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벌거숭이 여전사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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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4,107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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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전사 탄생
카페 당신의 향기는 전철 강남역 오피스 빌딩 거리 이웃에 있다.
낮에는 차와 경양식을 제공하고 저녁이면 술도 마실 수 있는 테이블 여섯
개의 아담한 도시 생활인의 쉼터다.
김주희.
27세. 신장 168센티. 체중 48키로. 국립대학 영문학과 졸업한 미모의
소유자다.
지금은 혼자 살지만 완전한 미혼 여성은 아니다. 그렇다고 기혼자도
아니다.
2년 전까지 6년 동안 동거하던 남자가 있었다.
지금은 스스로 미망인으로 자처한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결혼했던 일이
있는 것도 아닌 호적상으로는 처녀다.
이것이 카페 당신의 향기 경영자의 신상 명세서다.
당신의 향기.
카페 이름치고는 이색적이다.
이런 이색적인 이름을 부친 것도 주인 김주희다.
당신의 향기라는 카페 이름이 탄생할 때까지는 몇 사람만이 아는 애절한
사연이 있다.
가을로 접어드는 9월3일 토요일 오후 4시.
카페 당신의 향기 구석진 테이블에 20대의 네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윈디 박혜린 진유라 그리고 카페 주인 김주희다.
네 아가씨 가운데 가장 어린 윈디와 가장 나이가 많은 박혜린은 네 살
차이다.
직업도 모두가 다르다.
그런 세 아가씨에게는 네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라는 것과 사고방식이 개방적이면서 신세대
기질의 강하다는 것. 그리고 퇴근 후면 언제나 카페 당신의 향기에 모인다는
공통점이다.
"유라. 언니. 요즘 생명보험 외판 잘돼?"
윈디가 뺑글거리며 영어 투의 발음이 섞인 약간 혀가 짧은 듯한 소리로
물었다.
"윈디!. 넌 몇 번 얘기해야 알아듣니?. 내가 하는 일은 보험 외판이
아니라는 것."
진유라가 곱게 눈을 흘긴다.
"오우!. 내가 실수했어. 그래. 유라 언니는 생명보험 회사 사망 조사
요원과 생활설계사를 겸하고 있었지!".
전문 분야의 한국어에 익숙해 있지 않은 윈디는 생활설계사 업무를
생명보험 외판이라 부른다.
그럴 때마다 진유라는 정색을 하고 정정한다.
생명보험 업계에는 두 종류의 조사 요원이 있다.
사망 조사 요원과 생존 조사 요원이다.
사망 조상 요원은 생명보험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사실을 확인하고 사인에
이상이 없는지 조사하는 업무를 한다.
생존 조사 요원은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가입자를 대상으로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을 사실 확인하는 업무다.
생명보험에 가입할 때는 가입자의 과거 병을 앓았던 경력이나 현재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사항을 기록한다.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과 일상적인 업무를 취급하는 업종은
당연한 얘기지만 보험료에 차이가 생긴다.
과거에 무거운 병을 앓았던 경력이나 현재의 업무 등을 기재하는 것을
고지 의무라 부른다.
가입자가 고지한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업무가 생존 조사이고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을 생존 조사원이라 부른다.
생명보험 업계는 사장과 감사를 빼고는 모든 사원이 보험 상품 판매
업무를 취급할 수 있는 자격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진유라는 사망 조사 업무 요원과 생활설계사를 겸하고 있다.
"윈디 내 말 잘 들어. 생명보험 설계사라는 건 말이야. 자기가 노력한
만큼 성과가 돌아오는 직업이야. 그리고 생명보험이라는 제도 자체도 사회
복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생명보험이란."
진유라의 말을 박혜린이 얼른 받아 끼여든다.
"생명보험이란 국민 상호간의 사회 보장제도로서 모든 국민이 생명보험에
가입할 때 불의의 재난에 따른 불행에서 개인의 불행을 사전에 막아 주는
제도다. 유라 너 지금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어이없다는 눈으로 박혜린을 바라고 있던 진유라가
"그래. 네가 해라. 나 생활설계사 그만 둘 테니까 혜린이 네가 의사질
그만 두고 생활설계사로 나서라"
하고 쏘아 부친다.
겉으로는 쏘아 부치는 말투였지만 진유라의 표정은 '너 아무리 그래도 나
약 오르지 않아' 하는 얼굴로 박혜린의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아니. 난 의술로 불행한 사람에게 봉사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야"
박혜린도 빙글거리는 얼굴로 되받는다.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이런 악의 없는 상대 험담을 하고 즐긴다.
"그럼. 나 말 좀 하게 가만 두어 줄래"
"너 또 생명보험 보따리를 풀어놓을 작정인 모양이지만 여기 있는 우리는
유라 네가 먹인 쥐약 덕으로 모두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람이니까 휴식을
위해 모인 즐거운 토요일에만은 보험 얘기 좀 그만해 주었으면 좋겠어"
박혜린이 이죽거린다.
"나 지금 생명보험 권유하자는 것 아니다. 다만 생명보험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무지몽매한 여의사 선생님에게 생명보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심어 드리려는 친절을 베풀자는 것 뿐이야"
윈디와 박혜린은 진유라를 만날 때마다 생명보험에 대한 억지 섞인
험담으로 약을 올린다.
진유라도 윈디와 박혜린의 약 올리기 작전을 알고 있다.
상대가 자기를 약올리기 위해 생명보험 험담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열을
올리는 것도 자기 직업에 대한 긍지다.
진유라는 생활설계사라는 자기 직업에 남 다른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생활설계사는 상법상에 보장된 직업인 보험 모집인을 부르는 말이다.
생명보험이라는 상품을 파는 주체가 생활설계사라 부르는 모집 인이라는
것은 세계적이 현상이다.
생활설계사라는 말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미국 생명보험 회사가 만든 라이프 프랜너(Life Planner)를 직역한
말이다.
생명보험이라는 상품은 형체가 없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처럼 눈에 보이는 상품이 아니다.
또 생명보험은 사서 바로 사용하는 상품이 아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상품이다.
5년 만기 생명보험을 가입했을 때 가입자가 반드시 5년 안에 죽는다는
보장도 없고 확신도 없다.
생명보험은 만일의 불행에 대한 대비다.
당장 필요한 소비품이 아닌 생명보험은 스스로 자기 발로 걸어와 가입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누군가 권하고 설명해야 하고 가입할 결심이 섰을 때는 그 사람에게
적당한 상품(보험 중류)을 선택해 주어야 한다.
이런 특이한 요소를 지니고 있는 생명보험이라는 상품은 의 판촉 활동도
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과정에서 상담해 주어야 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생명보험 업계에서는 생활설계사라 부른다.
"한국에 존재하는 직업 종류 가운데서 가장 세력이 큰 업종이 뭔지 알기나
해?"
