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전두엽 절제술 - 뇌에 구멍을 뚫어 정신병을 치료하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382회 작성일 16-02-06 14:45

본문















14547375117087.png


폭행과 성추행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맥머피는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일부러 정신병이 의심되는 짓을 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자유로울 줄 알았던 병원 안은 또 다른 감옥이었다. 맥머피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병원의 규칙에 맞서지만, 이런 상황을 뒤집기는 쉽지 않았다.

래치드 수간호사가 여러 가지 이유로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중계방송 시청을 막자, 맥머피는 경기를 상상하며 스스로 TV 중계를 하기도 했다.

의료진은 그의 이런 행동을 도리어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장애 환자로 판단하는 근거로 삼았다.

병원을 탈출할 계획을 세운 맥머피는 밤중에 몰래 술을 반입하고 여자 친구들을 불러들여서 마지막 파티를 했다.

그러나 탈출에 실패하고 동료 환자가 자살하면서, 맥머피는 약물치료에 실패한 위험한 환자로 분류되어 어디론가 끌려갔다.

돌아온 맥머피는 며칠 전의 활기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부 자극에 반응 없이 축 늘어져 있기만 하며, 살아도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와 가까이 지내던 인디언 추장은 베개로 그의 얼굴을 덮어 질식사시키고, 혼자 병원의 철망을 넘어 탈출에 성공한다.





14547375130119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한 장면 <제공: 네이버 영화>영화정보 보러 가기



미국 전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로 1975년 밀로스 포먼(Milos Forman) 감독이 켄 키지(Ken Kesey)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맥머피가 받은 전기충격 치료 장면이 매우 강렬하여, 영화가 성공한 후 전기 치료를 금지한 주가 생겼을 정도로 이 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꽤 효과가 있는 치료 방법이었고, 맥머피가 받은 것은 전기충격 치료가 아니라, 전두엽 절제술(frontal lobotomy)이었다. 그의 이마에 얕게 그어져 있는 수술 흔적이 그 증거다.




침팬지 실험 3개월 만에 인간에게 시술된 전두엽 절제술



20세기 초반 정신과 의사들의 고민은 대형 정신병원(asylum)에 수용하는 것 말고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치료 문제였다.

일부러 말라리아균을 체내에 주사해 고열에 시달리게 한 후 증상의 호전을 바라는 말라리아 요법(1911년), 인슐린을 주사해서 의도적으로 저혈당쇼크에 빠지게 하는 인슐린쇼크 요법(1933년), 앞서 예로 든 전기충격 요법(1934년) 등 여러 가지 실험적인 방법이 시도되었으나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1935년 예일 대학의 신경학자 존 풀턴(John Fulton)은 전두엽 신경을 절제한 침팬지 두 마리의 행동과 지적능력에 변화가 온 것을 발견하고 학계에 보고했다.

특히 행동이 난폭하고 감정의 변화가 심했던 침팬지가 수술 이후 극적으로 행동 통제가 가능해졌다는 것이 크게 주목 받았다.





14547375140782





처음으로 인간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적용한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



이 보고서를 읽은 포르투갈의 신경과 의사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António Egas Moniz)는 심한 정신질환자에게도 적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정신질환의 증상이 뇌의 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해 나타난 것으로 보고, 마치 ‘암’처럼 병소를 제거하면 전체적인 정신 기능이 회복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말라리아 요법이나 인슐린쇼크 요법이 뇌 전체를 셧다운 시켜서 재부팅을 하려는 의도라면, 전두엽 절제술도 특정 부위만 고친다는 점에서 조금 더 진일보한 방식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모니스는 속전속결로 진행하여 풀턴의 동물 실험 보고 후 석 달 만에 인간에게 적용했다. 요즘이라면 의학윤리적 측면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35년 11월 12일 리스본의 산타마르타 병원에서 첫 번째 전두엽 절제술이 있었다. 모니스는 신경외과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 수술하지 못하고 외과 의사 페드로 알메이다 리마(Pedro Almeida Lima)가 시행했다.

