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인간의 성을 결정짓는 세 가지 - 남성을 여성으로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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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4회 작성일 16-02-0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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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8월 22일 캐나다 매니토바 주 위니펙의 한 병원에서 로널드 라이머(Ronald Reimer)와 재닛 라이머(Janet Reimer) 사이에 남자 쌍둥이가 태어났다. 두 아이의 이름은 브루스와 브라이언이었다. 생후 6개월 된 아기들은 소변을 볼 때 통증을 호소했고, 당시 의사들은 치료를 위해 포경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생후 8개월에 수술을 결정했다. 그런데 수술 중 의사가 전기소작기를 잘못 사용하는 바람에 브루스는 음경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이 사고로 부모는 충격에 빠졌고, 브라이언은 수술을 받지 않았다.

어찌 됐든 사건은 이미 일어나버렸고, 부모는 생식기를 잃어버린 아들 브루스의 앞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미국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의 심리학자 존 머니(John Money, 1921~2006년)를 찾아갔다. 그는 성 정체성 분야의 권위자였고, TV 프로그램 등에서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례를 예로 들며 성은 충분히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급진적 주장으로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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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리학자 존 머니(John Money). 그는 어린 시기의 사회적 학습에 의해서 성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성 정체성 중립 이론’의 선구자였다. <출처: Jose Villarrubia @The Kinsey Institute>



미래를 위해 브루스가 아예 여성으로 사는 게 낫다는 머니의 설득에 따라 부모는 브루스를 여성으로 키우기로 결정했다. 브루스가 22개월이 되었을 때 음경과 고환을 모두 제거하는 재수술을 받았고, 이름도 브렌다로 바꿨다. 그 후 꽤 오랫동안 부모는 1년에 한 번씩 아이를 머니에게 데리고 갔고, 아이가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상담과 치료를 계속했다.

머니는 어린 시기의 사회적 학습에 의해서 성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성 정체성 중립 이론’의 선구자였고, 이 이론에 입각해서 부모에게도 브렌다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했다. 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욕심 낼 만한 사례였다. 두 아이는 일란성 쌍둥이로 유전자가 100퍼센트 일치한다. 그런데 한쪽은 타고난 남성이고, 다른 한쪽은 후천적인 교육과 양육으로 만들어진 여성이라면 “성별을 자기인식 하는 요인은 유전자로 결정되는 선천적 성질이 아니라 후천적 성질이다”라는 자신의 이론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완벽한 사례였던 것이다.

머니와 그의 치료진은 미성년자인 브렌다에게 성적인 행동을 교육시키는 등 급진적인 치료로 성 역할을 주입했다. 그리고 이를 ‘존/조안 사례’라는 제목으로 양육과 교육에 의한 성공적인 성의 재지정 치료의 결과로 학계에 발표했다.




여성으로 길러진 남성의 비극적인 삶



브루스, 아니 브렌다는 자신을 여성으로 자각하고 예쁜 소녀로 자라났을까? 현실은 머니의 기대나 발표 사례의 내용과 달랐다. 자라는 과정에서 브렌다는 또래 여자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을 보였다. 인형보다 장난감 자동차나 비행기에 관심을 가졌고, 정적인 소꿉놀이보다는 활동적인 놀이를 즐겼다. 프릴이 달린 드레스나 여성호르몬 치료조차도 브렌다를 스스로 여성이라 느끼게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브렌다는 머리를 기르는 것도 치마를 입는 것도 싫어했다. 그러나 머니는 “브렌다가 소녀로 순조롭게 잘 자라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사춘기가 오기 전에 여성의 생식기를 조성하는 수술을 해서 브렌다를 완전한 여성으로 완성하자고 부모를 종용했다. 그러나 브렌다는 머니와의 상담치료에 극도로 저항하기 시작했고, 10세가 지난 후부터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13세경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을 보다 못한 부모가 브렌다를 다시 머니에게 데려가려 하자, 브렌다는 자살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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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라이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낸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As nature made him)』 미국판 책표지.



