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공황(恐皇) 4부 <신들의 황혼> Part 3_7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202회 작성일 17-02-10 10:55

본문

한편, 지상의 상황이 이렇게 되어 갈 동안, 슈발츠는 뭘하고 있었는가.

물론 그는 죽지 않았다. 다만 봉인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니가 그를 봉인하기 위해 만든 주문은 그의 목과 양 팔을 그녀 자신이 축수한 아다만틴 사슬로 봉쇄하고 나서야 완전하게 작동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주문의 마지막을 급하게 영창하느라 흐트러뜨린 통에, 원래 수니 여신이 관리하는 이차원 감옥에 수감되어야 할 슈발츠는 잠시 [신들의 무덤]이라 불리우는 아스트랄계로 날려갔다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전혀 다른 차원으로 날려 갔던 것이다. 그것도 참으로 얄궂게도, 어비스의 73층인 [어둠의 우물]이라는 차원이었다. 신들조차 꺼려하는 존재들을 가두어 둔 이 무저갱은 완전히 깜깜한 어둠에 잠긴 거대한 구멍 같은 곳이며 그 벽에 갇힌 수감자들은 영원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곳으로, 수니의 이차원 감옥과 비교한다면 같은 감옥이라는 공통점 밖에 없었다.

슈발츠는 그 무저갱의 바닥에 떨어져 한동안 정신을 잃고 있다가, 마침 순찰을 돌던 데몬로드 샥스의 부하들에게 발견되어 그의 작은 영지인 [대학살의 방]에 끌려갔다.

" 음...? "

정신을 차렸을 때, 슈발츠는 여전히 자신의 목과 왼손에 감겨 있는 아다만티움 사슬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감금된 석실은 한쪽 벽에 발린 문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출입구가 없었고, 작은 현창이 달린 문조차 두들겨 부수기엔 재질이 너무 단단하고 무거운 돌들은 짜맞추어 만든 것이었다. 어느 정도 봉인 주문의 충격에서 회복하자, 그의 예민한 귀는 석벽 너머로 전달되는 끔찍한 비명소리와 감금실의 문 너머를 돌아다니는 데몬들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출입구 문 쪽에 서 있었고, 당연하게도 슈발츠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그대로 정신을 잃은 척 누워 있으면서, 슈발츠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전신에 심한 타박상과 찰과상이 있었지만 그정도는 견딜 만 했다. 그의 뼈는 강철보다 강한 강도를 가진 은으로 이뤄져 있어서, 굉장한 높이에서의 추락임에도 골절상을 입지는 않았다. 드래곤의 가죽과 금속 골격으로 보호받는 뇌와 내장 역시 무사했다.

하지만 장비품은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검 4자루와 전통, 그리고 요대까지 사라져 있었고, 게다가 그는 거의 발가벗겨져 있었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저장의 장갑은 그대로였다. 이건 젤로나의 솜씨였는데, 마법적으로 금속을 [무두질]해 만든 그 은색 장갑은 슈발츠의 손에 꼭 맞았던 데다 피부색과 유사해서 눈에 잘 뜨이지 않았던 덕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진천과 용수 역시 그대로였다.

데몬의 기척이 떠나고나서 슈발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칼을 꺼내어 손목과 목에 감긴 아다만티움 사슬을 내리쳐 잘랐다. 신의 축수를 받은 그 사슬은 슈발츠가 아무리 잡아당겨도 꿈쩍하지 않았지만, 그 칼에는 잘렸다. 슈발츠는 다시금 그 환도들의 기이한 강력함을 실감했다. 이 두자루 덕에 얼마나 많은 위기를 넘겼던가.

이제 그가 가진것은 길고 짧은 잘라진 아다만티움 사슬(아마도 신성할) 네조각과, 두자루의 환도였다. 슈발츠는 다시 환도를 갈무리하고, 사슬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렸다. 사슬을 만지작거릴 때 마다 [신성하게 화끈한] 느낌이 전해져 왔지만 그정도 고통은 슈발츠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보다 이 감금 상황의 개선을 위해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할것인가. 당장의 고민은 그것이었다.

