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어느 멋진날 1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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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730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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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부


나는 꿈을 꾸었다.

조그마한 방, 그리고 조그마한 침대. 거기서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하고서, 바스락 거리는 빳빳한 천으로 되어 있는 이불로 내 몸을 가리듯 덮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왔으며, 그들은 바로 눈부신 순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숙모와 예림이었다.

그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몹시 당황해 있던 꿈속의 나와는 달리, 그들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속이 훤히 비추는 드레스의 안 쪽은 온통 살색이었으며, 허벅지 사이만 거뭇거뭇한 부분이 존재했다. 즉, 그들은 드레스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는 거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던 예림이와 숙모는, 흡사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언뜻 보면 다정한 자매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귀여운 얼굴의 예림이와, 성숙한 커리어 우먼과 같은 세련된 외모를 갖고 있는 숙모가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몸을 싣더니, 이윽고 둘은 능숙하게 내 몸을 혀로 애무하며 달구기 시작했다. 내 양손은 엷은 드레스 자락 안으로 펼쳐져, 둘의 몸을 규칙적으로 주무르고 있었다.

“예영아..”

목소리가 전혀 다른 두 여자가 동시에 한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숙모도, 예림이도 그 얇은 천을 걷어버리며 눈부신 살결을 내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무런 벽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손을 뻗는 곳에 그녀들의 몸이 있었고, 내 손이 닿으면 그녀들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몽롱해진 내 시야로, 두개의 살색 환영은 내 몸위로 동시에 포개어 지고 있었다.

“....!”

눈을 떴을때는 다시 내가 살고 있는 좁은 원룸의 천장이 보여지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벽지의 문양과, 교환할 때가 되었는지 조금은 뿌옇게 변해버린 형광등의 불빛까지도, 모두 내 눈에 또렷이 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만 벌떡 하고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환상적인 꿈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는데, 마치 악몽이라도 꾼 사람마냥 식은땀을 흘려대고 있었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빳빳한 기분에 밑을 내려다보니, 아랫도리는 집에서 입는 파자마의 한가운데를 불룩하게 만들며 솟아올라 있었다.

그것은 확실한 충격이었다. 아무리 꿈이지만, 세상과 완벽하게 격리된 공간에서, 그것도 높게 쌓여 있는 벽이 단번에 사라진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 내 동공위로, 이제 막 롱 스커트를 허리로 끄집어 올리는 누나의 뒷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일어났니?”

분명, 스커트가 덮여지는 그 찰나의 순간 매끄러운 엉덩이를 감싸고 있던 누나의 속옷을 보았던 나는 깜짝 놀라 어정쩡하게 고개만을 끄덕일수 밖에 없었다. 내가 옷갈아입는 걸 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림이는 화장기까지 은은하게 감도는 얼굴로 나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맨날 늦잠만 자? 너 오늘 약속있다며.”

“약속?”

내 얼굴표정은 더욱더 몽롱해졌다. 아직도 꿈속에서 새하얀 알몸을 드러낸 누나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운 머리결을 예쁘게 묶어 목선을 드러낸 예림이의 모습은, 꿈속의 그 모습과 절묘하게 일치하기 시작했다.

“응. 너가 어제 그랬잖아. 약속있으니까 나 과외하러 갈때 같이 가자고.”

“아..!”

나는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오며 낮게 탄성을 질렀다. 생각을 해보니, 오늘이 바로 오유민에게 밥을 사주기로 했던 그 날이었던 것이었다. 잊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 하더라도 방금전의 꿈을 꾸고, 눈을 뜨자마자 지금 눈앞에 있는 예림이의 여성스런 복장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고도 남을 것이었다.

“나 준비다했으니까...씻어.”

밝았던 누나의 톤이 묘하게 수그러들었다. 얼른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난 내 바지의 앞섬을 누나가 힐끗 본 모양이었다. 아차..고개를 살짝 돌리는 누나의 모습에 뜨끔했지만, 묘한 느낌이 내 전신을 사로잡았다.

꿈 때문일지 모르겠다. 나는 전보다 100배는 대범해져 버린 모양인지, 바로 욕실로 뛰어들어가지 않고는 등을 돌린 예림이에게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빳빳함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얇은 면의 파자마 자락은, 너무나 적나라하게 부풀어져 올라 있었다. 이미 잠에서 깬 몽롱함은 저만치 달아난 뒤였다.

