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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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6,669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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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리 설화(金村里 說話) - 77
 
 
 
금아는 눈을 떴다. 그러나 바로 움직이지 않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제서야 격렬한 섹스 후 잠시 잠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옆에 그 소년도 잠들어 있다. 피곤하기도 하겠지. 연속해서 두 여인과, 아니 그 여인들에게 몇 번씩인지 세기도 어려울 만큼 절정을 맛보게 했으니 정말 힘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영도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일어나 앉은 그녀는 앞가슴이 열려있는 것을 깨닫고 본능적으로 가슴을 가렸다. 가슴만이 아니라 완전히 알몸이었다. 옷은 아까 욕실에 벗어둔 채다. 그녀는 가운으로 알몸을 가리고 조심스레 방문을 여닫고 욕실로 들어갔다.
 
팬티를 입으려다 보니 정액이 한줄기 허벅지로 흘러내린다. 뒤처리를 했어도 아직 몸 안에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우선 샤워기로 그곳을 씻었다. 손을 대자 보지에서 짜릿한 감촉이 온몸에 감전된 듯 퍼져나간다. 좀 더 문지를수록 그 느낌은 더 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색기가 있었나? ······ 얼굴을 살짝 붉히며 그녀는 옷 입는 것을 서둘렀다.
쇼파에 앉으니 나른하게 피로감이 밀려오고 보지는 아직도 얼얼하다. 그러나 싫은 기분은 아니다. 아직도 얼마 전의 황홀함과 충족감이 몸 안에 남아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더 혼란스럽기도 하다.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 어떻게 그런 말이 내 입에서 술술 나올 수 있었을까?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수치감이 밀려든다.
어제 저녁 어머니와 금순 언니가 갑자기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좀 더 들어보니 선을 본다거나 교제상대를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섹스상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금아는 펄쩍 뛰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남자가 그립거나 섹스에 대한 욕구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 바로 어머니와 언니가 대놓고 그런 부도덕한 제의를 하다니 ······ 정신병자라고 무시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언니는 빚쟁이 독촉하듯 계속 졸라댄다.
 
“아이 몰라. 나 지금 졸려. 자야겠어.”
금아는 잠자리를 펴는 것으로 이 대화를 끊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언니가 어제 말했던 남자를 데려왔다. 그것도 금아의 눈에는 코흘리개 같은 국민학생이니 어이가 없다. 어제밤 “몰라.”라고 하는 것을 반승낙 정도로 생각했는지, ······ 아니다. 학창시절에 공부도 잘못해 머리도 나쁠 것이 분명한 언니는 가끔 엉뚱한 짓을 잘 벌리는데 지금도 그런 식이다. 아랫사람이라면 뺨을 한 대 때리든지 욕이라고 해주고 싶은데 다시 대화에 말려들었다.
물론 금아는 반대의 의지를 전혀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언니는 “그렇다면 내가 직접 할 테니 너는 구경만 하라.”고 했다. 엉뚱함도 도를 넘었다. 남편도 자식도 있는 여자가 친동생 앞에서 애송이와 섹스하는 장면을 보이겠다니.
그런데 듣자듣자 하니 금아도 차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미친 짓을 관철시키겠다고 막말을 해댔다. 원래 언니의 입이 험한 것은 알지만 ‘집안의 애물단지’니 ‘애도 못 낳고 소박당한 여자’ 같은 말은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가 환자라는 입장을 생각하면 면전에서는 차마 못할 말 아닌가.
 
오냐! 정 그렇다면 언니가 해봐라. 언니 말로도 동생 앞에서 그런 짓 하는 것이 “창피하고 역겹다.”고 했으니 그 꼴 한번 직접 당해봐라. 그렇다고 내가 눈 하나 껌벅할 줄 알아? ······ 금아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금아는 내기, 아니 싸움에 졌다. 참패다. 언니가 자리를 비우자말자 숨 가쁘게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그 생각만 하면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수치감이 밀려온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패잔병이 패인을 분석하듯이 금아는 아까의 상황을 찬찬히 점검하려 했다. 그래도 정리가 잘 안되어 그녀는 답답했다.
 
언니가 처음 옷을 벗었을 때 ······ ? 말도 안 된다. 여자가 여자의 나체를 보고 흥분하는 일이 있을까. 언니가 “내 몸 많이 망가졌제?”라고 말했을 때 “괜찮다.”는 뜻으로 대답한 것은 실제로 그렇기도 했지만 조롱기도 섞인 것이다.
그 소년이 좆을 내보였을 때 ······ ? 그것도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남편, 아니 전 남편보다 큰 것에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더 큰 좆도 보았다. 남편, 아니 전남편 ······ 호칭이 자꾸 헷갈리지만 그건 어쨌던 간에, 억지로 보게 한 포르노 테이프 속의 양놈 좆은 내 팔뚝만 했다.
더구나 몸집은 조그만 아이가 큰 좆을 달고 있는 것은 징그럽고 그 언발란스가 우스꽝스럽기 조차 했다.
 
