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숙의 하루 2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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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6,224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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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하루 (제9부)★ 그녀들이 싫어하는 체위 ①

사방이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화장실 안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눈을 떴다. 자
기가 발가벗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여기가 어디지? 고개를 돌려 장소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벽, 벽밖에 보이지 않는다.

안돼, 나가야 해, 그녀는 문을 찾아 벽들을 살펴 보았다. 그 때였다. 그녀가 마
주하고 있는 벽이 움직였다. 뭘까? 다음 순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시커먼 사람의 얼굴로 바뀌고 있다. 점점
돌출하는 그 얼굴에서 단 하나 눈만이 희번득이고 있었다. 귀, 귀신이야! 놀라며
그녀는 변기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일어날 수가 없
었다. 일어나야 해, 제발 - 자신의 몸을 가누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본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소름이 끼쳐 꼼짝할 수 없었다.

변기 아래에도 똑같은 시커먼 얼굴이 눈을 번쩍이고 있었다.

-정신 들어요?

누군가의 목소리에, 숙은 감았던 눈을 떴다. 커텐, 침대... 그리고 한 사내의 얼
굴이 보였다.

-여, 여기가 어디죠?
-어디긴 어디야, 학교 양호실이지.

사내의 얼굴이 그제서야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한선생이다.

-양호 선생 말로는 별 이상 없다는구만. 몸은 괜찮아?

맞아... 화장실... 숙은 자기가 왜 그곳에 있는 것인지 비로소 떠올릴 수 있었
다. 아랫배가 아파왔다. 놀라서일까, 생리통이 유난히 심해지고 있었다.

-다행이야. 남자 화장실에 선생님들이 있었어서... 그래도 밖에서 쓰러져서 그렇
지, 그 칸 안이었으면 난처할 뻔 했어. 후후... 업고 나올 수도 없었을테니.

그랬구나. 누가 날 훔쳐보고 있었어. 그것도 바로 옆칸에서. 그녀는 상황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귀신은 무슨 귀신이야? 훤한 대낮에...
-제가... 그랬나요...?

피식, 한선생은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학생놈이었어. 아마 점심시간동안 거기 숨어있던 모양이야. 흐흐... 그래도 볼
일 보기 전이었으니 망정이지, 막 옷벗고 있던 중에 봤으면 어쩔 뻔 했어? 큭큭.
..

그는 숙의 안위보다도 그 상황이 야릇해서 재밌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나았다. 그녀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상황에서 쓰러졌기에, 남들은 숙이 적나라
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숙은 머리속에서 당혹스런 의
문이 생겼다. 그 학생 - 그 친구는 자기가 안에 들어가있을 무렵부터 거기에 있
던 것일까?

아, 안돼! 그렇다면 모든 것을 다보았을텐데 - 생리대가는 모습, 팬티 갈아입던
광경 - 그녀는 몸서리가 쳐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그 학생... 어, 어떻게 됐나요...?
-모르지, 아마 교무위원회에 회부가 될꺼야. 지금은 학생부 총각선생들에게 맡겨
뒀으니, 아마 늘씬하게 두들기고 있겠지. 참, 그리고...

한선생은 둘러쳐진 커텐 바깥쪽의 눈치를 살피더니, 은근히 목소리를 낮췄다.

-내일 수업 쉬도록 해. 생리휴가쯤 치고...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침대 옆에 걸려있는 숙의 정장 윗도리에
쑤셔넣었다.

-이건... 어제 일 사례야. 뭔지 알지?

돈봉투일 것이다. 어제 강변에서 나눈 그와의 정사에 대한... 그 때였다. 확, 커
튼이 열어 젖혀지며 노처녀 양호교사가 들어서고 있었다.

-주임 선생님, 말씀 끝나셨어요? 이제 숙 선생님 링겔 맞아야해요.
-허허, 그래요? 그럼 나는 교육관님 오실 시간이 되서... 푹 쉬어요, 숙선생. 내
일까지.

짐짓 점잔을 떨며, 한선생은 자상한 척 미소를 띠어보이고는 양호실을 나갔다.
양호 선생이 쟁반에서 일회용 주사바늘을 집어들고 있었다.