“어디봐봐.”

“응..?”

예림이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욕실로 들어가야 할 내가 자신의 앞에 떡 하니 서 있으니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당황한 눈망울을 굴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광택이 없는 하얀 브라우스에 치마. 이런 여성스러운 복장으로 레슨을 해주다니...왠지 모르게 누나에게 레슨을 받는 이름모를 그 녀석이 부러워진다.

“나도 누나 코디 해주려고 그래.”

나는 자연스럽게 누나의 작은 어깨위로 양손을 올려놓았다. 그녀의 복장이 어떤지 봐준다는 핑계로, 나는 크게 부풀어 오른 바지의 앞섬을 누나의 치마쪽에 조금씩 붙이고 있었다. 덕분에 예림이는 고개를 떨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머리를 들어 나를 바라보지 못한채 주춤거렸다.

내 손이 어깨위에서 천천히 그녀의 등쪽으로 향했다. 누가봐도 복장을 봐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그런 움직임이었지만, 누나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한채 말없이 서있을 뿐이었다. 도톰한 브레지어의 끈이 손에 걸렸다.

“이 옷은 어디서 났어? 처음보는데..원래 있던거야?”

“으..응.”

틀림없이, 숙모와의 그 일이 나를 더욱더 대담하게 만든 것이었다. 예전처럼 예림이에게 다가갈때에 미묘한 긴장감이나, 혹은 자제력이 발동하지 않았다. 분명 숙모가 내게 열어준 것은 또다른 가능성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가능성’을 종교처럼 철통같이 믿어버린 나는, 예림이의 몸에 조금씩 밀착하며 왕성하게 일어난 살덩이로 그녀의 치마위를 찌르고 있었다.

“자..잠깐만. 나 전화해야 할 곳이 있어서.”

늘상 자위를 함으로서 적정선에서 멈춰섰던 나는, 이번엔 누나에 의해 멈춰서 버리고 말았다. 빨간 볼터치를 한 것처럼 화끈거리는 누나의 볼이 내 턱밑에서 후다닥 떨어져 나갔다. 예림이는 책상위에 놓인 전화기를 들고 내게서 몇 발자국 물러섰던 것이다.

“아..그럼 난 씻고 올게.”

최대한 어색해지지 않으려 노력한 어조로 중얼거린 나는 황급히 욕실쪽으로 몸을 돌렸다. 전화를 한다고 하던 예림이는 휴대폰만 만지작 거릴뿐 전화를 걸지 않고 있었다. 꿈에 취해서 너무 섣불리 들이댄 것일까? 나도 이제 슬슬 미쳐가는 모양이었다.

우웅..우웅..

책상위에서 누나와 나란히 놓여있던 내 휴대폰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좀처럼 연락이 오지 않는 휴대폰이라 인지하지 못하고는 갈아입을 옷을 주섬주섬 꺼내들때에, 살짝 손가락으로 책상위를 가리킨 예림이의 동작을 보고나서야 손을 뻗어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선배. 일어났죠? 저 지금 슬슬 출발하려구요^^-




봄답게 날씨는 맑았다. 나와 나란히 걷고 있는 예림이의 자켓이 훨씬 얇아진 것만 봐도 실감이 날 정도였다. 자켓의 단추를 채워 단정하게 입은 복장이지만, 볼록 튀어나온 가슴부분이 오히려 더 강조되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저번의 데이트와는 달리, 내 쪽에서 먼저 예림이의 부드러운 손을 잡아 끌었다. 휴일의 봄을 맞아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연인들 사이에서, 절대 연인이 될 수 없는 우리둘의 모습은 1퍼센트의 위화감도 없이 동화되어 있었다. 단, 유독 예림이가 말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근데..휴일에는 레슨이 없지 않았어?”

“응?”

“오늘은 주말이잖아. 근데 레슨을 가니까.”

아직은 꽉 쥐고 있는 내 손의 존재가 신경이 쓰였는지, 예림이는 한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내게 되물어 왔다. 옅은 화장을 한 얼굴이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워보였다.

“아..저번에 한 번 그 집 사정상 쉰 적이 있어서..오늘 보충해주기로 했어.”

