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아들과의 결혼식(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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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0,183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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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결혼식(4부)

<가게에 문제가 생겼으니 8시까지 가게로 와요>이제 겨우 23살 먹은 어린 것을 신랑으로 맡아 들인답시고 신부 화장을 다녀온 저는 우리가 항상 서로에게 메시지를 남길 말이 있으면 쪽지로 써서 냉장고 문에 붙여두었는데 그이가 남긴 메시지를 본 것은 예전에 식당에서 함께 일하였던 아주머니와 수다를 떨다가 도착하여서였었고 시계를 봤더니 거의 5분도 안 남은 시간이었습니다.

부리나케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가게 안은 깜깜하였고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키를 열고 들어갔습니다.

“!”순간 가게 안의 조명이란 조명에 모조리 불이 들어왔고 가게 맨 안쪽에 위치한 벽에는 <내 여인 영애 나와 결혼 해 줘>문구게 제 얼굴의 사징 그리고 반대편에는 그이가 저를 마주보고 있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가게 안벽으로는 언제 어떻게 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 얼굴을 마주 한 적이 있었던 그이의 친구들을 비롯한 많은 무리의 남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고 은은한 음악소리와 함께 턱시도를 받쳐 입은 그이가 커다란 장미꽃 다발을 들고 서 있더니 놀란 토끼 새끼마냥 넋을 일고 서 있는 제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제 발치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영애 씨 저와 결혼을 해 주시겠습니까?”그이가 꽃다발을 저에게 들이밀며 말하였습니다.

“기......기찬 씨”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저는 그 꽃다발을 공손하게 받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려야 하였습니다.

“키스 해 키스 해”순간 가게 안은 거의 아수라장으로 변하였고 그이 친구들의 합창이 들리는가 싶더니

“어서 해 어서 해”하는 여자들의 목소리에 몰라 뒤를 돌아봤더니 거기에는 금방까지도 저와 수다를 떨었던 예전에 다녔던 식당 동료들과 앞으로 함께 횟집에서 일을 할 여자들이 그이 친구들의 박수 소리에 맞추어 박수치며 소리를 치며 들어오고 있었고 가게 밖에서는 무슨 일이라도 벌어 졌나 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는 같이 박수를 쳤습니다.

이어 무릎을 꿇고 있던 그이가 장미꽃다발을 든 제 손을 잡고 일어서더니 절 끌어안았고 입술을 제 일불에 포개었습니다.

“찐하게! 찐하게!”다시 그이 친구들과 제 우인 격의 동료들이 합창을 하였고 동시에 그이의 혀가 제 입안으로 들어왔고 나이 마흔의 주책없는 저는 이제 겨우 23살인 그이 혀를 게걸스럽게 빨았습니다.

아들이었을 때부터 그이의 자위를 도왔고 그리고 그이의 발가락으로 보지 구멍에 후빔을 당하면서도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듯이 9명의 강간범들에게 더렵혀진 보지 후장과 함께 더렵혀진 입으로 깨끗하고 깨끗한 그이의 입술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생각에 여태까지 거부하였지만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인 그때만은 차마 거부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댕기풀이란 이름하에 결혼 전날의 파티는 거의 자정 무렵까지 계속이 되었습니다.

마치고 집으로 와서도 그이는 집요하게 동침을 애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응할 제가 아니었습니다.

행여 제가 제법 많이 취한 상태라 잠든 후에 올라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저는 그이를 그이 방으로 쫒아내고 문을 걸고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우인 몇 몇과 그이의 선생님들 몇 분만 모시고 인근 암자에서 엄숙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우리가 결혼식을 올린 암자는 규모가 작아서 암자이지 경치가 너무나 좋은 곳이고 창건 된지가 오래된 암자인지라 관광객이 많은 곳인지라 얼핏 봐도 앳된 새신랑과 아무리 화장을 잘하였다고 하지만 40먹은 저의 결혼식은 관광객들 입에 오르내리기에 좋은 구경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부처님 앞에 다소곳이 앉은 제 귀에도<늙은 것이 어떻게 꼬드겼기에 마흔 살에 스무 세 살 신랑이라니? 신랑이 돈도 좀 있다며? 돈 빼먹으려고 꼬드겼겠지>하는 소리가 제 마음을 아프게 하였으며 <새신랑 마흔 세 살 되면 신부는 예순? 마누라가 아니라 아예 할매라고 불러야겠지?>란 말에는 동감은 갔지만 마음만은 아팠습니다.


