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德厚の野望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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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432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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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한 남령산맥을 경계로 중원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 비껴난 남방. 수많은 이주민들의 역사를 켜켜이 쌓아온 지역의 중심지인 광주에 교역을 위한 거선이 정박하였다. 물품을 하역하기 전에 먼저 배편을 탄 승객들이 신속히 내렸다. 그 중에는 선남선녀로 보이는 가족과 평범한 용모의 소녀 하나도 섞여 있었다.

기연이라는 로또를 통해 초절정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딸내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내실로는 우문세가와 연수를 위해서 남경부를 나온 덕후 일행이었다. 영파에서 탑승하여 안전과 신속을 위해 연안해를 타고 오다가 광주에 도달한 것이다.

복건 일성과 광동 동부를 장악한 상관 세가가 몰락하고, 이들이 차지한 이권과 사업체는 천하문과 대상련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광주를 기점으로 서부는 우문세가가 차지하였기 때문에 양 파의 경계 지대이자 인구가 밀접한 광주가 덕후 일행에게 알맞은 도착지였던 것이다.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석판으로 깔린 대도를 거닐면서 덕후 일행은 주변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강남과 다른 이질적인 복장을 한 이들이 오가는 것이다. 한족 외에 장족과 이족, 묘족 뿐만 아니라 간혹은 대만의 고산족과 운남의 태족도 눈에 띄었다.

“어? 홍모귀(서양인)이다!”

마라가 지나가는 거한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자, 덕후가 가만히 웃으며 소녀의 손가락을 우둑! 꺾었다.

“아야야야!”
“원수가 아닌 상대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실례라고 하지 않았니?”
“아, 아파! 알았어요! 신기해서 그랬어요!”
“설령 원수라 해도 죽인 다음에 해야지.”
“어? 왜요?”
“그래야 손가락질에 관대해지거든.”
“이봐요!”

덕후의 가르침에 부인으로 꾸미던 여자, 소월하가 딴지를 걸었다. 다행히 홍모귀는 이쪽의 소란을 보지 않고 지나쳤다. 마라가 반대편으로 꺾인 손가락을 한 손으로 쥐면서 호호, 부는 동안 덕후는 허리를 펴고 주변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정확히는 간판들을 훑어보고 있다.

“맛집이 이 근방이라고 했는데...”

배편에서 추천받은 차루茶樓를 찾는 것이다. 그때 마라가 덕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빠, 아빠.”
“으음? 드디어 죽일 상대를 찾았니?”
“그건 아니고!”

마라가 궁금해 한 것은 그녀가 터전으로 삼았던 소주와 남경부와 다른 목조 건축물 때문이었다. 큰 기둥을 땅에 박고 그 위에 집을 지어 마치 이층집처럼 보이는 구조였다. 기와를 얹은 지붕 위에는 삼면으로 된 난간이 있었는데 안력을 돋워 자세히 보면 각가지 독특한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 위에는 초가로 지은 처마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산간 지방의 묘족이 저런 식으로 집을 짓는다는 것을 아는 덕후는 약간 심드렁하게 설명해주었다.

“여긴 고온다습해서 해충이나 뱀을 피하기 위해서란다. 어차피 지겹도록 볼 것이고 나중에 객가토루도 보게 될 테니 시간 나면 구경하자구나. 지금은 배부터 채워야지.”

덕후는 마침 지나가는 짧은 상하의를 입은 남자에게 소녀에게 하던 말과 다른 언어로 길을 물었고, 지나가던 단삼남자는 한족 복장의 차림 덕후가 자신들의 언어로 하는 것을 희한한 눈으로 보다가 어디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덕후가 감사의 인사를 하자 남자는 씩 웃으며 그대로 지나쳤다.

“이 근방에 꽤 알려진 곳이군.”
“아빠, 저 사람은 손가락질 했는데 괜찮아?”
“고산족은 그래도 돼. 해남도에 살아서 대륙과 양식이 다르거든.”
“틀려요! 부용아, 저건 사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방위를 가리킨 것이라 문제 되지 않아요.”

