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잔트베르크의 여인촌 후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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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359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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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당의 식당에서, 크리스타는 빵과 치즈로 간단한 식사를 내주었다. 토리와 프티는 감사를 하고 먹었다. 두 명의 모습을 응시하면서,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크리스타가 말했다.

 

    「그제나는 어째서 남자를 데려왔을까. 그 사람은 근성이 비뚤어진 여자지만, 그렇기 때문에 잔트베르크에 대해선 밝히고 싶지 않았을 거야」

 

     토리는 입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음식이 나온 것으로 기분이 느슨해졌는지 프티가 말했다.

 

    「그제나 할머니느은, 토리님을 찾으러 왔어요. 가드릿지를 내놓으라고 하고 있었으니까아……. 반드시, 토리님을 가로채갈 생각이예요」

    「……토리를?」

 

     크리스타가 잠깐 공중을 올려보고 나서, 토리에게 눈을 향했다.

 

    「그것은, 당신이 도사인 것과 뭔가 관계 있는 거야?」

    「도사……」

 

     중얼거린 프티가, 큭 하고 빵이 목에 걸렸다.

 

    「에, 도, 도사? 무슨 말인가요?」

    「토리는 도사야. 법술사. ――몰랐어?」

    「법술사! 저, 정말인가요? 토리님」

 

     프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토리를 본다. 토리는 천천히 끄덕였다.

 

    「……아아, 그래」

    「그러언……토리님이 법술사였다니, 그런……」

 

     프티는 쇼크를 받은 것 같아서, 입꼬리를 떨며 몸을 당긴다. 토리는 묻는다.

 

    「법술사은 싫어? 프티」

    「그치만, 법술사라고 하면, 저기……저주로 사람의 심장을 멈추거나 밭을 마르게 하거나 송아지를 유산되게 하거나 하잖아요오?」

 

     그런 짓을 하는 도사도 없지는 않지만, 그것에만 주목하는 것은 편견이다. 누가 그런 일을 프티에게 불어넣었는지는 곧 짐작이 되었다. 심술쟁이였던 숙부 부부인게 분명하다.

     토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편견이야. 내가, 그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냐」

 

     그러자 프티는 뭔가 생각하는 듯이 조금 이리저리 눈을 돌리고 나서, 또 토리를 보았다. 이번에는 매달리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토리님은, 그런 짓,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오……하지 않지요?」

    「하지 않아」

    「다행이다아……」

 

     안심한 것처럼 프티는 숨을 내쉬고, 그리고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에 손을 대었다.

 

    「이 아이의 아버지가 나쁜 도사라면 어떻게 하지, 하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럼, 당신이 도사인 것과 그제나가 온 것은, 관계없는거네」

 

     크리스타가 이야기를 원래대로 돌리려고 하자마자, 또 프티가 「앗!」하고 말했다. 토리는, 「뭐야? 프티」하고 말을 돌린다.

 

    「저, 토리님이 도사라고 몰랐지만, 정화사님은 알고 있었던 거네요. 역시, 무서워한다고 생각해서 가르쳐 주지 않으셨던 거지요. 제가 머리 나쁘니까아……」

    「나도 토리에게서 들은게 아니야」

    「후에?」

 

     이상한 듯한 얼굴을 하는 프티를, 크리스타가 타일렀다.

 

    「대하고 있는 동안에, 눈치챘을 뿐. 그러니까 토리가 무슨 도사인지까지는 몰라」

    「에, 그럼……제가 머리 나빠서인게……」

    「그런게 아니야, 프티. 걱정하지 않아도 돼」

 

     토리가 살짝 손을 잡아주자, 프티는 간신히 납득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있던 크리스타가, 다른 일을 이야기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고보니 토리, 안쪽의 방에 옛날부터 낡은 세간이 몇개쯤 있어. 남자 일손이 없어서 지금까지 놔두고 있었지만, 잠깐 움직이는 것을 도와주지 않겠어」

    「지금?」

    「물론 먹고 나서도 좋아」

    「아, 그럼 저도 도움을」

 

     일어서려는 프티에게, 크리스타는 온화한 얼굴을 향하며 말했다.