제가 그이 돈을 빼 먹으려 들었더라면 그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 얼마든지 빼 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 그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 빼 먹기는커녕 콩나물국밥집을 하여서 번 돈을 고스란히 모은 덕에 동거남이자 이제 살아있었더라면 시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예전의 동거남이 남겨 둔 돈은 하나도 허비 안 하고 그이가 군대에 있던 동안 벌어 둔 돈으로 가게 인테리어도 하였으며 간판도 달았고 횟집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그릇들도 최고급으로 준비를 하였으며 우리 결혼식 비용 전부며 피로연 비용도 그 돈으로 지불하였고 신혼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2박3일 머물 호텔의 비용 전부도 그때 모은 돈을 예약을 하였으며 또 한 가지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데도 제법 돈이 들었지만 그도 그 돈으로 충당하였지만 횟집을 본격적으로 운영을 하려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 기초 비용을 하고도 남을 돈이 제 수중에 있답니다.


“처사님과 보살님은 함께 일어서서 목탁소리에 맞추어 부처님께 삼배를 올립니다. 탁! 탁! 탁! 먼저 일 배는 전생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하여주신 부처님께 고마움의 뜻으로 올립니다. 탁! 탁! 탁! 다시 이 배는 앞으로 부부의 연으로 죽은 때 까지 살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겠다는 다짐의 절입니다. 탁! 탁! 탁! 마지막 삼배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실천하여 제가로서 생활하면서도 성불하겠다는 다짐의 절입니다. 자 그럼 신랑 신부는 나란히 앉아서 간단한 큰스님의 법문을 경청하시기 바라며 함께 참석하신 하객 분들도 잘 들으시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주지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우리들에게 부처님께 절을 올리도록 하였습니다.


“본디 이 암자의 큰스님이란 나의 법문을 듣기 전에 절을 올리고 예를 갖추는 것이 도리이지만 오늘의 경우 나보다 신랑신부가 위이기에 절은 올리지 아니하며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하시려고 오신 처사님들이나 보살님 역시 하지 아니하여도 무방합니다.”인자하게 생기신 큰스님이 말씀을 하시더니 좌중을 한 번 돌아보고는

“네 듣기로 신랑과 신부는 나이 차이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나이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란 모름지기 두 가지 연에 의하여 맺어진다고 부처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전생의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하여 맺어진 것이며 또 하나는 이와 반대로 전생에서 악연이었던 이들이 이승에서 그 악연을 풀어보려고 맺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동양 철학에서는 인연과 악연을 간단하고 명쾌하게 판단을 합니다.

여기 결혼식에 오신 불자님들도 부부 지간이나 형제 혹은 친구 사이의 인연이 말 그대로 인연인지 아니면 전생의 악연인가에 대하여서는 동양철학에서 시계가 그것을 말해준다고 합니다.

혹여 들어보셨는지 모르지만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난 사람끼리 결혼을 하면 아주 행복하게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태어난 해가 다르다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태어난 달인 것입니다.

우리 저기 걸린 시계를 보고 이야기를 해 봅시다.”큰스님이 갑자기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말씀하시자 저희 부부나 저희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앞에서도 잠시 언급을 하였지만 경치도 수려하고 오래된 암자라 많은 관광객들까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저희 결혼식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구경을 하다가 우연찮게 큰스님의 법문을 듣게 된 관광객들까지 시선을 벽시계로 돌렸습니다.


“저 시계를 보면 제일 상단에 12시란 숫자가 있고 그리고 오른쪽부터 1, 2, 3, 4 이런 수서로 나열이 되어있죠?”큰스님이 다시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습니다.

“예”모든 사람이 마치 합창을 하듯이 대답을 하자

“저기에서 여러분들의 생일을 확인하세요. 오늘 이 자리에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된 신랑신부를 예로 들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신랑 신랑의 생일이 음력 5월 초 열흘이 맞는가요?”큰스님이 인자한 시선으로 남편을 내려다보며 물었습니다.

“예 큰스님”남편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니 아직 결혼식이 끝나지 않았기에 평소처럼 아들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번에는 신부에게 묻겠습니다.

신부 신부는 신랑과 같은 음력 5월 초하루죠?”큰스님이 저를 향해 시선을 주시며 물었습니다.

“예 큰스님”저도 아들처럼 큰스님을 향하여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머리 뒤에서 많은 시선들이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따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이를 전혀 모르는 관광객들이 우리 사이가 아들 엄마라고 부르던 사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뒤 꼭지는 더 따갑게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같은 달에 생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양철학에서 생월이 서로 가까운 사람끼리의 만남은 전생에 아주 좋았던 인연을 계속하려고 만나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부부금술 더 나아가서는 자녀들과 부모 혹은 형제자매에도 이것이 적용이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저기 시계를 보고 생각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먼저 여러분들의 생월을 저 시계에 정하고 가족 중에 자기와 아주 친하거나 서로 정감을 가진 사람의 생월을 다시 지정합니다.

