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전두엽 - 성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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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05회 작성일 16-02-0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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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9월 13일 미국의 버몬트 주에서 철로를 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철도건설회사에서 일하는 25세의 청년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는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바위를 부숴야 했다. 이 작업을 하던 중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해 그가 들고 있던 1미터 길이의 쇠막대가 그만 그의 머리를 그대로 관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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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원인인 쇠막대를 들고 있는 피니어스 게이지 1848년경 <출처: Wikipedia>



동료들은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여겼으나, 게이지는 살아 있었고, 심지어 몇 분 후부터는 의식을 되찾아 걸을 수 있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그 지역 의사, 할로 박사(John M. Harlow)에게 응급치료를 받았다. 박사는 머리에서 뼛조각을 뽑아내고, 쇳조각이 뚫고 지나가 뻥 뚫린 머리뼈를 붕대로 감쌌다.

며칠 후 상처부위의 감염으로 열이 나 의식이 혼탁해지기도 했지만, 2주 후 머리에서 상당한 양의 고름을 뽑아낸 다음부터는 안정을 찾았다. 놀랍게도 4개월이 지난 1849년 1월부터는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복귀를 환영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 발생했다. 사람이 달라져버린 것이다.

평소 성실하고 온유한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었던 게이지가 전과 달리 참지 못하고, 충동적이며, 사람들과 쉽게 시비가 붙는 등 행동에 큰 변화를 보였다.

그는 숨 쉬기, 밥 먹기, 옷 갈아입기, 집 찾기 등의 일상적 행동에는 어떤 지장도 없었지만 논리적 생각, 예측 능력, 정확한 판단 능력을 잃어버렸다.

처음 그를 치료했던 할로 박사는 1868년에 의학잡지《Bulletin of the Massachusetts Medical Society》에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의 상당 부분을 잃은 그의 변화에 대해서 사례보고를 했다.



“상사가 말하기를 사고 전의 피니어스 게이지는 아주 효율적으로 일하고 자기 일을 잘 맡아서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사고 이후 변덕스럽고,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말도 안 되는 일에 몰두하고, 동료들을 존중하지 않으며, 작은 갈등에도 물러설 줄을 몰랐다.

그리고 어떨 때에는 집요하고, 고집을 부리며 타협이 안 될 뿐 아니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해졌다.

그는 전과 완전히 달라졌기에 동료들은 ‘더 이상 게이지가 아니다(no longer Gage)’라고 했다.”


몇 차례 큰 사고가 날 뻔한 후, 게이지는 결국 해고되었다.

그 후 뉴욕 등지에서 스스로 서커스의 구경거리가 되거나 마부로 일을 하던 그는 사고가 일어난 지 12년 후 아마도 사고로 다친 부위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간질발작으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머리를 관통했던 쇠막대를 들고 다녔고, 쇠막대와 함께 묻혔다.

몇 년 후 할로우 박사는 유족의 동의를 받아 그의 시신을 발굴해 두개골을 정밀 분석했다. 그의 두개골과 쇠막대는 지금도 하버드 의과대학 안의 워렌해부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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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해부학 박물관의 게이지의 두개골과 쇠막대 <출처: Wikipedia>






성격을 규정하는 제3의 요인, 전두엽



무엇이 그의 성격을 바꾸었을까? 성격은 도대체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혈액형에 따른 성격구분이나 사주․골상에 따라 성격을 해석하는 것은 타고난 기질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태도다.

반면 과거의 경험,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성인기의 성격구조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발달이론이나 정신분석이론에서 지지하는 양육과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는 태도다.

본성과 양육 논쟁은 지금도 서로 주도권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런 논쟁에 피니어스 게이지의 사례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바로 전두엽의 존재다.

전두엽의 손상이 한 사람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즉 뇌의 변화가 한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적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행동과 판단, 환경에 대한 적응, 사회적 관계 맺기에서 반복적이고 기본적인 반응과 선택의 레퍼토리를 구성하는 것이 성격이라고 정의한다면, 이런 기능을 일차적으로 해내는 기관이 우리의 뇌에 존재한다는 것이 이 사례를 통해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게이지의 급격한 성격의 변화는 큰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고 나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경험하는 것과는 달리 전면적이고 지속적이었고, 이는 분명히 뇌 손상에 의해 촉발된 결과였기 때문이다.




밝혀지는 뇌의 비밀



지금이야 좌뇌와 우뇌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상식에 속하지만 뇌의 영역별 차이가 처음 밝혀진 시기도 공교롭게 1860년대부터였다.

1865년 폴 브로카(Paul Broca)는 오른손잡이의 좌반구 한 부위에 언어중추가 있다고 했고, 이는 지금도 브로카 영역이라고 불린다.

이 시기부터 수십 년에 걸쳐 헐링-잭슨(John Hughlings-Jackson)과 페리어(David Ferrier) 등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두뇌 각 영역의 기능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것을 집대성한 것이 1930년대 미국의 신경과 의사 펜필드(Wilder G. Penfield)다. 그는 뇌의 각 부위별 신체반응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띠 모양의 두뇌에 두 피질 영역이 담당하는 신체부위를 대응시켰다.

