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효도합시다 2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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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9,721회 작성일 17-02-12 06:30

본문

       
                                    5. 영경이는 아직 14살.
    
  [여보, 당신 요즘 무슨 걱정되는 일 있어요?]
  [아니.  왜?]
  
  [얼굴이 불안해 보여요.  꼭 뭔가에 쫓기는 사람모양으로..  요즘 주식시장이 개판이라는데 당신 혹시 나몰래
   빚내서 주식하다가 손해본거 아냐?]
  [쓸데없는 소리..]
  
  [아니에요?  난 또 혹시나 잘되서 용돈이라도 벌었을까 싶어서 기대했네.  하기사 당신 능력에..]
  [이 사람이 지금.]
   
니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는 마누라에게 버럭해 봐도 마누라는 눈 하나 깜짝 하
지 않고 되받아 노려볼 뿐이었다.  오히려 기가 죽은 내가 깨갱 하고 한 쪽으로 물러나 앉아버렸다.
  
내가 요즘 얼굴색이 안좋기는 하다.  마음도 불안하다.  왜냐면 영호녀석이 전화를 안받기 때문이다.  아주 안
받는 것은 아니다.  아주 짧게 한 마디.
 
  [아버지, 제가 지금 하는 일이 있어서.  나중에 제가 다시 전화드릴게요.]
  
그래서 하릴없이 전화통 들여다보며 기다리면 감감무소식이다.  어쩔땐 짧은 문자 한 통으로 대신할 때도 있다.
집으로 놀러가겠다면 정색을 하고 오지말란다.
 
  [죄송해요, 아버지.  지금 집이 좀 어수선해요.  마무리되면 나중에 제가 모실게요.]
  
제기랄.  나중에?  나중에 언제?  나 파묻고 난 뒤에?  이것들이 혹시 야반도주라도 하려고 수작을 부리는 건 아
닐까 싶어 몰래 차를 몰고 집 근처로 가보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중간에 되돌아 오고 말았다.  내 자신이 너무
구차해보여서다. 
  
내가 무슨 빚쟁이라도 되냐.  빚 못 받아서 안달난 놈처럼 전화질 해대고 집으로 찾아가고.  정당한 빚이라도 되
면 모를까. 
   
   
  [당신.  머리가 왜이렇게 떡졌어?  머리 안감았어?]
  [감았어요.]
  
  [언제?  어제?]
  [그저껜가.]
   
  - 철벅, 철벅, 철벅, 철벅..
   
  [브래지어는 이런거 밖에 없나?  좀 야한것 좀 사서 입지.  색깔이라도 좀 바꾸던가.]
  [입 좀 다물어요.  김새게 정말.]
   
  - 철벅, 철벅, 철벅, 철벅..
  
  [이제 보니 당신 젖 참 크네.  젖소부인 저리가라야.]
  [으......]
   
  [내 좆 맛있지?]
  [......]
    
  [내 좆이 말야.  누가 그러는데 대갈장군이라는 거야 글쎄.  좆대가리가 커서..]
  [아유, 진짜 짜증나게.]
   
쿵.  이 소리는 아내가 섹스도중 남편을 내던져서 남편이 엉덩방아를 찧는 소리입니다.  띠리리..
  
  [간만에 기분 좀 내나 싶었는데 자꾸 말을 시키고 그래?  어디서 이상한 쌍소리는 배워가지고.  당신 요즘
   바람펴?  언 년이야?  또 술집 년이지?  어느 술집이야?  어느 술집에다 돈을 퍼다 바쳤어?]
  [내가 무슨 바람을 펴?  당신 뿅가게 해주려고 분위기 조성차원으로다가..]
   
  [분위기 조성 좋아하네.  어딜 기어들어와?  나가.]
  [왜?]
  
  [왜긴 뭐가 왜야?  짜증나니까 나랑 살 부딪히지 말라고.  나가란 말야.]
  [아니 한 이불 덮고 자는게 부분데 어떻게 살을 안 부딪혀?]
  
  [부부고 두부고 다 필요없으니까 나가란 말야.]
    
결국 난 방에서 쫓겨났다.  옷도 사각팬티에 반팔차림으로.  바지며 점퍼며 주섬주섬 주워입으려는데 마누라가
핑계김에 나가서 오입질할 지도 모른다고 다른 옷을 모두 빼앗아 못입게 했다.
   
불꺼진 거실에 주저앉아 창밖을 보니 별 몇 개가 대롱대롱 빛나고 있었다.  내 나이 46살.  애들은 모두 고등학
생인데 친구만 최고라 아빠인 나랑은 하루 몇 마디 나눠주지도 않는다.  마누라는 45살.  1살차이에 결혼전에는
"오빠"하며 앵기는게 귀여웠는데 지금은 큰누님 아니면 어머니같다.  술친구들은 모두 지 가정, 지 일, 지 몸이
소중하다고 술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나까지 멀리한다.  굳이 찾아도 술친구해줄 놈들은 망나니같은 자식들만 남
아있을 뿐이다.
  
  [제기랄..  마누라 올라타는 재미라도 있어야 말이지.]
  
처량한 마음에 술 한 잔이 딱이다 싶어 냉장고를 뒤져봤다.  마침 소주 반 병이 남아있었다.  그거에 멸치볶음
반찬을 놓고 대롱대롱 달린 별을 보며 찔끔찔끔 술잔을 빨았다.
  
  [캬..  그래..  이런 분위기도 나름 괜찮아.  괜찮아..]
    
  - 툭.
  
  [뭐야, 이거?]
  
두 잔째 빨고 있을때 내 무릎에 뭔가 찬 것이 툭 떨어졌다.  보니 내 핸드폰이었다. 
  
  [당신 호출왔어.  번호가 그 놈인가봐.  누가 술꾼 아니랠까봐.  아유, 냄새.]
   
안방에서 언제 나왔는지 마누라가 코를 쥐며 호들갑을 떨었다.  본 지 오래된 옅은 분홍색의 란제리를 걸치고 있
었다.
   
  [영호가 이 밤중에 왠일이지?]
  [내가 알어?  곤히 잠들었었는데 그 소리에 잠 다 깨버렸잖아.  밖에서 청승떨지 말고 빨랑 들어와 자요.]
   
  [아, 알았어.  요거만 마저 마시고.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술 그만 마셔요.  5분안에 들어와요.  들어오기 전에 이빨 닦구요.]
   
마누라가 매섭게 호령하고 휙 돌아서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술병 마개를 닫았다.  마누라가 그만 마
시라면 그만 마시는거다.  5분안에 들어오라면 5분안에 들어가는거다.  이빨을 닦으라면 이빨도 닦아야지.  어?
이빨은 왜?  살 부딪히기 싫다면서.  그러고보니 자고 나온 얼굴이 아닌데?  분홍 슬립도 일부러 꺼내 입은거 같
고.  이 여편네가.  흐흐..
   
  [어, 영호냐?  밤중에 뭔일이냐?  집에 뭔일 있어?  어.  어..  그럼 다행이고..  어.  우리집도 별일 없지.
   어.  이번 토요일?  양복입고?  양복이 있긴 한데..  어.  2시까지?  집으로 가면 되는거지?]
    
    
    
    
                                            6. 영경이는 15살 - 결혼식 Part 1.
    
  [결혼식 가시나봐요.]
  [네.  손..  조카딸 결혼식이 있어서요.]
   
마누라가 키를 안내줘서 어쩔수없이 택시를 잡아탔다.  마누라에게는 영호네 집에 가는걸 숨기고 초상집에 간다
고 둘러댔더니 음주운전 못하게 한다고 자동차 열쇠를 뺏어버린 것이었다.
  
