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집안 이야기 그 전 62회 중년의 사촌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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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18,018회 작성일 17-02-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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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그 전 62. 중년의 사촌 남매]


그렇게 하여 정분이 나면 절대로 안 될 사이인 사촌 남매 사이의 두 사람은 정분이 났다.

한 번 난 정분은 한 번으로 끝날 수 없는 것이다. 정분이 나면 어떻게 한 번으로 끝내겠는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만남은 당연히 지속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김 조교는 자취방이 있는 먼 천호동에 가는 시간보다 학교 가까운 종로와 성균관 근처에서 놀기 시작하였다.


그 편이 뭐든지 편했기 때문이다.

직장인 학교만 가까운 것이 아니라, 여동생 민희의 집도 가까우니 불러내기가 쉬웠고 정 안되면 시침이 뚝 따고 민희의 집에서도 하룻밤 잘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종로 근처에서 놀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민희는 점차 오빠와의 씹 맛에 길들어지기 시작하여 둘이 만나기만 하면 여관(旅館)으로 직행하였다.

둘은 여관방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번개처럼 벗어던지고 서로의 몸을 탐하는데 정신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당시 종로의 뒷골목에는 호텔 급의 좋은 여관이나 장급 여관이 많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대로상에는 큰 호텔이 많았지만, 젊은이들의 주머니 사정상 출입하기 힘들었는데다가, 만에 하나라도 이들의 밀회가 누군가의 눈에라도 띄면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양쪽 집안에서도 난리가 나기 때문에 이들은 언제나 남의 눈을 띄지 않는 조용하고 은밀한 곳을 밀회 장소로 찾아야만 했다.

김 조교와 민희 두 사람이 가장 많이 애용한 여관은 지금은 원남동 사거리 부근에 있는 고O장 여관이었다.


이 여관은 창덕궁과 종묘 사이에 절묘하게 끼어 있었는데, 조용하고 번잡스럽지 않아 날이 어두워진 저녁 시간을 이용해 드나들면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든 여관이었다.

게다가 대로변 고급 호텔처럼 값이 비싸지도 않았으며, 제기동이나 청량리의 여인숙 같은 곳은 지저분하고 후져 깔끔한 민희가 딱 질색이었기에, 이들의 동네에서도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조용한 이 여관은 두 사람의 밀회 장소로 자주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동네, 종로에서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가장 유명한 ‘여관(旅館)’은 바로 운현궁 뒤편에 있던 ‘운당여관(雲堂旅館)’이었다.

‘관철동(貫鐵洞) 시대’의 바둑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바둑회관에서보다 더 많은 유명 대국이 벌어진 ‘운당여관’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특히 조훈현과 서봉수는 60년대와 70년대를 걸쳐 바로 이 운당여관에서 거의 수백 판에(?) 이르는 도전기를 치루었다.


본래 ‘운당여관(雲堂旅館)’은 종로구 운니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양반 가옥으로서 순조 임금 시절, 궁중 내관이 나라로부터 재목을 하사받아 이 집을 지었다.

그 후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는데,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가야금 병창 예능보유자인 박OO씨가 당시 한국 최고 부자이자 화신(和信)의 총수이며, 친일파 기업인으로 유명했던 박OO의 조카로부터 이 집을 인수하였다.

박 OO씨는 이 집을 인수한 후 옆에 이웃한 시인 아무개 씨의 집을 포함하여 3~4채의 한옥을 더 구입하여 1958년부터 ‘구름 속의 집’이란 뜻을 가진 ‘운당(雲堂)’이란 이름으로 여관을 개관하였다.

‘운당(雲堂)’이란 말은 불교 용어 중의 하나로서 ‘좌선(坐禪)하는 곳’이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유명한 ‘운당여관’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아니 80년대 후반에 이 집이 뜯겨져 남양주 촬영소로 옮겨지기 전까지 수많은 유명 대국들이 이 여관에서 치러졌다.

