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역사 - 끔찍한 사고가 남긴 깊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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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72회 작성일 16-02-0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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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의 장면. 베트남전의 후유증으로 제이콥은 이상한 환영에 시달린다. <출처: 네이버영화>



첫 번째 장면 : 뉴욕의 한 지하철 안, 제이콥이란 남자가 눈을 뜬다. 객실 안을 걸어 다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열차에서 내리던 그는 이상한 환영을 본다. 시끌벅적한 클럽에서 음악에 취해 있던 제이콥은 이번에도 끔찍한 환영을 보고 공포에 휩싸여 쓰러진다. 미국의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는 베트남전 참전 중 칼에 찔려 큰 부상을 당한 이후 20년이나 환영과 전쟁의 기억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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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헌터]의 장면. 닉은 전쟁으로 정신이 피폐해져서 홀로 베트남에 남아 러시안룰렛을 하며 삶을 포기해버린다. <출처: 네이버영화>



두 번째 장면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소도시 클레어턴의 제철소에 다니는 마이클과 닉, 스티븐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종종 라이플을 메고 사슴 사냥을 즐긴다. 이들은 징집되어 베트남 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베트콩에게 고문당해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진다. 겨우 탈출해서 고향에 돌아온 마이클은 닉이 베트남에서 실종되었고, 스티븐은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티븐에게 매월 거액이 송금된 것을 발견한 마이클은 닉이 살아 있음을 확신하고 베트남으로 향한다. 그리고 죽음의 도박장에서 감정 없는 기계처럼 러시안룰렛을 하는 닉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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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왼쪽), [디어헌터](오른쪽) 포스터 이미지.




첫 번째는 에이드리언 라인(Adrian Lyne) 감독의 <야곱의 사다리(Jacob’s Ladder)>(1990), 두 번째는 마이클 치미노(Michael Cimino) 감독의 <디어 헌터(Deer Hunter)>(1979)다. 주인공들은 모두 베트남 전쟁에서 끔찍한 경험을 한 후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 제이콥에게 과거의 전투 장면이 재현되는 것은 플래시백(flashback)이라 하고, 닉이 극도로 위험한 행동을 하면서도 공포나 두려움 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해리(dissociation)와 무감각(numbness)이라 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의 특징적 증상이다.

인간이 인간을 스스럼없이 죽이고, 또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살아야 하는 전쟁은 생존 본능의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만큼 가장 큰 스트레스 경험에 속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전쟁 기간, 더 나아가 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도 후유증을 낳는다. 이것이 PTSD 개념의 시발점이다.




평화 시기의 자아 vs 전쟁 중의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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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 그는 역사상 최초의 PTSD환자에 대한 기록을 썼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년경~425년경)는 마라톤 전투에서 한 전사가 자기는 다치지 않았음에도 눈앞에서 병사가 죽을 때마다 눈이 머는 증상을 보였다고 썼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가장 이른 PTSD에 대한 기록이다. 1700년대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의 군의관 도미니크 장 라레(Dominique Jean Larrey, 1766~1842년)는 전쟁터의 부상자를 치료하면서 PTSD처럼 보이는 증상을 기록했는데, 처음에는 강한 흥분과 상상, 이어서 열감과 소화기 증상, 나중에는 좌절감과 우울 증상의 세 단계로 발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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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내과의사 제이콤 멘데스 다 코스타. 그는 남북전쟁때 병사들의 이상증상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총이나 대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다치거나 죽는 병사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병사들의 심리적 외상은 현실적으로 의사와 지휘관의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미국 남북전쟁 때 내과의사 제이콥 멘데스 다 코스타(Jacob Mendez Da Costa, 1833~1900년)는 일부 병사들의 혈압과 맥박수가 갑자기 오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특이한 증상을 보고하면서 이를 ‘병사의 심장’, ‘짜증난 심장(irritable heart)’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1871년 학계에 발표했다. 이때만 해도 이 증상이 전쟁에 참여하여 생긴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향수병’으로 보는 경향이 컸다. 그렇지 않으면 병사가 훈련을 덜 받았거나 애국심이 적어서 생기는 개인적 나약함,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부리는 꾀병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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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폭격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도로.





