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렘수면의 발견 - 자는 동안에도 눈동자는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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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92회 작성일 16-02-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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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과학은 정신이 오직 자신에게만 말을 걸고 있을 때 그 신비한 활동을 어렴풋이나마 엿보고 있다. 수면을 탐구할 때 우리가 연구하는 것은 망각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영역 전체이다.
-게이 게어 루스(Gay Gaer Luce), [수면 및 꿈(sleep and dream)],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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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연구학자 클라이트먼. 그는 제자 유진 아세린스키와 렘수면의 존재를 밝혀냈다.



1951년 가을 시카고 대학 생리학과 박사과정 학생인 유진 아세린스키(Eugene Aserinsky)는 대학 실험실에서 여덟 살인 아들 올먼드의 머리에 전극을 부착했다.

당시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수면 연구 학자인 너새니얼 클라이트먼(Nathaniel Kleitman) 교수의 제자였던 아세린스키는 우연히 잠든 사람의 눈꺼풀 밑으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뇌파, 심박, 호흡 등의 생리적 신호를 측정하는 수면검사를 하면서 안구운동도 함께 기록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1930년대 이미 깨어 있을 때와 잠들어 있을 때 뇌파의 패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지만 그 이상 진전된 연구는 없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잠을 잘 때 신체가 휴식에 들어가고 별다른 뇌의 활동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세린스키는 아들이 자는 동안 뇌파를 측정하고 안구운동을 살펴보았다. 이상하게도 안구가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는 잠을 잘 때 통상적으로 보이는 느린 파형의 뇌파가 없어지고 깨어 있을 때와 유사한 패턴의 빠른 진폭의 뇌파가 보였다.

처음에는 측정기기가 고장 난 줄 알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측정해 보니 빠른 안구운동이 있을 때 특정한 뇌파의 패턴과 이에 따른 다른 생리신호가 발견되었다. 이런 결과는 자신의 아들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빠른 안구운동을 하던 피험자 한 명이 우연히 깨어나서, “생생한 꿈을 꿨어요. 아직도 진짜 같아요”라고 말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그럴 수 있겠지 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아세린스키는 달랐다.

이번에는 안구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을 일부러 깨워본 것이다. 그랬더니 깨어난 거의 모든 사람이 방금 전까지 꾼 꿈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세린스키는 이를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렘수면(REM sleep)이라고 이름 붙이고 클라이트먼 교수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클라이트먼 교수도 그의 주장을 믿지 못해서 심지어 자신의 딸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해봤다고 한다.

두 사람은 연구결과를 정리해서 1953년 저명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렘수면의 존재를 발표했다. 이때부터 자는 동안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많은 연구가 시작되었다.




근육이 쉬고 있는 사이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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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수면 기간 중에 뇌파는 깨어있을 때와 유사한 활동도를 보인다.



렘수면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데 갓 태어난 아이의 경우 잠의 80퍼센트가 렘수면이다. 성장하면서 서서히 줄어들어서 성인이 되면 총 수면시간의 20~25퍼센트를 차지한다.

처음 깨어 있다가 잠이 들면 비렘수면(non-REM)의 1단계 수면을 거쳐 2단계 수면단계로 들어간 후 서서히 뇌파 중 서파의 비율이 50퍼센트를 넘는 깊은 수면단계로 진입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2단계 수면으로 돌아와 렘수면으로 진행해서 일정 시간을 머무른다. 그리고 더 얕은 수면단계로 넘어갔다가 다시 깊은 수면단계로 들어가는 순환구조를 이룬다.

보통 한 사이클은 90분에서 2시간 사이로 알려져 있다. 수면의 후반부로 갈수록 렘수면의 비율이 높아가고,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꿈은 잠의 후반부에 꾸는 것이다.

렘수면 기간 중에 뇌파는 깨어 있을 때와 유사한 활동도를 보이는데, 생리적으로 심장박동이나 호흡이 불규칙적이고, 체온도 규칙적이지 않다. 또한 생리적인 야간 발기가 렘수면 기간에 일어난다.

반대로 근육은 이완이 되어 있다. 그래서 뇌와 몸이 따로 놀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 신체 기능이 대부분 안정되고 저하되어 있는 것과 달리 뇌는 렘수면 기간에 상당히 활동적이다.

특히 영유아기나 아동기에 렘수면의 비율이 높은 것을 보고 렘수면이 뇌의 발달을 촉진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뇌는 외부자극을 받지 않는 동안 열심히 활동하는데, 이는 마치 은행 영업시간이 끝난 다음 은행원들이 하루 동안의 입출금을 정리하면서 고객이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일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때문에 렘수면은 학습과도 연관된다. 시험 기간과 그렇지 않은 기간을 나누어 렘수면의 비율과 렘수면 중에 나타나는 눈동자 움직임의 횟수를 비교했더니, 시험 기간에 렘수면의 비율도 높았고 렘수면 중 안구운동의 움직임 횟수도 더 많았다.

즉, 학습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렘수면이 관련이 있고,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양이 많을수록 렘수면의 강도도 강해졌다는 것이다.

렘수면이 처음 알려졌을 때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것이 인간만의 전유물인지 아니면 동물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증이 있었다.

초기 동물연구에서 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일부에서 렘수면을 발견했지만, 원시 파충류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를 통해 진화론적으로는 렘수면이 진화된 수면 형태로 조금 더 복잡한 고위 기능을 갖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1960년대 프랑스의 신경생물학자 미셸 주베(Michel Jouvet)는 고양이를 대상으로 렘수면기에 근육을 이완시키는 뇌 조직을 제거했다.

