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펀글]백수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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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834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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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백수일기

2월 20일대학 졸업식날
부푼꿈을 안고 힘찬 포부와 함께 나는 드디어 백수가 되었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나를 위해 아임에프를 안겨 주었고 그로인해 동료들도 많이 생겼다.
취직하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시간을 죽이는 마음으로 모든 백수들을 사랑해야겠다.

3월1일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나? 12시간을 잤더니 허리가 아프다. 매일 연습해서 12시간 이상자도 허리가 안 아프게 해야겠다.
오늘 밤은 잠이 안온다. 올리가 없다. 12시간을 잤는데 낮잠도 2시간을 잤다. 나같은 인재를 잠으로 때우게 하는 것은 낭비지만 할만한게 없다.
삼일절이라 맘먹고 태극기를 들고 동네 한바퀴를 뛰었다. 동네 아줌마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 봤지만 그래도 집에 오니 잠이 왔다.

3월 20일
백수가 된지 한달이 되었다. 다음달부터 용돈을 안준다는 집안 권력자들의 공고를 받고 단식 투쟁을 할려고 했지만 굶어 죽을거 같아 일단 보류했다.
이제 나의 돈나올길은 어쩌다 몸으로 때울수 있는 알바이트(동네 만화방 봐주기, 동네아줌마들과 구슬꿰기, 비디오가게 악질 연체대여자 방문수거등)과 며칠전부터 시작한 동네 꼬마들과의 짤짤이 수입, 그리고 큰누나 밤에 태우고 오기, 작은 딸 협박하기등 뿐이다. 할 일이 많아 보이지만 수입이 시원찮은 것들이다.
이 막막한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까?
최대한 많이 자고 최대한 적게 먹자라는 구호를 걸고 나도 진정한 백수의 길을 걸어야 겠다.

4월1일

아침 일찍 단 한벌뿐인 양복을 입고 아침식탁에 앉았다. 아부지 엄마 누다둘다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날 봤다. 물론 식탁엔 내 밥그릇이 없었다.
큰 소리로 '밥줘"라고 외쳤다. 너무 당찬 모습에 약간 주눅이 든 엄마가 밥을 내주셨다.
내가 밥먹는동안 숨을 죽이고 나만 쳐다보던 가족들은 내가 밥숟갈을 놓고 한마디하자 모두들 환희에 들뜬 표정이었다.
" 나 취직했어..!"
한 한달동안 나한테 친한척 안하던 가족들이 취직했다는 한마디에 내가 이집새끼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태도가 바뀌었다...
오늘 면접본다고 하니까 엄마가 거금 5만원을 주셨고 우리집 작은딸은 자기 후배도 소개시켜 준댄다.
하여간 우리가족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집을 나왔다.

오늘 5만원으로 잘 놀았다. 자치하는 백수친구 불러다 영화도 보았다. (이새끼가 좋아서 같이 본게 아니고 그시간에 불러낼 친구는 이놈밖에 없어서였다.)
낮술도 조금 마셨다. '사는게 별거여!'
그리고 집에 편지 한장 딸랑 남겨 놓고 이친구 방에서 며칠 신세지기로 했다.
부모님 전상서
오늘이 만우절인거 아시죠?
설마 우리집 귀야븐 독자가 거짓말 좀 했기로서니 잡아 족치거나 호적에서 제명한다느니 하는 그런 우매한 짓은 안하리라 믿고... 오늘 받은 돈은 내 밥값에서 제하세요..
그럼 불초소생 다음에 뵙겠습니다.
한 사흘은 집에 못들어갈것 같다.

4월 5일
오늘은 14시간이나 잤다. 허리가 하나도 안아프다. 단지 가출했다가 뒤처리하면서 생긴 머리의 상처만 아플뿐이었다. 우리 아버지 재떨이 던지는 기술은 점점 늘어만 가신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밥나올곳은 이곳 아버지가 사시는 집뿐이다. 꿋꿋이 버틸수 있다. 나도 슬슬 프로가 되어가나보다.
오늘은 식목일이다. 어제 동네 꼬마들과 짤짤이 해서 딴돈 3000원으로 자그마한 화분을 하나 샀다. 잘길러야지
이름은 천수를 다하라고 백수라고 지어주었다.