지루하고 긴 진지전 공방 속에서 병사들은 충격,놀람,악몽에 시달렸다.




그러나 유럽 전역이 대규모 전쟁에 휘말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 문제가 소수의 부적격 병사의 문제가 아님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대규모 포격이 일상화되고, 지루하고 긴 진지전 공방 속에서 꽤 많은 수의 병사들이 충격, 놀람, 혼란함, 예민함, 악몽에 시달렸다. 군의관이나 장교들은 포격으로 죽는 병사들을 가까이서 목격하거나 포탄(artillery shell) 소리로 인한 충격으로 발생한 문제로 보고 ‘셸쇼크(shell-shock)’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포격을 경험하지 않은 병사들에게서도 유사한 증상이 발견되었고, 후방 캠프에서 며칠 쉬면 65퍼센트 정도가 회복되어 전선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는 포격 충격으로 뇌가 손상되었다기보다 전쟁 자체가 주는 참혹함과 스트레스가 정서적인 혼돈을 주고, 극심한 공포 반응을 일으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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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 그는 ‘전쟁 신경증’의 개념을 제안했다.





『정신분석과 전쟁 신경증(Psycho-analysis and the war neuroses)』 책표지.




한편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년)도 아들들을 전장에 보냈고, 전쟁의 궁핍함과 끔찍함을 견뎌내면서 병사들의 심리적 고통을 목격했다. 그는 산도르 페렌치(Sándor Ferenczi, 1873~1933년), 칼 아브라함(Karl Abraham, 1877~1925년), 알프레드 어니스트 존스(Alfred Ernest Jones, 1879~1958년), 에른스트 지멜(Ernst Simmel, 1882~1947년) 등과 함께 『정신분석과 전쟁 신경증(Psycho-analysis and the war neuroses)』(1919)을 출판하면서 ‘전쟁 신경증’의 개념을 제안했다.

그들은 병사들의 증상을 마음 안의 ‘전쟁 자아’와 ‘평화 자아’ 사이의 무의식적 갈등의 결과물로 해석했다. 이는 외상 신경증의 일종으로 평화 시기에 작동하던 자아와 전쟁 중에 작동하는 새로운 자아(싸워 이기고, 살인해야 하는)가 서로 격렬하게 충돌한다. 그 와중에 오래된 평화 시기의 자아는 외상 신경증 증상으로 도망가서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전쟁 시기의 자아가 득세하면 타인을 공격하려 하고, 이로 인해 결국 자신의 생명도 위험에 처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분석적 해석이 나올 정도로 PTSD는 의학적으로도 실제 전쟁 상황 측면에서도 주요 문제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원래부터 심약한 병사들에게 생기는 문제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군의관과 군지휘관들은 문제가 생길 병사를 입대 전에 걸러내기 위한 심리검사를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입대지원자 중 무려 백만 명을 심리검사로 걸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 증상을 호소하는 병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용감하게 작전을 수행한 병사가 급작스럽게 PTSD 증상을 호소하는 일도 잦았던 것이다. ‘전쟁 신경증’이라는 용어는 ‘전쟁 소진증(combat exhaustion)’ 혹은 ‘전투 피로증(combat fatigue)’으로 바뀌었고, 이는 개인적 나약함보다는 환경적인 상황에 의해 발생하며 모든 병사에게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의미했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 때부터는 작전 지역 인근에 병사들을 위한 휴양지도 함께 건설했다. 전투 중의 심리적 피곤과 소진을 휴양지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베트남의 다낭, 태국의 파타야 등 동남아의 유명 관광지의 상당수는 미군의 휴양지로 개발되면서 발전한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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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다낭의 리조트. 동남아 관광지의 상당수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되면서 발전한 곳이 많다.






