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편의점 그녀는 이중인격자...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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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가지망생
댓글 0건 조회 2,820회 작성일 17-02-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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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세명의 장님이 길을 가다가 코끼리를 만났다.
한 장님은 코끼리 꼬리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밧줄처럼 부드럽게 휘어지고 붓처럼 털이 달려있다 하고
다른 장님은 코끼리 코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구멍이 두개 뚫린 커다란 자바라 호스처럼 생겼다고 하고!!
마지막 장님은 코끼를 다리를 만지고는 코끼리란 놈은 문설주 기둥마냥 굵고 둥그랗다고 했다.
결국 3장님은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며 싸웠다.
인간은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판단하고 성급하게 결론 짓는다.


-바보-

 

쫙!!!!!!!!

쫙!!!!!!!!


6시
편의점의 아침 6시
언제나 화기애애한 미소와 웃음소리가 가득하던 그 시간
이곳 편의점 안에서 울려퍼지는 두번의 따귀 소리.
그 소리는 이질적이고 살벌하였다.

때리고 나니 밀려드는 후회, 자책감, 모멸감, 미안한 마음...
인간 아니 남자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버린 속좁은 숫컷의 안절부절한 행동.
눈을 마주치는 것이 괴로웠다. 고개가 저절로 푹 숙여졌다.

고개를 숙이자 시간 체크하려고 깨내놓은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아!!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 깨달음.

핸드폰!
동영상, 사진!
그제서야 지연이가 계속 나에게 강요한 질문의 대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나체 사진 그리고 섹스를 담은 핸드폰 동영상
자신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찍어논 그것들을 본 기분. 당연히 나빴겠지...
당연히 사과를 요구하고 손찌검도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정말 맞아도 싼 짓이었다. 그런데 방귀낀 놈이 성낸다고 오히려 내가 손찌검하다니...
때린 것도 미안하고 핸드폰 사진과 동영상도 미안하고....정말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지연아....미안해..정말 미안해. 난...난 말야 정말...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
"내가 짐승같은 짓을 한 것 같다. 너한테 상처줄게 뻔한..상처줄 수 있는..그런 짓을...정말 미안하다.."

딱히 할만한 변명이 없었다. 고개를 숙인채 "미안하다"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흑흑.."

숨죽여 흐느끼는 지연이의 울음소리. 죄의식이 두배가 되었다.
카운터를 돌아가서 울고 있는 지연이를 안아주었다.

"정말 미안해 지연아...정말...내가 잘못했어. 내가 나쁜놈이야 미안해.."

한참을 그렇게 안아주자 지연이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살짝 나를 밀치고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지연이가 나에게 말했다.

"오빠....나 사랑해?"

갑자기 사랑하느냐고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막연히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런 사진과 동영상도 이해해 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하는 추측뿐..
그리고 다른 하나의 추측은 나와 같은 고민의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지연이를 마녀로 비난한 나역시 별로 크게 다른 입장은 아니었다.
아니 똑같았다. 나 역시 지연이를 비난할 입장은 되지 않는다.
지연이와, 천사인 지연이와 사귀고 있으면서 전화로 굿나잇 키스를 보내고
성실하고 착한 남자 친구로서의 로맨틱한 연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한껏 과장해서 보여주고 나서 한 짓이라는게.

클럽 가려고 잔뜩 치장하고 나와서 술취한 골뱅이를 꼬셔다 섹스한 것이다.
단지 그 술취한 골뱅이가 지연이라는게 정말 황당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연이 역시 어쩌면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 과연 평소의 성실한 편의점남인지 아니면 클럽 죽돌이인지..
자신이 만나는 남자의 속마음이 그냥 어떻게 한번 따먹고 싶어서 발바둥치고 이빨까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진실된 연인으로서 사귀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을 고민했을 것이다.

"오빠....나 사랑해?"라는 질문은 정말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 아니었다.
물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어쩌면 조금은 가벼웠던 천사 지연이를 향한 마음은 주말의 사건을 계기로 진짜 내 마음은 어떤지 돌아볼 계기가 되었고 그 결론은
"나는 진심으로 클럽죽돌이의 생활을 끊어버리고 진정한 연애를 해볼 생각으로 6시 천사 지연이를 만나고 있다"였다.
대답은 확고하였다.