“그렇구나.”

예림이가 레슨을 하는 그 집은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가야하는 부자동네였다. 공교롭게도 오유민에게 밥을 사주기로 한 그 번화가와는 단 세 정거장 차이가 나는 곳이기도 했다. 서둘러서 데이트, 혹은 나들이를 나온 인파들 사이를 열심히 비집고 들어간 우리는, 가까스로 지하철 안으로 탑승할 수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다..”

인파에 끼인채로, 나를 보며 오물오물 움직이는 그 작고 빨간 입술이 너무나 귀여웠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예림이의 모습은, 누나가 아닌 아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녀는 전처럼 작은 손으로 내 점퍼의 양 옆구리 부분을 살짝 움켜쥐며,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지하철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저 쪽으로 가자. 그럼 편할거야.”

어리둥절해 하는 그녀를 잡아 이끈 곳은 다름아닌 반대편 문쪽이었다. 한동안 우리가 탄 방향으로만 출입문이 개방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저쪽에서 문이 열리면 어떡해?’라고 귀엽게 질문하는 그녀의 말에 미소로 일관해버렸다.

다행히도 때맞춰 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타는 통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곳에 떠밀리며 반대쪽 출입구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손이 아닌 허리를 잡아 끄는 내 손길에도 예림이는 당황할 틈이 없는 듯 높은 구두를 신고 종종걸음으로 나를 따랐다. 내가 출입구 쪽으로 등을 대었을때엔, 예림이는 전처럼 나를 마주보고 선 위치가 아닌 나를 등지고 서서 내 몸에 기대는 형상이 되어버렸다. 내 양손은 어설프게 예림이의 허리를 감싸쥐었고, 한동안 꾸역꾸역 사람들이 더 타고 나서야 우리는 안정적으로 공간을 확보하고 서 있을수 있었다.

-우리 열차 출입문..출입문 닫습니다.-

치이익 하는 특유의 소리와 함께 지하철의 문이 닫히고, 조금씩 차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젊은 인파들로 가득 메워진 지하철안은 좁고 숨이 막혔다. 저마다 몸을 맞대기 싫은 타인과는 접촉을 애써 외면하듯 등을 돌리고 선 그 미묘한 사각에서, 우리만의 공간을 확보한 나와 예림이의 몸도 지하철의 진동에 맞춰 같이 떨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버스때와 상황은 비슷했지만 분명히 차이점이 있었다. 그 때 와는 달리 예림이는 나를 등지고 있었고, 또 그 때 와는 달리 예림이의 표정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향긋한 샴푸냄새가 감도는 그녀의 고운 머리결이 내 턱밑에 위치했으며, 예림이가 의식적으로 떨어지려고는 하지만 그녀의 엉덩이 부분은 내 하반신과 맞닿아 있었다.

덜컹..덜컹..

지하철안은 조용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저마다 일행과 수근거리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은 예림이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내가 숨을 내쉴때마다 내 턱 밑에 있는 그녀의 머리결은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크게 호흡을 하는 것도 신경이 쓰일 지경이었다. 저번에 버스 안에서 일시적으로만 허락되었던 그 상황이 지금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틀림없다. 내가 미친것도 있지만, 세상은 내가 미칠 수 있는 좋은 상황을 계속해서 제공해주고 있었다. 그것도, 이번에 잡지 못하면 절대 잡지 못할 것이라는 뉘앙스 마저 풍기면서 말이다.

그녀의 허리를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촉각으로도 느껴질만큼 움푹 들어간 허리라인을 타고, 그녀의 자켓의 옆자락을 몇번이고 미끌어져 올라갔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것은, 움찔 하는 모습이 아닌 크게 심호흡을 하는 누나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두근거림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금세 기억해 낼수 있었다. 저번에 숙모의 몸을 뒤에서 더듬었을때, 그때 느꼈던 그 느낌과 한치의 오차없이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그 느낌을 느꼈을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내 몸이 너무나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처음으로 들썩이며 움찔거렸다. 예림이의 배꼽부분에 잠겨있던 자켓의 단추를 내가 살며시 끌렀기 때문이었다. 반사적으로 그런 내 손위로 누나의 손이 와서 덮이며 나를 저지하려 했지만, 나는 잠시 멈칫했을 뿐 여전히 그녀의 허리위를 더듬어 가고 있었다.

