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여자와 남자의 성 이야기-속편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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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3,411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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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시비시 즉각 삭제하겠습니다.













(4)여자에게서 없어진건 여자가 아냐.






택시는 우리를 강변 시민공원에 내려주고 다시 서
울 밤거리로 들어갔다. 멀어지는 택시의 후미등이
보였다. 택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밤의 한강 물빛은 칠혹이었다.

고등학교 때 만난 병두한테 가진 호감, 그러나 남자의 이중
적인 모습에 증오심을 가졌던 내게 불현듯 다가온 사랑이 있었
다. 대학 1학년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의 사장이었다.
당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에 아빠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서 나는 돈을 벌기로 했다. 재수시절 아무런 제약 없이 쓰
던 돈의 소중함도 느끼던 시절이었고 아빠에게도 엄마 몰래 용
돈을 드리고 싶었다. 대학은 신촌을 지나 남가좌동에 있는 M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대학생활에서 공부 외에는 아르바이
트가 전부라고 다짐한 탓에 강의시간이 비는 시간이면 어김없
이 학교 앞 분식집에 가서 서빙을 했다. 아르바이트였다. 분식
집은 같은 대학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해피하우스' 였다
M대 정문을 나와 백련사 방향으로 20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바로 우측 2층 건물에 자리잡은 해피하우스에는 식사시간 외
에도 미팅을 한다거나 모임을 갖는 학생들로 붐비던 곳이었다.
"아직 영업 안 합니다 죄송합니다. "
5, 6교시를 정상적으로 마친다면 오후 12시 30분에 끝나야
했다 하지만 오늘도 김 교수는 생활영어 시간을 펑크내고 잠
적해버렸다. 그럴 경우, 우리 과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 떼어먹
고 교수가 잠적했다고 결론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잠수함을 탄
다고도 했다. 잠수함을 탄 교수를 원망하며 등록금을 보전하기
위해 그날도 일찌감치 아르바이트 장소로 향했다.
가게에는 사장 혼자서 카운터에 앉아 준비금을 챙기고 있었
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 학생들이 붐비는 시간은 아니었다.
사장은 영업시간 전에 미리 돈을 맞춰놓으려는 듯 열심히 전자
계산기에 숫자를 찍어놓고 있었다. 사장의 이름은 도 형우였
다. 결혼을 일찍 했는지 아직 20대 후반인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보통 가장이었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
를 손닝인 줄 알았던 사장은 계산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의
례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 , 저예요. 정희 ."
"정회씨? 어서 와· . 지금정신 없어. 머리 나빠서 이거 어디
장사하겠나· "
"준비금 계산하세요?"
-응‥‥ 이거 다음부터 정희씨가 해라· . 나보다는 정희씨가
나을까?"
·뭘요, 그래도 사장님이 하셔야죠‥‥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그래? 하하·.
도 형우 사장은 나를 믿었다. 그래서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
이었지만, 일단은 내가 일하는 곳의 일이니 최선을 다 해주고
싶었다. 도 형우 사장은 성실한 사람이었고 집안에서는 건실한
가장이었다. 그의 젊은 날은 어땠을까? 아르바이트 학생들끼
리 모여 사장의 청춘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했다. 지금 아내가
사장의 첫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사장은 얼마나 많은 여자와
만났을까? 지금 이 장사는 왜 하고 있을까? 사장에 대한 관심
이 많을수록 질문도 많았다. 사장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
른 법을 알고 있는 남자였다.
12시가 넘어서자 학생들이 몰려 들어왔다. 김치볶음밥에 오
징어덮밥, 그리고 라면과 떡볶이가 주로 나갔다. 몰려들기 시
작한 학생 손님들이 뜸해질 무렵이면 어느새 밤 늦은 시각이 되
어 있었다. 어느 날, 가게 안의 테이블 사이로 뛰어다니느라 팍
팍해진 다리를 두드리고 앉아 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집에 갈
생각이었다. 도 형우 사장은 주방에서 장사에 쓰고 남은 재료
를 점검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쉬었는지 이젠 다리에 피곤보
다는 눈에 졸음이 몰려왔다. 집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사장이 주방에서 일을 끝내고 나왔다.
"정희씨, 이번 주 토요일 비워. 우리 야간 아르비 하고 같이
단합대회 하자. 알았지?"
"예?그날이면 저희 엠티 갈텐데· , 어쩌죠?"
"그래? 그렇다면 다음 주로 미루지 뭐, 어렵게 생각하지마."
"그냥 하세요. 저는 다음에 참가하면 돼죠·. ."
"무슨 소리야, 우리 해피하우스의 마스코트인 정희가 빠지
면 돼남? 걱정 말고 엠티 잘 다녀와. 다음 주 토요일에는 시간
비워두고!"
"예· .."
엠티를 간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학과 강의시간이라고 해
봤자 내 얼굴을 기억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던 것 만큼 내 앞
에는 공부 아니면 돈이었다. 갑작스런 도 형우 사장의 말에 집
에서 쉬려고 머리를 짜낸다고 했던 게 엠티였다. 내 앞에 있는
토요일, 일요일은 그나마 집에서 좀 쉬는 날이었다.
명목상 엠티를 다녀왔다고 속이고 다시 찾아온 예정된 단합
대회 날이었다 도 형우사장와 말대로 해피하우스 식구들은
토요일 저녁 장사를 접어두고 단합대회를 나섰다. 장소는 신촌
에 있는 주점이었다. 평소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
들이긴 하지만 좀 어색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적었
던 것도 이유였지만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쌀쌀맞게
대했던 나에게도 원인이 있었다. 도 형우 사장은 평소 그런 분
위기를 느끼던 차에 오늘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자, 오늘은 모든 스트레스를 잊고 한번 신나게 노는 거야,
알았지?"