-생리중이라며요? 오늘 오후엔 이것만 맞고 쉬어요.

잠깐, 생리! 숙은 그 순간 퍼뜩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아까 갈아입은 팬티 - 화
장실 손가방에 두고 왔는데.



-저... 잠깐 화장실좀 다녀오겠습니다...!

신문을 펴든 총각 남선생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갖다오라고 말했다. 석은 꿇고
있던 무릎을 펴며, 방구석에서 진땀을 뻘뻘흘리며 엎드려 뻗쳐있는 혁의 쪽을 흘
끔 보았다. 아까까지의 매타작과, 1시간이 넘도록 기합을 받고 있는 데에도, 혁
은 석을 보며 씩웃는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석은 재빨리 일층으로 내려왔다. 지금은 수업시간이니까, 아무리 직원 화장실이
라 하여도, 교사들은 거기에 없을 것이다. 녀석은 속으로 기원했다. 제발, 청소
부 아주머니가 치워버리지 않았으면.

그의 예상이 맞았다. 여교사 화장실이건 남교사 화장실이건, 선생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누가 집어가지 않았기만 하면 되는데 - 석은 혁이 말한 칸
의 문을 잽싸게 열어 젖혔다. 바닥, 바닥... 이얏호!

석은 정말로 소리를 지를뻔 했다. 있었다. 혁이 녀석이 말한 그 자리에, 바로 그
것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집어들고 교직원용 화장실을 나서며, 재빨리 속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있었다. 가슴이 뛰는 소리가 귓가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있
다, 있어! 드디어 - 하지만 감격은 나중이다. 먼저 이것을 숨길 장소를 머리 속
으로 가늠하며, 석은 수상한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서둘러 학생부실로 돌아가야
했다.

녀석이 교복 속에 숨긴 것은, 숙의 작은 손가방이었다. 그 안에는, 아직 뜯지않
은 스타킹, 로션과 립스틱 같은 간단한 물건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석과 혁이 원
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들이 손에 넣은 것은 - 다름아닌 여교사의 팬티였던
것이다. 그것도 예쁘장한 음악선생이 방금까지 입고 있다가 벗은.



한선생은 교장실에서 마교장과 밀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럼 몇 사람이나 준비된 거요?
-은선생하고 희선생... 이렇게 둘입니다.

그들은 오늘 교육관의 접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교장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두 명이란 말이지...
-예, 숙선생은... 오늘 몸이 안좋답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원래 마교장의 계획은 사실 이것이 아니었다. 그
는 오늘 새로운 맛을 들여보려 했던 것이다. 마주 선 한선생은 그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새로운... 그것은 다름아닌 숙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교장으로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미리 오늘같은 기회를 위해 두툼한 돈봉투를 그녀에게 쥐어
줬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숙이 양호실에 누워있다... 그 모든 계산을 이미
한선생은 해두고 있었다. 그로서는, 적어도 자기가 보는 앞에서 이 호색한이 그
녀와 동침하는 것만 막아주면 되는 것이다.

-흠... 어쩔 수 없군. 그럼 영이, 영선생을 불러요.

어쨌든 머리 수는 맞춰야 했다. 그래야 분위기가 흐르지, 어설펐다가는 오늘의
이 굳히기 - 교육관에게 아부 - 가 수틀려질 수도 있으니까. 마교장은 다시 한번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그냥... 오늘은 기분에 따라 은이나 영, 둘 중의
하나를 침대 위로 끌어들이기로 생각하면서.


★숙의 하루 (제9부)★ 그녀들이 싫어하는 체위 ②

교육관이 당도했을 때, 마치 장군의 열병식이라도 받는 듯, 마교장과 교감 그리
고 주임선생들은 학교 현관부터 늘어서서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교장실로 안내되어지고 있었다. 시찰이라던가 시범학
습은 필요없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일인 것이다. 다음 년도에 이 중학교는
이 특별시의 전산화 시범학교로 당연히 지정될 것이란 사실을, 지금 교무실로 향
하는 무리 - 교육관, 마교장, 한선생 등 - 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곧 수억원의
예산이 그들 수중에 떨어질 것이다.

