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캠퍼스 애정비사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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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820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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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 11-15화
<제11화> 보영이의 아르바이트 2

소주방에서 바깥으로 나오자,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휭, 하며 머
리에 취기가 오르는 것을 느꼈다. 중간 크기의 양주 한병을
둘이서 나눠 마시고,
거기에 보영이가 들고 나온 맥주마저 서너병을 혼자 마셨으
니 알딸딸 할만도 했
다. 얼굴이 뜨끈하니 붉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주방 건
물 앞에서 나는 보영
이가 채 나오기도 전에 희창이에게 자취방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야, 나 먼저 간다"
"응, 맘대로 해"
희창이 녀석, 지금 나에게 신경을 쓸 처지가 아니었다. 하기
사, 어떡하든 보영이
에게 단단히 길을 터놓아야 하니까. 나는 자취방이 있는 후문
쪽으로 허위허위 발
걸음을 옮겼다.
"야, 창희야!"
십여미터쯤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희창이가 부르는 목소리
가 들렸다.
"왜?"
돌아보자, 희창이의 곁에 보영이가 서있었다.
"이따 니 방에 갈지도 몰라. 문 잠그지 마!"
"알았어, 임마!"
뻔하다. 저 놈도 술을 마셨고, 오늘 밤 중으로 보영이를 여관
방으로 끌고 들어가
지 못한다면 녀석이 갈 곳이라고는 내 자취방밖에 없으니까.
이, 삼십여 미터를 더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 보았다. 흐린
시야에 희창이와 보
영이의 곁으로 검은색 자가용이 멈춰서고 있었다. 보영이가
쪼르르 달려가 차창
안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더니, 자가용은 그들을 내버려 두고
가버렸다. 잠시 후
에 그들 둘이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조오케따 - 술기운 때문일까.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이 내 입
에서 튀어 나왔다.
아무리 닳고 닳은 여자일지라도, 저런 늘씬한 기집애를 끼고
밤거리를 다닌다는
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부러움을 살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었
다. 더군다나... 같
이 잘 수까지 있다면... 아까 의자 아래로 내려다 보이던 보영
이의 허연 허벅지
와 착 달라붙은 하이레그의 청반바지가 떠올랐다. 그 숫제 팬
티랄 수 있는 핫팬
츠를 내 손으로 끌어내려 벗길 수 있다면...
문득 아까의 검은 자가용이 궁금해졌다. 그 차인가? 늦으면
데리러 온다고 하던
것이 - 도대체 무슨 아르바이트인데 밤 9시에, 그것도 차가
데리러 오는 거지?
희창이는 의외로, 내 예상을 깨고 일찍 내 자취방집 대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발
씻고 막 자려고 펴놓은 이불 속으로 녀석이 다짜고짜 쑤시고
들어왔다.
"그래, 실패한 거냐?"
녀석은 옷을 벗으며 피식, 웃었다.
"얌마, 실패할 리가 있냐? 내가 누군데"
"그럼 왜 이렇게 일찍 들어오는 거냐?"
"그냥, 아르바이트 하는 데까지만 바래다 주고 왔다. 킥킥, 그
기집애 대단하던
데"
이런, 또 희창이 놈의 자기 자랑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나는
못이기는 척, 녀석
에게 넌지시 물었다.
"왜? 무슨 아르바이튼데?"
희창이는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오며 다시 한번 키득거렸다.
"으응... 단란주점"
뭐, 단란주점? 나는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있잖아, 아가씨들 나오는 단란주점... 시내쪽 방향으로 가면
그런 거 몇군데 있
잖아"
어쩐지... 그제서야 그녀의 야스러운 복장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걔 말에 따
르면 사촌이모와 같이 있다던데, 그럼 엄연히 이모인데, 허락
이라도 받고 일하는
거란 말인가? 그런 내 표정을 이해했는지, 희창이가 말을 계
속했다.
"아는 언니 따라 여기로 왔다는게, 그 언니가 얼굴마담이라는
단란주점에서 일한
다는 얘기였나봐"
"그럼... 걔네 이모는...?"
"물론 모르지. 그래서 그러더라구. 나중에 소주방에 놀러 와
두 절대 그런 말 하
지 말라구"
그래도 그럴 리가. 그렇게 밤늦게 일나간다는 것을 그 이모가
모른단 말인가? 그
의혹은 나를 돌아보는 희창이의 흐뭇한 표정에서 풀렸다.
"야, 그리고, 진짜 끝내주는 건... 그 기집애 혼자 산대"
"혼자...? 걔네 이모집에서 같이 사는 게 아니구?"
"그래 임마. 갑갑하다고... 이모네집 근처에 셋방 얻어서 나와
산다더라구..."
