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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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282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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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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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 온 것처럼 새하얀 것이 내리는 평원. 그 곳에서 한 남자는 다급하게 분진에 묻힌 동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제길! 죽으면 안돼!”

  그의 외침도 무색하게 생명체가 없는 평원, 그 곳에서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그 뿐이었다. 혹시나 하면서도 그 사실에 절망하는 남자. 울부짖으면서 부러진 검으로 잔해를 파헤치고 또 찾는다. 점차 드러나는 사체들. 하나 둘 드러나는 시체들에 비례해 남자의 목소리는 점차 눈물에 젖어들어간다.

  “이럴 수는 없어. 살아있을 거야.”

  미치기라도 한 듯 땅을 파헤치는 남자의 행동에 감복한 듯, 그 남자를 불러온 여신 노르텐이 강림한다.

  ‘용사여. 슬픈 것은 알겠지만…….’
  “살려주십시오. 여신이시어! 그들을 살려주십시오!”

  남자의 절규에 여신마저도 할 말을 잊고 그를 슬픈 눈동자로 바라본다.

  ‘삶과 죽음은 저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찾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살릴 수 없단 말입니까.”
  ‘슬프지만.’

  필시 많은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굳은 의지로 목구멍을 비집고 터져나오는 말을 참고는 여신에게 부탁한다.

  “살아남은 이라도……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이것이라도 돕게 되어 기쁘군요.’

  여신의 등에서 날개를 닮은 빛이 퍼져나오며 잔해를 걷어나간다. 그리고 그 곳에 수십의 동료들이 죽은 듯 누워있다. 그들의 생존을 확인하며 남자는 기쁜 듯 외친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수 없어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신은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여신이 사라지자 하나 둘 눈을 뜨는 동료들. 그런 동료들을 용사는 하나씩 부둥켜안으며 삶을 축복하고 생존을 기뻐하며 죽은 자들에 대한 눈물을 쏟는다.

  연극은 끝났다.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뒤로하고. 환하게 미소짓던 출연진들이 무대로 나와 객석에 인사를 하자 박수갈채는 더욱 커진다. 세계를 구한 용사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든 연극은 성공적이었다. 극단주는 앞으로 쏟아질 지원금과 그에 따른 이익에 입이 함박만큼이나 벌어져서 기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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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을 본 어느 황제는 가만히 미소를 짓는다. 때릴 때의 손맛이 가장 좋았던 것은 그 당시까지는 마왕이었다. 지금은 대들기 잘하는 아들놈이지만.
  그의 곁에 있던 여인들은 빙긋 웃으면서 그런 황제의 손을 잡아나간다. 물론 황제는 한 사람이었으므로 오늘 그의 곁에 있기로 된 여인들만이 황제의 손을 잡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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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을 본 어느 여왕의 곁에 있던 시녀는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그린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차라리 저런 결말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실이 알려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꽤나 아팠다.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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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이 벌어지는 것을 본 여신은 웃으면서도 씁쓸하게 미소를 짓는다. 자신이 나서서 한 일이 하나도 없음에도 저렇게 연극을 꾸미며 자신을 추앙해주는 인간들에게 살짝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입다물어주는 황제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성녀를 빼앗아가다니, 그건 용서못해!”

  고마움은 고마움이고 원한은 원한이다. 여신은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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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연극을 본 어느 황태자는 ‘저게 누구야?’라고 중얼거린다. 그 옆에 있던 아리따운 백여명의 여인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 물론 고개를 갸웃하는 두 사람이 있긴 하지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22話 가족계획, 2030서울


  57.
  내 이름은 진 맥세인 아슈레이. 원래는 지구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던 인간이었지만 어느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아 환생을 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약 15년간 내 속만 태우는 이고깽 아버지와 검을 맞대다보니 이고깽 아버지의 힘에 근접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어머니들의 집중적인 교육으로 아버지보다는 좀 더 다재다능해진……그런 인간이었다.

  “그런데…….”

  인생의 무덤, 코가 꿰이는 일이 벌어진 것은 내 나이 15세 때, 3년 전의 일이다. 아버지의 협박과 누이들의 계략에 걸려 누이들과 결혼한 천하의 잡놈이 된 일이기는 했지만 세상에 다시 없는 미인인 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갑자기 말이 이상해졌다고?

