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건곤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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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2,854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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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一擲

제3권 26장 빙백마제 (氷魄魔帝)



진령산에서 어떤 장소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녹림의 비밀 산채를 찾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백골곡은 진령산을 무대로 활약하는 수백 명에 달하는 녹림도적들의 근거지였다. 백곡신군 혁련광은 잔혹한 위인으로 수하에 수백 명을 두고 근 수십 년간이나 진령산을 장악해 왔다.


관(官)은 물론이려니와 의협도에서도 그를 제거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그가 백골곡에 은밀하게 숨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백골곡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백룡은 반나절을 헤매었으나 백골곡을 찾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는 다급해졌다. 사라가 어떤 일을 당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라는 세상 일을 전혀 모르는 소녀다. 그녀가 진령산의 잔혹한 도적들의 손에 잡혔다면 어떤 일을 당할 지 알 수 없다. 불행한 일을 당하기 전에 구해내야 한다.'


그는 진령산 일대에 사는 주민들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백골곡을 알지 못했다. 설사 안다고 해도 입을 열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누구든 간에 진령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백골곡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산중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다. 눈이 얼어붙은 산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렸다. 그는 빙글 돌아서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는 화살 하나가 잡혔다. 그것은 강시(强矢)로써 곰이나 멧돼지 등의 맹수를 잡는 데 사용하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바위 뒤에서 불쑥 인영이 솟아 나왔다.


사냥꾼이었다. 이런 깊은 산 속에서 간간이 만날 수 있는 짐승 가죽옷을 입은 사냥꾼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백룡은 강철화살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조심하시오. 이런 것을 맞으면 곰이 아니라 바위라도 꿰뚫리겠소!"


사냥꾼은 황망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 소인이 눈이 멀었나 봅니다. 그만 곰인 줄 알고 ."


사냥꾼은 사십대 가량의 사나이였는데 눈알이 작고 몸매가 날쌘 전형적인 맹수잡이로 보였다. 백룡은 화살을 돌려 주면서 담담히 말했다.


"괜찮소. 다음부터는 주의하시오."


"헤헤 . 이런 깊은 산 속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


날이 저물어가는 깊은 산 속에서 어물쩡거리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백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그러다 떠오르는 것이 있어 물었다.


"참, 당신은 이 곳에서 얼마나 살았소?"


"소인은 이 일대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요. 그런데 그건 왜 ?"


"그럼 진령산의 지리를 잘 알겠구려?"


"헤헤헤. 다른 건 몰라도 지리라면야 눈을 감고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죠."


백룡은 반색을 했다.


'내가 왜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던가? 사냥꾼이라면 당연히 지리에 밝을 것이 아닌가?'


"백골곡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백골곡!"


사냥꾼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백룡은 그가 알고 있다고 직감했다. 그는 품속에서 커다란 은자 한 덩이를 꺼냈다.


"그 곳을 알려 주시오."


황금이라면 귀신도 부린다 했던가? 사냥꾼의 눈이 커졌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백골곡은 산 사람이 갈 곳이 못됩니다요. 무엇 때문에 찾는지는 모르나 "


말끝을 흐리며 그는 재빨리 은자를 소매 속으로 감추었다.


"소인이 가르쳐 주었다고 하면 안 됩니다요. 백골곡에 사는 자들은 워낙 흉포한 자들이라 "


백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마시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


"그 곳은 바로 ."




칠흑같은 어둠 속이었으나 확실히 여느 곳과는 달랐다.


계곡의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전신을 엄습하는 한기는 뼈를 얼릴 듯했다. 얼음천지였다. 야안이 밝은 백룡은 계곡이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계곡의 바닥은 물론이려니와 하늘을 가르며 서 있는 절벽까지도 온통 빙벽이었다.


휘이잉 !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만년한풍(萬年寒風)이었다. 다만 바람을 맞기만 해도 체력이 약한 사람은 동태처럼 얼어붙어 버리는 만년한풍.


'정말 지독한 추위로구나. 보통 사람이 이 곳에 멋 모르고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고드름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백골곡이 주위에 알려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더욱 한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계곡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졌다. 기이한 것은 아무도 그를 막아서는 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다소 의혹을 느꼈다.


