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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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367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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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24話 2030서울 3, 전생의 인연.


  61.
  여러 가지 의미로 셋째 날을 기분좋게 시작한다. 일단은 구입할 것은 대강 다 구입했고 앞으로 배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이끌어나갈 계획을 세우는 촉매역할도 완수했고 넷째 누나의 귀여운 모습도 보게 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집사, 큐브는 미소를 지으면서 스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나저나 이런 별장을 혼자서 관리하다니 이 사람의 정체는 대체 뭘까.

  “으음, 모르겠네.”

  어쨌든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물론 어디에 있는지 기척은 다 느낄 수 있으니까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것 같긴 한데 말이지. 보통 사람은 아니겠지?

  “누나 일어나.”
  “……아침이야?”

  그런 의문은 뒤로하고 누나를 깨웠다. 아직 잠이 덜 깬 것인지 멍하니 나를 보다가 흘러내리는 옷에 기겁을 하고는 이불을 끌어당긴다.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하긴 아침에 이렇게 마주보려니 그럴지도.
  하지만 이런 모습도 귀여워!

  “꺄악! 뭐, 뭐하는 거야!”
  “아침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귀여운 부인을 사랑하고 싶은 돌쇠같은 남편의 불끈거리는 마음이랄까요.”

  이미 방어구는 해제된 상태. 물론 해제된 것은 어젯밤이다. 기겁을 한 그녀를 가볍게 제압.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슴을 비비고 돌리면서 나는 히죽, 웃는다.

  “바, 바보!”
  “바보라도 좋아! 어흥!”
  “꺄악!”

  투정을 부리는 그녀가 귀엽다. 본능에 이길 수 없어! 이성이 ‘나의 라이프는 제로야. 그만둬!’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아침부터 나는 짐승이 되었다(……)
.
.
  “다녀오십시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느지막한 아침을 먹고 사흘째로 접어든 일정에서 예정된 대로 학여울을 향해 출발한다. 일단 필요한 것이 있으면 협회 쪽에서 알아서 구해줄 것이기 때문에 빨리갈 필요는 없다고 할까. 느긋하게 잔뜩 삐진 누나를 달래면서 학여울에 도착한다.

  “가장행렬?”
  “가장행렬이라고 해도 상관없겠네. 자신이 즐기던 게임이나 소설, 만화에 나오는 인물로 변장해서 노는 행사이기도 하니까 여기는.”

  아침부터 잔뜩 투정을 부리던 누나는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화가 났던 것도 잊은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오기에 바빴다. 모든 사람이 일단은 평등하게 살고 있다는 세계에서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짧은 메이드복의 여자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고 옷을 입은 것인지 반쯤 벗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여성 코스플레이어들을 보고 난감해하면서 누나도 나름대로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지 사람들이 우리를 계속 바라보는 것 같은데……. 외국인이 익숙치 않은 것도 아닐텐데 다들 왜 바라보는 걸까?

  “똑같은 캐릭터가 많네.”
  “저 캐릭터가 나오는 게 지금 꽤 인기가 있나보네.”
  “그런데 왜 남자가 여자로 분장하고 있는 거야?”
  “신경쓰지마. 그냥 사람이 없어서 그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도 잠시 눈썰미가 좋은 누나는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해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자가 여자로 분장하고 있거나 하는 건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크게 신경쓰는 눈치는 아니다. 바바리맨처럼 사람들을 놀래키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인형도 많고……이건 병기지?”
  “응, 그렇네.”
  “진심으로 휘두르면 부서질 무기를 가진 사람도 많고…….”
  “진짜 무기를 들고 다니면 위험하니까.”
  “평화롭구나. 여기는.”
  “꼭 평화롭지는 않아. 버튼 하나 누르면 큰일이 나는 곳이니까. 여기는.”

  확실히 누나의 말대로 이곳은 평화롭다. 마물이라거나 몬스터들이라거나 하는 것도 없으니까. 마왕을 코스플레이하고 있다거나 마족으로 코스플레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좋아라고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누나는 살풋 미소를 짓는다. 아무래도 진짜 마족은 아니니까 따로 거부감은 없을 것이고 진짜 마족이 나타날리도 없으니 안심하고 있는 것이겠지. 나타나더라도 손도 대지 않고 제압할 수도 있고.

  “결국 인간만이 남으면 서로 싸우게 되나보구나.”
  “애초에 몇 종류의 유인원들의 각축전에서 살아남은게 현생인류이니까. 아무래도 제일 전투적인 혈통이 살아남은 것이겠지.”