"사장님, 오늘 원 없이 술 마셔도 되는 거죠?'
"고럼. 당연하지 . 마셔 ! 마셔 ! 뒤까지 다 내가 책임질테니까
마셔 !"
"우와호∼"
단합대회라고는 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봤
자 도 형우 사장과 나, 그리고 자유시간제로 일하는 남자 대학
생 2명과 여자대학생 1명이 전부였다. 우리 일행은 전부 5명이
었다. 도 형우 사장은 개인적으로는 같은 과 선배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한테 각별히 대해주는 것을 알고 있던 내게 자기
종업원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고백했던 것
은 바로 단합대회 날이었다.
다른 남학생들과 여학생은 오늘 자리에 어울리는 복장이었
다.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남학생들과 짙은 쥐색 정
장 미니스커트에 상의는 몸의 볼륨이 그대로 드러나는 쫄티를
입은 여학생, 그리고 청바지를 입었지만 연분홍 와이셔츠에 넥
타이까지 맨 사장도 그럭저럭 나이크클럽에 내놔도 되는 복장
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이 단합대회이고 어디어디를 놀러가
리라는 것을 몰랐던 사람처럼 낡은 청바지에 보통 블라우스 차
림이었다.
"어이, 남자들, 오늘 같은 날 애인들 데리고 오지 그랬어,
응?"
"사장님, 그 반대죠. 있다고 해도 오늘 같은 날은 헌팅하는
겁니다, 헌텅,"
"헌팅, 좋지, 암! 그러면 우리 여자동지들이 남자애인들 안
데려온건?."
"저희도 그래요. 저횐 헌팅하는 남자들 바람 맞히려고 작정
한걸요."
"하하하· 오늘 볼 만하겠는데‥‥ 응?"
신촌역 앞에서 이화예술극장으로 올라 가다보면 길 우측으
로 작은 맥주집이 있다. 맥주집 주인은 연세대 졸업생으로 대
학시절을 신촌에서 보냈고 졸업 후에는 직장 생활도 했지만 젊
은 시절 낭만을 찾아 신촌으로 회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
게 이름도 자신의 추억이 영원하라는 의미로 '젊은날의 초상·
으로 지었다고 했다. 물론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그런 평범한
가게간판이기도 했다. 가게 내부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
도의 통로만 남겨둔 채 좌우에 테이블을 두고, 각 테이블 구분
은 목장분위기처럼 원목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네모난 사
각 대신 등근 원목테이블을 준비해서 술을 마시는 손님들이 서
로 가깜게 둘러앉도록 배려한 것도 그였다.
오늘 이 맥주집으로 가자고 일행을 데리고 온 도 형우 사장
은 가게 주인과 어느 정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듯했다. 가게 사
장은 우리가 들어서자 주방에서 나오며 반갑게 맞이했다. 사장
의 손을 잡으며 먼저 인사를 건넨 것도 그였다.
"이야, 어쩐 일이야? 그 촌에서 신촌을 다 나오고?"
"이 사람아, 촌은 신촌이 촌이지, 우리가 무슨 촌인가? 우린
골이네 , 홍은골."
"하하· . ."
가게 사장은 우리 일행과 합석하고 종업원을 시켜 기타를 가
져오게 했다 '젊은날의 초상'은근처 대학생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는 곳으로 가게주인의 자유분방한 인간성이 크게 어
필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성격조차 좋은 사람으로 돈이 없는
대학생들에게는 공짜술도 내놓을 만큼 호탕한 면도 있었다. 기
타를 받아든 가게사장은 도 형우 사장과 우리 일행을 보더니
분위기에 맞는 곡이 생각났다며 기타 코드를 잡았다. 순간적으
로 나를 응시하던 가게사장의 시선을 느꼈지만 어두운 가게 안
이라 무시해버렸다.
노세, 노세 ∼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
"하하하· ."
손님이 많이 들어오고 종업원들로는 일손이 딸리자 가게사장
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농담 한마디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러분, 난 지방공연 다녀올테니까 아쉬워 말고 많이들 드
세 요."
도 형우 사장은 가게 안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가게사장을
보며 우리를 다시 돌아봤다. 이번에도 시선이 마주친 것은 나
였다. 다른 남학생과 여학생은 술을 건배하고 있었다.
"저 친구가 예전에 나와 연적이었다고 하면 믿을까? 사랑의
적 말야. 같은 여자를 두고 서로 경쟁하던 사람이란 소리지"
"고게 무슨 소리예요?'
말하자면 길지만, 대학시절 난 남가좌동에서 다녔고 저 친
구는 여기 신촌에서 다녔는데 우연하게 서로 같은 여자를 사랑
하고 있었어."
"어떻게요?"
도 형우 사장의 말에 번번이 질문을 한 사람은 나였다. 아직
그럴 듯한 사랑의 기억이 없는 내게 도 형우 사장의 말은 의외
였고 충격이었다. 한편으로는 엄마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 여자가 두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 두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가 결국 지금은 누구를 선택했는지, 아니면
그 세 사람의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미팅에서 만났다는 거야. 그 여학생은 그 때 이화여대에 다
녔는데 신촌에서 처음 미팅한 남자가 바로 저 친구였지
"사장님은요?"
건배를 하고 잔을 비운 뒤 다시 술을 따르던 주영이라는 남
학생이 물었다.
"나와는 오래 전부터 알던 여자였어. 고등학교 때부터."