  [저도 딸만 둘입니다.  큰 딸을 먼저 시집보냈는데 어찌나 마음이 울적하던지.  남자 체면에 사람들 보는 앞에
   서 질질 짤수도 없고.  눈물참느라 아주 죽겠습디다..]
  [아, 네..  저는 딸 하나 아들 하나에요.]
  
  [아직 보내실때 안되셨죠?  젊어보이시는데.]
  [네, 아직.  고등학생이에요 이제.]
  
  [조카딸이면 실감이 안나시겠네.  그거 직접 겪어봐야 압니다.  딸 보내는 기분..]
  
흐흐..  저는 지금 누구 보내러 가는게 아니라 제가 결혼하러 간답니다.  제 결혼식에요.  제 결혼식.  흐흐흐..
이거 입이 안 다물어지네.  표정관리 해야되는데.  영호 내외가 흉볼텐데.
   
  
결혼식에 간다면서 주택가에 내리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택시기사를 잔돈은 가지라며 떠나보냈다.  하늘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덩이 덩이 흘러간다.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데 다리가 괜시리 후들거렸다.  주차된 차에
얼굴을 비춰 머리를 매만지고 핸드폰 액정을 보며 이빨에 낀 건 없나 살폈다. 
  
그리고 드디어 영호네 집 앞에 섰다.
  
  - 딩동.  딩동.
  
두 번만 눌렀다.  세 번은 너무 재촉하는 것 같아서.
  
  [어서오세요, 아버님.  빨리 들어오세요.]
  
화장품 향기 진한 한복 차림의 어머니 이숙경 여사가 나를 손짓해 들였다.  재빨리 안으로 들어서니 신발놓는 곳
부터 시작되는 마루바닥에 길게 빨간 카펫이 깔려있었다.  안방앞에서 꺽여 방안에까지 깔린것 같았다.  나는 구
두를 벗고 카펫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쪽으로 조심조심 걸었다.
  
  [숙경아.  아버지 머리는 내가 따로 만져드리지 않아도 될거 같지?]
  [네.  헤어스타일은 괜찮은거 같아요.  아버님 이거.]
  
어머니가 턱시도와 하얀 장갑을 내밀었다.
  
  [이거 턱시도잖아?  이런거까지 준비했어?]
  [이왕하는거 제대로 해야죠, 아버님.  여기 앉아 계세요.]
   
나는 턱시도로 갈아입고 어머니가 가리키시는데로 소파에 앉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 결혼식이라니.  나
와 손녀딸 영경이의 결혼식이라니.  이런 날을 진짜 맞게 될 줄이야. 
  
장갑을 끼고 집안을 둘러 보니 예전과는 구조가 달라져 있었다.  거실이 좁아지고, 영경이의 방과 내가 오면 자
곤 했던 작은 방 사이의 공간이 없어졌다.  두 방의 벽을 터서 한 방으로 만든 모양이었다.
  
  [영호야.  영경이는 왜 안보이니?]
  [영경이는 아직 준비중이에요.  머리는 진작에 끝났는데 화장이 오래 걸리나 봐요.]
  
  [그래?  이렇게 거창하게 안해도 되는데..]
  
거창하다고 할 정도로 집안이 요란하게 꾸며져 있었다.  구석구석에 꽃화분이 놓여있고, 색색의 풍선에, 한쪽에
는 커다란 "축 결혼" 화환까지 세워져 있었다.
  
  [외동딸 결혼시키는건데 이정도는 약과죠 뭐.]
  [그래.  그건 그렇다.]
  
영호녀석도 말쑥한 양복정장에 하얀 장갑을 끼고선 수시로 영경이 방을 들락거리며 준비를 서두르라고 채근했다.
그리곤 안방도 달리 뭐가 준비되어 있는지 오락가락 뭔가를 가져가기도 하고, 꺼내오기도 하면서 나름 바삐 움직
였다.  나는 안방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하면서.  집에서 나오면서 대장이고, 방광이고 말끔히 비우고 나온게 다
행이었다.
  
   
  - 단, 딴따단..  단, 딴따단..
  
익숙한 결혼음악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옥죄어오고
손이, 다리가, 덜덜 떨렸다.  어머니가 영경이 방에서 나오셔서 나를 손짓해 부르신다.
   
  [아버님.  영경이 준비 끝났어요.  안방으로 오세요.]
  [어, 어, 그래..]
 
어머니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섰다.  눈앞이 환해진다.  안방엔 휘황찬란하다할 정도로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었
다.  천장대신 바닥에 놓여있지만 다채롭게 장식된 샹들리에 조명이 눈을 부시게 했다.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여느 결혼식장의 구조와 거의 비슷했다.  부모님을 위한 푹신한 2인용 의자가 벽쪽에 놓였고, 촛불이 꽂힌 화분
뒤에 단이 있어 앞에 신랑 신부가 서면, 위에서 굽어보며 축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아버님.  거기 서 계시면 되요.  처음이 아니시니까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아시죠?]
  [어?  어.  그, 그럼.  알지.]
  
처음이 아니란 소리에 양심이 찔렸다.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두 손을 맞잡은 채 기다렸다.  얼굴이 상기된 걸 거
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머님은 의자에 앉아 안방문 밖을 연신 힐끔거리셨다.
  
  [얘가 왜 이렇게 안 나오지?]
  
아마 교복을 입고 나오겠지?  준비가 오래 걸린건 아마 화장이 처음이라서 그럴거야.  명색이 결혼식이니 머리는
틀어올렸을테고..  히히..  교복도 색다르고 좋지.  세상에 교복입은 여자랑 결혼식 올리는 남자는 나밖에 없을
거야.  힐은 신었을까?  아참.
  
어머님의 발을 보니 구두를 신고 계셨다.  나는?  나는 맨발, 아니 양말차림이다.  그것도 촌스런 갈색 양말.
 
  [수, 숙경아.  나 구두, 구두.]
  [네?  어머.  구두를 벗고 계셨네?  얼른 신고 오세요.  왜 벗고 계셨어요?]
   
급하게 안방을 나서는데 영경이의 방문이 스르르 열렸다.  급한 마음에도 궁금해서 문틈으로 눈길이 갔다.  그러
나 어머님이 잽싸게 앞을 막아서신다.
  
  [영호씨.  자, 잠깐만요.  아버님이 아직.]
  
제길.  연세도 많이 자신 분이 행동도 참 빠르기도 하시네.
  
덕분에 신부모습은 훔쳐보지 못했다.  구두를 신고 이번에도 카펫을 피해서 안방으로 갔다.  헐레벌떡 움직여서
숨이 가빴다.  흥분과 긴장때문에 숨을 평정하게 고르는게 쉽지 않았다.
  
  - 단, 딴따단..  단, 딴따단..
  
음악소리가 아까와는 판이하게 다를 정도로 우렁차게 커졌다.  그에 따라 내 심장도 가슴에서 뛰쳐나올까 겁날
만큼 무섭게 둥둥거렸다.  삐걱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려봤다.  영경이의 방문이 열리고 영호가 먼저
나온다.  이어서 영호가 내민 손을 잡으며 영경이가 나왔다.  영경이가.  내 손녀딸, 이제는 내 신부가 될 영경
이가.
  
어머니도 나도 자라목이 되어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을 보았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타고왔던 택시기
사의 말처럼 아비로서 딸 시집보내는 순간을 맞이한 감격때문은 물론 절대 아니다.  영경이의 모습이 너무나 아
름다왔기 때문이었다.  영경이는 그저 교복에, 머리 틀어 올리고, 화장 좀 진하게 한 정도가 아니었다.  하얀 웨
딩드레스를 제대로 갖춰입고 면사포까지 신은 어엿한 신부의 모습이었다.  얼굴을 살짝 숙이고 아빠 영호의 인도

에 따라 사뿐사뿐 걷고 있는 자태에선 응석받이 손녀딸의 어린 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어?  쟤네들이 왜 저기로 가지?  난 여기 있는데?
  