둘이 애무를 시작했을 때 ······ ? 별것 아니다. 전희란 보통 섹스의 기본 아닌가. 물론 나는 남편과의 경험밖에 없지만.
언니가 소년의 좆을 입에 물었다. 나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아 눈을 가렸다. 나도 이미 해보았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남편은 내가 그리 싫다는데도 억지로 좆을 입에 처넣었다. 지린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구역질이 나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지만 견딜 수 없어 곧 입을 떼었다.
두 번 째. 역시 술이 잔득 취한 남편이 같은 행동을 했을 때 그 끝이 내 목젖을 건드리자 나는 실제로 구역질을 하고 그 자리에서 먹은 것까지 토했고 그 후 남편은 다시 그 짓은 강요하지 않았다.
 
“눈도 가리지 말고.”라는 언니의 지적에 나는 손을 떼었다. 오기가 나서 똑바로 그 짓거리를 지켜봤다.
언니의 표정이 흥미롭기는 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흡족해 하는 것처럼 야릇한 표정이다. 저렇게 입이 두덩에 붙은 것을 보면 귀두는 목구멍으로 들어갔을 텐데 ······ 언니는 지금 빠는 좆이 맛있을까, 저 소년의 좆 맛이 특별한 것일까?
언니는 슬슬 몸을 움직이더니 보지를 누워있는 소년의 입에 대었다. 저것은 식스나인의 포즈다. 신혼여행지에서 남편이 그 짓을 하려했을 때 나는 눈물을 찔금거리며 애원을 해 그 곤경을 피했다. 그런데 언니는 스스로 그런 자세를 만들고 있다.
 
이어서 소년이 언니의 보지를 빤다. 폼새를 보니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닐 만큼 능숙하다. 언니의 입에 물렸던 자지를 빼고 소년은 언니의 두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본격적으로 보자를 빨아댄다. 언니도 몸을 비틀며 신음을 낸다.
하지만 그게 뭐 대단한 것인가. 남편도 보지 빠는 것을 좋아했고 나도 그 기분은 안다.
누구나 겨드랑이를 간질이면 간지럽고, 귀를 후비면 시원하지만 잘 못 자극을 주면 재채기가 나기도 한다. 공알은 여자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 반응도 빠르다. 그러나 좀 오래 계속되면 불쾌하고 지겨워 나는 “빨리 그냥 하세요.”라고 남편에게 재촉하곤 했다.
 
언니도 “빨리 넣어줘.”라고 했고 좆은 보지에 박혀 방아질을 시작했다.
언니는 두 다리를 올려 소년의 몸을 옭죄고 엉덩이를 흔들며 박자를 맞춘다. 좆이 빠르게 드나들며 보지 속살도 빨려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하고 주위에는 치약거품 같은 것이 생겨났다. 내가 할 때 내 보지도 그런 모양이었을까? 그 역동적인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내가 덩달아 흥분한 것은 그때부터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언니가 갑자기 “앙! 앙! 앙!”하고 우는 소리를 낼 때 솔직히 나는 깜짝 놀랐다. 포르노의 여배우들도 신음이나 비명을 지르지만 지금 언니는 연기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남편도 아이도 있는 여자가 그런 소리를 낸다는 것은 너무 천박하고 추하고 환멸스러운 짓이다. 나는 언니를 진심으로 경멸했다.
그런데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저토록 방아질을 오래하고 언니는 울부짖었는데 ······ 언니는 이제 소년 위에 걸터앉아 수직으로 서 있는 좆을 제 손으로 꼽더니 제법 능숙하게 엉덩이를 움직이기도 한다. 나도 그런 자세로 몇 번 해보았지만 우선 내가 보기에도 어색하고 좆이 쉽게 빠져버려 서둘려 남편 몸에서 내려왔었다.
 