"그럼 여자가 사장님을 배신한 거예요? 고무신 거꾸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 여학생과 나는 서로의 감정을 숨긴
채 지냈으니까. 더군다나 여학생이 미팅에서 만난 저 친구는
내 고등학교 단짝이었거든."
"네?"
놀랐다. 사치에서 처음 만난 사이도 아니고 지금 도 형우 사
장과 저 가게사장, 그리고 아직 얼굴도 모르는 그 여학생은 고
등학교 때부터 단짝친구였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입시에 묶여
연락을 끊고 지낸 지 2년이 흐르고 도 형우 사장은 여학생과
연락이 이어졌지만저 남자의 연락은 이후로도 없었다는 것이
다. 여학생이 저 남자를 만난 것은 아직 도 형우 사장과의 감정
을 확신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나간 미팅 때문이었다. 미팅자리
에서 만난 고등학교 단짝 남자친구 너무 반가웠고 순간적으로
여학생은 도 형우 사장보다는 이 남자에게 관심이 끌리는 자신
을 발견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이 밝혀
진 것은 두 남자끼리의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골치 아팠다. 주말 연속극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 내용
이 이랬다. 그리고, 간혹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 스페
셜을 봐도 같은 내용이었다. 뻔한 줄거리에 뻔한 주인공들. 드
라마 내용에 식상한 나머지 차라리 뉴스를 보던 나였지만 내
주변에서 같은 상황이 발견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
자의 현재가 궁금해졌다.
''지금 사모님이 그 때 여학생이에요?"
내가 물었다. 도 형우 사장의 아내는 얼굴도 예쁘고 행동도
싹싹했다.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여
자였다. 끄러나 도 형우사장의 대답은 달랐다.
"아냐‥‥ 저 친구와 나는 그 여학생과 맺어지지 못했어 ."
"왜요?"
이번에는 주영이라는 남학생을 비롯한 우리의 일행이 일제
히 물었다. 도 형우 사장은 착잡한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술을
마시는 도 형우 사장을 보며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술잔을 비
우고 다시 내려둔 도 형우 사장이 입을 열었다.
"죽었어· ."
"·..네"
"다른 남자에게 시집갔는데 그 남자가 바람둥이였어. 자존
심 강하기로 유명했던 친구가 자살을 택한 거지‥‥ 그 여자가
떠나고 난 뒤 저 친구도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 신촌으로 돌아
와서 이 술집을 차린 거고, 나는 나대로 우리 가게를 차린 거
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단합대회라고 차려
입고 나온 다른 사람들도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모님은요? 다시 사랑해서 만난 분인가
요?"
"사랑? ‥‥ 나로서는 지금의 아내처럼 내게 헌신적이고 뒷바
라지 잘해주는 여자를 만난 게 행운이지 . 아마 옛날 그 여자를
더 사랑한 건 나보다 저 친구였는지 몰라. 저 친구는 아직도 그
여자사진을 갖고 다니며 혼자 살고 있으니까."
1차 단합대회는 끝났다. 도 형우 사장은 자기는 먼저 갈테니
다들 더 놀다 오라고 했고, 나도 다음날 강의준비를 핑계로 빠
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2차로 근처 롬멜을 갔다. 롬멜은 내가
추천해준 곳이었다. 고등학교 때 병두와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긴 하지만 즐겁게 놀기에는 별 무리가 없는 곳이었다.
시간은 이미 밤 1 1시를 넘기고 있었다. 사장은 나를 데려다
준다며 같이 택시에 올랐다.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도 형우 사
장의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정회야, 아까 내 친구가 너 쳐다보던 거 알았었니?"
· 가게 안이 어두워서‥‥‥ 저를 본 것 같기는 하던데
요. · .'
"그럴 거야. 저 친구나 나나 아직도 그 여자를 못 잊고 있으
니 까. · ."
"그게 저 쳐다본거랑 무슨 관계가 있나요?"
차는 신촌 로타리를 빠져나와 서강대 후문쪽으로 달리고 있
얼다. 거리에는 차가 별로 없었고 간혹 술 취한 행인이 비틀거
리며 택시를세우고 있었다 도 형우사장은 말없이 밤거리 풍
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도 형우 사장과 반대쪽 창문을내다보던
내가 얼굴을 돌린 것은 도 형우 사장의 목소리를 듣고서였다
"너랑 그 여자랑 너무 닳았거든· . ."
"네 ?"
"기억나니? 네가 처음 우리 가게로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겠
다고 했을 해 내가 잠시 말을 못 하던 거 말야· .."
" 그 때 사장님이 저 별로 맘에 안 들어 하시는 걸로 알았
는데 ."
"그 때 처음 본 네 모습이 그 여자랑 너무 닳았다고 생각했
어. 그 여자 대학생 시절하고 말야·.."
"그러셨어요‥‥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는 걸 보니 사장님도
많이 사랑하셨나봐요·.."
"그랬지 . 아직도 가끔 그 여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 .."
그랬다 도 형우 사장과 가게의 그 사장 친구도 나를 처음 봤
을때 멍하니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금 생각해보
니 그 두 남자의 눈에는 공통점이 있단다. 지나간 기억이 다시
떠오른 남자들의 슬픔.
"아저씨, 직진해주세요‥‥‥
도 형우 사장은 서강대 후문을 지나 공덕동 로타리로 좌회전
하려는 택시기사에게 직진하라고 했다. 어딜 가려는 걸까? 이
미 늦은시각이었지만 굳어버린 도 형우사장의 얼굴을 본 뒤
로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차는 교차로를 직진해서 강변도로에
접어들었다. 뒤에서는 좌회전하려던 차가 갑자기 직진차선에
끼여들자 헤드라이트를 올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택시기사는
실내 거울로 뒤를 보며 짜증을 내는 듯했다.