종족은 맞지만 어긋난 인식을 태연히 발설하는 것을 보니 소월하가 다시 딴지를 걸었다. 강제로 동행되어 가능한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돌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덕후의 기행으로 저도 모르게 딴지거는 역이 되었다. 반복되다 보니 덕후가 일부러 시도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로서는 주 부용이 덕후 2호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반 각 뒤, 덕후 일행은 고산족 남자가 알려준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점심 직전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고, 쉽게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곳 말로는 얌차(음차:飮茶)라고 부르는 딤섬(점심:點心)이라는 식사가 유명했는데, 현지인들에게는 아침점심을 차와 곁들어 국수와 죽을 비롯한 다양한 간식거리를 즐겨 먹을 수 있는 식생활 문화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와 젓가락을 들 무렵에, 식당에는 인파들이 식사를 위해 삼삼오오 밀려왔다. 한적한 공간은 곧 사람 체취가 강하게 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변했다. 뜨거운 차를 연거푸 마시면서 이마의 땀을 씻은 덕후가 문득 중얼거렸다.

“맛도 보고 경치도 있고 사람 구경도 하니 여행의 즐거움이로다...”
“아빠, 여기서 여산까지는 얼마나 걸려?”
“안내인을 얼마나 잘 구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지. 지도를 보고 가도 되지만, 여긴 문물이 중원과 많이 상이해서 낭패를 당할 수도 있거든.”

왕부를 방문하거나 관청을 통해서만 가는 것이라면 굳이 안내인을 찾을 필요는 없지만, 우문 세가와 접촉이나 여산 탐지에는 아무래도 토박이가 있는 편이 좋았다. 마라가 떼를 쓰듯 칭얼거렸다.
“아빠 명패면 어딜 가도 짱이잖아?”
“예로부터 이곳은 ‘산은 높고 황제는 멀다高山皇帝遠’ 라고 했어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죠.”

소월하가 달랬다. 원래부터 이족들의 땅이었고, 중원의 전란이 터질 때마다 험한 남령을 넘어 온 한족들이 터전을 잡은 만큼 상이한 문화를 가졌고, 반골 기질이 적지 않아 요주의 대상 취급 받는 곳이었다.

“여정은 나와 작은 엄마가 해결할 문제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렴. 그런데 여산에 묻혔다던 은거기인은 뭐하는 사람이니?”
“그걸 이제 물어봐?”

마라가 어이없다는 듯 반문한다. 애당초 물어보지 않으니 이미 알고 있던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마라가 들려준 사람의 이야기로는 무림야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라는 선입견도 한 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후식거리로 이야기를 원하는 덕후의 표정은 포만감이 전부였다.

“아빠는 무림인이 아니잖니.”
“풋, 잘도 그러겠다? 휴, 어쩔 수 없지. 무지한 아빠를 일깨워주는 것도 딸의 도리....아팟!”

덕후가 스윽 손을 내밀더니 이마 정중앙에 꿀밤을 딱! 먹였다. 눈을 감으면서 짐짓 으스대던 마라는 이마를 싹싹 문지르면서 항변하고자 했다. 그러나 덕후의 꿀밤이 콧등을 날릴 듯한 부분에 위치하자 마라는 헤헤 웃었다. 소월하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위기를 만나면 그게 진짜든 가짜든 눈에 띄게 비굴해지는 것까지 덕후의 성격에 물들어가는 것 같다.

“내가 찾으려는 기연은...”

마라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송말원초에 대마두 혹은 마중협이라고 불리는 무림인이 있었다. 집단난교와 인신공양을 주요 의식으로 삼는 혈교 출신으로, 자신이 속한 교단을 직접 궤멸시키고 인간으로 익힐 수 없다는 희대의 마공을 성취한 천재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갓 무림 출도 할 때부터 탈마의 경지에 이르렀고, 종국에는 정마를 초월하여 생사경의 경지를 이루었다 한다.

원래는 태생 그 자체로 천하를 피에 잠기게 할 대마두 이었으나, 그의 행보가 난세의 흐름과  엇갈려 마중협이라는 칭호도 얻게 되고, 결국에는 목적을 달성하고는 그에게 몰리던 명성과 권세를 쿨하게 등지고 은거했다고 하는데, 그 장소가 여산 어딘가라고 했다.

