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루나틱 - 광기와 달의 연관성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569회 작성일 16-02-06 14:43

본문















14547373853250.png


‘루나틱(lunatic)’이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lunatic’은 흔히 ‘정신이상자’, ‘미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달의 변화에 따라 시기적으로 나타나는 비정상적 정신상태의 일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luna’는 라틴어로 ‘달’을 의미하는데, 서양에서는 달과 광기를 연관시키고 있다.





14547373862323




‘luna’는 라틴어로 ‘달’을 의미하는데, 서양에서는 달과 광기를 연관시키고 있다. <출처: gettyimages>



자료를 찾아보면 이 단어의 역사는 매우 뿌리가 깊다. 5세기경에 쓰여진 라틴어 성경 [불가타(the Vulgate)] 중 마태복음에 이런 표현이 있다.

“한 아버지가 예수에게 아들이 ‘루나틱’이니 고쳐달라고 부탁하였다.” 종교적으로는 악마를 몰아낸 것 같이 해석이 될 여지가 있지만, 병에 대한 묘사를 보면 간질환자와 유사하다.

아마도 루나틱은 초기에는 광기보다는 간질(최근에는 뇌전증으로 이름이 바뀜)을 지칭했을 것이다.

간질은 평소에 괜찮은 듯하다가도 한 번씩 심한 발작이 반복되는 주기적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마치 달이 작아졌다 커지는 주기성과 연관을 시켰을 가능성이 많다.

이런 양상은 1~4세기 사이의 그리스·로마 고전문헌들에서도 다양하게 발견할 수 있다.

4~5세기가 되면서 점차 루나틱은 지금과 같은 광기의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데, 이는 당시 점성술과 천문학의 발달이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중세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정신병과 간질은 대중들에게 치료가 불가능한 병적 행동을 하며 정신상태에 심한 타격을 주는 비슷한 하나의 병으로 인식되었다는 점도 ‘루나틱’이 일반에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

이런 영향은 18세기 중반까지도 이어져서 1843년 저명한 학술지 란셋(Lancet)에 간질과 광기는 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학술적 의견이 실리기도 하였다.

이런 경향은 20세기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1990년대에 실시한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3퍼센트가 달의 변화가 인간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고 답했고, 정신건강관련 전문가의 81퍼센트가 과학적 근거가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루나틱과 광기의 연관성은 역사적 어원의 의미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사람들의 믿음 안에서는 실존하는 것이 분명하다.




달이 정신상태에 미치는 영향



로마시대 자연사 백과사전 [박물지(Historia Naturalis)]를 쓴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는 1세기에 “보름달은 뇌를 비정상적으로 축축하게 만들어서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간질발작을 하도록 한다”라고 기술했다.





14547373874255




달이 초승달이 되었다가 보름달이 되는 현상을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출처: gettyimages>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첫 번째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달이 초승달이 되었다가 보름달이 되는 현상을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판단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연관시킨 것이다. 바빌론이나 히브리의 전통적 의학서에서도 이런 초자연적인 영향에 대한 언급이 있다.

두 번째는 악마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속설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정신질환을 악마나 나쁜 영혼이 빙의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설득력이 강한 이론이다.

해의 반대편에 있는 달은 어둠, 음산함, 미스터리 등을 상징하는 면이 설화와 신화 등에 인용되면서 더욱 더 이러한 의미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했다.

2세기경 교회의 초기 지도자 중 한 명인 오리게네스(Origenes)는 달이 광기와 빙의에 영향을 준다며 악마를 탓하지 말고 달을 탓하라고 책에 쓴 적이 있을 정도다.





14547373883441




해의 반대편에 있는 달은 어둠, 음산함, 미스터리 등을 상징하는 면이 설화와 신화 등에 인용되면서 더욱 더 이러한 의미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했다. <출처: corbis>



현대까지 ‘루나틱’이란 단어가 일상화된 것에는 16~17세기에 영어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다. 셰익스피어의 [오델로], [한여름밤의 꿈]에도 루나틱이 미친 사람이나 바보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The lunatic, the lover and the poet

Are of imagination all compact:

One sees more devils than vast hell can hold,

That is, the madman:

미친 사람, 연인, 시인 모두가 상상력으로 가득 찬 사람이지요.