"사랑해"

하지만 그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고백하고 나서 바보처럼 조롱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의 행동, 천사와 마녀 2가지 상반된 극과 극의 행동이
커트형님이 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진짜 단지 나를 가지고 놀기 위해서 한 행동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지연아 그전에 먼저 묻고 싶은게 있어. 지연이 넌 나 사랑하니?"

"나는 오빠 진짜로 사랑해. 그 누!구!에게도 놓치고 싶지 않아"

천사의 표정은 확고했다. 너무도 진지했다. 특히 그냥 사랑해라는 대답보다
"그 누구에게도" 라는 문구는 그녀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심을 담은듯 했다.
확신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확신이 들었다. 그녀의 마음은 진짜였다.
화답 해주어야 할 시간이다.

"지연아 오빠는 말야...진짜 혼란스럽고 복잡한 심정이야. 그런데 한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난 너 사랑한다."

"오빠....나 왜 사랑해? 나 어디를 사랑해?"

드디어 핵심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그녀의 질문의 핵심을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천사와 마녀의 행동을 했는데도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
자신의 어떤 모습(천사의 모습 혹은 마녀의 모습)을 좋아하느냐는 질문.

"지연아..난 너의 환한 미소가 천사같은 아니 그러니깐 그 이렇게 동그랗게 눈뜨는 예쁜 미소가 좋아.
보는 사람의 기분을 밝게 해주는 그 외 너 맨날 눈이 초승달처럼 되는 미소 있잖아.
아침에 정말 졸리고 힘들고 외로운 밤근무에 지쳤을 때, 니 미소를 보면 진짜 한줄기 햇살같아서 힘들고 외로운 마음이 사악~ 사라졌거든..그리고 특히 여기 모금함에 동전을 넣을때 니가 웃는게 정말 따뜻한 마음이 가득 느껴져서 계속 너를 쳐다보게 되고 니 미소를 그리워 하게 되고 그리고...니 미소를 언제나 바로보고 싶어서..그래서 차가운 내마음 속에도 따뜻한 마음을 불어 넣어줬으면 해서...그래서 좋아. 그래서 사랑해. 그래...그러니깐 나는.."

[딸랑딸랑]

아 젠장 저 개자식 18놈..가장 중요한 말을 해야할 타이밍에 저 씹어먹을 놈은 또 방해를 한다.
언제나의 그자식이 나와 지연이의 아침 대화를 방해하던 그자식이 또 방해한다.
아 고문관 같은 색히...

지연이와 나는 황급히 떨어졌다.
카운터로 돌아가서 지연이의 생수와 삼각김밥을 계산하면서 내뱉지 못한 가장 중요한 말을 눈으로 전했다.

"그래...그러니까 난 지연이 니가 마녀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아니 앞으로 마녀를 안했으면 좋겠어."

내 마음이 받아졌는지 그녀의 얼굴은 환한 예의 그 초승달 미소,
눈이 초승달처럼 그려지는 예쁜 천사의미소로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오빠..........나 맛있는거 사줘."

"으...응"

"저녁에 봐"

"응"

손을 흔들며 예의 그 예쁜 초승달 천사표 미소를 지으면서 지연이는 편의점을 나갔다.
지연이가 안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그녀를 배웅하였다.

그녀의 마음, 모든 의문이 확실하게 풀린 것은 아니지만, 가장 궁금해 하고 가장 걱정되었던 의문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만나는 것일까? 아니면 장난으로 만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해결되었다.

앓던 이가 빠진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정말 너무도 상쾌하였다.

"여..여기 계산요.."

즐거운 기분이 이어질 때. 꼭 방해하는 인간이 있다.
캐생키...생긴게 딱 군대있을때 고참 여럿 괴롭혔을 고문관 새키...
아 시밤 기분 확 나빠진다. 이 캐생키..이생키만 아니었으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을 텐데..
다른 궁금증도 바로 풀 수 있었을 텐데.