  “인생의 무덤이라……그렇구나. 진은 우리를 저승사자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네.”
  “아, 그게 아니라. 누나.”
  “누나라는 말 싫어. 이름을 부르거나 당신, 여보, 부인이라고 불러.”
  “응. 마를렌.”

  다섯째 누나 마를렌이 일기를 쓰고 있는 내 옆에 다가와서 내 일기 내용을 보았기 때문이다. 누나들이 삐지면 나도 하루종일 기분이 나쁘고 누나들도 기분이 상하기 때문에 싫다. 그저 누나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 일생의 목적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일그러진 것 같지만 누나들을 여자로서도 사랑하고 있는 나의 상황을 살펴보면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저 농담으로 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상처받은 마를렌 누나도 있지 않은가.

  “우리랑 결혼한 것, 후회해?”
  “아냐. 그런 것은. 내가 이래도 되나 생각했을 뿐이거든.”
  “그런데 왜 인생의 무덤이라느니 그런 식으로 써둔 거야?”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말이니까. 무의식적으로…….”
  “우리만으로는 안되는 거야? 카틀레야로도? 아사로도?”

  울먹울먹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누나. 가장 온화한 성품의 마를렌 누나는 다른 의미로 최강의 부인이랄까. 내 마음 속 가득 퍼지는 죄악감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한다.

  “그, 그게…….”
  “우리만으로 안되면 바람을 피우는 것까지는 괜찮아. 하지만 부인으로는 삼지 말아줘.”
  “그럴 리가 없잖아.”
  “첩까지는 용인할게. 더 이상은 안되니까.”
  “그, 그 말이 아니잖아.”
  “아버지를 보면 분명 진은 바람둥이일 거야. 그걸 억누르면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진이 데려오는 첩들은 내가 시녀로 둘게.”

  대체 이 누나가 오늘 왜 이럴까. 망연히 어딘가 다급한 듯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누나의 모습에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래서 누나에게 물어봤다.

  “누가 무슨 말을 했어?”
  “그, 그게…….”

  반응을 보면 누군가가 무슨 말을 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엉뚱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반응인데.

  “아버지가 질리면 싫어진다고 해서……그럼 버림받잖아. 그게 난 싫어. 하지만 피할 수도 없을 것 같아서……난 어머님들이 아버지를 만족시키듯이 할 수도 없을 것 같고……또오.”
  “이 빌어먹을 아버지!”

  대체 그런 말을 하는 저의는 뭐냐! 치솟는 화를 꿀꺽 삼키면서 마를렌 누나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녀를 달랜다. 그리고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다른 누나들도…….

  “하읏, 핫, 핫, 핫……진, 지인!”

  그러다보니 자연히 섹스 횟수가 많아지고 그 때문에 네 명의 누나들, 넷째 누나인 경이 누나와 첫째 누나인 에렌 누나. 일흔두번째 누나인 엘렌누나. 마지막으로 내 누이는 아니지만 부인인 카틀레야가 아이를 임신했다. 당연히 아이를 원하는 마를렌 누나의 얼굴은 더더욱 시커멓게 죽어가는 중. 이런 상황이 되자 아버지라는 사람은 위로는커녕 놀리기 시작해서 마를렌 누나를 울게 만들었다.

  “호오, 마를렌이 아닌 다른 애들에게서는 아이를 쉽게 보는구나? 황태자로서 업무소홀이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잖아요!”
  “남자라면 당연히 아이를 갖기 원하는 여자에게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하는 법이다. 훗.”
  “싸우자!”

  그리고 그 결과는 나의 참패. 아직 이 인간을 때려잡기에는 힘이 부족한 것 같다.

  “여보. 마를렌을 울리다니……일단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 같네요.”
  “으허억! 여보! 내가 잘못했소!”
  “닥쳐요! 딸을 울리는 못난 아버지 같으니라고!”
  “자, 잠깐만! 일단 변명이라도 들어야…….”
  “필요없습니다!”