또한 한국의 전통적인 숙박업소를 찾고 싶어 했던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운당여관’이 한국을 체험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였기 때문에 이들이 와서 머무르며 한국의 온돌방을 체험하고 돌아가곤 하였다.


물론 젊은 청춘이었던 김 조교와 민희는 자기네들이 사는 동네에서 가깝고 유력한 사람들이 빈번히 드나드는 이런 유명한 여관을 이용하여 밀회를 즐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민희가 오빠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몸의 이상을 발견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섹스를 즐기는 한 젊은 여자가, 그것도 60년대 초반에 한국 여성으로서 섹스를 한 후 피임을 능숙하게 하는 방법을 알기는 어려웠다.


또 그 땐 피임이 쉽지 않았다.

사실 임신은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일대일로 동등하게 책임을 져야 마땅했지만, 당시는 남자 책임은 드물고 어떻게 하든 여자가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민희는 이 일을 사촌 오빠인 김 조교와 같이 깊은 상의를 하게 되었다.

“옵빠 - 어떻게 하면 좋아? 옵바가 어떻게 해결해 봐! - 응!!!”


그때만 해도 당찬 여자였던 민희는 오빠인 김 조교를 다그쳤다.

물론 민희가 오빠인 김 조교와 정상적인 결혼을 할 수만 있다면 임신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민희가 김 조교와 정상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친척 사이란 것이 문제인 것이었다.

두 사람이 결혼해서도 안되지만, 만약에 결혼한다고 나서면 두 집안에서 양쪽 다 난리가 날 것이 뻔한 일이었다.

두 집안 다 내로라는 양반 집안의 후예인데, 어떻게 친척 간에, 더욱이 사촌 남매가 결혼하느냐? 그것은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소문은 이렇게 날 것이었다.

“어떻게 남매가 상피(相避)붙어 아기를 가졌느냐? - 그건 너무 망칙한 일이 아니냐? -”

이런 이야기들은 남자들의 입보다 여자들의 입방에 더 자주 오를 것이 뻔했다.

왜냐하면 지네들도 이런 금단의 섹스를 하고 싶은 욕망으로 불타오르기 때문에 -

각설하고 - 이 두 가정은 이들이 사촌 남매지만 친남매처럼 자랐기 때문에 수많은 반대가 집안 곳곳에서 나타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민희가 오빠의 만나 아기를 가진 것 같다고 말하자 김 조교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옵바 -- 나 -- 아기 가졌나봐 - !”

처음 민희로부터 이 말을 들은 김 조교는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먼저 병원에 가서 아기를 떼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당시의 두 사람에게 전혀 알 수 없는 길이었다.

사실 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산부인과 소파수술의 기술이 발전하여 성공률이 90% 이상으로 높아졌지만 60년대 초의 한국 의료 실상은 소파수술로 인해 자궁을 들어내는 경우도 있고, 잘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아기가 생기면 그저 낳는 것이 제일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이들 두 집안 중에 의사라도 한 명이 있다면 남의 일인 양 모른척하고 상의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도 없고, 또 만약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비밀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선뜻 나서서 상의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김 조교는 차선책을 생각해 내었던 것이다.

그것은 민희가 결혼할 수 있도록 안심할 수 있는 다른 남자에게 넘기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촌 여동생 민희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하는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윤 장손(尹長遜)이란 찬구에게 이 여동생을 맡겨야만 했다.


윤 장손은 당시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물자를 수입해 들여오던 무역상이며, 화학약품공장의 사장이었던 아버지 윤 회장 덕에 어려움 없이 학창생활을 보냈던 친구였다.

게다가 윤 장손의 아버지인 윤 회장은 자신이 미국에서 각종 물자를 수입해 손쉽게 번 돈을 당시 한국전쟁 후 핍폐(乏廢)해진 과거 양반 가문에서 값싸게 나온 각종 문화재급 골동품을 사 모으는 데 투자를 하였던 것이었다.

또한 물자가 현저하게 부족하였던 전쟁 후의 한국은 그의 공장에서 나오는 각종 화공약품을 사용하여 일상용품의 원료를 삼았기에 윤씨 가문의 가업은 날로 번창 일로에 있었다.