신경질적으로 요놈의 잡것이 내미는 생수와 김밥을 확 낚아채다가 과격하게 삑!삑! 바코드를 찍고 돈을 받아다
금고를 확 잡아빼 열어서 잔돈을 꺼내고 금고가 부셔저라 쾅! 하고 닫으면서 휙~ 잔돈을 뿌려버렸다.

"여깃수다."

앗! 흐흐... 속으로만 한다는게 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조금은 의도적이었을지도...

황당한 표정으로 잔돈을 받으며 나가는 그놈을 보며 속이 다 후련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해버린다는 것은 이렇게 속시원한 일이다.

밤새 했던 고민이 정말 어이 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땡큐~베리마취 소리야, 감사 황공무지입니다. 커트형님들!"

마음이 밝아진다. 따뜻해진다. 그녀의 미소가, 6시 천사 지연이의 환한 미소가 나를 따뜻하고 환하게 비춰준다.
내 얼굴은 마치 추석 대보름달을 바라보며 "유희왕 카드 전집 사주세요!" 따위의 소원을 비는 어린 조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마냥 밝아지고,
내 입에서는 어린 손자들의 재롱섞인 매달림에 쌈짓돈을 꺼내는 할아버지마냥 꾹 참으려는 웃음이 비실비실 세어나온다.

지연이는 천사다. 사랑스럽다.
지연이는 마녀다. 섹시하다.
그리고 나는 사랑스럽고 섹시한 그녀를 사랑한다.

그런데 나는 정말....바보였다.
정말.....
.
.
.
.
정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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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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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이 아주 그냥 2개월 넘게 휘~익 점프~)
.
.
.
.
.
정말 파랬다.
정말 파란 하늘이었다.
그냥 파랗다는 말로는 그 청명하고 가슴 시원해지는 색깔을 표현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정말 파란 하늘이었다.

이마 한가운데를 지나 흐르는 땀이 주르르 흘러서 입가에 맴돌았다.
짜다. 짭짤했다. 맛있는 소금기가 입가를 간지럽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못느꼈는데, 허리를 쭈욱 펴고 하늘을 바라보며 맞는 바람은
이젠 가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시원한 바람이었었다.

그 시원한 바람에 연상되는 것은 시원한 웃음 소리였다.
아 중증이다...심각하다. 큰일났다.
또 이제는 지겨울 지경인 심각한 번뇌에 빠지려던 순간 나를 구해준 것은 어머니의 호통소리였다.

"고구마 안캐고 무신 농땡이 부려쌋냐 빨리 호미질 혀라이"

"아따 어매요. 어떤 어매가 설서 고생고생해서 내려온 아들내미를 이리 부려먹는당말요"

에휴...이게 뭔 고생인가 싶다. 이래서 내가 연휴에 고향 내려오기가 싫은것이다
아마 추석에 시골 내려온 아들 고구마 캐도록 부려 먹는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 뿐일것이다.

"요거 겁나 후딱 해부리고 거시기 그 머다냐 밤에 읍내 나가서 니 사촌 성아 딸내미 좀 델꼬 와부러라"

"하이고..아주 뽕을 뽑으쇼 뽕을 완전 종부리듯 해부네"

"워메 잡것 고만 씨부려쌋고 후딱 일이나 혀라"

"아따 나 진짜 다리밑에서 주서온거 아녀? 진짜 너무 해싼네..워메 울 진짜 어매는 어디 계신교~~어매요~~ "

"워메 시끄러운그 바늘이랑 실 어딨냐 내가 주둥이 꼬메부러야 쓰겄다."

"워메 살려주쇼. 근데 어매요 그 사촌성님 딸내미가 혹시 은빈이요?"

"오야"

"워메 근데 고것이 폴쎄 고등학생이요?"

"그라제"

"워따 세월 참 후딱 지나가부네"

"니를 봉께 더 그랑거 같다. 토실토실한 것이 다라 안에서 혼자 꾸물꾸물 댐시롱 놀다가 어퍼져가꼬 울던게 엊그제 같은디"

"아따 언제적 얘기요"

말은 저렇게 하시지만 그 정겨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 어떤 개그보다 재미있으시다는 표정으로 나를 구박?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계속 툴툴 거리면서도 어머니에게 장난을 치며 일을 하는 나.