결국 부모는 브렌다가 14세 되던 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지만 브렌다는 원래의 성으로 살겠다고 결정했다. 이름을 데이비드로 다시 바꿨고, 이제는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고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성인이 된 후 1990년에는 제인 폰테인(Jane Fontaine)과 결혼했고, 그녀의 자녀들인 세 아이의 양아버지가 되었다.

데이비드 라이머는 머니의 이론에 반대하던 성의학자 밀턴 다이아몬드(Milton Diamond, 1934년~)를 만났고, 자신과 같은 사례가 또 생기지 않게 하자는 취지에 동의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1997년 3월 《미국 소아와 청소년학회지(The archives of pediatrics & adolescent medicine)》에 이 내용이 실렸고, 존 콜라핀토(John Colapinto)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여 출간한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As nature made him)』에 데이비드가 실명으로 등장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다시 본연의 남성으로 돌아가 결혼까지 했으니 그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결말은 그렇지 못했다.

2002년 정신분열증을 앓던 쌍둥이 동생 브라이언이 자살했고, 데이비드는 직장을 잃었으며, 제인과의 결혼생활도 삐걱거렸다. 2004년 5월 2일 제인이 별거를 제안하자 데이비드는 집을 나갔고, 3일 후 자살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성을 결정하는 세 가지 요인 - 성 주체성, 성 정체성, 성 지향성



라이머의 비극적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 “성 역할이나 성 정체성은 환경과 교육, 양육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론은 그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여성학이나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지지되었던 “남녀의 행동과 세상에 대한 인식, 심리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기보다 사회문화적인 영향이 훨씬 크다”고 보는 이론을 반증하는 사건이었다. “사내답지 못하게 울면 안 돼”, “여자답게 얌전하게 굴어라”라고 하는 교육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더 근본적인 남녀 성 역할에 대한 인식과 판단은 염색체 분화와 생물학적 결정에 의해 규정된 성 주체성이었던 것이다. 물론 소수의 예외가 존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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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염색체. 마지막 염색체가 XX이냐 XY이냐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 <출처: 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



결국 XX, XY 염색체로 결정된 생물학적 성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강력한 힘을 가지며, 이후 정신의학에서 성의학 분야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성 정체성과 관련해서 기본적으로 성 결정성의 요인,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구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 번째가 성 주체성(sexual identity)으로 성염색체와 성기의 생김새로 결정하는 생물학적 성을 말한다. 두 번째는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으로 이는 두 살 반에서 세 살 사이의 발달과정에서 ‘나는 어떤 성’인지 인식하는 심리적 성 정체성이다. 세 번째는 성 지향성(sexual orientation)인데, 매력을 느끼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뜻하는 것으로 이성이나 동성 혹은 둘 다가 될 수도 있다. 트렌스젠더, 동성애를 정의하는 데 이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데이비드 라이머의 경우 성 주체성은 남성이지만 사고로 성기가 손상되자 성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만들려 했던 사례다. 또한 성 주체성은 남성이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이 여성이라 자각하며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되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 성전환수술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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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Pew 전 세계 여론 조사: 사회가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합니까? "받아들여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 <data 출처: PEW 리서치센터 2014년 4월 발표 data>



이때 또 하나 이슈가 동성애다. 성 정체성이나 성 주체성은 자신의 성과 일치하지만 성 지향성이 동성인 경우를 동성애라고 한다. 많은 종교와 문화권에서 금기시 되는 등 뿌리 깊은 역사가 있는데, 이를 병의 관점으로 보는 경우는 많지 않았으나 간혹 범죄로 인식하기도 했다. 현대의학이 자리 잡으면서는 동성애를 병으로 인식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보려는 시도가 있었고,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정신성 발달 이론에서는 동성애를 발달적 측면과 신경증의 하나로 보기도 했다. 동성애자의 부모나 가족은 오히려 이러한 관점을 환영했는데, 동성애를 비도덕적이거나 처벌받을 행동으로 여기는 것보다 치료 가능한 병리현상이나 심리적 미성숙으로 보는 것이 심적으로 더 받아들일 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세기 중반까지 동성애는 정상화시켜야 할 비정상적 상태로 보는 경향이 우세했다.