언니는 너무 많이 해보아서 몸에 익었는지, 소년의 좆이 길어서인지, 앉은 채로 전혀 좆이 빠지지 않고 잘 박아댄다.
어 ······ ! 그런데 언니가 또 “앙! 앙!” 하고 울어댄다. 분명 체하는 것이 아니라 한껏 좋아서 나는 소리다. 어떻게 저런 자세로 ······ 어떻게 연달아 두 번씩이나 ······ 이제는 언니를 경멸할 여유도 없이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울음이 멈추며 소년에게 엎어져 한동안 숨을 헐떡이던 언니는 소년이 몸을 일으키자 그 앞에 납작 엎드렸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소년의 좆은 물기로 번들거리지만 처음처럼 빳빳했다. 그 좆이 언니의 엉덩이 및 구멍으로 쑥 들어간다.
언니가 먼저 엉덩이를 조금씩 들썩거린다. 좆맛을 느끼는 것일까? 나 역시 그런 자세를 많이 취해 봤지만 정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역동적으로 박아대는데 따라 보지 속살이 들락거렸다.
언니는 또 아기 울음소리를 냈다. 언니가 울어대는 것은 분명히 절정의 환의 때문이다. 세 번씩이나 그렇게 절정을 느끼면서 여자 몸이 견딜 수 있을까? 결국은 언니도 기진맥진한듯 엎어져 버렸다.
 
바로 눕는데 보니 보지는 온통 홍수가 났고 요위에도 지린 자국이 있다. 타올로 그 물기를 닦기에 이제 다 끝나서 뒤처리를 하는지 알았다. 역시 물기로 번들거리는 소년의 좆도 닦아주며 나에게 소감을 묻는다. 나는 비밀이 들통난 것처럼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인가 보지가 짜릿짜릿하며 물이 배어나오더니 지금은 흘러 넘칠 정도다. 언니도 나의 이런 변화를 눈치챘을까?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도 나는 짐짓 화난 표정으로 “나 신경쓰지 말고 언니 하던 일이나 마저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소년이 다시 엎어져 좆을 집어 넣는다. 언니도 지쳤는지 사지를 늘어뜨리고 그냥 방아질을 받아주기만 했다. 그러나 방아질의 속도가 빨라지자 팔다리 모두로 소년을 옭죄고 엉덩이로 박자를 맞춘다. 그리고 이 방에서 가장 큰 소리로, 또 가장 오래 울부짖었다.
감히 소리를 낼 수는 없었지만 그 순간 나도 갑자기 보지에서 울컥 물이 쏟아지며 속으로는 언니와 같은 울음을 계속했다.
소년이 좆을 빼자 뻥 뚤린 보지구멍은 피가 몰린 것처럼 유난히 빨갛다. 그 구멍은 곧 다물어졌지만 정액이 꾸역꾸역 나왔다. 참 많이도 쌌다. 저렇게 많은 정액을 쏘아댈 때는 분명 자궁입구도 그 거센 물줄기를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기억을 되살려 봐도 어떤 장면이나 행위가 나를 이토록 흥분시켰는가를 꼭 집어 말할 수가 없다.  어쩌면 나는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그 모든 장면과 행위에서 서서히 예열(豫熱)이 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참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결정적인 상황은 되돌아봐도 도저히 꼭 집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니의 반응은 소설책에서나 나오는 오르가슴이 분명했다. 여자만이 느낀다는 오르가슴을 나는 소설 속에서 과장되었거나 특별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인지 알았다. 그런데 같은 배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함께 자란 언니가 오르가슴을, 그것도 몇번씩이나 느끼는 것을 나는 바로 옆에서 똑똑히 보았다.
 
어쩌면 이런 감동이 영화와 연극의 차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는 몇천명이 맞붙어 칼싸움을 하는 스펙타클한 장면이나 도심을 질주하는 자동차의 추격전, 대 설원의 장관이나 바닷속의 장면도 뜻하는 대로 스크린에 내보일 수 있다.
반면 연극은 한정된 무대 안에서 겨우 몇사람의 배우가 줄거리를 이끌어 나간다. 고작 변화란 무대의 배경을 바꾸는 것 뿐이다.
그런데 때로 연극이 더 감동을 주는 것은 배우의 숨소리까지 전해지는 현장감과 현실감 때문일 것 같다.
 