불과 한달의 시간이었다. 단 한달만에 이런 상황이 이뤄지는 것이었다. 예림이의 속마음은 화상채팅상의 김예영이 되지 않는 이상 알아챌 방도가 없었지만, 나를 흥분하게 하는 것은 적극적인 반항을 하지 않는 예림이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내가 이미 열어두었던 ‘가능성’에 더욱더 무게를 실어 내 손을 움직이게 했다.

아침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아랫도리가 딱딱해져 왔다. 내 손이 그녀의 보드라운 브라우스 위 가슴위로 덮였을 즈음엔, 내가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그녀의 엉덩이 골 사이로 발기한 내 중심부가 파묻혀 버렸다.

“하..”

자기도 모르게 크게 호흡을 해버린 예림이는 깜짝 놀라 얼굴을 숙인다. 우리쪽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는 지하철내의 풍경들에 내 행동은 더욱더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온통 흑백인 화면속에서, 나와 예림이만이 컬러로 비춰지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부드러웠다. 보기만 하고 만지지는 못했던 그녀의 가슴은,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내 손에 짜릿한 질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뒤로 손을 뻗은 예림이가 내 옷자락을 강하게 움켜쥐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하얀손은 지하철의 진동과는 상관없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내 옷자락을 잡아 당기는 예림이의 행동은 ‘이제 그만해’하고 내게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본능은 그것을 ‘흥분이 되니까 그만해’라고 멋대로 해석을 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 행동이 무슨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만의 느낄수 있는 공간에서 있으며, 내 행동에 예림이가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손에 의해, 주름하나 없이 단정하게 정돈되었던 예림이의 브라우스는 심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점점 더 구부정해졌고, 그에 따라 반사적으로 내 하반신에 닿는 엉덩이의 느낌은 강해져왔다. 예림이가 의도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충분히 자극적인 상황이었다. 딱딱한 브레지어의 와이어 느낌에 더욱더 갈증이 불타 올랐다. 내가 욕실틈으로 보았던 그 부드러운 두개의 봉우리를 실제로 만지고 싶다는 생각만이 내 온몸을 지배했다.

‘앗!’

나도 모르게 황급히 그녀의 몸에서 손을 떼어 버렸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줄만 알았는데..30대 정도 되어보이는 여자 한명이 나를 경멸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뿔테 안경을 살짝 손가락으로 올리며, 눈앞에 있는 귀여운 아가씨를 마음껏 주무른 내 행각에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하아..”

하지만 좀처럼 흥분은 가셔지지 않았다. 그 여인에게서 얼굴을 돌려버리면 창피함은 사라지지만, 누나와 몸이 닿아있으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까와는 달리 조금의 여과과정도 거쳐지지 않은 뜨거운 호흡이 내 앞에 선 예림이의 정수리와 목덜미 부분으로 흩뿌려졌고, 내 옷자락을 쥔 예림이의 손에서는 점차 힘이 풀리고 있었다.

-이번역은..-

실내에 울려퍼지는 지하철내 방송에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버렸다. 어느새 내가 내려야 할 그 번화가의 정류장에 도착한 것이었다. 맙소사..나는 여기까지 올 동안 지하철이 멈춰서고, 출입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그 모든 과정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었다.

이번엔 우리가 서있는 곳으로 출입문이 열릴 것이었다. 지하철이 멈춰설 그때까지 우리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녀가 무슨생각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리가 없는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황급하게 내리며, 내 앞에 보이는 작은 귀에다 대고 누나에게 속삭였다.

“이..이따가 집에서 봐. 오늘은 일찍 들어갈게.”

살며시 까딱이는 그녀의 고개를 보며 나는 도망치듯 출입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행히도 그 사이 가라앉은 아랫도리가 조금은 축축해져 있는 것을 느끼면서, 출구의 계단까지 걸어오고 나서야 나는 누나가 타고 있는 전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덜컹거린다. 호흡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몸을 돌려 출입구 쪽을 향한 예림이의 두 볼은, 그 어느때보다도 빨갛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배?”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지하철 안에서의 일을 곱씹고 곱씹으면, 여지없이 나를 현실로 잡아당기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응?”