진유라가 박혜린을 향해 말한다.
"글세"
"그러니 닥터 박은 더 배워야 한다는 거야"
"유라 언니는 지금 그게 생활설계사라는 말하고 싶은 거구나?"
윈디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었다.
"말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게 정답이라는 소리야"
진유라가 신바람을 내면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95년 말 현재 국내에는 약 35만 명의 여성 생활설계사가 일선에서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
전체 국민을 4천만으로 볼 때 여자가 대개 2천만이고 미성년과 활동 불능
연령을 빼면 경제 활동이 가능한 여성 인구는 줄잡아 천만 명이라는 계산해
볼 수가 있다.
"생활설계사 35만 명을 여성 경제 가능 활동 인구와 비교해 보면 줄잡아
삼십 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는 얘기 아니겠어. 그래
대한민국에 여의사 수가 35만 명되니?"
그런 의미에서 생활설계사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직업 집단 가운데 가장
거대한 동일 직업 집단이다.
"정말 대단하구나"
박혜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80년대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생명보험 모집 인은 여성의 부업으로
치부된다.
생명보험에 대한 국민 인식도 낮았다.
특히 해방과 함께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생명보험들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철수 해 버렸다.
가입자의 입장에서 하루아침에 자기 재산을 날치기 당한 꼴이다.
이때부터 국민들 사이에는
'보험은 사기다.'
라는 잘못된 인식이 생겨나게 된다.
거기다 경제적인 불안정이 불러온 극심한 인플레는 저축 의욕을
저하시켰고 보험 기피 현상에도 큰 몫을 차지한다.
생명보험 기피 풍조가 돌던 시절만 해도 보험 모집 인들은 개인적인
연고를 찾아다니며 반구걸식 영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 가입자도
'안면 괄시 못해'
'더 시달리게 귀찮아서'
하는 식으로 마지못해 가입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이것은 보험에 대한 인식을 더욱 떨어트리는 결과를 불러왔고 이것이 보험
모집 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도를 더욱 저하시켰다.
그후 80년대 후반에 들어 생명보험에 대한 국민 인식 도가 높아지면서
생명보험 생활설계사는 하나의 전문 직종으로 발전해 갔다.
생명보험 모집 인이 여성의 부업으로 치부되던 시절만 해도 생활설계사는
30대 후반에서 40대 50대 여성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후 생활설계사가 전문 직종으로 뿌리내리면서 보험 모집업 자체에 대한
인식도 변해 갔다.
여성 생활설계사의 연령 분포에서도 그것을 알 수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여성 생활설계사 가운데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넘어 섰고 20대와 30대를 합친 비율은 70%에 가깝다.
"유라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보험 아줌마들이 젊어진 것 같애"
"보험 아줌마 시대가 아니라 보험 아가씨 시대군"
윈디가 진유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긋 웃는다.
한때 생활설계사를 보험 아줌마로 불렀던 시절이 있었지만 생활설계사의
연령층이 낮아진 오늘에 와서는 보험 아가씨 시대가 열렸다 해도 좋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생활설계사를 선택하는 여성 취업자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 보험 모집업은 부업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전문 직종으로 뿌리
내렸다.
진유라가 안정된 직업인 경찰을 떠나 생명보험 업계로 전업한 것도
생활설계사가 미래 지향적인 업종이라는 사실을 꽤 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진유라는 경찰 출신답게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여성에게는 생활설계사는 가장 적성에
맞고 또 성공할 수 있는 직종이다.
"얘기 듣고 보니 생활설계사는 유라 언니에게 적성에 맞는 직업인 것
같네"
"윈디. 너 왜 갑자기 유라 쪽으로 돌아서니?"
"윈디는 지금 내 편 드는 게 아니라 느낀 그대로 사실 그대로 얘기하고
있는 거야"
"난 지겨운데"
박혜린의 진유라의 신경을 건드리기 작전이다.
"의사라는 인간들은 원래 저렇게 융통성 없고 인간미 없는 이종들인가?.
어린 윈디가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싶으면 그걸 승복해야지. 남의
정당한 의견을 받아들이면 어디가 덧나냐?"
한 살 차이인 박혜린과 진유라는 서로 말을 터놓는 사이다.
"의사가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고 그렇게도 싫으면 왜 닥터 한하고 숨어
만나고 그러냐?"
박혜린이 진유라의 애인 쪽으로 화살을 돌린다.
박혜린이 말하는 닥터 한은 진유라의 애인 한현진이다.
한현진과 박혜린은 같은 병원에 근무한다.
박혜린은 외과 레지던트고 한현진은 정신과 레지던트다. 두 사람을 소개한
것도 박혜린이다.
"숨어 만나다니. 우리가 왜 숨어 만 나냐?. 우리는 떳떳하게 만나는
사이다"
"그건 유라 언니 말이 맞아"
윈디가 진유라의 편을 드는 척하고 나섰다.
"그래. 날 알아주는 건 윈디뿐이구나"
"유라 언니하고 닥터 한이 러브 호텔에 들어갈 때 당당한 모습 보면 알 수
있다구."
윈디가 뺑글거렸다.
"윈디!"
진유라가 윈디를 노려본다.
"아휴. 대단히도 당당한 사람들이구나. 하지만 그건 당당히 가 아니라
뻔뻔 쪽에 가까운 게 아닐까요?"
박혜린이 윈디와 꼭 같은 표정으로 진유라를 바라보며 이죽거린다.
"윈디하고 혜린이 짜고 날 골탕먹이기로 작정했구나."
진유라가 약간 붉어 진 얼굴로 윈디와 박혜린을 노려보았다.
"얘 유라야. 쇠도 뜨거울 때 두들기랬다고 닥터 한이 후끈 달아 있을 때
예식장으로 끌고 가라구."
박혜린이 말한다.
"왜 이래!. 내 나이가 몇인데 벌써 집에 들어앉니?."
"어이휴. 여자 나이 스무 일곱 살이 뭐 이팔 청춘이라도 되는 줄 아냐?"
"이팔 청춘은 아니지만 사회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가장 완숙한 나이지!"
"유라. 언니는 늙어 죽을 때까지 생활 설계사 노릇할 거야?"
"윈디!. 넌 나이도 어린애가 툭하면 왜 늙어 죽을 때까지라는 소리는 하고
그러냐?"
"언니가 이상해 하는 소리야"
"이상하다니?. 내 어디가 이상하냐?"
"이상하잖아, 생명보험 외판 사원보다는 의사 부인이 편한데도 그걸
마다하고 하니 이상하다고 할밖에!"
윈디가 의식적으로 보험 외판 사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진유라 신경을
건드린다.
"윈디!. 너 정말 몇 번 말해야 알아듣니?."