나는 오늘, 조금전까지는 전혀 예상도 기대로 하지 못했지만 정말 감동적인 연극을 본 셈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본 것은 연극도 배우의 연기도 아니다. 바로 실황인 것이다.
포르노에 나오는 여인들도 한창 남자가 박아대면 신음이나 비명을 지르며 환희의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이 직업적인 몸짓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영화배우들이 스크린에서 울고 웃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오르가슴에 빠진 여인을, 그것도 바로 내 친언니의 실연은 너무나 선정적이고 음탕하고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바로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할 수는 없었다.
마음을 다지고 표정을 정리하면서 나는 평정심을 보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엄마까지 편승해서 나에게 선을 보거나 교제상대가 아니라 단지 섹스를 할 남자를 소개한다고 했을 때의 당혹감과 분노, 애송이를 데려왔을 때 더욱 충격을 받았던 반발심, 남편도 자식도 있는 언니가 내 앞에서 실연을 하겠다고 했을 때의 경멸감, ······ 그런 기억들을 되살리며 나는 버텨보려고 했다.
그런데 언니가 방을 나서자말자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 나왔다.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눈을 떴을 때 금아는 없었다. 아까 그녀가 잠든 것을 흐뭇하면서도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감정으로 지켜 보다가 나도 어느 새 잠이 들었었나보다. 나는 급히 옷을 챙겨 입었다. 막 방문을 열려 하는데 밖에서도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 금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가서 금순에게 꾸벅 아는 체만 했다. 금순이 동생에게 말했다.
“느그들, 다 끝난 기제? 아까 와 봤더니 방문이 잠겨 있고 ······ 벌써 두시가 지났다. 끼니도 잊고 그리 오래 걸렸나? ”
“아이, 창피해. 그런 말 하지 마.”
“뭐가 창피 ······ ? 니는 아까 내가 할 때 바로 옆에서 다 보고는 ······ 사실 공평하게 하자면 나도 느그들 하는 거 직접 봐야 하는데 ······ ”
“아이 참,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그럼 한가지만 묻자. 이 말만 대답하면 다시 말 안할게. 좋았나? 나빴나?”
“몰라! 난 몰라! ······ 언니 정말 못됐어!”
금아는 거의 울쌍을 지으며 언니의 어깨를 연속해서 주먹으로 쳤다. 그 매를 맞으며 금순은 미소를 지었다. 동생의 반응으로 그녀는 확실한 대답을 들은 것이다.
“엄마가 점심 차리면서 가보라 캐서 왔다. 밥상을 이리 들고 올까?”
“아이, 그렇게까지 수선을 ······ 차라리 나가서 먹을까? 영도씨 어때요?”
이럴 때 나의 선택권은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갈래? 갈비집? 중국집? ······ 아버지 차로 내가 모실게.”
모처럼 동생의 외출 제의에 금순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아이, 그렇게 묵직한 것은 싫고 ······ 참, 영천집이 지금도 하나?”
“영천 ······ ? ······ 아아, 그 떡볶이 집! 그쨔는 문 닫은지 몇 년 됐다. 그 할매가 돌아가신기라. ······ 그래도 떡볶이 맛있게 하는데 또 있다. 그 집은 오뎅도 같이 파는데 엄마도 가끔 사와서 먹는다 카더라. 글로 갈까?”
금순은 우리의 점심상을 중단시키고 아까의 말대로 아버지의 승용차를 몰고 나왔다. 금순네는 아직 자가용이 없지만 운전면허는 몇 년 전에 따 놓았다고 한다.
 
떡볶이와 오뎅은 다 맛이 있었다. 점심 때가 지났어도 허기를 느끼지는 않았는데 맛있게 먹으니 배가 든든했다.
자매는 이제 문을 닫은 영천집에서 떡볶이 사먹던 추억을 되살리다 한동안 옛날 기억들이 이어진다.
“언니, 마침 차도 있으니 뒷산에 좀 데려다 줄래? 영도씨도 같이 갈까?”
나는 역시 선택권이 없으니 고개만 끄덕였다.
“뒷산 ······ ? 이래 날씨도 추운데 ······ ”
“갑자기 ······ 그런데 지금 꼭 가보고 싶어. 앙상한 나무만 있더라도 거기에 내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은 아직 깃들어 있을  거야. 응? 언니, 부탁이야.”
 
뒷산이라는 곳은 떡볶이집에서 자동차로 채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산이라기에 좀 거창할 줄 알았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내가 집에서 학교 갈 때 가끔 타게 되는 금촌리의 산길처럼 그저 동산 수준이었다.
중간 중간에 사진에서 본 금강산의 기암괴석을 축소해 놓은 듯한 바위들이 몇 개 솟아 있었지만 비탈은 완만했고 정상에 오르자 신기하게도 광성건재상사라는 간판이 보였다. 그렇다면 그녀들의 집에서도 이 산의 정상이 보일 것이다.
일부러 가꾸지 않았기에 온갖 잡목들이 멋대로 자란 것 같은데 소나무와 잣나무 몇 그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으며 바닥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깔려 있었다.
 
“뒷산이 참 좋았어. 슬프거나 외로운 기분이 들 때, 아니 기쁠 때도 나는 이곳을 혼자 찾아오곤 했지.”
금아가 낙엽 위에 그냥 주저앉으며 말했다.
“야야. 솔직히 말해보자. 니가 어릴 때 슬프거나 외로울 때도 있었나?”
“아니, 아무리 어렸어도 나도 사람인데 어찌 그런 감정이 없겠어?”
“나는 니가 늘 칭찬만 받고 무엇이든 잘 해서 니는 그저 마냥 행복한 줄만 알았다. 그렇지 못한 나는 그래서 슬프고 외로웠지만 ······ ”
“참, 언니도 ······ 안델센의 <성냥팔이소녀>를 읽어도 슬프고, <따오기> 노래 가사를 생각해도 슬프고, ······ 어떤 집 세식구가 굶어죽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어도 슬프고 ······ 언니는 그렇지 않았어?”
 
