 생각한 끝에 그녀가 이 상황에서 가장 원할 질문을 던져주었다.

“....아이는 몇이 좋을까?”
“다다익선.”
“평생 얘 낳는 기계가 될 셈?”
“.....그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 딴 생각 못하도록 바빴으면 좋겠어. 네 표현대로라면, 자식 따위가 뭐가 좋아서 낳았을까 후회할 정도로.”
“....굉장히 비관적이네.”
“그래도 그 아이들은 우리의 핏줄 일 테니까.”

풍비박산 난 명문가에서 태어난 우희선은 혈육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어느 정도 인지한 상태였다. 이상적인 가족을 만들어 우 씨를 만대에 이어가는 것이 바램이었다.

“어디까지 받아들이려고 그래?”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며 속을 썩일지라도 원망을 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응석받이로 키우고 싶어? 그러면 사람구실을 못한다.”
“후후, 회초리 드는 것은 네 역할. 난 옆에서 울면서 말리는 역할.”
“어이구...”
“그래도...아이들이 제 길을 떠나가도, 마지막에까지는 내 곁에 있어줄 거지?”
“아아, 물론 호호 할머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때가면 나를 버리진 말아줘. 보나마나 호색영감이 되어 있을 테니까.”
“글쎄, 하는 걸 봐서.”
“쳇, 자식들과 대접부터 확실히 다르군.”
“날 엄마라고 부른다면...”
“엄마.”

즉각적으로 나온 덕후의 대답에 우희선은 멈칫했다. 말한 저의를 파악하기 위해 표정을 확인하는 대신 가만히 일어섰다. 질구에서 페니스가 빠져 축 늘어졌다. 문득 애처롭게 느껴져 보듬듯이 한 번 감싸 쥐고는 덕후의 목을 끌어안았다. 자신의 가슴으로 안으며 우희선의 입가에 한줄기 미소가 그러졌다. 행복한 듯 하면서도 쓸쓸함이 비쳤다. 덕후는 아이처럼 몸을 구부렸고 우희선은 알을 감싸는 것처럼 안았다.

 

 



 

이걸로 4월분. 만우절 때 올릴까 하다가 주중에는 별로 올리고 싶지 않으니 미리. 이걸로 파트 4 H분은 다 소비. 다음화 부터는 스토리 고고싱~(인마) 좀 딴 소리입니다만, 초본 완결 후 이걸 퇴고하면 각 파트의 소제목을 타이틀 표절(?)로 할까 생각 중입니다. 시리즈 순서에는 구애받지 않을 작정이니 현재는 “혁신” 편에 해당되겠군요.

그리고 캐릭터 소개 시 모티브 등등에 대한 궁금한 분이 있기에 간략히 올려봅니다.

덕후 편

아마고 츠네히사 - 이즈모의 다이묘(태수). 선대부터 신흥으로 세력을 뻗쳤으나 주변 토호들의 연합 공격으로 모든 것을 잃고 낭인으로 방랑합니다. 그러나 2년 만에 거성이었던 갓산 도다 성을 소수 병력으로 탈환, 복권하여 츄코쿠 11國(중세 일본 구역단위)를 재패합니다. 동 일본에 호죠 소운이 있다면 서 일본에는 아마고 츠네히사가 있을 정도. 굴지의 모장謨將 이라는 평가와 달리 누군가 자기 걸 칭찬을 하면 당장 줘버릴 정도로 물욕이 없기로 유명했고, 신분고하랑 상관없이 매사에 다정다감했다고 합니다. 아마고 씨의 최전성기를 이룩했으나, 만년에는 후발주자인 모리 모토나리에 의해 아마고의 몰락을 예감, 세상을 떠납니다.(인생무상...)

마쓰나가 히사히데 - 일본제일의 효웅.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에게 히사히데를 소개할 때, 방심할 수 없는 영감이라면서 "상전 미요시를 몰락시키고, 대불전을 태우고, 쇼군을 살행한" 악행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하극상의 전형을 보여준 인물로 에도 시대에 전국시대 악인 베스트3 하면 꼭 들어갑니다. (노부나가를 만나기 전까지 히사히데의 모략을 보면 긴키의 군웅들을 들었다놨다하지요.ㅡㅡ;) 현재 일본 전통 건축물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천수각의 고안자라고도 합니다. 노부나가한테 두 번 반기를 들었고, 모두 실패, 구명을 받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대신 스스로 천수각 정상에 올라 폭사를 선택합니다.

"이 히사히데는 정직한 사람으로 의리나 인정 따위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약하다고 생각했을 때 배신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배신 당하기 싫으면 언제든 강하면 됩니다."

-山岡莊八의 소설 織田信長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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