그들이 교장실 안에 들어서자, 공손한 차림으로 고개를 숙여 맞이하는 여자가 있
었다. 희였다. 그녀는 검은 색 정장 미니스커트에 흰 블라우스를 입은, 마치 사
무실 개인비서같은 차림으로 서있었다. 그녀를 본 교육관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희를 당장에 반기려던 그였지만, 자기가 지금은 공식직함을 갖고 나타난 것임을
간신히 기억해내고 계면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교육관을 희는 한껏 만든 미소
로 정중하게 쇼파로 안내했다.

-허헛, 내 정신좀 보게...

그런 모습을 보며 마교장과 한선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서로에게 보냈다. 저 교
육관은 지금 완전히 희에게 빠진 모양이 분명했다. 잘될 것이다. 오늘도 적당히
접대한 후에 저 과학여강사를 밤에 호텔방 안에 들여보내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
이다.

-어이구, 마교장님, 그동안 잘지내셨습니까?
-허허, 교육관님 덕분에 저희 학교야 든든합니다.

불과 일주일도 안된 밤에 여교사들과 환락의 장소를 같이 해놓고도, 그들은 짐짓
정말 오랜만인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들이 쇼파에 둘러앉자 곧바로 예의바르게
희가 차를 날라왔다.

-교육관님 어디 학교구경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어이고, 구경은 무슨... 마교장님이 계시면 무사태평이겠지요...

교육관은 그런 염불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찻잔을 내려놓는 희
쪽을 그의 눈이 은근하게 쫓고 있었다. 그런 희번득이는 눈초리를 놓칠 리 없는
한선생은, 차시중이 끝나자 재빨리 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녀는 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다소곳이 교육관의 옆자리에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희가 쇼파에 앉자 그제서야 교육관의 눈치가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당장에 그의
손이 팔걸이를 더듬는 듯하면서 그녀의 매끈하게 드러난 무릎 위에 슬쩍 얹어지
고 있었다. 그러나 좌중의 모두는 그 광경을 보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희까지도 당연한 듯이.

-교육관님, 오늘 선약은 없으시겠지요?
-음... 뭐 별다른 것은 없습니다만.
-그럼 저희가 저녁을 안내하겠습니다.
-허어, 그래요? 근데 제가 번번이 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그들 모두는 이미 뻔한 일을 가지고도 마치 정말인 듯 거짓예의를 차리고 있었
다. 저녁이 끝나고, 술자리가 끝나고... 그 이후에도 무엇이 예정되어 있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어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 학교구경이나 한바퀴 하고 나가시지요.
-그럴까요, 그럼?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재빨리, 마교장이 일어서며 한선생에게 눈짓을 했다. 영을 부르라는 것이다.

학교구경을 하기 위해 - 좀 더 정확히는 저녁의 접대까지의 시간 때우기나 마찬
가지 - 마교장과 교육관, 그리고 시녀같은 희가 교장실을 나서자, 그는 전화를
집어들고 내선으로 국어교사 영을 호출했다.

-어, 영선생? 나 한주임이오. 지금 교장실인데, 이리로 좀 와요.
-어머, 무슨 일이세요? 한선생님이 저를 다 찾으시고...?

의외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얼굴로 쳐도 이 학교 안에서 정교사들 중 수위를 차
지하는 영이었지만, 그에 걸맞게 콧대도 높았다. 그것은 특히나 마교장과 그녀의
관계 - 즉 학교 안에서는 주로 그녀와, 학교 밖에서는 주로 은과 - 덕에, 공공연
한 비밀이 되어 가한층 그녀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접대 자리에 나오라는 한선생의 지시를 듣고 기가 막히다는 듯
영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어머, 무슨 소리하시는 거에요, 지금? 그래서 제가 그 강사 기집애들하고 같이
나가서 술 따르란 말이에요?
-어허... 왜 그러나, 다 아는 사이면서...

그녀로서는 술자리 접대, 그것도 정교사인 자기가 새파란 임시교사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하는 것이었다.