"아. 또 실수.!. 언니는 보험 외무 사원이 아니라 생활 설계사였지. 그걸
자꾸만 잊으니 난 머리가 나쁜가 봐. 머리가 나쁘면 자식 대까지
고생이라는데!"
윈디가 박혜린에 윙크를 하며 말한다
"윈디. 너 지금 날 가지고 노는 거지!"
진유라가 귀여운 동생의 응석을 받아 주듯 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이번에는 정말 실수였어."
윈디가 웃지도 않고 거짓말을 한다.
"좋아. 실수였다니까 한 번 더 봐주지만 다음부터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생활설계사보다는 의사 부인 자리가 좋지 않겠어?."
"그건 윈디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몰라?. 뭘?"
"난 말야. 생활설계사라는 직업에 긍지와 보람 그리고 매력을 느끼고
있어"
진유라의 그 말은 진심이다.
그것이 진유라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는 것은 윈디도 박혜린도
알고 있고 또 이해하고 있다.
형사 기동대에 근무하던 진유라 경장이 어떤 사건 현장에 출동할 때까지만
해도 생명보험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진유라가 생명보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 살인 사건과 관계된다.
진유라는 경찰을 사직하고 생명보험 생활설계사로 직장 바꾼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진유라가 변신을 하게된 동기는 4년 전에 일어났던 한 강도 살인 사건에
있다.
진유라가 송파동 아파트 단지 입구 슈퍼 살인 강도 사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건 발생한 날 새벽이었다.
피해자는 주택가 잡화상 규모의 슈퍼를 경영하는 40대 남편과 30대 후반의
부부였다.
부부에게는 살림집이 따로 있었다.
이웃에 있는 전세 연립주택이다.
그러나 살림집에는 평소 세 아이들만 살고 있을 뿐 부부는 평소 가게 안
쪽에 딸려 있는 작은 방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자정 이후에야 문을 닫고 새벽에 열어야 하는 주택가 가게에서는 그게
편리하다.
은행 문을 닫은 다음에야 가게문을 닫는 미니 슈퍼는 하루 매상을 그대로
가게에 보관해 두었다가 다음날 오전에 은행에 입금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주택가 슈퍼나 접객업소에는 밤사이 보관하고 있는
현금이 많다.
범인들은 이것을 알고 노렸다.
범행 시간은 새벽 네 시경이었고 범인들이 떠난 다음 한 순간까지는 아내
쪽은 살아 있었다.
중상을 입은 아내가 전화로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두 피해자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여인은 출혈 과다로
병원에 도착한 직후에 숨을 거두었다.
진유라가 사는 아파트가 강도 사건이 발생한 슈퍼 이웃에 있었다.
그 슈퍼가 단골이다.
새벽 여섯 시 진유라가 세 들어 있는 연립 주택 침실 전화 벨이 울렸다.
관할 경찰서 수사 계장이었다.
상급 기관인 본청 형사 기동대 소속인 진유라는 슈퍼 살인 강도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다.
단순 살인 강도 사건은 관할 경찰서 수사과 소관이다.
형사 기동대 소속 형사가 사건 현장 이웃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관할 경찰서 수사 계장은 진유라가 피해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전화를 했다.
관할 경찰서 수사 계장을 통해 단골 슈퍼 주인 부부가 살해당한다는
소식을 들은 진유라의 머리에 재일 먼저 떠오른 것은 세 아이 얼굴이었다.
피해자 부부에게는 세 아이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인 큰 딸 정경숙과 중학 3학년인 둘째 경진 그리고
국민학교 6학년인 아들 경식이다.
피해자 부부가 운영하던 슈퍼는 진유라의 단골이었고 평소 가까운 사이다.
세 아이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다.
피해자는 세 아이들에게 넘겨 좋고 간 것은 슈퍼 전세금과 아이들이 살고
있는 연립 주택 전세금이 전부였다.
아까운 친척이 있었지만 재산을 남겨 놓고 가지 않은 피해자의 세
아이들을 맡아 기르겠다는 사람은 나서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며칠 후 장녀 정경숙이 형사 기동대로 진유라를 찾아 왔다.
진유라가 본 장녀 정경숙은 나이에 비해 굳건했다.
"언니. 이게 뭔지 좀 봐 주세요"
정경숙이 진유라 앞에 한 장의 증서를 내밀었다.
진유라는 그것이 보험 증서라는 것을 첫 눈에 알아보았다. 생명보험
증서였다.
그것이 생명보험에 가입한 보험 증서라는 것만 알았을 뿐 실재 어떤
구실을 하는 것인지는 진유라도 모르고 있었다.
진유라는 그 길로 정경숙을 대리고 보험증서를 발행한 영업소를 찾아갔다.
"난 그때 생명보험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된다고"
진유라가 그때를 회상하듯 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 부부가 생명보험에 가입해 놓았기에 다행이구나"
"그 부부가 가입한 생명보험 상품은 보험자가 사망했을 때 보험금만
지급하고 끝나는 게 아닌 자녀들의 교육비까지 계속 지급하는 생명보험
상품이더라구"
"생명보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네"
박혜린이 말한다.
"그러니까 배우라는 것 아니겠어"
진유라가 의기양양해 말한다.
생명보험 회사 생활설계사 진유라와 어울리는 사이 박혜린도 생명보험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게 된다.
"상당한 보험금이 나왔어. 그때 난 이런 생각을 했어. 그 가게 주인
부부가 어려운 가운데서라도 생명보험에 가입해 놓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그 애들은 고아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야"
"그래. 그게 현실이지"
그후 진유라는 세 아이의 후견인 구실을 해 왔다.
"그럼 그 애들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입해 놓은 보험금으로 자라고 있는
거야?"
윈디가 물었다.
"그래. 아버지 어머니 죽음에 따른 일시불 보험금도 타고 신학기 등록
때마다 또 따로 학자금이 나와"
"그런데 언니가 왜 경찰 그만 두고 보험회사로 옮긴 거야?"
윈디는 언제나 그게 궁금했다.
윈디가 한국에 왔을 때 진유라는 이미 보험회사 사망 조사원을 겸한
생활설계사로 활약하고 있었다.
윈디는 애인인 지훈을 통해 진유라를 알았다.
1년 전이었고 진유라가 경찰을 그만두고 생명보험 회사로 옮긴 2년 후의
일이었다.
윈디는 진유라를 단순한 보험 회사 OL정도로 여겼다.
처음 진유라를 본 윈디는 상대가 텔레비전 탤런트나 모델 정도로
상상한다.
윈디는 진유라가 경찰관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무척 흥미를 느꼈다.
지훈이 한국에 불러내기 전까지 윈디는 뉴욕 시경에서 근무하던 현직
경찰관이었다.
윈디는 미국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바로 뉴욕 시경 경찰관 모집에
응시해 경찰관 생활을 시작한다.
