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모스코바 정사 (6)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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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659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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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정사』 제14화(완결) 이별, 그리고...

이튿날 아침 나는 호텔 로비에서 나오코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여행가방
을 끌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일행들과 함
께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음 일행들이 환전창구에서 환전을 하고 있는 동안
로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오코!"

내가 먼저 나오코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나오코가 나에게 다가오면서
말을 했다.

"오늘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나오코의 인사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오코. 당신은 모스크바 여행을 마친 후에 동유럽으로 갈 예정이지 않
았나?"

"갑자기 그렇게 되었어."

나는 그녀의 갑작스런 심경변화에 놀랐다. 그리고 궁금했다. 어젯저녁까지
만 해도 그녀는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에 젖어있었는데.

"나오코 당신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군. 나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인
가?"

나의 놀람과 걱정의 표시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일본에 전화했더니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말씀을 들었어. 원
래 병환이 있으셨는데 증세가 많이 심해지신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그녀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특별한 일이 없으셔야 할텐데.... 완쾌를 빌겠다."

나오코는 우울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고 보면 나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당분간 별일이 없다면 아버지를 간호해드리며 가까이서 생활하려고
한다. 기회가 있으면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겠다. 당신과 함께 한 짧은 시간
들을 기억하겠다."

나오코는 여행가방을 뒤져 러시아의 전통 민속상품인 목각인형과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목각으로 된 장식 목걸이를 벗어 나의 목에 건네주었다. 나
오코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왔다.


나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녀와 생
각보다 빨리 헤어져야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또한 못내 서운했다. 나
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반쯤 감은 채 나에게 고
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나와의 이별이 아쉬운 듯했다.

나는 가만히 그녀를 껴안으며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그런 다음
나는 그녀의 여행가방을 들어 그녀가 공항으로 나가는 택시를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오코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날 하루를 나는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이국 땅에서 만난 이국 여성
이었지만 그녀에 대한 기억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오후 관광 일정을 끝내고 미세스 박이 일행들을 관광상품 가게로 안
내하였다. 나는 일행들이 관광상품 가게에 들어가 쇼핑을 하고 있는 2시간
동안 인투리스트의 관광버스에 내리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나
는 뒷자리의 신 여사가 역시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왜 선물을 사지 않으세요?"

내가 의외라는 듯 묻자 그녀는 호텔의 관광품 코너에서 살 만한 선물은
왠만큼 샀기에 더 이상 사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서 나의 옆자리로 건너왔
다. 신 여사는 나에게 모스크바에 대한 자신의 느낌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함께 온 일행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강숙희와
진순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신 여사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그들에 대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래 여자들이란 타인의 비밀에 관심이 많고, 은근
히 그것이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일수록 쉬쉬, 하며 까발리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신 여사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강숙희와 진순희
두 사람은 서로 경쟁적인 사이였다. 이혼한 경력이 있는 강숙희는 원래 진
순희의 남자를 유혹하여 자신의 남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성욕이 강했던
강숙희는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여 결국 이혼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진순희가 자신의 남자를 강숙희에게 빼앗긴 것은 진숙희의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연애시절 진순희는 자신의 남자가 키스나 애무를 하려고 하면
요즘 개방적인 젊은이들 답지 않게 아직 결혼전이라는 이유로 남자를 강하
게 거부하였다.

그러나 남자가 만날 때마다 자신의 육체를 소유하고 싶어 하자 진순희는
이 문제를 직업적인 일로 알게되어 허물없이 친구처럼 지내고 있던 강숙희
에게 털어놓으면서 고민을 하였다.

강숙희는 원래 그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던 차에 남자가 육체적인 관
계에 목말라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유혹하였다. 이미 숱한 남자를 편력한
경험이 있는 강숙희는 유혹하자마자 단번에 그를 사로잡아 버렸다. 그리고
두사람의 관계가 몇찰계 더 지속되었다. 그 뒤 강숙희의 성적 매력과 유혹
에 넘어간 그 남자는 결국 진순희와 헤어지고 강숙희와 결혼을 하게 되었
다.

강숙희가 그 남자를 유혹한 것은 그 남자의 배경 때문이었다. 그 남자는
일찍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몇동의 빌딩을 소유한 부동산 재벌이었다. 그 남
자는 특별한 직업이 없어도 평생 먹고사는 문제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던 것
이다.

그의 재산에 욕심을 부리고 그를 유혹하여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강숙희
는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강숙희의 육체
는 한 남자로만 만족할 수 없었다. 강숙희가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우기 시작
하였다. 그것도 두명의 남자와 한꺼번에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고, 결국은 이
를 알게 된 남편이 그녀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게 되었다.


그것으로 강숙희의 결혼 생활은 막을 내렸다. 남편 역시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강숙희는 남편의 약점을 들먹이며 이혼해주는
조건으로 적지않은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었다. 강숙희는 그 돈으로 명동에
고급의상실을 차린 것이다.

신 여사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올드 미스 진순희가 나에게 접
근한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숙희와 연적 관계였었다는 그녀의 말
을 떠올린 것이다. 자신의 남자를 빼앗아간 강숙희에게 보복이라도 하려는
심정이었을까. 그녀가 강숙희와 나의 관계를 알고 나에게 적극적으로 나온
것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코와의 짧은 인연으로 아쉬워하고 있던 나는 신 여사의 이야기를 들
은 후부터 강숙희나 진순희와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더 이상 두
사람 사이의 덧없는 사랑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나는 그즈음 여행사 가이드로서의 내 직업에도 회의를 느끼고 있었
다. 나는 남은 일정을 모두 무사히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나는 퇴직금이 나오면 일본으로 건너가 나오코를 만나볼 생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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