“뭐 드실거냐구요.”

그리고 현실로 끌려왔을때는, 조금은 토라진 얼굴을 한 또 한명의 ‘예림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글동글한 눈과 앙증맞은 입술이 너무나 귀여운, 오늘은 화장까지 산뜻하게 하고서 발랄한 스커트를 입고 나온 오유민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아아. 너랑 똑같은 거.”

“뭐야..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무것도 아냐. 미안해.”

차라리 아예 예림이와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강한별이나 숙모를 만났으면 내가 이토록 헤메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오늘따라 평소보다 훨씬 더 여성스러워 보이는 오유민의 복장은, 지금의 시간을 예림이와 있었던 시간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게 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되는데..나는 상상속에서 오유민 마저 주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 함께 온 곳은 작은 초밥집이었다. 초밥집이라고 하는것보다 우동전문점이라고 하는 편이 옳으려나? 고급스러운 일식집이 아닌 일본음식들이 있는 분식집에 가까웠다. 그녀는 우동과 함께 초밥이 같이 나오는 세트를 주문하였고, 나는 그녀를 따라 같은 것을 주문했다. 쉴새 없이 떠오르는 이상 야릇한 생각들을 떨쳐버리면서 말이다.

“저는 학교에 있을때 사주실줄 알았는데..휴일에 불러내다니 의외인데요?”

“아..”

몇 번이고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내가 성의없게 느껴질 만도 한데, 오유민은 계속해서 친절하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건..박인재가 알아채면 안되기 때문이야.”

“인재선배요? 왜요?”

“그 자식이 너를 좋아하거든. 너도 알잖아?”

“잘 몰랐는데요.”

“입학 후 부터 내내 그렇게 대놓고 신호를 주는데 모를리가.”

농담하지 말라는 듯 피식 웃어 보이자, 그녀는 조용히 물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분홍빛 입술이 물로 촉촉하게 적셔지는가 싶을때, 오유민은 딴청을 피우듯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고등학교때부터 대놓고 신호를 줘도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요 뭘.”

“뭐?”

“아니에요 암것도.”

웃는 낯에 침을 뱉을 수 없는 것이리라. 저렇게 내 앞에서 생글거리는데 뭐라고 되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참. 선배 엠티 갈건가요?”

“엠티?”

“네. 좀있으면 경제학과 엠티를 가거든요.”

“아..그래?”

“네. 1학년 2학년만 가는 연합엠티라는데..선배 몰랐어요?”

학교일에는 수업 이외에 관심을 끊은지 오래되었으니 그것을 알리가 없었다. 1학년과 2학년 만이라...왠지 골치아플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왔다. 분명 박인재는 만사를 제쳐놓고 참가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글쎄...넌?”

“음..선배는요?”

“내가 먼저 물었잖아.”

“아뇨. 가장 처음에 제가 먼저 물었죠.”

“먼저 대답하는게 뭐가 어때서 그래?”

“그 대답에 따라 제 의사가 결정될수 있어요.”

오유민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내 앞에서 증명한 그 이후부터, 이상하게도 오유민은 점점 대담해지고 있었다. 초반에 조금 부끄러워 했던 이미지를 어느새 탈피하고는,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간다는 표현이 옳았다. 내가... 예림이에게 적극적이고 대담해진 것처럼 말이다.

“한 번도 안가봤으니까..가볼까?”

“정말로요? 정말 한 번도 안가봤어요?”

“응.”

“어째서요?”

“MT라는게 솔직히 의미가 없는것 같았어. 오죽하면 MT가 ‘마시고 토하고’의 약자라는 소리까지 나왔겠냐.”

“풉!”

오유민은 내 심드렁한 표정에 고개를 숙여 쿡쿡 거렸다. 우스갯말로 들리겠지만 사실이었다. 내가 알기론 1,2학년 연합엠티란 1학년 남자 애들이 술에 쩔어 죽는 기간이었으며, 반반한 1학년 여자애들이 흑심을 품은 2학년에게 집중포격을 당하는 그런 위험한 기간이었다. 1학년때에 내가 불참했던 연합엠티를 다녀온 인재가, 내 귓가에다가 대고 ‘2학년이 되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연합엠티를 간다’라고 말했던 것도 분명 무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론은요?”