그리고 그 두 생월들의 간격이 가까운 가 먼가를 보시면 분명히 서로의 생월이 여기 신랑신부처럼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이번에는 자기와 부딪치기만 하면 서로 아옹다옹 하는 사람의 생월을 저 시계에 지정하여 본다면 아마 여러분의 생월이 만약 12월이라고 한다면 여러분과 아옹다옹 하는 사람의 생월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5,6,7월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4월 내지 8월 정도는 될 것입니다.“큰스님이 벽시계를 가리켜가며 말을 계속 하였습니다.


큰스님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적어도 일찍 죽은 아들이 아버지라도 불렀던 저와 동거를 하였던 동거남의 사이와 또 아들과 큰아버지인데도 아빠라고 부르며 살았던 아들과의 사이를 말입니다.

일찍 죽은 동거남의 생월은 10월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저와 동거를 하기는 하였지만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었고 여차하면 티격태격 싸우기 일쑤였으며 일주일에도 한두 번 많게는 서너 번을 언성을 높여 다투기 일쑤였었고 아들은 아빠라고 부르는 자기 큰아버지에게 용돈이나 책 등을 살 일이 있으면 겨우 입을 땠지 가까이 하려 들지 않았었던 것이 다 그런 연유였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큰스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보였는데 거기에다가 아빠엄마의 생일을 대입하니 더 확신이 갔습니다.

우리 아빠엄마도 우리 부부처럼 생월이 같지는 않지만 한 달 차이였으며 주변에서는 금술이 좋은 부부라고 말하였고 제가 집을 나오기 전까지도 두 분 사이는 엄청 좋았으며 아들이 군대 입대 전에 콩나물국밥을 만드는 법을 전수한다고 우리 가게로 매일 출근을 하다시피 하여 저에게 가르치는 동안에도 하루에 수 십 번 이상의 전화가 왔으며 빨리 마치고 오라는 소리며 전화기를 대고 쪽쪽 거리는 소리는 아무리 엄마아빠이지만 눈꼴이 시려서 못 볼 지경이었습니다.


“그게 정확한가, 아닌가에 대한 어떤 학문적인 신빙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가 본 바로는 거의 정확하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이 자리에서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한 것입니다.

부부란 적어도 인연으로 만나야지 악연으로 만나 부부의 경우 스스로가 자제하고 악연을 인연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을 서로가 하여야 함에도 안타깝게 자기를 스스로 낮추는 공부가 미약하기에 점점 더 악연을 만들어 가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그건 이혼 혹은 부부사이에 요절이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 오늘 결혼식을 올리는 이 두 사람의 경우 서로 좋은 인연으로 만났기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연하게 이 두 신랑신부의 결혼식을 보게 된 여러분들도 진심으로 이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 주실 것으로 이 미천한 중은 믿어마지 않는 바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큰스님이 마지막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연호하면서 합장을 하였습니다.


“그럼 이로서 신랑 강 기찬 처사와 신부 윤 혜숙 보살은 이 시간부터 부부의 연으로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라며 두 사람의 결혼식을 마침과 동시에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주지스님이 마이크 앞에 서시더니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큰스님처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연호하시며 합장을 하였습니다.

“짝짝짝!!!!!!!!!!!!!”동시에 법당 안과 밖에서 우리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과 관광을 왔다가 우연하게 우리의 결혼식을 보게 된 사람들까지도 축하의 박수를 쳤습니다.

  

하여간 조촐하지만 성대한 우리들의 결혼식은 무사히 마쳤고 우리는 우인들과 함께 전날 밤 미리 가게에서 준비를 한 음식을 가지고 암자 식당에서 조촐한 피로연을 마지막으로 우리 둘은 미리 예약을 해 둔 가까운 온천의 호텔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마흔 살의 늙은 년이 스무 세 살의 어린 신랑 그도 한 때는 아들이라고 불렀던 그이와 함께 말입니다.

이는 신혼여행이라기보다는 13살 때 제 팬티를 이용하여 자위를 시작한 그이가 15살 나이로 제 도움을 받으며 자위를 하였지만 오로지 발가락으로 제 보지를 후비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아온 그이에게 제 일을 이용한 사정이 아니라 처음으로 가랑이를 벌려주어 좆을 제 보지에 박히게 하는 날이며 좆 물을 입안이 아닌 제 보지에 뿌리는 첫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고생했어, 자기야 먼저 씻고 나와”호텔에 도착하자 방으로 들어간 저는 그이의 포옹과 함께 깊은 키스를 나누고는 가슴을 밀치며 말하였습니다.