  대신 어머니들이 아버지를 때려잡았으니 상관없으려나. 음. 그런데 이러다가 정말로 마를렌 누나가 아이를 못낳으면 어쩌지? 누나 성격이라면 필시 짐싸들고 숨어버리려고 할텐데. 다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런 예상에 몸서리를 치면서 급히 누이들을 소집, 회의를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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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서 진이 온갖 방법으로 우리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으려는 건 잘 알겠는데 말야. 이래서는 아버지랑 똑같잖아. 일단 딸만 열다섯. 앞으로 나올 애들이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탈하게 나온다면 모두 열 아홉이야. 게다가 이번에 생일이 다가오면 진의 나이는 고작 18살. 물론 절진에서 보낸 시간이 있으니 20살에 가깝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면 진은 18살이거든. 그런데 벌써 애들은 19명. 앞으로 대체 몇 명이나 더 낳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다시 말하자면 아버지께서는 서른이 넘어서 우리를 낳기 시작했지만 진은 그 이상으로 자손을 퍼트릴 거라는 이야기야.”

  회의가 시작되고……나는 누이들의 성토에 점점 죄인이 되어 몸을 웅크리고 앉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단지 누이들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 잘 대해주는 한편 빨리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조금 노력했을 뿐이고!

  “그 결과가 제국의 황족이 3대만에 수만명이 넘어가는 건 좀 아니겠지?”

  중얼중얼 나름대로의 방어논리를 펴려는 나에게 셋째 누나, 린의 가혹할 정도의 공격이 가해졌다. 그런데 대체 수만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일년에 한명씩 애를 낳아도 수천이 고작이거늘!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네가 황제에 오르면 후궁을 넘어서 시녀라고 하더라도 딸을 넣으려고 할 귀족들의 명단. 그리고 여기는 혼기가 꽉 찬 아가씨들의 명단. 그리고 이건 여관들의 명단. 대충 수천은 되지?”
  “거절하면 되잖습니까. 그렇잖아도 부인이 백여명이나 되는데.”
  “거절할 수 있을까?”

  싱글벙글 웃는 누나들. 그런데 웃고 있는데 눈은 살기에 가득차 있는 건 대체 뭔가요.

  “게다가 이런 식으로 딸만 낳다 보면 우리 미래의 아드님이 누이들의 숫자에 한숨을 쉬지 않을까?”
  “왜요?”
  “너, 어지간한 녀석 아니면 딸 결혼시키지 않으려고 할테니까 아버지처럼 할 거 아냐?”
  “그, 그럴리가!”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 먹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면 나도 어쩔 수 없을 것이고. 일단 딸들의 이상형을 무지막지하게 높여두었으니 어지간한 놈팽이에게는 아예 혹하지도 않을 거고……. 무엇보다 아들을 딸과 결혼시키는 그런 짓을 내가 할까! 그럴바에야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지금 내가 고생……아, 실수.

  “음, 우리랑 결혼한 걸 후회한다는 말?”
  “아, 그,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일단 입다물고 우리 이야기를 들을래?”
  “네.”

  어쨌든 일을 쳐놓은 상황이니 무슨 말을 해도 모든 것이 내 죄악이 되는 상황. 이 상황에 좌절하면서 누이들의 성토를 그저 침묵으로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누이들의 공습이 시작되고 나는 라이프가 0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언데드마냥 그저 누이들의 공습을 온 몸으로 견뎌야 하는 상황. 다행히도 딸들과 놀고 있는 누이들이라거나 마를렌 누나라거나 임신한 누나, 부인들을 제외한 상황이니 그나마 살만하달까.
  설마하니 잊혀진 숲의 엘프 혈통인 누이들까지 나에게 불만을 토할 줄이야.

  “진은 변태!”
  “죄송합니다아.”

  남자는 변태니까. 하지만 이렇게 매도하시면…….

  “이상한데 집어넣지마!”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싫어할 줄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부끄러운 자세도 싫어!”
  “아니, 그건……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단 보수적인 성의식을 가진 누이들이니 어쩔 수 없나.

  “분신술 쓰지마!”
  “나도 쉬고 싶……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게 해주세요.”
  “마시라고 하지마!……아깝잖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쿨럭.”

  어째 가족 계획을 위한 회의가 아니라 평소에 나에게 가졌던 불만을 토로하는 장소가 된 것 같은 상황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라이프가 0인 상황에서 그저 누이들의 공습에 먼지가 되어 흩날리는 몸, 누이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이것으로 충분하다. 어쨌거나 이런 가족계획을 위한 회의에서 결정한 것은 피임에 힘쓰자는 것. 물론 마를렌 누나에게는 전력으로 임할 것이 결정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을 향해 뚫은 통로로 피임을 위한 물품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다른 이고깽들과 출몰하는 시기가 겹치면 안되니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이고깽 연합에게 내가 출몰할 것이라 알리게 하고서 나갈 생각이었다.