"자식들·. 자식들아, 인생에는 정해진 차선이 없는 거야! 가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끼여들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
는 말아야지‥‥ 까불고 있어, 자식들·. ."
택시기사의 짜증은 갑자기 행로를 바꾼 손님들에게 하기보
다는 자신의 밥줄인 택시운전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는 다른 운
전자들로 향하고 있었다 택시는 우리를 강변 시민공원에 내려
주고 다시 서을 밤거리로 들어갔다. 멀어지는 택시의 후미등이
보였다. 택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밤의 한강 물
빛은 칠혹이었다.
정희야, 우리 사랑할까?"
"지금까지 이뤄왔던 내 모든 것을 다 포기해도 좋아. 두 번
다시 내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내가 사랑할게. 넌 받아주면
돼. 내 방식대로 사랑하고 싶어."
"사장님·.전‥‥ 읍."
밤에 와본 한강은 검었다. 검어서인지 강물은 속이 내려다보
이지 않았다. 검은 것은 강물뿐이 아니었다.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압흑으로 꽉 차 있었다 손을 허우적거려봤지만 허공에
흐르는 서늘한 밤 공기만 느껴졌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모를
온기가 전해져 왔다. 정신이 흐려지면서 내 몸은 산산조각나
고, 다시 그 깊이를 모르는 암흑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내
몸이 가루가 되어 밤하늘 어둠에 날렸다. 그리고 그 가루는 다
시 반짝이가 되어 밤하늘에 박혔다.

"정희야, 너를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남자의 입술이 내 입술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예전 병두의
입술과는 달랐다 청년의 다급하면서도 긴장한 입술은 아니었
다. 여자의 마음을 읽은 남자의 부드러운 자극이었다. 나는 남
자를 밀쳐내려고 팔을 허둥거려 보았지만 흥분한 남자를 어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팔을 휘두르며 저항하자 남자는 더 세게
끌어안으며 다가섰다. 그리고 밀고 들어오던 남자의 기운에 됫
걸음질치며 물러서던 내가 넘어지고 말았다. 남자는 내 위에
엎드렸다.
"읍‥‥‥
남자의 혀가 다시 한 번 집요하게 들어왔다. 한강 고수부지
에는 늦은 시각 탓인지 사람들이 없었다. 내 옷차림이 너무 밝
지 않을까?혹시 사람들이 보면 어떻하지? 남자는 내 위에서
키스를 이어갔고 내 머릿속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걱정으로
꽉 찼다.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남자의 행동이 어서 빨리 끝나
기만을 기다리는 편이 나을 듯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
났다. 내게 키스를 하며 몸을 더듬던 남자의 얼굴이 슬퍼 보였
다. 정말 이 남자는 지난 사랑을 되돌리길 원할지도 모른다. 남
자의 얼굴에서 진실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음이 약해졌다.
도 형우란 남자, 혹시 전부터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남자는 아
닐까? 다만 인연이 안 되어 이제야 만난 것은 아닐까?
다리를 벌린 채 그 사이로 남자의 몸이 놓여졌다. 남자의 기
둥이 내 계곡을 압박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대로 있
었다. 기둥 끝 부분인가? 남자가 허리를 압박해오자 계곡이 약
간 벌려지며 꽃잎이 기둥과 닿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가 옷을
입은 채 허리를 눌렀다. 다리를 더 벌리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거칠게 몰아 부치던 남자의 입술에 어느 정도
기운이 빠졌다. 이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남자는 내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이어가며 손을 티셔츠 안으로 밀어넣었다. 귀에
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츠르르르‥‥ 스스슥·.."
옷을 통과한 남자의 손이 브래지어를 덮더니 다시 안으로 들
어왔다.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남자가 내 가슴을
어루만지며 다시 키스해을 때도 기분이 나쁘다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바깥 공기에 약간 서늘해진 남자의 입술이 촉촉했다.
남자는 이미 내 가슴을 손으로 감싸러고 엄지손가락과 검지손
가락으로 초콜릿을 잡아 튕기듯 돌리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더니 무릎이 세워졌다 하지만 다시 남자의 다리에 눌려
곧게 뻗었다. 내 허벅지 어딘가에 남자의 기둥이 느껴졌다. 잔
뜩 성난 상태인 것만은 확실했다.
남자는 웃옷을 올린다거나 바지를 벗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 옷을 벗긴다면 자기도 벗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
았다. 가슴을 애무하던 남자의 손이 바지 단추를 끄르고 냉큼
손을 집어넣었다 방어하지 못했던 내 계곡과 꽃잎이 남자의
손에 잡히고 아까부터 흐르던 샘이 남자의 손가락에 묻혔다.
다리를 오므리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가 여전히 내 다리를 벌
린 채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남
자는 자신의 손이 여자의 샘에 젖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가락을 이용해서 계곡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계곡 입
구를 간지럽히는 남자의 손가락이 느껴졌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 둘·. 남자는 손가락을 들여보내 위 아래로 움직이며
점차 움직임을빨리 했다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끝없는 나락
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울컥하기를 여러 번, 뜨거운 숨이 내
허파에서 새어나왔다. 남자의 손이 내 온몸을 파고들며 머릿속
을 비집고 들어와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말았다. 온몸의 기
운이 빠져나가 그냥 그렇게 한강 고수부지 잔디에 누워 있었다.
나를 지탱하던 힘이 멀어지면서 다시 정신이 돌아왔던 것은
도 형우 사장이 키스를 멈추고 내 손을 잡았을 때였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남자에게 내 손을 내주고 말없이 따라가기만 하
던 나였지만 어디로 가는지 , 왜 가는지를 물어볼 필요는 느끼
지 않았다. 여자는 지금 이 순간 자기에게 사랑을 고백한 남자
를 따라갈 뿐이 었다.