나는 막내다. 어머니와 나이차가 많이 난다.
어머니께서는 3남3녀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시느라 그야말로 허리가 빠지도록 일만 하신 전형적인 한국의 억센 어머니이시다.
당연히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아니 보살핌을 많이 못받고 자랐다. 서울 올라오면서 특히 더..
거의 형과 누나들이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 하였고 어머니는 시골에서 일을 하셨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어머니의 막둥이 사랑을 잘 알고 있다.
아마 우리 형제자매들중 졸업식에 어머니와 사진 찍은 사람은 내가 유일할 것이다.
아! 한명 더있다. 우리 큰형........쳇...2등인가.

자식사랑을 표현할 틈도 없이 끊임없이 일만 하시며 젊은 날을 다 보내신 어머니.
이제는 더 일하지 않아도 되건만 그 억센 고집을 자식들은 도무지 꺽을수가 없었다.
이렇게 밭일을 하면서 자식사랑을 보여주신다.
자신이 직접 일군 농작물을 싸주는 재미로 사시는 어머니.
막둥이 사랑은 어머니가 싸주시는 짐보따리 크기에서도 나타난다. 작은형네 짐보따리 보다 훨씬 큰 내 보따리

"에구 어머니 혼자 자취하는 내가 뭐 이리 많이 필요하다고 이렇게 바리바리 싸주시는 겁니까...에효.."

하지만 자신의 품에서 너무 일찍 떨어져 나가 형과 누나들 손에 키워진 막둥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실 거리가 짐보따리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언제나 군말없이 그 큰 사랑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가곤 했었다.

어머니가 자신의 막둥이 사랑을 보여줄 거리가 별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막내인 나역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거리가 별로 없다.
돈을 드려도 한사코 사양하신다. 도저히 안받으셔서 대문앞에 돈봉투를 던져놓고 가도
결국은 돈을 부쳐서 되돌려 보내버리시는 진짜 옹고집 우리 어머니.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하는 밭일은 그냥 밭일이 아니다.
사랑표현할 줄 모르시는 어머니와 사랑표현할 거리가 없는 막내아들이 만드는 한편의 만담극이다.

이놈의 고구마만 해도 그렇다.
2만원이면 한상자를 살텐데 다섯고랑 허리가 부서져라 어머니와 캐서 나온게 꼴랑 10박스 정도?
솔직히 이 고구마 기르고 가꾸는 시간에 일해서 번 돈으로 사는게 더 이득일 것이다. 
그마저도 넉넉하게 나와서 우리 형제들에게 나눠줄 양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 나누며 같이 일한다는 것에 더 큰 의의가 있다.

고구마가 실하다.
오늘 저녁 배터지게 생겼다. 추석에 고구마 쩌먹는 집은 아마 우리집 뿐일게다.

"아따 근데 어매는 전도 안부치요~?"

"니 형수들이 잘 하겄제. 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란다"

"워메 뭔 어매가 일케 무책임하다요 하이고~"

"빠딱빠딱 일이나 혀라 해 너머가긋다"

고구마 다 캐자 허리가 끊어지는 기분이다. 하으으윽
하아...이런 일을 평생해오신 어머니는 어떠셨을까? 후우...다시금 고개가 숙여진다.

"아따 근데 이 잡것들은 놀때는 겁나 앵겨붙더니 밭일하러 간다니깐 코빼기도 안보이네"

"글마들은 전 부치고 있겄제"

잡것들...8놈이나 되는 조카들.
놀때는 삼촌 삼춘 하면서 달라 붙으면서 일하러 가자니깐 다들 슬그머니 내빼버렸다.
요것들을 콱!