김 조교와 같은 해 대학을 졸업한 윤 장손은 당시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경영수업의 절차를 받고 있었으나, 경영의 안목을 넓히고 당시에도 세계적인 케미칼 회사였던 ‘듀퐁’사로부터 경영 수업을 전수 받기 위해 곧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윤 장손은 김 조교가 소개해 준 그의 사촌 여동생 이 민희를 보자마자 한 눈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것은 그녀의 미모가 한몫을 했다고 봐야 한다.

그녀 역시 집안이 부유하고 허여멀쑥한 장손이 그리 싫지는 않았기에(물론 오빠가 훨씬 더 좋았지만) 이미 아기가 들어선 그녀는 사촌 오빠인 김 조교가 추진하는 결혼에 그리 반대하지는 않았다.


민희의 미모에 반한 장손은 밤낮으로 어떻게 하면 민희를 따먹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한편, 오빠의 아기를 가진 민희는 어떻게 하면 장손을 속여 가며 한 코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두 사람은 생각은 정반대였지만 어떻게 하면 젊은 육체를 섞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기 때문에 이 둘은 오래지 않아 서로의 몸을 열고 합방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장손은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회사를 이어받아야 했고 프랑스 유학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면 부부가 함께 프랑스 유학을 가야 한다는 점도 민희의 마음이 장손에게 쏠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이들의 결혼이 급하게 성사를 이루게 된 것은 민희가 장손과 하룻 저녁 정사를 가진 후 임신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임신은 당연히 민희와 김 조교와의 사이에서 생긴 것이지만, 나중에 여동생이 영화배우가 된 것처럼 연기라면 단단히 한 몫을 하는 탁월한 민희의 연기 수완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민희의 임신은 사촌 오빠인 김 조교로부터 생긴 일이었으므로 아무리 결혼을 서둘렀다 할지라도 민희 뱃속의 아기는 제 달이 차면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산(早産)처럼 보여야만 했다.


다행히 민희는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는데, 그것은 출국과 프랑스 정착, 유학지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한 조산이라는 이유를 달 수 있어서 일찍 아기가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기가 다른 사람의 아기라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였다.

약간은 어리숙한 면이 있는 순진한 남자였던 윤 장손은 배우 뺨치는 민희의 연기에 그만 속아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아기와 아기 엄마를 아는 사람이 많은 서울에서 낳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아기를 낳았으니 숙맥 같은 남자인 윤장손이 임신 개월 수나 제대로 헤아렸겠는가?

어쨌든 태어난 아기는 얼마나 예뻤든지 허여멀쑥한 남편을 꼭 닮았다는 세간의 입방아에 민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심하게 되었다.


당연히 아기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핏줄을 닮아 예쁘고 귀여웠다.

그렇게 하여 민희는 결혼도 하고, 남편과 프랑스 유학도 가고, 아기도 낳고, 프랑스에서 미학을 전공하여 큐레이터가 되었다.

하여튼 이 둘의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프랑스 태생이었으므로 속지주의 원칙에 의해 본인이 원한다면 차후 프랑스 국적을 획득할 수 있는 이점도 생겨났다.


그녀가 프랑스 유학에서 미학을 전공하여 큐레이터 자격을 딴 것은 모두 다 윤 사장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윤 사장은 자기 아버지가 집안의 재산을 이용하여 각종 골동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아왔다.

그리고 아버지 윤 회장은 그 수집품을 한 곳에 모아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지을 계획을 꾸미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자신도 고서나 고미술, 고 회화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아버지의 박물관 건립 계획을 적극 찬동하였지만, 문제는 그 박물관을 정상적으로 관리하고 키워나갈 사람은 자기 집안에는 없었기 때문에 자신과 결혼할 여자가 큐레이터가 되어 박물관 관장이 된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금상첨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평소에 가졌던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민희는 한국의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하였지만, 문화적 소양과 미술 부문에도 어느 정도 재주가 있어서 프랑스 유학에서 미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학위를 받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사실, 프랑스에서 큐레이터 자격을 따는 것은 최소한의 학위만 가지고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60년대 초의 한국에서는 큐레이터가 뭘 하는 사람인지조차 정의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윤 회장과 윤 사장은 문화적 측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사림이었고, 민희는 그런 사람들 틈에 있으므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에도 돈이 좀 있던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리 큰 장애를 받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학사 정도의 학위를 받는 것은 그렇게 어렵다고 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들이 결혼하는 데 조건이 더욱 좋았던 것은 두 집안이 다 삼청동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데 있었다.