4월 13일
동네 아줌마가 찾아왔다. 오늘 낮에 짤짤이 해서 2000원이나 잃은 어떤 꼬마의 엄마였다.
울 엄마의 눈초리가 심상찮다. 엄마가 빗자루를 찾기 전에 집에서 도망을 나왔다. 오늘은 아마도 외박을 해야 될까 싶다. 호떡하나를 사들고 자취를 하는 백수친구 집에 갔다. 무척이나 반가워 했다. 호떡을...
유통기한이 지난 컵라면 빈통이 있는걸로 봐서 오랫동안 굶었나부다.
방에는 밤꽃냄새나는 화장지가 늘려 있었다.
인간이 산다고 볼수없는 그녀석 방에서 하룻밤을 잤다. 10시간밖에 못잤는데도 허리가 아프다. 낮12시에 일어나 그 방을 나왔다. 꼭두새벽에 어딜가냐며 그녀석이 붙잡았는데도 인간이기를 아직 포기 못한 나는 나올수 밖에 없었다.

5월5일
어제 저녁부터 설레이던 어린이날이다. 오늘은 하루종일 할일이 생겨 좋았다.
만화영화다 해서 텔레비젼에서 재밌는걸 많이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 8시에 일어났다. 아부지 어머니 눈치를 살피며 아침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무사히 밥도 먹었다.
감격에 눈물이 다나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티비앞에 앉아 티비를 보는데 뒤에서 뭔가 날아와 내 뒤통수를 강타했다. 정신을 잃었다. 한참만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그 천수를 다하라던 백수가 산산조각이 나 내 머리맡에 퍼져 있었고 어린이날도 다 지나가 있었다. 주인잘못만나 단명한 백수를 애도하며 내가 성공하면 꼭 백수의 날을 만드리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올리 없다. 오늘은 엄마 몸빼훔쳐 입고 동네 한바퀴 뛰고 와야 겠따.

5월8일
어버이날이다. 어버이날때 내가 효도하는 방법은 눈에서 사라져 주는 것이다.
어제 누나 편지심부름해서 얻은 오백원을 가지고 오락실로 갔다. 더이상 동네에서 적수가 사라진 버추어 파이터 앞으로 갔다. 한 꼬마가 슬 자리를 비켜준다. 내가 나타나기전까지 이동네 짱을 먹었던 녀석이었다. 하하. 날 모르는 중학생들땜에 한 두시간 잘 놀았다.
300원이 남았다. 동네 초딩들을 꼬셔 동네 놀이터 철봉밑에서 짤짤이를 했다.
당연히 땄다. 3000원가까이 땄다. 확 하우스나 차려 이길로 나갈까. 이런 자부심에 흐뭇해 할때 그때 그 아줌마가 대걸레를 들고 달려왔다. 도망갔다. 근데 엄마 딸딸이 신고 나온게 화근이었다. 점점 거리는 좁혀지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에 딸딸이를 내팽게치고 도망쳤다.
다른 백수 였으면 잡혔을것이나(진짜 내친구 대부분 백수임 중에는 백메타를 완주 못하는 놈이 많다.) 밤마다 틈틈히 동네한바퀴씩 돈 덕분에 잡히지 않을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도 친구집에 가야할 것같다. 집에 몰래 들어가 신발을 신고 계란빵하나를
사들고 그녀석 집으로 갔다. 오늘 톡톡히 효도하는구나..