“싫어 지금 자기가 흘린 땀 냄새와 함께 자기의 향기를 그대로 느끼고 싶어”그이가 막무가내로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피우며 제 옷을 벗기려 들었습니다.

“싫은데...........”저도 한 고집 하지만 그이의 고집도 결코 제 고집에 뒤지지 않는 그런 고집을 가졌기에 신혼 첫날밤이라 특별한 경우이기에 말을 흐리며 그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이는 천천히 제 몸을 감싼 천들을 하나씩 때어내었습니다.

“부끄러워 그것은 시트 안에서......”브래지어까지 남편 손에 그도 밝은 불빛 아래서 벗겨졌지만 만지게도 못 하였던 보지를 감추고 있는 앙증맞은 팬티에 그이의 손이 닿아 부르르 몸을 떨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서는 침대 시트 안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렇게 부끄러워?”옷을 모조리 벗고 평소에도 자주 보아온 알몸으로 그이가 시트 안으로 들어오더니 제 위에 올라타고 보듬으며 물었습니다.

“응 나도 여자잖아?”눈을 흘기며 말하자

“정말이지 지루한 기간이었어! 열세 살 어린부터 스무 세 살이 먹도록 기다렸으니 말이야”그이가 팬티를 잡고 밑으로 당기며 말하기에

“미안했어, 나로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어.”전 그이의 양 어깨를 잡고 엉덩이를 들어서 팬티를 벗기기 용이하게 해 주며 말하였습니다.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했어. 오늘 그 형벌 아주 많이 받을 거야 그리 알아 알았지?”그이가 무릎을 제 가랑이 사이에 끼우더니 좆을 잡고 그이로서는 처녀지나 다름이 없는 제 보지 구멍 입구에 대었습니다.

“미안해 그런데 나 아플지 몰라 그러니 살살 해 줘”그이의 몸을 두 팔로 감으며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무슨 말이야 아플지 모른다니? 아빠하고 자주도 하더구먼. 에~잇!”그이는 제 말을 듣지도 아니하고는 보지구멍 입구에 겨우 닿아있던 좆에 힘을 주었습니다.

“아~악! 자기야 아파!”제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9놈의 강간범들에 의하여 짓밟혔을 때 보다 더 아픈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저의 비명에 그이가 상체를 드는가 싶더니 놀라움의 탄식을 하였습니다.


그랬습니다.

그이가 군대에서 마지막 휴가라고 와서는 지나가는 말로 제대를 하고 저와 결혼을 한다는 말을 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이는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하였지만 전 그이가 충분하게 그렇게 할 사람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린 나이로 9놈의 강간범들에게 5일간 감시를 받아가며 백 번이 넘게 아니 이 백 번이 조금 안 될 정도로 윤간을 당하여 더렵혀진 몸에다가 그이가 아바라고 부르던 그이의 작은 아빠와 동거를 하면서 십 년간 제 도움을 받으며 자위를 하였지만 저와 달리 여자하고 몸을 섞은 적이 없는 그이에게 그 몸 그대로를 준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란 생각에 그이 모르게 처녀막재생수술과 함께 그이의 아빠이자 저와  동거를 하였던 동거남의 좆에 의하여 넓혀질 대로 넓혀졌을 보지구멍을 줄이는 수술까지 병행을 하고서는 그이가 제대를 하고 돌아온 후로 제가 그이의 좆을 빨고 흔들어 자위를 도왔지만 비록 재생수술로 다시 찾은 처녀막을 발가락으로 망가트리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탓에 예전처럼 하여오던 발가락으로 제 보지구멍을 후비는 일을 하지 못 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총각인 자기에게 걸레를 먹게 하긴 싫었어.”아픔을 참고 눈물을 흘리며 그이 팔목을 잡고 말하였다.

“사전에 말하지 바보야”그이가 혀로 제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핥으며 말하였다.

“그럼 재미가 없잖아”눈을 흘기며 말하였는데 보지 아니 아랫도리는 아팠지만 마음만은 아주 행복하였다.

“그것도 모르고 틈만 나면 내가 하자고 해서 미웠지?”그이가 천천히 펌프질을 하였다.

“아니 자기 부탁 들어주지 못 해서 마음은 아팠어.”재생한 처녀막이 찢어지면 생긴 상처 때문에 아팠지만 참으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나 자기 보지 생각하며 자위를 하고 싼 좆 물 아마 한 드럼은 족히 될 거야”그이가 좆으로 제 보지를 강하게 찍어 내리며 말하였다.

