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유전과 환경 - 정신질환은 유전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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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69회 작성일 16-02-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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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병이 유전이 되지는 않을까요? 정신병은 유전이 된다고 하던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미친 사람들의 집안이 있잖아요. 집안 대대로 흘러 내려오는 광기의 피…….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나오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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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나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이 생물학적인 원인 때문인지 환경적 원인 때문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출처: gettyimages>



우울증이나, 조울병, 혹은 조현병(정신분열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나 가족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받게 되는 많은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다거나 폭력이나 사고로 인한 심리적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질환이 생겼다고 보는 것은 환경적 원인을 중시하는 쪽이다.

반면 가족 내력에 유전적으로 특정한 정신질환이 확연히 많다거나,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고 뇌의 특정 영역에 변화가 있으며 뇌 활동에 이상이 생기는 것 등을 원인으로 추정하는 것은 생물학적 원인을 중시하는 태도다.

이 두 가지 관점은 정신질환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아직까지 어느 한쪽으로 결정 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으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논쟁의 시작은 그다지 먼 옛날의 일이 아니었다.

200년 전만 해도 정신질환자들에 대해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있다고 치부하거나, 악마가 씌었다고 여기며, 병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기보다 사회에서 격리하려고만 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정신의학이 과학적 체계를 조금씩 갖춰가고, 정신병리학의 발달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정신과적 진단체계가 생기며 비로소 치료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비슷한 증상들을 가진 환자들을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정신질환의 원인론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쌍둥이와 입양아 연구로 증명된 정신질환의 유전적 영향



유전 연구의 대표적인 방법에는 쌍둥이 연구와 입양아 연구가 있다. 먼저 쌍둥이 연구는 일란성과 이란성 쌍둥이, 더 나아가 친형제 사이에서 같은 질환의 유병률 차이를 분석하는 것으로 유전적 영향을 수치화한다.

일란성 쌍둥이는 원칙적으로 100퍼센트 유전자를 공유하므로 이 둘 사이에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환경의 영향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1875년 영국의 유전학자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쌍둥이 연구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본성과 양육의 영향을 정확하게 저울로 달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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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성 쌍둥이는 원칙적으로 100퍼센트 유전자를 공유하므로, 이 둘 사이에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환경의 영향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gettyimages>



입양아 연구는 환경적 영향과 생물학적 영향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모가 친자식과 입양한 자식을 같이 키웠다면 두 아이의 경제적·사회적 배경과 양육 태도 등의 환경은 같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때 정신질환의 유병률을 분석해서 그 차이를 보면 유전적 영향을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집안에서 A라는 질환을 가진 환자가 드물지만 입양한 아이에게 잘 발병됐다고 하자.

그 아이의 생물학적 부모를 추적해 그들 가계에 A질환이 자주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환경의 영향보다 유전의 영향이 더 크다고 추정할 수 있다.

정신질환에 대한 ‘제대로 된’ 쌍둥이 연구는 1928년 독일에서 시작됐다. 정신과 의사 한스 룩센부르거(Hans Luxenburger)는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모든 정신병원에서 환자 명단을 확보한 후 이들 중 쌍둥이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1만 6천 명의 환자 중에서 211명이 쌍둥이 중 한 명임을 알아냈다. 룩센부르거는 이들과 면담하여 106명을 조현병(정신분열병)으로 진단했고, 생존해 있으면서 입원하지 않은 쌍둥이 형제 65명을 찾아가 면담한 결과 일란성 쌍둥이 중 두 사람 모두 조현병 환자인 경우가 7.6퍼센트 정도의 비율로 나타남을 밝혀냈다.

반면 이란성 쌍둥이 중에서는 전혀 없었다. 1800년대 중반 신경증의 유행과 1900년대 초반 정신분석의 유행으로 정신질환의 원인이 환경이나 마음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이 대세를 이룰 때, 이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정신질환이 생물학적 원인에 의해 생길 수 있다는 근거가 마련됐다.

