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그녀와 그녀의 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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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4,656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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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녀의 딸(4)


4)고모와 고모의 시누이


나에게는 나와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고모가 있다.

할머니는 원 하지 않았던 고모가 늦은 나이에 생기자 거의 천덕꾸러기로 살아야 하였다.

그래서 심지어는 올케인 우리 엄마의 젖을 얻어먹기도 한 젖동냥을 하였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었지만 창피해 하는 고모는 그런 사실을 극구 부정하고 있지만 먹은 고모는 나이가 여렸기에 그런 사실을 몰랐을지 모르지만 준 엄마로서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에 난 엄마의 말을 믿으며 고모하고 같이 엄마의 젖을 먹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물론이지만 철이 없던 어린 시절에도 난 고모를 고모라고 부르기는 정말이지 죽기보다도 싫었다.

나이라도 몇 살이 많으면 고모라고 불러 주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같은 해에 태어났고 두 달 남짓 아니 정확하게 말하여 두 달하고 고작 8일이 빠른데 고모라고 부르기에는 정말이지 억울하다고 생각을 난 한 것이었다.

할머니할아버지 그리고 삼촌이나 다른 고모들의 경우 막내 고모의 이름을 그냥 불러도 웃기만 하였지만 유독 우리 엄마아빠는 나에게 고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회초리로 때리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고집불통을 삶아 먹었던지 난 엄마아빠에게서 맞으면서도 한사코 고모를 고모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정희하고 이름을 불렀고 어렸을 때 한참 유행을 하던 여자아이 치마를 들치고 도망을 하면서 아이스깨끼라고 외치는 놀이도 다른 아이들에게는 전혀 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만만하기 그지없던 고모를 상대로 하였기에 고모는 걸핏하면 조카인 나의 아이스깨끼 놀이에 울음을 터트리곤 하였고 난 선생님들이나 엄마아빠에게 심심하면 벌을 서는 그런 못 된 아이였었다.


반면 고모는 물론 사내인 나에 비하여 등치도 적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나는 아빠라고 불러야하였던 아빠에게 오빠라고 부르고 나는 엄마라고 불러야 하는 우리 엄마에게는 올케언니라고 불렀기에 어떤 면으로는 조금은 어른스럽게 보이기도 하였는데 난 그게 항상 불만이었다.

그래 몇 살 때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나도 고모처럼 한답시고 아빠에게 형이라고 불렀다가는 다리몽둥이가 부러지지 않을 만큼 맞아야 하였는데 뭐라나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표현처럼 때리는 아빠보다 울면서 때리지 말라고 오빠에게 애원을 하며 가로막던 고모가 더 밉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었다.

내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고모를 괴롭히려 드는 반면 고모는 항상 내 편을 들어주려고 하였지만 난 그게 더 안 좋게 생각을 하였던 것이었다.


요즘이야 널린 것이 과자요 음료수이지만 내거 어린 시절에(요즘의 초등학교)소풍을 가게 되면 고작 가져간다는 것이 주먹밥 비슷한 김밥이 고작이었고 간식거리로는 고구마나 감자 삶은 것 아니면 삶은 달걀 두세 개면 아주 풍족한 정도였는데 엄마는 나와 고모가 소풍을 가게 되면 항상 고구마나 감자 그리고 삶은 달걀도 고모에 비하여 한두 개 작으면 작았지 나에게 많이 싸 준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소풍을 가면 고모는 자기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는 상상 나에게 자기의 많은 것을 주려고 하였지만 무슨 심통이 그리도 많았던지 고모가 자기 것을 나에게 주면 난 그것을 마치 더러운 것 인 냥 고모가 보는 앞에서 팽개쳐 버렸고 그럼 고모는 울먹이며 주워서는 나에게 먹으라고 하였지만 난 한사코 고모가 주는 것을 받지 아니하고 던지기 일쑤였을 정도로 고모는 착한 반면 난 심통뿐인 그런 아이였다.


뿐만 아니었다.

난 세상에 무서운 사람이라고는 어머니 아버지 둘 뿐이었다.

종손이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삼촌들과 고모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였다.

그 귀여움의 독차지는 나에게는 약이 된 반면 화가 되기도 하였다.

