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엄마사랑떡사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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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44,217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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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외동아들이고, 아버지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은 일찍 하셨는데 임신이 안돼서 늦둥이 아닌 외늦둥이가 되어

 

이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잠도 안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자게 되었고, 두 분은 제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한참 후까지도 안방에서

 

자는 것에 대해 그리고 어머니 젖 만지고 자는 것에 대해 별 제재를 안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공기업에 다니시는데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되던 해부터 맨날 지방으로만 그것도

 

바닷가로만 돌아다니셔서 부모님께서 주말부부로 사신지도 벌써 10년도 넘었네요.

 

제 아이디를 보시면 느낌이 오시겠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젖에 대해

 

집착이 강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손도

 

안씻고 어머니 옷 앞섶부터 풀어 헤치고 젖부터 만지는 게 일이었습니다.

 

특히, 방학 때는 어머니가 항상 아침식사 후에 안방에 엎드려서 티비를 틀어놓고

 

신문을 보셨는데 저는 어머니 등에 들러붙어서 어머니 젖에 침을 발라가며

 

만지고 노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게 초등학교 2,3학년 때 일인데 발기라는 단어는

 

몰랐어도 물기가 묻으면 젖꼭지가 단단해지는 걸 알았던 것 같습니다.

 

단단해져야 만지기도 좋잖아요?

 

물론 그 어린 나이에 어머니 젖 만지면서 여자로 느낀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어머니 젖이 워낙 크고 따뜻해서 그리고 뭐라 하지도 않으시니까

 

한없이 만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한번 된통 쪽을 팔린 일이 있었는데, 바로 제 생일에 친척들이 모두

 

와서 식사를 할 때 였습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는 시간이었는데 어머니가

 

저의 젖만지는 습관을 고치시겠다는 의도로 친척들 앞에서 제가 아직도 젖 만진다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친척들에게 점잖은 이미지였는데

 

여자 아이들도 있는데도 그런 말씀을 하셔서 정말 눈앞이 깜깜할 정도로

 

쪽이 팔렸었습니다. 결국, 거의 6개월 정도를 정말 만지고 싶은 생각이 안들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마 친척들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볼까

 

하는 걱정이 엄청 커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준다고 그 버릇이 어디 가겠습니까.

 

제 버릇은 4학년 겨울방학 때 다시 도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저에게 큰 변화가 생겼는데 바로 성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학교가 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 때부터 성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어머니 젖을 만진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 젖을 만지다 보니 성적인 욕망이 점점 더 커졌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젖을 만지려고 앞섶으로 손을 들이밀자 또 이런다며 이제 그만 할 때도

 

됐지 않냐고 하셨지만 저는 막무가내로 그래도 한번만 만지겠다며 때를 쓰고

 

무작정 손을 넣어 브래지어 컵을 들추고 젖을 주물렀습니다. 어머니는 엄마 젖만지는

 

애는 너네 학교에 너밖에 없을 거라고 하시면서도 더 이상 뭐라고 하시지는 않았고

 

잠자리에서도 어머니 젖 만지며 자는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엄마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지방으로 발령을 받으셨지만 사택도 좋고 사택에 밥해주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어머니와 저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따라 내려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좀 지나서 완전히 엄마를 성적 대상으로 보게 되면서 느낀 점은

 

아버지는 어머니와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가끔 밖에서 잘 때도 있었지만 그건 정말 열흘도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그 이외에는 어렸을 때부터 매일 같이 잤기 때문에

 

두 분이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없었거든요.

 

아버지는 금요일 저녁에 오셨다가 일요일 오전에 내려가시기도 하고

 

토요일 오전에 오셨다가 일요일 오후에 내려가실 때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저는 이미 남자였습니다. 딸딸이는 기본이고

 

포르노에 모든 음란물은 모두 섭렵한 상태였으니까요. 대부분 그렇겠죠?

