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킨제이, 매스터스와 존슨, 캐플런 - 성, 과학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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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2회 작성일 16-02-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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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와서도 성(性)에 대해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1800년대 중반에 불안정한 감정, 예측할 수 없는 행동, 실신이나 감각의 마비 등 신경증적 증상을 보일 때 ‘히스테리(Hysteria)’라 불렀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어의 ‘자궁(hystera)’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궁에서 증상이 발생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초까지도 이 정도로 성에 대해서 무지했고, 또한 그 누구도 이 영역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1900년대 초반 프로이트가 정신성발달(psychosexual development) 이론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의 정신분석 이론을 소개하면서 억제된 성 욕구가 신경증상으로 표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을 때 서구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고 강한 저항을 보였다.

교양인은 성에 대해서 대놓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는 풍조, 그리고 섹스는 오직 아이를 낳기 위한 과정일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여기는 금욕적인 문화는 성에 대한 과학적 탐구조차도 엄두를 내지 못하게 했다.

그러던 차에 프로이트가 과감하게 성적 욕망이 인간의 근본적 본능 중 하나이고, 성욕의 무의식적 왜곡과 억압이 증상을 만들어낸다는 심인론적 해석으로 마침내 성 연구에 대한 물꼬를 텄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르고 유럽에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많은 유대인과 정신분석가들이 주류 정신의학계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프로이트 이론도 함께 안착했다.

그러던 중 1940년대 후반 처음으로 섹스가 인간의 삶과 정신세계의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공론화한 연구결과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인간의 성도 의학적 관심의 대상으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보수적 미국사회의 성생활을 드러낸 킨제이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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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킨제이는 남녀의 성생활을 연구한 일명 킨제이 보고서를 발표하여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의 동물학과 교수인 알프레드 킨제이(Alfred Kinsey)는 오직 프로이트의 사례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조사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얻어 전국적으로 약 1만여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했다.

1948년 먼저 5,300명의 남성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워델 포메로이(Wardell Pomeroy), 클라이드 마틴(Clyde Martin) 등과 공저로 [남성의 성생활(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이란 보고서를 출간했다.

그리고 5년 후인 1953년 이번에는 5,940명의 여성을 조사해서 [여성의 성생활(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을 출간해서 세칭 ‘킨제이 보고서’를 완성했다.

이 보고서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동성애와 자위에 대한 조사 결과였다. 당시 동성애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극히 일부 사람들의 왜곡된 성행위로 인식됐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동성애가 3퍼센트 정도 존재하고, 37퍼센트의 남성이 생애 한 번은 오르가즘을 동반한 동성애 경험이 있었다.

한편 남성의 70퍼센트가 사창가에 간 적 있고, 15퍼센트는 반복적으로 방문한다고 답했다.

여성의 경우 62퍼센트가 자위행위를 한다고 밝혔고 여성의 절반 정도가 혼전 성교를 경험했으며, 기혼녀의 26퍼센트가 혼외정사를 한다는 보고도 충격적이었다.

또한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섹스를 즐기고 오르가즘을 경험한다는 사실도 당시 금욕적이고 보수적인 미국사회에서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보수적인 미국사회의 속내가 낱낱이 드러난 일대 사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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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제이 보고서 ‘남성의 성생활’과 ‘여성의 성생활



이런 놀라운 자료들로 가득 찬 이 보고서는 딱딱한 통계수치와 도표로만 구성된 재미없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25만 부가 판매됐고, 전 세계적으로 12개 언어로 번역됐다.

당시 사람들이 막연하게 짐작했던 동성애, 혼외정사, 사창가 방문, 자위행위 등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행위들을 사실은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객관적인 수치로 밝혀냄으로써 사회적으로 거센 후폭풍이 있었다.

‘세상이 이렇구나’라고 인정하기보다 이를 조사하고 보고한 킨제이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린 것이다. 이에 놀란 록펠러 재단은 연구비 후원을 중단했고, 킨제이는 두 번째 보고서를 발표한 3년 후인 1956년에 사망했다.

그 즈음이 냉전시대이며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고 있던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킨제이 보고서에 대한 미국사회의 과도한 반응을 짐작할 수 있고, 그저 연구자였을 뿐인 킨제이의 심적 고통과 공포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을까 한다.




의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성 문제



킨제이가 수많은 사람들을 역학적 방법으로 면접조사를 해서 미국사회의 성생활의 풍속도를 객관적으로 밝혀냈다면, 윌리엄 매스터스(William Masters)와 버지니아 존슨(Virginia Johnson)은 생리학적 측면에서 성생활을 면밀하게 연구했다.

매스터스는 1943년 미국 로체스터 대학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고, 1947년부터 워싱턴 대학에서 일했다. 존슨은 임상심리학자로 1956년부터 연구보조원으로 매스터스와 연구하다가 나중에는 공동연구를 했다.

1964년 생식물학연구재단을 함께 세워서 1973년에 두 사람은 공동 소장이 됐다. 사적으로는 두 사람은 1971년에 결혼하여 20여 년간 함께하다가 1993년에 이혼했다.

이들의 삶은 최근 미국에서 〈매스터스 오브 섹스(Masters of Sex)〉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기를 낳는 것을 돕는 것보다 성에 대해 궁금해서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던 매스터스는 섹스를 할 때 인간의 몸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무척 궁금해 했다.

