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생생한 상상에 지배당하는 인간 - 내가 해 봐서 안다는 생각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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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9회 작성일 16-02-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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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주위에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다. “내가 해 봐서 안다” 혹은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러이러하니 내 말을 따라라” 등. 대부분 자신의 예전 경험을 강조한 말들이다.

그런데 이 표현에도 인간이 저지르는 다양한 실수와 오류의 함정들과의 연관성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볼만한 것이 이른바 ‘내 생각 속에서 생생한 것’이 실제 세상에서도 그러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즉, ‘생생함의 노예’가 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생생함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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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K로 시작하는, 즉 K가 첫 번째 자리에 오는 단어와 K가 세 번째 자리에 오는 단어 중 어느 것이 더 많을까? <출처: gettyimages>


재미있는 실생활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영어에서 K로 시작하는, 즉 K가 첫 번째 자리에 오는 단어와 K가 세 번째 자리에 오는 단어 중 어느 것이 더 많을까?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전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정답은 후자이다. 이 당황스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렇다.

“정말? 그런 단어가 그렇게 많아? 어디보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렵사리 떠올리는 단어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어려운 단어들이다. 예를 들어, acknowledgment와 같은 단어이다. ask, cake 혹은 bakery와 같이 평소에 잘 쓰이고 쉬운 단어들이 오히려 잘 생각나지 않는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어렵게 생각할수록 어려운 단어가 그나마 더 빨리 떠오르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영어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더 나아가 영어 원어민들일수록 이런 틀린 대답의 빈도가 더 높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영어에서 [ing]로 끝나는 단어가 더 많을까요?

아니면 끝에서 두 번째 문자가 n(즉, _n_)인 단어가 더 많을까요?”라는 질문에도 무심결에 ing로 끝나는 단어가 더 많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그런데 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후자가 전자의 경우를 포함하기 때문이다.1)

Tversky, A., & Kahneman, D. (1973). Availability: A heuristic for judging frequency and probability. Cognitive Psychology, 5, 207–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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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세상이 어떤 양상을 띠고 있건 간에 나한테 쉽게 머리에 떠올라 생생하면 우리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gettyimages>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틀린 대답을 할까? 잘못 선택한 답이 내 머릿속에서 더 생생하기 때문이다. 생생함? 이것은 무엇인가? 전적으로 내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다. 외부 세상이 어떤 양상을 띠고 있건 간에 나한테 쉽게 머리에 떠올라 생생하면 우리는 그것이 정답이고, 더 많고, 혹은 더 올바르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한 마디로 무조건 정답이라는 것이다. 물론 틀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어서는 이 생생함이 어떤 판단을 할 때 내가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잣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성은 많은 경우 확률적 상식을 뒤집는 판단에 다다르도록 우리를 내몬다. 사람들에게 물어본다.2)

Tversky, A. and Kahneman, D. (1983). "Extension versus intuitive reasoning: The conjunction fallacy in probability judgment". Psychological Review 90 (4): 29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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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 간의 전면 핵전쟁의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이 질문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시큰둥하다. “에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겠어요?”라는 정도이다. 그런데 다음 질문에는 양상이 달라진다.


“미국과 러시아간에는 핵전쟁 의도가 없었지만, 이라크, 리비아, 이스라엘 또는 파키스탄과 같은 제 3국의 행동에 의해 양국 간에 오해가 발생하여 전면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일단 사람들의 반응부터가 달라진다. “오호,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네요. 두 나라의 지도자들은 조심해야겠어요”와 같은 반응이 가장 일반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첫 번째의 경우에서보다 두 번째의 경우에 핵전쟁의 발발 확률 추정을 더 높게 한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의 경우는 두 번째를 완벽히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도 어찌 되었던 간에 첫 번째의 전면 핵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두 번째의 시나리오가 훨씬 더 구체적이며 따라서 더 생생한 상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법정공방에서 간단히 말을 하면 될 것을 변호사들이 굳이 “선혈이 낭자한”이라든가 “두 눈을 부릅뜨고”와 같은 표현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재판부나 배심원들로 하여금 가능한 최대로 생생한 그림을 그리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인간은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혹은 “내 경험에 의하면”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다. 나의 생생한 경험을 이 세상 모든 경우에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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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의견 충돌의 현장을 보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의견의 충돌인 것 같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갈등 당사자들이 지니고 있는 ‘생생한 경험과 기억의 충돌’인 경우가 허다하다. <출처; gettyimages>


따라서 내 머릿속에서 생생하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쉽고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게 해주는 이점이 있지만 그 대가로 틀린 판단이나 남의 생각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과일반화의 오류를 치르게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인간이 생생함의 노예라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우리 주위의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에 보다 지혜롭게 접근해 볼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의견 충돌의 조율’이다. 꽤 많은 의견 충돌의 현장을 보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의견의 충돌인 것 같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갈등 당사자들이 지니고 있는 ‘생생한 경험과 기억의 충돌’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의견은 그 생생한 경험과 기억의 결론으로서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그 결론이나 의견을 왜 상대방이 고집하느냐가 중요한데 고집스럽게 꺾지 않는 이러한 강경한 의견들은 대부분 그것들을 뒷받침할만한 개인적인 경험이나 에피소드들이 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견 자체를 맞대고 싸워봤자 별 소용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원인이 아닌 결과를 놓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견 뒤의 에피소드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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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의견은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경험한 에피소드는 보다 너그럽게 이해를 해 줄 수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나의 에피소드도 상대방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해를 해 줄 수 있다. <출처: gettyimages>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의견을 만들어 낸 뿌리인 각자의 생생한 기억과 경험을 들어봐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은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경험한 에피소드는 보다 너그럽게 이해를 해 줄 수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나의 에피소드도 상대방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해를 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에피소드들 모두 얼마든지 인간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즉, 쉽게 납득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의견은 세상에 많지 않아도, ‘아...그럴 수도 있었겠구나’라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과 그 자리에서 바로 의견을 조율하기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각자 생각의 ‘결과’ 자체만을 놓고 무언가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장소나 환경을 옮기거나 바꿔보면서 상대방의 개인적인 과거경험을 차근차근히 들어보면서 왜 상대방이 그 의견에 최종적으로 도달했는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물론 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를 위한 시간을 아까워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의견 충돌 혹은 충돌 이후의 갈등을 치유하고 봉합하는 데 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생생함의 노예’가 되느냐 아니면 ‘생생함을 역이용’하여 보다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느냐. 대화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부분이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면서 풀어나갈 수 있는 세상사의 궁금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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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reasoning(2007) 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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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7.01.



주석


1
Tversky, A., & Kahneman, D. (1973). Availability: A heuristic for judging frequency and probability. Cognitive Psychology, 5, 207–232.
2
Tversky, A. and Kahneman, D. (1983). "Extension versus intuitive reasoning: The conjunction fallacy in probability judgment". Psychological Review 90 (4): 29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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