“음?”

“갈거에요? 안 갈거에요?”

“그게 언젠데?”

“다다음주라고 들었어요.”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오유민은 내가 가면 가겠다 라는 강경한 의지를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순간 이유는 알수 없지만 강한별의 얼굴과 오유민의 얼굴이 같이 스쳐지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한번쯤 가는 것도 괜찮겠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가지 뭐.”

“와.. 정말요? 그럼 나도 결정.”

내가 뭐라고 할 때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절묘한 타이밍에 그저 고개만 긁적거린 나는 오유민을 따라서 같이 젓가락을 들었다. 그녀는 ‘잘먹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난 후에야 음식에 젓가락을 뻗었다.

“근데. 설마 밥만 먹고 끝은 아니죠?”

“..음?”

입안에 초밥을 우겨넣고 우물거리던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유민을 바라보았다. 뭔가 기대감이 가득 차있는 듯한 그 모습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이렇게 휴일에 불러내셨는데 밥만 먹고 빠이빠이 하는건 아닐거 같아서요. 영화 정도는 보지 않나요?”

“...역시 학교에서 사주는 건데.”

내 중얼거림에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하얀 손이 얼굴의 반을 가리며, 초승달처럼 웃고 있는 눈을 보자 정말 예림이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걱정마세요. 영화는 제가 보여드릴게요.”




그다지 비싸지 않은 밥을 사주고 나서, 그녀의 말을 거부하지 못한 나는 기어코 영화관 앞까지 가고야 말았다. 하늘색 스커트가 아른아른 거리며 그 속에서 움직이는 하얀 다리를 본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예림이의 다리와 비교를 하고 있었다.

“이거! 이거 어때요?”

오유민이 가리키는 포스터를 본 나는 아연실색했다. 맙소사..예림이 때는 겨우겨우 피해갔다고 생각했는데..그녀가 가리킨 것은 다름아닌 예림이와 보려고 했다가 보지 못했던 그 멜로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때와는 달리 시간대도 피해갈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거 봐요. 짝사랑만 계속 했던 남자가 여자랑 잘 되는 스토리래요.”

그런건 뻔한 줄거리잖아..라고 이야기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오유민이 보여주는 것이니 내가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도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말이야. 이거 보자면 보겠는데..”

“네?”

“짝사랑하는 남자가 결국엔 여자와 잘 되는 이야기라며?”

“네. 맞아요. 영화리뷰 프로그램에서 봤어요.”

“그럼 줄거리를 다 알고 있는데 뭐하러 봐?”

“에?”

어리둥절한 그녀의 표정에도, 나는 뜻을 굽히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 둘이 잘되는 건 뻔한 건데..”

“흠! 선배는 역시 감성이 메말랐어요.”

“감성?”

“결과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어떤 과정이 이루어졌는가가 재밌는거죠.”

“과정?”

줄거리를 알기 때문에 재미없는 영화라고 치부해 버린 내 태도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오유민의 귀여운 얼굴은 살짝 찡그려졌다.

“네. 분명 시련도 있을거고..여주인공과 엮이는 그런 과정들이 있을 테니까요.”

그녀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과정..과정이라. 곰곰히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말이 아닐수 없다. 과정이라는게..확실히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지하철에서 있었던 예림이와의 일도...어찌보면 결과가 아닌 과정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나와..예림이의 사이에 그어져 있는 선이 지워지는 과정말이다.

“선배. 저쪽이에요.”

내 팔을 잡아끄는 오유민의 손에 이끌려, 나는 코너를 돌아 매표소가 있는 곳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작은 전광판으로 우리가 보려는 영화가 곧 시작되며, 잔여석이 무려 90석이나 남아있다는 안내문이 뜨기 시작했다. 매진이기를 기대했는데...

‘헉!’

“어머!”

마음속으로 헛바람을 집어삼킨 나는, 코너를 돌자마자 보이는 스넥코너를 보고는 깜짝 놀라 오유민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스커트자락이 핑그르르 하고 돌더니, 이윽고 달콤한 향기가 코를 확하고 찔러왔다. 그녀는 어정쩡하게 내 가슴에 얼굴을 묻어 버렸고, 나는 다른 것은 생각할틈도 없이 오유민의 허리를 잡아 반대편 코너로 돌아버렸다.