5월 22일
자치하는 백수놈한테 갔다.
방에 들어서자 마자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방에 실들이 날아 다니고 있었다. 신기했다.
자세히 봤더니 파리 뒷다리에다 실을 메달아 놓은 것이었다. 이놈 신기하네,,
어떻게 파리를 산채로 잡을 수 있었을까..
별루 신기하지 않은걸 조금 있어보니 알수 있었다. 워낙 파리가 많아서 확률상으로 손으로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왜 실을 메달았나 했더니 체력은 국력이래나..
가장 오래까지 버티는 놈만 살려 준대나 어쩐다나..
하여간 요즘 와서 부쩍 이놈이 지구인이 아닐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5월 25일
병원에 약사로 있는 여자친구가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엄마가 미소를 띠우며 돈 2만원이란 거금을 쥐어 주었다. 그러나 난 엄마의 속셈을 잘알지. 날 그녀에게 떠 넘길려구 하는 속셈인 줄을.. 그렇게 생각하니 내 몸값이 2만원 밖에 되지를 않나..하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백수가 된뒤로 이몸이 공사다망하여 걔를 많이 못만나 주었다는데 죄책감을 느꼈다. 사실은 시간은 많았는데 돈이 없었다.
그래도 아직 나를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오늘 이 이만원을 다쓰리라..
..
..
오늘 엽서같은거 하나를 이만원이나 주고 샀다.
나쁜지지배..줄려면 빨리나 주지.. 밥사주고 커피사주고 그거 다 바다 쳐먹을때까지 안말 않던 그녀가 집에 갈때 던져준 그 엽서같은거 .. 청첩장..!
솔직히 그녀가 시집을 간다는건 별루 슬퍼지 않다 이거야.. 그치만 내몸값 2만원 ..
아까바서 배가 아파 잠이 안왔다.
또 동네 한바퀴 돌고 와야지. 새로산 울 엄마 245밀리 딸딸이 신고 ...

5월 31일
그때 내 돈 2만원이나 사기친 그 지지배 결혼하는 날이다.
양복을 입고 아침에 우리집 작은딸 협박해서 돈 2만원 갈취해 가지고 빠삐용이 감옥 탈출하 듯 집을 나왔다.
만우절 그 이후로 양복 입고 울 아부지한테 걸리면 최소 플라스틱재떨이2개요. 최대 장식용 쇠재떨이까지 날라올것이기에 양복입고 나오는건 예삿일이 아니다.
울 작은 누나 협박하는건 문제도 아니다. 작은 누나는 초딩선생님이다. 내가 울동네에서 짤짤이 하는 꼬마들중에는 울 작은 누나네 학교 애들도 있다. 내가 그학교 가서 나는 이학교 이현* 선생님의 둘도 없는 친동생이다라고 소문낼거다라는 소리만 하면 우리집 작은 딸은 두말없이 돈을 준다. 너무 큰 액수를 요구하면 모라토리움을 선언할까봐 한 일주일에 만원에서 2만원정도로 써먹고 있다.
하여간 백수 그놈도 데리고 갔다. 물론 부조금은 없었다.
졸라 쪽팔렸다. 이녀석이 추리닝을 입고 올줄이야. 아무리 외출복이 추리닝하나라고...
그래서 식장은 나혼자만 들어갔다.
화장한 그녀를 보니 좀 예뻐보이기도 한다. 남자는 졸라 재수 없어 보였다. 꼬시게 잘됐다.
거기있는 내또래는 다 재수 없어 보였다.
하여간 그녀가 입장하기도 전에 밥먹으러 갔다. 난 순전히 그 이만원 본전을 뽑아야 되기 때문에 온 것이기에 바로 밥먹는데로 갔다.
그 추리닝새끼가 뭐라 그런다. "밥 아직 안해."
그래서 밥될때까지 식장앞에서 담배물고 사람구경만 했다.
"저새끼 백수 갔냐? "
" 저새끼는 확실히 백술거야..응"
뭐 눈에는 뭐만 보였나 부다.
하여간 밥때가 되어 밥을 먹으러 갔다. 식장의 사람 수 세배는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우리와 같은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많나부다.
내가 들어갈려니까 이름을 말하랜다. 이런데도 검사를 하나? 근데 저 새끼는 검사를 안한다. 내가 봐도 여기 뭐 배달하러 온 사람밖에로는 보이지 않았다. 나두 다음에는 츄리닝 입고 와야겠다. '
모모야 결혼식 한만 더해라.'
그나저나 저새끼가 내 결혼할때도 츄리닝차림으로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순간 등꼴이 오싹해졌다. 돈 벌면 저자식 바지 하나 사줘야 겠다.
하여간 오늘 뽀자게 먹었다. 한 이틀은 밥 안먹어도 되겠다.
오늘은 잠을 자기위해서가 아니라 배를 꺼주기위해서 동네 한바퀴 돌아야 겠다.

