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비극 - 가족의 결계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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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4,071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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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 가족의 결계 (프롤로그)
 
 
2000년...
행복했던 우리 가족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선대에서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건설업을 시작하여 불과 10여년만에 국내 정상급 건설회사를 이룩한 재계에서 알아주는 신화적 존재였다. 그러나 건설업을 위주로 시작한 아버지의 사업이 탄탄대로를 달리자 욕심을 내어 시작한 유통업과 외국의 자동차 수입판매업 등에서 생각보다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유통업에서는 국내 굴지의 마트회사의 벽을 넘기가 힘들었고, 자동차판매업은 유럽의 자동차를 야심차게 들여왔으나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해버렸다.
건설사에서 종합 그룹사로 변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사업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은데다가 98년 IMF로 인한 국가적 구조조정 바람앞에서 아버지의 건설회사 마저 결국 경제한파와 건설경기 침체를 이기지 못하고 부도가 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아버지의 회사에 온 가족 또는 자신의 희망적 미래를 기대하며 열심히 일하던 직원 2000명의 명운을 건 채권단과의 딜을 통해 아버지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직원들이 고생할 수는 없다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산을 모두 포기해가면서 직원을 그대로 고용유지한채로 채권단을 통해 타 회사로 매각을 진행하였고, 모든 회사의 매각이 끝나고 난 후, 우리 가족은 결국 단 한푼도 쥐어보지 못한채 길바닥에 버려졌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나의 동생.. 그렇게 네식구는 서울 변두리에 정말 작은 허름한 여인숙에서 보름정도를 보냈고, 아버지는 지인들을 통해 겨우겨우 방두개만 딸랑 있는 지하 월세방을 구할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것이 마지막이었다. 정말 처절하게 망했던 아버지는 다시 재기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매일을 술로만 보내던 아버지는 결국 교통사고를 당했고, 치료가 가능했던 사고였음에도 치료비가 없어 수술을 못하고 다리불구가 되어 집에만 누워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렇게 46살의 아버지는 식구에게 짐이 되어 버렸다.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기전 국내 최고의 여대로 불리우는 이대 메이퀸에 선정되어 그 당시 뉴스에도 여러번 회자 되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분이었다. 올해 나이 41세.. 중년으로 접어든 나이임에도 대학에 재학중이면서 아버지와 연애를 했고, 졻업 후 바로 결혼을 하여 자산가의 안주인으로 생활을 해서였는지 그 아름다운 자태와 용모를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아버지 또한 재벌가 오너들의 파티에 참석 할때면 가장 돋보이는 외모를 가진 어머니 덕분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일들을 집에와서 신명나게 자랑을 하곤 했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아름다운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난후 단 돈 만원짜리 하나 마음대로 쓸수없는 극빈층의 환경으로 추락을 하자, 한동안은 정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한숨만 쉰채 살 수 밖에 없었고, 조금씩 젊음을 유지하던 그 외모도 갑작스럽게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늙어가는 것만 같았다.
모든것을 손에서 놓은 채 그렇게 멍하니만 계셨던 어머니도 아버지의 교통사고 이후 한차례 크게 눈물을 흘리고 나신 후, 가족을 위해 자신이 정신을 차리셔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여러군데 일자리를 알아보고 난 끝에 한 빌딩 건물 청소부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기업의 회장님 사모님에서 조그마한 건물 빌딩 청소부로의 추락을 어머니는 그래도 잘 이겨내시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동생... 이제 중학교 3학년인 동생과 나는 정부보조금과 어머니가 건물청소부 일을 시작하며 벌어오는 돈을 통해 겨우 학교에 다닐수 있었다, 나는 성격이 유순하고, 주관이 별로 없어 집안 분위기가 어떻든 잘 이겨내고 맞추어 살아가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지만, 나의 동생은 그렇게 하질 못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망해버린 집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동생은 어느날 쪽지 한장을 덜렁 남겨놓은 채 가출을 시도하여 현재까지 8개월째 소식이 없었다.
 
( 아버지, 어머니, 형.. 저는 독립하겠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길 빕니다. )
 
아버지의 부도 후, 눈물이 마를날이 없던 우리집에 동생이 가출을 하던날 마지막으로 울음바다가 되었고, 한동안 다시는 아무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는...................
 
==  프롤로그 끝  ==
프롤로그이므로 글이 살짝 짧습니다. 이해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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