광대한 지옥에 있는 악마들보다 더 많은 악마를 보는 자가 바로 미치광이입니다.

[한여름밤의 꿈] 5막 1장 중에서



달의 영향, 정말 근거가 있는 거야?







14547373896616




실제로 잠을 일부러 안 재우는 것은 가장 심한 고문의 한 방법이기도 하고, 수면박탈에 의해 조증이 악화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출처: gettyimages>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믿고 있는 달의 영향에 대해서 20세기 들어서 일부의 학자가 ‘정말 그런 영향이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를 해보았다.

보름달일 때와 그믐일 때 양극성 정동장애조현병이 갑자기 발병해서 응급실을 찾아오는 비율, 자살률, 이유 없는 결근, 교통사고와 부상의 위험 등에 대해서 조사했다.

1990년대 이후 보험자료 등으로 파악한 정확하고 치밀한 의학정보와 진료기록을 수집할 수 있는 시기에 한 연구에서 거의 모든 결과는 ‘연관 없음’이었다.

1992년에 911과 응급실로 걸려오는 ‘위기전화’와 달 순환주기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연구에서도 의미의 연결성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아직까지 근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일한 원인은 보름달이 뜰 때 너무 밝아져서 잠을 못 자는 ‘수면박탈’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다.

실제로 잠을 일부러 안 재우는 것은 가장 심한 고문의 한 방법이기도 하고, 수면박탈에 의해 조증이 악화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인공의 빛이 없던 과거에는 의미가 있을 수 있겠으나 한밤중에도 휘황찬란한 빛이 가득한 현대사회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해석이다.

영국법에서 루나틱은 광의의 ‘정신병자’라는 의미로 정신건강과 관련한 여러 법령에서 1821년부터 1922년까지 공식적으로 사용되었고 1930년이 돼서야 ‘건강하지 않은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는 용어로 변경되었다.

1959년에 와서야 공식적으로 ‘정신질환’이라 지칭되면서 올바르지 않은 단어로 공식문서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미국연방법에는 더 오랜 기간 ‘루나틱’이란 단어가 남아 있었다.

2012년 12월 5일 미국상원은 거의 만장일치로 연방법에서 ‘lunatic’이란 단어를 삭제할 것을 결의했고, 여기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했다.

대변인은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달의 순환주기가 뇌의 기능에 영향을 줘서 정신질환이 생길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과학발전에 따라 이제 정신질환에 대해 훨씬 잘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런 오래된 단어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으므로 모든 미국법령에서 삭제를 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말이 씨가 될 수도 있다







14547373913188




달에 인간이 착륙하고 뇌에 대한 많은 신비가 밝혀진 이 시점에도 많은 이들은 ‘루나틱’이라는 단어가 있음으로 인해 달의 순환주기, 달의 존재가 인간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고 있다. <출처: gettyimages>



달에 인간이 착륙하고 뇌에 대한 많은 신비가 밝혀진 이 시점에도 많은 이들은 ‘루나틱’이라는 단어가 있음으로 인해 달의 순환주기, 달의 존재가 인간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고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 우리의 인식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신하는 늑대인간과 같은 서양문화나 외국영화의 영향으로 달을 전과 같이 옥토끼가 사는 동화적 시선으로 보지 않고 우리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마술적인 힘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광기와 정신질환의 역사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해석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러한 문화·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면, 정신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의 시초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환자들을 공동체로부터 배척하고 쫓아내거나, 그들을 집단에서 없애버리는 것이 유일한 치료라 판단하게 한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The Disease of the Moon: The Linguistic and Pathological Evolution of the English
  • Term “Lunatic” Riva MA et al. Journal of the History of the Neurosciences 2011 20:1 65-73
  • The moon and madness reconsidered. Raison CL et al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1999 53 99-106





14547373914428

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저자의 책 보러가기
|
인물정보 더보기



14547373916886

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책정보 보러가기


발행2014.01.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