'수백 명의 도적이 있는 곳이라면 지금쯤 막아서는 자가 있을 법한데 ?'


그러나 안으로 다 들어가도록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계곡은 마침내 끝이 났다. 안쪽은 빙벽으로 막혀 있어 더이상 나갈 곳이 없었다.


'이 곳이 정말 백골곡이란 말인가? 대체 녹림의 산채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때였다. 문득 흑영 하나가 그의 눈에 비쳐졌다. 흑영은 빙벽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백룡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그는 소리없이 인영이 사라져간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없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인영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빙벽의 중간 지점이었다. 그 곳은 발을 디딜만한 틈이 있을 뿐 아차하면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질 것같은 아슬아슬한 곳이었다.


빙벽은 만 년 동안 쌓인 눈이 녹아 얼음을 형성한 것으로 계곡이 추운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는 유령에 홀린 기분이었다.


'이 곳은 더이상 나갈 곳이 없는데 아까의 그 인영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이때 또다시 휙! 하는 옷자락 날리는 소리가 가까운 곳으로부터 들려왔다. 그는 이번에는 결코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므로 절정의 무영잠형술(無影潛形術)을 전개하여 인영이 있는 곳으로 쏘아갔다.


이윽고 그가 한 마리 야조처럼 날아 내린 곳은 빙암이 돌출된 곳이었다.


'이 곳이다.'


그는 한 빙벽에 뻥 뚫려 있는 동굴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밖에서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동굴이었다. 그러나 안으로 깊숙이 뻗어 있는 동굴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 곳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백골곡의 녹림도적들은 바로 이 곳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것일까? 사냥꾼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면 바로 이 곳일 것이다.'


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휙!


그는 안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 그가 동굴 안으로 들어간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쿵!


하는 굉음이 동굴 입구로부터 울린 것이었다.


'아차!'


그는 급히 동굴 밖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이미 늦은 후였다. 동굴 입구는 어느새 폐쇄되고 말았던 것이다. 동굴 입구가 거대한 얼음덩이로 봉해진 것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힘주어 밀어 보았으나 얼음덩어리는 바위처럼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않았다.


'최소한 십만 근 이상 나가는 무게다. 인간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가 없다.'


함정이었다.


'이럴 수가 ! 그렇다면 그 사냥꾼에게 속았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냥꾼이 그를 향해 화살을 날렸을 때 이미 눈치를 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저녁나절이라고 해도 사람과 곰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냥꾼이 있을 리는 없는 것이다. 또한 백골곡을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도 사냥꾼의 표정은 여느 사람과 달랐다. 비록 놀라는 표정이었으나 그가 보았던 진령산의 주민들과는 현저히 달랐다.


'경솔했다. 놈들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사냥꾼은 어쩌면 백골곡의 녹림도적의 무리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기왕 함정에 빠졌다면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그는 입구를 가로막은 얼음덩어리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안쪽에 또다른 통로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안쪽을 살펴보기로 했다. 동굴 안은 의외로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한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백룡은 심후한 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추위나 더위를 웬만해서는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혈관이 수축되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으음 . 이 곳은 빙음지기(氷陰之氣)가 가득 찬 곳이다. 수만년을 두고 형성된 얼음의 정기(精氣)가 뭉쳐져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렇게 한기가 감도는 것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천정에서 얼음기둥이 내려와 있고 바닥과 벽도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놈들이 이 곳에 나를 가둔 것은 나로 하여금 이 곳에서 얼어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후후 .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공력을 일으켜 온몸에 순양지기를 돌게 했다. 그의 몸에 서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 올랐다. 그렇게 되자 추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통로는 다시 좁아지면서 안쪽으로부터 괴이한 음향이 울려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의문을 느꼈다. 빙동 안에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들리는 소리는 사람의 호흡소리와 흡사한 느낌이 들었다.


깊이 들이 마셨다가 내뿜는 듯한 호흡소리가 동굴에 공명되는 것같았다.


'혹시 안쪽에 괴수라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흐으으으읍 ! 흐으으으읍 !"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게 울렸다. 그때마다 뿌연 빙무(氷霧)가 파도치듯 흔들렸다. 어떤 때는 빙무가 회오리치며 그의 몸주위로 밀려오기도 했다.


'으읏 !'