“하필 그런 대마두이지?”

같은 마魔라 이끌린 건가, 하는 물음이다. 마라는 고개를 끄떡이다가 좌우로 저었다.

“탄생부터 지워진 업을 자기 손으로 철저히 박살내는 게 맘에 들어서. 그리고 출도한 계기가 어느 남매의 억울한 죽음 때문이래. 은거한 것도 그 남매의 명복을 직접 빌어주기 위해서라고 하고.”

그런 초지일관初志一貫도 맘에 들었어, 라고 덧붙이는 마라를 덕후는 묘한 눈으로 바다가 씩 웃었다. 

“그렇다고 네가 한방 투기를 하는 것에는 변함없어.”
“누가 뭐래?”
“내 딸이 쪽박을 치는 것은 별로 보고 싶지 않거든.”
“아빠 날 그렇게나..........라고 감동할 줄 알았어? 마치 망하는 게 당연하다는 투잖아!”

감동어린 표정을 짓다가 돌변한 마라는 베에~ 하고 혀를 힘껏 내밀었다. 속이야 어쨌든 덕후는 아직 철이 덜 든 아빠 상을, 마라는 애교를 부리는 딸이라 문득 지켜보는 사람에게 절로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게 만들었다. 제 3자적 입장에서 사이비 부녀뿐만 아니라 주변 동향도 신경쓰는 소월하는 암암리에 탄식했다.

‘다들 속고 있군....’

그렇게 하루는 여독을 풀고, 덕후와 마라가 광주 시전 바닥을 구경하는 동안, 소월하는 적합한 안내인을 찾기 위해서 천하문 지부에 연통을 넣었다.

“계림 쪽으로 여러 번 가본 표국이 있으면 적당히 동행해도 상관없네.”

천하문 살림을 맡아온 터라 비용을 아끼고자 했지만, 지부장은 소월하로부터 적당히 연막을 가미한 추가 목적을 전해 듣고는 난색을 표했다.

“여긴 중원처럼 표국이 많지 않습니다. 그야 있긴 하지만, 계림 같은 대도시라든가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요, 말씀대로 딴 데로 새시겠다면 비용도 더 비싸지죠. 차라리 부락 단위로 대행 해주는 곳을 찾는 게 더 저렴할 것입니다.”
“왜 그런가?”
“우문 세가 때문이죠.”

이족들을 아우르며 성립한 우문 세가는 무력을 육성하고 따르는 가신들의 생계를 다독이는 데 이권이 필요했다. 다행히 지리적으로 물산이 풍부한 남방에 있던 터라 교역을 활성화 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이족 연합이라는 특징을 최대한 살려 기존의 상계와 다른 독자적인 유통망을 구축했다. 원래 상인들이 부락들을 번갈아 방문하여 교섭하는 식으로 물물 교환을 하여 차익을 구했다면, 우문 세가는 장족, 묘족, 태족, 고산족들에게 대표를 뽑아 교섭권을 독과점 하도록 하고, 장정들로 하여금 무공을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운송업을 대행하도록 했다. 이들이 우문세가의 장로이거나 측근 인사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굴러온 돌에 박힌 돌 신세로 쫓겨나게 된 기존의 상인들은 반발했지만, 상전을 두 번이나 죽인 독심을 지닌 우문 륭광은 뒤로는 관부와 인근 왕부에 막대한 뇌물과 향응으로 미리 손을 쓰고, 앞으로는 무력과 함께 여러 방파들과 상인들의 내분을 부추겨 철저하게 몰락시켜버렸다. 막바지에 몰린 광동 상인과 유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문 세가의 질서에 편입되거나, 밀무역을 업으로 삼는 상관세가에 묻어가거나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부장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소월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지시를 변경했다. 상관 세가의 영역을 접수할 때 문면으로 지나치듯 접했던 것이지만, 현장에서 직접 겪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달랐다. 

“그럼 그렇게 해주게.”