  그런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를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거나 회지를 판매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나저나 잘 모르겠는데……뭐가 뭔지. 일단 약 20여년 정도는 이쪽, 서브컬쳐계에 대한 지식이 없는 탓에 그냥 재미있는 분장을 하고 있거나 옷을 입고 있으면 코스플레이어라고 생각하면서 구경한다. 그렇게 구경을 하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 누나는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평범한 사람을 모델로 사진을 찍고 있는 거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어딜봐도 애니나 게임의 등장인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 고개를 갸웃. 뭐, 저런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캐릭터가 있었던 모양이다. 일단 외모는 그럭저럭 괜찮기는 한데 말이지. 아니,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빼어난 외모라고 생각할 정도일까. 저 정도라면.

  “아, 사진 찍어도 괜찮겠습니까?”

  그런데 웬일인지 나에게도 사진을 찍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으니 허락할까.

  “네? 아, 상관은 없지만.”
  “감사합니다! 일단 자연스럽게 서 주세요!”

  그리고 웅성거리면서 주위를 빙 둘러싸는 사람들……. 대체 뭐야 이건? 고개를 갸웃하면서 일단 포즈를 취해본다.

  “턱을 괴고 서 있는 자세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턱을 괸 손이 아닌 다른 손은 배를 살짝 가리는 것처럼……네에, 고맙습니다.”

  찰칵, 찰칵.
  대체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신나게 사진을 찍어대고 나와 누나는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모델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저 뒤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은 또 뭐야?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 정장차림이라니…….

  “외국인인가?”
  “잠깐 들어왔을지도 모르겠지만 연예인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연예기획사쪽 사람들인가?

  “그 옆의 여자와는 무슨 관계일까? 일단 저 여자 분에게도 제의를 해보도록 하지.”
  “지금 여자 정원은 꽉 찼는데요?”
  “지금 있던 애들 중에 좀 아니다 싶은 애는 접대용으로 돌려!”
  “알겠습니다!”

  찰칵. 찰칵.
  음파를 감지해서 그들의 대화를 들은 결과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여기에서 길거리 섭외를 하고 있는 거냐? 나와 마찬가지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살짝 얼굴을 굳히는 누나의 얼굴을 보니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번에는…….”
  “아, 죄송합니다. 갈 곳이 있어서요.”
  “아……네. 알겠습니다.”

  웅성웅성 모여든 사람들을 방패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사진 좀 더 찍자고 말하는 사람들의 외침에는 노코멘트로 일관. 코스프레를 하고 있던 사람들도 사진기를 챙겨서 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모습이 더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부채질했다.

  “잠시만요!”
  “사진 더 안 찍습니다!”
  “그게 아니라!”
  “길거리섭외는 받지 않습니다!”

  진드기처럼 따라오는 연예기획사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말도 못꺼내게 거부를 하고서는 동인게임 판매장으로 들어섰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쫓아오던 것을 멈추고는 발길을 돌린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잡고 있던 누나의 손을 꽉 한 번 쥐어주었다.

  “접대용이라니…….”
  “참아. 저 녀석들이 어느 회사 소속인지 파악해서 협회 측에서 알아서 해치워버리게 할테니까.”
  “그래.”

  온 몸으로 나 화났소!라고 외치는 누나가 화를 눌러참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어딘지 모르게 어둑한 포스가 느껴지는 장소로 와버린 것일까. 오지도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퀭한 눈에 빛을 내면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 움찔한다. 걸려있는 그림들이 일단 모자이크가 필요할 정도의 수위들인데다가 정상적이다 싶으면 어딘지 모르게 몇날 며칠은 밤을 새운 것 같은 좀비형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음, 아무래도 잘못 들어왔나?”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하자 퀭한 눈에서 빛나던 생기라는 것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이 느껴진다. 설마하니 안 팔리는 건가.

  “아, 저기 가볼까?”
  “음?”

  그들의 눈빛에 애절함이 묻어나기 시작하자 나는 버티지 못하고 SF풍의 일러스트를 걸어두고 있던 부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일단 우주괴수랑 검을 든 사람들이 싸우는 내용을 게임으로 만든 건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부스에 놓여진 컴퓨터에서 재생되는 플레이화면을 바라본다.

  “호오?”

  동인치고는 꽤나 자유로워 보이는 움직임들이었다. 게다가 부스 앞에 세워둔 광고를 보면 에피소드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각 캐릭터에 익숙해지게 한 뒤에 마음에 드는 캐릭터로 각 전장을 오고가며 플레이하게 되어 있다고 친절하게 쓰여 있었다. 게다가 괴수들에게 침식된 성계를 오래 방치할 경우에는 탈환하더라도 다시는 그 성계를 쓸 수 없게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설정까지 잘 짜낸 것 같았다.