거기서 지훈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이 맺어졌다.
지훈이 귀국한 다음해 윈디를 한국으로 불러내 대학에 입학시켰다.
윈디가 스무 네 살의 나이에 아직도 대학 2학년인 것은 그 때문이다.
윈디의 눈에 비췬 지훈과 진유라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는
느낌이었다.
진유라가 윈디를 의식하고 조심하는 눈치였지만 가끔 지훈에게 반말을
하기도 했고 눈빛으로 보아 서로가 서로의 육체를 알고 있는 사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일곱 살 때 이민 가는 부모 따라 미국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자란 윈디는
사고방식이 서구적이다.
자기 애인인 지훈과 진유라가 육체적인 교섭이 있는 사이라는 흔적이
보이지만 그런 일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훈은 젊고 건강한 남자다.
자기가 곁에 없었던 지난 1년 사이 지훈이 수도승처럼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젊고 건강한 남자라면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 윈디식 사고 방식이다.
그러면서도 지훈이 없던 1년 동안 자기도 다른 남자와 교섭을 갖지는
않았다.
여자는 애인을 위해 몸을 지키며 자위로 욕구를 참는다.
그런 의미에서 윈디의 머리 다른 한 구석에는 동양적인 정서가 자리하고
있었다.
"미스 진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찰관이었어"
"그때 지 경감님이 우리 반장이었어요"
지훈의 말을 진유라가 받는 소리를 듣고 윈디는 두 사람이 한때 직장
동료였다는 것을 알았다.
윈디와 진유라는 서로가 경찰관 출신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윈디는 두 사람 사이를 알면서도 진유라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언니라 부르며 따랐다.
윈디는 항상 진유라가 왜 경찰관을 그만두고 보험 모집 인으로 전업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직접 물어 보고 싶었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미국식 사고방식이
몸에 베인 윈디는 한 번도 물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진유라가 자기와 생명보험과 인연을 맺게 된 얘기를 하는 것을
기회로 자기가 지니고 있던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한다.
"내가 경찰관을 그만두고 보험회사로 옮긴 건 생명보험 생활설계사라는
직업의 무한한 잠재력 때문이야"
우연한 기회에 생명보험 현황을 알게 되면서 충격에 가까울 만치 놀랐고
매력을 느끼게 된다.
진유라를 놀라 게 한 것은 생명보험의 시장성이었다.
"내가 생명보험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삼 년 전이었어. 정경숙이
가지고온 보험증서를 가지고 같이 보험회사로 찾아가기 전까지만 해도 난
생명보험에 대해 생각해 본 일 없었어"
"그건 그렇겠구나. 나도 유라 알기 전까지만 해도 생명보험에 대해 자세히
몰랐으니까"
"누구나 그래. 주변에 직접 수혜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보험의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
"생명보험의 필요성에 놀라 경찰 그만두고 생활설계사 된 거야?"
윈디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런 건 아니야. "
"그럼 왜 갑자기 직업을 바꾸었어?"
"시장성에 놀라고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서야"
진유라는 1991년 말 현재 생명보험 계약 보유고가 480조 원을 넘어 선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흥미를 느꼈다.
보유계약고가 480조 원이라는 것은 시장성이 480조 원이라는 뜻이다.
국내에서 단일 업종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이다.
이 거대한 시장을 일선에서 움직이게 하는 주역이 당시 보험 아줌마로
불리던 생명보험의 설계사이다.
여성이 전문적으로 활동 할 수 있는 거대한 전용 시장이 있을 것이라는 건
상상조차 못한다. 그리고 그 직장은 정년이 없는 평생 직장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무한한 발전성이 있는데 비해 자본이 필요 없는 장사라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것을 알면서부터 진유라는 보험 모집이라는 직종에 흥미를 느꼈다.
진유라가 480조 원이라는 높은 시장성에 놀라 충격을 받았던 1991년 말에
비해 오늘의 생명보험 시장은 더욱 거대해졌다.
"내 예측은 적중했어. 지난 5년 사이 생명보험 시장은 국내 그 어느
직종보다 성장률이 높아 갔어"
진유라가 처음 생명보험에 관심을 갖던 1991년 말 현대 총 계약 고가
480조 원이던 것이 1995년 11월말 현재 한국 33개 생명보험 회사의 총 보유
계약고는 1103조 원을 돌파한다. 1103조 원 돌파한 한국 생명보험 업계는
수입 보험료 기준으로 세계 6위 국가에 진입한다.
한국 전체 국민을 기준으로 보면 생명보험 가입 율이 50.9%다.
"아니. 생명보험 가입 율이 그렇게 높아?"
박혜린이 놀란 눈으로 진유라를 바라본다.
"겨우 50.9% 가지고 그렇게 놀라냐?"
"겨우 라니?"
"우리 생활설계사 입장에서 보자면 아직도 49.1%의 미가입자가 있고 그
49.1%는 내가 노력해 개척만 하면 내 시장이 될 수 있다는 뜻이야. 그리고
보험에 가입할 대상자는 오늘도 열심히 태어나 주고 있고"
진유라가
'내 말 어때'
하는 표정으로 박혜린을 향해 윙크한다.
"나도 학교 그만 두고 언니 따라 생활설계사 할까?"
윈디가 표정 속에는 반농담 반진담이 엿보인다.
"대학 졸업하고도 늦지 않아. 그리고 지금도 사무실 일을 하고 있잖아"
"언니들이 다 해 버리면 내가 가입시킬 대상이 사라져 저리고 없어지잖아"
윈디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한다
"염려 말어. 내가 말했지. 보험에 가입할 사람은 오늘도 태어나고 또
보험은 한 사람이 하나에만 가입하는 게 아니니까"
"아!. 안심한다"
윈디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1103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이 시장을 움직이는 주역이 일선에서 보험 영업
활동하고 있는 35만 명의 생활설계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보험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활설계사라는 직업은
단일 상품으로서는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을 움직이는 주역이라 해도
좋다.
"1103조 원을 여성이 움직이는 시장이라면 하번쯤 뛰어 들어 승부를 걸어
볼만하지 매력이 있는 것 아니겠어"
말을 마친 진유라의 표정에는 긍지와 자긴감 그리고 투지가 넘치고
있었다.
"그래 그건 언니 말이 맞아. 언니가 경찰 그만두고 보험회사 입사에
입사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 거야. 이제 보니 바로
개척정신었군"
윈디가 진유라를 추겨 세운다.
"그래요. 나 처음 미스 진 만났을 때 경찰에 몸담고 있다 생활설계사로
전업했다는 말을 듣고 이상한 여자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당신의 향기 경영자인 김주희가 끼여들며 말한다.