얼마 후, 악마 간수가 슈발츠의 감금실의 문을 열었을 때, 썩은내가 확 밀려들어왔다. 들어온 것은 큰 키에 인간 형상을 하고 있으며, 전신이 끈적한 산성 점액으로 덮힌 검은색 피부를 가진 바바우(Babau)라 불리는 종류의 악마였다. 이 악마는 은신과 암습에 탁월하고, 새디스틱하며, 무엇보다도 역겨운 지옥 군주의 암살자였다.슈발츠는 그들을 한번도 상대해 본 적이 없지만, 문헌과 기타 다른 정류의 정보원을 통해 이들을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천정에 매달려 숨어 있던 슈발츠가 내려다보는 종안,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죄수가 사라진 것을 발견한 바바우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으나 슈발츠를 찾을 수가 없자 다시 뒤돌아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본 것은 문앞을 가리고 선 용 형상을 가진 거한-즉 슈발츠-이였다.

캐애액!...

바바우는 자신이 짠 계획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에는 강하지만, 그 외의 경우엔 그저 그런 전투력을 가졌을 뿐이다. 은신과 암습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다른 전투력은 희생한 것이다. 슈발츠는 아주 간단하게 신성한 아다만타이트 사슬을 감은 오른손으로 놈의 안면을 강타 해서 악마의 얼굴 모양을 바꾸어 놓았고, 길다란 쪽의 사슬을 이용해 땅바닥에 쓰러진 놈을 꽁꽁 묶었다. 그 사슬에 배인 신성한 힘에 닿자 마자 바바우는 자지러지며 발버둥을 쳤지만, 슈발츠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 음, 이제 준비가 된 듯 하군. "

분노와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바바우를 내려다보며, 슈발츠는 입꼬리를 일그러뜨렸다.

고문을 직업으로 삼는 새디스틱한 놈 치고 고문에 강한 자는 없다. 남을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자는 언제나 스스로에겐 지나치게 관대하기에, 필연적으로 고문에는 나약하다. 바바우 역시 그런 놈이었다. 평소라면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오는 환경은 잠을 설칠 정도로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겠지만, 그 소음은 악마의 비명소리를 감추는데도 도움이 되어 주었다.

좀 빠르고 무식한 방법(사지를 맨손으로 찢어서 떼어 내는)을 통해 포로를 고문한 슈발츠는 자신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이곳이 유명한 악마 군주인 고문의 대가 샥스의 개인 영지인 [대학살의 방]이며, 사방에서 울려나오는 비명들은 샥스의 개인 고문실에서 흘러나오는 것보다는 건축 재료 대신으로 벽에 박혀 있는, 아직 살아있지만 절망적인 상태에 처한 희생자들이 흘리는 소리라는 것, 그리고 샥스는 언제나 성채 중앙의 고문실에서 자신의 취향을 즐기느라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슈발츠의 장비는 바로 그 샥스의 고문실을 통과해야만 갈 수 있는 [분실물 보관실]에 있다는 것도.

슈발츠가 바바우로 변신한 상태로 감금실에서 나와 문들 닫았을때, 뒤에 남겨진 것은 사지가 찢긴 채 부서진 악마의 잔해 뿐이었다.

악마 사이에 동지의식이라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악마끼리는 아무 이유 없이 서로 공격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보다 더 높은 단계의 악마를 모시는 처지라면 더더욱. 슈발츠는 바바우의 모습으로 샥스의 영지를 지나가면서 눈에 뜨이는 대로, 그리고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때 서슴없이 악마들을 해치우고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어 갔다. 원래도 강한데다 기습이라는 이점까지 가진 그의 공격에, 악마들은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보통때, 보통 장소에서라면 슈발츠는 물론 이렇게까지 닥치는 대로 베어넘기는 짓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지금 있는 곳은 지옥이며, 정당함이나 자비같은건 바랄 수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배신을 당해 타격을 입은 직후다. 슈발츠에겐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이용했다.

얼마나 미로같은 구조물 사이를 헤메고 돌아다녔는지 정확히 헤아리긴 힘들었지만, 거의 반나절 동안을 미로같은 구조의 악마의 요새 안을 헤집고 다닌 끝에 슈발츠는 엄중하게 워드가 쳐진 한 감금실을 발견했다. 그 문 앞에 쳐진 결계가 어찌나 강력한지, 그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손 끝에서 파란 불꽂(즉, 번개)가 땅으로 흐를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지키는 자도 없었다.

당장은 들어갈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슈발츠는 그 문이 있는 곳을 염두에 두기만 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얼마 안가 샥스의 [고문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어떨게 열어제칠까 고민하는 중에, 문 너머에서부터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울렸다.