  “일단은 운동신경이 좋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제공되는 기술입력식 진행도 있고 정확하게 모션을 취하는 식으로……닌텐도 Wii인가?”

  어디선가 많이 본 설정이기는 하지만 꽤 짜임새 있는 세계관을 묘사한 게임이었다. 동인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프로페셔널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저, 이 게임 구입하고 싶은데요.”
  “어서오슈.”

  게임 제작에는 프로페셔널인데 판매쪽에서는 굉장히 삐딱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째 부스에 앉아있는 사람이…….

  “꼽냐?”

  시나리오 모드에서 최악의 보스몹과 비슷하게 생겼다. 말하자면 금발로리. 하지만 눈을 보면 콘텍트렌즈를 한 것 같고 머리는 가발인 것 같으니까 나름대로 비슷하게 꾸며서 나왔다고 보면 되겠지.

  “야! 손님이 왔으면 어떻게든 설명해서 팔아보려고 해야 할 거 아냐!”
  “귀찮아.”

  어딘가의 나태의 신을 닮은 것인지 아예 드러누워서는 꼼짝도 하지 않는 금발로리 코스플레이어. 그런 그녀의 모습에 혀를 차면서 안경을 낀 여자가 ‘제발 사주세요.’라는 포스를 절실히 풍겨기기 시작했다. 일단 이 여자도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 중에서 컨트롤만 잘한다면 최강의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안경을 낀 여기사를 말이다. 일단 싱크로율은 꽤 높은데?

  “어서오세요.”

  일단 인사를 하는 품도 꽤나 예의가 바르다.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 천성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판매원으로서는 합격이려나.

  “사랑을 아는 남자 마X로가 노래합…….”
  “아, 김XX씨 음치로 노래하셔야 해요.”
  “뭐, 그러지.”

  그녀의 인사를 받으며 한 번 게임을 플레이해보고 있는데 왼쪽눈에 안대를 한 남자가, 이 사람은 싱크로율이 굉장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설마 그 개그캐릭터 코스프레인가. 게다가 캐릭터 설정도 있는 거냐. 꽤나 세세한 곳까지 신경을 쓴 것 같은 모습이다.

  “살게요.”
  “아……네.”

  일단 음치가 설정이라니까 노래를 듣기 전에 재빨리 구매의사를 밝혀버렸다. 그와 동시에 노래방기기에서 손을 떼는 남자. 아무래도 상술에 휘말린 것 같기는 하지만 상관없다. 음치의 노래를 들어서는 태교에 악영향만 미칠 뿐이다!

  “1장에 40만원입니다.”

  비싸!

  “200장 한정이거든요. 일단 저 사람이 코스플레이하고 있는 캐릭터가 음반을 판 개수랑 맞추어서 발매를 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설정에 충실하려고 하는 바보들’이라는 느낌이랄까, 알 수 없는 오오라를 물씬 풍기면서 자신들이 책정한 가격이 타당한 것이라고 설득하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갑에서 김구 선생님 네 분을 소환한다. 그리고 돈을 받아들고 패키지를 건네준 그녀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감사합니다! 컨트롤러는 별도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어이…….”

  상술이 너무 지나치잖아!

  “저희가 개발한 컨트롤러를 쓰지 않으신다면 기동을 시킬 수 없는 관계로…….”
  “네, 네에. 얼마입니까?”
  “100만원입니다.”

  생각보다는 싸구나.

  “카드 됩니까?”
  “현금만 받습니다.”

  어쩔 수 없지.
  지갑 속에 든 김구 선생님을 모두 소환하여 값을 치르고는 돌아나왔다. 아니, 돌아나오려고 했다.

  “시간 많으시면 플레이 계속해주시면 안될까요?”

  안경을 낀 여자가 나를 붙잡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부스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눈을 반짝이면서 애처롭게 바라보는 중. 사람이 많은 곳에는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그 제안을 승낙한다. 일단 저 편에서 이쪽을 계속해서 노리고 있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려면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니까 말이지.

  “난이도는…….”

  컨트롤러를 이용해서 게임을 계속해본다. 일단 캐릭터는 안경을 쓴 여기사. 체력과 스테미나만 잘 관리하면 한 번에 전장을 휩쓰는 것도 가능했다. 괴수들을 벨 때마다 높은 확률로 상태이상 - 관절이 빠졌습니다 - 가 걸리는 것이 조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저거……난이도 Easy냐?”
  “Very Hard거든요?”
  “어째 쉽네?”
  “그러게요.”

