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번역 세리 호르돈 03 (환관 카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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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738회 작성일 17-02-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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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세리(稅吏) 호르돈

레오니아 제국 세무부의 상급세무관 "레브르 코르갈"은 오늘의 마지막 동방부 세입 장부를 책상에 툭툭 두드려 가지런히 정돈해놓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심호흡을 했다.

"후우..."

창밖의 첨탑에는 이미 푸르스름한 반달이 걸려 있었다.

"이제야 끝인가."

레브르는 살짝 뭉친 어깨의 근육을 주무르며 말했다.

"흐으음. 끝난건가 레브르?"

건너편의 책상위에 놓여진 산더미 같은 서류더미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넵, 이제 동방부쪽은 다 끝났고, 그 밖에는 어디보자... 음... 뭐 남은건 얼마 없으니 이제 좀 슬슬해도 되겠군요."

"아니, 가까운 시일 안에 아주 바쁜일이 생겨날 수도 있으니, 할 수 있는 대까지 해놓는 것이 좋을걸세."

레브르는 이 피곤에 쩔어 잔뜩 가라앉을대로 가라앉아 어둡기만한 분위기를 조금 밝게 하기 위해 일부러 즐거운듯이 말했으나, 서류더미 뒤에서 들려온 살짝 쉰듯 컬컬한 목소리는 여전히 어두운 가정을 나열할 뿐이었다.

"바쁜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니요?"

저 남자는 쓸때 없는 일도, 그리고 쓸때 없는 소리도 않하는 사람이었기에 무슨 일일지 궁금해져 물어보았지만,

"아직 불확실한 일이니 자네가 알아야할만한 단계는 아닐세."

그는 여전히 피곤이 잔뜩 뭍어있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뿐이었다.

"흐흠..."

"호르돈 도르벤트", 그는 현 제국 세무부부상(稅務府副相)으로 레브르의 직속상관이었다. 레브르가 10년이 넘게 모셔오고 있는 호르돈이라는 남자는 대체로 딱딱하고 사무적이었지만, 잠시만이라도 집에 다녀오고 나면 눈에 띌정도로 밝고 부드러워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이번에는 이렇게나 바쁜 기간에 무려 1박 2일동안이나 휴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모양이었다. 아니 어찌보면 오히려 휴가를 가기전보다 더 피곤하고 어두워보인다랄까?

레브르는 나름대로 생각과 야심이 있는 남자였다. 그가 호르돈의 부관을 자처해 그 밑으로 줄을 섰던것도, 그리고 그것때문에 이렇게 2년 가까이 생고생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는 것도, 호르돈이 언젠가 틀림없이 세무부상(稅務府相)의 자리에 오를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레브르는 업무 이외에도 이 남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해서 그에 맞추어나가도록 노력을 하고 있엇기에, 지금 호르돈이 보여주는 상태가 평소와는 아주 다른것이라는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음... 호르돈님 혹시 집에 안좋은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공과 사를 칼같이 구분하는 호르돈이였던지라 아마도 별 다른 대답을 해줄 것같진 않았지만, 호르돈만큼이나 레브르도 시간낭비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그냥 직접적으로 물어보았다.

"..."

레브르의 물음에 호르돈은 침침해진 두 눈을 손바닥으로 지긋이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오랜만의 가족 야유회는 성공적이었다. 큰 딸 라샤는 어디선가 들꽃을 한아름 꺽어 와서는 부끄러운 듯이 미소지었고, 작은 딸 리샤는 개울에까지 들어가 버렸었던 것인지 드레스가 온통 물에 젖어있던대에다, 여기저기 흙투성이가 된체로 돌아와 알레아에게 혼나긴 했었지만 즐거운 나들이었다.

아니 즐거웠어야 했던 나들이였을까?

저녁 즈음 다시 황궁의 세무부로 돌아온 호르돈은 스스로를 일더미속에 파뭍어버림으로서 알레아와 큰딸 라샤 사이에 있었던 "그 사건"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막상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던 일을 끝내고나니, 자신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또 다시 문제에서 도망쳐버렸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다시금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금 쉬시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호르돈님까지 앓아 누어버리시면 정말 곤란하니까 말이지요."