-말도 안돼요, 생각해 보세요. 전 정식 교사고, 은선생이나 희선생하고는 틀리다
고요. 그리고, 한선생님 모르세요? 전 다음달이면 시집갈 건데, 이런 소문 나면
어쩌란 말이에요?

한선생은 어쨌든 그녀를 달래야만 했다. 짜증나는 일이기도 했지만, 교장의 지시
아닌가.

-어허... 나야 다 알지, 그래도 교장 선생님이 특별 케이스로 부르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빠질 참이야? 생각해서 그 분은 찾으시는 건데.

그래도 신경질이 나는 듯, 영은 고개를 돌리며 토라지는 시늉을 했다. 오히려 특
별히 부른다는 마교장이 그녀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어쩌겠어? 사실 나라면 영선생 안부를거야. 체면이 있지, 같은 교사입장인 내가
모르겠어? 그래도 어쩌나, 나야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인 걸...

은근히 기분을 맞춰주는 그의 말에, 영은 팔짱을 끼며 돌아 앉았다.

-정말이에요? 교장 선생님이 부른 거지, 주임선생님이 나 부르자고 한 것 아니죠
?
-에이, 정말이라니까. 아니면 둘이서 조용히 얘기했지, 내가 왜 교장실에 앉아서
전화했겠어... 걱정 마. 너무 늦을 것 같으면 내 차로 데려다주지. 어이구, 곧
새댁 소리 들을 사람인데, 신랑 쪽에 책잡힐 일 있나?

재삼 확인하자, 그제서야 그녀는 내키지 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부아가 치민 모양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저 술자리만 있다 갈 거에요. 아셨죠? 어유, 교장 선생님도 주
책이야, 다 늙은이가...!

마지 못해 응낙하고 교장실을 나서는 영을 보며, 한선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
다. 잘만 하면, 일이 재미있게 될 수도 있겠는걸 - 만약에 마교장이 은과 접대자
리를 나서면 그녀는 자기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남의 떡
될 여자, 한번 한강에 배 지난 자국을 만들어볼 기회가 올른지도 모르는 일이다.



건성인 학교시찰이 끝나자, 다정한 듯 교육관과 마교장은 같은 차에 올랐다. 어
쨌든 학교 교문을 나설 때까지는 여선생들과 짝을 이루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
으므로, 그들 둘은 함께 약속장소로 가는 것이다. 그들이 가서 자리를 잡으면,
알아서 여교사들을 챙기는 것은 한선생이 처리할 몫이었다.

그들이 탄 차가 출발하자, 한선생은 오늘의 파트너들인 은과 희, 그리고 영을 불
러 모았다. 현관 로비에서 마주친 그들 중에, 놀란 것은 은과 희의 쪽이었다. 그
녀들은 설마 숙 대신 영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들의 분
위기를 아는지, 영은 아는 체도 않고 시치미를 떼고 따로 서있었다.

-자, 은선생님하고 희선생님은 저기 교육관님 차를 타고 가도록해요. 어차피 기
사가 알고 있으니까, 먼저 출발하세요. 그리고 영선생님은... 이쪽 제 차를 타시
고.

별꼴이라는 듯, 의아한 표정의 은과 희는 기사가 딸린 교육관의 차에 올랐다. 그
녀들이 타고 떠나자, 한선생은 영을 자기 자가용에 태웠다. 마치 그녀에게만 특
별취급을 해준다는 것처럼.

-어머, 고마워요.

문까지 열어준 한선생에게 영은 살짝 인사까지 표시하고 있었다. 내심 친하지도
않은 임시교사들과 합승을 할까봐 망설여졌던 것이다.

-고맙기는... 내가 알아서 챙겨줘야지, 안그래 영선생?