장손의 아버지 윤 회장은 가회동이 본가였던 것이다.


당연히 결혼한 장손의 집도 가회동이 되었다. 삼청동에서 얼마 내려오지 않으면 가회동 집이니 서로 왕래하기도 좋고 두 집안의 재산적 차이나 학벌의 차이 등도 별로 없어서 비교적 쉬운 결혼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민희는 사촌 오빠인 김 조교와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현 남편인 윤 장손과 결혼하여 둘이서 함께 뱃속에 아기를 둔 채 프랑스 유학으로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 후 수 삼년이 지나서였다.

김 조교는 어느새 김 교수가 되었고, 이 민희는 박물관 관장 겸 책임 큐레이터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만났다고 해서 예전처럼 쉽게 사랑이 불타오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 이들은 벌써 유부남, 유부녀가 되었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를 잡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소시쩍에 경험한 그런 위험한 사랑을 대놓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 위험한 사랑을 불사르게 된 원인은 민희의 동생이며 박 장군의 아내인 민정이란 년이 은지를 낳고 아기를 못 갖다가 십 수년 만에 다시 애를 배었는데, 어떻게 된 년이 애를 갖고는 달이 차갈수록 혈색이 좋아지고 점점 더 동안(童顔)으로 변하는 것이 꼭 무슨 연유가 있는 것만 같았다.


결혼과 프랑스 유학, 그리고 남편 윤 사장이 아버지 윤 회장의 사업을 물려받아 경영자로 성장하는 동안, 민희 그녀는 사장의 부인으로, 박물관 관장으로 내조의 역할을 다해야 했다.

그래서 재계에서는 윤 사장의 부인인 민희를 현명하고 아름다운 부인으로 세간의 칭송이 마르지 않았다.

윤 사장도 자신의 뒤에서 자신을 빛나도록 받쳐주는 부인이 너무 고마웠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한 가지 서운한 점이 있었으니 - 그것은 현서를 낳고 나서 십 수 년 째 둘째가 들어서지 않는 것이었다.

민희는 윤 사장이 경영수업을 쌓는 동안에는 아기가 생기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다.


그래서 그 전에는 아기를 낳고자하는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이제 시아버지인 윤 회장이 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나고 윤 사장이 회사를 맡아 어느 정도 기반이 닦여 탄탄대로에 올라서자 두 사람은 은근히 두 번째 아기를 원하였으나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윤 장손은 이 일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자고 하였으나 그건 민희가 싫었다.


행여 피검사다 뭐다 이런 저럼 검사를 받다보면 현서가 그의 아들이 아니라 사촌 오빠인 김 교수의 아들인 것이 들통나서는 절대로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검사를 싫어하던 그녀의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동생 민정의 임신이었다.


어느 날 친동생인 은지 엄마 민정이란 년이 십 수 년 만에 아기를 가졌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그게 사실로 밝혀졌을 때 민희도 그만 그 비결이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민희는 온갖 감언이설로 동생을 꼬드겨 그 비밀을 알고자 하였으나 사건의 전말을 알 수는 없었고, 정용인가 뭔가 하는 은지의 과외선생을 하는 애가 무슨 추나수법으로 몸을 마사지한 것이 전부라는 것만 말해 주는 것이었다.