적합한 안내인이 덕후 네가 머물던 차루로 온 것은 다음 날 오후였다. 장금이라는 독특한 문양을 넣은 옷감으로 지어입고, 허리에는 짧은 곡도를 찬 30대 장족 사내였다. 자신을 장우라고 설명한 사내는 덕후 일행을 쓸어보더니 유창한 말투로 물었다.

“행선지가 계림입니까?”
“계림도 좋지만 그 일대도 안내해주었으면 하오.”
“계림까지는 직접 안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대를 보고자하면 따로 안내인을 골라드리겠습니다. 그럴 경우 비용은 따로 입니다.”
“비용은 내자가 할 것이오. 이 방면에서는 나보다 전문가라오..”

덕후는 소월하를 내세웠다. 장족 사내는 여자가 나서는 것에 흠칫했으나 덕후의 설명을 듣고는 방심하지 않겠다는 안색으로 협상에 나섰다. 소월하는 덕후를 한 차례 흘겨보고는 협상에 들어갔다. 협상은 약 일각 정도 끌었다. 기존에 안내 비용은 건들지 않고, 편의사항 요구에 대한 비용으로 했기 때문이다. 지부장을 통해 현지 시세를 아는 소월하는 미리 준비한 문서를 꺼내 적당한 가격을 제시하였고, 장족 사내 역시 상대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다는 것을 알고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마무리로 수결을 작성하자 장족 사내는 내일 아침 일찍 서문으로 나오라는 통지를 하고는 나섰다.

협상 과정을 별 말 없이 보던 덕후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더 깎을 줄 알았는데....”
“너무 이득을 보고자하면 앙심을 남겨요. 안 그래도 뒤숭숭한 지대를 지나치는데, 너무 박하게 굴었다가는 유사시에 버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소월하는 공연히 짜증어린 투로 대꾸했다. 자신이 덕후의 기대에 부응을 하지 못해서인지, 아님 전문가라고 언질로, 기습할 기회를 놓쳐서인지 모를 일이었다. 소월하의 냉대에 덕후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둘 사이에 마라가 변죽 좋게 끼어들었다. 둘 사이의 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희생양은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에휴, 정말 은거기인의 거처만 아니었어도....’

이런 한탄이 뇌리를 스쳐갔지만, 마라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만큼 인간에 물들어간 탓이리라. 그 편이 세상을 살기 편할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인간이란, 마라 자신에게 있어서 여차하면 일용할 수 있는 식량이니까.

-탁.

마리의 머리 정수리를 덕후의 손이 거칠게 쓰다듬었다. 도와줬는데 보답이 이건가 싶어서 마라는 성난 눈길로 보았지만, 덕후의 평소와 다른 무기질적인 눈빛을 대하자 흠칫했다. 자신도 모르게 마성을 드러내는 바람에 염기를 흘린 모양이다.

마라의 염기를 곁에 있는 덕후가 억눌렀지만, 주변에 영향을 미쳤는지 식당에 들어서던 남자가 동행의 여자를 덮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말투로 미루어 부부인 것 같아서, 주변인도 민망하다고 뜯어 말리는 선에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사연을 아는 소월하는 마라를 미묘한 눈길로 바라보자 마라는 즉시 눈을 깔았다. 덕후가 즉결했다.

“도착할 때까지는 묵언이다. 가는 동안 구결을 계속 암송하도록 해.”

평소와 다르게 진지했으므로 입술을 삐죽이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쨍하니 햇살이 쏟아지는 다음 날, 밤새 청량해진 공기가 다시 달궈지기 전에 일행은 서둘러 약속 장소로 나아갔다. 안내인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3~40명 정도 장족 무리가 모여 있었고, 그들의 곁에는 짐을 실은 노새와 외발 수레들이 있는 까닭이다.

전날 본 장우라는 사내가 덕후 일행을 보더니 반겼다.

“점고가 끝나면 바로 출발할 겁니다. 빠뜨리고 온 것은 없지요?”
“물론이오.”
“가릴 것은 빠뜨렸군요. 여분이 있으니 그걸 쓰시길.”

