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숙의 하루7(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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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5,449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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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머나, 너, 너 뭐야, 뭐한 거야...!

허둥대며 제 자세로 돌아오려 낑낑 몸을 가누는 석에게 숙이 비명을 지르듯
이 소리쳤다. 와하하 - 그제서야 한 반 녀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석 못지
않게 놀란 것은 그녀였다.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숙은 다급히 시선
을 돌려 주변을 살핀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렸다. 학급의 모
든 시선은 재수없는 결말을 맞은 석이보다도 숙에게 전부 집중이 되고 있었
다. 당황해진 그녀는 엉겁결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도록 빨개졌다. 어쩔 줄
을 모르는 그녀는 황급히 녀석에게 말했다.

-너, 너... 다, 당장 교무실로 따라와!

그녀는 더욱 큰 목소리로 떠나갈듯 웃어대는 음악실문을 열고 허둥지둥 밖
으로 나갔다. 자신도 모르게 치마자락을 부여잡고 끌어당기며. 이제 도살장
에 끌려가게 된 석은 고개를 푹수그리고 그녀를 따라 나왔다. 쳇, X같이 됐
네... 이제는 한편이던 혁이마저 고개를 숙이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일은
벌어지고야 만 것이다.

숙은 마치 아직도 누군가가 자신의 치마속을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에 치마
자락을 연신 감싸내리며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교무실로 향했다. 녀석이
한 행동보다도 자신의 은밀한 속모습을 드러내놓고 들켰다는 수치심에 귀밑
까지 달아오르고 있었다. 만약에 무언가 안입거나, 부실하게 입기만 했어
도... 적나라하게 보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여자로서
의 부끄러움이 몸을 떨리게 했다.

한선생은 마침 수업이 없어 한손에 몽둥이를 든채 2층의 복도를 어슬렁거리
고 있었다. 그 때 위층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시끌벅적한 소음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소란의 진원지가 음악실 주변임을 발견한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들 안해, 이놈들아!

갑자기 몽둥이를 들고 나타난 한선생에, 음악실 안의 분위는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뭐야, 선생님은 어디 갔어? 아직 끝날 시간 멀었는데, 어이, 반장! 무슨
일이야?

내키지않는 표정으로 주춤거리며 일어난 반장에게서 자초지종을 보고받은
그는, 야릇한 미소를 띠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좋아, 떠들지 말고 자습해라, 알겠냐, 반장!

한선생은 용감하게 여선생의 치마속을 훔쳐본 놈이 어떤 녀석일까, 궁금해
하며 교무실로 내려갔다.

낭패스러운 숙은 교무실에 와서도, 한손으로 창피한듯 얼굴을 가리고 쌕쌕
거렸다. 주변 노처녀선생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지만, 지금 그녀의 기
분은 그 따위를 신경쓸 겨를이 아니었다. 석이는 잠자코 고개를 숙인 채 그
녀의 책상 앞에 서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녀도 처음 당하는 경험이라,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일단 교무실까지 불러 세우기는 했지만, 스스로
도 치부를 드러낸 당혹감에 얼른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 무릎 꿇어...!
-예.

석은 잠자코 숙의 명령에 따랐다. 잘못 걸리다가 남자 선생들에게 넘겨지는
날에는, 곱게 넘어갈 성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바램은 곧바로 무너지고
말았다.

-너냐, 선생님 치마속 들여다본 놈이...!

숙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한선생이 쫓아와 능글맞은 미소를 띄우며 몽둥
이로 톡톡 녀석의 머리를 두들기고 있었다.

-너냐고, 음악선생님 치마 들춘게!
-예에...

닥달하는 한선생의 성난 목소리에 석이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
다. 숙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선생님들이 다모인 교무실에서 이렇게 크게
떠들다니... 금새, 교무실의 모든 눈초리가 그녀에게로 날아와 박히며, 아
까 음악실에서와 똑같은 웅성임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어
처구니가 없었다. 공개적으로 망신당한 꼴이었다. 이제 교무실 안에서 고개
조차 못들 것 같았다.

-선생님, 이 녀석은 나한테 맡겨요.

숙의 대답이 나올 새도 없이, 한선생은 석의 뒷덜미를 쥐고 교무실에서 끌
고 나갔다. 마치 자기가 백마 탄 기사로 그녀를 구해주기라도 하는 듯 의기
양양하게. 죽었구나... 석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예상대로, 한선생이
석을 끌고 간 곳은 학생부실이었다.

-엎드려.

퍽퍽대며, 몇대인지 세지도 못할 매질이 끝나고 나서야, 석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도록 허락을 받았다.

-저기서, 무릎 꿇고, 반성문 적어.

엉덩이가 화끈거려 엉거주춤 쪼그린 석의 무릎 앞에 볼펜과 종이 몇장이 던
져졌다.

-전에도 쓴 적 있지? 그런 식으로 오늘 수업 끝날 때까지 계속해.

이건 약과다. 담임에게 넘겨지면, 거기서도 똑같은 일이 오늘 하루는 종일
반복될 것이었다.

시간은 어느새 점심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그제서야 생각난 듯, 한선생은
전화기를 집어들고 중국집에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지루한듯
담배를 피워물며 지나는 말처럼 물었다.

-그래... 무슨 색이었냐?
-예?
-음악선생, 안에 뭐입었더냐고?
-아, 예, 거, 검은 색이요...
-그래? 뭔데, 팬티야, 거들이야?
-저... 잘 모르겠는데요...
-비치드나?
-아... 아니요...

석이는 남자 선생님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매맞
은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한선생
은 피식거리고 있었다.

-그래, 까만 색이란 말이지...

그러던 그는 뭔가 어색한 느낌에 짐짓 다시 엄숙한 목소리로 돌아갔다.

-야, 짜식아, 여자들은 원래 다 똑같은 거야, 벗겨 놓으면... 다, 나중에
알게 돼, 임마. 뭘 벌써부터 알려구... 얼른 그거나 써!

그러나 석은 짐짓 고개를 돌리던 한선생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도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야, 어떻게 됐냐?

하루종일 학생부실에서 시달리다가 나온 석이를, 그래도 친구라고 혁이 가
방을 챙겨 기다리고 있었다.

-뭘, 사흘 동안 계속 학생부와서 반성문 백장씩 쓰래.

아직도 엉덩이가 화끈거려 절룩거리는 석의 어깨 대신 가방을 메어주며 정
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야, 봤냐, 봤어? 까만 색 맞지, 그치?
-그래... 나도 봤어. 선생들도 전부 그것만 묻드라.

석은 언젠가는 오늘 이 사건을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상상 - 만져
보겠다는 - 을 실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걷다보니 이젠 오래 꿇고 있던 무
릎마저 쑤셔왔다. 꼭, 만지고 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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