은지 엄마인 민정도 아무리 언니이고, 자매간에는 서로 비밀이 없는 친밀한 사이라지만, 자기가 은지의 과외선생인 겨울 중학교 2학년짜리 학생인 정용과 씹을 하여 아기를 가진 것이라고 언니에게 차마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비밀을 지켜 줄 것을 약속받고 은지가 과외 받는 날, 정용으로부터 가끔씩, 아주 가끔씩이지만 추나술법으로 마사지를 받는데 한 번 그 마사지를 받으면 온 몸이 기력이 충만해진다고 이야기해 두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마사지를 받으면 기력만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중년 부인의 꼴린 보지 속으로 그의 진탕한 좆물이 쏟아져 들어가기 때문에 저절로 혈색이 돌고, 또한 보지 속을 드나들던 정용의 그의 커다란 대포 좆을 수도 없이 입으로 빨아 먹기 때문에 이로 인해 헌원심법의 정기가 저절로 그녀 속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동안(童顔) 유지된다는 것은 그녀 자신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치였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민희는 동생 민정의 말을 들으면서 반짝하고 아이디어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사촌 오빠 김일범 교수의 존재였다.

민희는 사촌 오빠인 김 교수가 오래전부터 무슨 무옌가 뭐를 해 왔다는 소문을 일찌감치 듣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그녀가 인맥을 동원하여 수소문하자, 사촌 오빠는 오히려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릴 잡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김 교수는 자신의 남편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이런 그녀가 사촌 오빠인 김 교수에게 연락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가회동이나 삼청동이나 성균관이 있는 명륜동이나 바로 곁에 붙은 거기가 거기인 동네였다.

그녀가 학과 사무실로 전화하자 곧 조교가 받았는데, 곧바로 사촌 오빠인 김 교수를 바꿔주는 것이었다.

민희가 전화를 통해 알고 보니 사촌 오빠인 김 일범 교수는 이미 사촌 여동생인 자신이 박물관 관장임과 동시에 책임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 오빤 -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 그 동안 연락도 안해? -”


사실 김 교수는 그가 먼저 윤 사장에게 연락한 것이 아니라 윤 사장이 먼저 이상한 책자를 발견하여 아무도 그 책의 내용을 알아보지 못해 그냥 처박아 두려다가 김 교수에게 연락하여 그 책의 진가를 알게 된 사연이 있었다.

그것이 호보와 호권에 관한 책자로서 윤 사장이 과거 유물을 좋은 값으로 산다는 소문을 듣고 한 고물상인이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 한자로 된 오랜 책을 가져와 사지 않겠느냐고 하여 고물상인이 생각한 값보다 훨씬 좋은 값을 쳐주고 샀는데, 정작 고미술과 고도서에 능한 윤 사장도 그 책의 진가를 알아볼 수 없어서 무술에 능하고, 한문 실력이 출중한 유학(儒學) 전공의 김 교수에게 책을 감정하게 된 것이었다.

김 교수는 겉장이 뜯겨져 나간 그 책을 보자마자 아주 귀중한 책인 것을 알아차렸다.


김 교수는 그 책을 대충 훑어보고서도 단번에 실전된 한족(韓族)의 고대 무예에 관한 책자란 사실을 밝히고선, 윤 사장의 부탁으로 번역과 해석을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실전무예(失傳武藝)인 호보와 호권의 복원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도 약점은 있었으니 그것은 무예를 실연(實演) 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공 수련 방법이 없어서, 강력한 내가권(內家拳)이 아닌 겉껍데기에 불과한, 그저 그렇고 그런 외형권(外形拳)으로만 흐를 가능성이 높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사장은 그런 무예를 익힐 수 있느냐고 물어왔고, 김 교수가 그 책자를 해석하고 연구하려면 어느 정도 책자에 기록된 무예를 익히지 않으면 해석이나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히자 윤 사장은 나중에 그 무예의 일부를 아들인 현서에게 알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그 책의 소유를 김 교수에게 넘겨주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김 교수는 호보와 호권을 연마하면서도 뜯겨져 나간 책 표지 부분에 서론격으로 호보와 호권을 위한 내가호흡법이 기록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두고두고 아쉬워하던 판에 정용이 기억하고 있는 ‘헌원씨내가호흡법’이란 호흡법을 가지고 호보, 호권을 익히니 어쩌면 그렇게 딱 떨어지게도 일치하는지, 아니 그가 느끼기에는 호권과 호보에도 없었을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에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이 호흡법을 연마하기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연유가 있었으므로 김 교수는 사촌 여동생 민희가 무슨 추나술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만 깜짝 놀랐던 것이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자세히 묻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요즘 성균관에서 새벽마다 자신과 무예 수업을 하는 정용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김 교수는 이런 우연에 정말 놀랐지만, 사촌 여동생 민희 앞에서는 놀란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이 세간에 조금이라도 알려지면 좋을 것이 전혀 없으므로 그녀를 긴밀히 만나기를 요청하게 되었다.