다른 가족들의 사랑이 독차지 한 반면 난 아버지어머니에게서는 경계 대상 제 일 호였다.

장독이 엄청 많았고 식구들도 많았으며 일 년 열두 달 손님이 끊기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많은 손님들이 오는 집안 탓에 식기들도 엄청 많았는데 그릇이 깨어지는 소리만 나면 어머니는 제일 먼저 나를 부를 정도로 난 요 주의 대상이었고 반면 내가 실수로(?)그릇을 깨트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곁에 있던 고모가 자신이 깨트린 것이라고 나서곤 하였지만 곁에 내가 있기라도 할라치면 어머니의 핀잔을 모두 내 목이었고 어머니에게 혼찌검을 당한 후의 앙갚음은 고스란히 고모가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또 내가 고모란 존재를 싫어하는 이유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고모와 아주 절친한 사이인 경란이라는 년 때문이었다.

우리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던 경란이는 고모처럼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었다.

대신 고모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성깔이 정말이지 더럽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결정적으로 경란이 년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고모하고 친구라며 자기도 고모처럼 대하라는 경란이 년의 요구였다.

그러기에 내가 너희 엄마하고 같은 항렬이라 외삼촌이라면 나에게 외삼촌이라고 부를 것이냐고 물으면 미쳤냐고 하면서 깔깔 대는 모습은 똥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할 정도였다.


학교에서만은 난 꼼짝을 하지 못 하였다.

고모하고 경란이가 상위권인 반면 난 언제나 제일 밑에서 꼴찌를 유지하였기에 아무리 내가 착한 일을 하였고 그들이 날 귀찮게 하였다고 할 경우라도 선생님의 눈에는 모조리 나의 잘 못이고 내가 시비를 걸었다고 봤기 때문에 난 항상 학교 안에서만은 벌벌 기는 존재였다.


하지만 하교를 하여 학교 대문만 벗어나면 세상은 모조리 내 손아귀에 있었다.

그래서 고모나 경란이는 내가 청소를 하는 틈을 타서 잽싸게 집으로 갔다.(일주일이면 적어도 4일 이상은 청소를 하였을 정도로 난 선생님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나와 같이 하교를 하여야 할 경우에는 일부러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하고 함께 있다가 하교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시험 뒤에 선생님이 채점을 하거나 당직을 서야 할 경우는 하늘이 나에게 준 최고의 복수 기회였다.


일주일치 복수를 하루 만에 다 하는 것입니다.

복수 방법도 지금 생각하면 아주 치졸하였습니다.

하지만 복수도 등급이 있었습니다.

은연중에 같은 핏줄임을 속이지를 못 하였던지 고모에게는 남이 보든 말든 그냥 치마만 들치고 아이스깨끼를 외치는 정도로 끝을 낸 반면 고모의 친구 경란이에게 거는 복수는 경란이가 당하고도 누구에게 고자질을 하지도 못 할 그런 유치한 방법을 썼기에 경란이는 내가 가까이만 가면 대경실색을 하며 놀라 도망을 치기에 바빴습니다.

힘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나에게 잡히면 경란이 정도는 한 손으로도 들어서 던질 정도의 힘을 가졌던 난 경란이가 잡히기만 하면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가서는 허리를 눌러서 꼼짝을 못 하게 하고는 팬티까지 내리고는 볼기짝을 때리는 것은 보통이고 보지 금에까지도 벌겋게 되도록 때리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 보복을 당하고는 경란이는 울기만 하였지 부끄러운 마음에 누구에게도 고자질을 하지 못 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였습니다.


반면 경란이는 그런 곤혹스런 짓을 나에게 당하면서도 은근하게 쾌감을 느끼기 시작을 한 것을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때였답니다.

내가 강한 힘으로 억누르고는 팬티를 내리고 볼기짝을 때릴 때는 은근히 더 밑을 때려주길 바라기 시작하고 비명을 지르지 아나하였으니 말입니다.

아니 상체를 더 밑으로 내리며 엉덩이를 들어주었으니까요.

그리고 울지도 않았고 나도 모르는 가쁜 숨만 몰아쉬기만 하였답니다.