병두의 얼굴이 보였다. 예쁜 여자라서 같이 자고 싶고 사랑하
고 싶다는 그 남자와 도 형우 사장은 달랐다. 옛날 사랑하던 여
인을 아직도 못 잊고 있는 남자, 그 남자는 나를 보더니 옛 여
인을 만난 것처럼 사랑한다고 했다. 자기식대로의 사랑? 그게
뭘까? 내가 아직 모르는 남자들의 진짜 사랑인지도 몰랐다 한
번 해볼 만한 사랑이 아닐까? 도 형우 사장의 고백을 듣게 된
순간부터 이 남자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밤이라서
몰랐지만 그의 목소리는 옛 사랑을 떠올린 탓에 울먹이고 있었
다. 눈물도 홀렸다. 그리고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여전히 서울은 밤이었다. 도 형우 사장이 나를 데리고 가려
는 곳은 마포대교를 빠져나와 공덕동 로타리 못 미쳐서 있는
가든 호텔이었다. 30패 초반의 남자와 20대 초반의 여자. 사람
들은 그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느끼는 사이라고 봐줄까? 도
형우 사장의 손을 잡고 호텔로 향하고 있는 내 모습을 알았을
때도내 머릿속은 여전히 혼돈스러웠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이 사랑일까? 손을 잡고 걷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면 그
런 게 사랑 아닐까? 같이 걷는 남자의 발걸음이 사랑스럽고,
곁에 있는 남자의 스치는 옷깃조차 아파 보여 보듬어주고 싶을
때 그게 여자의 사랑이 아닐까? 나는 어느덧 도 형우란 남자의
되돌아온 지난 사랑이 되어 있었다
남자의 손은 따뜻했다. 내가 따뜻하다고 느낀 만큼 이 남자
도 옛날 여자를 생각하며 내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
무래도 좋았다. 사랑을 잊지 못하고 아직 가슴아파 하는 남자
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나를 사랑한다 나도 그를 사랑
하기로 했다 지난시절 그 남자의 연인이었던 여자처럼 말이
다. 지금 그 남자에겐 아내가 있고 딸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남자의 아픈 사랑을 채워줄 수 없다면 그는 외로운 남자다. 그
래서 그를 사랑하기로 했다. 아직 모른다 나도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호텔 로비를 지나 방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도
남자와 여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남자의 손만 잡고
따라가는 그의 옛 여인이 되어 있었다 방에 들어왔다. 순간 집
에 계실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이 남자에겐 내가 있어줘야 했다. 그 동안
나를 보면서 지난 사랑에 아파했을 남자를 생각하면 지금 그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을 따름이었다.
남자의 입술이 내 머리카락에 닿고 있음을 느꼈다. 남자는
방으로 들어서자 문을 닫고 그의 여자를 문에 기대어 서게 했
다. 여자는 방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을 감고 있었다. 여자가 할
말은 오래 전부터 없었다. 그리고, 이젠 눈조차 감아버리자 남
자의 여자는 지난 시절 그의 사랑에 아픔을 준 그 대가를 치르
려는 듯 그저 남자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남자의 손
은 여자의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입술은 여자의 입술에
있었고 이내 남자의 손이 여자의 가슴으로 내려와 블라우스를
바지 밖으로 11집어낼 때도 떠날 줄 몰랐다. 여자는 몸에 가벼
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여자는 남자가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에라도 기대어 있
지 않으면 이미 힘이 풀린 다리로는 남자의 공격을 받아낼 수
도 없을 것 같았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블라우스 속으로 들어
오기 시작하자 여자는 몸을 굽혔지만 남자의 입술에 걸려 그
이상의 행동은 이어지지 못했다. 소름이 돋았다. 남자의 손이
소름을 거치며 블라우스 속으로 들어갔고, 가슴언덕을 향해 브
래지어를 들춰낼 때도 여자는 그대로 문에 기댄 채 쓰러지려는
몸을 남자에게 지탱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손이 여자의
초콜릿에 닿았다. 여자는 더 이상 지탱할 기력조차 없어 축 늘
어진 몸을 남자에게 맡겼다.
여자는 몸이 눕혀지는 것을 느꼈지만 아직 눈을 뜨지 못했
다. 여자의 몸을 받치고 이동하는 것은 남자의 팔이었다 남자
의 팔에 근육이 느껴졌다.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강인함이
느껴졌다 여자는 다시 좀더 편안하게 눕혀지고 가까스로 눈을
떠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의 눈을 확인하고 싶었다 꼭 확인하
고 싶었다. 다행이었다. 남자의 눈은 여자를 향한 사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자는 다시 눈을 감았다. 몸에 기운이 빠졌지
만 기다렸던 기분이었다. 남자의 입술이 다시 여자의 입술에
느껴졌다. 바지 밖으로 끄집어진 블라우스 조각은 남자의 손에
의해 좌우로 갈라지며 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남자의
손에 의해 언덕을 덮고 있던 작은 천 조각마저 치워지자 나를
덮는 남자와 얼굴이 느껴지고 정신이 아득히 떨어짐을 느꼈다
다시 못 올라와도 좋았다. 영원히 떨어지기만 해도 좋았다. 여
자는 남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상태 였다.