영호와 영경이가 안방쪽으로 오다가 방향을 홱 틀어서 현관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왠일인가 싶어서 안방
문에 달라붙어서 빼꼼히 머리를 내밀어 봤다.  영호와 영경이가 현관 바로 앞 카펫위에 멈춰서 잠시 가만 있더
니 다시 안방쪽으로 사뿐 사뿐 걸어오기 시작했다.
  
젠장, 난 또..  현관문 열고 나가버리는 줄 알았네.  휴, 놀래라.  자식, 고지식하긴.  형식 되게 따지네.  대충
비슷하게만 하면 되지.  걸음은 또 왜 저렇게 느리냐.  기다리는 사람 다 늙어죽겠다.  연세많으신 어머님이 먼
저 늙어죽으시겠지 걱정되서 어머니를 보니 두 눈이 붉으시다.  코도 벌름벌름 하시는게 기분이 복받치시는것 같
았다.  내 마음도 괜히 숙연해졌다. 
  
어머니가 보고 계신건 뭘까?  남편과 딸?  친손자와 증손녀?  어느 쪽을 보고 계시길래 저리 복받치시는걸까?
어머니가 그러고 계시니 아들된 입장에서 내가 마냥 헤헤 거려서는 안될것 같다. 
  
  [아버님.  넘겨받으셔야죠.]
  [어?]
  
영경이가 어느새 내 눈앞에 와 있었다.  영호가 영경이와 내 손을 맞잡게 해주었다.  영경이의 손에도 하얀 장갑
이 끼워져 있었다.  영경이는 눈을 내리 깐 채 내 얼굴을 보지 않는다.  살짝 웃음을 머금은 것 같기도 하고 아
닌 것 같기도 하고 표정이 미묘했다.
  
  [자, 이리로.]
  
안방문 바로 밖에서 안으로 나는 내 손녀, 이제부터는 내 신부인 영경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라서 나도 아주 천천히, 사뿐사뿐 걸었다.  영호 녀석이 나보다 앞질러 가면서 내 주머니에 뭔가를
넣는다.  결혼반지일거라는 직감이 왔다.  결혼반지까지.  내가 진짜 내 손녀딸의 신랑이 되는거구나.
   
  [신랑, 신부 나란히 서세요.]
  
영호가 단위에 서서 우리를 향해 말했다.  녀석이 결혼식 사회자 겸 축사까지 도맡는 것 같았다.  녀석은 내 아
들이자, 이제는 내 장인어른까지 된다.  옆에 선 내 신부 영경이에게는 친아빠이자 아들이 되고.  명함이라도 파
서 부를때마다 건네줘야 할까보다.  부를때 누구를 부르는지 헷갈리지 않게.
   
  [에, 지금부터.  신랑 오영호 군과, 신부 조영경 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영호의 선언과 함께 어머니가 일어서시더니 밖에 나가셨다.  나는 또 뭐가 준비되 있나 싶어서 주위를 휘휘 둘러
봤지만 좀전까지 귀청을 따갑게 하던 음악소리만 확연히 작아졌을 뿐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어머니도 다
시 들어오셔서 조용히 앉으셨다.  그저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줄이고 오셨던거다. 
 
폭죽이라도 터지나 기대했는데.  그건 아니구나.
  
  
  [사랑에는 장벽이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케 합니다.  국적도, 인종도, 장애도, 나이차이도.  모든
   것을 가능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오늘 이 두 사람은 세상의 모든 편견과 장애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한 쌍
   의 남녀로서 한 쌍의 부부로서 평생을 행복하게 함께 할 것을 맹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영호야.  아니, 장인어른.  축사가 너무 거창하신데.  그나저나 축사로 바로 넘어가는거유?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는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온유한 것입니다.  신부 조영경 양은 신랑 오영호 군을
   섬김에 있어 절대 시기해서도, 자랑도, 교만도, 해서는 아니하며, 무례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어머님이 영호의 한 마디 한 마디 마다 고개를 끄덕이신다.  간혹 뭐라며 입술을 옴짝 하시는데, 저거 "아멘"이
라고 하시는거 아닌가?
   
  [신랑 오영호 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모친 이숙경 여사의 극진한 훈육을 받고 자란 모범적인 청년으로서
   모든 여성들이 꿈꾸는 이상형입니다.  언제나 조영경 양을 사랑하고, 믿고, 꿈도, 열정도 다주고 싶어하는
   행운의 남자인 것입니다.]
  
응?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어디서 들어봤더라?  영호야, 아니 장인어른, 아니 축사하시는 양반.  이 타
이밍에 내가 소원을 말해야 되는겁니까?
  
  [그러나 신랑 오영호 군은 절대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남자가 아무리 잘나더라도 재미없고, 매너없고, 다른
   여잘 흘깃 거리거나, 몰래 누굴 만난다면 여자에게 걷어차입니다.  여자가 관심을 꺼버립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요, 인과응보는 누구도 피해갈수 없습니다.  신랑 오영호 군은 이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네, 네..]
  
얼결에 소리내서 대답했다.  그러면 안되는데.  그러자 영호가 나를 한번 굽어본다.  왠지 싸늘해 보이는 눈빛으
로.  죄송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축사는 계속 이어졌다.
   
  [신부 조영경 양에게 당부합니다.  아내란 남편을 대할 때 겉과 속이 다르면 안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여자
   를 뭐라고 합니까?  겉과 속이 같은 여자를 뭐라고 합니까?  신부 조영경 양은 겉으로도 속으로도 모두 한결
   같이 신랑 오영호 군을 사랑하고 남편으로서 사랑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남편이 자신을 잘 모른
   다 침울해할 수도 있습니다.  뻔한 여자로 보지 않나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시선을 다른 뜻으로 오
   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신부 조영경 양은 이 서약의 순간을 되살리시기 바랍니다.]
  
이왕 축사를 그렇게 할거면 백댄서까지 부르지 그랬냐.  슬슬 지겨워진다.  어쨌거나 니가 수고가 많다.  니 나
이 서른하나에 생전처음 결혼 축사를 하려니 고민이 많았겠지.
  
   
  [신랑 오영호 군에게 묻겠습니다.]
  [네?]
  
에고, 또 실수.  드디어 그 순간이네.
  
  [신랑 오영호군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어, 바람은 안불어도 돼.
  
  [신부 조영경 양을 사랑하고 아끼겠습니까?]
  [네.]
  
  [신부 조영경 양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것 참, 바람은 불지 말라고.  따라 부르고 싶어지잖아.  그리웠던 30년세월~~~ 이거 내 애창곡이라고..
   
  [..하겠습니까?]
  [네.]
 
응?  뭘 해?  딴 생각하느라 제대로 못들었잖아.  뭘 해?  뭘 하냐고?  어쨌든 지금 영경이가 "네"라고 대답한
건 맞지?  그럼 하면 되는거야?  뭐든 하면 되는거야?  영경이가 "네"하고 대답했으니 나중에 딴 말 없기다.
  
 
  [신랑 신부, 반지 교환하세요.]
  
내가 먼저 반지를 꺼내 들었다.  손이 바들바들 지멋대로 떤다.  내 손 떠는 걸 봤는지 영경이가 아주 조그맣게
피식한다.  나와는 달리 영경이는 침착하게 내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신랑 오영호 군과 신부 조영경 양이 부부로 맺어졌음을 선언합니다.  신랑 신부 뒤돌아 서
   서 퇴장하세요.]
  