이 그림을 3차원으로 재현하면 신경이 밀집한 부위인 얼굴과 손 등이 기형적으로 큰 인간이 되고, 이를 ‘피질 소인(cortiacl homunculus)’이라고 하며 지금도 많이 참고하고 있다.

백여 년이 지난 1994년 아이오와 대학의 안토니오 다마지오 박사(Antonio Damosio)는 컴퓨터로 피니어스 게이지의 두개골을 3차원으로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그가 좌우측의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에 손상을 입었다는 것을 밝혀내 그의 행동과 전두엽 손상의 관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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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어스 게이지의 부상은 많은 의사와 학자들에게 뇌의 기능에 대한 의문점을 던졌고, 전두엽이 추상적인 생각, 판단, 예측, 충동 억제 등의 기능을 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게 했으며, 수많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출처: Van Horn JD, Irimia A, Torgerson CM, Chambers MC, Kikinis R, et al. at en.wikipedia.org>



이처럼 피니어스 게이지의 부상은 많은 의사와 학자들에게 뇌의 기능에 대한 의문점을 던졌고, 전두엽이 추상적인 생각, 판단, 예측, 충동 억제 등의 기능을 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게 했으며, 수많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런 면에서 정신과에서 전두엽의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숨을 쉬고, 체온을 유지하고, 심장박동의 횟수를 조절하는 것과 같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능을 뛰어넘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위에 말한 전두엽 기능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화론적으로는 인간의 뇌를 3층으로 나눠서 진화 발달 단계를 설명하기도 한다.

가장 깊숙한 곳에 생존을 위한 원시뇌가 있고, 중간에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하면서 발달한 변연계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고위중추로 작용하는 대뇌피질과 회백질을 포함한 세 번째 뇌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뇌와 마음의 상호작용



2009년 UCLA의 잭 반 혼(Jack Van Horn)은 2004년에 발표된 피니어스 게이지의 뇌손상의 3D 구성1)을 토대로 뇌의 연결상태를 연구했다.

여기에는 MRI의 최신 기법으로 대뇌 피질 신경다발의 연결상황을 시각화하는 DTI(diffusion tensor imaging)가 이용되었다.

그들은 게이지가 전두엽의 11퍼센트를 잃었고, 전체적으로는 대뇌피질의 4퍼센트를 잃었다는 것을 계산해 냈다.

또한 쇠막대가 정확히 뇌의 좌반구를 꿰뚫은 모습을 시각화했고, 이어서 정상인들의 뇌 연결성과 비교하여 게이지가 보인 행동과 판단력의 변화의 실체를 연구했다.

그 결과 이는 단순히 전두엽의 손상일 뿐 아니라 전두엽과 변연계 사이의 연결에도 손상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정을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는 이 부분의 손상 때문에 그는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반 혼은 이런 변화가 전두엽 치매나 조현병(정신분열병)에서 볼 수 있는 증상과도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최근(2011년) 방영된 미국 드라마 ‘보스(Boss)'의 주인공의 이름은 잭 케인이다. 그는 시카고의 시장으로 수 십년간 도시를 사실상 지배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환각이 발생하고, 피해의식이 심해졌으며, 무자비하고 잔인한 사람으로 돌변했다.

아내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딸을 감옥에 보내기도 한다.

그는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시즌 1은 그가 희귀한 전두엽 치매로 진단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반적 치매가 기억력이나 시공간 파악능력의 저하가 먼저 오는 것과 달리, 전두엽 치매는 기억력은 잘 보존되는 데 반해, 성격의 변화가 먼저 오는 특이한 병이다.

이 역시 퇴행성 치매가 전두엽을 먼저 침범하는 것이 오랫동안 일관되게 유지해오던 한 사람의 성격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드라마였다.

이와 같이 피니어스 게이지의 사건은 뇌에서 가장 중요한 전두엽의 기능을 자세히 연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들이 백여 년 전의 이 사례를 최신 뇌과학의 발달에 맞춰서 재해석하고 있을 정도로 뇌 연구의 중요한 단서로 검토하고 있다.

정신의학은 정신분석과 같이 무의식의 깊은 곳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동시에 유전학, 약물학, 뇌과학과 같이 매우 유물론적이고 객관적인 생물학적 기반의 이론으로 인간을 이해하려고 한다.

뇌와 마음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어느 한쪽만으로 사람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니어스 게이지의 사례는 마음의 문제로만 여기던 성격의 구조에 두뇌의 생물학적 기반의 단서를 드러낸 사건으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참고문헌

  • Reference: Van Horn, J. D., et al. (2012). Mapping Connectivity Damage in the Case of Phineas
  • Gage. PLoS ONE, 7(5): e37454. DOI: 10.1371/journal.pone.0037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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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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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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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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