금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금아가 얼굴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어릴 적부터 감수성도 풍부했구나 하고 새로운 인상을 하나 추가했다.
“아 참, 언니! 우리 그때 나무에 글자 새겼던 것 기억나? 내가 중 1, 그러니까 언니는 고 1 때였지. 저쪽 흔들바위 옆의 큰 떡갈나무였는데 ······ ”
“아아, 그 래! 생각난다. 그때 내가 희. 니가 망, 그래가 희망이라고 새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말 자체가 유치하제?”
“그때 우리 생각이 그 정도였겠지. 그래도 한번 찾아보자. 글자도 더 커졌는지 ······ ”
 
자매는 손을 맞잡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끝내 ‘희망’이라는 글자가 새겨있는 떡갈나무는 찾지 못했다.대신 그날의 추억을 찾으려 했다.
“그때 언니의 장래희망은 뭐였어?”
“으응. ······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간호부가 되고 싶었는 기라. 그런데 돌대가리로 타고났으니 우짤끼고? 간호전문학교 드갈 실력이 안 되니 포기해야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캤는데 ······ 그래, 그때 니 희망은 뭐였었노?”
금순이도 영자 누나처럼 간호부가 되고 싶었었다는 말은 뜻밖이었다. 나는 금아의 당시 희망도 궁금했다.
“언니하고 글자를 새길 때 내 희망은 그냥 현모양처였어. 신사임당처럼 대단한 어머니도 좋지만 아니면 우리 엄마처럼 그저 좋은 남편 만나 아들 딸 낳고 사는 ······ ”
 
“니가 ······ ? 니처럼 그래 삐까번쩍한 아가 희망이 겨우 우리 엄마처럼이라고 ······ ”
“나는 그 무렵 ······ ”
금아는 나를 한번 돌아보고 말을 잇는데 얼굴이 살짝 붉어진 듯 했다.
“막 생리를 시작했거든. 유방도 조금씩 생기고 ······ 그런 변화가 왜 여자한테 생기는지도 알게 됐어. 그래서 그냥 누군가의 좋은 아내, 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거야.”
“우리가 새겨놓은 나무도 못 찾고 니나 내나 그 희망도 다 깨져버리고 ······ 그게 인생인갑다. 자, 이제 내려가자. 무지개 잡으러 갔다가 눈물만 흘리고 돌아오는 꼴이다.”
 
금순이 앞장서서 걷자 우리는 뒷산에서 발길을 돌렸다. 금순이 갑자기 흥얼거렸다.
“아아 꿈은 사라지이고 꾸우음은 사아라아지이이이고 그으 옛날 아쉬우움에 하안 없이 우웁니이다. ······”
금순의 음정은 좀 틀렸지만 나는 그 노래를 알고 있다. 최무룡과 문정숙이 주연을 맡은 영화 <꿈은 사라지고>에서 최무룡이 직접 부른 주제가였다.
“참, 영도씨는 집에 언제 가?”
내려오는 길에 금아가 팔짱을 끼고 물었다.
“뭐, 그저 ······ 아무 때나 ······ ”
나는 얼버무렸다. 식사메뉴나 외출의 행선지처럼 오늘의 일정에 대해서도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영도 오늘 우리집에서 자기로 했다.”
“어머나! 그게 정말이야? 그럼 어디서 ······ ?”
금아는 처음 아는 것이라 좀 놀라는 눈치였다. 하기야 나도 지금 내 잠잘 곳을 알았다.
“내가 데불고 잘까? 그럼 안되나?”
“그래 ······ ? 그야 언니 마음이지.”
금아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하 하 하! 가시나 토라진 것 봐라. 걱정마라, 금아야. 아까 그 방에 오늘밤 느그들 신방 차려 줄 기다.”
“정말 ······ ?”
금아는 걸음을 멈추고 언니와 나를 번갈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도씨, 정말 그렇게 ······ ?”
나도 방금 안 것이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고마워!”
내게서 팔짱을 풀고 그녀는 금순을 껴안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 상황이 조금 우습기는 하다. 그토록 언니에게 반발하고, 나와 빠구리를 한 뒤에도 부끄럼을 탔던 그녀가 이제는 나와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에 아무 거리낌 없이 감격을 표시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가슴이 뛰면서 기뻤다.
 