레브르가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을 듣고나서야, 호르돈은 머리속의 혼란이 지나친 나머지, 이렇게 알아볼만큼이나 겉으로 드러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우우... 그렇군. 그래 아무래도 쉬어야겠네."

"예 그럼 저도 이만 "놀러"가보겠습니다."

"음? 이미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오히려 내일은 늦게 나와도 괜찮으니 집에 들어가보는게 낫지 않겠나?"

호르돈은 레브르를 10년 넘게 부려오고 있었고, 그만큼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랬던 만큼 레브르의 대답이 어떤것일지는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바쁜도중에 자기 혼자만 집에 휴가를 다녀왔다는 것이 미안했기에 건낸 말이었다.

"하하하. 저는 호르돈님하고는 달라서 집에 들어가봤자, 스트레스만 왕창 쌓일뿐이란건 이미 잘 아시지 않습니까?"

레브르는 별 대단할 것은 없는 하급 귀족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미묘한 빈곤속에서 성장해나갔다. 물론 이는 물질적인 가난을 포함하여 가문의 상속권과 같은 커다란 것에서부터, 부모의 애정이나 믿음과같은 부분까지 모두 포함된 것이었다.

어릴적부터 마법과 검술 모두에 관심도, 재능도 없었던 그는, 어느 날 회계장부를 손보고 있던 늙은집사를 도와주게 되면서 숫자와 샘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후 집사에게 수학을 배워나가던 레브르는 몇 년후 18살의 젊은 나이로 제국세무부의 하급세무관시험에 합격하게 됐다.

그때부터 레브르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모와 주변으로부터 받게된 갑작스러운 관심과, 자신에게도 꽤나 쓸만한 재능이 있었다는 자각은, 희미해졌던 그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그는 얼마후 망해가는 코르갈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한다는 이유아래에서 부유한 상인의 딸과 혼인을 맺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다 그린스트"였고 미녀라 불릴정도는 못됐지만 그런대로 봐줄만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반면 성격은 무척이나 허영스럽고 신경질적편이라서 결코 좋은 아내가 되긴 힘든 여자였다. 하지만 마르다도 레브르도 어차피 "좋은 아내"따윌 바라진 않았었다. 두 사람은 결합은 결국 금화를 원하는 가난한 귀족과 명예를 원하는 졸부의 영합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가장 좋은 아내는 죽은 아내다. 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호르돈은 그런말도 있었나 생각하곤,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글쌔...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밖에서 돌기만 한다면 점점 더 아내를 외롭게 만들 뿐이지 않나?"

"외롭긴요 자긴 자기대로 잘 놀아나는대 뭘 걱정하겠습니까? 오히려 엉겨붙어서 피곤하게 만드는 쪽이 더 걱정이지요."

"하아? 놀아난다...? 그건 좀... 곤란하지 않나?"

"아내가 전전달에 "타르바"산 검둥이 노예를 세 명이나 샀더라구요. 죄다 엄청나게 커다란 근육덩어리들이었는데, 아마 지금도 딩굴고 있을지 모르죠. 시간이 시간이니... 그리고 뭐 사실 그놈들이 아니라도 상관 없겠지만 말이죠."

제국내 귀족사회에서는 노예와의 성행위정도는 애완동물과의 장난질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특히 전대 황제였던 혼음황제(昏淫皇帝) "루스타 레오노스"의 치세동안 이러한 풍조가 더욱 심해져 극에 달하고 있었다.

"생명이란 자기 자신의 씨앗을 뿌려서 자손을 남기는 것이 목적인 존재라네. 이런 건 노예고, 귀족이고 모두 다를바가 없어. 그런 생의 목적을 그렇게 함부로 내던져서야..."

레브르는 새삼스레 자신의 상관이, "흑족"이란 최고의 귀족이자 왕족의 피까지 타고난 사람치고는, 사고방식이 정말 특이한 사람이라는걸 다시 한번 느끼며, 싱긋웃고는 대답했다.

"하지만 즐거움 또한 중요한것이지 않습니까? 어찌보면 호르돈님이야 말로 자손을 남기는 것이 오히려 괴로움이 되는 자들의 입장을 잘 아실것같습니다만?"