하지만 난 경란이의 그런 이유를 전혀 몰랐답니다.


6학년이 되어서 난 겨우 남자하고 여자가 밤에 이상한 짓을 하면 아기를 배게 된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몰랐습니다.

계집애들이 그런 분야에서는 남자 애들보다 훨씬 일찍 깨우친다는 것을 난 경란이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피하기만 하던 경란이가 되레 나에게 벌을 받기를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심한 벌까지는 받지 않았던 고모는 내가 나타나면 피하기 급급하였지만 경란이는 일부러 나에게 다가와서는 약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엎드리게 하고는 팬티를 내리고 볼기짝과 보지를 손바닥으로 칠라 치면 가랑이를 고의적으로 크게 벌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더 힘을 주어 때렸고 경란이는 씩씩 거리면서도 기는 신음을 나며 가랑이를 더 크게 벌렸습니다.

그럼 숨어서 지켜보던 고모는 부끄러움에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지만 손가락이 벌어진 것만 봐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여름방학 앞에는 내가 때리면 한 대만 더라고 외치며 오줌을 지리는 일까지 발생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전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 연유를 알게 된 것도 경란이 덕 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고 얼마 안 지나서 경란이가 밤에 나만 고모 몰래 나오라고 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난 경란이를 따라 갔고 거기서 예전에 보지 못 한 희한한 광경을 목격 한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 개들이 엉덩이를 마주대고 소위 우리들 말로 헐 레를 붙은 광경은 간혹 목격을 하였지만 남자가 여자 위에서 여자 보지에 좆을 꼽고 헐 레를 붙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저였는데 그런 광경을 경란이 손에 끌려가서 구경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장본인은 우리 막내 고모 위위인 고등학교에 다니던 고모였고 상대 남자는 놀랍게도 군대에 가려고 영장을 기다리던 경란이 오빠였습니다.

경란이는 몇 번이나 자기 오빠하고 우리 고모하고 하는 것을 목격하였고 그날도 오빠가 나가자마자 바로 저에게 와서는 저를 데리고 전부터 우리 고모하고 자기 오빠하고 붙어먹던 자리로 끌고 갔고 거기선 전 그런 관경을 목격을 하고 만 것입니다.


“너희 고모 아주 좋아하지?”경란이가 제 손을 잡고 입을 귀에 대고 소곤거렸습니다.

“그러게 저렇게 하는 것이 재미있나봐 히히히”저도 경란이 말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저게 바로 빠구리란 거야”경란이가 아는 척을 하였습니다.


빠구리

말은 많이도 들었고 하였지만 정작 어떻게 하는 것이 빠구리인지는 몰랐던 저로서는 아주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일찍 시작을 하였던지 얼마 구경을 못 한 상태에서 경란이 오빠는 일을 마쳤던지 고추 아니 좆을 우리 고모 보지에서 뺐고 그리고 뭔가를 빼더니 풀밭으로 던져버리고는 우리 고모가 팬티를 끌어올리고 치마를 단정하게 하자마자 서로 등을 돌리고 제 갈 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난 경란이가 작정을 하고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란이 손에서 불빛이 나왔고 그 불빛은 경란이 오빠가 좆에서 뭔가를 빼서 버렸던 풀밭에 달빛 아래에서 더 밝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헤헤헤 찾았다”경란이 손에 들린 것은 풍선 같은 것으로 그 안에는 하얀 액체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놈의 정체가 콘돔이었다는 사실은 중학교에 들어가서였습니다.


“뭐야? 이게 이렇게 냄새가 고약해?”풍선 같은 것을 들더니 냄새를 맡고는 경란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래 냄새 고약하다 오줌도 아니고 이게 뭐지?”냄새를 맡은 저도 미간을 찌푸리며 경란이를 보고 묻자

“넌 몰랐니? 이게 보지 안에 들어가면 아기가 되어서 나오는 거야”경란이는 그런 것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우리 고모 아기 밴 거야?”놀라며 묻자

“아기 안 배게 하려고 이것을 고추에 끼우고 했잖아, 바보야”고모랑 경란이에게 벌을 주던 제가 졸지에 바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기~씨를 안 넣으려고 이걸 끼고 했단 말이지?”하고 묻자

“그래 이제 알겠니?”하고 말하며 그것을 주머니에 넣으려 하기에

“뭐하게? 버려”하고 말하자

“씻어서 쓰게”하고 말하기에

“누구랑?”하고 묻자

“몰라 바보야”하고는 혀를 날름대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상근아 그거 씻어서 달라붙지 않게 로션 발라두었어”이튿날 동이 트기 무섭게 우리 집으로 온 경란이는 고모에게 온 것처럼 하더니 고모가 무슨 일로 나가자 제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렸습니다.