  내가 플레이하는 화면을 본 누나는 재미있겠다 싶었던지 마찬가지로 컨트롤러를 쥐고는 야구방망이를 등에 매고 있는 금발 바보털 꼬마를 고른다. 약체에 속하는 녀석이었지만 누나가 컨트롤을 시작하자 내 백업에 힘입어 괴수들을 몰살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일정한 검형을 반복시키면서 스킬을 등록시키고 계속해서 플레이를 반복한다. 자신만의 스킬 등록이라는 시스템도 좋았다.

  “저 캐릭터 말야. 저렇게 센 녀석이었던가?”
  “아뇨.”
  “시나리오에서는 꽤 중요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저건 좀…….”

  사뿐사뿐 땀도 흘리지 않고 플레이를 계속하는 우리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턱관절이 한도 이상으로 늘어났다. 다시 말하면 턱이 빠졌다는 이야기.

  “저거……Very Easy에서도 사람들이 무릎을 꿇는다는 극악난이도의 게임 아니었냐?”
  “저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게다가 다른 게임들을 둘러보다가 우리가 플레이하는 화면을 본 사람들이 몰려들어서는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거 또 시선을 끄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빔공격을 해오는 괴수의 탄막을 보고는 일부러 전사시켜버린다. 그리고 누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내 캐릭터를 전사시킨 위업을 달성한 그 괴수를 베고는 그 뒤에서 치고 나온 괴수에게 전사.

  “아, 아깝네.”
  “저 사람들 뉴타입인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죽어버렸잖아.”

  그들이 놀라서 턱이야 빠지거나 말거나, 나와 누나는 상쾌한 얼굴로 그 자리를 빠져나가갔다. 사람들이 달라붙기 전에 빠져나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
.
  훗날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잘 팔리기 시작한 그 게임을 구입해 돌아와서는 ‘왜 네가 이 게임에 히든캐릭터로 나와 있는 거냐?’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인간들, 나에게 묻지도 않고 히든 캐릭터를 만들어버리다니.

  “그렇잖아도 그 사람들 저작권법에 걸려서 벌금 좀 물어낼 뻔했다더구나. 원작 작가가 허용해주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그 친구들 벌금으로 원금까지 다 까먹었을 걸?”

  어쩐지 배경설정이 너무 충실하더라.

  62.
  훗날의 일은 훗날의 일이고 남몰래 우리를 쫓기 시작한 연예기획사 사람들을 피해서 움직이는 것이 급했던 그 때에는 예비인원까지 동원한 것인지 곳곳에서 우리를 따라붙는 차량들에 짜증이 났었다. 사고 한 번 칠까 생각할 정도로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람들의 모습에 사진을 찍게 해준 것이 후회되었다고나 할까.

  [사고치셨더군요.]
  “후회하고 있습니다.”
  [뭐, 상관은 없습니다. 일단 한국국적을 취득하러 들어오신 분이라고 서류조작은 끝내놓았으니까요. 핸드폰 필요하십니까?]
  “귀찮아질 것 같아서 사양하겠습니다.”

  웹상에 뜬 우리 사진들을 보면서 낙담하고 있으려니 협회의 실세라고 불리우고 있는 권강한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단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으니 상관은 없어보였지만 우리는 꽤나 난감했다. 일단 이 별장은 들키지 않은 것 같지만 이 얼굴을 하고 돌아다니면 필시 이 별장까지 추적하려고 할 것이다. 그럼 곤란하다고 할까나.

  “폴리모프를 하고 싶으시더라도 참아주십시오.”
  “네에. 알고 있어요.”

  그렇잖아도 라면을 구입하면서 구성성분을 바꾸면서 발출된 힘 때문에 서양 쪽의 비밀결사들이 한국을 주목하면서 속속 입국하고 있는 상황이라 폴리모프를 하는 것은 제외. 그렇게 된다면 일단 차는 바꾸고 고전적인 변장을 하는 수밖에 없다.

  “누나……못난이 화장 해볼까?”
  “화장하기 싫은데.”

  4천만 한국 여성들이 들으면 땅을 치고 통곡할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누나. 그러고보면 누이들이 화장을 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일단 카틀레야 같은 경우에는 수행을 하면서 거칠어진 피부를 관리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모양이었지만.

  “남은 이틀 동안 쫓기는 건 좀 그렇잖아?”
  “응…….”