어?  잠깐.  뭐가 빠졌어.  키스 안하냐?  신랑 신부 키스하세요, 그게 생략된거 같은데?  요즘은 다들 하잖아.
키스가 그게 임마 도장찍는거야.  키스 도장을 찍어야 정식부부가 되는거라고.  우리는 결혼신고를 할 수 없는
처지라 앞으로 도장 찍을 일도 없는데 키스 도장을 생략해버리면 어쩌니?  도장 안 찍었으니 무효라고 누가 딴지
라도 걸면 큰일이잖아, 임마.  아, 그러고보니 식 시작할때 신랑 신부 맞절도 안했네. 
 
젠장, 이 결혼 무효야, 무효.  처음부터 다시 해.
 
   
  [뭐하세요, 아버지?  이리 와서 앉으세요.]
  
멍청하게 서있는 나를 영호가 거실 소파로 안내했다.  영경이는 어머니 이숙경 여사와 함께 자기 방으로 쏙 사라
진다.  허탈했다.  신부랑 키스도 못해봤거늘.  이게 무슨 조선시대 혼인식이냐.  신부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손
한번 잡아보고 땡이라니.
   
  [축사가 길어서 지루하셨죠?  잠깐 앉아계시다가 옷 갈아입으세요.]
  [아니야.  나는 그저 서있기만 한 걸 뭐.  네가 오히려 준비하느라 많이 힘들었겠다.  네 처도 그렇고.]
  
  [아뇨. 힘든건 없었어요.  숙경이나 저나 내내 즐겁게 준비했어요.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됐어.  차는 무슨..]
  
입이 마르긴 하다만.  목이 말라서 그런게 아니란다.  촉촉한 신부 입술이 그리워서 그래.  제기랄.  온갖 것 다
준비하면 뭘해?  정작 중요한 건 빼먹은 걸.
  
  [아버지.  슬슬 일어나세요.]
  [왜?]
  
  [폐백 올리시려면 한복으로 갈아입으셔야죠.]
  [폐백까지?]
   
  [네.  저는 폐백은 빼자고 했는데.  숙경이가 다른 건 빼먹어도 폐백은 절대 빼먹으면 안된다네요.  숙경이랑
   저랑 식올릴때는 폐백을 생략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자식이 영경이 하나로 끝난거래요.  숙경이가 그때 꼭
   폐백을 올렸어야 했다고 얼마나 아쉬워하던지..]
  [폐백을 받을 사람이 있었어야지.  니네 친모는 둘째치고, 내가 받을수도 없는 노릇이었잖니.]
  
  [지나고 보니 그렇다는거에요.  저는 그런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형식 중요하지 않다는 놈이 축사를 그리 길쭉길쭉하게 하냐.  니미럴..  폐백까지 질질 올리고 나면 또 이거 하
자, 또 저거 해야된다 그럴거 아냐.  이 놈이 인터넷으로 교회식, 불교식, 전통식, 이슬람식, 힌두교식 다 찾아
본거 아냐?  하여튼 인터넷이 문제라니깐, 요즘 젊은 것들은.
  
  
  [아버지, 어머니 절 받으세요.]
  [어이구, 우리 영경이 절하는게 아주 의젓하네.]
  
한복차림의 영호 내외에게 역시 한복으로 갈아입은 나와 영경이가 큰절을 올렸다.  영경이가 또랑또랑 맑은 목소
리로 "아버지" 하는 걸 나는 차마 따라하지 못하고, "어머니"라고 할때 모기소리만하게 작은 목소리로 따라했다.
   
  [옛다.  아들이고 딸이고 가리지 말고 많이 낳아서 건강하게 똑똑하게 잘 키워라.]
   
밤이며 대추가 우수수 떨어졌다.  영경이가 한복치마를 넓게 펴서 받아 안는다.  저렇게 하는건 어디서 배웠을까
싶다.  TV에서 봤을까, 어머니 이숙경 여사가 가르쳐주셨을까.
  
  [영경아, 니가 아직 실감이 안날거야.  남편이라는게 그렇다.  어쩔땐 이 사람이 남인가 싶을때도 있어.  그
   래도 너는 마음이 한결 같아야 해.  지금은 이 엄마가 무슨 말을 하나 싶을거다.  니가 남편이랑 좀더 살아
   봐야, 아 그때 엄마가 이런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구나, 하겠지.]
  [영경아.  아빠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하나야.  네 남편 하늘같이 모시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알았지?]
  [네.]
 
  [네.]
 
앞의 "네"는 영경이의 대답이고, 뒤의 "네"는 나의 대답이다.  왠지 나도 대답을 해야할 것 같아서 했다.  하고
나니 좀 쑥스럽네.  내 아들 놈한테 "네"라니..  아니지 지금은 장인어른이지.  아내가 예쁘면 처가집 말뚝보고
절한다는 말도 있는걸 뭐.  장인이 나이가 새파랗게 젊으면 어떻고, 내 친아들놈이면 또 어때.
 
  [자네.  우리 영경이 행복하게 해주게.  우리 영경이가 부족한게 많더라도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러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고.]
  [네, 어머님.]
  
황송해라.  어머니, 영경이가 부족한게 뭐가 있어요.  나이가 부족할 뿐이지.  저기, 근데 혹시, 우리 영경이..
아직도 가슴이 좀 부족한가요?
  
 
  [자, 자.  폐백은 이 정도로 끝내고.  다들 배고플텐데 저녁이나 들자고.  숙경아, 애 데리고 가서 저녁 준비
   좀 해.]
  
또 데리고 가?  넨장맞을..  신부 얼굴 보기도 힘드네.  그냥 있으라고 하지.  여태 학교 다니고 공부만 한 아이
가 뭘 할 줄 아는게 있다고.  내가 따라가서 도와줄까?
  
  [자네.  자네는 어디 가지 말고.  이거 좀 같이 치우세.]
  [네?  네.]
  
자네?  자눼에에에에?  이게 어디서 지 친아버지한테 자네래?  언제는 영경이가 숙경이 시어머니되는거라더니.
그새 호적법이라도 바꼈어? 
  
  [자네.  이 화분은 현관 옆에다가 같다 놓고.]
  [넵.]
  
나는 빠릿하게 대답하고 재빠르게 옮겼다.  내가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듣는다. 
  
  [자네.  이거랑, 저것도.]
  [뉍.]
  
  [무거운건 저 주세요.  장인어른 힘드실텐데.]
 
녀석, 장인어른이랬더니 피시시 웃으면 좋아한다.  젠장, 난 머슴기질이 있나봐.  "자네" 소리 자꾸 들었더니 "
장인어른" 소리가 자동적으로 나와.  마누라가 지금 내 꼴을 보면 미친 짓거리 한다고 비웃겠지. 
 
마누라, 다 당신 탓이야.  당신이 날 이렇게 길들여 놨다구.
   
   
   
       
        
                                            7. 영경이는 15살 - 결혼식 Part 2.
    
  [그럼 푹 쉬어들.]
  [아니, 이 밤중에 어디를 간다고 그러세요.]
  
  [아냐, 아냐.  우린 걱정할거 없어.  찜질방이고, 모텔이고 잘땐 많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둘이 신방이나 잘
   차려.  내가 보라고 준거 꼭 같이 보고.]
  
영호와 어머니 이숙경 여사는 그렇게 당부하고는 휑 나가버렸다. 
  
  [후..]
 
갑자기 허탈해져서 나는 거실 소파에 폭삭 주저앉았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결혼식에,
폐백에, 저녁식사에, 식사후 가벼운 술자리에, 끊임없이 이어지던 영호와 어머니의 덕담과 훈계..  참 많은 일들
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시각은 이제 겨우 8시를 넘겼을 뿐이다. 
  
  [영경아, 힘들텐데 그렇게 서있지 말고 이리 와 앉아.]
  [네, 영호씨.]
 