6월 4일
어젯밤에 동네를 안돈 덕에 새벽에서야 잠이 든 나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거기서 거기지만 낮 열두시를 넘긴다는건 아무래도 건강에 좋을것 같지 않다. 다음부터는 꼭 12시는 넘기지 말아야 겠다. 하여간 일어나 보니 아무도 없었다. 내 방에 딸랑 쪽지만 남겨두고 엄마는 어딜 가셨나부다. 퇴직한 이후로(울엄마도 초딩샘이었다) 어딜 쏘다니시는지 집에 잘 안계신다. 제발 주부 도박단에는 끼시지 말아야 할텐데...
쪽지에는 살벌함이 느껴졌다.
. '엄마 절에 갔다올테니까 집 잘지켜! 숟가락 하나라도 도둑맞으면 뒤지게 맞고 밥도 없을 줄 알어.'
'절에 가셨구나. 다행이다. 치 밥이나 주고 그러면... 그래도 나 백수 면하게 빌러 가셨을텐데... 이해하지 뭐.'
물론 밥을 차려 놓았을리 없었다. 요즘들어 내 요리솜씨가 부쩍 는거 같다. 장가가면 색시한테 사랑받을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침에 식구들이 먹다 남은 걸루 비빔밥이다 복음밥이다 만들기만 하면 예술이다.
오늘도 우리 작은딸은 다이어트한다고 밥을 많이 남겼다. 이럴때는 우리작은딸이 이뻐보인다. 하여간 이거저것 넣어 밥을 복았다. 계란도 하나 풀었다.
무심결에 냉동실을 열어보니 이게 왠걸 쇠고기 갈아놓은게 있다. 이것도 넣어 말어..?
뒷일이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일은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신념에 따라 조금만 넣었다.
진짜 조금만 넣었다. 고기를 싸았던 비닐봉지는 남겼으니까.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을수가.. 다음에 취직안되면 백수많은 동네에다 IMF 복음밥집이나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오늘 오만찬은 오랜만에 단백질을 많이 섭취할수 있었다.
물론 뒷일이 있었다.
저녁 울 작은 누나가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뭘 찾는다.
"여기 갈아놓은 고기 어디갔어? "
'당연히 내 뱃속에 있쥐. 저거 다이어트 한다더니 순전히 뻥이구먼. 밤마다 저거 복아 먹은거 아녀?'
물론 시선은 나에게로 올게 뻔하다. 이럴때는 빨리 자수하는게 낫다.
"그래 내가 먹었다."
" 아이 몰라 엄마. 도끼가 요즘 밥을 안먹어 밥에다 섞어 줄려고 사놓은 고기를 엄마 백수 아들이 다먹었어."
비참해따.. 도끼는 우리집 개새끼 이름이다. 진짜 내가 개새끼만도 못하단 말인가...
앞에 이쁘다고 한말 취소다. 오늘부터 하늘에 빌거다. 우리집 작은 딸 30살안에는 시집가게 하지 마옵소서.
노처녀로 팍팍 늙게하옵소서.라고
눈물을 훔치며 딸딸이를 신었다. 저 개새끼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 보고 꼬리를 흔든다. 복날만 되라.
서러븐 마음으로 하늘 보고 동네 한바퀴 돌았다. 퇴교하던 여고생이 날 보더니 도망을 갔다.
내일 우리 작은딸 다니는 학교벽에다 . [이현* 샘 동생은 백수다]라고 크게 써놓아야 겠다.
졸라 쪽팔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풀렸다.

6월 10일
점점 날씨가 더워 온다. 아 잠자는데도 지쳤다. 상반기 공채인원 0
학교 교수만나 특채원서 온거있나 확인하니...
"자넨가? 뭐 내 잠시 알아봐 주겠네."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전화를 걸었다.
"안교수야? 나 노교순데... 혹시 일자리 원서 들온거 있나?"
뭔가 될 듯 싶었으나 교수님 왈 "없다는데!"
그래도 작년에 졸업앨범찍을려고 산 양복을 입고 외출을 하니 마음은 상쾌했다.
근데 버릇이 되어 깜박 딸딸이를 신고 나와 버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꾸 쳐다 본다. 좀 쪽팔렸다. 하지만 오랜만의 외출은 즐거웠다.