사실 한선생의 꿍꿍이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
녀를 태우고 목적지로 향하며, 한선생은 옆자리를 흘끔거렸다. 지금 그 자리에
숙을 태우고서 강변에서 진한 정사를 나눈지 채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어제의
일이었다. 혹시라도 어젯밤의 정사가 남긴 흔적 - 분비물이라든가, 그럴 가능성
은 별로 없지만 숙이 벗어둔 속옷 나부랭이가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시야에 멋모르고 앉은 영의 무릎 곡선이 들어왔다. 하늘거리는 줄무늬의 원
피스를 입은 그녀는 차 안인데도 다리를 꼬고 있었다. 꿀꺽, 동그란 무릎과 매끌
거리는 스타킹에 가린 영의 허벅지를 훔쳐보며 한선생은 침을 삼키고 있었다.

★숙의 하루 (제9부)★ 그녀들이 싫어하는 체위 ③

그들의 차가 출발하는 광경을, 양호실의 창가에서 숙은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이
한선생의 차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영선생, 그녀는 어제의 오전에 교장실에서
몰래 훔쳐본 광경을 떠올렸다. 쇼파 위에서 춤추듯 리드미컬한 정사의 움직임을
반복하던 남녀의 엉덩이 - 그녀와 마교장의 것 - 그리고 문틈으로 들려오던 헐떡
이는 신음소리... 숙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 그들의 술자리엔 지금 여기 자신 대신 영이 따라나선 것이다. 그녀는 다행
이라고 느꼈다. 지금 그들과 떨어져 있으니, 지난 한 주간의 일들 - 한선생과의
호텔출입, 은과 희의 낯뜨거운 비밀들... 이런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선생... 그녀는 이상한 상상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럼 그 사람은, 오늘 누구
와 밤을 보내게 되는 걸까. 희는 교육관을 따라나설 테고, 마교장은 영? 그렇다
면 그는 은과? 숙은 어제 은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후훗... 그래서, 한선생님 어때? 잘해줘?'
'걱정마. 말 안해도 돼. 나도 다 알고서 물어본 거니까...'

은이 그녀에게 비웃듯이 건넨 말이었다. 한선생이 어떤지는 다 알고 있다 - 그럼
어쩌면 한선생과 그녀의 사이에 자기가 모르는 관계가 있어 왔는지도 모른다. 과
연 그는 다른 여선생과도 잤을까...?

아니야, 잠깐.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 작자가 누구와 잤건
그게 무슨 상관이지?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정 없
는 관계를 가져놓고서 지금 자기는 무슨 느낌을 갖는 것인가.

-괜찮아요? 생리 중이었다면서...

멍하니 창쪽을 향해 선 그녀에게, 양호 선생이 등뒤에서 묻고 있었다.

-예, 괘,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럼 일찍 퇴근하세요. 어차피 수업시간도 다 끝났으니까, 집에 가서 쉬어요.

고맙습니다, 인사를 건넨 숙은, 퇴근하기 위해 교무실로 가기 전 여교사 화장실
에 들러 보았다.

역시, 이미 그녀의 손가방은 어디론가 없어져 있었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치웠겠
지, 그녀는 짐작했다. 아니면 내일 주변에 물어보거나... 하지만 어차피 간단한
화장품 따위 밖에 없는 것이므로, 별반 잃는다고 손해될 것은 없었다. 단지 벗어
놓은 팬티가 마음에 걸렸지만 - 어차피 치운 것은 용역 아주머니일테니까, 그다
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생리혈이 묻은 팬티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있으리라고는. 지금 그것이 석의 책가방 속 깊숙히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숙으로서는 알 리가 없었다.



-어머, 언니, 저 영선생님이 왜 우리랑 같이 가는 거죠?

운전기사가 몰고 있는 교육관의 중형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희가 은에게 던진 질
문이었다.

-몰라서 묻니? 원래 교장선생님하고 저 여자랑 그렇고 그런 사이잖아.
-어머, 정말이에요?

희는 새삼스래 놀라고 있었다.

-몰랐어? 알만한 사람 다 아는 이야기인데. 숙선생이 못가니까 대신 부른 거겠
지.
-세상에, 그럼 그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구나...!

골똘히 생각하는 척 하다가 희는 갑자기 생각나는 듯 중얼거렸다.