"..."

경쾌한 동작으로 외투를 걸치던 레브르는 문득 뭔가 생각이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그, 생명이란 존재가 자손을 남긴다는 과정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즐거움"이 방아쇠가 되어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불가능했던 일 아닐까요?"

"쾌감과 번식이라...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러니까 즐겁게 사는게 가장 먼저라는 겁니다. 호르돈님도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집에 돌아가시는거잖습니까?"

레브르는 호르돈의 옆구리라도 쿡쿡찌르는듯한 시늉을 하며 능청스럽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곧 바로 호르돈의 기괴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서는 얼굴을 딱딱히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레브르의 머리속엔 "아! 바로 이게 문제였구나!"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음... 호르돈님 혹시 사모님과 무슨 문제가 생긴거 아닌가요?"

레브르의 말에 호르돈의 얼굴은 한층 더 침울해졌고, 레브르는 진지한 얼굴로 호르돈에게 다시 말했다.

"남자들 끼리만 나눌 수 있는 비밀이란 것도 있듯이, 남자들 끼리만 도울 수 있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혹시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모르는 일이고, 괜찮으시다면..."

물론 머리속을 헤집고 있는 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면 무슨일이라도 할 수 있을것같긴 했지만, 그날 욕실에서 알레아와 라샤사이에 있었던 일을 감히 입밖에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생각하다가 문득, 호르돈은 레브르가 말했던 "즐거운 일"이라는 말이 머리에 천둥벼락을 꽂아 넣은 것처럼 번쩍하며, 문제에대한 어떤 실마리를 찾아 낸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3~4년 전부터, 삽입 자체만을 떼어 놓고보면 알레아와의 잠자리에서 5분 이상, 아니 솔직히 생각해보면 3분 이상 해본적이 없었던것 같았다. 특히나 지난 밤은 정말 최악이었고... 게다가 최근에는 발기도 쉽지 않아서 적어도 40분에서 1시간 정도는 알레아가 입과 손을 써가면서 자극을 해줘야 물건이 일어섰던 것이다.

하지만 호르돈 본인은 그런것에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왜냐하면 알레아를 진심으로 사랑했었기에, 성행위 자체가 짧게 끝난다 할지라도, 자신은 그녀를 끌어 안기만 해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그녀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 일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혹시 그 "즐거움"이란 것이 부족했기에 라샤와 그런 일을 벌이게 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호르돈 자신이 즐거움을 알레아에게 선사해줘야 하는대, 분명 그런 문제라면 그쪽방면의 경험에는 이골이 나있는 레브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음... 사실은, 내가 요즘 밤일을 제대로 못했던 것같아서 말일세..."

호르돈이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말했고, 레브르는 마음속으로 호르돈과의 관계를 더 좁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근처에 누군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슬쩍 숙이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흐흐흐... 진작 말씀을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물론 이런 것이 사나이로서는 쉽사리 입밖에 내기 힘든일이란건 틀림 없지만서도... 사실 호르돈님 정도의 나이대에서는 꽤 흔한 일이기도 하니까 너무 마음썩히지 마십시오."

"험... 흠... 그. 그런가?"

레브르는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호르돈에게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레오니아 제국 "약제부(藥劑府)"는 기본적으로 "황제" 단 한 사람을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약재(藥材)를 모아놓은 일종의 보물창고와 같은 부서였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런 저런 융통성이 생겨나, 차츰차츰 유력한 흑족이나 백족들, 그리고 제 2 황궁 "로즈 팰리스"에 거주하는 황제의 여인들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것일 뿐이었고, 원칙적으로는 황제의 허가가 있지 않는한 이용할 수 없는 곳이었으므로, 그 이용에는 여러가지 제약과 조심성이 따라야만 했다.

호르돈은 약제부의 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다시금 망설임이 생겨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거의 원리 원칙만을 따져오며 그에서 거의 벗어나 본일이 없었던 그였기에, 이런 행동에 망설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었으리라.