두개골 안쪽으로 구멍을 뚫고 전전두엽(prefrontal lobe)에 에탄올을 주사하여 정신질환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경섬유를 파괴했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명의 환자들에게 이 방법을 시도한 모니스와 리마는 쉽게 시술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했는데, 류코톰(leucotome)이라 이름 붙인 11센티미터 길이에 2센티미터 직경의 막대기였다. 이를 이용해 한 번 시술할 때마다 전두엽에 6개의 구멍을 냈다.

첫 1년 동안 모니스는 약 20명의 우울증, 정신분열병, 조증, 공황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전두엽 절제술을 시술했다.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고열, 구토, 배변·배뇨의 이상, 안구 운동 이상 등의 신체적 부작용을 호소했지만, 모니스는 이런 부작용이 일시적이라 주장했다.

20명의 환자 중 35퍼센트는 상당한 호전, 35퍼센트는 약간의 호전이 있었다는 성과를 학회에 정식으로 보고했고, 악화되거나 사망한 환자가 없다는 점으로 유럽 전역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이로써 전두엽 절제술은 획기적 치료법으로 인정받았다.

이 공로로 모니스는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전두엽 절제술은 브라질, 쿠바, 이탈리아, 루마니아, 미국으로 퍼져 나갔다.





14547375156386





초기의 전두엽 절제술에 사용된 수술 도구






안구를 지나 뇌로 진입하는 ‘간편한’ 시술법의 개발



모니스가 첫 수술을 한 지 딱 1년 후 1936년 11월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의사 월터 프리먼(Walter Freeman)과 신경외과 의사 제임스 와츠(James Watts)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전두엽 절제술을 시도했다.

그들은 모니스와 리마의 수술법을 정교화해서 자기들만의 표준화된 수술법을 개발했고 프리먼-와츠 전전두엽 절제술(Freeman-Watts prefrontal lobotomy)이라 불렀다.

그렇지만 일단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위험한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신경외과 의사가 수술실에서 정식으로 마취한 후 시술할 수 있었다.

이때 프리먼은 혁명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안구를 통해 뇌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었다.

눈꺼풀 바로 아래에서 코 쪽을 향해 정교한 각도로 기구를 삽입하여 전전두엽에서 뇌 안쪽의 시상을 향하는 신경망을 끊을 수 있음을 밝혀낸 프리먼은 1946년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했다.

전신마취와 수술실 없이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이 방법은 곧 미국 전역으로 퍼져서 1949년에 5,074명, 1951년까지 약 1만 8천여 명의 환자에게 적용되었다. 바야흐로 전두엽 절제술의 전성시대였다.

이런 상황이 된 데에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다. 특별히 치료법도 없는 상황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전쟁에서 돌아온 후 지금으로 보면 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부상으로 인한 뇌손상 이후의 정신장애, 조현병 환자들이 대폭 늘어났다.

그로 인해 전체 병상의 반 이상을 정신과 환자들이 차지한 데다 이들은 퇴원 가능성도 없이 엄청난 예산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치료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재정적 부담과 병상 부족 등을 이유로 전두엽 절제술이 광범위하게 시술된 것이다.

더욱이 일부 성공적인 사례가 《라이프》, 《타임스》, 《뉴스위크》와 같은 유명 잡지에 소개되었고, 이 수술법을 처음 고안한 모니스가 1949년 노벨상을 받은 것도 대중에게 큰 영향을 줬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누나 로즈메리 케네디(Rosemary Kennedy)도 이 위험한 수술을 받았을 정도다.

미국 전역에서 총 4만 명, 영국에서 총 1만 7천 명이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다고 집계되었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약 9,300명으로 다른 나라보다는 적지만 환자당 비율로는 2.5배나 많았다.





14547375167086





월터 프리먼은 안구를 통해 뇌로 들어가 수술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출처: The Lobotomist, PBS America, http://www.youtube.com/watch?v=6ioP9oaVmBc>



‘최첨단 의료이자 마지막 희망’으로 많은 환자들이 수술을 받았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에 시달렸다.