백룡은 전신이 얼어버릴 것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의 순양지기를 뚫고 여지없이 빙무의 냉기가 스며들었던 것이다. 지독한 빙한지기였다. 비록 순양지기로 온몸을 보호하고 있었으나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짐작컨대 공기를 빨아들일 때면 빙무가 빨려들어갔다가 내뿜을 때 한꺼번에 소용돌이치며 밀려오는 것같았다. 그는 진저리 쳐지는 추위에 이를 악물었다.


'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한기를 뿜고 있단 말인가!'


두려움과 함께 강한 호기심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왕 이 곳에 갇힌 이상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진기로 온몸을 보호하며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 !"


잠시 후 동굴 끝에 당도한 그는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물체를 보았다. 그 물체는 뿌연 백색의 빙무에 감싸여 있었는데 바닥에 고여 있는 빙담(氷潭) 속에 반쯤 담겨져 있었다.


'사, 사람이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괴물이라고 믿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머리칼이 일장에 가까울 정도로 긴 장발의 괴인이었다. 괴이한 것은 머리칼이 백색 투명하다는 것이었다.


투명한 머리칼!


도저히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투명한 머리칼을 지닌 괴인은 육순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의 피부도 투명했다. 몸 속의 내장기관이나 핏줄까지 거의 투영되어 보일 정도였다.


매부리코를 지닌 음침한 인상의 노인은 문득 눈을 떴다.


"크크크 ! 웬 놈이냐?"


우우우웅 !


괴노인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동굴은 무너질 듯 흔들렸다. 가공할 내공력이었다.


백룡은 간담이 써늘해졌다. 그로서는 이렇게 내공이 강한 위인을 강호에 출도한 이래로 만나본 적이 없었다.


"크크크 ! 노부 빙백마제(氷魄魔帝)의 백 년 연공이 끝나는 순간에 축하라도 해주기 위해 온 것이냐?"


우우우웅 !


또다시 동굴이 흔들렸다. 뿐만 아니라 빙무가 회오리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음."


백룡은 뒤로 물러나다가 비틀거렸다. 체내의 진기가 역으로 흐르며 하마터면 역혈을 일으킬 뻔했던 것이다.


그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입을 열었다가는 빙음지기의 침입을 받아 그대로 얼음덩어리가 되어 버릴 것같았기 때문이었다.


빙백마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백년 연공이라니? 그럼 그가 이 곳에서 백 년간이나 있었단 말인가?


"크크크 ! 마침 잘 되었다. 이리 오너라. 노부의 빙백신강을 네놈에게 시험해 보아야 겠다."


괴인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비쩍 말라 있었으며 뼈까지 드러나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도저히 인간의 손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스스


빙기가 회오리치는 순간 백룡은 빨려들 듯 그의 손으로 끌려갔다.


'헉!'


백룡은 대경실색했다.


무형의 흡인력이 그를 끌어 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끌려가지 않으려 진기를 끌어 올렸으나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힘이 그를 무섭게 빨아 들이고 있었다.


"으으 ."


마침내 그는 주르르 미끄러져 갔다. 빙백마제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음으로 만든 것같은 손바닥이 그를 노리고 있었다.


백룡은 눈을 크게 떴다. 끌려가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은 굴뚝 같았으되 아무리 힘을 써도 그는 어쩔 수 없이 괴인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우웅!


새하얀 백무(白霧)가 회오리치며 백룡을 향해 날아왔다.


콰앙!


그것은 그가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새하얀 백무는 덩어리가 되어 그를 강타했다. 백룡은 의식이 아득히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크크크크 ! 성공이다. 크크크 ! 백 년의 연공이 헛되지 않았다 ."


백룡은 5장 여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떨어졌을 때 그는 하나의 얼음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의 몸 주위를 두터운 얼음이 덮어 버린 것이다. 그는 거대한 얼음덩이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빙백마제는 빙담 속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하반신을 빙담에서 완전히 뽑아냈다. 그런데 그 순간,


"으으으 ? 다, 다리가 ?"


갑자기 빙백마제는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보라!


그의 다리는 사람의 다리라고 할 수 없었다. 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이 오로지 회색의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으으으 . 이럴 수가 !"


빙백마제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보며 울부짖었다. 이때였다. 그가 막 억지로 다리를 움직인 순간,


파스스 !