“언니. 우리 기왕 차도 있는 김에 저수지에도 한번 가볼까?”
“한 겨울에 그쨔는 와 ······ ?”
“그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어.”
“오야, 그래 가자. 니 집에 돌아와가 이런 외출도 처음이제. 어떻든 내 기분도 좋다. 어디라도 모실게.”
바닥이 좁아서인지 저수지도 뒷산에서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저수지는 꽤 넓어보였는데 한겨울이라 그런지 인적은 전혀 없다.
 
“읍내에 저수지가 이거 한 개라요?”
“응, 용담 저수지라고 이거 하나뿐이야. 용이 승천했다고 하는데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금아가 대신 설명해주는데 말에 생기가 있다.
아, 여기가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민경자가 빠져죽겠다고 찾아온 곳이구나. 지금도 물가에는 살얼음이 조금씩 보이는데 유난히 추웠던 그날 밤 경자는 정말 발이 많이 시렸을 것이다. 그 발 중 하나를 나는 오래 문질러 피가 통하게 했지. 그보다 더 한 것은 그녀가 이 저수지에 발을 담근 인연으로 우리는 두차례나 빠구리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산타클로스라는 별명까지 얻으면서.
 
“저수지도 참 많이 와본 곳이야. 특히 여름에 사람들이 득실댈 때 보다는 이렇게 한적한 겨울철이 좋아. 물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거든.”
“물하고 무슨 이야기를 ······ ?”
“무엇이든지 ······ 이렇게 깊고 넓은 물은 무슨 말이든 잘 들어주거든. 소녀의 꿈과 동경도 털어놓고 언니 흉도 보고 ······ ”
“그러마 물은 니한테 뭐라 카는데 ······ ?”
“이렇게 ······ ”
금순이 돌멩이 하나를 집어 저수지에 던졌다.
 
돌이 떨어진 자리에 물이 튀어 오르더니 잔잔한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물가로 퍼져 나온다. 나도 가끔 호수에서 수제비를 뜨거나 그냥 돌멩이를 던져본 적이 있지만 금아가 ‘물의 대답’이라고 하자 그 물결이 좀 신기하게도 보였다.
“내가 국전에서 상을 탄 <파문>(波紋)도 사실은 이 저수지의 기억을 형상화 한 거야.”
“뭐라꼬 ······ ? 그 그림이 이 저수지를 그렸다고 ······ ? 하 하 하! 그때 큰 상 탔다 캐서 아무리 살펴봐도 무슨 그림인지 이해할 수거 없었는데 더구나 이 저수지를 그렸다니 더욱 황당하네. 뭐가 닮았노?”
나는 그 상을 탄 그림을 못 봤으니 아무 말도 끼어들 수가 없다.
 
“나는 그 무렵 샤갈과 칸딘스키에 무척 심취해 있었거든. <파문>은 사실 칸딘스키의 표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야. 사물의 대상을 떠나 그 관념과 운률을 다시 구도와 색채로 재현하면서 ······ 물론 칸딘스키의 화법을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니지만 ······ 저 밀려오는 잔잔한 물결을 봐.”
금아는 또한번 돌멩이를 저수지에 던졌다.
“야야, 니가 하는 설명이 무식한 나한테는 니 그림 보는 거보다 더 어렵다.”
나 역시 금아의 말을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박금순과 영자 누나가 음악에 대해 많이 아는 것처럼 그녀도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으로 일종의 존경심도 일어났다.
 
겨울의 해는 빨리 져서 벌써 주위는 어둑어둑했다. 금순이 저녁식사를 자기 부모와 함께 하자고 해서 나는 점포의 2충에 있는 살림집으로 갔다. 식탁에는 금순의 친정부모와 금아, 나등 5명이 앉았다.
“야는 금촌리 사는, 문서방하고 같은 집안이라요. 항렬로는 조카뻘이고 ······ ”
금순의 소개에 나는 절을 꾸벅 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고개만 한번 까딱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반면 그녀의 어머니는 들어설 때부터 “아이고 총각, 어서 오소!”라며 반색을 해서 오히려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밥상은 훌륭했다. 지난번 황달자네 집에서 먹어봤던 갈비찜도 있었고 밥상이 반찬들로 가득했다.
 