이 첫 번째 연구의 한계는 표본의 수가 적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미국의 프란츠 칼만(Franz Kallmann)이 1940년대 초반 뉴욕주 공립 정신병원에 등록된 조현병 환자 중에 쌍둥이인 691명을 찾아내 같은 연구를 했고, 일란성 쌍둥이에서는 85.8퍼센트, 이란성 쌍둥이는 14.7퍼센트에서 일치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일반 형제들 사이에서는 7명 중 1명꼴로만 일치되어, 친족 간의 유전자 일치율이 떨어질수록 병의 일치율도 떨어진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러한 결과는 1950년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정신의학회에서 발표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현병, 조울병, ADHD, 알코올 중독의 높은 유전성



한편 가정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함께 진행되었다. 당시 조현병의 원인으로 어머니가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주는 ‘이중 구속 메시지(double bind message)’가 꼽히고 있었다.

겉으로는 “공부하지 않아도 돼. 건강한 것만으로도 엄마는 만족한다”고 말해놓고, 나중에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화내는 것처럼 겉으로 하는 말과 실제 속마음이 다른 모순적 메시지를 들으면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 조현병에 걸린다는 설명이었다.

이러한 가설에 대해 1968년 신경과학자였던 시모어 케티(Seymour Kety)는 1924년부터 1947년 사이에 덴마크 코펜하겐의 입양아 5,483명을 대상으로 조현병 환자를 생물학적 부모로 가진 아이가 정상인 가정에 입양되어 어떻게 자라나는지 조사해 발표했다.

당시 덴마크에는 입양등록부가 있었고, 연구자들에게 입양된 아이의 혈연관계를 추적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에 이러한 실험이 가능했다.

조사해 보니 직계 혈연가족에 조현병이 있는 입양아 집단에서는 조현병이 10퍼센트 발견되었고, 그렇지 않은 대조군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 범위를 덴마크 전역으로 넓힌 케티는 1992년 조현병 입양아의 생물학적 혈연관계에서 조현병이 아닌 일반의 혈연관계보다 유병률이 10배나 높게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후 이와 유사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와 조현병뿐 아니라, 양극성정동장애(조울병),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알코올 중독과 같은 많은 정신질환에 유전적 영향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전까지 정신질환은 스트레스나 심리적 트라우마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 여겨왔던 대중적·학문적 인식의 근본을 흔드는 객관적 증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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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구들에서 정신질환에 유전적인 영향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정신질환이 스트레스나 심리적 트라우마 등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흔드는 객관적 증거들이었다.



현재까지 여러 가지 연구들이 있지만 지금까지 정리된 바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조현병의 평생 유병률은 1퍼센트로, 100명 중 1명이 걸린다.

일란성 쌍둥이 중 두 사람 모두 조현병인 경우가 47퍼센트,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는 12퍼센트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조현병일 경우 그 자녀들 중에는 8~18퍼센트, 부모가 모두 환자일 경우 그 자녀들이 병에 걸릴 확률은 15~55퍼센트로 보고되고 있다.

이와 같이 유전자 일치율이 높을수록 유병률이 올라가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100퍼센트 일치하는 데도 47퍼센트만 같은 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53퍼센트는 환경적 영향도 분명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유전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피터 맥거핀(Peter MacGuffin)은 2001년 그동안 나온 유전과 환경에 관한 많은 연구들을 메타분석하여 주요 정신질환의 유전적 영향력을 통계적으로 처리해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그는 유전적 영향과 공유 환경에 의한 영향(가족 환경, 경제력, 문화적 배경), 비공유 환경의 영향(교통사고, 개인적 실패 등 혼자 경험하는 사건들)을 나눠서 분석했다.