“서..선배?”

그녀의 두 손이 어정쩡하게 내 허리 부분을 잡았다. 지나가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꼴불견이라는 듯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스넥코너에서 무언가를 사던 사람이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그렇게 오유민과 함께 몸을 숨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강한별...?’

맞다. 찰나의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강한별과, 그 옆에 있는 삼촌의 모습이었다. 저번처럼 즐거움이라고는 전혀 나타나지 않은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과, 그런 미인과 끼고 다니는 것이 훈장인양 으쓱대며 강한별의 허리에 팔을 두른 삼촌의 모습이 있었다. 밤 늦은 시간에만 만나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이었다.

“왜..왜그래요?”

아차, 그제서야 나는 오유민을 끌어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톰한 볼이 살짝 발그레해지면서, 작은 손으로 내 가슴을 살며시 밀어내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그게..”

마땅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뜨거운 냄비를 만진 것처럼 화들짝 그녀의 몸에서 손을 떼는 수밖에는...별다른 말이나 행동이 그려지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강한별의 모습을 오유민에게 보여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뿐이었다. 물론 강한별과 삼촌이 내 모습을 보는 것은 더더욱 꺼려졌다.

“빨리..표나 끊으러 가요...”





- 쭉...지켜봐왔어. 정말이야.-

-왜..그동안 말하지 않았어?-

-용기가 없었으니까..-

요즘말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아련히 올라오는 짜증을 느낀것은 나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 대다수의 관객들은 울고 웃으며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에 눈을 떼지 못했다.

‘다행이다..’

나는 계속 그렇게 안도의 한숨만을 쉬고 있었다. 삼촌과 강한별이 보려는 영화는 다행히 우리와 같은 영화가 아닌 모양인지, 쭈뼛쭈뼛 매표소 쪽으로 몸을 내밀었을때에 그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한별과 삼촌이 나를 대면했을때엔 어떤일이 벌어질까.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 두사람은 동시에 나를 알아볼 것이며, 복잡하게 꼬인 관계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 날에는 아마도 내 일상생활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어날 것이었다.

숙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집에서, 급식소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가만히 삼촌을 기다렸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분명 숙모가 원한것은 삼촌과의 잠자리에서 얻는 만족감이 전부가 아닐 것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원했고, 애석하게도 삼촌은 자신의 아내가 아닌 스무살의 젊은 여자애에게 미쳐서 돈을 퍼주고 있었다.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 날, 숙모가 두려워하는 번개가 쳤으며, 나와 숙모사이에 놓인 벽이 산산히 부숴졌던 바로 그 날 이후로 나와 그녀는 전보다 몇배나 가까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건수는 얼마든지 다시 생길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내 밑에서 누워있던 숙모의 두 눈에 떠오른것은 일종의 만족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삼촌에 대한 분노가 사그러들리가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원하는 아이를 만들어 줄수는 없다. 게다가 그것은 분명 숙모에게 있어서 죄책감을 동반한 것임에 틀림없을 터였다.

숙모는 분명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남편이 밖에서 젊은 여자애와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자로서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모욕을 겪으면서도, 그녀는 가정을 깨지 못한채 아이를 원했다. 자신의 철없는 남편이 언젠가 철이 들겠지 하는 기약없는 막연한 기대를 가슴에 품은채로 말이다.

주먹이 쥐어졌다. 오유민이 집중하고 있는 스크린에서는 아름다운 앤딩씬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내 가슴속은 절대 아름답지 않았다. 삼촌에 대한 알수 없는 복수심이 불타 올랐다. 그도 느껴봐야 했다. 숙모가 갖고 있는 상실감과, 자존심이 산산히 부숴지는 그 분한 느낌을 말이다.

그리고...내 머리속에서 삼촌이라는 악인을 무릎꿇게 할 비책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선배?”

“응?아..응.”

“치..뭐에요. 오늘따라 이상하잖아요.내내 생각에 잠겨있고.”

“아아. 미안해.”

“어서 나가요. 영화 끝났어요.”

오유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치마가 팔랑거리는 그 틈으로 뽀얀 허벅지가 보였다. 나에게 쏘아붙였던 그 모습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내 팔을 잡아끄는 그녀의 동작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여자 주인공..부러워요.”