그렇구나. 그래서 보영이네 이모란 아줌마는 그 기집애가 밤
마다 다니는 것을 모
르는 거구나. 희창이의 얘기에 따르면, 그 여자애가 이모네
집에서는 편의점 아
르바이트로만 알고 있고, 매일같이 데리러 오는 자가용은 편
의점 주인이 데리러
오고, 또 데려다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시내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우리 학교에서
는, 자취생이나 하숙
방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심야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을 구하기가 어렵다
고들 하니까. 나도 학기 초에 몇군데 써빙자리라도 알아보기
위해 돌아다녀본 경
험이 있으니까 알고 있었다. 공강이나 오후 시간대에는 이미
학생들이 꽉 차있었
고, 문 닫을 시간대에는 지망자를 구하기가 힘들기 마련이었
다. 나도 그래서, 몇
군데 자리를 물색하다 아직 1학년인데 편히 놀지도 못하고
밤마다 매여있어야 한
다는 생각에 포기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이모네집 근
처라고 해도, 그 이
모네라는 것이 술집을 경영하고 있으니 자기 조카라 하여도
그닥 신경을 못쓸 것
은 뻔한 것 아닌가.
"흐흐흐... 그러니, 딴 년들처럼 술만 먹으면 차 끊기기 전에
집에 간다고, 재수
없는 소리할 걱정 없잖아"
요컨데 희창이의 얘기는, 그러니 얼마든지 맘놓고 외박할 수
있는 여자다 - 그런
말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화장실에서 내 칫솔을 빌려 이를 닦고 있는
녀석에게 나는 등뒤
로 물었다.
"야, 이짱, 그럼 단란주점에서 일한다는데... 그럼 솔직히 알
것 다아는 기집앤
데, 신경 안쓰이냐?"
희창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돌아 보더니, 치약거품을 튀
기며 말했다.
"짜식, 순진하긴. 뭐 어때 임마. 내가 뭐 데리고 살 거냐?"
내가 들어도 조금 유치한 질문이었다. 이 녀석이 지금 뭐 결
혼할 여자 고르는 것
은 아니지 않은가. 그저 빵빵한 기집애 하나 꼬셔서 따먹겠다
는 얘긴데. 그렇긴
해도, 나는 약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같이 잘 것은 아니
지만, 그래도 그렇
고 그런 여자애라면 - 나는 영 별로였다. 하지만 등교길에서
도 나는 희창이 놈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래서, 그 기집애랑 볼짱 다보면 어쩔 건데?"
"글쎄... 뭐 잘만 꼬셔 놓으면, 이 동네에 현지처 만들어 놓는
의미도 되잖아?"
"크크크... 그럼 짱이 너 편해지겠다, 짜샤"
"편해진다구, 뭐가?"
"푸히히, 그럼 니 자취방에 안가구 그 기집애 집에 가서 자면
되잖아, 내가"
녀석, 야무진 꿈이군. 덩달아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로, 내가 편해질지
도 모르는 노릇이다. 어제처럼 아예 집에 전화를 안해도, 희
창이의 어머님은 으
레 내 방에서 자고오는 걸로 생각하실 정도니까.
학교에 같이 오기는 했어도, 이 날은 희창이와 내가 수업이
같은 과목이 별로 없
어서 하루종일 얼굴을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아
마도, 희창이는 며
칠간 - 보영이를 꼬셔서 같이 자기 전까지는 - 바쁠 것이었
다. 나는 아직 시험기
간까지 몇 주 남았으므로, 집에나 다녀올까 해서 학회실로 향
했다. 그냥 책만 놓
고, 가방만 들고 가면 되니까. 그러나 나는 학회실 문 앞에서
의외의 메모를 발
견하게 되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
다.


<제12화> 순진한 예지의 짝사랑

학회실의 안쪽 문 옆에는,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었는
데, 우리 과 학생들
끼리 서로 메모나, 약속 따위를 적어놓고 공지하는 역할을 하
고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학생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이 화이트보
드를 돌아보기 마련이었고 - 나 역시도 거의 자동적으로 그
쪽을 바라 보았는데,
그 곳 한 귀퉁이에 큼지막하게 내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
다.
- 창희야, 이 메모 보는대로 와줘 -
그 아래에는, 학교 앞의 한 까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누구
지? 희창이인가?
"저, 형, 이거 누가 적어논 거에요?"
앉아있던 선배에게 물어 보았지만, 선배는 알 수 없다는 얼굴
이었다.
"모르겠는데... 좀 아까 전에 있었을 땐 못봤는데...?"
"누구지? 이짱인가?"
하지만 유심히 보니, 희창이의 글씨는 아니었다. 또박또박 쓴
것이... 아마도 여
자 필체 같았다. 학회실에 앉아있는 선배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서 나는 학회
실을 나왔다.
어차피, 자취방 말고 집에 가보려고 한 거니까 - 가는 길에
들려 보지 뭐. 누가
써놓은 것인지 몰라도 어차피 그쪽에서 알아보겠지. 나는 이
런 생각을 하며, 학
생회실에 적혀있던 약속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누굴까? 혹
시... 이건 은근한 기
대지만, 선영이 누나가 아닐까? 그 누나가... 술 마시자던 엊
그제의 약속을 기억
하고 있는 걸까?
야릇한 기대와 상상으로 까페 문을 연 내게는, 그러나 전연
의외의 인물이 기다
리고 있었다.
그것은, 구석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은, 예지였다. 김예
지. 과 동기.