 

    「당신은 됐어. 뱃속의 아이에게 안좋은걸.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럼, 옆방에서 마을 쪽을 지켜봐줘. 남자들이 오는 것 같으면, 큰 소리로 알려줘」

    「아, 네!」

 

     그들을 보았을 때의 공포를 떠올린 듯해서, 프티는 긴장한 얼굴로 끄덕였다.

     식사 뒤, 토리는 크리스타의 뒤를 따라 안쪽으로 향했다. 꼭 닫겨있던 방에 들어가자 확실히 오래된 베드나 제구가 있었지만, 거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토리는 말했다.

 

    「장소를 바꿔줘서 고마워」

    「그 아이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다니, 상당한 사정인거네」

 

     크리스타는 알았다는 표정으로 끄덕였다. 토리가 이 화제를 피하려고 한 것을 짐작해 주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역시 그제나는 당신의 힘이 목적이구나」

    「그 마녀는――그제나라는 것은 질이 나쁜 마녀지만――내가 뛰어나게 강력한 도사라고 굳게 믿고 있어. 그래서, 데리고 가서 왕이나 군주에게 팔아넘기려 하는거야」

    「두가지 물어봐도 괜찮을까」

    「뭐를?」

    「당신은 정말로 강력한 도사인지. 그제나와 알게된 계기는 어땠던 것인지」

    「그런 걸 알고 싶은거야?」

    「그렇게 이상한 질문일까?」

    「지금 문제인 것은, 어떻게 저들을 쫓아보내는지, 라고 생각해」

    「그렇지도 않아. 당신이 문제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해결할 간단한 방법은 있는걸」

    「어떤 방법?」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크리스타는 의자를 가져와서 토리 앞에 두었다.

 

    「질문에 대답해. 납득이 가도록. 그제나가 당신을 강력한 도사라고 믿는 것은 어째서?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야?」

 

     토리는 한숨을 쉬고,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두개의 나라가 있었다고 생각해줘. 한쪽은 큰 나라이고, 다른 한쪽은 작은 나라야……」

 

     언젠가 여사냥꾼 크로마에게 말한 것과 같은, 대군을 멸한 도사의 이야기였다. 그것을 들려주고, 덧붙였다.

 

    「그제나는, 나를 이 도사라고 생각하고 있어」

    「왜? 당신은 어딘가 다른 마을의 학생이었잖아. 접점이 없어」

 

     크리스타는 납득하지 않고, 그렇게 물어 왔다. 그녀는 크로마보다 이치를 따지는 구석이 있다. 사냥꾼과 달리 하루종일 두문불출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이 깊은 것인지도 모른다.

     몰라, 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토리는 비밀을 밝혔다.

 

    「그 남자는, 엣사·가드릿지――나와 같은 성이야」

    「아아……」

    「그 마녀와 처음 만났을 때는, 나 자신도 왜 쫓기는지 몰랐어. 한번 잘 도망쳐서, 다음에 이래저래 조사해가는 동안에, 그것을 알 수 있었어」

    「어디까지나 딴사람이라는 거네. 그렇지만 딴사람이라면 딱 보면 알거잖아. 나가서 그렇게 말하면 끝나는거 아냐?」

 

     토리는 고개를 젓고, 크로마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야기하자. 그 남자, 엣사에 대해서. 우선 이 남자가 프랑쿠르트 왕국이라는 곳에 있어서, 대국, 즉 조그 왕조의 군을 패배시킨 것은 사실이야.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런 이유야. ――조그의 군대가 프랑쿠르트에 나타나기 반년 전, 가드릿지는 그 나라에 없었어. 남방의 에프메프 사막에 가있었지. 이 사막을 크리스타는 알고 있어? 마을의 장례역이라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자매전에 나오는, 삐걱거림의 사막 말일까」