“어?”

“그 영화 말이에요. 자기를 그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할거 같아요.”

문득 꺼낸 오유민의 말에 ‘너에겐 인재가 있잖아..’라는 말을 꺼낼수 없었다. 누가봐도 그녀는 인재를 좋아하는것 같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주 어설프게 둘러진, 그러나 확실히 존재감이 느껴지는 그녀의 팔이 내 팔목을 붙잡고 있었다.

“선배랑 저랑은 반대 방향이죠?”

그녀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그녀와,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나는 각각 다른 방면의 지하철을 타야만 했다.

“오늘은 첫 데이트니까 바래다 달라고 하지 않을게요.”

“데이트?”

내가 되묻자 그녀는 베시시 하고 웃으며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내 팔을 감싸쥔채로 조금더 내 쪽으로 붙어서는 그녀의 모습에, 오늘 내가 밥을 사준다고 했던 것이 단순한 약속이 아닌 데이트로서 성립되었다는 것을 통감할수 있었다.

-선배의 누나와 닮았지요.-

계속해서 강한별의 말이 머리속에 메아리쳤다. 여우의 꾐이라고 고개를 저어보려해도, 점점 더 완벽하게 예림이의 얼굴과 일치해가는 유민이의 모습에서 눈을 뗼수 없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선배. 저 이제 들어갈게요.”

지하철 입구에 다다랐을때, 그녀는 살짝 몸을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술이라도 마시고 싶었지만 강한별과 삼촌이 활보하며 다니고 있을 이 거리에서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한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뭔데?”

“인재오빠랑은..어떤 친구 사이인가요?”

“그게 무슨말이야?”

해가 지고 쌀쌀해진 밤공기의 네온사인 불빛이 비추는 길에, 오유민의 작은 입술에서는 희미하게 입김이 베어나왔다. 질문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내 표정을 보며, 오유민은 힘을 주어 말했다.

“제가 다가가도, 인재오빠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친한 사이인가요?”

시간이 정지한 듯, 그녀의 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고백..같은 건가? 아니 고백이 확실해 보였다. 고백을 하는 그 모습마저도 예림이의 얼굴위로 합성을 해버리는 내 자신이 조금 밉다.

“아니.”

끝내 나는 그렇게 입을 열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는게 조금은 찔렸지만, 남자로서 기분이 좋아질 만한 예쁜 웃음이었다. 고른 치아가 살짝 입술을 따라 웃는다.

“한별이랑 사귄다는 소문이 진짜인줄 알고...속상했어요.”

내게서 떨어져 마주보고 서니, 그녀는 더욱더 용기가 솟아난 모양인지 나를 더욱더 쑥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 쑥스러움을 표현하기 싫어서, 나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한별이에게 물어보지 그랬어. 둘이 같은 집에 살잖아.”

“그렇게..친한편이 아니라서요.”

“그렇구나..같은 건물 옆방에 산다길래 나는 친한줄 알았어.”

“네?”

내 말에 오유민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 이번엔 내가 뭘 잘못말했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옆방이라니요?”

“아니..었어? 소문이 그렇길래.”

강한별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녀와 나 사이의 섬씽이 들통날것 같아 나는 소문이라고 황급히 둘러대었다. 밤빛을 받아 아까보다 더 반짝거리는 입술을 오무린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한별이 윗층에 사는데요.”

내 미간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미처 표정관리를 하지 못한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오유민의 큰 눈은 더욱더 커져서 의아함을 담고는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젠장..나 또 당한거야? 문득 옆 방에 오유민이 산다는 말에 당황해하는 내 얼굴을 관찰하던 강한별의 여유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하여튼..전 이만 갈게요.”

“그래. 들어가.”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뒤돌아 지하차도의 계단을 내려가는 오유민의 뒷모습이 보였다. 전철에서 보았던 예림이의 뒷모습과 오묘하게 비슷한 그 모습에 달려가 껴안고 싶은 충동이 들어왔지만, 나를 집요하게 가지고 노는 듯한 강한별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지금쯤 어디선가, 그녀는 화(和)를 깨고 있을 것이다. 등지고 있던 무수한 네온사인의 번화가를 뒤돌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가만히 중얼거렸다.

‘두고보자..여우같은 계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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