" 끄아아아악!... 아아악!... "

초음파에 가까운 비명이 두꺼운 무쇠 문을 진동시켰고, 슈발츠도 귀가 먹먹해질 정도라 얼굴을 찌푸려야 했다. 얼마간 계속되던 비명이 그쳐 가는 동안, 슈발츠는 통로에 다른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다시 천정으로 뛰어올라 붙었다. 두마리의 바바우가 새카만 철로 짜여진 철창으로 만든 새장 속에 무언가를 가둔 것을 어께에 떠메고 통로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청창 안에 갇힌건 발가벗겨진 여자였는데, 새장 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와 다른 여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등에 날개 비슷한 것이 존재하고 있다가 [뜯겨 나간]흔적이 있다는 점과, 신기하게도 그 몸에서 신성한 기운과 사악한 요기가 동시에 감돌고 있다는 점이었다.

" 열려라 참깨!... "(악마어로)

드드드드드...

철창을 옮기는 바바우 중에 앞선 놈이 뭐라고 외치자, 문에 새겨진 워드가 빛나며 거대한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소리없이 천정에서 뛰어내린 슈발츠는 그림자로 숨어들어 샥스의 고문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동안 문화적인 충격을 받기에 족한 광경을 보고 놀라서 그림자 속에서 멈추어 서야 했다.

사방이 찢기고 잘린 무언가의 고깃덩어리와 말라붙은 피로 뒤덮인 그 고문실은, 그 두텁고 엽기적인 살 장식으로 만들어진 벽지 사이로 삐죽하게 고개를 내민 지극히 실용적인 형상의 쇠 갈고리들(역시 피로 젖어있는)과 거기 꿰여서 몸부림치거나 버르적거리고 있는 무력한 희생자들로 장식 되어 있었다. 질척질척하고 끈적한 선혈과 기름이 흐르는 바닥을 넘어 방 가운데 잇는 고문도구 세트들은 슈발츠조차 처음 보는 각종의 기괴한 것들 투성이었고, 방금 막 날개가 뜯어진 듯이 등으로부터 금빛 성혈을 흘리고 있는 천사 하나가 고문대 위에서 내려지고 있었다.

샥스는 목 위와 무릎 아래는 비둘기 형상이었지만, 나머지는 하얀 깃털에 뒤덮인 강인한 인간 남성과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엔 그 깃털이 하얀색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가 불가능해 보일 만틈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그 부리에서 나오는 그르렁 거리는 신음은 슈발츠조차 소름이 돋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기분 나쁜 것이었다.

" 아악! 안돼!... "

철창에 엎드려 있던 여자의 비명소리가 슈발츠의 정신을 현실세계로 되돌렸다. 그녀는 날개가 찢겨 나간 천사를 보고 통곡을 하고 있었다. 뒷모습 뿐이라서 슈발츠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천사와 그녀는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보였고, 샥스가 그녀를 고문실로 데려온 목적은 우선 그녀의 [애인]을 부숴서 정신적인 고통부터 줄 생각이엇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코가 석자다. 샥스를 처리하던, 여자를 구해주건 간에(이미 늦어보인 탓도 있어서, 천사에겐 관심이 없었다) 슈발츠는 자신의 장비를 되찾고 지상과의 연락과 전투력을 회복해야 했다. 그는 여자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등 뒤로 하고 일단 들어온 문의 반대편에 있는 열린 문 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창고는 넓었고, 정리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는 타나리들의 특성을 반영하듯 난잡하게 아무렇게나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그나마 다행했던 것은 같은 자에게서 갈취한 물건은 비슷한 장소에 던져둔다는 정도. 슈발츠는 한참이나 걸려서 자신의 장비를 모두 되찾았다. 전통, 잡낭, 칼 4자루가 매달린 요대. 노예들과의 텔레파시 연결을 위한 반지는 어디로 떨어졌는지 찾기가 더 어려웠지만, 물건 탐지 주문 두루말이를 잡낭에 넣어뒀던 것을 기억해 내서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었다.

" 음?... "

하지만 반지를 껴도 노예들과의 텔레파시 연결이 복구되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본 슈발츠는 자신이 떨어진 무저갱이 [감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무릎을 쳤다. 가두어 두는 것은 단순히 몸만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보도 차단해야만 진정한 감금이다. 그의 짐작 대로라면 어둠의 우물을 벗어나면 텔레파시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을 벗어나려면, 일단 간수장부터 조져서 탈출로를 알아내는 것이 편할 것이었다. 상대가 마왕이라곤 하지만 그라즈트를 이미 상대해 본 슈발츠다. 기습을 겸한 일대일 상황으로 밀어넣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회복되고 있는 주화 능력도 아낄 필요가 있었다.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다른 노획품들 중에 회복 물약을 찾아서 단숨에 입에 털어넣은 후, 한번 깊은 숨을 쉰 슈발츠는 잡낭에 검 4자루를 모두 갈무리해 넣고(사실 그건 보여주기 위한 무기들이었으니 실전에선 필요가 거의 없었다) 손에 잡히는대로 자루가 두껍고 강력한 마력이 흐르는 창 하나를 집어들고 창고를 떴다.