  [영호씨?]
  [네.  엄마가 그렇게 부르라고..  일단은 그렇게 부르고 영호씨가 마음에 안 들어하시면 다른걸로 바꾸래요.]
 
호홋..  나쁘지 않아.  어머니는 당신이 영호녀석을 "영호씨"라고 부르시는게 좋으시니까 영경이에게도 그리 부
르라고 시키신 모양이다.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거보다 낫긴 하다. 
 
곁에 앉은 손녀딸, 아니 내 신부 영경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갸름한 턱선, 15살 나이에 걸맞게 맑고 투명한
피부, 젖살이 아직 통통한 볼, 동그란 눈동자, 작디작은 입술.  어디 하나 빠지는데 없는 미모다. 
  
  [할아..  영호씨.  저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그래.  갈아입고 와.]
  
남자는 한복이 편하지만, 여자는 그리고 영경이 또래의 아이에겐 한복이 불편한 점이 있을 것이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편하게 얘기하면 좋겠지.
  
그런데 잠시후 나온 영경이의 옷차림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드레스 어머니가 사주신거니?]
  [아니요.  아빠가 골라주셨어요.  할아..  영호씨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실거라면서..]
  
  [와..  우리 영경이 그렇게 입으니 사람이 확 달라보이네.]
  
영경이가 입고 나온 것은 어깨끈이 없는 원피스 드레스였다.  영화제에 여배우들이 몸매과시용으로 입고 나서는
거와 엇비슷한 스타일이었다.  가슴을 너무 격하게 모아서 상체를 살짝만 숙여도 젖가슴이 대책없이 흘러내릴 것
만 같았다.  나는 이때에서야 비로소 영경이의 가슴 일부분을 처음 보게 되었다.
   
  [앉아, 이리와서.  왜 서있어?  부끄러워?]
  [네.]
  
  [할아버진데 뭐 어때.  부끄러워할 거 없어.]
  
말하고 나서 나는 내 실수를 탓했다.  할아버지라니.  그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는 없잖아.  애한테도 교육
상 안좋아.  조심하자.  정신줄 놓지 말자.  영경이 몸매가 아무리 황홀하기로서니.. 
 
어머니, 결국 성공하셨군요.  나중에 제가 진심으로 큰절 한 번 더 올리겠습니다.  근데 이거 설마 뽕브라 덕은
아니겠지요?  영화 박쥐에 나온 그 처자한테 제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요. 
   
  
  [오늘 많이 힘들었지?]
  [네, 조금요.]
  
  [지금 기분은 어때?]
  [잘 모르겠어요.]
   
  [그래.  얼떨떨할거야.]
  
차분히 이런저런 얘기로 분위기를 이끌 생각이었다.  내가 영호의 친모와 어떻게 만났고, 영호와는 어떻게 알고
지냈고, 영호가 어머니 이숙경 여사와 맺어지는데 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차근차근 모두 설명해주어야한다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었다.
  
  [떨리니?  손을 떠네?]
  [네?  아니..]
 
뜻밖이었다.  영경이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주체못하고 있었다.  영호내외와 넷이 함께 있을때까지만 해도 영
경이는 담담하고 침착했었다.  설레어 하는 눈치도 없었고, 상황에 대한 거부감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나
는 생일잔치를 치르는 어린아이처럼 약간 흥분한 기색까지 보였었다.  어쨋든 오늘은 영경이의 생일날이다.
   
  
  [왜 이렇게 떨어?  내가 무서워?]
  [아니요.]
  
  [내가 싫어?]
  [아니요.]
  
두번 째 아니라고 대답할 때는 목소리가 조금더 강해졌다.  내가 싫지는 않다는 거다.  다행이다.  영경이는 나
에 대한 좋은 감정을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로서 좋아하는 감정일 것이다.
 
할아버지.  난 영경이의 할아버지지.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어.  영경이도 죽을때까지 내가 친할아버지라는
걸 잊지 않을거야.  그러나 내가 지 엄마의 친아들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어.  그리고 왜 친할아버지와 결혼해야
하는지 궁금해하고 있겠지. 
 
영호가 어떻게 영경이를 설득했는지, 아니면 무섭게 을러서 강제적으로 따르게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영
경이의 얼굴에선 강요하니 따르는것 같은 낌새는 찾아볼수 없었다.
  
내가 모든걸 설명해줘야 할까?  애초에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처럼 영경이에게 모든걸 털어놓고 호소하는게 좋을
까?  그러면 영경이가 진심을 받아줄까?
   
  [내가 잡아주니까 좀 낫지?]
  [네.  영호씨 손이 따뜻해요.]
  
아, 영호씨란다.  아까까진 할아영호씨라고 하더니.  이제는 제대로 영호씨라 불러준다.  아유, 이 사랑스러운
것.  낮에 못한 키스 도장을 지금이라도 찍을까?
  
  [우리 이러고 있으면 심심하니까 니 아빠가 보라고 주신거나 같이 보면서 얘기하자.]
  [네.]
  
그래 천천히 풀어나가 보자.  갑자기 심각한 얘기를 던져버리면 애가 놀라니까.  살살 시작해야지.  살살..
  
 
 
  [이야..  방이 이렇게 바꼈네?]
   
영경이의 방문을 열어보고 나는 또 한번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선 킹사이즈의 침대가 눈에 확 들어왔다.  분홍
색 이불은 영경이를 위해 10대 취향에 맞춘 것 같았다.  침대 옆으로 화장대가 있고, 공부용 책상과 의자는 침대
와 마주보는 창문밑에 붙어 있었다.
  
  [아아..  푹신푹신하다.]
  
침대에 네 활개를 치고 누워보니 아늑하고 포근한 기분이 든다.  영경이가 조심럽게 가슴을 모으면서 침대맡에
다가와 엉덩이를 살포시 대고 앉았다.  신부수업을 한 10년은 족히 받지 않았나 싶게 행동거지가 조신하기 이를
데 없다.  어머니 이숙경 여사가 어떻게 가르치셨길래.
  
  [어디 뭘 보라고 주고 가셨나?]
   
영경이의 책상에 세팅된 와이드형 컴퓨터 모니터는 마우스만 누르면 동영상이 재생되도록 모든 것이 이미 셋팅되
어 있었다. 
  
  [영경아.  니가 알지?  니가 좀 켜볼래?]
  [네, 영호씨.]
   
영경이가 마우스를 조작해 동영상을 재생시키고 내 곁으로 왔다.  베개를 세워 침대머리에 등을 기대어 비스듬히
추켜앉고 영경이를 당겨 앉혔다.  색조 화장을 짙게 한데다가 진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황홀하게 했다.
   
   
  [아버지, 결혼 축하드립니다.]
  
자식.  아까는 자네, 자네 거리더니..  이거 찍을때까지는 그럴 생각이 없었나보지?
   
  [영경이 너도 결혼 축하해.  아빠가 그동안 너한테 무섭게만 대해서 많이 섭섭했지?  다 너를 위해서 그런거
   니까 이해해주렴.  아빠는 세상에서 너랑 니 엄마를 가장 사랑한단다.]
  
나는?  니 아버지는 사랑 안하냐?
   
  [아버지.  제가 동영상 몇 편 준비했어요.  아버지와 영경이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일종의 설명서라고 보
   시면 될거에요.]
  
뭐야, 이 자식.  혹시 이거 야동 틀어주겠다는거 아냐?  임마, 영경이는 아무 것도 모르는게 당연하지만 나는 알
거 모를거 다 알어.  틀어주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해, 임마.  누굴 샌님으로 아나.
   
  [아버지, 지금 마음이 조급하시겠지만 놓치지 말고 끝까지 봐주세요.  아시겠죠?]
 
흠, 흠..  조급하다니..  내가 무슨..
  
  
  [불러봐.]
  [여, 여..]
  