조현병은 유전적 영향이 약 75퍼센트, 비공유 환경의 영향이 25퍼센트였고, 자폐증은 유전적 영향이 90퍼센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는 80퍼센트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특정 유전자는 스트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렇다면 유전적 영향과 환경적 영향은 서로 독자적인 것일까? 조현병의 나머지 53퍼센트의 환경적 영향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을 밝힌 연구가 있다.

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의 아브샬롬 캐스피(Avshalom Caspi)는 세로토닌 운반체(5-HTT)의 유전자 형질 변형과 스트레스의 빈도 사이의 상관관계가 우울증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2003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뉴질랜드에서 1,037명의 아동들을 모집해서 3세부터 26세 때까지 2년에 한 번씩 꾸준히 면담평가를 진행했다.

이들이 가진 세로토닌 운반체의 대립형질쌍을 길이로 분류하여 긴 것 2개(l/l), 긴 것과 짧은 것(l/s), 짧은 것 2개(s/s)의 세 집단으로 분류했다.

21세와 26세가 되었을 때 그동안 경험한 건강, 직업, 거주 등의 14가지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을 조사했다. 30퍼센트는 한 번도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지 않았고, 20퍼센트는 두 가지, 15퍼센트는 네 가지 이상의 큰 스트레스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했다.

큰 스트레스를 경험한 횟수와 주요우울장애 진단 확률을 비교해 보았더니 큰 스트레스를 경험하지 않은 집단은 대립형질쌍에 상관없이 우울증 진단 확률이 동일했는데, 경험 횟수가 늘어날수록 대립형질쌍에 따른 차이가 관찰되었다.

짧은 대립형질을 2개(s/s) 가진 집단이 긴 것 2개를 가진 집단(l/l)에 비해 약 2배 정도 성인기에 주요우울증이 발병할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자살 시도도 s/s집단의 스트레스 경험률이 클수록 많았지만 l/l집단은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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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우울증의 발병 가능성과 스트레스사건의 경험 횟수의 상관관계 (Caspi et al. 2003에서 발췌수록)



즉 특정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 나쁜 환경에서 부정적인 경험들을 반복적으로 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은 영향을 받을 때보다 정신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훨씬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 어떤 특정한 유전자적 특질은 환경의 영향을 방어해 주는 기능을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비록 다른 연구자들이 같은 방법론으로 같은 결과를 재연하지 못해 비판받고 있지만, 시사하는 바가 큰 연구였다.




뇌와 마음, 고차원적 복잡계 시스템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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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와 입양아 연구 등 유전적 영향에 대한 방법론들이 도입된 이후,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있다. <출처: gettyimages>



인간의 마음은 생물학적 기반이라는 밭과, 성장하면서 겪는 개인의 경험이라는 날씨의 두 가지 변수가 상호작용하면서 발달한다.

그 안에서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반응하면서 살아가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응에 실패하여 심각한 심리적 불편과 기능 저하를 불러일으키는 정신질환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가난이나 사회적 핍박, 스트레스나 심리적 트라우마라는 환경적 경험이 정신질환을 만든다는 심인론(心因論)으로만 정신질환을 설명하던 기존의 정신의학계에 유전적 영향에 대한 방법론들이 도입되었다.

그후 100년간 다양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면서 정신질환의 원인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어떤 질환도 단일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는 과학이 무능하고 덜 발달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인간의 정신세계는 뇌라는 하드웨어와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벌어지는 고차원적 복잡계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유전 연구의 도입은 정신의학의 발달에서 생물학적 기반의 존재를 입증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McGuffin P1, Riley B, Plomin R. Genomics and behavior. Toward behavioral genomics. Science. 2001 Feb 16;291(5507):1232-49.

· Caspi A1, Sugden K, Moffitt TE, Taylor A, Craig IW, Harrington H, McClay J, Mill J, Martin J, Braithwaite A, Poulton R. Influence of life stress on depression: moderation by a polymorphism in the 5-HTT gene.Science. 2003 Jul 18;301(5631):3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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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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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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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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