장우는 근처에 있던 사내에게 장족어로 뭐라 지시를 내렸다. 짚과 천으로 만들어진 모자를 내오자 덕후 일행은 그것을 하나씩 받아 썼다. 이윽고 장우가 점고를 시작했고, 마무리 되었는지 청동북을 쳤다. 둔중하면서 맑은 소리가 울리자 장족 무리는 출발했다. 덕후 일행은 보표를 받는 처지라 무리의 가운데에 위치했다.

광주를 벗어나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굴곡진 도로를 따라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전진하자 이마와 코, 등허리에 땀이 송송 맺히기 시작했다. 남방의 기후에 익숙한 장족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비교적 북쪽에서 온 덕후 일행은 더위와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쉬었다 갑시다.”

하늘을 실눈으로 보며 시각을 재던 장우는 근처에 노송 서너 그루가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지시를 내렸다. 장족 무리들이 숙련된 동작으로 쉴 준비를 하는 동안, 덕후 일행은 궤짝에 앉아 땀을 훔치고 시원한 갈차 하나를 마셨다.

몸 보다 머리를 많이 쓰는 타입인 덕후와 소월하는 오후 여정을 위한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그늘에 대기 상태로 있었지만, 마라는 그새 기운 차렸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기에 사람들과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시도하거나 단단히 봉한 짐짝들을 이리저리 만지작 했다.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인지라 장족들도 별 달리 제지는 하지 않았다.

사람과 짐 사이를 뽈뽈 돌아다니다가 출발할 즈음에 마라가 다가와 덕후에게 남 모르게 나직이 속삭였다.

“아빠, 냄새가 좀 나는데?”
“호오?”
“저 짐의 셋에 하나가 화약인걸. 나머지중 반은 쇠 내음이 나고.”
“그래, 스파이 짓에 재미가 꽤 들린 모양이구나. 그보다 어제 아빠가 한 말 그새 까먹었지?”

마라는 아차! 하고 입을 가렸다.

“두 번 다시는 없다.”

정보를 제공해주었기에 덕후는 자비심 많은 아버지를 연기하며 용서하였다. 마라는 입을 가린 손을 풀면서 히죽 웃었다. 일행이 출발하자 덕후는 장우 곁에 붙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떡밥을 던졌다. 처음에는 무뚝뚝하던 장우도 덕후의 말재간에 차츰 경계를 풀었다.

“혹시 뇌주에 가보셨습니까?”
“뇌주? 한 번은 가봤는데...참 삭막한 곳죠.”
“그럴 것이오. 중앙에서 충군형을 내리거나 유배를 보낼 때 써먹는 곳이니 말이니까.”
“으음, 높으신 분들 사연은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아서.”

장우는 조정에 별로 관심 없어하는 눈치였다. 덕후는 슬쩍 방향을 바꿨다.

“그보다 뇌주 지명의 유래를 아오? 지명에는 유래가 있을 거 같은데 뇌주는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 없소만.”
“나도 그 현지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거기에 사는 뇌신은 무척 속이 좁아서 자기 뜻에 어긋나면 벼락을 친다하오. 그래서 여러 가지 금기가 있는데 황어, 돼지고기, 매화, 오얏을 절인 음식을 같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오. 듣기론 저 멀리 천산북로 쪽에 회족들은 돼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서요?”

자못 식견을 자랑하는 장우다.

“확실히 그런 금기가 있죠. 부패해지기 쉬우니까 잘못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수 있고, 그래서 율법으로 먹는 것을 금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뇌주 반도의 금기도 그런 까닭이겠군요.”
“금기라는 게 원래 만들어진 동기는 모르고 형식만 전해지는 경우가 왕왕 있지 않습니까.”
“하기는....벼락이 워낙 위험하니까 그런 기괴한 금기도 만들어졌겠지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도 경이롭지만, 지상에서 쏘아 올리는 것도 멋지지 않습니까?”
“지상에서?”