남자는 여자의 바지단추를 끄르고 지퍼를 내렸다. 서로 닿아
있는 여자의 두 다리를 그대로 둔 채 바지를 다리 아래로 잡아
당겼다. 바지가 미끄러져 내렸다. 양말은 그대로 뒀다 너무 예
쁜 양말이었다. 여자도 남자가 양말만은 그대로 두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아직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의 계곡과 비너스
언덕에 이브의 그것처럼 작은 천 조각 하나가 붙어 있었고 도
형우의 손에 의해 역시 치워졌다. 여자는 숨이 가빠옴을 느끼
며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지금 여자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꿈은 아니었다. 여자가 언제나 남모르게 꿈꿔오던 순간이 펼쳐
지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치 모든 장애물이 거둬지고 남자의
손에 의해 두 다리가 조심스럽게 열려질 때만 하더라도 여자의
얼굴은 무서운 청룡열차를 타는 어린아이처럼 눈은 질끈 감은
상태로 입술은 서로 확 다문 채 조금의 소리라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남자의 손은 여자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배를 지나 비너스언
덕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지런히 놓인 여자의 다리를 벌리고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았던 처녀지를 보기 위해 남자가 얼굴
을 들여보내는 순간 여자는 자신의 계곡에 느껴지는 남자의 숨
결에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그것도 잠시, 다시 열려진 계곡 사
이로 남자의 혀가 느껴지고 여자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어
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도 형우 사장은 다른 남자였다. 내가 알던 병두와 다르게 나
를 다루는 묘한 기술이 있었다. 총각과 유부남의 차이라고 보
기엔 아직 궁금한 점이 대단히 많은 남자, 뭔가 의문 투성이였
다. 내 옷을 내리고 몸을 대하는 얼굴부터 부드러운 남자였다.
도 형우 사장은 옷을 다 벗은 내 다리를 벌려놓고 아직도 여자
의 계곡을 보며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했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힘을 잔뜩 준 허벅지가 이젠 아프기까지 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섹스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계곡을 들여다보며 사랑의 눈빛을 보내고 있을 저 남자를
사랑하려는 중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돌아누우라는 신호였다. 도 형우 사장이 내 얼굴에 가볍게
키스하며 귓가에 속삭였다. 돌아 누워달라고 사정을 한다. 엎
드렸다. 다리는 여전히 벌려진 채였다. 도 형우 사장은 두 다리
를 잡고 돌아눕는 내가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도록 같이 돌려주
었다. 내가 엎드린 자세로 돌아눕자 무릎을 굽혀 내 다리를 반
이 접히게 했다. 그리고 내 등을 올라탔다. 내 목덜미에 도 형
우 사장의 혀가 느껴지는 것 같더니 이내 등으로 내려가 척추
를 핥는 남자의 혀가 있었다. 남자의 손은 엎드린 내 옆구리를
따라 내려오며 손가락 마디를 사용해서 지압을 하듯 눌러댔다.
간지러운 느낌과 뭔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계곡에서 흐르는 샘은 다시 역류하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돌아누운 여자의 됫모습을 본 남자의 말이었다. 여자의 대답
을 원하는 말은 아니었다. 남자의 혀를 느끼며 돌아누운 채 그
대로 있었다. 내가 할 일이란 남자가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가
만히 기다려 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남자가 나를 사랑할 때
나도 남자를 사랑해주면 될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도
형우 사장이 유부남이라는 것도, 내가 그와 함께 일하는 여직
원이라는 것도 필요없었다. 지금은 단지 여자와 남자가 사랑하
고 있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 순간이란 시점도 여자에겐 사랑
이었지만 남자에겐 또 하나의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자의 혀는 척추를 타고 등을 내려가 경사가 완만한 언덕에
다다랐다. 그리고 언덕 사이를 헤집고 혀를 디밀어 앙증맞게 자
리잡은 동굴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나한테서 흐르는 샘물은 역
류되어 침대시트를 적신 지 오래였고, 남자가 내게 준 또 다른
타액이 온몸을 적신지도 한참 전이었다 동굴에 혀끝을 돌돌 말
아 밀어넣던 남자는 여자가 부끄럽다고 허리를 움직이자 양손
으로 허리를 눌렀다. 도 형우 사장은 내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
고 헤집더니 기어코 동굴 입구를 벌리며 혀를 밀어넣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허리가 녹아내릴 것 같았다. 남자의 혀가 입구를 헤집
어놓더니 이젠 스스럼없이 손가락을 동굴에 넣기까지 했다. 허
리를 들썩이고 싶었다 몸을 비틀지 않으면 이대로 온몸이 녹
아버려 최 정희란 인간이 없어질 것만 같았다. 도 형우 사장은
손을 사용하는 데 있어 천재적인 남자였다. 엄지손가락으로는
동굴 입구를 헤집어놓고 집게손가락으로는 계곡을 가르며 꽃
잎을 찾아 숨어 있던 작은 꽃잎을 짓누르며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불을 끌어 입을 막았다. 그래도 신음 소리가 이불 틈
을 비집고 나왔다.
"아‥‥‥ 미치겠어· . 아‥‥‥
도 형우 사장은 허리를 들썩이며 연신 신음을 뱉어내는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야속했다. 여자가 쾌감을 견디다 못해 기절
한다는 얘기는 남자들이 자신의 테크닉을 자랑하기 위해 지어
낸 이야기로 알았다 그러던 오늘 도 형우 사장의 손놀림에 기
절할 것만 같은 쾌감을 느끼고 거의 울 지경까지 간 것은 여자
였다 그게 최정희, 나였다.
결국 얼굴을 침대에 묻고 울음소리에 가까운 신음을 내뱉자
도 형우사장의 얼굴이 내게서 떨어졌다 계곡과 동굴이 있는
부근이 얼얼했다 도 형우 사장이 얼굴을 떼고 잠시 휴식을 취
하자, 오히려 내가 먼저 원했다. 도 형우 사장이 빨리 어떻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도 형우 사장은 내 허리를 잡고 약간 들어올린 다음 뒤에서
기둥을 밀어넣었다. 순간 남자의 것이 내 몸을 관통해서 입으
로 나을 것 같았다. 남자의 거대한 기둥, 남자는 여자의 계곡에
한 치의 틈도 남겨두지 않고 들어차 있었다.