    「그대로, 삐걱거림의 사막 에프메프다. 그곳에서는 바람에 섞여서, 항상 어디에선가 무거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 유사(流砂)의 바닥에 유폐된 사마의 공주(魔邪) 모그의 이가는 소리라고도, 모래폭풍과 함께 지평선 건너편을 영원히 방황하는 신기루탑 인디험프(インデホンフ)를 끄는 7천 마리의 사골마(死骨馬)의 멍에 소리라고도 해」

    「그렇게 쓰여있었어」

    「실은 이것이 사실이었어」

    「……에?」

 

     크리스타가 눈썹을 찌푸렸다. 토리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엣사·가드릿지는 몇개나 되는 고전을 의지해서 인디험프의 주회로를 산출하고, 에프메프를 방랑하고 3일 밤낮을 모래 속의 상자에서 매복해서, 마침내 모래폭풍 안의 탑과 대면했던 거야. 그는 후네야(フネヤ) 부채로 사골마의 눈을 속이고 신기루탑에 들어갔어. 그리고 최상층의 감실(龕室, *두개의 문짝이 달린 신위(神位) 및 작은 불상·초상, 또는 성체(聖體) 등을 모셔두는 곳)에 갇혀 있던 모그를 찾아내서――유사의 바닥이라는 것은 와전이었던 것 같네――그녀를 묶는 황금사슬 중 하나를 끊고, 그 사례로 모그가 다루는 강력한 15개의 금주(禁呪) 중 하나를 넘겨받았던 거야」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서운 일이네」

 

     크리스타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마의 공주 모그라고 하면, 태고에 번창하고 있던 천사국의 날개를 뜯어내 지상에 떨어뜨리고, 청정했던 천사들을 짐승과 같은 육체를 가지는 비천한 인간으로 만든 장본인. 성자매의 언니 키라를 범하고 여동생 에이야에게 토벌되어서 간신히 봉인되었어. ……그런 사악한 존재에게, 엣사는 도움을 주었다는 거야? 그게 사실이라면, 세계는 내일에라도 멸망해 버릴터」

    「녀석을 봉인하는 황금사슬은 8개가 있어서, 아직 3개 남아 있었다고 해」

    「……그래」

 

     크리스타는 조금 진정한 것 같았지만, 더욱더 수상한 듯이 물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와 그제나의 관계는?」

    「엣사는 강력한 도사였어. 너무 강력했지. 조그를 이겨서 프랑쿠르트를 구했던 것이 그 자신을 전설상의 존재로 만들었어. 지금 이 골짜기 밖의 세계에는, 엣사를 뭐든지 할 수 있는 전능의 존재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 모습을 완전히 바꾸는 것조차 할 수 있었을 거라고. ……그래서 그제나는, 나를 엣사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거야」

    「그런 거구나……」

 

     크리스타는 간신히 납득이 된 모습으로 끄덕였다.

 

    「그럼 결국, 오해인 거네」

    「당연해. 대체로 내가 엣사라면, 그제나도 그 용병도 새끼 손가락 하나로 지워서 날려보냈을 거잖아」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렇지만 그제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왔어. 어째서일까」

    「거기까지는 몰라. 뭔가 방책이 있는 거겠지. 엣사의 힘을 봉하기 위한……」

    「흐응……」

    「『단 혼자서 대군을 격퇴할 수 있는 금주를 익힌 남자가,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것은 꽤 무서운 상상이야. 통치자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옷 안을 독충이 기어다니고 있는 것과 비슷하겠지. 그 녀석을 불러들여 신하로 삼든지, 그게 아니면 죽이지 않으면 밤에도 마음놓고 잘 수 없어. 그제나는 그런 상대에게 나를 팔아넘길 생각이겠지」

 

     토리는 이야기를 끝냈다. 그리고, 심문관같이 쭉 버티고 서있는 크리스타를 올려보았다.