민희도 예전의 연인 사이였던 사촌 오빠와 만나는 것을 누구에게 알리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기에 아침 운동을 핑계 삼아 주로 토요일 새벽에 성균관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도록 약속한 것이었다.

윤 사장도 일주일에 한 번 가회동에서 성균관 대학을 통해 북악산으로 오르는 아침 운동이 중년의 여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운동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그녀의 아침 운동을 적극 찬동하여 준 것이었다.


그러나 윤 사장은 본인의 아랫배에 기름이 끼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전혀 운동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김 교수는 십 수년 만에 다시 만나는 사촌 여동생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그만 깜짝 놀랐다.

그녀는 오히려 처녀시절보다 훨씬 더 세련되었고, 섹시하게 성숙한 아름다움이 흘러 넘쳤다.

고혹적인데다가, 섹시했으며, 지적이면서도 성적 매력이 철철 흐르는 귀부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얼굴에는 윤기가 흘러 적당히 물이 오른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을 바라보는 여인의 무르익은 육체가 그 안에 숨겨져 있음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이러한 것은 순전히 그녀의 외국생활과 그 후 재계 인사들과의 원만한 사교생활도 단단히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아침 운동이라 정장차림이 아닌 머리에 후드가 달린 검은색의 삼선 트레이닝복을 입었지만, 그것은 파리에서 사 온 완제품이었기에 풍만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르익은 중년 여인의 몸매를 잘 드러내 주고 있었다.

민희도 오랜만에 보는 사촌 오빠 김 교수가 예전보다 중후하고 매력적인 남성으로 변해 있는 것에 만족했다.

더욱이 무예 수련으로 인해 단단한 그의 몸매는 이젠 물렁물렁한 윤 사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사촌 남매는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옛날 천호동과 워커힐 이야기를 다시 되새기면서 뜨거운 정념이 다시 살아났던 것이었다.

그리고 민희는 동생 민정에게 들어서 궁금했던 추나술이 뭔지 자세히 알려 주기를 요청하자, 이미 정용을 통해 웬만한 정보를 입수한 김 교수는 여동생 민희의 몸을 통해 자신이 정용보다 훨씬 추나술법에 통달한 사실을 깨우쳐 주게 되었다.

그래서 토요일 새벽, 김 교수의 연구실 안은 발가벗은 여인의 하얀 등을 주무르는 김 교수의 땀방울로 인해 후끈한 냄새가 풍기게 되었다.


그 후 민희는 민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본격적인 추나술법을 사촌 오빠로부터 받게 되었다.

자연히 그녀는 동생 민정이란 년이 제부인 박 장군의 아기를 임신한 것이 아니라, 은지의 과외 선생이라는 중학교 이학년 짜리(딸 내미와 동갑인) 정용의 아기를 임신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사촌 오빠인 김 교수로부터 이 추나술법을 마사지 받게 되면 자연히 아랫배가 끓어올라 보지살이 씰룩이고 음액이 저절로 흘러내려 씹을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희는 속으로 민정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야, 이년아 니가 받는 추나술은 내가 오뻐한테 받는 것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안되는 거야!”


