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정서와 기억 - 감정으로 물들인 바래지 않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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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2회 작성일 16-02-0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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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으로 물들인 바래지 않는 기억”이라는 다소 시적인 표현을 이해하지 못할 독자는 없을 것이다. 아주 슬펐던 혹은 아주 기뻤던 일들이,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우리의 삶이 자연스럽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떨렸던 첫 만남이나 절망스러웠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기억뿐만 아니라, 9/11 참사 같은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경험한 충격적인 사건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기억에 끼치는 감정, 기분, 정서의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정서와 기억에 관한 흥미로운 심리학 연구를 얘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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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참사처럼 충격적인 사건들이 우리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감정이나 정서가 우리의 기억에 끼치는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출처: Robert at en.wikipedia.org>


우리의 일상 경험뿐만 아니라, 조건을 보다 엄격히 통제한 실험실 상황에서도 이러한 정서의 영향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정서적인 단어들(욕이나 성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을 중립적인 단어들 보다 훨씬 더 잘 회상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그림들을 보여주고 일 년 후에, 봤던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을 섞어낸 후 봤던 그림을 찾아내라고 하면 중립적인 그림들보다 정서적인 그림들을 훨씬 정확하게 잘 찾아낸다고 한다. 아울러 정서 처리에 편도체(amygdala)라는 대뇌 구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fMRI 같은 뇌영상 장비로 살펴보면 이 편도체가 정서적인 단어를 보고 기억해 낼 때 훨씬 높은 활동을 보이며, 편도체가 손상을 입은 환자는 일반인과는 달리 정서적인 내용에 대한 기억 증진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의 정서는 어떻게, 그리고 언제 우리의 인지 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우선 기억 과정이 부호화, 저장, 인출이라는 세 과정을 거쳐 일어난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 정보처리과정에 정서를 대응 시켜보자. 그러면 당연한 첫 가능성으로, 우리들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초기 과정 즉 부호화 과정에서의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정서 상태가 선택적으로 특정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게 할 것이고, 그 정보를 처리하여, 정서가 동반되지 않는 기억에 비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기억 흔적으로 남겨 놓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가능성으로 인출 과정에서의 영향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현재 경험하고 있는 정서 상태가 여러 정보 중 그 정서 상태에 맞는 정보만을 끄집어내도록 일종의 길처럼 작용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부호화 단계 건 인출 단계 건 정서가 ‘기억하기’의 맥락 혹은 상황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기억하기’라는 ‘축구경기’가 열리는 ‘축구장(홈구장 혹은 상태 팀 구장)’이 ‘정서’가 되는 셈이다. 개들도 자기 동네에서는 한 점 잡고 들어가듯이 정서가 기억에 한 수 잡고 가게 하는 것이다.


기분 일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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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의 경우 기억력이 저하되는 게 보통이지만 다른 기억보다는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들을 더 자주 기억해 낸다고 한다. <출처: gettyimages>


이러한 맥락의 효과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 기분일치(mood congruence) 효과와 기분-상태 의존(mood-state dependent) 인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현재 정서 상태와 맞는 즉 일치하는 정서적 기억을 더 쉽게 인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슬픈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지난 과거를 생각해 기억해 내다보면, 다른 것보다 슬펐던 사건들이 더 잘 마음에 떠오르게 되는 현상이다. 전형적인 예가 우울증 환자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들의 경우 기억력이 저하되는 게 보통이지만, 다른 기억보다는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들을 더 자주 기억해 낸다고 한다. 필자도 이따금씩 개론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과거 몇 년 동안에 회상할 수 있는 것을 적어 제출하라고 한다. 학생들이 적어 놓은 것을 보며, 학생들의 과거 자체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그 학생이 현재 어떤 상태 인가를 알아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분-상태 의존 기억




비슷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는 현상이 두 번째의 기분-의존 기억 현상이다. 이 현상은 부호화 할 때의 정서 상태와 인출 할 때의 정서 상태가 일치하면 기억해 내기가 쉽다는 발견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슬플 감정 상태에서 외웠던 단어는 슬픈 기분 상태일 때 회상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며, 즐거운 기분 상태에서 배운 것은 즐거운 정서 상태에서 기억을 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통 이러한 기억 효과를 포괄해 상태 의존 기억이라고 하며, 물리적 환경이나 약물에 의한 맥락 효과도 포함된다.

실험 상황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해 하는 독자가 있을 것 같으니 부연 설명을 하자. 보통 대학생 집단을 피험자로 사용해, 반은 슬프고 우울한 상태로 유도하고 나머지 반은 명랑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조성한다. 어떻게? 여러 가지 기분을 유도하는 방법이 있다. 가장 쉬운 것이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와 같은 우울한 곡을 들려주거나, 모차르트의 ‘소야곡’ 같은 경쾌한 음악을 듣게 해 기분 상태를 만들면 된다. 혹은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필자의 동료는 예전 정서에 관한 실험을 하며, 우울한 정서를 유발하기 위해 서정주의 “애비는 종이 었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로 이어지는 ‘자화상’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출생과 과거에 대한 회환과 절망 상태를 표현했기에 우울한 감정 상태에 안 빠질 수 없는 시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원하는 대로 특정 정서 상태를 만들었는지 확인을 해야 된다. 그러고 나서는 단어쌍이나 텍스트를 읽고 기억 하도록 한 후, 나중에 같은 정서 상태나 다른 정서 상태를 만든 후 학습했던 것을 회상하게 하면 된다. 결과는 독자들이 기대한 대로 이다. 같은 정서 상태에서의 학습과 회상을 한 조건이 다른 조건보다 좋은 기억을 보인다.


정서의 표현 통제




정서, 기억, 정서 표현의 통제와 관련하여, 최근 흥미로운 연구들이 시작되고 있어 이 자리를 빌려 간략히 소개하겠다. 필자는 처와 같이 TV 연속극을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괜히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정을 쳐다보곤 한다. 왜? 아니, 옆에 있는 처와 손잡고 같이 눈물을 글썽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어떤 이유에서건 필자는 정서를 억압하는 감정을 숨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최근 심리학자인 리차드와 동료들은 이런 외적 신호로의 정서 표현을 억압하는 것이, 인지적 기능을 저해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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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 표현을 억압하는 것은 인간의 인지적 기능을 저해할까? <출처: gettyimages>


이들은 실험 참여자들에게 부상당한 남자의 영상을 보여주며 부정적인 정서가 유발되도록 하였으며, 영상과 함께 그 남자의 이름, 직업, 부상 상태에 관한 정보를 음성으로 들려주었다. 그리고 실험 참여자들을 무선적으로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에게는 영상을 보며 정서를 나타내지 못하도록 하는 즉 규제적인 지시를 하였으며, 다른 집단에게는 특별한 지시 없이 보게 하였는데, 실제 전자의 지시를 따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늘 어떤 형태로든 내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서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정서를 숨기고 표현을 억압한 참여자들이 음성 정보에 대한 기억 검사에서 훨씬 낮은 점수를 보였다는 결과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서에 대한 통제 혹은 규제가 기억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연구자들은 정서 표현을 억압하는 과정이 부적 피드백 루프를 통해 일어나며 우리의 주의 자원을 소모하는 것이기에 나타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의 억압이 기억뿐만 아니라 면대면의 상호작용 소통에도 장애를 준다는 결과도 인용하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 Richards, J. (2004). The cognitive consequences of concealing feelings.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3, 131-134.




김영진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켄트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며 [인지공학심리학:인간-시스템 상호작용의 이해], [언어심리학], [인지심리학], [현대심리학개론] 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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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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