 

    「슬슬 내 쪽에서 질문해도 괜찮을까? ――왜 이런 걸 묻는거야. 중요한 것은 마을을 지키는 거잖아. 그제나와 용병들을 쫓아내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돼」

    「되돌려 보내서, 그걸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닌거야. 이 골짜기는, 그제나가 옮겨주는 밖의 물건에 의존하고 있는걸. 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는 없어」

    「그럴까? 그제나 대신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하면 되잖아」

    「그 사람 대신? 그런 인간은 골짜기에는 없어. 지저의 강을 빠져나가는 술법을 사용할 수 없으면 안되니까. 무리한 이야기야」

    「소질이 있는 인간이라면, 술법은 수행과 계약으로 몸에 익힐 수가 있어. 엣사가 모그의 술법을 넘겨받은 것처럼. 그래서, 내 감으로는 네게는 그 소질이 있어」

    「……내게?」

 

     크리스타가, 오늘 처음으로, 놀란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졌다.

     토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너도 도사구나. 에르기나……라고 했었나, 선대에게서 치료의 술법을 계승하고 있어. 처음에 네가 나를 조사했었을 때, 그것을 알 수 있었어. 너라면 그제나의 술법을 빼앗을 수도 있어」

    「……그런 일이 가능한 거야?」

    「이론적으로는. 그 전에 그제나에게 동의한다고 말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럼, 역시 무리라는 거잖아. 그 사람이 수운(水運)의 권리를 타인에게 양보할 리가 없어. 가령 양보해 주었다고 해도, 내게 그런 일은……」

    「그제나가 옛날 그대로의 매정한 성격이라면――틀림없다고 생각하지만――뒈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은 많이 있다고 생각해」

 

     크리스타는 모양좋은 턱에 손을 대고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꿈같은 이야기야.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

 

     원래 그다지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토리는 실망을 느껴서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저녀석이 말하는 것에 따를 수밖에 없어. 나를 붙잡아서, 넘기는게 좋아」

 

     하지만 크리스타는, 그것을 듣고도 끄덕이지 않았다. 입다문 채로 은청의 눈동자로 토리를 응시했다.

     그리고, 살그머니 손을 뻗어왔다.

     토리의 뺨에, 서늘한 하얀 손가락이 닿는다. 손바닥이 딱 달라붙어서, 목덜미로 미끄러진다. ――흠칫 토리는 어깨를 떤다. 이 만지는 방법에는 기억이 있었다.

     이 골짜기에 오고 나서 몇번이나 청당을 방문할 때마다, 그녀가 해온 만지는 방법이었다.

 

    「나와 도망쳐」

 

     깜짝 놀라 토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리스타가, 희미하게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가득 찬 얼음의 파랑이, 불길의 파랑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녀는 반복했다.

 

    「나와 함께, 골짜기 밖으로 도망치자」

    「그런 일은――」

    「할 수 있어. 길이 있어. 아무도 모르지만, 정화사만은 알고 있어. ――브란게리의 고개를 넘는 굴이 있어. 거기를 지나서, 함께 도망치자. 그걸로 해결돼. 그제나는 포기할거야. 용병들도 돌아가버려」

    「그렇지만, 크리스타. 그러면, 이 마을 사람들은……!」

 

     정화사를 잃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거야. 그렇게 말하려고 하자마자, 그녀의 본심을 토리는 눈치챘다.

 

    「됐어, 이런 마을. 어떻게 되어버리든」

 

     크리스타의 굳은 뺨에,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오랫동안 억제해온 격정이, 그녀의 눈동자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쭉 도망치고 싶었어. 나를 능욕하고 더럽혀온 마을 사람들로부터, 쭉. 그렇지만 혼자선 안되었어. 모르는걸, 어떻게 하면 좋은지. 이 마을을 나가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 것인지. 여기밖에 있을 곳이 없다고 생각했어」

    「……크리스타」

    「그렇지만, 당신이라면. 당신이라면 밖의 세계를 알고있어. 부탁해, 구해줘. 나를 여기에서 데리고 나가줘……」

 

     크리스타가 몸을 굽혀서, 토리의 얼굴에 뺨을 눌렀다. 눈물이 그 사이에서 퍼졌다. 그녀의 마음이 녹아나온 듯한 뜨거운 눈물이다. 얼음같이 차갑게 보여도, 크리스타는 남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한명의 아가씨였던 것이다. 그 아픔은 토리도 잘 알 수 있었다.