그리고 잠을 자는 고양이를 관찰했더니 렘수면기에 진입하자 고양이가 갑자기 일어나서 먹이에 접근하고 공격하는 행동을 보였다.

주베 박사는 렘수면기가 동물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을 자는 동안 반복해서 연습해 보는 기능이 있다고 추정했다.

매일 쓰는 기능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꿈속에서 연습해 놓으면 뇌는 충분히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신경회로가 최적화되어 있다가 만일 실제 중요한 일이 벌어지면 바로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생존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습적인 측면에서도 단순하게 정보를 외우는 삽화기억을 증진시키는 것보다, 미로 찾기, 수영하기와 같은 절차기억을 향상시키는 데에 렘수면이 연관이 되어 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렘수면으로 인해 악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꾸는 꿈을 떠올려보자.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어려운 일을 겪거나, 과거 힘들었던 경험을 다른 버전으로 재연하는 것을 꿈속에서 흔히 경험한다.

이런 내용을 렘수면 기능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면, 결국 만에 하나 내가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때, 혹은 내가 전에 경험한 아주 힘들었던 상황에 다시 던져졌을 때, 그 상황에 의연히 대처하고 재빨리 위험 상황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뇌는 미리 반복적이고 생생한 꿈을 꾸는 모의대처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안전을 위해서 근육을 충분히 이완시켜서 꿈이 아무리 생생해도 움직이지 않게 한 채 말이다. 꽤 정교한 시스템이 아닌가?

또한 렘수면을 의도적으로 박탈시키면 다음 날 잠을 잘 때에는 자동적으로 더 많은 양의 렘수면을 취해서 보상받으려 한다. 그만큼 적정한 수준의 렘수면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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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렘수면에서 끔찍한 사건 장면이나 유사한 사건을 재연하게 된다. 뇌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사고에 대한 모의대처훈련을 기대하지만,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반복해서 악몽을 꾸다가 깨어난다.



이렇듯 렘수면은 기특한 목적을 갖고 있지만, 문제는 부작용도 발생한다는 데 있다. 그중 하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다. 끔찍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악몽을 꾼다.

경험한 사건 장면이나 이와 유사한 사건을 꿈에서 재연하는 것이다. 이는 렘수면의 근본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런 끔찍한 사건이 혹시라도 다시 일어나는 경우, 전과 같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

꿈속에서 열심히 모의대피훈련을 해서, 물에 빠지면 헤엄쳐서 살아나오고, 자동차 사고가 나도 놀라지 않고 의연히 대처하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그 꿈이 너무 생생해서 잠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자극이 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악몽을 꾸다가 반복해서 깨어나고, 깨어난 후에도 꿈을 생생히 기억하며 몸서리친다.

잠을 자는 동안 의식하지 않은 채 조용히 반복훈련을 하려던 뇌의 계획은 이렇게 어그러지고 만 것이다.

두 번째는 렘수면행동장애(REM sleep behavior disorder)다. 렘수면 동안은 근육이 이완되어서 꿈을 꾸더라도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런 근육이완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꿈속의 행동을 실제 현실에서도 하는 일이 벌어진다.

어릴 때의 몽유병과 달리 중년 이후 노인 연령에서 발생하는 흔치 않은 질환이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하거나, 도망간다며 허우적거리다가 넘어져 다치거나, 같이 자던 배우자를 때리는 일 등이 벌어진다.

뇌의 정교한 제어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기는 병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치매나 파킨슨병의 초기 증상의 하나일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렘수면의 발견, 수면 의학과 뇌 과학의 시작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통해 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꿈이 중요하다는 점이 알려진 이후 1950~60년대에 꿈의 과학적 배경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수많은 정신분석가들이 대학교수가 되어 정신분석이 한동안 정신의학의 주류가 되면서 꿈에 대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리학적 연구 성과가 많이 나오면서 꿈은 무의식보다 뇌의 복잡한 시스템과 연관되어 있고, 렘수면이라는 독특한 수면 중 뇌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수십 년이 지나면서 렘수면의 발견은 역설적으로 수면과 뇌 과학의 발전에 혁신적인 계기가 되었고 오히려 정신분석은 그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1977년 하버드 대학의 존 앨런 홉슨(John Allan Hobson)과 로버트 맥컬리(Robert McCarley) 같은 학자는 꿈은 정신분석적 의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면 중 생리적 신호가 무작위로 발생한 것을 뇌에서 나름대로 해석한 것일 뿐이라는 ‘꿈 생성의 활성화-생성 모델(activation-synthesis model of dream production)’을 주장하기도 했다.

인간이 평생 80년을 산다면, 약 26년을 잠을 자는 데 소비한다. 잠을 자는 시간은 그저 충전하거나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동안 뇌에서는 복잡하고 유용한 준비와 통합 작업을 하고, 렘수면을 통해 숨겨졌던 뇌의 활동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렘수면의 발견은 정신의학에서 수면의학이 시작되고, 꿈에 대한 관심이 정신분석에서 뇌 과학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 Aserinsky E. and Kleitman N. (1953). "Regularly Occurring Periods of Eye Motility, and Concomitant Phenomena, during Sleep". Science 118 (3062): 273?274. doi:10.1126/science.118.3062.273. PMID 13089671

· Hobson JA, McCarley RW. The brain as a dream state generator: an activation-synthesis hypothesis of the dream process. Am J Psychiatry 134 (1977):1335-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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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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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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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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