실한 고구마 10박스를 실은 리어카를 슬슬 끌고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이제 진짜 가을인가 보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 너무 이르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오후06:00]

만담극의 끝이다. 신식으로 지은 벽돌집에 도착하였다.
3년전만 해도 기와집이었는데 너무 오래된 낡은 집이라 형이랑 누나들이 돈을 모아 새로 지었다.
물론 난 구경만...쩝쩝.

"야이 잡것들아~~"

"아이 참 도련님 그렇게 부르면 안되요"

어머니집에 도착하자 마자 우렁찬 큰소리로 조카들을 부르자 이내 큰형수님이 애교석인 질책이 이어진다.
이제 3살된 큰형네 3째 형진이는 내말투를 곧잘 따라한다. "잡것들아"는 어느덧 형진이의 단골 매뉴였다.

"와아~ 삼촌~~~"

"요 잡것들 고구마 캐러 가잘때는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이거 캐오니깐 요난리네"

8명이나 되는 조카들이 우르르 몰려 나온다. 귀여운 조카들의 온몸을 실은 포옹공격이 이어졌다.
한놈한놈 안아주면서 볼을 양손으로 잡아 당겨주고는 "으헝~"하면서 호랑이 흉내를 내자
다들 "와아~~~~~~"하면서 뿔뿔히 흩어져 버렸다. 그야말로 시장통이 따로없다.

"아가 거시기 혔냐?"

"네 어머니 전 부쳤구요. 나물도 무쳐놨구요. 송편은 조금 있다가 다들 모이면 같이 모여서 빚을려구요 그리고 생선은 어머님이 시키신대로 전어랑 병어 조기 이렇게 사놨어요"

"겁나 수고혔다. 생선은 내가 할팅깨 너는 이제 좀 숴어라"

"아니에요 어머니 저도 어머니 생선 조리하는 법 배워야죠."

"아이고 형수님. 형수님이 알아서 잘하시니깐 엄마가 명절에 집안일은 안하고 밖에 돌아다니기만 하자나요 적당히 하세요~"

"호호호 도련님도 참 애들이랑 아가씨가 도와주셔서 금방 했어요"

"나좀 살려주세요 형수님. 오늘도 밭에서 고구마 캐고 와서 허리가 뿌러질라 그래요.
어매요 형수한테능 생선 하는법은 절대 갈치지 마쇼잉"

"호호호"

"실없는 소리 그만혀라"

어머니가 두리번거리며 거실을 쳐다보다가 이내 뚱한 목소리로 큰형수님께 물어보았다.

"거시기...짝은애는?"

"아..그게 어머니 속이 매슥거리다고 해서 방에 들어가 쉬라고 했어요"

작은 형수는 참 대단하다. 어떻게 명절에 내려 올때마다 아프다더니 이번엔 덜컥 2번째 임신을 해왔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어떻게 명절때마다 쉴수 있는 핑계거리가 생기는 건지..

"아따...갸는 왜 그런다냐"

"임신했자나요 봐주세요 어머니"

"하이고 나는 요노마 밭에서 김메다 낳써야"

"아따 어메가 그래 낳아 가지고 내가 맨날 뺀질나게 밖으로 싸다니자나요 짝은 형수는 좀 쉬게 해주쇼"

"막둥이 왔냐"

막내누나. 밖에서는 언제나 딱 달라붙는 여자 정장에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으로 차가운 한기를 풀풀 날리는 회사원이지만 집에서는 특시 시골집에 내려와서는 언제나 반쯤은 감긴 눈에 허름한 트레이닝복, 그나마 나와 같이 지낼때는 트레이닝복이라도 좀 깔끔한거 입었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입던 몸빼바지에 헐랭하고 촌스러운 꽃무늬가 요란한 옷을 입고서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나오고 있었다.