"주희 언니는 언제나 유라 언니 편이더라"
윈디가 진유라를 향해
'드디어 응원군이 도착했군요'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한다.
"윈디. 주희는 내 편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생명보험이 뭔지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생명보험의 필요성을 절실히 체험한 증인이야"
당시의 향기 주인 김주희와 세 아가씨는 말을 놓아 한다.
카페 주인과 손님 사이가 아니라 친구 사이로 발전해 있었다.
"그래. 우리 사회에 생명보험이라는 보장 제도가 없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고는 해!"
김주희가 조용하지만 또렷한 투로 말한다.
김주희의 말투 속에는 생명보험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세 아가씨가 카페 당신의 향기에서 모이기만하면 진유라 놀려주기식
생명보험 논쟁이 벌어진다.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마지막 판정을 내리는
사람이 카페 당신의 향기 마담 김주희다.
생명보험에 관한 한 김주희가 마지막 판정을 내리면 윈디도 박혜린도 더
이상 항변을 하지 않는다.
진유라의 표현을 빌리면 김주희 자신이 생명보험의 사회적 효능성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증인이기 때문이다.
진유라의 그 주장에는 윈디도 박혜린도 승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들었지!."
진유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며 말한다.
"아휴. 대단하다. 대단해."
박혜린이 빈정댄다.
"닥터 박은 다 좋은데 남의 말에 초치는 그 버릇만은 좋지 않더라"
"그놈의 생명보험이 뭔지는 모르지만 의사 마누라 노릇보다 보험 권유
사원이 좋다는 여자는 이 세상에서 진유라 너 하나 뿐일 거야"
박혜린이 유난히 보험 권유 사원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한다.
"닥터 박. 너 끝까지 보험 권유 사원 소리 할거니?"
박혜린이나 윈디가 진유라를 약 올릴 때 즐겨 사용하는 메뉴가 보험 권유
사원이라는 용어다.
형체가 없는 상품을 파는 생명보험은 형체가 있는 상품을 파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영업 방법이 다르다.
가전 제품 같은 형체가 있는 상품은 진열해 놓으면 소비자가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고 지나치다가도 보고 매구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보험은 설명은 구매 예상 대상 층을 찾아다니면서
1대1로 설명을 하고 이해를 불러일으키게 해야 한다.
이렇게 예상 구매 고객을 찾아다니면서 설명을 하고 판매하는 일선 영업
사원의 업무 분류상 명칭은 보험 모집 인이다.
생활설계사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얘. 부르는 이름 다르다고 뭐가 달아지냐?"
박혜린이 여전히 깐죽거리는 투로 받는다.
"그래 부르는 이름 다르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닥터 박 식으로
표현하자면 넌 수리공이라고 해야겠구나"
진유라가 빈정댄다.
"뭐?. 인간 수리공이라니?"
박혜린인 정색을 하고 말한다.
"외과 의사가 별거니. 깨어지고 터지고 찢어진 사람 고치는 게 특기니
인간 수리공이지."
진유라가 빈정댄다.
"아유. 저걸 그냥."
"닥터 박. 앞으로는 의사들도 길거리로 나서야 먹고살아 가는 시대가 올
거라구"
진유라의 공격이 시작된다.
"의사가 왜 길거리에 나서냐?."
"과학이 발달해 환자는 줄어가고 의사는 계속 늘어나면 앉아서 환자 오기
기다리다가는 굶어 죽는다는 얘기 아니겠어. 그때는 닥터 박 같은 외과 전문
의사들은 말이야. 응급 처치용 가방 매고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면서 팔다리 부러진 사람 머리 깨어진 사람 고칩니다 하고 외치고
다녀야 할거라는 얘기지. 뭐"
진유라의 빈정대는 농도가 점차 높아졌다.
"아예 악담을 해라."
"악담이 아니야. 의사들의 미래가 훤히 보인다는 얘기지. 뭐"
"그래!. 그런 시대 오면 진유라 너 꼴도 볼만하겠구나."
"내가 의사냐?."
"너는 의사 마누라 될 여자잖아. 닥터 한은 내과 의사니까 가방 들고
골목골목 누비며 배 아픈 사람 감기 환자 고칩니다 하고 외치고 돌아다니는
뒤나 쫓아 다녀야 할 신세 될 테니까!."
박혜린이 빈정댄다.
"어휴, 그러고 보니 닥터 박는 직업 잘못 택했고 유라 언니는 애인 잘못
만났구나!"
윈디의 말에 모두가 까르르 웃는다.
"설사 그런 시대가 와도 난 걱정할 것 없어. 평생 직장 있으니까!"
"평생 직장?. 유라 언니는 생명보험 생활설계사 노릇 평생토록 할
작정이야?"
윈디가 놀라 묻는다.
"왜 평생 하면 안돼?"
"하지만"
"윈디. 여자도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하는 시대야. 남자 건 여자 건
경제적인 독립을 못하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거야"
"그건 그래. 인간이 자기 능력을 놀리고 있다는 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야."
미국서 자란 윈디는 그런 면에서 철학이 뚜렷하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것 아니겠어.
그때를 대비해서 여자도 자기가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러 놓아야 하는
거야. 닥터 박이 의사의 길을 택한 것도 평생 직업을 가져 놓자는 것
아니겠어"
진유라가 박혜린을 행해 빙그레 웃는다.
"유라가 날 대변해 주는구나"
"나는 경제적으로도 힘도 학교 성적도 모자라 대학을 가지 못했어. 그래서
경찰에 들어갔던 거야"
"경찰도 평생 직장이니까"
"그래. 경찰도 공무원이고 공무원인 이상 정년까지는 보장돼"
"더 많이 벌려고 생활설계사로 바꾼 거야?"
윈디의 말은 언제나 직설적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더 많이 번다는 소리도 되겠지. 하지만 우회적으로
표현하면 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고 싶었던 거야"
"경찰은 월급이 적으니까"
"월급을 아무리 많이 주는 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도 직장인에게는
한계가 있어"
"그래.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월급에는 한계가 있구나"
"경찰 예를 들어볼까!. 한 달에 사건 해결을 백 건 하는 형사도 한 건도
해결 못하는 형사도 일의 성과와는 관계없이 꼭 같은 액수의 봉급을 받아"
"그래. 나도 경찰관 출신이라 그건 알어. 그런 불공평이 언제나 불만이
였지만."
"하지만 보험 모집 업무의 세계는 달라. 내가 보험을 한 건 더 계약해
오면 그만큼 내 수당이 올라가는 거야. 의사가 환자 한 사람 더 보면 수입이
그만큼 더 높아지는 것하고 같은 원리지"
"유라 넌 물귀신 같이 끝에 가서는 꼭 사람 끌고 들어가더라"
박혜린이 진유라를 향해 곱게 눈을 흘긴다.
"그게 유라 언니 특기잖아"
"윈디."