“!”그때서야 난 경란이가 그걸 가지고 나와 해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짐작하였습니다.


“우리 해 볼래?”조심스럽게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온 것은 고모와 경란이가 엎드려 방학숙제를 하자 공부하고는 거의 담을 쌓고 있던 제가 그들 옆에 엎드리고 방학 책을 뒤적이다가 고모가 변소에 간 틈을 타서 한 것입니다.

“정말?”경란이의 반응은 마치 그 말이 제 입에서 나오기를 기다린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응”하고 대답하자

“그럼 말이지 오늘 밤에 00네 맷둥으로(무덤의 사투리) 나와 알았지? 민지 모르게”경란이가 고모를 경계하며 나직하게 대답하자

“그래 알았어. 그럼 놀아”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학 책을 엎어서 던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자 끼워”둥근 달이 휘영청 뜬 밤이지만 남의 무덤가도 훤하게 비추고 있었기에 그리 무섭지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경란이가 저에게 건네 준 것은 바로 경란이 오빠가 우리 고모하고 빠구리를 하면서 좆에 끼웠던 바로 그 고무풍선 같은 것으로 경란이아 깨끗하게 씻고 크림까지 바른 것이라 냄새도 향기로웠습니다.

“헐겁잖아?”고추를 꺼내고 그것을 끼우며 말하자

“넌 아직 안 커서 그래”경란이는 치마를 들치고 팬티를 내리며 말하더니

“자 이걸 깔아”하며 경란이는 보자기 하나를 저에게 건넸습니다.

“!”전 경란이의 치밀한 준비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보자기를 깔자 경란이는 그 보자기 위에 누웠습니다.

“해봐”경란이가 두 손을 벌리며 말하였습니다.

경란이 볼기짝을 때리기도 하였고 손바닥으로 보지금은 물론이고 보지 전체를 때리기도 하였지만 정작 고추가 보지 어디로 들어가는지는 전혀 몰랐던 저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올라 와봐 그럼 내가 넣게 해 줄게 히히히 난 어디로 넣는지 봤거든”경란이가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전 경란이가 시키는 대로 행동을 하였습니다.

“살살 내려”경란이 몸에 몸을 붙이고 있자 하체를 조금 들라기에 들었고 경란이가 제 고추를 잡고 어딘가에 대어주더니 나직하게 말하였습니다.

“이렇게”엉덩이를 천천히 내리며 묻자

“으~으~살살 으~으”경란이가 미간을 찌푸렸고 그리고 두 손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아파?”경란이가 미간을 찌푸린 것을 보고 묻자

“조금 말 시키지 마 들어갔어?”경란이가 어금니를 물며 물었습니다.

“막힌 것 같아”하고 말하자

“그래? 그럼 힘주어 눌러”역시 어금니를 물고 말하였습니다.

“에잇! 이렇게?”힘주어 엉덩이를 누르며 물었습니다.

“!”경란이는 무슨 일인지 힌 눈동자를 크게 들어내며 말을 못 하였습니다.

“겨....경란아! 겨....경란아!”전 놀라며 경란이 볼을 손바닥으로 경란이 이름만 불렀습니다.

“끄~응 들어갔어?”경란이 눈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며 물었습니다.

“응 들어 간 것 같아”하고 말하자

“휴~그래 가만있어 많이 아파”하고 말하며 미간을 계속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경란이 보지에서 고추를 빼고는 경란이는 덜하였지만 저는 아주 놀랐습니다.