"뭐야 누나 내 나이가 몇갠데 아직도 막둥이래"

"까분다. 니가 애를 낳고 결혼을 해서 할아버지가 되어도 닌 막둥이다 쪼끄만한게"

"머야 내내 잠만 잔거야? 난 밖에서 어매랑 고구마 캐느라 허리 뿌러지는 줄 알았는데"

"시끄러야 내가 전부칠 때 간보느라 얼마나 애먹었는데"

"뭐야 그럼 옆에서 주워 먹기만 했다는 거자나"

"아니에요 아가씨가 많이 도와줬어요"

"호호~ 역시 언니가 최고에요 언니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아따 진짜 큰형수님 그렇게 다 받아주시면 안되요 "

"아니에요. 그리고 아가씨도 어차피 이게 마지막 여유있게 보내는 추석일텐데 쉬어야죠"

"아이 참 언니도 난 결혼 안해요"

"아따 시끄라야 너 이 잡것 요번에 니 큰 형수가 소개시켜준 그 사람이랑 꼭 날 잡아라잉~"

"아이 참 엄마는 난 안한다니깐 아후 시끄러워 나 들어갈래"

"조 잡것 어디 내빼냐 야그해봐라 니들 둘만 보내면 내가 그날 죽어도 원이 없겄어야"

"아따 어매요. 어매가 죽으면 큰일 낭께 나랑 막내누나는 절대 결혼하면 안되불겄구만 누나야 절대 결혼하지 말아라잉"

"오따 조것이 큰일날 소리 하내 어디 방정맞은 소리를 하냐 콱 입을 꼬매불라"

한참 어머니와 큰형수님 막내누나와 이야기 하는데 "어흥~" 한번에 뿔뿔히 흩어져 도망친 요잡것들..
아니 귀여운 조카들이 이내 다시 돌아와서 장난을 걸어온다.

"삼촌~~ 나 잡아봐라"

"으헝헝헝헝~ 잡히면 으앙 하고 잡아 먹을테다 어떤 놈 살이 제일 부드러운지 보자 으헝헝"

"아이 참 도련님 그런 말 하면 안된다니깐요. 애들이 배워요"

큰형수님이 눈을 곱게 흘기며 내 팔을 꼬집는다. 물론 아프지는 않다.

"아고 아파라~ 나는 큰 형한테 배운거 고대로 써먹는 거니깐 형을 혼내요 나는 잘못없음!"

"도련님!"

"큰형수님이 내팔 꼬집었으니 난 형진이 잡아야 겠다 으허어엉"

"나 잡아봐라 와아~~~~~ "

"도련님 장난 그만 치고 빨리 씻고 오세요. 저녁 먹어야죠"

"하하 난 형진이 잡아 먹으면 되요 형진이가 더 맛있어"

"아앙 형진인 맛 없쩌용 꺄캴캴캴 "

"내가 더 맛이쪄. 소진이 볼 물어요. 내볼이 더 맛있쪄"

"어디 그럼 일단 형진이 코를 한번 먹어본다음에 소진이 볼 맛을 봐야겠다 으헝~"

"아이참 도련님 애들한테 뭔소리를 하는거에요!"

"하하하 난 잘못없다니깐요 당한거 고대~~로 하는거에요."

"삼촌~~삼촌~~~ 나! 나! 나 맛있어"

"아냐 나!나! 내께 더 맛있어"

"소진이께 더 맛있데~요~~"

"뭐야 이거 누구 볼이 제일 맛있는거야? 응? 안되겠다 그냥 다 한번씩 물어 뜯어봐야겠다 으헝헝~ "

"와아 꺄~~ "

시골집 마당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차서 둥실 떠오른다.
해가 빨리 떨어지는 시골마을의 밤하늘에 어느새 예쁜 보름달이 둥실 떠있다.

이곳은 정(情)의 근원지, 정(情)이 넘치는 곳,
이곳은 정(情)이 없는 도시에서의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푸는 곳,
그리고 이곳은 정(情)이 없는 도시에서 상처받은 아니 상처입힌 멍청한 바보의 피난처.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로 화투장을 꺼내서 한판을 시작하려는 어르신들을 위해서 조카들을 소몰듯이 우르르 몰고 나왔다. 마을 회관앞 너른 공터. 아무것도 없는 그냥 너른 공터인데 조카들의 흥분은 최고조에 도달해버렸다.
까불면서 방방뛰고 소리지르고 난리도 아니다.