"안녕? 이제 본 거야, 그 메모?"
"으응... 근데... 왠 일이야?"
나는 다소 의외의 인물임에 당황하며 그녀의 맞은 편에 엉거
주춤 앉았다. 예지 -
자그마한 몸매에 귀여운 얼굴의 여자애. 앳된 얼굴은 마치 두
어살 어린 여동생처
럼 보이는 애였다. 하지만, 그다지 나랑 친하지 않은 기집앤
데.
"다행이다. 안오면 호출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써빙하는 사람이 오더니 주문을 받았다. 이미 예지는 차를 시
켜놓고 있었기에,
나는 메뉴판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커피 한잔을 시켰다.
"응, 창희 너 지금 바빠?"
"아니... 별로 그렇진 않은데... 왜? 난 그냥 집에 갈려구..."
"집에 가려고? 벌써? 아, 맞다. 너 하숙하지..."
"아냐, 하숙이 아니고... 그냥 자취방이야"
무슨 일인데 이러는지, 나는 머리속으로 한참 짱구를 굴렸다.
엠티? 아니다, 얘
나 나나 학생회 간부도 아닌데...
"야아! 혼자 살면 좋겠다, 방은 커?"
"에이... 나 혼자 있는 건데 뭐가 커..."
"그래? 방에 뭐뭐 있어?"
"그냥, 책상하고... 컴퓨터하고... 이불..."
"우와, 놀러 가보고 싶다. 나도 따로 나와 있으면 좋겠는데"
얼레, 도대체 뭘 물어 보려고 이러는 거지? 왠 호구조사? 이
런 걸 물으려 만나자
고 부른 것은 아닐텐데, 용건을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 왜 오라고 한 거니?"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순간 예지는 다소 당황한 듯 머뭇
거렸다.
"응, 그, 그냥... 너랑은 별로 얘기도 못해보고 해서..."
나랑 얘기를 하고 싶다고? 그럴 리가 - 하루에도 교양수업
따위는 얼마든지 같은
강의실에서 하니까, 학교 안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잖
아, 혹시 얘가 날 좋
아하나? - 그러나 그럴 리는 없다. 강의실과 학생회실을 빼
고, 별반 같은 과 사
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 내 성격인데, 그런 날 이 여자애
가 좋아할 리는 천만
의 말씀이었다.
그렇게 의아해하는 내 눈치를 알아 차렸는지, 예지는 조심스
럽게 말을 꺼냈다.
"저어기... 사실은... 창희 너한테 물어 볼 게 있어서 그러거
든..."
"나한테? 뭔데?"
하지만 예지는 여전히 뜸을 들이고 있었다. 아마도 쉽게 얘기
를 꺼내기가 어려운
문제인 모양이었다.
"희창아, 저... 너 오늘, 내가 이런 말 물어 봤다는 거... 아무한
테도 말하지 말
아줘"
"무슨 얘긴데? 뭔지 알아야 약속을 하지"
난 점점 더 의문스러워졌다. 무얼 묻기 위해 이 여자애가 이
러는 것일까?
"약속, 먼저 해줘. 알았지? 절대로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되거
든..."
"그래, 알았어. 좋아, 약속!"
답답해서, 일단 그렇게 뭔지도 모르는 약속을 해버렸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예지라는 기집애가 나한테 사랑고백이라도 하려나?
"저어... 너 걔랑 친하지?"
친하다니, 누구랑?
"누구 말이야?"
예지는, 앳된 얼굴만큼이나,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있잖아... 걔. 너랑 맨날 같이 다니는..."
맨날 같이 다니는? 맙소사! 그 녀석? 지금 예지가 이렇게까지
몸을 꼬며 묻는다
는 것은... 이러는 의미는... 설마!
"그래, 희창이... 희창이 말이야..."
그렇지만 이 여자애가 왜 나한테 그 녀석 일을 물으려하는
건가? 다름아닌 나에
게, 그것도 따로 불러내어... 나는 대번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
를 느꼈다. 그런
휘둥그레진 내 눈을 쳐다보고는, 예지는 수줍어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희창이... 어떤 애야? 창희 너랑... 많이 친해?"
속삭이듯 묻는 목소리에, 나는 따라서 갑갑해졌다.
"그, 그래서... 이짱, 아니 희창이 뭘 물어 보려고...?"
왠지 모르게 내가 긴장하고 있었다. 국민학교, 중학교 동창,
이제는 대학 동창,
서로의 부모님까지 다아는 둘도 없는 불알친구, 희창이. 그
놈에게 누가 무엇을
물어도 현재로는 나만큼 알 녀석이 없지만, 그런 내게 뭘 알
아내려 하는 것일까?
에이, 설마... 설마 예지가... 그런 침묵을 깨며, 예지가 소근거
렸다.
"사실 나 희창이... 사귀고 싶거든..."
이런, 제길! 이 엄청나게 순진한 아가씨는 희창이를 짝사랑하
고 있는 것이었다.