  “거절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좌절.

  “아버지. 잠시 대화를 할까요?”
  “딸들의 부탁인데 들어주지 않을래요? 딸들과 이야기할 것도 없이 우리랑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에 이은 누이들과 어머님들의 제압으로 나는 한국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아보는 셈이다. 물론 그 동안 인터넷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정도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알고 있었지만 직접보는 것과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할까. 어쨌든 그렇다는 것이다.

  58.
  “어서 오세요. 정XX씨……아니 세인 아슈레이님의 아드님인 진 맥세인 아슈레이님 맞습니까? 그러니까 환생전의 성함이 서XX이시고 8XXXXX-1XXXXXX이 주민번호이셨구요. 군번은 0X-XXXXXXXX이시구요.”
  “네, 본인입니다. 군번은 기억 못하겠습니다만.”
  “옆의 분은?”
  “아내입니다. 경 엔세인 아슈레이입니다.”

  통로를 빠져나오자마자 워프가 시작되었고 워프로 도착한 곳에는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던지는 질문에는 적당히 대답하면서도 주변을 살펴본다. 밝은 조명등과 적당한 수준의 가구들이 비치되어 있는 이곳은 필시 지구, 그 중에서 한국임에 분명하다. 내가 선 곳을 확인하고는 내 앞에 선 집사처럼 생긴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지 젊잖게 생긴 그는 싱긋 웃으면서 설명을 계속한다. 누나는 그런 그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살펴본다.
  그나저나 적당히 잘 탄 피부라거나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것이라거나 집사 복장을 하고 있는 거라거나 어디에서 많이 본 캐릭터인데…….

  “확인했습니다. 저는 이고깽 연합의 큐브라고 합니다.”
  “아, 역시! ……죄송합니다”

  역시나 하는 내 태도에 어딘가 상처를 입은 듯한 큐브……정말 닮았으니 인정하자. 하지만 그는 곧 부활해서는 설명을 시작한다.

  “아닙니다. 뭐, 프린세스메이커의 그 집사 큐브는 아니고 그냥 닉네임 같은 겁니다. 일단 여기에 사인을 해주시고 이것은 여권입니다. 그리고 진 님에게 주어지는 카드입니다. 현금을 인출하실 수도 있고 어지간한 경우에는 신분증을 대신할 수도 있는 물건일 겁니다. 입국기간은 4박 5일이고요, 그 이상은 다른 분들이 오시기를 희망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귀환해주셔야 합니다. 물론 열하고도 서너분 정도까지는 문제가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찜찜하니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단 쓰시는 기술 중에 분신술이 있다고 들었는데 되도록 쓰지 말아주세요. 환생을 한 분이 다시 이 땅에 돌아오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므로 여러 가지로 나누고 싶은 말은 많겠지만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주시기를 바랍니다. 한국 이고깽 연합에 객원맴버로 등록이 되셨으며 앞으로 회비를 제공하신다면 소식지와 일정표를 발송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안내책자와 함께 주어진 카드와 여권, 기타 신분증을 수령하고는 예의 바르게 그의 노고에 감사한다. 그 역시 선금조로 내민 회비에 꽤나 기뻐하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함부로 구할 수 없는 미스릴괴라거나 아다만티움괴였으니까. 그가 할 수 있다면 당장에 나를 로열회원으로 승급시켰을 정도다.

  “한강이라…….”

  통로를 연 곳은 바로 한강. 아버지처럼 한강에 열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른 곳을 물색해보았지만 적당한 장소에는 모두 군부대가 위치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한강 밑바닥에 통로를 열어야 했다. 적어도 강에 도시 짓겠다는 미친 놈은 하나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고깽 연합에서도 이곳을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말이다. 한곳으로 통로를 몰아두면 관리하기도 편할테니까.

  “여기가 해동?”
  “한국이야. 지금은.”
  “그렇구나.”