6월 11일
오늘 왠일로 울 아버지가 차를 안가지고 나가셨다. 차열쇠 복사한걸로 드라이버를 했다.
물론 이일이 들키면 며칠정도 집에 못들어 오겠지만...
무사히 동네 몇바퀴를 돌고 차를 차고에 넣었다. 치지직.. 뭔가 섬찟한 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고 백미러도 봤지만 분명히 벽하고 차하고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또 후진을 했다. 취지직!
'이상하네 분명히 긁힌데는 없는데...' 차를 완전히 차고에 넣고 엔진을 껐다.
[끼이잉...!]
내려서 확인해보니 안테나가 기억자로 꺽여 있었다. 오랜만에 차를 몰아서 그런지 레디오를 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까 그소리는 안테나와 차고 천정과의 키스소리였던것이었다.
안테나하나에 4만원이고 내가 하루에 만원씩 축낸다 치고(방값하고 밥값을 계산하니 그렇게 나왔다.) 재떨이 두번정도는 맞을 각오는 되있으니까. 한 이틀 집에 못들어 갈것 같다.
[차안 재떨이에 아버지 죽을각오는 되 있사오나... 죄송합니다.] 라는 쪽지를 부쳐두고.
바로 그백수 녀석 집으로 갔다. 근데 신창원이 잡으러 간다는 말만 주인한테 남겨두고 녀석이 방을 자물쇠로 꼬옥 잠구어 놓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거 제정신이여?
나는 어쩌라고... 흑흑.
밤에 몰래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내방에 있으면 아마 들킬테니까. 작은딸 방에 불도 못켜고 숨어 있었다.
오늘따라 작은딸이 밤11시 가까이 되도록 오지 않아서 오늘은 무사할 것 같다.
'띵동!' 순간 긴장감이 돌았다. 큰누나는 바빠서 병원에서 못올게 뻔하고 분명히 둘째딸일텐데...
"다녀왔습니다." 분명히 걔목소리다. 얘가 들어와서 안말 안할 애가 아니다.
[엄마 철이 여기 있어.] 분명 이렇게 소리칠게 확실하다. 그래서 문뒤에 숨었다.
그리고 작은딸이 들어와서 불을 켤려는 순간 뒤에서 덮쳤다. 한손으론 누나의 입을 막고...
순간 누나의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떠는걸 느낄수 있었다. 내가 다 겁이 날정도로..
몇초간 누나는 뭘 생각했을까. 궁금하다. 손을 떼고는 귀에다 속삭였다.
"내다 내. 놀랬나?"
그날 밤 우리집 작은딸한테 베개가 터지도록 베개로 맞았다. 누나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본거 같다. 그렇게 놀랐을 줄이야...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다음부터 이런장난은 삼가해야겠다. 가족은 가족인가부다. 그래도 아부지 한테는 안들켜 다음날 낮을 무사히 맞이할수 있었다.

6월14일
마음을 졸이던 울나라 월드컵 본선 첫경기 제발 날위해 이겨라.
울나라 16강 진출하면 일주일 더 할일이 생긴다.
새벽에 울나라 한골 넣었을때는 미친듯 열광을 했었고 그 이상한 하얀 빤스 입은 밥맛없는 멕시코 뭐 에르난데슨가 하는 녀석이 세번째 골을 성공시켰을 때 딸딸이로 땅을 쳐야 했다.
울나라 졌다. 아 울나라 예선전 끝나면 또 무슨낙으로 사나..

6월 22일
울나라가 네덜런드한테 5대 빵으로 졌다.
분해서 경기가 끝난 해가 트는 새벽에 엄마 빨간 내복입고 동네 한바퀴 돌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집에 있는 울 누나가 아끼는 마르치스 개새끼를 한대 쥐박았다. 아침도 못먹고 바로 쫓겨났다.
아. 과연 호떡하나도 안사들고 찾아온 나를 그 백수 친구가 반겨 줄까..
역시 그녀석이 빈손으로 온 나를 보고 냉대했다. 새벽부터 찾아왔다고 졸라리 지랄했다.
할수 없이 그 곰팡이 핀 밤꽃냄새나는 휴지가 즐비한 그방을 청소해주고나서야 잘수 있었다.
오늘은 잠이 오지 않는다. 대낮에 낯선 동네를 한바퀴 돌수도 없었다.
내 자신이 개만도 못한 호떡만도 못한 것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그리고 여자빨간내복입고있다고 이녀석이 변태라고 놀렸다. 복수해야겠다.