<제13화> 나를 짝사랑하는 여자?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만큼, 이 상황은 놀라운 것이
었다. 그게 나랑은
아무런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 귀엽게만
보이는 앳된 예지가
플레이보이 희창이를 좋아한다니 - 희창이 엉덩이의 점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나로서는 정말 쇼킹한 사실이었다.
예지는 내 놀란 표정을 알아챘는지, 아랫입술마저 깨물며 얼
굴이 빨개지고 있었
다. 기실, 이런 고백을 다른 남자애한테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만 그
래도 너무나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침착해지려 애
쓰며 운을 떼었다.
"그래, 녀석... 나랑 국민학교 때부터 친구야. 근데 뭐가 궁금
하니?"
내가 자상한 척 묻자, 그녀는 다소 용기를 얻은 모양이었다.
"지난 봄에... 엠티갔을 때, 걔가 왜 술먹고 오바이트하는 나...
밤새 챙겨 줬거
든..."
아냐, 임마! 희창이가 너한테 관심 있어서 그런게 아냐! 걘
원래 이쁘장한 기집
애들한테는 다 그래준다구 -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
만, 나는 꾹 참아야
만 했다. 등뒤에서 호박씨까는 것도 아니고, 내가 둘도 없는
친구인(여자문제는
맘에 안들지만) 희창이 녀석에게 손해될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학교 안에서도 잘해주고... 술도 같이 마셔주고..."
에그그, 난 이 순진한 예지의 말투에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
다. 그렇다구 넘어가
니, 이 기집애야. 그 녀석이 얼마나 쫓아 다니는 여자가 많은
몸인데...
"근데 말야... 요즘 걔가... 누구 다른 사람 좋아하니?"
아뿔사, 이 여자애 역시 조금은 요란한 희창이의 사생활 소문
을 들은 모양이었
다. 어째야하나, 사실 말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
렇다고 의리도 무시
하고 희창이를 까발릴 수는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마
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래서 혹시... 창희 너한테 물어보면... 알 것 같아서..."
"아, 아냐... 희창이... 좋아하는 애 없어, 걱정하지마"
마음과는 다르게, 내 입에선 거짓말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말에, 예지는 순
간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쳐다 보았다. 하지만 곧, 표정이 금
새 어두워졌다.
"그래도... 희창이 따라다니는 애들 많지 않아? 희창이가 좋아
하는 애는 없어도,
걜 좋아하는 애들은 많지 않어?"
야, 이짱, 너 얼굴 덕 단단히 보는구나. 이렇게 귀여운 예지까
지도 그런 걱정을
하다니. 하지만, 어느 정도 내 말은 사실이었다. 희창이가 좋
아하는 여자는 없지
않은가. 꼬셔서 발가벗겨보려는 보영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제
외하고는. 그래도
그건 엄밀히 따지면 '좋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성싶었
다.
"아냐... 잘은 모르지만, 희창이 좋아하는 여자애들도... 없는
것 같애"
그 말에 대번, 예지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가장 친한 불알
친구가 이런 보증을
서주는데, 안믿을 여자애가 있을까?
"정말, 다행이다! 사실은 다른 여자애들이... 걔 여자친구 많다
고 하는 바람에..
."
어처구니없는 예지의 순진함에 나는 왠지 측은할 정도였다.
저렇게 환한 표정의
예지는, 정말 오밀조밀 깜찍한 인상이었다. 아아... 저 정도로
귀여운 애가 내
여자친구라면. 순간적으로 희창이 녀석이 부러워지면서도, 왠
지 모를 질투심이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예지가 그 놈의 참모습
을 안다면, 그럼 어
떻게 될까. 오직 기집애하면 여관방 침대를 제일 먼저 떠올리
는 녀석이란 것을
안다면?
나는 왠지 씁쓸한 기분이 되어, 남아 있는 식은 커피를 단숨
에 들이켰다. 그다지
할 말도 없고, 그다지 할 기분도 아니어진 내가 엉거주춤 몸
을 일으키려하자, 예
지는 뜻밖에도 나를 다시 불러 앉혔다.
"참, 창희야, 잠깐만!"
?... 왜 그러지? 나한테 더 물어볼 것이 남았나?
"저, 있잖아, 이건 내가 물어보려는 건 아니구... 너한테... 누가
물어봐 달라고
한거거든... 저, 말이야..."
나는 다시금 계면쩍어졌다. 또 뭘... 희창이 뒷조사라도 해달
라는 말이니? 그러
나, 예지의 입에선 전혀 다른 엉뚱한 질문이 나오고 있었다.
"희창이 얘긴 아니구... 창희 너... 선영 선배랑 무슨 사이야?"
으잉? 나는 한번 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영이 누나라니? 그
걸 왜 묻지? 갑자기
나는 희창이 녀석과 누나와의 동침사건이 떠올라, 순식간에
뭔가를 들킨 놈처럼
안절부절 못하게 되어 버렸다. 나는 입술이 바짝, 메마르는
것 같았다.
"서, 선영이 누나랑 나? 가, 갑자기 무슨 얘기야?"