"물귀신 모양 생명보험에 사람 끌어 놓는 것. 나 유라 언니 물귀신 작전에
쥐약 먹고 생명보험에 가입했지만 애인 위해 생명보험 가입한 여대생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나 하나 뿐 일 거야"
윈디가 진유라를 슬쩍 곁눈질하며 말한다.
"윈디. 유라 쥐약 피해자는 윈디 하나만이 아니야. 나도 가입했어"
윈디의 말을 박혜린이 받는다.
"닥터 박 언니는 왜 생명보험에 가입했어. 남편도 없으면서!"
"윈디 넌 남편 있냐?"
박혜린이 윈디를 흘겨 말한다.
"난. 애인 있잖아."
"이거 애인 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 살겠냐"
"언니는 애인 없는 편이 자유로워 좋다고 했으니까 애인 없다고 서러워 할
것 없어"
"아주. 때리고 달래는 구나"
"하지만 애인도 없는 언니가 생명보험 가입한 건 아무래도 유라 언니
쥐약에 홀린 것 같은데"
"나도 내 자신을 위해 가입한다. 왜!"
박혜린이 윈디를 곱게 노려보며 항의한다.
"생명보험을 자기 위해 가입해?."
윈디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박혜린과 진유라를 번갈아 바라본다.
"윈디. 자기 자신을 위해 생명보험 가입한 건 닥터 박만이 아니예요. 나도
내 자신을 위해 생명보험에 가입했어요"
김주희가 조용한 미소를 띠며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저승이 있다는 걸 믿나 보네!?"
윈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하고 말한다.
"생명보험 얘기하다 갑자기 왜 저승은 나오고 그러냐?"
진유라의 말이다.
"유라 언니. 생각해 봐. 닥터 박 언니나 주희 언니는 남편도 애인도
없잖아."
"끝내 애인 타령이군. 이거 정말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 못살겠네!.
화나면 윈디 애인 뺐어 버릴까 보다!"
박혜린이 빈정댔다.
그런 박혜린을 진유라와 김주희가 약간 놀라 듯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매우 짧은 한 순간이 였지만 윈디의 눈에도 보였다.
"언니가 죽어도 보험금 타 갈 사람이 없잖아. 그런데 왜 생명보험에
가입하느냐고. 죽은 다음 저승에 갔던 언니가 보험금 타러 다시 살아 돌아
올 거라는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애인이라도 있다면 모르지만"
윈디가 정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한다.
미국에서 자라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윈디는 언제나 표현이
직설적이다.
"자꾸만 애인 애인 하는데 꼭 애인이 있어야 생명보험에 가입하니?"
"한국은 미국하고 달라 미혼 남녀가 애인을 보험금 수혜자로 생명보험
가입하는 일은 사람은 별로 없잖아."
"갑자기 미국은 왜 나오냐?"
"미국에서는 애인을 자기 보험금 수혜자로 생명보험 가입하는 사람 많다는
얘기야."
"윈디 너 엉뚱한 말 지어내 생명보험 선전하는 것 아무래도 진유라에게
뇌물 먹었나 보구나?."
박혜린의 말은 윈디에게 하면서 눈은 진유라를 향해 빈정댔다.
"닥터 박 언니도 세계화 좀 해야겠군"
"갑자기 세계화는 또 왜 나오냐?"
"외국 젊은 사람들 사고방식 공부 좀 하라는 소리야"
"애인 위해 생명보험 가입하는 것 배우는 게 세계화냐?"
"애인을 보험금 수혜자로 생명보험 가입하는 건 내 모든 것은 바쳐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걸 보이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얘기야."
윈디의 말에 박혜린도 진유라도 말이 없었다.
침묵은 윈디의 말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윈디의 말뜻은 알겠지만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가는 구석이 있네요"
김주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가요?"
"생명보험은 계약 기간이 5년 10년 20년 하는 식으로 기한이 길잖아요. 그
사이에 애인이 변심하거나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헤어질 수도 있잖겠어?"
"오우. 주희 언니는 잘 모르고 있군. 한국 생명보험은 저축 식이고 그래서
계약 기간이 길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저축 식이 별로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지요?"
김주희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약정된 기간동안 아무일 없으면 그걸로 상황 끝이라는 뜻이예요. 그래서
기간도 마음대로 정하고 보험료도 싸요. 비행기로 여행할 때 이륙에서
착륙할 때까지만 하는 식의 계약 기간이 아주 짧은 생명보험도 있어요."
"그런 생명보험도 있어요?"
"그런 생명보험 상품은 외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나라에도 있습니다"
진유라가 또 한번 의기양양한 투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보험은 유럽에서 등장한다.
온갖 재앙에 시달렸던 유럽 사람들은 불의의 사고 위험이나 재앙에 대한
대비책으로 보험을 만들었다.
보험에 가입해 약정한 기간동안 사고나 재앙을 격지 않고 무사히 넘기면
그 자체만으로도 행운으로 치부하고 보험금 자체를 아깝다거나 불필요한
지출로 간주하지 않는다.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계 조직이 발달되어 있었다.
계(契)와 보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계는 일정 기간 불입하면 목돈을 탄다. 그러나 계를 불입하는 기간동안에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보장은 전혀 없다.
보험은 계약 기간동안의 위험에 대한 보장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계와 보험의 근본적인 차이다.
계에 익숙해 있던 동양 사람들은
'계약 기간동안 불입한 다음 만기가 되면 나에게 얼마를 돌려주느냐'
하는 계산부터 먼저 따진다.
위험에 대한 대비를 위해 지불한 보험료를 저축성 불입금으로 착각한다.
이런 생활 인습이나 정서의 차이 때문에 동양에 생명보험이 처음 도입되던
시절 생명보험이 외면 당한다.
여기서 서양 보험업자들은 보험 계약 기간동안 보험금 지불 발행 요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일정액을 돌려주는 동양 사람 정서에 맞는 생명보험을
개발한다.
이것을 저축성 생명보험이라 부른다.
반대로 약정된 보험 기간 내에 보험금 지급 요인이 발생하지 않으면
한푼도 돌려주지 않는 보험을 순수 보장성 보험이라 부른다.
순수 보장성 보험과 저축성 보장 보험은 보험료 자체가 다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정액을 돌려주어야 하니 보험료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는 저축성 보험 개념이 없다.
반대로 동양에서는 순수 보장성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의 수가 많지 않다.
"보험 하나만 놓고도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건
재미있네요"
김주희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인도 없는 두 언니가 생명보험 가입한다는 걸 보니 유라 언니 쥐약
피해자는 역시 나 한 사람뿐 아니 였구나"
윈디가 또 진유라의 신경을 건드린다.
"윈디. 너 정말 쥐약이 어쩌고 피해자가 어쩌고 하는 소리 계속할 거야?.