그의 다리는 얼음이 갈라지듯이 금이 가면서 흘러 내리는 것이 아닌가?


"으아아아아 ! 내 다리 !"


빙백마제는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의 다리는 백 년 동안이나 만년빙담 속에 잠겨 있었다. 그 동안 피가 통하지 않음은 물론이려니와 빙음지기에 침식되어 완전히 퇴화해 버린 것이었다.


빙백마제는 백 년 연공 끝에 빙배신강(氷白神吁)이라는 불후의 마공을 연성하는 데 성공했으나 불행히도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그로 인해 그는 두 다리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으으으으 !"


그는 부서진 하반신을 내려보며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실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공을 익힌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다리가 없이 어찌 천하를 주유할 수 있단 말인가?


꽈르릉! 콰쾅!


돌연 그는 쌍장을 휘둘렀다. 그의 쌍장에서는 무시무시한 백색의 빙백신강이 뻗어나갔다. 동시에 백무가 닿은 곳은 쩍쩍 금이 가면서 부서져 내렸다.


꽈르릉 콰쾅!


"우우우우 ! 믿을 수 없다.! 크흐흐흐흑 !"


빙백마제는 미쳐 버렸다. 그는 사방으로 마구 장력을 날렸다. 하반신이 없는 병신으로 천하제일의 고수가 된 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크흐흐흐흐 !"


꽈 꽝!


일발의 장력이 백룡을 에워싸고 있는 얼음덩어리를 산산조각으로 날려버렸다. 동시에 백룡은 붕 뜨더니 멀찌감치 나가떨어졌다.


그는 죽은 듯 꼼짝 않고 있었으나 외견상으로는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다. 전신이 얼어있을 뿐이었다.


빙백마제는 바닥을 기면서 계속 빙백신강을 날렸다. 그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고 투명한 머리칼은 마구 휘날렸다.


백 년 전, 그는 우연히 빙백신경(氷魄神經)이라는 전대의 비급을 얻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그것을 연성하기 시작했다.


그의 야망은 빙백신강을 연성하여 천하를 제패하는 것이었다. 그 한 가지의 야망만으로 그는 백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빙담 속에 앉아서 보낸 것이었다.


꽈꽝! 꽈르르릉 !


돌연 천정이 무너져 내렸다. 천정으로부터 수만 근에 해당하는 빙암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피할 수가 없었다.


하반신이 없었으므로 꼼짝하지 못하고 그만 빙암 속에 묻히고 말았다.


"크아아아악 !"


처절한 비명이 동굴을 뒤흔들었다.


아무리 천하제일의 무공을 지녔다고 해도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 수만 근에 달하는 빙암의 무게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빙백마제는 백 년 연공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 냈으나 미처 자신의 무공을 세상에 과시하지도 못한 채 그만 한을 품고 빙암에 깔려 죽고 만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백룡의 몸에서 더운 김이 일어났다. 그 김은 점점 짙어지더니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자욱한 운무를 드리웠다. 이윽고 운무가 걷히자,


"으음 !"


한 차례의 신음과 함께 그는 눈을 떴다. 죽음 직전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빙백신강을 맞았으나 그는 죽지 않았다. 그의 체내에는 천하에서 가장 극양한 음양천도의 기운이 있었다. 그 양화지기가 은연중 그의 혈맥을 보호한 것이었다.


만약 빙백마제가 최후로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얼음을 깨뜨려 주지 않았더라면 환생은 불가능했을 지도 몰랐다. 그야말로 운명적으로 기사회생했다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그 괴인은 .?'


그는 동굴이 엉망진창이 된 것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했다. 의식을 잃고 있는 사이에 정녕 하늘의 뜻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스치고 지나간 사실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기를 한 차례 운행하던 백룡의 얼굴에 기쁨의 빛이 떠올랐다.


'공력이 배로 늘어났다!'