하지만 오히려 내 당황하는 모습이 역효과를 보인 모양이었
다. 도리어 예지가 눈
을 크게 뜨고 뭔가 놀란 표정이었다.
"아, 아니... 누, 누가 물어 보라고 해서... 선영이 언니랑 너
랑..."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누가 선영이 누나와 나의 관계를 오
해라도 하고 있단 말
인가?
"누, 누가 물어 보래? 나, 난 선영이 누나랑 아무 관계 없었
어...!"
아무 관계 없었다? 그럼 희창이는 관계가 있는 건가? 아차차,
나는 말 실수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러나 예지는 배시시 웃으며 뭔가를 알
아차렸다는 표정이
었다.
"응, 아냐... 후훗, 놀라지마. 누가 너한테 관심 있나 보지 뭐"
"관심 있다고? 그럼 너한테 물어봐 달라고 한 사람이 나한테
관심이라도 있다는
말이야?"
나는 점점 황당해지고 있었다. 예지의 말대로라면, 희창이와
예지의 경우와 마찬
가지로, 누군가와 내가 그렇단 말인가? 누구야, 설마 선영이
누나가 물어본 건가
?
"대답해봐! 누구야, 누가 너한테 그 얘기 물어보래?"
이제 그 질문 하나로 예지와 나의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
명 내 발목을 붙잡으며 물어본 것이 예지였지만, 지금은 내가
이 여자애에게 대
답을 갈구하는 꼴이었다.
"안돼. 그건 말하지 않기로 했어. 하지만, 너... 그저께 아침에
학생회실에 선영
이 언니랑 둘만 있지 않았어?"
이럴 수가! 그저께 학회실 탁자 밑으로 내가 그녀의 치마속을
훔쳐보는 광경을,
누가 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 맞다. 선영이 누나가
내 머리속에 혹났나
보려고 껴안고 있을 때! 분명 그 광경을 들킨 것이리라. 내
짐작은 맞아 떨어지
고 있었다. 예지는 아예 귀엽게 눈을 흘기기까지 하고 있었
다.
"희창이 너... 선영 언니랑 포옹하고 있었다며...?"
"아, 아니야, 아니야! 누, 누가 그래? 누가 봤대?"
나는 이마에 식은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하기사, 내가 봐도
그 때 선영 선배와
나의 포즈가 야릇한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녀와 내가 이
런 오해를 받다니...
"아냐, 그 땐 누, 누나가 내 머리에 혹 났나 봐주려고... 내가
머릴 부딪혀서...
"
그러나 일언지하에 예지는 내 말을 끊었다.
"알았어. 걔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 맞어, 이름
은 밝히지 못하지
만... 누가 널 좋아한대. 근데 그날 우연히 그런 걸 봤나봐"
날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다고? 우리과 동기 중에? 그리고 그
아침에 우리가 그런
것을 그 애한테 들켰다구? 나는 너무나 당황스런 상황에 말
문이 막혔다. 예지는
그런 내 얼굴을 보며 눈을 찡긋, 했다.
"그래, 널 믿을께. 대신 너도 오늘 내가 물어본 것 비밀이다.
희창이한테도"
나는 엉겁결에 넋이 나가 동의하는 수 밖에 없었다. 예지는
생글거리며 일어섰
다.
"걱정 마. 좋은 소식이잖아? 자, 이제 나가자. 너 집에 간다
며?"
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어이가 없어 그저 예지의 뒤를 쫓아
까페를 나서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까페 앞에 더 엄청난 오해가 도사리
고 있을 줄이야...!


<제14화> 드디어 선영이 누나와 나는...

예지와 내가, 단 둘이서 까페 문을 막 나서는 찰라에, 한 여
자와 정면으로 계단
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기막힌 우연이
었다. 그 여자는 바
로 - 선영이 누나였던 것이다.
방금 전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몇초
도 지나지 않아 내 눈앞에 서있다니! 놀라서 입이 뜨악 벌어
지려는 나보다 앞
서, 선영이 누나가 먼저 알아차렸다.
"어머, 창희구나! 왠 일로..."
"어머, 언니!"
계산을 하고 나오는 예지도, 선영 선배를 보자 놀란 모양이었
다.
"어머나, 예지도 있네, 안녕?"
"아... 안녕하세요, 언니..."
선영이 누나는 당황하는 우리 둘을 보며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모양이었
다. 반가운 인사를 건네면서도, 왠지 의아한 눈초리로 나와
예지를 번갈아 살펴
보는 것이었다.
"둘이... 있다가 나오는 거야?"
"예, 그, 그냥... 잠깐 얘기 좀 하느라구..."
어색함을 깨기 위해,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지만, 선영
이 누나는 이제야
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치 그 표
정은 알아 알아, 소
문 안낼께, 하는 표정이었다. 이럴 때는 분명, 여자가 용감한
법이었다. 예지가
먼저 나서며 침착하게 물었다.
"여, 여기서 약속 있으세요?"
"응, 으응... 전공 스터디 모임..."