6월23일
아침일찍 10시에 그가 잠깨지 않았을때 나는 그방을 나왔다. 그가 가지고 있던 200그람 상당의 쌀과 남아있던 라면3개와 함께. 그리고 그나마 남아있던 김치국물은 그 유일한 외출복인 노란 츄리닝바지에다 부어버렸다. 씻고 말리고 할려면 한 이틀 못나올것이고 식량도 없으니 굶을것이다. 나를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준것이 틀림 없다.
개한대 쥐어박은게 이렇게 사태가 클줄이야.. 아버진 어디서 구해왔는지 플라스틱재털이 열개를 열심히 닦고 계셨다. 들어가다 바로 도망을 쳤다. 열심히 연습을 했건만 역시 딸딸이 신고 달리는건 힘들다. 쫓아오는 아버지가 던지신 3개의 재떨이중 하나를 맞고 나서야 난 딸딸이와 훔쳐 들고온 라면3개 그리고 쌀봉지를 버리고 도망을 갔다.
애구 배 고파라. 오늘은 놀이터 벤취밑에서 자야겄다. 날씨도 따뜻한데 뭘...
저녁 무렵 어렴풋이 씩씩거리며 달려오는 어떤녀석을 보았다. 흠찟놀라 숨었는데.
역시 딸딸이에 빨갛게 물든 노란추리닝 저거 냄새도 심할텐데.. 그녀석이었다..
지사는데서 예까지 올려면 적어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야하는데 그 많은 쪽팔림을 견뎌냈다는건... 저 새끼는 인간이 아니다.
날 잡으러 온게 틀림 없는데... 우리집쪽으로 씩씩거리며 가는게...
에구 그나저나 울아버지가 저녀석을 만나게 될거고 내일도 집에 못들어가겠다.
맨발로 내일은 또 어떻게 버티나.. 함부로 개는 절대로 패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너무 어이없이 져버린 우리축구대표팀이 야속했다.

6월 24일
어제 진짜로 놀이터 벤취에서 잤다. 사람들이 왜 신문지를 덮고 자는지 이제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완전히 이슬에 축 젖어 있었다.
어제 재떨이 하나더 맞더라도 라면만은 챙겼어야 했는데...
호주머니에는 디스한갑과 750원이 있었다. 아침은 먹어 본지 오래지만 그건 자면서 시간을 보낼때의 일이고 깨어 있는 상태에서 굶는건 고스톱 치면서 세번연속 굶는거보다 더 속쓰리다. 어제저녁도 굶었으니...
이돈으로 빵이나 하나 사먹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초딩들이 퇴교만 하면 이돈은 금방 만화방에서 짜장면 시켜먹어도 될 정도의 돈으로 불어 난다. 나에겐 짤짤이라는 무기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꾹 참았다. 아침은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타면서 그렇게 보냈다.
드디어 초딩들이 하나둘 퇴교를 하기 시작했다. 멤버들 몇명이 보였다. 손에 동전을 쥐고서 걔네들한테 흔들어 보였다. 맨날 꼴아 바치면서도 도박의 유혹은 컸나부다.
놀이터 철봉밑에서 짤짤이를 했다. 코흘리게 돈을 따먹는다는게 마음이 아팠다. 애들은 손이 작아서 몇개를 졌는지 훤히 보이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지만 당장 닥친 생계문제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애들 돈이 거의 사라져 갈 무렵...
귀야븐 목소리가 들려 왔다.
"오빠 돈따먹기하면 엄마한테 혼나."
여기 멤버중 한녀석의 여동생인가 부다.
"애들은 가라."
순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너무 예뻣다.
한 예닐곱살 정도로 보였는데 나의 가슴에 '뿅'이라는 못을 박아버렸다.
그래서 생계문제도 잊고 그애의 오빠한테 돈을 다몰아 잃어 주었다. 그녀석은 입이 함지박만해져서 집으로 갔다. 물론 자기동생을 데리고 말이다. 멀리서 그녀석과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잘가 처남. 내일봐.' 내마음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나이 몇인가? 만으로 25살아닌가. 잊어야지...
오늘밤 놀이터 벤취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은하수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아니지 서울엔 은하수가 안보이지.
오렌쥐주스에 먹물탄 듯이 뿌연 수은등하늘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른다.
'안돼 잊어야해...'
그녀를 잊기위해 난 맨발인것도 잊은채 쓰린배를 부여잡고 찡그린 얼굴로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그때 그 고딩인것 같은 소녀가 또 놀라 도망을 갔다. 언젠가 한번 붙잡아서 절대 치한은 아니고 단지 백수일 뿐이라고 알려주어야 겠다.