  누나야 당연히 나와 같은 세계에서 나고 자랐으니 들은 경험밖에 없다. 서울에서 동쪽, 크게 멀지도 않은 위치에 자리 잡은 별장들의 집결지라서 아직 도심의 모습을 보지 못한 누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하긴 황궁에서 황도를 보았을 때랑 비슷한 규모일테니 서울에 직접 떨어져도 크게 놀라지는 않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대여된 차 키를 들고 별장을 나선다. 일단 운전면허는 있으니까 걸릴 이유는 없고……오래간만에 운전하는 것이니 조금은 어색하려나, 뭐 상관은 없다.

  “아마도 빨리 배우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조금은 운전해보시고 출발하시는 걸 권합니다. 하루 정도 쉬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차에 올라타서는 이것저것 만져보는 나에게 큐브라고 했던 사람이 밝은 미소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옳은 말이라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는 누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나는 차의 시동을 걸고 간단한 조작 몇 번을 해본다.

  “과연……이곳을 찾는 분들은 배움이 빠르시지요.”

  그의 미소에 미소로 답해주고는 누나를 태워서는 서울로 향한다. 그런데 맑은 공기를 마시다가 서울 공기를 마시면 누나에게 괜찮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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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들어서자마자 시작된 교통체증에 짜증이 난 나는 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말이다.

  “사람이 많네.”
  “도심에서 정확한 시간에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니까요.”

  2030년의 서울은 혼잡했다. 2012년 북한의 세대교체에 이어 2027년에 있었던 정권붕괴, 그 이후 미국과 러시아, 일본의 개입으로 중국을 배제한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옛 휴전선을 기준으로 난민의 유입을 막고는 있지만 필사적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는 난민들을 모두 막는 것은 불가능. 따라서 개성, 파주, 동두천, 의정부를 따라 커다란 난민촌들이 형성되고 이들 중 일부가 서울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거지도 많아.”
  “어쩔 수 없어요. 국가가 모두 책임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수백만에 달하는 난민을 국가가 모두 먹여살리는 것은 국가재정이 휘청이는 일이었기 때문에 난민들이 조선족이나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을 국가는 방관만 하였다. 이에 따르는 소요사태라거나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폭력조직의 대처에도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옛 군부가 변신한 조직이라거나 북한이 숨겨두었던 무기를 소유한 폭력조직은 군대가 대처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휴전선 이북은 매일같이 전투를 방불케하는 범죄조직 소탕작전이 진행중이다.
  여기에서 이고깽 연합이 나서서 그들을 소탕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별로 중요하지는 않은 내용이다. 내가 나서서 때려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는데?”
  “누나가 미인이라서 그래요.”

  어쨌든 사람많고 부대끼는 일이 많은 지하철로 들어서려다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방불케하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낮인데다가 서울 외곽지역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정도의 인파가 몰리고 있으니 도심은 더 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누나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지만 일단 임산부이니까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냥 막히는 길이라도 차를 타고 가죠.”
  “그래? 난 상관없지만.”

  주차장으로 돌아가 차를 찾아 몰고 나왔다. 여전히 밀리는 상황. 하지만 다급한 마음으로 있어봐야 터지는 것은 열통과 분통뿐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 느긋한 마음으로 누나에게 노트북을 - 이고깽 연합에서 대여해주었다 - 다루는 법이라거나 차가 움직일 수 있는 매커니즘을 중학생 수준의 지식으로라도 가르쳐주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편리하네.”
  “대신에 자연이 파괴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5월인데도 푹푹 찌는 날씨에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어깨가 축 쳐진 것을 보면서 느긋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드디어 도심에 진입한 것을 몰래 기뻐한다.

  “얼레?”

  그런데 도심으로 들어서자 차량들이 옆으로 빠지기 시작한다. 어찌된 것인가를 생각하려니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신분증을 건네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단말기로 보이는 것에 신분증을 긁더니 액정화면을 보다가 인상을 찡그리더니 말한다.

  “아, 실례했습니다. 계속 나가셔도 됩니다.”
  “다른 차량들은 주차장을 찾아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차량들이 주차장을 찾아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면서 묻자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데……어딘지 모르게 ‘이런 부르주아!’라고 말하는 것 같은 시선이라 고개를 다시 한 번 갸웃한다.