"그, 그럼 저흰 갈께요"
"그래, 안녕, 창희도 내일 보자"
아아... 큰 일이었다. 선영이 누나와 나 사이를 의심하는 예지,
그리고 예지와
나 사이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선영이 누나... 뭔가 이 자리
에서 얘기를 해야만
할 성싶었다. 그러나, 튀어나온 말은 그 날 최대의 실수 중
하일라이트였다!
"저, 누, 누나!"
"응, 왜, 왜 창희야?"
"저, 수, 술 언제 마실까요?"
"술?"
"왜 있잖아요, 그, 그저께 약속한 것...!"
순간, 선영이 누나와 예지, 두 여자의 눈빛이 둘 다 당황하고
있었다. 아차, 난
그냥 예지와 나 사이의 오해를 막으려고 누나에게 말한 것인
데!
선영 선배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방금 해명받
은 예지인데, 그녀
앞에서 다짜고짜 자연스럽게 누나와 술 약속을 하는 내가 그
녀는 황당했던 것이
고 (그렇게 술까지 같이 마시면서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하
는 표정) - 선영이
누나는 누나대로 방금 자기가 보기엔 둘이 사귀는 사이처럼
예지와 내가 데이트
를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예지 앞에서 다른 여자와 만나자고
하다니 (예지 앞에
서 자기랑 술을 마시자고 하다니, 너 그래도 돼? 하는 표정)
당혹스럽기는 마찬
가지였던 것이다.
"그, 그래... 내, 내일 모레... 그, 금요일날 사줄께"
아뿔사,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한거지?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 아니라, 두 여
자, 예지와 선영이 누나의 의혹을 내가 마구 증폭시켜 뒤죽박
죽으로 만든 것이었
다. 그 때 당황한 예지가 내 팔뚝을 붙잡고 억지로 끌어당겨
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빠져 나왔다.
"저, 저희 갈께요, 내일 봐요, 언니!"
의아한 표정의 선영이 누나는 알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하고는 까페 안으로
들어가다,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어머, 내가 술 약속을 하
다니, 그것도 바로
전번 희창이와의 외박 딱 일주일 만에...! 뒤돌아 본 내 시야
에 들어온 그녀의
표정은 분명 그것이었다.
"야, 창희, 너 진짜 저 언니랑 아무 관계 없는 것 맞어?"
밖으로 나오자마자, 예지는 작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나도 역
시 당황스러운지
라, 뭐라 대답해야 할지 판단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아, 아냐... 그, 그전부터 약속이 된 거라구..."
그러나 예지는 채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홱 돌아서더니
가버렸다. 상당히 격
앙된 표정이었다. 젠장, 창희야, 창희야... 넌 지금 뭘하고 있
는 거니...
씩씩거리며 돌아가는 예지를 보며, 나는 한참 동안을 멍하니
서있었다. 진퇴양난
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에 다녀오기로 한 예정을 깨버렸다.
별 수 없는 발걸음
을 다시 자취방으로 돌렸다.
자취방에 돌아온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방 한가운데에 댓
자로 누워 혼란스러
운 머리 속을 정리해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른 것은, 선영이 누나와 술을 마시기로
한 내일 모레의 약
속이었다. 어차피 학교 안에서 만날테지만, 그리고나서 어떻
게해야 한다? - 희창
이의 말대로, 엄청 그녀에게 술을 먹이고 여관방으로 가야하
나? 이 약속을 희창
이가 알면, 틀림없이 술값까지 대가면서라도 부추길 것이 뻔
했다. 하지만, 얼떨
결에 한 약속이라 해도 술을 마시게 된 원인은 그것뿐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
남자선배, 누나의 애인이라는 사람, 그 이야기도 듣고 싶어하
지 않았는가.
그렇다고는 해도, 내 동기가 순수한 것만은 아니었다. 희창이
놈과 그녀의 동침
에 대한 비리를 몰랐다면, 애초에 그녀와 단 둘이 술을 마시
겠다고 결심할 일도
없지 않았을 것 아닌가. 게다가... 솔직히... 그런 예쁜 누나와
자보고 싶지 않
은 놈이 어디 있겠는가. 엊그제, 책상밑으로 보이던 그녀의
치마속 허연 허벅지
사이... 흰색 팬티... 그 팬티는 희창이와 잘 때 벗겨지던 그것
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모레 금요일날, 운이 좋다면 내가 벗기게 되는 그 팬
티일까? 그렇다면
비록 옷 위였을지라도, 내 얼굴에 부벼지던 그녀의 젖가슴,
희창이의 입술에 유
린당했던 그 젖가슴이, 내 손에도 맨살로 쥐어진다면... 아니
내 코앞에 훤히 드
러난다면 -
이런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알 수 없는 흥분에 몸을 뒤
척였다. 아랫도리가
뻐근해져서, 도저히 그대로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일어나 주
전자라도 찾아, 냉
수라도 들이키고 정신을 차려야지, 그 때였다.
삐비빅, 삐비비빅...
호출기 음이 어두운 방안에 울려 퍼졌다. 누구야? 희창이일
까?