장우의 목소리에 호기심이 깃들어졌다. 덕후는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왜 있잖습니까. 명절이 되면 폭죽 쏘아 올리는 거.”
“아아, 그거 말이군요.”
“폭죽의 원료가 위험하고 아무래도 불이 붙기 쉬우니까 위험한데, 밤하늘에 수를 놓는 것을 보면 참...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많죠. 제 딸내미가 워낙 폭죽을 좋아해서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설쳐서, 좀 걱정 일 때가 많습니다.”

동조를 구하는 듯 푸념하자 장우도 마라 쪽을 보더니 그 마음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이해합니다.”
“휴...잘못하면 화상 입을 수도 있고, 그런 위험천만한 것을 직접 만져보겠다는 건지.”
“잘 타일러야죠.”
“말을 징글징글하게 안 듣습니다. 들어주지 않으면 말 한 마디도 안하겠다고 입을 조가비처럼 꾹 다무는 거 있죠?”

장우는 문득 기억을 뒤적였다. 소녀가 분명 농아는 아닌 것 같은데 말 한 마디 안하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다.

“차라리 대안 거리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덕후의 푸념에 장우는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답을 촉구하는 듯 하면 의심을 살 것 같아서 덕후는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이들의 여정이 광동을 넘어 광서로 진입했을 무렵이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마른 음식과 미지근한 차로 점심을 해결할 때, 장우가 덕후에게 다가왔다.
여정을 같이 하는 동안 덕후는 물질이든 정보든 장우의 환심을 잔뜩 사놓았기 때문에 형이라는 호칭을 붙을 만큼 친근해져 있었다.

“형장의 따님 말이오. 내게 수가 있을 것 같소만.”
“수라니요?”
“사실 모시는 아가씨가 있소. 유별나게 폭죽 놀이를 무척 좋아한다오.”
“특이한 취향을 지닌 분이군요. 장족의 숙녀들은 장금을 짜는 것이 취미라고 알고 있는데....”
“흠, 우리네 여자들이 손재주가 무척 뛰어나지요. 아무튼...부락 아이들을 마음대로 데리고 가서 종종 폭죽 놀이를 하는데 소리가 워낙 요란합니다.”
“요란하다니...뇌신이 내리치는 벼락처럼 말이오? 아님 대포처럼?”
“형장은 대포를 쏜 것을 본 적 있소?”
“물론이오. 벼락보다 더 요란한 것 같소.”
“그럼 그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고.....요란하게 볶아대는 것 같다고 할까? 놀이를 하고 나면 연기가 말도 못하게 많이 나고 일대가 벌집 쑤신 것 마냥 쑥대밭이 되곤 해서...”
“근심이 많으시겠군요”
“뭐, 가급적 인적이 드문 곳에서 하고, 피해가 생기면 보상은 해주니까 그러려니 하고 있소. 워낙 사연이 있는 아가씨라서 다들 쉬쉬하고 있지.”
“사연이라?”
“거기까진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고.....폭죽을 다루는 기교가 무척 뛰어나다고 하니까 잘만 이야기하면 따님도 아가씨한테 배울 게 있을지도 모르겠소.”
“이거,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모르겠군요.”

덕후가 크게 반기는 기색이자 장우는 한 시름을 놓은 표정이었다. 이야기를 잘 했다는 듯 한 표정이다. 운송을 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을 만나본 장우는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이들을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편벽증을 지닌 아가씨의 관심을 끌고 대인관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들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해서 충분히 관찰자들을 붙여둔다면 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우는 꿈에도 몰랐다. 덕후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이면에 담긴 뜻을.

 

 

명나라는 화약을 국가에서 엄격히 관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포병이 포술을 연습할 기회가 가뭄에 콩 나듯이 하는 바람에 실전에 무용지물인 사례가 나올 정도로요. 그런데 폭죽에도 화약이 들어가는 데 어떻게 관리하는 가? 의문이 생깁니다. 관아 부속에서 장인들이 취급 했던 건지....영상 매체에서는 상인들이 시전에 폭죽을 판매한 걸 본 것 같은데....잘 아시는 분은 제보 바랍니다.

뭐, 이러니 저러니해도 전 그냥 총포를 쓰는 히로인을 등장시키고 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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