그렇다. 그의 체내에는 이제 두 가지의 강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한 가지는 철혈관에서 빙화와 함께 얻은 순양지기였으며 또 한 가지는 창궁부에서 복용한 음양선도의 기운이었다. 그런데 그 두가지 기운은 모두 양(陽)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 중 한 가지 만으로도 그의 내공은 능히 백 년을 뛰어넘을 수 있었으나 약력이 아직 채 녹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빙백신강을 맞으면서 스스로 격발되어 혈류 속에 완전히 용해된 것이었다. 그는 결국 환란 속에서 도리어 크나큰 행운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온몸이 후끈거렸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추위를 느끼던 것이 지금은 오히려 더워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문득 그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무너져 내린 얼음덩이 속에서 한 자루의 검(劒)의 손잡이를 발견한 것이다.


" ?"


뇌정각의 창궁부에서 부친이 사용하던 황검을 가지고 나왔으나 애석하게도 그것은 무협의 물 속에서 잃어버렸다. 그 이후 그는 검 한 자루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간간히 하곤 했다.


다만 마음에 드는 검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얼음덩어리 사이에서 보이는 검은 손잡이가 검은 물소뿔로 된 고색창연한 것이었다. 그는 한눈에 예사로운 검이 아님을 알아 보았다.


'이런 곳에서 검이 발견되다니 .'


망설임없이 검을 잡아 뽑았다.


검을 손에 쥔 순간 백룡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고 말았다. 알 수 없는 느낌이 등골을 전류처럼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검은 넉 자에 가까운 장검으로 전체가 흑색이다. 검집은 오래된 교룡의 가죽이었고, 자루 부분은 물소뿔로 깎아 만든 것으로 괴상한 조각이 되어 있었다.


손잡이 끝이 악마두상(惡魔頭像)으로 되어 있었는데 두 눈에 시뻘건 구슬이 박혀 있어 마치 악마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구슬로부터 은은한 혈광이 뿜어 나오는 것이었다.


'으음 . 강렬한 마기(魔氣)다. 이 검은 결코 좋은 물건이 아닌 것같구나.'


그는 망설였다.


마기가 강한 물건은 반드시 마성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그는 마검을 취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이었다.


그는 검을 뽑아보았다.


우우우우웅 !


섬뜩한 음향이 울림과 동시에 시커먼 묵광이 동굴 안을 메웠다. 괴이하게도 검광은 푸른빛이 아니라 묵섬(墨閃)을 뿜어내고 있었다. 또한 검날도 예리하기는커녕 틱틱한 녹이 슬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런 날로는 사람을 베기는커녕 썩은 무우도 자르지 못할 것같군."


그는 검을 도로 검집에 넣었다. 그러나 버리려던 생각을 돌렸다.


'아무래도 상고시대의 유물인 것같은데 어쩌면 내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검노와 검마라면 이 검의 내력을 알 수 있을 지도 모르지.'


검을 등에 멘 백룡은 몸을 돌려 신형을 날렸다.


잠시 후 그는 동굴의 입구에 다다랐으나 여전히 동굴은 막혀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그 한 군데밖에 없었으므로 그는 쌍장에 힘을 모아 혼신의 힘을 다해 뻗었다.


꽈르르르릉!


공력이 배가 급증했으므로 이번의 장력에는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쩌어어억 !


일장에 빙암에 금이 갔다. 그는 다시 장력을 날렸다. 수차례 장력을 날리자 차츰 빙암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약 일 각쯤 지났을 때 빙암은 산산조각이 나며 출구가 뚫렸다.


그가 막 밖으로 뛰어 나가려 할 때였다.


"헉!"


그는 어디선가 다급한 신음을 들었다. 밖에서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가 빙암이 산산조각나자 경악성을 발한 것이었다.


그자를 놓칠 수 없었다.


백룡이 신형을 날리자 저만치 10장 밖으로 달아나는 흑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등 뒤의 검을 뽑아 던졌다.


쐐애액 !


검은 한 가닥의 시커먼 섬광을 그리며 쏘아가더니 묵광과 함께 흑의인의 다리를 휘감았다.


"크아악 !"


처절한 비명과 함께 흑의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백룡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자의 곁에 내려섰다. 흑의인은 쥐눈을 한 자였는데 다리가 깨끗이 절단되어 있었다. 백룡은 검을 회수한 후 차갑게 물었다.


"네놈은 백골곡에서 온 놈이냐?"


흑의인은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그렇다.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고 죽여다오!"


백룡은 싸늘하게 웃었다.