"레브르 코르갈"이 호르돈에게 제안한 "남성"강화법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었다. 키메라 시술이나 마도과학을 이용한 육체개조같은 극단적인 방법에서부터 시작해, 마법이나 주술, 외과적 수술이나 약물에 의한 강화와 같은, 그나마 덜 극단적인 방법도 있었고, 계획적인 트레이닝과 연습에 의한 육체 강화와 기술습득과 같은 퍽 건강한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위험하고 극단적인 방법이란 것을 접어둔다 해도, 긴 시일이 필요한 방법이기에 당장 선택하긴 곤란했고, 결국 간단하고 위험부담이 적으며 가장 빠른효과를 가진 "약물", 즉 "정력제를 먹는다."라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레브르는 약제부에 자신과 친분이 있는 "루프스 도랄"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서 무려 "황제가 애용하시는 정력제"를 얻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을 했다. 물론 아마도 다분히 허풍이 담긴 말이었겠지만, 하지만 어쨌든 "황제폐하의 약"이란것은 틀림없었고, 이러한 사실은 불충에 대한 불안감과 동시에 묘한 흥분감과 기대감이 들도록 만들어주었다.

호르돈이 문앞에 서있던 관원에게 이야기를 한지 3분 정도가 지나자 5크린(약 165cm)이 될까 말까한 작은 남자가 나타났다. 구부정한 자세의 "루프스 도랄"은 호르돈을 슬쩍 올려다보곤 살짝 비굴해보이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약제부 건물 안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호르돈은 그저 문앞에서 약만 받아 올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약제부 내부로 계속 들어가고 있는지라 살짝 의아함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미 발을 들여놔 버린것인지라 별 탈은 없을것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윽고 그들은 "약초실"이라는 명패가 붙은 방앞에 이르렀다.

"이쪽입니다. 나으리."

"음?"

"자아.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니 이건 무슨..."

당연히 이 루프스라는 남자가 안에 들어가서 약재를 가지고 나올것이라 생각했던 호르돈은, 그에게 말을 건냈으나 그의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루프스가 말했다.

"안에 사람이 있으니 걱정 마시고, 어서."

그의 말에 호르돈은 어쩔수 없이 약초실안으로 들어왔다. 약초실은 천장이 온통 유리로 되어있어 마치 온실같아 보였고, 크고 작으며, 형형색색의 갖가지 식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있어 마치 정글속으로 들어온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약제부 내부를 걸어오는 동안 사방에서 풍겨오던 약제의 냄세가 없었고 그대신 갖가지 꽃향기와 은은한 풀냄세가 진동하고 있어서 휠씬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어서오십시오 도르벤트공."

호르돈이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없는 동안 마치 유령과같이 식물들 사이로 한 여인이 나타나며 말했다.

"아?"

그녀는 마치 물감으로 물들여놓은 것과 같이 새빨간 붉은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머리에 붉은 꽃 한송이를 꽂은체, 머리칼 사이엔 가느다란 덩쿨줄기처럼 보이는 녹색실이 몇 가닥 보였다. 그리고 두 눈은 마치 에메랄드처럼 선명한 초록색이었으며, 온몸에 쫙 달라붙은 초록색 동방식드래스(차이나 드래스)를 입고 있어서 붉은 머리와 화려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오른쪽 이마와 오른쪽 뺨언저리에는 얼핏 흉터같아 보일수도 있을듯한 초록색 문신같은 것이 이리 저리 세겨져 있었으나, 그녀의 압도적인 미모덕분인지 그것은 오히려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줄뿐이었다.

척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여자였던지라, 호르돈은 살짝 얼어붙어 이 정체불명의 미녀가 내놓은 인사에 어떻게 대꾸해야할지를 고민했으나, 곧 이어진 그녀의 말은 그의 고민을 해소해주었다.

"루프스의 안내를 받고 오셨지요? 저는 "위치(witch)"인 "벨라도나"라고 합니다."

"위치"란 약초사와 마법사, 그리고 주술사의 혼합적인 직업으로서, 마법이나 주술을 통해 약물의 효과를 변화시키거나 반대로 마법이나 주술의 효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약물을 만드는 일을 하는 자들을 뜻했다.

"자아 이쪽으로..."

그녀는 요염하기 그지 없는 걸음걸이로 커다란 식물의 잎사귀들의 사이로 사라지며 말했고, 잠시 얼이 빠져있었던 호르돈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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