  어쨌거나 화장을 해봐야 별 소용이 없는 외모를 화장으로 가리고 나서 큐브에게 부탁해 만든 위조신분증을, 그래봐야 죽은 사람을 되살린 것 뿐이니까, 받아 챙기고는 다시 외출에 나선다. 남자 얼굴에 화장을 하면 이상할테니 나 이상한 사람이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선글라스에 마스크, 모자라는 조합으로 변장한 상황. 일단 검은 가발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어제부터 웹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나의 외모를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간단한 인식장애 마법이라도 걸어둘까.”

  나에게는 간단하다고는 하지만 이것도 국내에 들어와 있는 서양 측의 결사 쪽에서 발견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니 그냥 두어야 할까.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능하나도 함부로 쓸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서양 녀석들, 저희들 힘이 부족하니 국가의 안위를 걸고 협박을 한다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확 엎어버릴 수도 없고.”

  서양 쪽은 동양과는 달리 정부와 이런 이능력자들의 결사가 깊은 유대관계에 있으니까 말이지.

  “네……좋은 하루 되십시오.”

  도심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다시 소태를 씹은 것 같은 공무원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틀 동안 좀 날뛸까 하던 마음을 다독인다. 아아, 어제 실수를 하는 바람에……. 심마다.

  ――삐리릭.

  그리고 심마라고 생각하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때, 나는 전화를 받았고 순식간에 심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
  “서XX고객님이시죠? 여기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은행에 통장을 개설했다. 그리고 이고깽 연합을 통해 서양 쪽의 마법결사들에게 팔아버린 마법시약들의 대금을 거기에 입금한다. 아마도 학교 하나를 세울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겠지만 마음먹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한다면 덧없이 사라질 돈이다. 적당한 사람에게 맡겨서 몇 사람 정도는 지원해줄 수 있게 할 생각이다. 말하자면 장학재단.

  “책은 사줄 수 있겠네. 일 년에 100여명이 한계이겠지만.”

  내가 죽어버린 뒤로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아달라고 협회측에 부탁했더니 오늘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고 있던 중에서야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동생만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내가 이 통장을 줘버리면 고생하지 않고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겠지만 스스로 쟁취하지 않은 재산이니 문제가 되겠지.

  [네. 전화 받았습니다.]
  “부탁드릴 것이 또 생겼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마음껏 부탁하세요.]

  나에게는 조카들이 되는 아이들을 내가 설립하는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해줄 것과 재단을 운영할 참모진을 수소문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이곳으로 나와서 며칠 간 넋이라도 나간 듯 놀아버렸지만 이제야 전생의 앙금을 다 풀어버릴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할 것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사람을 찾아보는 것과 부모님 유해를 뿌린 곳을 알아내는 건가.”

  이것으로 이 세계에 남은 미련은 말끔히 씻어내는 것일까.

  “그거만 끝나면 다시 진으로 돌아오는 거지?”
  “아니.”

  지금의 나를 누나는 불안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곳으로 마음이 쏠리지 않을까 하는……하긴 그랬으니 누이들이 넷째 누나를 나에게 붙여두었겠지. 그리고 내 말에 누나는 철렁하고 가슴이 내려앉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의 나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닌 우리 가족들의 진이니까. 17년의 시간 동안, 그리고 지금도 나는 진이야. 이건 그냥 미련이야.”
  “그래.”

  이운혜님이 무림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아버지가 이 세계의 물건에 집착하는 것처럼. 나 역시 이 세계에 미련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미련을 떨쳐내기 위해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누나의 손을 꽉 잡았다. 떨리던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하게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난 남편 노릇을 잘못하고 있나봐. 매번 이렇게 의심을 받을 정도면.”
  “아무도 널 잡을 수 없으니까.”
  “그렇네. 기분 좋은 구속이야. 그건. 그런 사람들에게서 도망간다면 난 정말 나쁜 사람이 될 거니까.”

  갑작스런 전개였지만, 갑작스런 불화를 닮은 침묵이었지만 불안해하면서도 누나는 나에게 희망을 걸어주었다. 다른 누이들도 그랬겠지. 그래서 나는 말한다.

  “사랑합니다.”
  “응.”

  결국 누나는 울어버렸다. 울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씁쓸함은 누나의 미소를 보면서 풀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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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서 묘사된 게임은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네이버 웹툰의 나이트런KnightRun의 설정을 게임제작자들이 몰래 가져다 쓴 것이라고 설정해놓고 있습니다. 다 들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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