" 우아아아!...우와아아아!... "

고문실에 가까워져 가면서. 아까 그 여자의 절망적인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처럼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아니라는 점이 더 나쁘다는 생각을 하며, 슈발츠는 다시 샥스의 고문실로 돌아왔다.

바바우 둘은 물러간 상태였다. 방 한가운데의 고문용 해부대 위에는 짓이겨지다시피 거의 넝마조각이 되어 있는 천사의 시체가 가로놓여 있었다. 고문이 끝나고 나서도 시체를 해체할 목적이었던듯, 갖가지 흉악한 모양의 날붙이들이 그 시신 여기저기에 꽂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 절망하는 여자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방안을 울리고 있었다.

슈발츠는 반대편의 문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들고 있던 창을 빗장삼아 문을 봉쇄했다. 샥스는 천사에 대한 해체작업의 다음 단계를 진행하기 위해 도구를 고르고 있었는데, 그 덕에 슈발츠는 물론 울고 있는 여자로부터도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그리고 슈발츠가 그런 이점을 놓칠 리가 없었다.

샥스가 막 사슬 달린 갈고리 두개를 꺼내어 양손에 쥐엇을 때, 그림자에서 뛰쳐나온 슈발츠는 소리도 없이 수미터를 도약해 샥스에게 돌진했다. 그의 양손에서 두자루 환도가 환상같이 떠오르며 샥스의 등 뒤를 향해 섬광과 함께 날아들었다.

카캉!... 카가가가각!...

첫 일격을 간신히 피한 샥스는 두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다. 그만큼 슈발츠의 돌격에 실린 힘이 거세었던 것이다.

" 크르르르!... 네놈은 대체 누구냐? "/샥스

" 네 엄마에게 물어보시지. "/슈발츠

간단하고 화기애애한 대화가 끝난 후, 샥스의 선공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터엉!

첫 일격을 막은 후, 다음 순간 슈발츠는 샥스의 고문실 벽까지 밀어붙여져 있음을 발견했다. 샥스의 사악한 일격이 한순간에 그를 거기까지 날려 보낸 것이었다. 여태까지 한번도 힘에서 밀려 본 적이 없던 그였지만, 최초로 그보다 [힘이 센]상대와 맞닥뜨린 것이다. 등으로 서늘한 한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슈발츠는 검을 고쳐 잡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샥스가 어느새 눈앞에 서 있었다.

" 필멸자여, 여긴 내 영역이고, 내 왕국이다. 감히 내 왕국에 들어와 나를 이길 생각이었더냐, 어리석구나! "

그 비웃음을 한 귓가로 흘리며, 이번엔 슈발츠가 공세를 시작했다. 그가 휘두른 진천이 검은 섬광으로 이뤄진 번개 처럼 샥스에게 날아들었고, 이번엔 마왕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서 놀라움이 담긴 시선으로 이쪽을 볼 차례였다. 슈발츠는 목을 좌우로 꺾어 보이고 아무렇지 않게 대꾸해 주었다.

" 몰랐다면 덤비질 않았겠지. "

그리고 결전이 시작되었다.

슈발츠와 그 데몬 군주와의 공통점이 있다면, 비록 사용하는 무기는 환도와 사슬 달린 갈고리라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둘 다 이도류가 주특기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도류의 요체는 힘보다는 속도다. 충격파를 발생시키며,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를 가진 검격들이 둘 사이를 오가며 화려한 불꽂과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하지만 역시 힘의 우열으로 인한 차이는 있었다. 샥스의 깃털은 충격파에 이리저리 날려 흩어질 정도였지만, 슈발츠의 피부를 덮고 있는(어지간한 검으로 찔러서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 은빛 비늘들은 날아온 충격파에 찢기고 베여 나갔다. 슈발츠의 전신은 금새 피투성이가 되었다.