그녀는 자기 친 동생이 받는 추나술보다 훨씬 더 고명한 수법의 추나술법을 오빠로부터 시전을 받는 것에 대해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게다가 사촌 오빠는 추나술이 무르익어갈 무렵이면 그녀의 굶주렸던 중년 여인의 익은 보지 속으로 노련한 씹질을 해주는 터였다.

그 후 김 교수도 사촌 여동생 민희가 오는 토요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연구실은 점차 민희의 취향에 맞는 모습으로 개량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간이 야전 침대가 놓여졌었는데, 어느 날 그는 큰 맘 먹고 매트리스가 깔린 병원용 침대를 구하였다.

물론 그것은 대학병원에서 쓰던 것으로 친구인 의대 교수로부터 잠시 빌린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주말 사랑을 불태우는 데에는 매우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어느날 민희는 사촌 오빠에게 아주 충격적인 요청을 하는 것이었다.


“옵바, ---- 나, 애기 하나만 더 만들어주라 --- !”

이 소리를 들은 김 교수는 그만 눈이 다 튀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 이야기는 이미 그들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바로 그 아이가 지금 정용과 함께 k 중학에 다니는 현서란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옵바, - 딸이면 더 좋구 --- ”

결국 민희의 요구는 딸을 낳고 싶다는 것이었다.

“얘, 민희야 --- 니 남편이 알면 어떻게 하구 ---- ?”

“오빤 ---? 왜 그 사람이 알아? --- 절대루 알면 안되지!----올케가 알아두 안 돼! 알았지! ---- ”

그러면서 입고 있던 검은색 삼선 추리닝을 훌러덩 훌러덩 벗는 것이었다.


고혹적인 삼십대 후반의 무르익은 여체가 그의 눈앞에 드러났다.

그 육체는 과거 자신이 여자로 만들어 주었던 바로 그 육체였다.

게다가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아기를 가졌어도 자신의 아기라고 부를 수 없는 아기를 낳은 바로 그 여자의 육체였다.

삼십대 여성의 무르익은 씹은 무쇠 좆도 녹인다고 했던가?


민희의 몸은 무르익었지만 그녀를 침대에서 원만하게 눌러주어야 할 윤 사장은 바쁜 회사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정작 눌러 주어야 할 때 눌러주지 못해 그녀는 불만이 쌓여가기만 하던 위험한 때였는데, 마침 사촌 오빠인 김 교수가 토요일마다 흠씬 눌러주자 민희는 몸도 마음도 날아갈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토요일 아침 등산에서 돌아 온 두 남녀는 이미 수없이 경험해 본 상대방의 몸을 익숙한 모습으로 입을 맞추어 갔다.

김 교수는 추리닝을 홀라당 벗은 민희의 젖가슴을 만지며 그녀의 등 뒤로 돌려 브라자 후크를 풀었다.

그녀는 프랑스제가 아니면 속옷을 입지 않는다.

하늘하늘한 망사형 브라자는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감추지도 못한다.

어느새 풍만한 그녀의 젖이 허옇게 비어져 나왔다.


김 교수는 그녀의 젖을 한 손으로 꽉 쥐어 짠다.

“아 -- ”

그녀의 입에서는 달콤한 심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선 채로 그녀를 껴안고 하늘로 좆을 세우고 있던 김 교수는 그녀의 입술을 쪽쪽 빨아제쳤다.

그녀도 혀를 내밀어 그의 입술에 마주쳐 나간다.

자연히 두 사람이 서로의 입을 빨아 ‘쭈릅쭈릅’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민희는 오빠의 단단한 자지를 보지에 서걱서걱 비비며 귀에다가 속삭였다.

“하아, 옵바 -- 나 박고 싶어 미치겠어 -- 옵바 나 산에서부터 흥분했단 말이야! -- 으하악, -- 미치겠어! --”

사실 그녀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김 교수의 귓전에 음탕한 소리를 내며 흥분을 돋구었다.

김 교수는 민희의 가슴을 꽉꽉 쥐어틀 듯 주물럭거리면서 진탕하도록 흥분한 좆을 풀로 발기시켰다.