6월 25일
도저히 그녀를 잊을 수 없다. 20살 나이차이는 별개 아니라고 점점 생각이 굳어져 간다.
정말 내가 왜 73년도에 태어나 이런 시련을 갖게 된걸까?
18년만 젊었어도... 내가 백수가 아니될수 있었고. 그녀와의 사랑 때문에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또 그녀를 못잊어 동네를 한바퀴 뛰었다. 그녀 생각하다 만화방 보조간판과 정면 충돌했다. 졸라 아팠다. 단골집만 아니었어도... 25살 백수의 시련은 너무도 컸다.
도저히 이 짝사랑을 못견뎌 그녀 집 벽에다 락카로
**는 내꺼. 찝적되거나 껄덕되는놈 죽어. -이현*-
이렇게 큼지막하게 낙서를 했다.

6월26일
울나라와 벨기에전을 틈타 나흘만에 집에 들어갔다. 이슬맞고 굶주리고 나는 더이상인간의 몰골이 아니었다.
다행히 울나라가 동점골을 넣어 별탈없이 잠자리에 들수 있었다. 일본도 지고해서...
잠이 쏟아졌다. 그래도 집이 최고다. 밖에서 맴도는 실직자님들 집으로 들어가세요. 등따시고 배부르면 무언가 의욕이 생긴다.

6월27일
낮에 동네를 한바퀴 어슬렁거렸다. 혹시 그녀를 볼깝새 그녀 집 근처를 거닐어 보았다.
그녀의 엄마로 보이는 아줌마가 얼굴을 불그락 그리며 내가 낙서한 걸 물로 지우고 있었다.
'아 지우면 안돼...'
마음속으론 '장모님!' 하고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꾹 참았다.
'저거 락카로 쓰서 물로는 잘 안지워 질텐데...'
순간 그녀의 아버지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나오셨다.
"어떤놈인지 몰라도 잡히기만해. 이 빠따가 이수시개되도록 패줄텐께.'섬뜩했다. 왜 날 쳐다보실까?
'아! 사랑의 길은 너무도 험난하고 방해자가 많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저걸로 맞으면 진짜로 백수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의 사랑을 포기해야만 했다.
밤에 못다이룬 내사랑을 슬퍼하며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오늘 그 고딩을 만나면 꼭 내가 치한이 아닌걸 밝혀야지. 고딩소녀가 이때쯤 올텐데...
그녀가 드디어 나타났다. 근데 그녀 옆에는 오빠로 보이는 산적같은 놈이 있었다. 아마 나 때문에 마중나간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무리 사회가 살벌하다지만. 어쨌든 저놈한테 싸움으론 이길 수 없을것 같아 어제 정면 충동한 보조 간판 뒤로 재빨리 숨었다.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점점 좁아져 가는 내입지가 마냥 처량했다.

6월28일
점심까지 굶으며 14시간을 잤다. 일어나 보니 엄마가 나이에키(NIEKE)딸딸이를 하나 사놓으셨다. 따뜻한 모정을 느꼈다. 그래도 내가 지새끼는 맞나부다.
내일부터 할일이 생겼다. 이 딸딸이를 신고 동네 초딩들에게 자랑하는거.. 백수에게 할일이란 너무도 더문것이기에 기뻤다.
딸딸이를 꼭품에 앉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이딸딸이를 빨리 신고 싶었기에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새거라 발등이 약간 아팠지만 그래도 즐거웠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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