다만 슈발츠가 대단한 점이 있다면 그런 부상을 입으면서도 금새 파란 주화의 불꽃이 일어나면서 상처를 봉합해 버렸다는 점과, 피부를 베는 정도 이상의 유효한 타격만은 한번도 허용하지 않은 점이었다. 이것만 해도 슈발츠의 전투 능력은 필멸자의 한계 정도는 아득하게 넘어선 수준이었다.

슈발츠는 샥스의 검술 솜씨와 앞뒤 안가리고 미친듯이 퍼붓는 연속공격이 비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검술도 일류의 경지를 이미 아득히 넘어선 상태. 검술로 친다면 둘은 거의 호각을 이루었다. 하지만 힘에서 차이가 나는데다, 전투 장소는 샥스의 방 안이다.

게다가 샥스는 마왕다운 농간도 부렸다. 단기간에 승부가 나지 않자, 잠시 후부터 갖가지 고문도구들이 벽에서 늘어나거나 허공에서 춤을 추며 슈발츠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걸 피하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거의 언제나 공세로 나가던 슈발츠지만, 아니 심지어 마왕인 그라즈트까지 밀어부쳤던 그이지만, 이번만은 공세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샥스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날려 샥스의 직접적인 공세에서 벗어났다.

카가강!... 챙!...

어지러이 날아들던 고문도구들을 칼로 쳐내며, 슈발츠가 몸을 날리자, 샥스가 이때라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 흥... 어딜! "

슈발츠가 접전에서 물러나자 마자, 갖가지 주문과 저주가 날아왔다. 또한 여전히 피와 살점 범벅인, 고문실의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고문기구들 까지 미친듯이 춤을 추며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샥스의 손에 들린 것이 아니었다. 슈발츠는 칼을 휘둘러 날아드는 쇠붙이들과 살점들을 쳐내고, 날아오는 저주와 마법은 그냥 맨놈으로 받았다. 사실 슈발츠의 몸 주변에도 보호마법들이 겹겹이 쳐져 있었지만, 과연 마왕, 샥스가 쓰는 마법과 저주는 슈발츠가 쓰는 마법 장벽을 종잇장 찢듯이 뚫고 들어왔다.

" 헉?... "

샥스의 불행이라면, 일반적인 필멸자들과 달리 슈발츠가 그의 부정한(즉 선한 존재에게 특별히 효과적인) 공격 자체에도 거의 면역을 가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악마 군주는 자신이 건 저주를 웃으면서 극복하는 슈발츠를 보고 놀랐다. 실제로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저주는 슈발츠 자신이 일찌기 겪어 본 마법적인 고문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의 고통이라 웃으며 흘려 넘길 수 있었고, 뼈와 살을 뒤틀리게 하는 언령과 악명높은 [시선 타격]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골격과 드래곤의 가죽을 가진 슈발츠에겐 무용지물이었다.

" 뭐야, 가렵지도 않군. 겨우 이정도로 악마 군주란 것인가. "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샥스는 그의 저주들을 피식 웃으며 극복해 버리는 슈발츠의 모습을 보고 더 미친듯이 분노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힘과 속도가 올라간 반면에 정교함은 떨어져 버렸다. 피하기가 더 수월해져 버린 것이다.

" 후웃! "

슈발츠는 때맞춰 몸을 날려 서툴러진 그 공격을 적절히 피하면서 샥스의 고문실 전체를 자신의 공간으로 삼았다. 여전히 그 공간은 슈발츠에게 적대적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이상엔 샥스의 고문실 자체는 슈발츠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 반전의 가망성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마왕은 역시 마왕이었던 것이다.

.
.
.
오픈 필드에서 샥스와 슈발츠가 1대 1로 붙으면, 슈발츠가 집니다. 심지어 백스텝을 크리티컬로 성공시켜도 (근소한 차이로)집니다.
 
피해 감소와 굴절 보너스를 무시하는 진천과 용수 두자루의 환도가 대단하긴 해도, 샥스의 기본 방어도, 절륜한 재생 능력과 엄청난 체력, 공격 보너스와 횟수, 그리고 마왕으로써의 천성적인 면역과 다른 막강한 주문 유사 능력들은(대부분 의지 발동에 즉시 시전이지요) 기껏해야 필멸자에 지나지 않는 슈발츠을 압도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슈발츠가 다음회에 죽고 말것이냐? 하지만 CRPG와 달라서, TRPG에서는 왕왕 황당한 일로 승자와 패자의 위치가 바뀌기도 합니다. 기대하시지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