민희는 손을 내려 그의 커다란 좆을 만진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허리를 내리고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의 바지를 무릎까지 끌어내린 후 자지를 위아래로 흔들며 혀로 자지 대가리를 핥으며 소근 소근 말한다.

“하응 -- 옵바, 아까 어떤 남자가 내 추리닝 속에 -- 팬티 안에까지 손을 콱 집어넣고 -- 내 씹 보지를 막 만지는 거야 -- 난 그 순간 너무너무 흥분해서 그 남자에게 내 보지에 좆을 박아 주세요 하고 통사정할 뻔 했어 -- “

물론 그 남자는 사촌 오빠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녀는 마치 제 3자처럼 이야기 하였다.

민희는 쪼그린 자세에서 옵바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그의 좆을 입안으로 꿀떡 삼키듯 집어 넣었다.


그러자 김 교수는 그녀에게 흥분한 어투로 말한다.

“민희, 너 이년 내 허락 없이는 내 좆 빨지 말라고 그랬잖아 -- !”

그러자 그의 좆을 쪽쪽 빨던 민희는 그의 커다란 좆을 입안에서 꺼내며 한 손을 잡고 그에게 속살거렸다.

“난, -- 옵바에게 박히고 싶어서 그랬잖아 -- 옵바 --- 나 좆 박아 줄 거지?”

김 교수는 민희를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바지를 무릎까지 내린 그는 민희의 허리를 잡으며 고개를 내리 누른다.


자연스럽게 민희는 엉덩이를 치켜 세운 채 머리를 가랑이 사이로 박는 자세가 되었다.

다 드러난 엉덩이 사이로 그녀의 질컥거리는 보지가 통통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개치기로 씹하기 매우 조흔 자세가 된 것이었다.

김 교수는 민희의 엉덩이 뒤에서 벌써 질컥거리는 보지사이로 좆 대가리를 밀어 넣으며 한 손으로는 자신의 거대한 음경을 움켜쥔 채 자기 좆 위로 그녀의 넘치는 애액을 발라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좋은 윤활유였다.

“흐아악 하아, 좋아 -- 옵바 ---- ”

김 교수는 한 일자로 주악 찢어진 보지 사이로 좆 대가리를 밀어 넣었다.

‘질커덕’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찰진 보지가 그의 커단 좆을 감싸며 쪼이는 느낌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하아악 - 흐음, 흐으응 -- ”

민희는 자신의 입 속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을 길이 없다.

“흐으하아앙 --- 옵바 -- 거칠게 막 --- 박아줘”


김 교수는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좌우로 벌리며 삼십대의 성숙한 보지 깊숙히 좆을 박아 넣었다.

그것은 마치 열탕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갈증 난 삼십대 부인의 성숙한 육체는 단단한 좆을 받아들이자 대번에 반응을 일으켰다.

김 교수는 미친 듯 박아주고 좆물 한 방울 까지 거칠고 힘차게 그녀의 자구안으로 싸주고 싶었다.

그래서 풍만한 그녀의 엉덩이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좆을 박기 시작한다.

“철석 철석 철석 철석 철석 철석 철석 철석 철석 철석 ---”


그의 커단 좆이 그녀의 익은 보지에 박힐 때 마다 보지와 엉덩이 골에선 음탕한 보지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김 교수는 음란의 그 냄새를 흠씬 즐겼다.

그는 속으로 외쳤다. ‘후아 이 냄새 죽여준다 -- ’

김 교수는 빠르고 거칠게 보지에 좆을 박다가 잠시 보지에서 좆을 확 뽑았다.


보지에선 ‘쩌쩍 - ’하는 소리와 함께 ‘뽁- ’하고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그녀의 보지에서 좆을 빼자 보지물이 ‘주르륵 - ’ 엉덩이 골을 타고 흐른다.

그는 심호흡을 다시 한 번 한 뒤 다시 거칠게 보지에 좆을 박아갔다.

민희의 단발마 같은 비명이 터진다.

“흐아악 --- 오빠아 --- 옵바 아 --- 나 -- 죽어뻐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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