매스터스와 존슨은 심전도기, 뇌파기기와 같이 다양한 생리적 측정을 할 수 있는 기기를 이용해서 성행위 과정을 관찰하고 성적인 흥분과 자극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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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터스(우)와 존슨(좌)은 생리학적 측면에서 성생활을 연구했다. 사진은 1970년 이들의 두 번째 저서 발표 당시의 매스터스와 존슨.



처음에는 이런 민망한 실험에 그 누구도 자원하지 않아서 그들은 창녀를 고용했다.

나중에는 이 조사 프로그램에 협조할 지원자로 여자 382명과 남자 312명을 모집하여 성행위를 관찰할 수 있었고, 총 1만 번이 넘는 성행위를 기록하고 통합하여 1966년 [인간의 성적 반응(Human Sexual Response)]이란 결과물을 내놓았다.

매스터스와 존슨은 이 책에서 성행위 과정에 어떤 생리적 반응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그들은 흥분기(Excitement phase), 고조기(Plateau phase), 절정기(Orgasmic phase), 쇠퇴기(Resolution phase)의 4단계를 제시했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모델은 유효한 기본 모델로 사용된다.

또한 오르가즘을 경험할 때의 생리적 변화와 특징도 자세히 설명했다. 다소 당황스럽지만 이 연구의 장점은 모든 참가자들이 똑같은 환경과 상태에 성행위를 하고 이를 기록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결과로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실험실 세팅에서 성행위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피험자들은 그러한 상황에 곧 익숙해졌다고 증언했다.

이와 같이 정상 섹스의 반응과정에 대해 입증한 두 사람은 1970년에 [인간의 성기능부전(Human Sexual Inadequacy)]을 내놔서 조루, 발기부전, 불감증과 같은 오늘날 중요한 의학적 문제로 보고 있는 영역을 처음으로 객관적 문제가 있는 영역으로 범주화했고 질환으로서의 기준들을 제시했다.

이 책에서 그들은 2주일 동안 그들이 환자 부부를 치료했더니 여성불감증, 발기부전, 조루, 지루 등의 치료율이 거의 80퍼센트 이상이었다고 주장했다.

매스터스와 존슨의 중요한 업적은 인간의 성행위 과정을 생리학적 측면에서 규명한 것뿐 아니라, 그때까지 쉬쉬하고 넘어가다 보니 정확한 원인과 증상을 알 수 없던 성과 관련한 문제들을 ‘의학적 질환’의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증명해 내고, 진단적 기준들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둠 속에 있던 성과 관련한 질환들이 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치료와 연구를 경험해 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이들이 제시한 조루치료법인 ‘매스터스와 존슨 요법’은 지금도 기본적 치료법의 하나로 사용하고 있고, 부부 사이의 불감증과 성욕 저하와 같은 부분을 다루는 부부치료법도 그들이 거의 처음으로 만들어 확립한 것이다.




정신분석과 생리학을 통합한 치료법의 제시



이렇게 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의학의 한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정신의학에서 성의학이라는 하나의 전공이 성립되었다.

처음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으로 성을 이야기하며 심리적 측면을 강조했고, 이어 킨제이, 매스터스와 존슨에 의해 생물학적 요소가 강조되는 주도권의 변화가 있었다면, 이 두 가지를 통합한 사람은 헬렌 캐플런(Helen Kaplan)이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의대 내에 섹스클리닉을 처음 개설한 학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콜롬비아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뉴욕 대학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으며, 1970년에는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물론 성기능의 장애가 생물학적 측면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원인을 이해하고 깊은 내면의 치료를 하는 데에는 심리적 측면, 특히 정신분석적 이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두 영역을 모두 다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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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캐플런은 심리적인 측면을 성기능 장애의 치료에 도입하여 생리학과 심리학을 통합한 치료법을 제시했다.



그녀는 매스터스와 존슨과 달리 성반응을 욕망(desire), 자극(arousal), 극치(orgasm)으로 나눴는데, 그중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영역이 욕망이라고 했다. 깊은 심리적 영역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새로운 성치료(New Sex Therapy)]라는 책에서 이 두 영역을 통합한 치료법을 제시하면서 성 기능장애의 직접적인 요인을 무의식적인 갈등으로 생각하고 일단은 행위불안의 일종으로 보지만, 만일 치료가 잘 진행이 되지 않는다면 그보다 깊은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질경련이 있는 환자라면 물론 생리적으로 질경련이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나, 사실은 무의식적인 불안에 의한 일종의 공황상태가 신체증상으로 나온 것으로 해석해야만 치료할 수 있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심인성 발기부전과 같이 생식기 자체의 기능에는 이상이 없지만 성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할 때에는 특히 유효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캐플런의 성의학 연구소에서 공부한 정신과 의사들이 성의학 클리닉을 개설해서 활동하고 있다. 캐플런이 제시한 대로 부부치료나 심리치료를 통해서 성기능 장애를 치료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부부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장벽이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변화를 원하는 욕구가 강해서인지 성의학 클리닉은 비뇨기과나 산부인과 영역에서 약물이나 수술적 치료 위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처럼 킨제이의 성생활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 매스터스와 존슨의 성행위와 성기능 장애에 대한 생리학적 증명, 그리고 캐플런의 생리학과 심리학의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성은 몰래 쉬쉬하면서 모른 척하거나 공개적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남모르게 고통 받던 사람들이 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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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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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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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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