사건 당사자뿐 아니라 목격자까지도 포함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쟁에서 복귀한 군의관들이 일반인들을 치료하면서 교통사고, 자연재해, 강간이나 강도와 같은 큰 스트레스로도 비슷한 증상이 발생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1952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 1판을 처음 발간하면서 ‘총체적 스트레스 반응(gross stress reaction)’이라는 병명을 등재했다. 처음에는 전쟁 관련 외상에만 국한했으나 임상에서도 이 개념을 적용해 환자를 진단하기 시작했다.

1968년 DSM 2판이 발간될 때에는 이 병명이 삭제되었고, 이에 미국의 상이군인회를 중심으로 제대군인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참전 후 20년이 지난 다음에도 남성의 10~15퍼센트는 상당한 수준의 PTSD 증상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단명이 없어지면 치료 받을 근거도 없고, 이에 대해 보상 받을 수도 없었다. 제대 후 귀향하여 전쟁 영웅으로 환대 받았으나 일부는 반전 운동가들에게 냉대를 받기도 했고, 학업이나 직업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직업을 갖고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PTSD 증상과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제대군인이 늘어났고, 이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전쟁 장면의 재현, 해리 증상, 무감각, 불면, 악몽,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이 꽤 오랜 기간 지속되어 일상생활과 사회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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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많은 제대군인들을 PTSD증상에 시달리게 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이들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결국 1980년 DSM 3판을 발표하면서 지금의 PTSD라는 진단명이 복귀했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강력한 로비 집단인 상이군인회가 의학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라고 비판적으로 보기도 했다. 전쟁 같은 극히 드문 상황에서만 벌어지는 심리적 문제를 일반화시켜서,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후유증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도 정신의학계와 심리학계에서는 PTSD에 대한 정보들이 쌓여갔다. 이 증상이 전쟁 경험뿐 아니라 심한 교통사고나 강도 사건, 자연재해 직후에도 발생하고(급성 PTSD), 더 나아가 사건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도 발생한다는 것(지연성 PTSD)이 면밀한 조사와 임상사례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진단 기준을 수립하기 위한 소위원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트라우마적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을까’, ‘자연재해와 인재에 따른 차이가 있을까’, ‘스트레스 기간은 증상에 어떤 영향을 줄까’ 등에 대해 정밀하게 검토했고, 다른 불안장애나 우울증과 구별되는 특징적인 PTSD만의 증상을 구분 짓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DSM 3판부터 구체적으로 명시된 진단 기준은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기본적 골격이 되었다.

1987년의 DSM 3-R판과 1994년의 DSM 4판에서 PTSD의 진단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스트레스 원인은 일상적인 상황 이상으로 생명을 위협하거나 그 사람의 신체적 통합성을 위협할 정도의 심한 부상이나 그와 연관한 사건이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직접 당한 사람뿐 아니라, 목격한 사람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주관적으로는 힘든 일이지만 객관적으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은 사건은 PTSD의 원인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또한 반복적으로 악몽이나 플래시백을 경험하고 사건이 일어난 곳을 피하거나 일상적인 반응을 못하고 무감각해지는 증상이 있고, 여기에 자율신경계의 과각성이 일어나서 집중력 곤란, 짜증과 예민함, 불면 등이 동반되며, 이런 증상이 최소 한 달 이상 지속될 때 PTSD라고 진단할 수 있다. 이렇듯 상당히 좁고 명확한 진단 기준을 마련하여, PTSD 진단의 엄밀성과 정확성을 높였다.




명시적 기억이 누락된 곳에서 활동하는 감정적 기억



PTSD가 일단 자리를 잡고 나자 많은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1990년대 걸프전쟁과 2001년 9·11테러 이후 관련 연구가 확연히 증가했다. 특히 9·11테러 이후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현장에서 살아남았거나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 뿐 아니라 TV로 봤을 뿐인 사람들 중에도 PTSD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뉴욕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할수록 증상의 빈도가 높았고 멀수록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다른 연구에서는 직접 피해자 중 12퍼센트에서 PTSD가 발생하고 목격자도 그 1/3 수준인 4퍼센트에서 발생한다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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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를 가깝게 경험한 사람들은 PTSD 증상을 보이며 행동패턴의 변화가 관찰되었다.