수술 후 감염, 간질, 심지어는 사망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전두엽 기능의 영구적 손상으로 넋이 나간 듯 주변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언어구사능력을 상실한 환자들이 속출했다.

또 감정표현이 줄어들고, 자발성과 독립적 판단능력이 사라졌다. 심한 공격성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기대했던 정신 증상의 호전은 없었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가 전보다 나빠지기도 했다.

전두엽 절제술이 비윤리적이고 뇌에 비가역적인 손상을 입힌다는 점을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점차 거세졌다.

1950년대 중반 항정신병약물 클로로프로마진이 소개되어 중증 환자 치료에 혁명적 변화가 생기자 전두엽 절제술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대안이 생기고 나서야 치료방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전두엽 절제술이 계속되었는데,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발표된 1962년 전후로도 꽤 많은 곳에서 시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첨단 치료인가 근거 없는 낙관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정신외과술은 비윤리적이고 반인권적인 치료법일 뿐일까? 1977년 미국 의회에서는 조사단을 만들어 이 수술법에 대해 면밀히 검토했고, 다양한 증거들을 종합해서 극히 일부의 제한된 환자에게 적절히 시행할 경우 효과가 있다고 보고했다.

지금도 일부 환자를 대상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기능성 신경외과수술’이라 부르는 정신외과술을 시행하고 있다.

주로 난치성 강박증 환자나 치료 불응성 통증, 난치성 주요우울증, 심한 불안장애 등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종류의 뇌수술을 하여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고 있다.

다만 과거 전두엽 절제술과 같은 시술이 아니라, 뇌의 특정한 한 영역을 목적으로 해서 시술하는 정위적 시술법(stereotactic intervention)을 사용한다.

정위적 시술법이란 컴퓨터 등으로 정확하게 뇌의 작은 국소적 부위를 삼차원적으로 계산해서 그 부분으로 접근하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찾아내 수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초반부터 일부 대학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와 신경외과에서 협진으로 수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술법으로는 전두엽 피질에서 파페즈회로변연계로 가는 통로를 절제하는 전대상회절제술(cingulotomy), 미상핵하 회로절제술(Subcaudate tractotomy), 안와 내측 피질 상부의 전두엽 피질을 국소절제하는 뇌엽절제술(leukotomy), 내측피막절제술(anterior capsulotomy), 감마 나이프 수술 등이 있다.

그러나 그 효과에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웬만한 약물치료에 효과가 없던 환자들이 뇌수술을 선택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환자의 30~40퍼센트 정도만 수술 이후 뚜렷한 증상의 호전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수술의 적응 기준을 명확히 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의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며, 더 나아가 환자 자신이 자율적으로 결정했을 때만 정신외과술을 시행하고 있다.




낙관적 기대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







14547375182987





많은 환자들이 전전두엽 절제술을 받았지만, 수술 후 여러 부작용에 시달렸고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20세기 초는 정신의학의 혼란기였다. 의사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뇌신경학의 발달은 정신질환을 외과적 수술로 치료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초기의 수술 성과가 과대 포장되어 알려지고 전신마취 없이도 가능한 방법이 소개되면서, 확실한 치료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거는 낙관적 기대를 엔진으로 삼아 전두엽 절제술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던 것이다.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와 보호자는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리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미래의 발전된 의료 기술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을 냉동인간으로 만들어 냉동보존 하는 기술이 상용화 되어 있기도 하다.

9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박사의 실험조작 사건이 그저 과학계의 해프닝으로만 끝날 수 없었던 것도 난치병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줄기세포이식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과도 같은 혁명적 치료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치료법의 개발진을 절대적으로 믿고,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을 감안하면 의학계는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로운 약과 치료법에 대한 무조건적 희망과 낙관의 심리가 여전히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4547375191069

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저자의 책 보러가기
|
인물정보 더보기



14547375206539

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책정보 보러가기


발행2014.04.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