 

물론 어머니는 절대 모르셨죠. 팔도 제법 길어지고 손도 억세지는

 

않아도 꽤 커져서 어머니 젖을 제법 한 손으로 주무를 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젖을 만질 줄도 모르고 손도 작아서

 

참 코끼리 뒷다리 만지기 식으로 더듬기만 했었고 젖꼭지만 집중적으로 만졌는데

 

이제 제법 만지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개괄은 이 정도로 하고 모든 과정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이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대략 5학년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시청각 자료를 아주 풍부하게 접한 건 아니라서 그냥 단순한 상상만 하면서 만지는 수준

 

이었습니다. 그냥 남자가 여자를 막 박는 상상 정도. 누구누구를 구체적으로 떠올리지도

 

않고. 하지만 4학년 삐리리 때와는 확실히 손의 감각이 확실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뭐랄까요. 어머니는 전혀 모르는데 나 혼자 재미보고 있는 느낌있잖습니까.

 

5학년 때는 제가 어머니보다 키가 컸기 때문에 등 뒤에 매달려서 만지지는 못했고

 

주로 자면서 만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참 신기한 건 어머니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기 젖을 주물럭 대는데도 잠을 그렇게 잘 주무시는지. 저는 일단 어머니 젖에

 

손을 올려놓고 누워 있다가 어머니가 잠드신 걸 확인하면 본격적으로 젖을 만져댔

 

습니다. 그런데 항상 어머니와 마주보고 눕기 때문에 손을 위로 넣기는 불가능하고

 

아래로 넣어야 했는데 그게 여간 힘들지가 않더군요. 그렇게 만지면 십분만 만져도

 

힘이 들어서 제가 팔을 빼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않되겠다

 

싶어서 꾀를 냈는데 옆으로 누워 저를 보고 잠드신 어머니를 살짝 돌려 반듯하게

 

눕도록 하고 만지는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젖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가 어머니 숨소리로 잠드신 걸 확인하면 젖을 살짝 밀어서 어머니를

 

반듯하게 눕게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별 문제없이 몸을 똑바로 뉘셨고

 

저는 그 상태에서 또 잠시 안정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본격적으로 어머니의

 

젖가슴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젖꼭지 위주로 만졌는데 옷에서

 

손을 빼서 침을 좀 바르고 싶어도 참 쉽지 않더군요. 젖꼭지를 발기 시키는 데는

 

그게 짱인데 그러면 어머니가 깰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감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튼 어머니를 바로 뉜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처음 몇 달은 정말 조심스러웠고 항상 만지던 패턴으로 한쪽 유륜만 손에 쥐고

 

조물락 조물락 거렸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는 분위기와 방법이 익숙해 지면서

 

손이 유방 전체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렀고 6학년이 되어서는

 

주말에는 아버지가 올라오시면 함께 잘 수 없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괜히 같이 잘 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아버지가 내려가시면 저는 당연히 안방으로

 

잠을 자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삼십분 이상을 어머니 몸에서 떨어져서 젖을

 

만지려면 팔이 떨어질 정도로 아픕니다. 가장 편하게 만지려면 어머니를 품에 안는 게

 

좋은데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저는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가 엣다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 다리 위에 제 다리를 하나 포개고 어머니 몸에 제 몸을 살짝 기대어 봤습니다.

 

그러니까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어머니 배 위에 놓이면서 어머니 젖가슴을 만지기가

 

편해지더군요.(이런 발전이 있기 까지는 거의 1년 반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저는 이미 몸은 어른이 다 되어 있었고, 여자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만 없을 뿐 머릿 속에서는 1초도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편안한 자세를 찾고 비디오로 테크닉을 무장한 이 후부터 저는 어머니의 젖을 유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천천히 어머니가 깨지 않도록 어머니의 오른 쪽 젖꼭지를 살살

 

간질이다가 발기가 되지 않으면 다시 왼쪽 젖꼭지로 손을 옮겨 간질이고, 손으로

 

젖무덤 전체를 감싸 쥐어 보기도 하고. 비록 젖꽂지가 발기되지 않아서 좀 아쉽기는

 

했지만 정말 천국같은 유희를 밤마다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밤마다 이삼십분 씩

 

어머니 젖가슴을 만지고 놀면 발기된 고추를 주체하지 못하고 화장실에 나와서

 

자위행위로 마무리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중삐리1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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