“호호호 그럼 그것 중에 절반인 반 드럼 정도는 내가 먹었다고 봐야겠네?”저도 웃으며 말하자

“아니 거의 대부분 자기가 다 삼켰어, 참 그런데 말이야 그때 아빠와 빨기 하다 말고 아빠 좆 물 안 먹고 좆으로 하라고 했어?”그이가 그 옛날 그이가 당시에 살아있던 자기 아빠이자 나로서는 동거남이었던 사람과 하는 것을 훔쳐본다는 확실한 모습을 잡기 위하여 하기 싫었지만 동거남의 좆을 입으로 빨고 흔들다가는 당시로서는 아들이었던 기찬이가 저와 자기 아빠 사이의 행동을 방문 앞에 숨어서 지켜보며 제 팬티를 이용하여 자위를 하는 광경을 목격을 하고는 더 이상 동거남의 좆을 바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멈추고 좆을 하라고 했던 것을 더 올린 모양이었다.

“호호호 자기 기억력 대단하다, 사실 그때가 자기 아빠하고 그러기는 처음이었는데 이유는 자기가 훔쳐보는 것을 보기 위하여 하시 싫은 것을 억지로 했는데 자기가 방문 앞에 숨어서 내 팬티로 딸딸이를 치는 것을 봤는데 더 이상 할 이유가 뭐 있겠어? 후후후 나중에 아들 좆 물 먹으면 되는데”전 그이에게 이야기를 하고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이의 볼을 살며시 꼬집어 흔들며 말을 마쳤다.

“아빠 좆 물은 안 먹었단 말이야?”그이가 힘주어 펌프질을 하며 물었다.

“호호호 그렇게 못 믿어요? 우리 아들이 싸 둔 팬티에 묻은 좆 물만 먹어도 행복한데”다시 그이의 볼을 살며시 꼬집어 흔들며 말을 하였다.

“정말?”그이가 동작을 멈추고 물었다.

“사실 자기가 불쌍하여 자기 아빠하고 동거했지만 아무리 자기 아빠가 한다고 했지만 감흥은 하나도 없었어. 그런데 자기가 내 팬티로 자위 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자기 아빠가 올라와 하면 난 자기가 올라 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했고 그때서야 감흥이 생기더라고”솔직하게 당시의 심정을 기이에게 고스란히 말하였다.

“정말이지 자기가 아빠하고 하는 것을 봤을 때는 달려가서 아빠를 때어내고 내가 대신 올라가고 싶더라, 흐흐흐 나 나쁜 놈이지?”그이의 말에

“아니 사실 나도 자기가 훔쳐보면 더 감흥이 났고 자기 아빠 밀치고 자기 품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야”엉덩이를 들썩이며 말하였다.


 완전하게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이는 마치 십 년 간 하지 못 한 것을 한꺼번에 요절이라도 낼 것 같이 싸고 나서는 제 가슴을 빨거나 아님 맥주 한 컵을 들이켰고 그러는 사이에 그이의 좆은 다시 살아나 십 년 동안 만지기는커녕 보지도 못 하게 하였던 제 보지를 마음껏 가지고 놀았고 처음에는 재생을 한 처녀막이지만 처녀막이 터진 탓으로 생긴 아픔 때문에 좆 맛을 느끼지 못 하였으나 새벽녘에 가서는 그이의 좆이 보지에 박히자 빡빡한 느낌이 조금은 완화가 되는 기분이 들면서 예전에 발가락으로 후볐을 때에 비하여 거의 배 이상의 오르가즘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다정하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삽니다.

뿐만 아니라 제 뱃속에는 우리 그이의 분신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면을 통하여 그이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 때 엄마라고 불렀고 걸레 같았던 여자를 걸레로 보지 않고 예쁘게 봐 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해 할 것인데도 고등학교 일학년 때 9놈의 강간범들에게 그도 5일 씩이나 번갈아가며 윤간을 당하고는 결혼 생각은커녕 남자 생각도 멀리하여온 제 머리에 면사포를 쓰게 해 준 것을 어떻게 고맙다고 말로 할 수 있을지............

생각만하여도 제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답니다.


그리고 우리 횟집을 엄청 손님이 많아 예약을 해야 만이 그이가 다듬고 써 회 맛을 볼 수가 있으며 그렇지 않고 예약 없이 막무가내로 왔을 경우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할 정도랍니다.

만삭에 가까운 몸이지만 행복에 겨운 저는 그이 곁을 떠나서 혼자 집에 있기 싫어하는 탓에 매일 횟집에 그이와 함께 나와서는 카운터를 지키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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