그렇게 억울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해약해."
"그건 안돼. 내 생명보험은 아저씨에게 내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의
하나니까"
"그래. 바로 그거야. 당신은 당신의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진정 아내를
사랑한다면 지금 생명보험에 가입하십시요."
진유라가 웅변조로 말한다.
"그건 나도 인정해. 이 카페 당신의 향기와 김 마담이 그 살아 있는
증거니까"
박혜린이 김주희를 힐긋 바라보았다
"유라 언니. 닥터 박 생명보험 수혜자가 누구야"
윈디가 호기심에 찬 눈을 하고 물었다.
생명보험에서 수혜자란 가입자의 신상에 만일 경우가 발생했을 때
보험금을 탈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건 박혜린 자신이야"
진유라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로 답한다.
"뭐 자기 자신?. 정말 죽은 다음 보험금 타러 다시 살아 돌아 올
작정이야!"
윈디가 눈이 휘둥그래져 물었다
"윈디 너 생명보험은 꼭 사람이 죽어야만 보험금 받는 걸로 아는 모양인데
죽지 않아야 보험금 타는 생명보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죽지 않아도 보험을 주어?"
윈디의 눈이 더욱 휘둥글해 진다.
"그런 생명보험이 있다는 걸 알아두어야 한다 그런 얘기야"
"죽지 않아도 보험금 주는 보험이 왜 생명보험이야?"
윈디가 항변한다.
생명보험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윈디로는 당연한 항변이다.
윈디가 가입한 생명보험 상품은 계약 기간동안 보험금 지급 요인이
발생했을 때만 보험금을 지급할 뿐 만기까지 가입자가 생존해 있으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서양식 순수 보장성 보험이다.
"윈디가 반장님을 수혜자로 가입한 생명보험은 보장성 보험이라는
상품이고 닥터 박하고 김 마담이 가입한 보험은 생존 보험이라는 상품이야"
"생존 보험?. 그건 또 뭐야?"
윈디는 남 달리 호기심이 강하다.
진유라의 말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생명보험은 사람이 죽었을 때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착각이 생긴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생명보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는데 원인이 있다.
거기다 생명보험이라는 용어 자체가 꼭 사람이 죽어야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생명보험은 영어로 라이프 인슈렌스(Life Insurance)다.
동양에 생명보험이 처음 들어오던 시절 일본에서 라이프 인슈렌스를
직역해 인명 보험(人命 保險)이라 불렀고 중국에서는 인수(人壽)보험이라
불렀다.
그후 일본에서 인명 보험은 어감이 좋지 않다 해서 생명보험으로
바꾸었다.
우리가 생명보험이라 부르는 것도 일본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의 라이프 인슈렌스는 생명보험보다는 생활 보험에 가깝다.
보험 상품의 종류를 놓고 보아도 생명보험보다는 생활 보험에 가깝다.
생명보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보장 보험과 생존 보험이다.
보장 보험은 보험 가입자가 계약 기간 내에 죽거나 신체적 장애를 입었을
때 가입자가 지정한 수혜자에게 계약된 보험금을 지급하는 생명보험
상품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생명보험이다.
생존 보험은 약정한 기간까지 가입자가 생존해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생명보험 상품이다.
연금 보험 노후 생활 보험 같은 보험 상품이 생존 보험의 범주에
들어간다.
"닥터 박 언니하고 주희 언니는 생존 보험에 가입한다는 거야?"
진유라의 설명을 들은 윈디가 물었다.
"그래. 나 진유라 쥐 약 덕으로 생존 보험에 가입해 한 달에
14만6천이라는 생 돈 갖다 바친다구"
박혜린이 의식적으로 진유라의 신경을 건드리듯이 빈정거렸다.
"뭐야?. 생돈을 갖다 바쳐?. 혜린아. 보험료를 갖다 바치는 돈이라는 식의
사고밖에 못하는 네가 어떻게 의사씩이나 됐냐?. 그런 혜린이가 장차 외과
전문의 된다고 생각하니 한국 외과 학회 장래가 걱정된다!"
박혜린의 약 올리기 작전에 진유라의 반격이다.
"내 장래 걱정해 주는 사람 있어 행복하군"
"너 말이야. 외과 전문의 자격 딴 다음 10년 동안만 병원 근무하다
개업하는 게 꿈이라고 했지?. 그 꿈을 이루게 해 주는 게 바로 네가 가입한
생존성 생명보험 상품이야."
"만기 동안 아무 일없으면 그 동안 불입한 돈에 이자 붙여 돌려주고
융자까지 해준다는 말에 쥐 약 먹었지"
"저 인간은 끝까지 쥐약이네."
삐 삐 삐.
박혜린의 무선 호출기가 진유라 약 올리기 작전을 중단시켰다.
무선 호출기 발신 내용을 확인한 박혜린이 전화기 앞으로 가 다이얼링을
하기 시작한다.
"윈디. 나 병원까지 차 좀 태워 줘. 오늘 내 차 10부제 쉬는 날이야"
전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온 박혜린이 윈디를 향해 말한다.
"언니 부르는 호출이야?"
"교통사고 응급 환자야."
"외과 의사란 주말로 없군"
"사고는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언제 어느 순간에 터질지 모르는 것
아니겠어"
"그래. 바로 그거야.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재난에 대비해 생명보험에 가입하라"
진유라가 박혜린의 말을 받아 웃으며 외쳤다.
"저 인간은 아는 게 생명보험뿐이라니까?"
"미스 진은 그만큼 자기 직업에 긍지를 갖고 또 충실하다는 뜻이겠지"
김주희가 미소지으며 말한다.
"김주희. 당신의 향기 문 닫고 아예 생활설계사 진유라의 조수로 나서지
그래"
"언니. 입씨름 그만하고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니야. 내가 언니 병원까지
대려다 줄께"
윈디가 일어나면 말한다.
"윈디 나도 같이 갈래"
진유라도 따라 일어났다.
"유라 언니가 의료 요원이야?. 교통사고 응급 환자 들어 왔다는데 언니가
병원에는 왜 가!"
"윈디. 넌 어쩌면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니?. 나 혼자 심심하게 앉아
있어야겠니"
"곱게 닥터 한 찾아간다고 해라"
박혜린이 빈정댄다.
"그래. 닥터 한 보러 간다. 이제 시원하냐!"
진유라도 빈정거리는 듯이 받았다.
"그렇게 보고 싶고 붙어 있고 싶으면 아예 우리 병원 내과 병동에 장기
입원하지 그래"
"닥터 박 같은 애들은 모를 거야. 모르면 잘 배워 두어. 남자하고
강아지는 풀어놓으면 사고를 칠 위험 있어!"
진유라가 말한다.