     크리스타가 휘감은, 응달의 꽃을 생각하게 하는 품위있고 조용한 냄새가 토리의 코를 간질인다. 향수를 바르는 아가씨는 아니기 때문에, 체취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청당 안에서밖에 유지되지 않는 냄새다. 배경에 약기름의 씁쓸한 냄새가 있어야만 두드러진다. 햇빛 아래에 나오면 없어져 버리겠지, 그렇게 생각할 만큼 덧없다.

 

    「토리……」

 

     속삭이며, 만져오는 한명의 아가씨. 그 존재가 토리를 묶으려고 한다. 눈초리가 긴 눈동자, 콧날이 오똑한 단정한 얼굴 생김새, 도자기같이 매끈매끈한 뺨과 작은 턱. 감상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인형을 생각나게 하는 아름다움이다. 세탁을 거듭해서 퇴색한 흑의 아래에서, 봉긋한 몸의 선이 떠올라 있다.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그 몸은, 아마 살아있는 조각과 같이 완벽한 체형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닿고 싶다고 생각할 아름답고 덧없는 아가씨가, 한 마디 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것이 된다. 모든 것을 잊고 손에 넣고 싶다는 강한 유혹이 솟아올랐다. 크리스타와 손에 손을 잡고, 골짜기를 나가서 바깥 세상에서 몰래 산다――그 상상은 몹시 매력적이었다. 이 골짜기에 막 왔을 무렵이라면, 토리는 반드시 그 유혹에 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는 상상이기도 했다. 토리가 이 골짜기에서 반년 이상 살았기 때문에 크리스타는 마음을 열어주었을 것이며, 그 사이에 토리도 여기에 왔을 무렵과 비교해 크게 바뀌어 버렸다.

     지금은 벌써, 그녀와 단 둘이서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안돼, 크리스타」

    「어째서?」

    「모두 나의 아이를 품고 있는걸. 프티도, 나오씨도. 거기에 크로마도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가 있어」

    「마을의 관습 따위……!」

    「처음엔 관습이었지만, 이제 그렇지 않아. 나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였어. ――그러니까, 그 결말에도 책임이 있어」

    「……그것이 당신의 대답인 거네」

 

     토리는 끄덕였다. 크리스타는 얼굴을 떼고, 슬픈 듯이 응시했다.

 

    「나를 구해주지 않는구나」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어떻게? 온 마을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관습을 바꾸기라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몰라. ……그렇지만, 네가 그만큼 괴롭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

    「그래……」

 

     크리스타는 끄덕였지만, 그 얼굴에 실망이 역력히 떠올라 있었다. 기대 같은건 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명 사이에, 움직일 수 없는 침묵이 생겼지만――그 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것을 깨뜨렸다.

 

    「토리님, 정화사님……왔습니다, 남자가 왔어요……!」

    「가자」

 

     토리는 일어서서, 크리스타에게 등을 향했다.

     바깥 방으로 돌아갈 것도 없이, 복도에서 프티와 만났다. 무서워하는 그녀를 달래면서 창으로 향하자, 청당으로 오는 비탈길을 다섯 명 정도의 용병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제나는 없는 것 같다. 토리는 크리스타를 돌아본다.

 

    「내가 나갈까?」

    「아니……내가 나가. 당신들은 여기에 있어」

 

     두 명은 들은 대로 했다.

     이윽고 청당의 문이 두들겨지고, 크리스타가 나갔다. 그들의 대화를, 토리들은 숨을 죽이고 들었다.

 

    「……무슨 볼일이십니까?」

    「엣사·가드릿지를 찾으러 왔다. 빨리 내놔, 여기에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마을 밖의 분?」

    「시치미 떼지마! 우리들은 말야, 조그의 용병이다. 가드릿지를 찾으러 왔다. 지금 당장 내놓으면 이대로 돌아가주겠지만, 이러쿵저러쿵 지껄이면 너도 아픈 꼴을 당할거다!」

 

     노성을 듣고, 프티가 힉 하고 몸을 움츠린다. 하지만 크리스타의 대답은 냉정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거니까요……엣사라는 사람은 모르지만, 씨내리인 가드릿지라면 최근에는 마을 북쪽의 신전터에 자주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냥꾼인 크로마와 함께 사냥을 하고 있어요」

    「응응……그런 건가, 빌어먹을……」

 

     목소리의 어조가 낮아진다. 여기에 있잖아, 라는 것은 허풍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걸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용병은 낮은 목소리로 소근소근 계속했다.