어둠 속에서 바지 주머니를 더듬어 호출기를 꺼내본 나는, 낯
선 번호가 찍혀져
있는 것을 알았다. 이 근처 번호는 아니었다. 누구지? 전화하
지 말까? 그래도,
혹시나하는 생각에 나는 불을 켜고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 번호대로 전화를
받는 것은 의외로 여자였다.
"저... 호출하신 분 부탁드립니다."
"응, 나야, 창희야"
"누, 누구..."
"나, 예지, 그새 목소리 까먹었어?"
뜻밖에도 그것은 예지였다.
"어디니? 집?"
"아, 아니... 자취방..."
"그래? 집에 안갔어? 어쩐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렸는데"
날 기다렸다고? 왜? 그런 속마음을 읽은 듯 예지가 선수를
쳤다.
"아까, 미안해. 사과할께. 내가 얘기한... 너 좋아 한다는 애
가... 나랑 제일 친
한 애거든. 과 안에서"
제일 친한 애? 누구지, 얘랑 같이 다니는 기집애들이... ? 나
는 생각해내려 애썼
지만 얼른 떠오르지가 않았다. 하긴 워낙 여자애들과 친한 편
이 아닌 나였으니..
.
"그래서 그랬어... 니가 그 앨 무시할까봐... 훗, 하지만 사실,
내가 끼어들 문
제도 아닌데... 사과할께, 아까 화낸 것"
"괘, 괜찮아... 정말... 선영 선배랑 난 아무 관계 없어... 적어도
아직까지는..
."
아직까지는? 이 말이 우스웠지만 예지는 신경쓰지 못했다.
"알았어, 그렇게 얘기해 줄께. 참, 그리고... 아까 그 얘기들,
우리 둘만 아는
거야, 알았지?"
결국, 예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짐을 하고나서야 전화를 끊
었다.


<제15화> 까진 보영이, 순진한 예지

다음날 아침, 당연히 나는 늦잠을 자는 통에 지각을 하고 말
았다. 선영이 누나,
예지, 날 좋아 한다는 여학생... 이런 것들로 머리가 혼란스러
운 통에 잠을 영
못이루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간신히 눈을 붙였기 때문이
다. 다소 피곤한 눈으
로 교문을 들어서는데, 은색 스포츠카가 내 뒤를 쫓아 오며
빵빵, 클랙션을 울려
댔다.
희창이의 차였다. 차창이 스르르 내려가더니 희창이의 얼굴이
불쑥 나왔다.
"얌마, 짱이야! 또 지각이냐?"
"그래, 임마, 그런 너는?"
킥킥, 녀석이 키득거리더니 조수석 쪽으로 내 옆에 차를 댔
다.
"타라! 어차피 오후까지 또 수업 땡친 거잖아"
후우... 한숨을 내쉬며 나는 차에 올랐다.
"얼레... 근데 창희 너 표정이 왜그러냐?"
"몰라도 돼... 그냥, 그럴 일이 좀 있어..."
"그으래? 그럼 안되지, 이 이짱의 제일가는 친구가...!"
갑자기 차가 부우웅, U턴을 했다. 그러더니 도로 교문 밖으로
속력을 내기 시작
했다.
"얌마, 어디로 가는 거야?"
"왜, 괜찮잖아, 어차피 오늘도 다 오후 수업인데... 니 똥씹은
표정을 보니, 드
라이브 좀 시켜주려고 그런다, 왜?"
우리 학교가 좋은 점은, 바로 그거였다. 서울의 변두리 경기
도여서 차만 가지고
있다면 한적한 국도나, 한강변으로 빠지기에 딱 좋은 위치였
던 것이다.
희창이 녀석은, 어느새 국도변으로 빠져나와 차의 속도를 높
이고 있었다. 휘파람
을 불다가, 나중에는 테이프를 틀고는 시끄런 댄스뮤직을 차
안에 쿵쾅거리고 있
었다.
"야, 너 어디로 가는 거야, 임마?"
"나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 그냥 이 길따라 쭉 가다가 적당
한 데에서 차 돌리고
오면 돼지, 뭐"
태평자약한 녀석의 말에 나도 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왓다.
그래 어차피, 당구장
이나 오락실에서 시간 때우는 것보다 이게 나을 수도 있으니
까.
"야, 짱이야, 저기 좀 봐. 멋있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창밖 경치를 감상하는 내게, 녀석이 어
깨를 툭치며 가리키
는 곳이 있었다. 그것은, 요즘 한창 유행이라는 국도변의 호
화 러브호텔이었다.
"야, 저런 데 죽인다, 너. 사면 천장이 유리인 데도 있고, 물
침대에... 캬, 저런
데서 보영이 같은 년 눕혀놓고..."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보영이 일을 물었다.
"그래, 성공했냐? 같이 잤니?"
"아냐, 아직. 좀더 공을 들이기로 했다. 임마, 내가 현지처 만
들 거라고 했잖아.
언젠가는 그 자리에 보영이 태우고 쫘악 드라이브 가다가 저
런 러브호텔에 방 잡
아놓고..."
"그래서... 어젠 만났어?"
"거어럼... 어젠 수업 끝나고, 하루종일 걔네 가게에서 놀았다"
"어디... 단란주점?"
