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벌거숭이 여전사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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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600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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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이 예약해 놓은 만남
1.
김주희가 서현준을 만나 곳은 성남 화장터였다.
"너 왜 그러고 있냐?"
김주희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학생 같아 보이는 젊은 남자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김주희는 그 남자를 멍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만 있었다.
"그 분이 누구시냐?"
두 번째 질문에도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너 말 못하는 애냐?"
남자가 또 물었다. 김주희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말을 할 줄 안다는 뜻이다.
"그 분이 누구시냐?"
대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가 조금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한다.
"할머니!"
김주희의 소리는 겨우 귀에 들릴 정도도 낮았다.
"어른들은 어디 계시냐?"
김주희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른들이 안 계셔?"
김주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가 약간 놀라는 표정으로 김주희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너 혼자냐?"
젊은 남자가 또 물었다.
김주희는 자기가 대답하지 않으면 이 남자가 언제까지 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친척은!?"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럼.......어떻게 할 예정이냐?"
"몰라요"
말을 마친 김주희가 다시 먼 허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남자가 그런
김주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서현준의 눈에 그 소녀의 모습이 들어온 것은 다섯 시간 전이었다.
서현준이 오늘 성남 화장터로 온 것은 교통사고로 죽은 같은 학과 친구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그 친구와는 평소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같은 학과에
다니던 학우가 비명에 가고 오늘 화장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상 장례
절차에 참여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고 잠깐 얼굴이라도 내민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터까지 왔다.
서현준은 영구차에 타지 않고 자기 차를 가지고 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서현준은 주차장 한 쪽 구석에 유골 함을 안고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의 표정은 망연자실 그것이었다.
그때는 무심히 보아 넘겼다.
친구의 화장 절차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돌아온 서현준은 아까 그 소녀가
그 모습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서현준은 한 동안 그 소녀는 지켜보았다.
소녀는 다섯 시간 전 그대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다.
서현준은 소녀의 그런 모습을 보는 순간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곁으로다가 갔다. 그리고 말을 걸어 보았다.
"할머니를 모셔야 할 것 아냐?"
서현준의 말에 소녀는 또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서현준은 자기를 바라보는 소녀의 눈망울 속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슬픈 절망의 빛 같은 것을 보았다.
서현준은 그 눈망울을 보면서 또 다른 하나의 눈망울을 떠올렸다.
4년 전 백혈병으로 숨을 거둔 여동생 명희의 눈망울이다.
명희는 4년 동안 백혈병과 싸우다 열 여섯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명희는 백혈병과 싸우는 그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언제나 밝은 웃음을 보였다.
그러던 명회의 눈망울이 어느 날부터 슬픈 빛을 띠기 시작한다.
명희의 눈망울에 절망의 빛이 서리기 시작한 것은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의사의 마지막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부터였다.
서현준은 두 살 아래인 여동생 명희를 끔찍이도 사랑한다. 명희도 막네
오빠인 서현준을 무척이나 따랐다.
명희의 눈망울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 갔고 하루가 다르게 절망의 빛이
짙어 갔다.
그런 명희의 눈망울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고 그때마다
정원 구석에서 혼자 울었다.
4년 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 명회가 마지마 남김 말은
"오빠. 사랑해!"
였다.
"너 집이 어디냐?"
서현준이 물었다.
"성남요"
"이제 어떡할 거냐?"
소녀는 또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하고 같이 가자!"
서현준은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 놀랐다.
소녀도 놀란 눈으로 서현준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날이 저물어 어떻게 해 볼 수 없잖겠니? 오늘밤에는 집에
모셨다가 내일 좋은 방법을 연구해 보자"
서현준이 소녀의 팔을 가볍게 잡아 일으켰다.
소녀가 따라 일어났다.
서현준은 그때까지도 그 소녀와 소녀가 안고 있는 할머니의 유골 함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해 보지 않고 있었다.
소녀를 혼자 화장터에 두어서는 안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차에 태웠을
뿐이다.
차가 화장터를 출발할 때는 이미 해가 서산 마루를 넘고 있었다.