성 지향성의 차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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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 그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수감되어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결국 자살했다. <출처: IEEE Global History Network>



동성애가 범죄라는 관점에 희생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년)이다. 그는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독일의 암호 기계 에니그마(Enigma)의 비밀을 풀어내서, 독일 잠수함 U보트에 속절없이 당하던 영국함대와 상선을 구해낸 영웅이었다. 또 인공지능의 기본 개념과 현대적 컴퓨터의 원조인 대형 계산 장치의 이론적 기초를 만들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때문에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과 화학적 거세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선고했는데, 그는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1년간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는 화학적 거세를 택했다. 이로 인한 굴욕감과 호르몬에 의한 기분 변화 때문인지 1954년 6월 8일 자살하고 말았다. 테이블에는 반쯤 먹다 남은 사과가 놓여 있었는데, 이 사과에서 치사량의 시안화칼륨이 발견되었다. 이 사과는 애플 사 로고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이처럼 1940~50년대는 동성애를 법적 처벌의 대상이자 강제적 거세의 대상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분류체계인 DSM의 1판이 처음 나온 1952년 판에 반영되어 동성애는 정신질환으로 정의되었다. ‘사회병리적 인격 병리(Sociopathic personality disturbance)’로 불리면서 일종의 문제가 있는 사회적 태도로 본 것이다. 이후 1968년 DSM 2판에서는 사회병리에서 성 장애의 일종으로 분류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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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촉발시킨 스톤월 폭동 장면



1960년대 후반 뉴욕 시의 스톤월 폭동 등으로 촉발된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영향으로 동성애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빠른 속도로 바뀌기 시작했고, 서서히 인간의 성적 지향성의 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동성애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미국정신의학회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1970년에서 1972년 사이에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자들의 반대에도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 총회에서 58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DSM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동성애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지 않았으며, 미국심리학회나 WHO 등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는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꾸어준다는 캠프나 심리치료센터로 커밍아웃한 자녀를 데려오는 부모들이 줄어들지 않았다.

일반적인 동성애는 정신질환분류에서 빠졌으나 DSM 2판부터 들어간 ‘성 지향성 방해(Sexual orientation disturbance)’는 1980년에 나온 DSM 3판에서 ‘자아 비동조적 동성애(Ego-dystonic homosexuality, EDH)’로 일부 개념이 남아 있다. 이는 동성애 자체는 질환이 아니지만,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경험하는 심리적 괴로움이나 가족 간 갈등, 사회적 어려움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때는 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개념이 DSM 4판에서 ‘성 정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로, DSM 5판에서는 ‘성 주체성 불쾌증(Gender dysphoria)’으로 계속 이름과 함께 개념이 조금씩 바뀌면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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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체성과 관련한 결정요인은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태이다. <출처: getty image>



성 정체성과 관련해 어떤 부분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고, 또 어떤 부분이 양육과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서 형성되는지에 대해 연구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세세한 부분은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태다. 성적인 측면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부분은 사회적, 과학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며, 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거나 변화시키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삶을 도리어 고통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동성애의 역사나 데이비드 라이머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하면 타고난 생물학적 본성을 교육이나 환경적 압력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은 어느 정도는 가능하나, 많은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타고난 생물학적 기반을 완전히 바꾸거나 개조하는 것은 잠시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나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성을 기반으로 환경에 최선의 적응을 해나갈 수 있도록 그 기질적 방향안에서 최적의 자극과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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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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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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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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