"미쳤냐? 거기 가면, 나도 돈내고 보영이 데리고 자야하는
데...?"
"그럼 뭐야, 기둥서방이라도 될꺼냐?"
"에이, 안되지... 그러다 발목 잡히라구?"
"그때 보니까... 차가 오던데..."
"뻔하지 뭐 소개소 차지. 있잖아, 데려다 주고, 데려 오고"
"야, 하지만 보영이도 그렇다면 돈 받고 외박 나가는 거 아
냐?"
"푸하하, 모르지. 하지만 그건 아냐. 걔네 이모가 밤엔 몰라도
아침엔 꼭 집에
있는지 확인한다더라. 밥 같은 건, 이모네에서 얻어먹는 대.
그리고, 그 마담인
가 하는 언니가, 자기 보고 쫓아온 애라고 많이 뒤봐주는 모
양이던데?"
희창이는 운전을 하면서도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녀석의 말
을 듣고 있자니, 왠
지 신물이 났다. 이 녀석은 이런데... 지금의 내 꼴이라니. 왠
지 부아가 치밀어,
나는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이짱, 나... 내일 박선영 그 사람이랑 술 마시기로 했다"
끼이익...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리며, 차가 갓길에 멈추었다.
급제동에 놀란 내
가 돌아보자, 희창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삐질삐질 웃음을
흘렸다.
"야, 창희 너... 드디어 결심했구나, 야아... 짱이야!"
호들갑을 떠는 녀석이 보기 싫어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잘 생각했다. 샌님같던 범생이 니가, 드디어 거시기를
오랜만에 쓰겠구만
!"
녀석은 마치 내가 무슨 대단한 결정이라도 내린 듯, 어깨마저
흔들어 주고 있었
다.
"좋아 좋아, 원래 그런 여자는, 다 쑤셔줘야 재미 보는거야.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구. 누가 아냐? 덕분에 맘잡고 그 선밴가 뭔가 잊을
지... 그래, 내가
도와주랴? 지원사격? 술값? 말만 해라"
이럴 줄로 예상했었다. 속칭 구멍동서 - 라는 말도 있지만,
녀석은 마치 자기 덕
분에 그녀를 만난 것처럼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당장 그
말을 꺼낸 것을 후
회했다. 원래는... 예지 이야기를 귀뜸이라도 하려던 것인데,
나는 그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큭큭, 그래서 니가 아침부터 고민스런 표정이었구만"
"야, 이짱, 아직 내가 그 여자랑 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그
리고 난, 내일 선영
이 누나 술 안먹일 수도 있어"
순식간에 녀석의 표정이 실망스럽게 변했다.
"뭐야, 너? 그런 누나는 성에 안찬다는 거냐?"
"후우... 그런 건 아냐. 내 말은... 너도 보영이한테 공을 들이
듯, 나라고 무조
건 그 누나 술먹이고 나서 데리고 잘... 그럴 수는 없다는 얘
기야. 그리고... 선
영 선배가 알아서 술을 안먹을 수도 있잖아"
희창이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래서 임마, 너 솔직하게 얘기해 봐. 니 앞에서 널 유혹해
도, 자기가 먼저 옷
벗고 설쳐도, 넌 그 누나처럼 괜찮은 여자랑 안잘꺼란 말이
야?"
"그, 그건 아니야..."
"야, 너 고자냐? 내가 알기론 아닌데?"
"알아, 나도 만약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야, 새꺄. 내가 얘기했지? 그 선영이라는 누나, 자기가 술만
먹으면 성욕을 주
체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고"
"그래 그래, 나도 알아. 그런 식으로 여러 명이랑 잤다는 거"
"그럼 뭐가 문제야? 그 여자가 너랑 술을 마신다는 건, 곧 너
랑 자줄 수도 있다
는 거 아냐?"
할 말이 없어져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녀석이 차를 다시 출
발시켰다.
"알겠어, 짱이, 너... 좋아, 그 누나, 너하고 술 마시도록 해주
지"
뭘 어쩔 셈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어차피 녀석이
끼어드는 것만큼
은 피하고 싶었다.
학교로 돌아온 희창이와 나는 나머지 오후수업을 빈둥거리며
보냈다. 나는 내일
선영이 누나와의 약속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고, 희창이는
녀석대로 보영이를
만나러 간다며 희희낙낙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후 수업을 마치자, 희창이는 눈을 찡끗 하고는 서둘
러 강의실을 빠져
나갔다. 하지만 나는, 별반 다른 일도 없었고 또 누군가와 마
주치는 것이 싫어서
서둘러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일단은 설친 어제 밤잠을 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초저녁부터 잠이 든 내방에,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
다. 나는 잠결에 더
듬더듬,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아... 여, 여보세요"
"창희니...? 나야..."
누구지? 여자 목소리였다.
"흑... 나 예지야. 이리로 좀 와줄 수 있어...?"
순간 나는 잠이 일거에 확 깨는 것을 느꼈다. 틀림없는 그 애
의 목소리였다. 그
리고 이건 분명히... 울고 있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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