-그럼 숙 언니는 어떻게 되는 거지...?
-숙이? 왜?
-저... 이것 얘기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사실은요, 어제 숙선생님이 물어
보더라구요.
-뭘?
-우리 얼마씩 받았냐구요.

피식, 은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왜, 자기는 뭐 특별대접이라도 받았다든?
-예. 정말이에요, 언니.

순간적으로 은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숙이 마교장에게서 웃돈의 수표를 더
받은 사실을 아직 몰랐던 그녀였다. 설마... ?

-진짜? 얼마나?
-제가 알기론... 우리 두 배쯤이요. 아마 교장 선생님이 숙언니한테 관심 있나
봐요...!

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두 배라니, 자기보다 더 많은 돈
을 챙긴다는 사실이 그녀를 노엽게 하고 있었다.

-근데 언니, 그럼 언니는 오늘 어쩌는 거에요? 원래 교장님은 언니 파트너였잖아
?

교육관의 차 안에서, 은은 마교장에게 열이 나 몸을 떨고 있었다. 자기가 있는데
도 영을 부르고, 게다가 숙에게도 손길을 뻗치려 하다니. 내가 그년들보다 뭐가
못하길래...

-걸레같은 년...!

희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은은 숙에게 엉뚱한 증오가 생기고 있었
다. 어제도 보아하니 한선생과 헐레붙은 모양이던데, 이젠 그녀를 제끼고 마교장
한테까지 넘어오려 들다니... 용서할 수 없어!

그녀로서는 그럴만 했다. 최초에 한선생의 소개로 이런 자리에 나서게 된 그녀였
지만, 마교장의 정부가 된 이상 자존심이 상할 수 밖에 없는 문제였다. 비록 마
교장의 엽색행각이 심하다 하여도, 그것은 일단 그녀로서는 신경을 쓸 문제가 아
니었다. 그러나 이런 학교 밖의, 즉 일전의 우이동 안가의 경우와 같이 그의 밤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흥, 이제 내가 싫증이 난 모양이지? 정교사도 아닌 다른 여강사, 그것도 학교 안
자기 바로 옆자리의 숙에게 추파를 던지다니... 용서할 수 없어. 숙이 기집애 두
고 보자. 내가 너한테 밀려날 것 같아? 은은 속으로 이런 매서운 다짐을 곱씹으
며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들 일행이 도착한 곳은 강북의 스카이웨이에서 멀지 않은 고급 한정식집이었
다. 제일 먼저 도착한 마교장과 교육관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마담의 안내에
따라 깊숙한 밀실로 향했다. 사방에 장지문이 둘러쳐진 한옥 방이었다.

-저, 아가씨들을 따로 불러 드릴까요?
-아니, 됐어요. 우리 파트너들은 따로 올꺼야. 그 아가씨들 오거든 이리로 안내
해요.

아가씨들, 그것은 기생들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이곳은 특별시에서도 몇 안되는
최고급 요정인 셈이었다. 마교장은 마주앉은 교육관에게 은근히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어디... 교육관님, 이따가 술이 과하시면 잠시 주무실 방을 마련할까요?

주무시라...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교육관은 내심 음
흉한 미소를 감추면서 못이기는 척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허허... 그래요? 여기 어디 공기도 좋은데, 쉬었다 가면 좋겠지요.

의미심장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마교장은 옆에 선 요정 마담에 귀엣말로 지시를
했다.

-별채 두개만 마련해 두시게, 마담.
-그럼 그러셔요. 그리고 옆방에 가야금이라도 준비 시킬까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담은 야릇한 눈웃음을 치며 물러갔다.

잠시 후 한선생보다 먼저 출발한 은과 희가 도착하여 방으로 안내되어져 들어왔
다. 넓다란 테이블에 가부좌를 한 교육관과 마교장을 보자, 은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흥, 내 자리를 딴 년들에게 뺏길 수는 없지...!

희가 교육관의 옆자리에 앉는 것은 당연했지만, 은은 시키지도 않는데 아양을 떨
며 마교장의 옆으로 다가가 찰싹 달라 붙었다. 영이 오더라도 그의 곁에 앉지 못
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장지문 건너에서 뚱따당, 은은하게 가야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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