  [이름 부르는게 뭐가 어렵다고 그걸 못하니?  다시 해봐.]
  [영..  호..  씨..]
 
  [그래.  쉽잖아.  한 번 더.]
  [영호..  씨..]
  
  [이번엔 애교있게 웃으면서.]
  [영호씨이..]
 
  [아유, 잘하네, 우리 딸.  한 번 더.]
  
어머니 이숙경 여사가 내 사진을 들고 영경이 눈앞에 흔들어보이면서 "영호씨"를 반복하도록 시키고 있었다.  머
리 모양으로 봐선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인 것 같았다.  조금은 뜨악스러운 장면이었다.  나는 영경이 쪽을
돌아다봤다.  영경이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수그린다.  다시 모니터 쪽으로 눈을 돌렸다.  돌리면서 영경이 가
슴골을 슬쩍 훔쳐보고.. 
  
  [앞으론 우리끼리 있을땐 절대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안돼.  알았어?]
  [왜?]
 
  [왜가 어딨어?  그래야 되니깐 그러는거지.  너는 왜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니?]
  
얼토당토않은 논리라서 실소가 나왔다.  똘똘한 영경이가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화면이 바뀐다.
그래서 영경이가 어머니 이숙경 여사를 붙잡고 어쩔땐 왜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되고, 어쩔땐 왜 할아버지라 불러
선 안되는가 그 이유에 대해 토론을 벌였는지 알 길 없다.
  
  [엄마, 좆이 처음에 들어오면 많이 아프다며?]
  [여자마다 다르지만 대개는 아프지.]
  
  [많이 아플까?  막 눈물이 날만큼?]
  [그건 미리 걱정할 필요없어.  겪어보면 알게될텐데 뭐하러 미리 겁내고 무서워해.  여자라면 다 겪는 과정이
   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할아버지가 하시는데로 순순히 따라하기만 하면 돼, 넌.]
   
으잉?  좆이라니?  저 앵두같이 예쁘고 순진한 입에서 좆이라니?  나는 다시 한 번 영경이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영경이도 부끄러움을 못이기겠는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다.  그 덕에 이번엔 여유있게 영경이의 가슴골을 감
상했다.  햐, 어떻게 사람 살결이 이리 뽀얄수 있다니..
  
  [엄마 보지는 어땠어, 처음에?]
  [엄마 보지도 처음엔 많이 아팠지, 당연히.]
  
  [얼마나 씹을 해야 안 아파지는거야, 엄마?  두 번?  세 번?]
  [그게 몇 번이라고 정해진게 아니야.]
  
  [엄마는 몇 번 했을때 보지가 안 아팠는데?]
  [몰라.  그런게 기억이 날리 있니?  몇 년 전 얘긴데..]
  
크억.  심장마비 걸릴 지경이다.  보지라니, 씹이라니..  이것들이 애한테 뭘 가르친거냐, 시방..  그런데 영경
이는 이제는 목까지 빨개져서 얼굴을 가린 두 손을 내릴 생각을 못한다.  영호야, 얘 왜 이러니?  좆이니, 보지
니, 씹이니 비속어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으면서 엄마랑 대화하는 애가 왜 이렇게 부끄러움을 타는거냐구?  아
니, 부끄러운 척 하는거냐?  이것도 니네가 가르쳤냐?  척하는거?
    
  [엄마, 할아버지 자지, 많이 커?]
  [길이는 보통인데, 귀두가 보통남자들보다 좀 큰 편이야.  근데 엄마도 할아버지 자지가 꼴린 건 제대로 본 적
   이 없어서 얼마나 큰지는 잘 몰라.]
  
  [귀두가 크면 좋은거야, 나쁜거야, 엄마?]
  [좋은거지.  좆대가리가 크면.  좆대가리가 커서 보지를 잘 긁어주면 기분이 정말 좋아져.  니가 나중에 할아
   버지랑 씹해보면 잘 알겠지만서두.]
  
  [그렇게 기분이 좋아져?  씹하면 그렇게 좋아, 엄마?]
  [좋으니까 우리 딸 시켜주려는거지.  언제 엄마가 우리 딸한테 나쁜거, 맛없는거 주는거 봤니?]
   
  [맨날 말로만 그러니까 잘 모르겠어.  진짜 그런지.]
  [처음 몇 번만 참으면 돼.  그때만 참으면 좋아지니까.  아프다고 할아버지한테 하기 싫다는 소리하면 절대로
   안돼.  알았지?]
  
  [알았어.  엄마 말대로 할게.]
  [그래.  니가 싫다고 하면 할아버지 슬퍼하시니까 그러면 안되는거다?]
  
  [응.  나도 할아버지 슬퍼하는건 싫어.  아파도 참고 보지 잘 대드릴거야.]
  [그래, 그래.  여자는 모름지기 그래야 하는거야.]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영경이의 손을 잡았다.  손이 순순히 따라오면서 얼굴 반쪽이 드러난다.  시선을 내게 똑
바로 맞추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영경이의 가슴골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다시봐도 골이 참 깊다.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허리를 더 틀어봐.  더..]
  [아파, 엄마.]
  
  [엄마도 하는데 니가 왜 못해?  여자가 몸이 그렇게 뻣뻣해서 어쩌려구 그래?  할아버지가 이 놈 하시겠다.]
  [아이씨..  엄마는 나보다 요가한지 오래됐잖아.  난 한 달 밖에 안됐구.]
  
  [우는 소리 말고 이 악물고 해.  허벅지에도 힘주고.  그래야 허벅지가 탄력있어져.]
  [알았어.  나도 나름 애쓰고 있다니까, 엄마.]
    
 
트레이닝복을 갖춰입고 둘이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나 했더니 요가를 하고 있었다.  다시 보니 동작들이 전혀 간
단치 않다.
   
  [다리 활짝 벌려.  다리가 잘 안 벌려지면 남자가 재미없어해.]
  [언제는 여자는 다리 벌리고 앉는거 아니라고 잔소리하면서.]
 
  [이것아.  평소엔 당연히 조신하게 몸가짐을 해야지.  엄마 말은 잠자리에서 다리를 잘 벌려야한다는거야.]
  [알아.  나도.  다리를 잘 벌릴줄 알아야 보지구멍도 잘 벌어진다는거.]
  
  [무턱대고 활짝 벌리기만 한다고 되는게 아냐.  그것도 요령이 있어야 돼.  다리 다 풀렸지?  엄마처럼 해봐.
   다리를 요정도로 벌리고.  그래 그 정도가 딱 적당해.]
  [항상 요정도만 벌리고 해, 엄마?  씹할때?]
  
  [그때 그때 달라.  이건 기본 자세고.  다리를 안 벌리고 붙이고 할 때도 있어.]
  [응?  다리를 붙이고?  그럼 어떻게 보지에 자지가 들어가?  꼭 다물고 있는데?]
  
  [다리를 붙여도 보지는 벌리면 벌어지게 되있어.]
  [정말?]
   
  [엄마가 뒷치기 자세 가르쳐 줬잖아, 일전에.]
  [뒷치기 할때 다리를 붙이고 하던가?   무릎꿇고 엎드려서..  아닌데?  다리가 벌어지는데?]
   
  [그 자세에서 다리를 모아서 붙여봐.]
  [이렇게?  불편한데?]
 
  [그럼 양 팔을 좀 넓게 벌려서 버텨.  어때?  버텨지지?  실제로 할때는 남자가 뒤에서 버티고 모아주기 때
   문에 여자는 별로 힘들거 없어.  팔은 좀 힘들지 몰라도.]
  [난 정상위로 하는게 제일 좋을거 같애.  해보진 않았지만.]
 
  [왜?]
  [편하잖아.  다리 벌리고 가만 누워있기만 하면 되고.]
  