도 형우 사장은 내 허리를 잡고 있었고, 기둥 또한 여자의 계
곡 뒷부분에서 앞으로들어와 있었다. 다시 이불을 끌어다 입
을 막았다. 눈물이 흘렀다. 아픈 통증 때문이 아니었다 도 형
우 사장의 엄지손가락은 다시 동굴 입구를 헤집고 들어오려고
했고, 다른 한 손은 앞으로 돌려 꽃잎을 부비고 있었다. 내가
흘린 샘물이 남자의 손과 기둥에 윤기를 더하고 있었다. 그리
고 도 형우 사장의 기등이 더욱 커진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남
자의 가벼운 폭발이 있었다.
잠시 후, 도 형우 사장의 기둥은 다시 계곡의 약점을 찾아내
어 끊임없이 공격해 들어왔다. 계곡의 살점 하나하나가 얼얼해
지며 허벅지 살갗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남자로부터 더 이상
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남자의 몸이 여자로부터 떨어져 나갔
을 때 여자는 자신의 몸에 나타난 변화를 느꼈다. 조금 전의 들
뜬 기분과는 다른 공포가 밀려왔다. 계곡에서 액체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순간적으로 그 흐르는 물질이 피라는
것을 느꼈다.
질척한 그 무엇인가가 계곡에서 흘러내려 다리를 타고 침대
시트를 적셨다. 남자의 연인이 되어 남자를 받아들였을 때 고
통을 느긴 바로 그 다음이었다. 계곡은 조금 전의 탐색으로 상
처를 입은 듯 다쳐 있었다. 그리고 그 통증이 여자의 머리에 전
해져 왔을 때 남자는 여자에게서 흐르는 붉은 액체를 보고 놀
라는 얼굴이 었다.
"처음이었구나·. ."
남자의 소리였다. 그리고 남자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처
음' . 여자는 남자의 말처럼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은 아
무 것도 모른 채 지나갔고, 지금은 상대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
래서 더 소중했다. 여자는 자신이 겪어야 할 의식을 훌륭하고,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치렀다고 나름대로 여겼다. 남자는 여
자의 몸 위로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그 어떠한 동작도 하지 않
은 채 여자의 입술에 가볍고 깊은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여자
는 자기 안의 여자를 보내고 남자를 받아들인 것이다.
"정희야, 어서 와."
"안녕하세요·.."
남자가 생긴 여자는 집에 늦게 들어왔다고 부모님에게 혼이
나도 마음 속에서 퍼져나는 행복감 때문에 웃음이 나오려는 것
을 참아야 했다. 여자에겐 기다리던 남자였고 두 번 다시 놓치
고 싶지 않은 경험까지 나눈 상태였다. 단 한 가지, 남자에겐
이미 예쁜 아내와 딸이 있었지만 차차 어렵지 않게 해결될 문
제라고 여겼다. 그리고, 지금 이 행복한 순간을 먼 훗날 일어날
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것들 때문에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과
거는 과거였고 미래는 미래였다. 여자에겐 지금 현재가 가장
중요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시 가게로 향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 남자의 오늘 얼굴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어제 내가 들었던 그와의 달콤했던 밀어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내 귓가에 남아 있던 남자
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져 나 혼자 부끄러워 하지 않았는가! 상
상만으로도 온몸이 떨리고 저리지 않았던가! 여자는 남자의 여
자였다.
가게에는 말쑥한 와이셔츠로 갈아입은 도 형우란 남자가 장
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젠 사장님이라고 안 불러도 될 것 같
았다. 가게 안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여자가 들어오는
것을 본 남자는 인사를 한 뒤 다시 장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남자에게 다가가서 귀에 대고 말했다
"형우씨· "
남자가 놀랐다. 그리고 황급히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음을 알고 여자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가게 옆 주택가 골
목이었다. 여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 그리고 자기가
무슨 일을 잘못했는지 몰랐다. 엉겁결에 따라나온 여자에게 남
자가 다그치듯 입을 열었다.
"너 , 어제 일로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진 마. 우린 그저 서로
좋아서 사랑했을 뿐이야."
"예? ‥‥‥‥‥‥ 형우씨
"그 소리 하지 말라니까! 특히 너 우리 아내나 아이 듣는데
그 말 하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알았어?"
여자는 무슨 일이 잘못 되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남자는 어
제의 모습과 너무 다르게 변해 있었다. 돌아온 연인에게 대하
는 모습이라고는 보여지지 않았다. 여자는 머릿속이 혼란스러
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제 형우라는 남자는
내게 지난 사랑을 고백했고 현재 자신의 결혼생활은 불행의 연
속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옛 애인을
가슴에 품고 살았는데 나를 보고 옛 사랑을 되찾은 것 같다고
했다. 그 모든 사랑의 말들이 거짓이었을까?
아냐, 여자는 남자의 태도에 뭔가 장난끼 같은 것은 없는지,
아니면 어제 일은 꿈이었는지 따져봤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
었다. 여자는 자신이 오늘 그에게 잘못한 일이 있는가를 다시
되짚어 봤다. 학교가 끝나고 시간에 늦지 않게 아르바이트를 하
러 왔다. 그리고 형우씨가 있길래 인사를 건넸다. 물론 평소와
는 다르게 귀에 대고 형우씨라고 불렀다. 사장에게 형우씨라고
한 것은 오늘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장난끼 가득한 사장이 먼저 형우씨라고부
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어젯
밤 나를 원하며 내 모습이 옛 애인처럼 느껴진다고 사랑을 갈
구하던 남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남자는 말을 마치고 황급히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
는 잠시 그대로 서서 다음에 해야 할 행동을 기억해 내야만 했
다. 그리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계산기를 두드
려가며 어제 팔고 남은 재료와 장사준비금을 맞추는 중이었다
정희는 도 형우 사장 앞에 서서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정신없는
남자에게 물었다.