  “도심에서 차량을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은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모르셨던 것 같군요. 하긴 외국에서 살다 오신 분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땅이 좁아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공무수행차량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요. 말하자면 특권층이나 공무원들, 아니면 그날 지정된 1/10의 차량만이 서울 도심에서 차량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외국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아, 그렇구나.
  그가 어째서 인상을 찡그렸는지 왜 차량이 도심으로 진입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이해해버렸다. 왠지 모를 슬픔에 한숨을 쉬면서 그에게 인사를 하고 계속해서 차를 몰고 나갔다. 생각만큼 한산하지는 않지만 돌아다니는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확 트인 도로를 달리며 떠오르는 생각에 쓰게 웃었다.

  SF에서 나오는 것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는 차량이 있으면 더 좋을텐데. 교통체증도 조금은 줄어들려나. 하지만 수도권 인구가 대체 얼마나 되기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4500만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외국인들까지 하면 5000만.”
  “…….”

  말하자면 이 좁은 땅에서 서울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린 나머지 지옥같은 교통체증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이왕이면 지방으로 행정업무라거나 기업, 대학같은 걸 좀 분산시키지. 다시 한 번 쓰게 웃으며 도심으로 차를 몰았다.
.
.
  도심으로 들어와서는 일단 서점부터 찾았다.

  “호오…….”

  물론 이고깽 연합에 부탁해서 화학, 수학, 물리학, 의학 등등. 제국의 발전에 필요한 서적들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그들도 어떤 한도 내에서 그 물건들을 건네줄 것은 분명하다. 최소한 한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이고깽이기 때문이랄까. 때문에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대형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사들였다. 그러고나자 꽤 많은 돈이 들어갔다.

  “책 한 권에……10만원이라니. 아무리 물가가 올랐다고 해도 그렇지.”

  10만원 권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김구선생님의 가치는 책 한 권이었다.
  참고로 대학생들이 공부할 때 필요한 원서의 가격은 40만원. 심할 경우에는 80만원을 넘어가는 책도 있었다. 어디에선가 원서로 공부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절규가 느껴질 정도로 책값은 비쌌다. 이러니 대학교 앞에 복사를 해주는 집들이 많지.

  “이거……사람을 그려둔 거지?”
  “응.”
  “생략의 묘미인 걸까?”
  “뭐, 그렇다고 생각해도 될 거야.”
  “그렇구나.”

  참고로 만화책은 세종대왕 두 분이 계셔야 구입할 수 있었다. 너무하잖아!

  “그냥 페이퍼북이라는 것으로 구입하는 것이 낫지 않아?”
  “세종대왕 한 분이 있으면 구입할 수 있지만 오래 보관하려면 좀 곤란하니까.”
  “그렇구나.”

  다행히도 월급으로 따지자면 고작해봐야 400만원(2009년 기준 80만원)을 버는 것이 고작인 서민들에게는 약간 허리띠를 조여매면 살 수 있는 페이퍼북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봐야 물가에 비해서는 월급이 오르지 않아서 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만.

  “많이 사시네요.”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요.”
  “결제는 카드로 하시겠습니까?”
  “현금을 들고 다닐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갑 속에는 김구선생님이 스무분이 계십니다.
  스스로를 바보라고 칭하게 된 것에 슬쩍 한숨을 쉬면서 카드를 건넨다. 내가 내민 카드를 본 점원의 눈이 한순간 반짝였지만 내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누나를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쉰다. 당신, 속이 너무 빤히 들여다보여.

  “…….”
  “…….”

  어쨌거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서민경제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 것 같다. 서민층에서 돈 좀 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가 된 상황이니까.
  그 때문인지 돈이 많아보이는 사람들의 지갑을 슬쩍하는 범죄자들이 늘어나는 상황. 이런 경제사정을 반영하듯 대학진학률이 89%에 달하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대학진학률이 20%까지 떨어진 상황이니까 사회계층이 이대로 굳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사인해주세요.”
  “네.”

  그런 어찌되어도 좋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책 꾸러미를 챙기고는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다.

  “사람들이 또 우리만 바라보는데?”
  “누나가 미인이라서 그래요.”

  어쩐지 가난해 보이는 홀쭉한 대학생들이 우리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것을 억지로 외면하면서 차를 출발시켰다. 한 때는 살찌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살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상황. 2030년의 서울은 그렇게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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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꼭 이렇게 되지는 않을 거지만……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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