밥을 먹는 중 금순의 아버지가 힐끔힐끔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금아와 내가 빠구리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이 자리가 더욱 불편했다.
그런데 나도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상황에서 금순의 아버지를 힐긋 보니 그는 꽤 미남이었다. 대머리가 좀 까지고 아랫배가 나왔지만 얼굴만 보면 미남 영화배우 못지 않았다. 금순의 어머니는 첫대면 때 너무 냉대를 받아 얼굴을 자세히 못 보았는데 지금 보니 그냥 곱상하게 늙은 아낙이었다.
금순과 금아는 나란히 보면 좀 닮은 점도 있고 그것은 어머니의 대물림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금아가 저토록 아름다운 것은 아버지를 많이 닮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총각 많이 드소. 내사 씨암탉이라도 잡아 주고 싶지만 ······ 히 히, 우리집에서는 닭을 안 키우니 이거라도 ······ ”
금순 어머니는 내 앞접시에 갈비찜 한점을 옮겨 놓는다. 나는 이미 두점이나 먹은 터라 그쪽에 손을 내밀지 못했었다.
“이 사람이 와 이래 부산을 떠노?”
금순 아버지가 식탁에 마주한 이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히 히, 내사 귀한 손님이니까 ······ ”
“체통을 좀 지키란 말이다!”
금순 아버지의 큰 소리에 금순 어머니의 수선은 멈추었다. 나는 찔끔했다. 아무래도 금순 아버지는 금아와 나의 일을 알고있는 것 같다.
 
나는 서둘러 밥을 먹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점포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자 금아가 나와서 그녀가 이끄는 대로 우리는 별채로 들어갔다.
아직 잠자리에 들 시간은 아니다. 쇼파에 나란히 앉아서 금아가 TV를 켰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사슴떼가 초원에서 뛰어 놀고, 뉴스가 나오기도 하고, 금아가 채널을 돌리는데 따라 여러 장면들이 번갈아 나오다 어떤 프로인가 고정을 시켰는데 나는 별로 눈이 가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늘 밤 금아와 어떤 새로운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하고 있었다.
 
금순이 과일과 주전자 등을 담은 개다리소반을 들고 어머니와 함께 들어왔다. 우리는 함께 과일을 들며 몇마디 대화를 나누었지만 나는 아까 2충에서 저녁을 먹을 때처럼 왠지 좀 거북했다.
“엄마, 가제도 한 댓장 챙겨오지 그랬나?”
“가제 ······ 그게 뭔데 ······ ?”
“가제수건 말이다.”
가제수건이란 역시 면으로 만든 것이지만 일반 타올이나 손수건과 달리 붕대처럼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것이고 특히 빠구리의 뒤처리 때 애용된다는 것을 나도 몇 차례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아아, 그건 집에 없다.”
“와, 엄마는 밤에 아버지하고 ······ 그때 그거 안 쓰나?”
“야야, 느그 아부지하고 각방 쓴지 벌써 오래 됐다.”
“그래? ······ 엄마는 잠들 때나 아침에 깨서 서방님 옆에 없으마 허전하지 않더나?”
“아이고, 세우지도 몬하고 잠자다 남의 다리 긁듯 집적거리마 괜히 짜증만 나제. 내사 혼자 자니 그리 편할 수가 없더라.”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못했으나 가만히 들어보니 빠구리와 관련된 것이다. 잘 사는 집에는 모녀간에도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 ······ ?
“나는 엄마도 되게 밝히는 여자인 줄로 알았다.”
“한때는 그럴 때도 있었지. ······ 히 히, ······ 느그 아부지 교통사고 나가 다리에 기브스하고 있을 때 한달도 넘게 밤일을 못해 한번은 ‘다친 건 왼쪽 다리지, 가운데 다리는 아직 멀쩡하잖나?’ 하고 막 앙탈을 부린 적도 있었다.”
 
“아이, 엄마는 무슨 그런 이야기를 이런 자리에서 ······ ”
금아가 조금 얼굴을 붉히며 처음으로 말참견을 했다.“
와 ······ ? 이 자리가 어때서 ······ ? 느그도 이 자리에서 맨 그짓 할 거 아이가? 지나보이 그 짓도 다 때가 있는 기라. 그러니 느그도 아직 피가 끓을 때 많이 해라. 또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도 있는데 금아, 니도 성 하나 예쁘게 지으레이.”
 

금순은 어머니와 함께 별채를 나서며 한번 더 뒤를 힐끗 봤다.
저것들 오늘 밤 얼마나 뜨겁게 그 짓거리를 벌일까? --- 그 생각만으로 조금은 그들이 약간 밉살스럽기도 하고 자신의 보지도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나서서 주선을 하고 이게 무슨 염치없는 짓이야? 더구나 나도 이미 아까 그 맛을 진탕 보았잖아.
그녀는 진심으로 동생의 건강회복과 행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명문대가집으로 시집간 동생이 7년만에 친정에 돌아왔을 때 그녀도 놀라고 안타까웠다. 자세한 내막은 친정부모나 당사자로부터도 듣지 못했지만 그것은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금순은 우선 동생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은 금순에게 다시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었다.
출가외인이라고 금순도 친정부모에게 어떤 도움이나 기대를 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금아가 친정에 돌아오자 부모와 형제 모두가 금아에게 신경을 쓰고 떠받드는 것은 눈꼴이 시려울 정도였다.
 