"간단히 죽여달란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네가 나를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렸으니 그만한 대가는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에 흑의인은 의혹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 곳에서 살아 나왔느냐? 그 속에는 무서운 괴인이 있는데?"


"그 괴인은 누구냐?"


"모른다. 그저 무공이 놀라운 괴인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백룡은 새삼 의혹에 잠겼다.


'빙백마제라는 작자는 확실히 무서운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자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안색이 변했다.


'동굴 입구는 계속 폐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자가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니다.'


순간 그는 동굴이 거의 무너지다시피 엉망이 되어 있던 것을 떠올렸다. 문득 한 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자는 백 년간이나 연공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동굴이 엉망이 된 것은 그의 빙백신강의 위력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


무공을 익히는 데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주화입마(走火入魔)라는 것이다. 고강한 무공을 익힐수록 주화입마의 위험은 커진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오랜 세월을 연마해도 물거품이 될 뿐더러 마성에 빠지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혹시 주화입마에 빠져 발광을 하다가 스스로 매장된 것이 아닐까?'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그럴 가능성이 가장 짙다고 여겨졌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녕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밖에 없구나. 백 년 세월을 무공일도에 매달려 있다 성공한 순간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다니 .'


그는 고개를 흔들며 흑의인을 향해 물었다.


"한 가지만 묻겠다. 백골곡은 어디에 있느냐?"


흑의인은 체념한 듯 순순히 대답했다.


"어차피 알게 될 것이니 가르쳐 주겠다. 그 곳은 ."



해골 더미가 곡구(谷口)부터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과연 이 곳을 백골곡이라 부를 만하구나."


백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곡은 호리병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음산한 기운이 흘렀다.


게다가 어둠 속을 떠도는 무수한 인광(燐光)이 마치 저승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만일 일반인이 이 곳에 들어온다면 아마도 지옥의 입구로 착각하고 혼비백산할 것이다.


곡에는 곳곳에 백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그것은 그 동안 백골곡의 녹림도적들이 해친 양민들의 시신을 쌓아둔 것이었다. 오랜 세월간 살이 썩고 백골만 남아 이같은 백골탑을 곳곳에 만들게 된 것이었다.


백룡은 눈썹을 찌푸렸다.


'이런 잔악한 작자들이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다니 .'


그는 주먹을 움켜 쥐었다. 기필코 백골곡을 소탕하리라는 결심이 단단히 섰다. 얼마쯤 가자 다리 하나가 나타났다.


지옥의 입구에 있다는 나하교였다. 다리의 기둥은 사람의 뼈로 만든 것이었는데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놀랍게도 시뻘건 핏물이었다. 그 광경에 백룡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 이 곳이 지옥이라도 된단 말인가? 어찌 물색깔이 핏빛일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나하교 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단순히 물빛이 핏빛일 뿐만 아니라 비린내마저 풍기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정말 피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무리 간담이 크다 해도 이쯤되면 안색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상류 쪽으로부터 무엇인가 떠내려 왔다.


그것은 시신들이었다. 수십 구의 시신이 핏물에 둥둥 떠 흘러내려오는 것이다. 시신들의 가슴은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심장이 빠져나가 있었다.


실로 끔찍한 모습들이었다. 다리 아래의 물이 핏물인 것은 바로 그 시신들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 때문이었다.


나하교를 건너자 안쪽으로 다듬어진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쯤 갔을까. 문득 4, 50명의 흑의인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 ?"


백룡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흑의인들은 백골곡의 도적들이었다. 그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백골문양이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도열한 채 그를 향해 오체투지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가 올 줄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는 것같은 모습이었다.


"너희들은 ?"


백룡은 문득 입을 다물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수십 명의 흑의인들은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숨이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선두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의 가슴을 보니 한 자루의 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병기를 가슴에 박고 죽어 있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백룡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괴사다. 세상에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백골곡은 죽음의 기운에 가득 덮여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더욱 많은 시신들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눈을 부릅 뜨고 죽어 있는 그들의 모습은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계곡의 안쪽에는 방사(房舍)가 있었다. 대규모의 방사로 도적들의 산채였다.


"크아아악!"


문득 공포에 찬 처절한 비명이 한 커다란 방사로부터 울려나오는 순간 백룡은 흠칫했다. 살아 있는 자의 음성으로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는 지체없이 신형을 날렸다.