  [내내 다리 벌리고 있는건 쉬운지 아니?  니가 한번 해봐라.  편하다는 소리가 나오나.  허벅지가 얼마나 뻐
   근한데?]
  [그럼 엄마는 뒤치기가 더 좋아?]
  
  [뒤치기가 더 좋을때도 있고.  엄마는 다 좋아.]
  [남자들은 왜 뒤치기로 해?  그냥 얼굴보면서 하지.]
  
  [이상하니?]
  [이상하잖아.  사랑하는 사람이면 얼굴 마주 보면서 하는게 정상 아냐?]
  
  [정상, 비정상이 어딨니?  서로 마음 맞아 좋아하면 그냥 하는거지.]
  [뒤치기는 뭐가 좋아, 그럼?]
  
  [글쎄?  말로 설명하기 좀 힘든데..  뭐랄까..  니 아빠는 그러시더라.  뒤에서 하면 엄마 보지가 개보지로
   보여서 흥분된다고.]
  [어머.  정말?  진짜로 뒤에서 보면 개보지로 보여?]
 
  [모르지, 엄만.  남자들이 원래 잠자리에서 실없는 소릴 많이 해.]
  
여, 영경아.  나는 그런 남자 아니란다.  니 아빠 영호녀석만 그런거야.  니 아빠가 워낙 동태눈깔이잖니.  자식
이 누굴 닮았는지 원..
  
  [내 보지도 뒤에서 보면 개보지로 보일까?]
  [개보지로 보이건 안보이건 뒤에서 박히면 그때부턴 개보지되는거야.]
  
  [응.]
  [너도 등교하다 본 적 있다며, 초등학교 때.  암캐랑 수캐랑 하는거.]
  
  [어.]
  [뒤치기가 그 개들 하는거랑 자세랑 다를바가 없어.  그래서..]
  
  [알아, 나두.  그래서 뒤치기를 개치기라고 부르기도 한다는거..  엄마가 가르쳐줬잖아.]
  [그래, 그래.  개치기 하니까 개보지 되는거지 뭐.  안그러니, 영경아?]
  
  [남자 자지는 개자지 되는거구?]
  [그래, 그래.  우리 영경이, 이젠 척 하면 착 이네.  에구, 똑똑한 우리 딸..]
   
  [근데 그 때 나 자세히 못봤어.  놀래서.  뒤에서 보지가 보이나?  다리를 모으면 안 보일거 같은데?]
  [그러게.]
  
  [엄마도 궁금하지?  나 한 번만 봐죠, 엄마.  뒤에서 보지가 어떻게 보이나.  뒤에서 보면 진짜 개보지로
   보이나.]
  [그럴까?  어디.  바지 내려봐.]
  
  
헉.  지,  지, 지금?  그, 그렇다면 지금 내 눈앞에 영경이의 보, 보, 보, 보, 보......지가?
    
   
   
  [이젠 혼자서도 잘하네?  우리 영경이?]
  
화면이 다시 바껴버렸다.  뭐야 이거?  방송사고 아냐?  왜 여기서 화면이 바뀌는거야?  
    
  [엄마가 가르쳐준 포인트만 잘 기억하면 화장도 별로 어렵진 않지, 영경아?]
  [어, 엄마.  몇 번 해보니까 어떻게 하는지 알겠어.  재밌다, 화장하는거.]
  
  [어디.  카메라 쪽으로 얼굴 돌려봐.]
   
햐......가 아니고, 힉?  화장이 왜 저렇게 진하니?  입술은 왜 저렇게 빨갛고?  마스카라가 너무 까맣잖아.
애한테 무슨 저런 화장을 시켰어?  애를 텐프로에 출근시킬 작정이냐? 
  
기겁을 해서 영경이 쪽을 돌아다보았다.  다행히 화면에 비해 지금 영경이의 화장은 상당히 옅은 편이다.  그래
도 여느 10대 소녀나, 심지어 여느 20대 여성에 비해서는 진한 축에 속하지만.  아마 화장을 가르친 초창기라서
정도가 지나쳤던 모양이다.  영경이는 화장하는 장면이 나오자 관심이 가는지 모니터를 직시했다.  역시 어려도
여자는 여자구나.  
    
  [이번엔 옷을 차려 입어보자.  오늘은 바지 복장이랑, 치마 복장이랑 다 입어보는 걸로 할까?  니가 마음에
   드는 대로 골라 입어봐.  엄마가 가르쳐준 포인트 있지 말고.]
   
  [영경아, 엄마가 가르쳐준 포인트가 뭐니?]
  [그게..  보시면 알아요.]
   
영경이가 또 부끄러워하려고 하길래 나는 더 묻지 못했다.  화면이 멈췄다.  동영상에 오류가 났나 했는데 동영
상은 제대로 재생되고 있었다.  카메라가 사람이 없는 빈 공간을 비추고 있어서 화면이 멈춘 듯 보였던 것이다.
잠시 후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카메라 앞에 서봐.]
   
화면에 나타난 영경이는 스키니 진에 평범한 하얀 면 티를 입고 있었다.  말그대로 평범했다.  다만 스키니 진이
다리의 각선미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서 섹시하게 느껴질 뿐 전체적으로는 청순해 보였다.  
  
  [거울 봐봐, 영경아.  뭐가 잘못 된거 같니?]
  [안 이뻐, 엄마?  내 눈엔 괜찮아 보이는데?]
  
  [이쁘기야 하지.  근데 섹시하지가 않잖아.]
  [스키니진 안 섹시해?  이렇게 몸에 착 달라붙는데도?]
  
  [너, 지금 팬티 입었지?]
  [응.]
  
  [너, 지금 팬티선이 얼마나 꼴불견인지 아니?  엄마가 T팬티 사줬잖아.  그거 어쨌어?]
  [아, 감빡했다.  T팬티가 있었네.  그럼 여기서 T팬티만 입어주면 문제없는거지?]
   
  [팬티 하나 뿐이 아니야.  밑에를 스키니로 입었으면 상의도 비슷한 걸 걸쳐줘야할거 아냐?]
  [어떤거로?]
  
  [얘가, 얘가..  엄마가 가르쳐준거 다 까먹었네.  나시 배꼽티!  잊었어?  바지입을 땐 가슴하고 허리를 강조
   해야한다고 엄마가 몇 번을 말했니?]
  [아이, 어려워, 정말..  그냥 아무거나 깔끔하게만 입으면 안되는거야?]
   
  [남자 홀리는게 그럼 그렇게 쉬운줄 알았어?  이 정도 노력도 안하고 어떻게 할아버지한테 시집갈 생각을 하
   니?  할아버지가 너를, 그저 그런 평범한 아이구나, 하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알았어.  다시 갈아입으면 되잖아.]
  
  [빨랑 갈아입구 와.]
  
울상이 된 영경이가 화면에서 사라졌다.  나도 눈시울이 붉어져서 영경이를 돌아보았다.  
   
  [우리 영경이가 나 땜에 고생이 많았구나?  엄마한테 꾸중까지 듣고..]
  [아니에요, 영호씨.  재미있었어요, 저때.  옷도 많이 입어보고.  제 친구들은 저런 옷은 입어보지도 못해요.]
  
  [그러니?]
  [네.  친구들이 저를 얼마나 부러워하는데요.  물론 입고 외출은 못해봤지만..  친구들은 부모님이 저런 옷은
   절대 안 사주신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영경이가 화면에 나타난다.  그런데 정말..  부모님이 딸에게, 그것도 중학교 2학년짜리 딸
에게는 절대 사주지 않을 옷을 입고 나왔다.
    
  [그래.  거봐.  얼마나 보기 좋니?  이번에는 제대로 입었네.]
  [가슴이 너무 껴, 엄마.]
  