또한 집단적으로 심각한 외상적 경험 후 행동패턴의 변화가 관찰되기도 했다. 9·11테러로 미국 내 장거리 여행에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 수가 급감했고, 반대로 장거리 운전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실제로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 확률보다 같은 거리를 자동차로 여행할 때 사망할 확률이 60배나 높지만, 테러를 목격한 외상적 사건은 집단에게 트라우마를 주고 비합리적인 회피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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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병대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완화를 위해 미술 치료 참여 때 그린 마스크.



한편 신경생물학적으로 PTSD의 특징적 증상들을 설명하려는 연구도 많았다. 외상으로 전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억제 능력이 상실되고, 그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며, 현실적인 인식을 하지 못하는 해리 증상이 발생한다. 뇌는 해리 상태의 외상 기억을 다시 의식 과정이나 언어 기억으로 재입력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과정에 사건 관련 이미지가 갑자기 재연 장면같이 몇 초 간 짧게 보이는 플래시백 증상이 나타난다. 기억이 제대로 입력되면 사건 경험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대부분 PTSD 환자들은 재입력에 실패한다. 이 때문에 명시적 기억이자 언어적 기억인 과거 기억 혹은 자서전적 기억으로 해마에 저장될 기억 분량이 비어버리고, 대부분의 기억이 감정적 기억으로 편도 등에 저장되어 설명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거나 회피 반응을 보인다. 전두엽을 중심으로 한 대뇌피질이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변연계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일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반복하므로 시간적으로는 현재진행형으로 이해한다.

한편으로는 뇌가 해마의 일정 부분이 빈 상태를 감지하고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반복하여 플래시백이 계속됨으로써, 환자는 느닷없이 사건 당시의 고통스러운 이미지가 재연되고 수면 중에도 악몽이 반복되는 것을 겪으면서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TSD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여러 가지 심리적·정신과적 치료가 개발되었다.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EMDR)은 눈동자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REM 수면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외상 기억을 재처리하고, 이로 인한 해리, 자율신경계 과각성을 치료하는데, 특히 PTSD에 치료 효과가 입증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기본 신뢰를 흔들어놓는 인재(人災)의 후유증



자연재해를 겪었을 때에는 피해자의 5퍼센트에서 PTSD가 발생하지만, 사고나 기술적 재난에서는 7~10퍼센트로 늘어나고, 성폭행이나 총기난사와 같이 인간에 의해 일어난 사건은 35~50퍼센트로 급증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에 비해 같은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 인간에 대한 기본 신뢰를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과 대중은 그 사건이 ‘인재(人災)’인지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것 같다. 사건의 성격이 주는 영향과 후유증이 그만큼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면 트라우마적 사건과 그로 인한 경험들은 피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된다. 이때 그 사건에 사로잡히면 남은 삶이 엉망이 되기 쉽다. PTSD의 재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일이 일어났음을 일단 받아들이고, 내 인생의 완벽무결함을 포기하며, 상처 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모든 위기는 성장과 새출발의 기회로 여겨 ‘새로운 정상(new normal)’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난해 국가적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가져온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노력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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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용인정신병원 정신의학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한 바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진료를 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심야 치유 식당],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예능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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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정신의학의 탄생』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갈등한 환자들의 고투가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자 한 치료자들의 분투와 맞닿은 의학의 교차점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머리에 쇠막대기가 꽂히는 사고를 겪은 피해자 게이지 덕분에 전두엽의 기능을 알 수 있었던 사건, 15년 동안 환자들의 뇌 조직 슬라이드를 정리해 치매의 존재를 밝힌 알츠하이머, 어린 앨버트 실험으로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왓슨,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든 제자 아들러와 융의 연구로 확장된 정신분석학, 남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키우고자 했던 급진적인 시도 등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정신의학의 흥미로운 이면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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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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