"그래 알겠다. 진유라가 닥터 한 감시하느라 시간 여유만 생기면 호텔로
자기 아파트로 끌고 가는 구나"
박혜린이 받았다.
"닥터 박. 너 정말 혼날래"
"빨리 와"
윈디가 소리쳤다 .
세 여자가 출입문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주희 언니. 아저씨 오면 기다리라고 해. 우리 테이블 치우지 말고"
윈디가 출입문 앞에서 뒤를 돌아다보면 외쳤다.
김주희가 그런 세 여자의 뒤 보습을 부러운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승용차 천장을 활짝 열어젖뜨린 빨간 색 빛깔의 싸바 900 컨버터블이
삼선병원 외과 병동 현관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섰다.
병원 현관에 있던 사람들이 시선이 일제히 빨간 색 싸바 900에 쏠렸다.
서울에서 몇 대 안되는 빨간 색 싸바 900 컨버터블 차도 눈길을 끌었지만
그 차에 탄 세 아가씨의 미모도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윈디. 30분 기다리다 돌아오지 않으면 먼저 당신의 향기에 먼저 가 있어"
박혜린이 차 문도 열지 앉고 사내처럼 훌쩍 뛰어 넘어 병원 현관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30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응급 처치 스텝으로 들어갔다는 뜻이군"
윈디가 주차장 쪽으로 차를 몰면서 말한다.
"닥터 박 말이야. 정말 별종이야. 여자가 하필이면 외과 전문의를 지망해
가지고 토요일 오후에도 불려 다니고 저러는지 모르겠다니까. 여자면 내과나
소아과 지망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진유라가 말한다.
"닥터 박이 별종이면 언니는 특별 별종이야"
"내가 왜 별종이냐?"
"경찰 그만두고 생명보험 외판원으로 나섰으니 별종이지. 별종이 따로
있겠어?"
"윈디!"
윈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유라가 외쳤다.
"아차. 또 실수. 언니가 형사 그만두고 생명보험 생활설계사 지망한 것
말야. 다른 사람은 이해 못하잖아"
"윈디. 내가 생명보험 생활설계사가 얼마나 보람있는 직업어란 걸
그렇게도 말했는데 아직 못 알아 듣냐?"
"난 조금은 이해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모양이야."
"윈디. 생활설계사가 하는 일은 단순한 보험 모집만 하는 게 아니야."
"스톱!"
윈디가 진유라의 말을 급히 막는다.
"듣기 싫다 이거지?"
"아니. 저기 닥터 한이 오고 있어"
윈디의 말에 진유라가 고개를 들었다.
한현진이 두 여자를 알아보고 차 쪽으로 다가왔다.
한현진은 이 병원 정신과 수련의다.
진유라와는 육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애인 관계다.
"안녕! 닥터 한!"
"안녕! 윈디"
차 가까이 다가온 한현진이 진유라를 향해서는 싱긋 웃기만 하고 윈디에게
말을 걸었다.
"유라 언니가 와 있다는 걸 알아보고 온 거예요?"
윈디가 진유라의 눈치를 보며 한현진에게 물었다.
"아니요. 난 보험 아가씨는 못 보았고 윈디를 알아보고 온 거예요."
한현진이 진유라를 힐긋 바라보며 말한다.
진유라가 '흥'하는 표정을 지었다.
"의사도 거짓말을 하네"
"서울 시내에 몇 대 밖에 없는 빨강 싸바. 그것도 매력적인 아가씨가
운전하는 차라면 윈디 아니고 누구 있겠어요. 그 매력적이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 왔지요"
한현진이 진유라를 힐긋 보며 말한다
"거짓말 그 정도 해 두는 게 후회 없는 주말이 될 걸요"
"정말입니다. 난 거짓말하지 않아요. 정말 보험 아가씨는 여기 와서
봤어요."
"보험 아가씨 소리 자꾸 하다가 언니에게 야단 맞아요"
윈디가 진유라를 보며 웃는다.
"대한민국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한현진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진유라를 보험 아가씨라 부르며 약을
올린다.
윈디나 박혜린이 보험 아가씨라 부르면 항의하는 진유라지만 한현진이
그렇게 부를 때만은 웃음으로 받아넘긴다.
"닥터 한. 그런 소리하면 오늘 밤 유라 언니 서비스 질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예요?"
윈디가 진유라에게 윙크를 하며 말한다.
"난 보험 아가씨에게는 흥미 없어요"
한현진이 진유라에게 시선을 주며 말한다.
"윈디 넘보려면 유도 2단에 태권도가 초단인 지 경감님 무술을 먼저
걱정해야 할걸"
진유라가 샐쭉하며 말한다.
"병원에는 웬일이지요?. 보험 아가씨 몸이라도 아픈 가요"
한현진이 또 한번 진유라에게 시선을 주며 말한다.
"몸이 멀쩡해 미안하군요. 돌팔이 의사 선생님"
진유라가 뺑글거렸다.
"언니가 닥터 한 찾아보자고 해서 왔어요"
윈디가 생글거렸다.
"그 거짓말 참말입니까?"
한현진이 말은 윈디에게 하면서 시선을 진유라 쪽으로 옮겼다.
"정말이예요. 유라 언니가 토요일이니까 닥터 한 찾아 가 보자고 해서
왔어요"
"아!. 이건 감격적인 순간인데요"
"아니예요. 닥터 박이 긴급 호출을 받았어요"
진유라가 싸늘하게 말한다.
"긴급 호출을 받고 미스 윈디 차 타고 온 것 보니 당신의 향기에 진치고
있었군요"
"닥터 한. 타요. 20분 후에 출발예요"
윈디가 차 뒤쪽 시트를 가리키며 말한다.
"왜 하필이면 20분 후지요?"
"닥터 박이 들어가면서 30분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당신의 향기에 먼저 가
있으라고 했어요"
의사인 한현진은 말뜻을 알아듣고 싸바 뒤 자리로 올라 진유라 옆에
앉았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아주 보기 좋아요."
"난 하나도 안 좋은데"
진유라가 능청을 부렸다.
"언니는 그게 병이야. 솔직하지 못한 것!"
"그래서 오늘 그 병 치료 좀 할까 합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예요. 그런 병 치료에는 장소가 중요해요"
"윈디. 네가 의사냐?"
"그건 의사보다 내가 잘 알아"
"보험 아가씨!. 미스 윈디 말 들었지요?"
한현진이 진유라 쪽으로 몸을 약간 실으며 말한다.
진유라가 그런 한현진을 밀치지 않았다.
"닥터 한. 언니가 치료받을 결심한 모양이예요. 10분 후에 어느 호텔로
모시지요?. 그런 병을 호텔에서 치료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예요"
윈디가 장난 끼 어린 소리로 말한다.
"윈디. 너 정말 혼 좀 날래?"
진유라가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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