고무풍선 같이 생긴 것 안에는 경란이 오빠와 우리 고모가 빠구리를 하였을 때처럼 하얀 물이 나오지는 아니하였고 겉에는 경란이 보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이 되는 피만 듬뿍 묻은 상태였습니다.

“헤헤헤 처녀막 깨어졌네.”경란이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경란이의 처녀막이 터져서 나온 것이란 것을 중학교에 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서는 전 경란이에게 볼기짝이나 보지를 때리는 버릇은 사라졌고 대신 수시로 고모나 다른 사람들이 이목을 피하며 같은 짓을 하였습니다.

또 경란이가 하지 말라는 짓을 하지 않는 아이로 돌변을 하고 만 것입니다.

경란이는 질투심도 강하여 그런 일이 있고는 고모에게 심심하면 하였던 아이스깨끼 놀이도 끊어야 하였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경란이 오빠가 우리 고모하고 빠구리를 하고 버린 콘돔은 사용하고 씻고 또 사용하기를 반복하여(경란이는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이 사용을 하고 나면 바로 씻고 말려서는 크림을 발라서 보관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함)중학교에 올라가서 경란이 오빠가 군대에 가고 나서 오빠 방에 숨겨진 콘돔을 찾아내기까지 쭉 사용을 하였으며 그 콘돔에는 단 한 번의 내 좆 물을 받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새 콘돔을 끼고서 경란이와 첫 빠구리를 하고는 생애 처음으로 저도 경란이 오빠가 콘돔에 싼 것처럼 쌌고 그리고 섹스의 쾌감을 처음으로 느꼈으며 그 쾌감은 다시 화를(?)불러오고 말았으니 그 생대가 바로 저와 동갑이지만 두 달하고도 고작 8일이 빠른 고모였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니 여학생들의 성숙은 남학생이 비하여 비교적 빠른 편이었습니다.

경란이하고는 달리 고모는 저를 점점 멀리하려 들었습니다.

경란이하고 가깝게 지내는 것에도 불만인 것 같았습니다.

심심하면 경란이하고 다투고 몇 날 몇 칠을 서로 말을 하지 않을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 그럴수록 저는 고모에 대한 호기심은 더하여 갔습니다.

나를 멀리하려는 고모의 의도가 궁금하였습니다.

결정적인 뭔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심 끝에 방법을 하나 찾았습니다.

경란이에게 방과 후에 만나자는 쪽지를 같은 것으로 두 장을 써서는 하나는 경란이에게 주고 하나는 고모 방바닥에 흘려버렸습니다.

이틀 후인 토요일 오후에 첫 관계를 가졌던 그 무덤에서 만나자는 쪽지였는데 쪽지를 고모가 주워서 본 그날 고모는 경란이하고 대판 싸웠고 그리고 고모도 경란이와 내가 만나는 것에 대한 질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고모는 경란이하고 싸우면서도 쪽지에 대하여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토요일 오후 경란이와 그 무덤에서 만나서는 평소처럼 신나게 빠구리를 하였습니다.

다만 나의 눈은 경란이의 보지에나 점점 불러오던 젖가슴에는 두지 않고 무덤 주변의 숲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였습니다.

쪽지는 고모를 그 무덤으로 끌어들였고 고모는 제가 경란이하고 빠구리를 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숨어서 보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경란이를 먼저 집으로 가게하고 난 한참을 있다가 숲에서 나갔는데 경란이와 고모는 머리채를 잡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다른 것이었지만 전 그게 제가 경란이하고 붙어먹는 것에 대한 감정을 고모는 스스로 제어를 하지 못 하고 다른 것을 핑계로 싸우면서도 저의 눈치를 보는 것을 보고 알 수가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했니?”그날 저녁 먹을 것이 귀하던 때라 생고구마라도 깎아 먹을 요량으로 광에 가는데 고모가 뒤따라 들어오더니 물었습니다.

“뭐?”시치미를 때고 묻자

“경란이 년하고 하던 것”고모가 밖을 기웃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뭘 말이야?”다시 시치미를 때며 물었습니다.

“이것 했잖아?”고모가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더니 왼손의 검지로 그 원 안에 넣고 빼기를 반복하며 물었습니다.

“봐......봤어?”놀란 척 하며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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