조명도 없는 공터인데 밝디 밝다. 보름달 덕분이다.
보름달이 환하다. 오늘이 한가위 하루 전날이라는 것을 강조라도 하듯이 정말 환하고 밝다.
보름달...그녀의 환한 미소가 떠오른 얼굴......

"삼촌~~ 삼촌~~ 삼촌~~ "

조카들이 난리법석이다. 언제나 처럼 불꽃놀이할 폭죽을 잔뜩 사와서 불을 붙여주고 있었었다.
잠깐 그녀 생각을 하면서 손을 놀리는 사이를 못참고 요 잡것들이 재촉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야이 잡것들아!! 어흥~~~ "

"와아~~~"

손에 불꽃놀이 막대 하나씩 들고서 빙글빙글 돌리며 삼촌에게서 도망친다고 야단이다.
그 와중에 막대에 불을 못붙힌 형진이만 엉거주춤하면서 도망을 가야하는지 삼촌에게 불을 붙여 달라고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결국 잡히고 말았다.

"으헝헝헝 형진이 어디 물릴래? 볼따구? 코? 귀? 입? 아니면 다 물릴래?"

"으아아아 아니 아니 형진이 맛없어 깨물지마요"

"형진이 볼 맛있는거 동네에 소문 다 났는데? 안되겠다 볼따구 물어야 겠다."

"으아아아.,,,으어어어어엉엉엉엉엉"

귀여운 놈!! 클클클흘흘 살짝 쎄게 깨물었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형진이 아팠어? 어이구 쭈쭈쭈"

"엉엉엉엉엉엉엉엉"

"자자 알았어 여기 불 붙여줄께 자"

불꽃놀이 막대에 불을 붙여주자 이내 울음을 멈추고 막대를 찬찬히 바라보던 형진이
이런 조카들을 볼 때마다 어쩜 이렇게 귀여운지...깨물어주고 싶다는 표현이 괜히 나오는게 아닌것 같다.

"으헝~ 또 잡히면 또 물어줄테다!"

"와아~~~~~ "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그렁그렁한 눈을 반짝이며 형진이는 "와아~~ "소리를 지르며 조카들이 놀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나갔다.

"끌끌 귀여운 것들"

한마장 즈음 떨어진 곳에서 무리지어 불꽃놀이하고 있는 조카들을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았다.
조카들이 흔들어대는 불꽃놀이 막대의 움직임들이 클럽의 흔들리는 사이키 조명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그녀가 걸어나와 나에게 미소를 짖는 환상이 보였다.

중증(重症)이다.
심각하다.
큰일났다.
더이상 회피할 수 없다.
결판을 내야 한다.

거의 모든 일상생활에서 그녀가 연상된다.
이젠 어떤 무언가를 집중해서 해볼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집중할라치면 그녀의 환상들이 나를 옭아매버린다. 정신줄을 날려버린다.

처음 그녀의 비밀을 알았다고 생각했을때....생각한 것은 회피였다.
천사와 마녀의 두가지 케릭터의 지연이를 나는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커트형님들과 소리의 조언에 따라 그녀와 "맞장"을 뜨고서는 마음을 고쳐먹었었다.
그녀를 사랑하기로 하였다. 그녀의 모든 것을...천사도 마녀도 지연이도..모두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웃으면 눈이 초승달 같이 예쁘게 되고 얼굴은 보름달 같이 환하게 미소 짖는 그녀.
환하게 웃고 밝은 마음을 지니고 있고 활달한 표정으로 대화하는 그녀.

섹시하고 매혹적인 동작으로 뭇남성들을 뇌쇄시키는 매력을 지닌 그녀.
침대에서의 화려한 스킬로 남자의 성적욕망을 극대화 시키는 그녀.

수많은 매력을 가진 그녀.

그.러.나

그것은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그녀의 진짜 비밀.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었다...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다.
그래서 포기했었다. 포기를 선언했었다.

그런데 "포기하면 편해"라는 말이 언제나 맞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포기하고 잊어버리려 했는데 머리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가야겠다.

그녀에게로

더이상 피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결정하기가 ...너무 힘들다.

힘들어서

 

정말

 

미치겠다.

 

ps-힝....보고 싶다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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