소녀의 집은 공단 근로자들이 사는 성남에서도 달동네에 속하는 밀집
지역이었다.
서현준은 소녀 뒤를 따라 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반 지하실 양쪽에 낡은 판자 문이 있고 문마다 밖으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서현준은 소녀를 따라 들어선 다음에도 여기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폐품을 넣어 두는 창고 정도로 여겼다.
창고를 지나 어딘가 방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소녀가 자물쇠로 채워진 낡은 나무문을 열었다.
문은 연 소녀가 잠시 서현준을 돌아본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서현준도 소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서현준은 소녀가 들어가는 안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연탄 아궁이 같은 것이 보이고 그 옆에 식기 몇 개를 넣어 놓을 수 있는
합판으로 만든 싸구려 찬장이 놓여 있었다.
살림살이가 있다 해도 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공간이 좁았다.
그때야 서현준은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소녀가 얼기설기 역은 나무 창살에 종이를 바른 방문을 열었다.
서현준이 방안으로 시선을 보냈다.
두 사람이 눕기에는 조금 모자랄 것 같은 좁은 공간이었다.
한 쪽 구석에 사과 궤짝 같은 것에 보자기를 씌워 놓고 그 위에 값 싼
소형 라디오가 올려져 있다.
방 한구석에 비닐로 만든 간이 옷장. 그것이 방안에 있는 전부였다.
서현준은 거기서 자신이 살아온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서현준은 T시 출신이다.
지역에 대형 빌딩이 셋이나 가지고 있고 건설업을 하는 집안의 막내로
대학 2학년이다.
여동생 명희가 죽었다는 것을 빼고는 아직까지 아무런 어려움이나 고통
없이 살아 왔다.
서현준은 지금부터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소녀를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시장기를 느꼈다.
시장기를 느끼면서 자기가 오늘 아침을 먹을 이후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가 저 소녀도 나처럼 배가 고플 텐데
한 생각을 한다.
소녀가 사과 상자 상위에 안고 있던 유골 함을 놓는 모습이 보였다.
"너 배고프지. 나하고 저녁 먹으러 가자!"
서현준의 말에 소녀가 유골 함을 힐긋 바라보았다.
"우선 거기 그냥 두고 나갔다 오자. 돌아 올 때 초도 사 오자!"
소녀가 일어났다.
서현준은 소녀를 차에 태워 성남 번화가에 있는 중국 음식점 방으로 대려
왔다. 몇 가지 요리를 시켰다.
처음에는 먹으려 하지 않던 소녀는 서현준이 권하면서 조금씩 먹기
시작한다.
요리 접시로 향하는 소녀의 젓가락 속도가 조금씩 빨라져 갔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할머니가 죽었다는 슬픔을 잠시 잊을 만치 티없이
순진한 소녀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서현준은 소녀를 찬찬히 보았다.
나이는 열 다섯 아니면 열 여섯 정도로 보였다.
전혀 가꾸지 않은 얼굴이지만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서현준이 본 소녀의 인상은 티없이 야생화였다.
서현준은 갑자기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소녀가 딴 세계에서 온 여자처럼
느껴졌다.
마치 무균질 인간을 대하는 기분이다.
서현준은 자기가 이 소녀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름이 뭐지?"
"주희요. 성은 김이고요"
"이름이 예쁘구나"
김주희가 배시시 웃었다
"고향은?"
"어달리예요"
"어달리 가 어디지?"
"묵호에 있는 작은 갯마을이예요"
"서울 온지 오래됐어?'
"국민학교 5학년 때 왔어요"
"내 이름은 현준이라고 해. 성은 서고"
"아저씨는 뭐하시는 분이세요?"
"학생이야"
"아저씨는 고향이 어디세요?"
"T시."
"큰 도시 라죠?"
"못 가 보았어?"
"고향 갯마을하고 여기 밖에 몰라요"
김주희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한다.
서현준은 김주희의 슬픔을 다시 되살리는 일이긴 하지만 어린 소녀가 혼자
몸으로 할머니 장례를 혼자 치르는 사연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하나 물어 봐도 되겠니?"