아버지의 채근으로 금아는 엄마와 큰오빠의 손에 이끌려 대구의 대학병원에서 2박3일간 꽤 큰 돈을 내며 정밀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내려진 결과가 병명은 우울증이고 한달치 항우울제를 처방 받은 것이 전부였다.
“흥, 호강에 겨워서 ······ ”
그 말을 전해 들은 금순은 코웃음을 쳤다. 우울증이란 말 그대로 우울한 증세란다.
사람은 누구나 끼니를 거르면 허기증이 오고 한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면 갈증을 느낀다. 힘든 일을 하면 몸이 뻐근하고 잠을 못자면 낮에도 졸음이 온다. 하지만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 허기증이나 갈증은 곧 해소되는 것이다. 뻐근한 몸이나 졸음도 푹 쉬거나 잠을 자는 것으로 해결이 된다.
 
금아는 좀 수척했지만 그 때문에 타고난 미모에 청초함으로 화장을 한듯 아름다움에 더욱 빛이 난다.
더구나 그녀는 금순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막대한 위자료를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돈을 받아낼 수 있다면 아무리 사랑이 깊었던 남편이라도 금순은 신이 나서 당장 이혼할 것 같았다.
그 돈으로 멋진 집을 장만하고, 물론 자동차도 뽑아야지. 비싼 옷과 제대로 치장을 한 그녀는 전남편보다 훨씬 멋진 새 남자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돈으로 그런 남자를 사도 된다. 상상을 할 때는 신이 났지만 그 돈은 금아의 것이다. 그래서 뒷맛은 씁쓸하고 동생이 부러우면서도 미웠다.
 
그런데 친정에 온지 석달 쯤 되었을 때 금아는 자살을 기도했다. 욕실에서 왼쪽 손목의 동맥을 끊은 것이다. 그날 마침 금아의 어머니가 설사 때문에 잠긴 문을 두드리다 욕탕이 온통 피바다가 된 것을 발견했는데 몇분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을 번했다고 의사는 말했다. 응급치료를 받은 후 금아는 곧 서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금순은 아버지로부터 동생이 시집에서도 두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는 말을 들었다. 금순은 큰 충격을 받았다. 뛰어나게 예쁘고 재주많고, 이혼하면서 돈도 많지만 그런데도 죽으려하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금순은 간호와 문병을 위해 서울 나들이를 자주 하게 되었다.
때로는 포승을 채우듯 뒤로 손이 묶여있기도 하고 전기충격요법을 받고 나서는 며칠동안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동생을 보며 그녀는 오열했다.
그리고 우울증이라는 병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증세로 나타나고 이 세상의 퍽 많은 사람들이 그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붙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 금순은 다른 감정의 개입 없이 그저 동생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고 그 질병에서 헤어나기를 기도했다.
 
며칠 전 금순은 동네에서 아는 얼굴과 마주쳤다. 그쪽은 고개만 꾸벅했지만 금순은 말도 걸었다.
“영도야, 오랜만이네. 어디 가노?”
“집에요.”
상대는 무뚝뚝하게 말하고 지나쳤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찌르르 감각이 오는 것을 느꼈다.
저 녀석과 한지도 꽤 오래 되었군. 언제 한번 또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다. 그런데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아, 그때 나도 우울증이었어!
 
몇천마리의 닭을 키우다 전염병으로 몽땅 폐사를 한 후 남편은 한동안 실의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매사에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고 부부관계도 한달이 넘게 중단되었다.
그런 남편의 변화는 닭들에게 창궐했던 전염병처럼 아내에게도 옮아 금순은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지금만큼 우울증에 대한 상식이 있었다면 그녀는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 와중에 우연히 한 소년과 불장난을 하게 되었다. 바로 옆에 사는 시누이집에 들렸다가 시누이와 소년이 붙어먹는 것을 알게 되어 그녀도 그 짓에 동참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맛을 잊지 못해 그 소년을 납치하듯 이제는 텅빈 양계장에서 아주 질펀하게 판을 벌였다.
그날 밤 그녀는 모처럼 잠을 푹 자고 개운한 몸으로 남편을 보았을 때 조금 미안한 기분도 들었다.
마침 그 날이 장날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읍내에 가서 고깃근을 사 와서 남편에게 모처럼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울적한 심사는 씻은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친정어머니와 먼저 상의했다. 듣자하니 금아가 독수공방도 오래 했다니 남자를 하나 붙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어머니는 처음 펄쩍 뛰었지만 결국 큰딸에게 굴복했다.
그래서 함께 금아를 설득하고 힘은 들었지만 결국 성사되었다. 금순은 그 결과가 신기하면서도 흐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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