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인간의 인지발달 - 선천과 후천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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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71회 작성일 16-02-0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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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 있는 장 피아제의 조각상 <출처: Roland Zumbühl at en.wikipedia.org>



태어난 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마루에서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다. 아빠나 엄마 혹은 다른 가까운 친척들을 보면서 해맑게 웃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 분들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 아이는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까?” 혹은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지금 하고 있는 걸까?” 이는 심리학자들뿐만 아니라 인간을 연구하는 다른 분야의 학자들부터 평범한 부모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한번씩은 가져봤던 질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연구에서 측정해 낸 아이의 사고능력이 매우 작은 것이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어떻게 성장하고 발달하는가’는 아마도 인간과 관련된 학문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가져보았고 또 대답해 보고 싶은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있어서 장 피아제(Jean Piaget)야말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며 많은 기여를 했던 인물일 것이다. 이 공간에서 Piaget의 이론을 공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의의 진행을 위해서 간략하게나마 인간의 인지발달에 대한 그의 관점을 먼저 정리해보자. 이론의 발달 과정을 거치면서 약간의 수정이 가해지기는 했지만 그의 이론이 지니는 기본 골격은 아래와 같은 몇 개의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 감각운동기(0~2세)


손을 내밀거나 빠는 것과 같이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행위에 대해 단순한 감각운동적 표상 형성에 중점을 둔다.



* 전조작기(2~7세)


제스처나 언어 등 상징적 표상을 정교하게 다듬어 기초적 인과성 및 물리적 현실에 대한 개념을 형성한다.

* 구체적 조작기(7~11세)


실제로 일어난 일을 머릿속에서 거꾸로 되돌려보는 것과 같이 보다 더 융통성 있는 정신적 조작이 가능하다.

* 형식적 조작기(11~15세)


어른에게서 볼 수 있는 추상적이고 융통성 있으며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Piaget 이론의 핵심은 아이들은 예외 없이 이 단계를 거치며 한 단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고 난 뒤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으며 또한 이는 보편적이어서 특정 문화나 언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 이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는 정말 우리의 아이들이 Piaget의 이론에 들어맞도록 성장하기만 하냐는 것이다.



우리의 직관을 뛰어넘든 아이들의 능력



생후 5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유아가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이와 관련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 잡지인 Nature에 1992년 흥미로운 수준을 넘어 다소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한 편 발표되었다. 당시 애리조나 대학 심리학과에 재직 중이던 카렌 윈(Karen Wynn, 현재는 예일대학 심리학과) 교수가 Addition and subtraction by human infants(유아의 덧셈과 뺄셈)이라는 제목을 통해 발표한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1) 이 연구에서는 생후 5개월인 유아들을 관찰하였는데 연구의 개요는 아래 그림들의 진행 순서와 같다. 먼저 종이 상자로 만든 무대 앞에 아이를 앉힌다. 이 작은 종이상자 무대의 한 편은 어른의 손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다. 아이가 무대를 보고 있으면 손 하나가 무대로 들어와 두 개의 인형을 놓고 나간다(1). 그런 다음 그 두 개의 인형이 놓여 있는 무대는 스크린에 의해 가려진다(2). 이후 빈손이 다시금 나타나(3), 인형 하나를 가지고 나간다(4). 자, 그렇다면 남아있는 인형의 수는 몇 개여야 하는가? 당연히 하나다.

Wynn, K. (1992). Addition and subtraction by human infants. Nature, 358,749-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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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윈 교수의 연구



그렇다면 인형이 한 개 남은 경우는 가능한 상황이고 인형이 여전히 두 개가 있다면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이들은 불가능한 상황을 훨씬 더 오래 쳐다본다. Wynn 교수는 인형의 수를 더하거나 빼는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해서 이 실험을 진행하였는데 아이들은 모두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서 가능한 상황에 대해서보다 더 오래 응시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말을 할 수 없는 이 시기의 아이들이 무언가를 오래 쳐다본다는 것은 무언가 새롭거나 이상함을 느낄 때이다. 즉, 아이들은 불가능한 상황을 보고 “어? 왜 인형의 수가 저렇지?”라는 이상함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Wynn 교수는 불과 생후 5개월 밖에 되지 않은 유아들도 덧셈과 뺄셈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들이 일반적으로 결과 해석에 있어서 주의를 요한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 결과는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Piaget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시기의 유아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능력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관점 - 시각절벽 실험의 재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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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절벽 연구



Piaget의 관점이 맞느냐 틀리느냐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왔다. 그리고 이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따라서 그 논쟁을 이 자리에서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아이들의 능력을 어른의 눈으로만 평가해 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이 시각절벽(visual cliff) 연구이다. 이를 위한 시각절벽 장치는오른쪽 그림과 같다. 격자무늬를 이용해 절벽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만들어 놓고 그 위에는 유리를 올려놓는다. 따라서 아이는 떨어지지는 않지만 절벽 앞에서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이의 맞은 편에서는 엄마(혹은 그 아이와 친한 어른)가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 등을 들고 아이를 친근한 목소리로 부른다. 우리로 치자면 “아가. 이리 온” 정도일 것이다. 실험자는 그 과정에서 시각적으로 만든 절벽을 아이가 건너가는지 아닌지 여부와 함께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도 더불어 관찰한다. 이 장치를 사용한 대부분의 1950~60년대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바가 있었다. 생후 10개월 된 유아들은 대부분 시각절벽 앞에서 멈추고는 더 이상 앞으로 가기를 주저하거나 엄마를 바라보고 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후 5개월 된 유아들에게는 이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결과에 기초해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바로 “인간의 깊이 지각은 생후 10개월은 되어야 지닐 수 있는 능력이다.”라는 것이다.

과연 위와 같은 결론이 맞을까? 이후 동일한 장치를 사용한 연구결과들은 그렇지 않음을 말해준다. 생후 5개월 유아들에게서 무언가 특이한 점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바로 유아들이 절벽을 건너면서 평소보다 오히려 “덜” 울고 심장박동도 더 느려졌다는 것이다. 왜일까? 상식적으로 깊이 지각을 못했다면 평소와 같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의 방향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다양한 후속 연구들을 통해 연구자들은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생후 5개월 된 유아들은 깊이를 지각할 수 있었지만 그 깊이로 인해 느끼는 감정이 달랐다는 것이다. 무서워하기 보다는 무언가 재미있어 하거나 안락함을 느끼지 않고서는 보일 수 없는 행동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후 10개월이 지나야 깊이라는 차원을 지각할 수 있다는 관점은 수정이 불가피해졌고 이는 유아나 아이를 바라보는 심리학자들의 생각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즉,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들의 ‘능력’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절벽 앞에서 움츠러들고 무서워하는 것을 깊이 지각을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깊이 지각 능력과는 별도로, 살아가면서 깊이와 무서움을 후천적으로 연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빨간색을 보면서 경고감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상당한 기본 능력을 갖추고 태어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능력들 중 상당수는 성인들이 기대하거나 규정한 방식대로 아이들이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니고 있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을 것이다. 그 수와 정도가 얼마인지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중 하나를 확인했을 뿐이다. 인간이 지니는 다양한 능력들의 선천과 후천에 대한 논란 전에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어떻게 아이들을 바라볼까 하는가를 보다 더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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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reasoning(2007) 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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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1.07.25.



주석


1
Wynn, K. (1992). Addition and subtraction by human infants. Nature, 358,749-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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