김주희가 뭐 건요 하는 눈으로 서현준을 바라보았다.
"친척이 아무도 없니? 왜 할머니 장례를 너 혼자서 치르냐?"
서현준의 물음에 김주희의 눈에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미안하다. 내가 공연한 걸 물었나 보구나"
"아니예요"
김주희의 눈에는 눈물만 돌 뿐 그 눈물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서현준은 그런 김주희를 바라보면서 이 아이는 나이에 비해 의지가
강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김주희는 묵호의 변두리 갯마을인 어달리에서 태어났다.
김주희의 아버지도 어달리에서 태어났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지금이 어달리는 묵호의 횟집
마을로 번창하지만 지난 시절만 해도 가난한 갯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발동기가 부착된 소형 어선으로 연안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묵호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김주희의 아버지도 경운기 동력을 개조해 장착한 소형 어선을 가지고
고기를 잡으며 살아 왔다.
김주희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철이 들었을 때부터 가족은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자기와 셋 뿐이다.
나는 왜 어머니가 없느냐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럴 때 할머니의 대답은 네가 어렸을 때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술을 무척이나 많이 마셨다.
철이 들면서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원인은 어머니에게 있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했지만 남자와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들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소형 어선을 타고 나갔다가 돌풍을 만나 배가 한쪽을 심하게 기울어지면서
물이 빠지는 사고였다.
노련한 바다 사나이가 그 정도로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김주희 아버지는 그때 술에 취해 있었다.
그게 불행이었다.
이웃에서 조업하던 다른 어선이 발견하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졌을 때는
차운 바닷물 쇼크가 원인인 심장마비로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때 김주희가 열 살 되던 해였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소형 어선 한 척 밖에 없었다.
할머니도 자기도 배질을 할 능력이 없었다.
할머니는 배를 팔아 김주희를 대리고 서울로 왔다.
서울로 할머니는 성남 공단에서 잡역부로 일을 한다.
김주희도 국민학교를 졸업한 다음부터 낮에는 공단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공단 부설 중학교에 다녔다.
내년 봄에는 여상고 야간부에 진학할 계획이다.
나이가 들면서 할머니는 공단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성남 모란시장 거리에 함지를 펴놓고 장사를 시작한다.
할머니가 시장 바닥에서 번 돈과 김주희가 공단에서 일해 받은 임금으로
전세방에서 그런 대로 살아갔다.
그러던 할머니가 지난 해 가을부터 앓기 시작한다.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김주희는 할머니를 극진히 돌보았다.
전세를 빼어 벌집 방으로 옮기고 남은 돈으로 할머니 병원 비를 썼다.
그러나 할머니의 병은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어제 밤. 할머니는 손녀의 손을 꼭 잡고 숨을 거두었다.
자기 얘기를 하는 사이에도 김주희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러나 김주희는 울지 않았다.
서현준은 김주희의 얘기를 듣는 사이 세상을 이토록 절박하게 살아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기로서는 상상조차 못해 보던 밑바닥 인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절박한 인생을 절망하지 않고 구김살 없이 살아가는
김주희이라는 소녀에게 연민의 정 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 이 소녀를 도와주자!'
서현준의 그런 생각은 어쩌면 가진 자의 즉흥적인 감상주의적인 기분이
였는지도 모른다.
그 날밤 서현준은 벌 집 골방에서 김주희와 함께 밥을 새웠다.
다음날 일찍 김주희를 차에 태워 고향이라는 묵호 어달리로 가
공동묘지에 자리를 마련해 할머니 유골을 안장했다.
그후 서현준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김주희를 찾아왔다.
1년이 지나면서 서현준이 김주희를 찾아오는 간격이 차츰 좁혀져 갔다.
찾아오는 간격이 좁아지면서 김주희는 주말이면 서현준을 기다리는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1년이 지나면서 주말마다 찾아왔다.
그때부터 김주희도 주말을 기다리는 소녀가 되어 갔다.
그 사이 중학생이던 김주희는 야간여고 학생으로 변해 있었다.
낮이면 공단에서 일을 하는 여공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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