"왜 나와 섹스한 거죠?"
"무‥‥ 무슨 소리야?"
내 목소리가 컸던지 주방에서 일을 보던 아주머니가 음식통
로로 얼굴을 삐죽이 내밀었다. 다른 종업원들은 없었다. 사장
은 내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채 계산기를 끄고는 자리에
서 일어났다. 남자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여전히 꼿꼿
한 자세로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왜 나와 섹스한 거냐고 물었어요."
'내‥‥ 내가 언제 너하고 뭘 했다고 난리야?"
"증인을 세워야 진실을 말하겠어요?"
나는 자꾸 약해지려는 나 자신을 향해 채찍질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럴수록 내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어제 나한테 키스하고, 내 옷 벗기고 왜 나와 섹스한 거냐
고 묻고 있어요."
너 어디 와서 행패야? 그래, 돈 더 달라고 했던 거 안올려
주니까 심술이야? 그렇지 ! 돈이란 한 만큼 버는 거야. 일도 안
하고 돈만 올려달라면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주방에서 일을 보던 아주머니가 나온 것은 그 때였다. 아줌
마는 연신 사장의 눈치를 보더니 내게 근엄하게 꾸짖는 듯한
얼굴을 지었다
경희야, 너 그럼 못써. 장사라도 잘 되면 모를까? 사장님도
요즘 장사하시느라 힘든데 우리가 좀 참아야지, 안 그래?"
"야, 개새끼야! 말해! 안해? 사랑? 옛 애인? 네가 어제 그
더러운 입으로 지껄이던 게 다 거짓말인걸 알아. 왜 말 못해?
왜 아내가 알까봐? 네 딸이 아빠의 더러운 수작을 알기라도 할
까봐? 내가 말해줄까? 응? 그럴까?"
내 자세는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았다. 하지만도 형우사장
을 똑바로 쳐다보고 따져야 할 눈에서는 시야가 흐려지며 눈물
이 흘렀다.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될 일이었다. 무너지고 싶지 않
았다. 이겨야 했다. 어제 잠시나마 꿈꿨던 착각은 그대로 접어
두고 지금 이 더러운 기분만은 남자에게 돌려줘야 했다. 그러
고 싶었다. 내 목소리는 남자의 더러운 행위를 날카롭게 따지
는 것에서 점차 울먹이는 소리로 변해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
게 터져나오는 울음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주방
아줌마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고 홀에 우두커니 서 있던 도
형우 사장은 밖으로 나가버렸다
도 형우 사장이 다시 들어온 것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좀 한
가해졌을 때다. 나는 그 때까지 가게 빈 테이블에 앉아 말없이
울고만 있었다. 뒤에서 보면 식사를 하러 온 손님처럼 보였다.
인사를 하러 다가섰던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내가 우는 얼굴을
보고는 지나쳤다. 손가락질을 하며 궁금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관계없었다 하루 종일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가
일찍일찍 다니라고 한 것도, 술과 담배를 하지 말라고 한 것도
다 이유가 있으니 시키는 대로 좀 따르라던 엄마가 보고 싶었
다. 엄마 말로는 담배를 하는 여자는 곧 술을 배우게 된다고 했
고, 늦게 다니기 시작한 여자는 외박을 꿈꾼다고 했다. 그래서
당신 딸에게는 여러 가지 강요를 하신다고 했다. 엄마의 말씀
이 옳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여자를 잃었다 남자에 대한 배신
감으로 나름대로 대응을 해온다고 자부했었는데 남자의 위선
에 가득 찬 거짓말에 속아 여자를 주고 말았다. 도 형우 사장은
여전히 우두커니 앉아서 소리는 내지 않지만 울고 있던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남자의 손이 내 어깨를 치는 순간 온몸에는 싸늘한 소름이
돋았다 이 남자는 내 남자가 아니다.
"우리 누구의 잘못도 아냐‥‥ 말하자면 그렇단 얘기야· . ."
도 형우 사장의 첫 마디였다. 자신의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
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더러운 기분과 어
젯밤에 있었던 여자로서의 수치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남자의
욕망이란 놈이 꾸민 또 하나의 거짓말인가? 도 형우 사장이 손
을 내밀어 내 어깨를 만지려고 했다. 피했다. 그리고, 사방이 막
힌 커피숍에서 나가고 싶었다. 창가 쪽에 앉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에 있는 재떨이에 손을 짚고 일어섰다.
"그만 둘거야. 더러운 새끼 !"
남자는 내가 그만둔다는 말에 안도의 얼굴빛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앉아 있었고 나는 테이블위에 손을 짚은 채 일어서 있
었다. 남자는 다시 입을 열어 위로의 말을 건네려는 듯 했다.
그 순간이었다 재떨이를 짚어 도 형우란 남자의 얼굴에 던졌
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고 바닥으로 구르는 남자를 밟고 커피
숍을 나왔다.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액체가 흘렀다. 지난
밤 남자가 여자에게 흘리게 했던 것과 같은 액체였다. 남자의
얼굴에서 흐르는 것은 피였고 내 심장에 녹아 흘렀던 것은 자
존심이었다.
여자에게서 없어진 것은 여자라기보다는 남자가 없어진 것,
단지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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