산채의 한가운데 있는 대전 안에는 실로 상상도 하기 힘든 장면이 벌어져 있었다.


피(血)!


온통 혈해였다. 대전 바닥은 흥건한 피로 물들어 있었으며 이십여 구의 시신들이 뒹굴고 있었다. 끔찍한 것은 그들이 서로를 상잔(相殘)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서로의 가슴에 검을 박고 죽어 있었던 것이다.


간혹 어떤 자들은 상대의 가슴에 손을 쑤셔 넣고 있는가 하면 그자는 또 상대방의 도끼에 의해 머리통이 박살나 있기도 했다.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때였다.


"크아아아악 !"


다시 안쪽으로부터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이어 한 명의 백포를 입은 노인이 비틀거리며 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백룡은 흠칫했다.


그자는 육순 가량의 나이였는데 백포에는 백골문양이 섬뜩하게 그려져 있었다. 머리는 백발이 반쯤 섞여 있었고 안색은 푸른색이었다.


"백골신군!"


놀란 백룡이 중얼거렸다.


그렇다. 진령산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백골신군이었다. 그런데 백골신군은 가슴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그가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는 피가 뭉클뭉클 비어져 나왔다.


쿵!


마침내 시신에 발이 걸린 백골신군이 쓰러졌다. 뜻밖에도 쓰러진 그의 가슴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 !"


백룡은 간담이 써늘했다.


누군가 심장을 파낸 것이었다. 악랄하기 그지없었을 뿐더러 인간이라고 할 수 조차 없는 잔인무도한 행위었다.


'세상에 흡혈악마(吸血惡魔)가 정말 존재한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악!"


그의 귀에 익은 날카로운 비명이 들린 것이다. 소리가 들린 즉시 그는 안채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사라!"


안채로 쏘아가며 그는 황급히 외쳤다.


과연 사라는 그 곳에 있었다. 그녀는 무엇에 놀란 듯 멍청히 선 채 창 밖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


"용, 용 오빠 !"


문득 사라는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었으며 가슴에는 피가 뿌려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양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어떻게 된거냐?"


백룡은 다급히 물었다. 다행히도 사라는 아무런 상처도 없는 것같았다.


"흐흐흑 ! 몰라요. 어떻게 된 일인지 흑흑! 무서워요!"


그녀는 백룡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정신없이 오열했다. 백룡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물었다.


"누가 이런 짓을 ? 이 곳의 일은 대체 어찌된 거냐?"


그러나 사라는 울음을 계속할 뿐 똑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흑흑 . 뭐가 뭔 지 모르겠어요. 깨어났을 때는 그저 비명 소리가 들릴 뿐 . 무, 무서웠어요."


백룡은 다급히 물었다.


"방금 창 밖으로 달아난 자를 보았느냐?"


그러나 사라의 말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몰라요. 다만 핏빛 옷을 걸친 뒷모습만 보았을 뿐이에요."


백룡은 그녀를 진정시키고 산채 안을 둘러 보았다.


놀랍게도 이미 살아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삼백 명에 달하는 자들이 모두 살해된 것이다. 마치 무서운 전염병이 산채를 한바탕 휘젓고 지나간 것같은 풍경이었다. 산채는 이미 죽음의 장소로 화하고 만 것이었다.


"그 그만 이 곳을 나가요. 용 오빠."


사라는 그의 소매를 붙잡고 애원했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녀가 이런 경험을 하고도 죽지 않은 것이 천행일 뿐이었다.


의혹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으나 일단 그 곳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인 듯했다.


'언제고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 비록 이 곳은 좋은 곳은 아니지만 이런 지독한 행위는 인성(人性)을 가진 자가 한 짓이 아니다. 이렇게 잔혹한 살수를 쓰는 자라면 세상에 무서운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백룡은 의혹을 안은 채 백골곡을 나섰다.


백골곡을 완전히 빠져 나왔을 때는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진령산의 고봉이 솟는 햇빛을 받으며 만년설빙으로 빛나고 있었다.


햇살에 반사되는 빛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일은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


"어서 가요 ."


사라는 거의 안기다시피 기대며 재촉했다. 그녀는 지난 밤의 일을 떨쳐버리려는 듯 진저리치며 이따금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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