 

    「거짓말이라면 그냥은 끝나지 않을 테니까 말야. 그런건 곧바로 들킨다. 여기에 돌아와서, 충분히 돌려주겠어. 너, 숫처녀지?」

    「앗……」

 

     돌바닥에 발소리가 메아리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기색이 났다. 토리는 무심코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프티가 매달렸다.

 

    「안돼, 안됩니다, 토리님. 가지 마세요……!」

    「프티!」

 

     그러자, 또 크리스타의 목소리가 났다.

 

    「나는 정화사야. 시체를 씻는 여자」

    「뭐라고?」

 

    「마을사람의 시체를 씻고 있어요. 안쪽에는 관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열어서, 매일 더운 물로 씻고, 썩은 살을 흘리고……뼈가 될 때까지 계속해요. 공기를 맡아 보세요. 약기름 냄새가 나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에 걸려 버리니까요……」

    「이, 이자식!」

    「그런 더러운 여자라도 좋다면, 마음대로 하면 돼요. 살아서 마을에서 나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바보자식, 소, 손대지마! 병이 있다면 병자라고 처음부터 말해라! 제길, 음침한 병자년이. 빌어먹을……」

 

     탕, 하고 문을 닫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창에서 밖을 보자, 용병들은 욕설을 하면서 비탈을 내려 갔다. 그 중 한사람의 목소리가 토리의 귀에도 들렸다.

 

    「빌어먹을, 그제나 늙은년. 뭐가 청당의 아이에겐 손을 대어도 괜찮은 거냐. 병걸린 꽝인 여자 아냐. 결국 전부 보류란 거다. 정말 터무니없어……」

 

     그것을 듣고, 프티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전부 보류라는 것은, 나오씨도 괜찮은 것 같네요……다행이다」

 

     크리스타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무언가 말하기 전에, 토리는 그 손을 잡았다.

 

    「고마워, 숨겨줘서」

    「임시 방편이야」

 

     크리스타는 차갑게 말했지만, 손을 떼려고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닿은 것으로 안심한 것처럼 손을 맡기고 있었다.

     이윽고 토리 쪽에서 손을 떼자, 그녀는 말했다.

 

    「크로마가 잘 응대해주면 좋겠지만……」

    「괜찮아. 그 아이는 발이 빠르고 숲에 자세해. 여차하면 숲에 숨어버릴거야」

    「그렇지만, 그러면, 그 사람들은 마을에 눌러앉아버리겠네요」

 

     프티가 중얼거려서, 무거운 공기가 깔렸다.

     이윽고 크리스타가 숨을 내쉬고 말했다.

 

    「촌장에게 기대하자. 그 사람도 마을은 소중할 터. 잘 구슬려서 그들을 쫓아줄지도 몰라」

 

     그것이 희미한 희망에 지나지 않는 것은, 프티조차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촌장씨는 언제나 씨내리님을 찾고 있어요. 토리님을 쫓아버리고, 그 사람들을 대신 살게 할지도……」

    「그렇게 놔두지는 않아」

 

     크리스타가, 분명하지 않은 움직임으로 살그머니 토리에게 기댔다. 창 밖을 바라보는 프티에게 들키지 않도록, 토리의 등을 만진다.

 

    「놔두지 않아」

 

     한번 더 반복하며, 음란하게 손을 달라붙게 했다.

 

 

 

사나이라면 물러나선 안되는 장면!!^^; 주인공이 아닌 보통 남자라면 그냥 크리스타랑 냅다 도망치는게 나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만, 역시나 개념찬 토리 군은 그러지 않습니다. 사실 그냥 개념있는게 아니라 뒤에 보면 보통내기가 아니란 게 나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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