  [브래지어가 두꺼워서 그래.  엄마가 망사로 된거, 아주 얇은거 사줄게.  그거 하면 가슴이 좀 편할거야.]
  [아예 브래지어 하지 말까?]
   
  [노브라도 괜찮지.  각각 장단점이 있어.  노브라는 젖꼭지가 튀어나와 보여서 나름 야한 맛이 있고, 또 지금
   처럼 브래지어를 차면 가슴을 모아주니까 풍만한 가슴골이 섹시하고.]
  [옷 하나로 가슴도 모아주고, 젖꼭지도 튀어나와 보이게 입을 순 없어, 엄마?]
 
  [옷 하나로 그렇게 연출할 순 없을걸?  기본적으로 젖을 밑에서 받쳐올려줘야 되잖아.  젖을 받쳐주려면 아무
   래도 옷감이 어느정도 있어야되고.]
  [내 친구 중에 엄마.  가슴이 그렇게 생긴 애가 있어.]
  
  [어떻게 생겼는데?]
  [걔는 젖꼭지가 위로 이렇게 삐죽하게 났어.  젖통도 가운데로 몰렸고.]
  
  [젖이 커?]
  [아니.  젖은 작아.]
  
  [그럼 파이다.  안돼.  젖이 커야 옷 입어서 테가 나지.]
  [나는 젖은 큰데 좀 쳐진 것 같아.  걔처럼 젖이 뾰족하게 생겼으면 이런 고민 안해도 되는데.]
  
  [쳐진게 아니라 무게가 있어서 젖통이 자연스럽게 늘어진거야.]
  [친구들은 놀려.  벌써부터 젖이 쳐졌다고..]
  
  [걔네들은 부러워서 그러지.  나중에 봐라.  걔네들이 안 부럽다고 이실직고 안하나.]
  [옷 입을때마다 힘들어 죽겠어.  두꺼운 브래지어로 꽉 조이면 얼마나 답답한데.]
  
  [엄마가 큰 사이즈로 몇 개 사다줬잖아.  아직도 작은거 하고 다니니?]
  [브래지어 큰거 하면 가슴이 너무 커보여서 싫어.]
  
  [안돼.  그럼 못써.  엄마가 니 젖 크게 키우려고 얼마나 공을 들었는데?  니 젖도 그렇게 큰 거 아냐 지금,
   엄마 젖에 비하면.]
  [엄마는 그렇게 큰 걸 어떻게 달고 다녀?  힘 안들어?]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하고 어깨 근력을 키우면 힘들거 하나 없어.  남편한테 사랑받으려면 이정도 노력은
   당연한거야.  너도 그러니까 공부하고 친구하고 수다만 떨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해.]  
  [나는 젖 작은 애들 보면 진짜 부러워.]
  
  [쓸데없는 소리.  부정탈라.  그런 소리 말어.  우리 딸 영경이, 젖 커져서 젖소처럼 되게 해달라고 엄마가
   밤낮으로 얼마나 치성을 들이는데?]
  [알았어.  엄마, 근데 할아버지는 어떤 쪽을 좋아하실까?  젖꼭지가 톡 튀어나온걸 좋아하실까, 아니면 브래
   지어로 가슴을 모으는걸 좋아하실까?]
  
  [그건 엄마도 모르지.]
  [지금 전화해서 물어볼까?]
 
  [아서.  아직은 할아버지 모르게 해야된다고 했잖아.  식 올리고, 그때 가서 물어봐.]
  
영경아, 난 둘다.
   
     
  [자, 이번엔 치마스타일로 입어봐.]
  [원피스, 아니면 투피스?]
  
  [니가 입고 싶은데로 입어.]
  [그럼 나 다 입어볼래.]
  
  [그래.  휴일이라 시간 많으니까 다 입어보자.]
 
화면에서 다시 영경이와 어머니가 사라진다.
  
  [영경아, 이 드레스도 저때 처음 입어봤니?]
  [아니요.  이건 며칠 전에 선물로 받았어요, 아빠한테.]
  
  [그랬구나.  영경이 옷 많은가보네?]
  [아니요.  몇 벌 없어요.]
  
  [동영상 보니까 꽤 많은가 본데?  다는 못 봤지만.]
  [저건..  엄마가 저 실습하라고 이천원짜리, 삼천원짜리 싼거로만 사놓으신거에요.  엄마가 연습삼아 입어보기
   만 하고 영..호씨 앞에선 입으면 안된댔어요.]
  
  [그랬어?  그럼 내가 앞으로 예쁜 옷 많이 사줘야겠네, 우리 와이프한테?]
  
와이프라고 하니 영경이가 풋 웃는다.  아이고, 내가 녹는다, 녹아.
  
화면은 정지상태 그대로 끝나버렸다.  처음 보기 시작할땐 나중으로 미루고 신방부터 차리고 싶어 보는 시간이
지루할거라 생각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다.  아마도 동영상 파일이 더 있을 것이다.  영호에게 달래
서 또 봐야지.  영경이가 일어나서 컴퓨터 전원을 끄고 왔다.
  
  
  [영경아.]
  [네?]
  
할 말이 무지 많다.  그런데 막상 이름을 부르고 운을 떼려고 하니 어떤 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저 영경
이의 커다란 눈동자만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맑다.  고요하다.  순수하다.  여기에 돌을 던져야 하나?  돌 정도가 아니라 내가 하려고 준비한 말들은 비수가
되어 어린 영경이의 눈을 찢고 영영 장님으로 만들어 버릴지 모른다.  순수의 세계, 평범의 세계를 더 이상 보
지 못하는 장님으로 말이다.  모든 것을 비뚤게 보고, 모든 사람을 더럽게 보게 될 지 모른다.
  
  [영경아?]
  [네.]
  
나는 순수한 사람이 아니다.  어머니를 친손자에게로 이끌어 촌수를 어지럽힌 장본인이다.  내 친아들 영호가
그 친할머니 이숙경 여사가 콩을 까게 하고, 밤이면 밤마다 난잡한 육방아를 찧게 만들어 나노입자 콩가루 집안
을 만든 주역이다.  그런 내가 지금 손녀딸을 신부로 맞이하는 이 밤, 손녀 딸의 순수가 망가질까 근심하고 있
다.
 
  [영경아.]
  [네.]
  
이율배반.  모순덩어리.  어차피 세상은 모순 형용으로 가득차 있다.  살리고 위해서 죽이고, 불공정한 숫돌로
공정의 칼을 간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내가, 순수하지 못한 내가, 사랑하는 내 손녀딸의 순수를 지켜내지
못할 게 무어냐. 
  
영호자식, 아니 장인어른도 낮에 축사하시면서 말하지 않던가.  사랑은 모든걸 가능하게 한다고.  내가 영경이를
사랑하고 지켜주겠다는데 누가 뭐라 지랄을 하던 무슨 상관이냐.  그래 영경아.
  
  [영경아.]
  [네?]
 
잠시 침묵.........
   
  
  
   
  
     
      
 
  
  
  [우리 그만 잘까?]
        
    
     
    
   
  
 
-----------------------------------< 추    신 >--------------------------------------- 
   
1. 말이 말을 낳고, 말이 말의 말을 낳고, 말이 말의 말의 말을 낳고..
   쓰다보니 주책스럽게 할 말이 많아져서 상중하로 마무리 지으려던 당초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덕분에 이 글에 매달려 생업까지 말아먹게 생겼네요.
 
2. 행여나 제 글 보고 미성년자에게 눈독들이진 마세요.
    발찌차고, 패가망신 합니다.
    상상은 상상일뿐, 현실과 착각하지 맙시다, 착각하지 맙시다.
  
3. 신방은 반드시 수일 안으로 차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크.  돌 날아오네.   줄행랑 ============3333333333333333333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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