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나와 우리 - 우리라는 표현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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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8회 작성일 16-02-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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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나’ 혹은 ‘우리’라는 말 중 어느 하나를 더 빈번히 경험하거나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충분히 관점의 차이 혹은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출처: gettyimages>


영어권 국가를 여행하거나 그 문화권에서 온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나’와 ‘우리’라는 말의 사용이다. 우리는 좀처럼 ‘내 학교’ 혹은 ‘내 나라’라는 표현을 좀처럼 쓰지 않는다.하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my school’,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를 ‘my country’라고 쉽게 이야기한다.우리는 자신이 어떤 대상에 대해 소유권을 아주 명확하게 지닌 경우에만 ‘내(즉, my)’라는 표현을 쓰는 반면 그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my라는 표현을 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우리 와이프는 말야.”라는 영어로 직역하면 큰일 날 표현도 쉽게 쓰지 않는가. 우리는 정말 ‘우리’라는 말을 사랑한다. 1인칭 단수 대명사의 역할을 1인칭 복수 대명사인 우리가 빈번하게 가로채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언어 사용에 있어서의 차이일 뿐일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하듯이 집단주의적 경향이 정말 강하다는 말을 수없이 듣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은 정말 ‘우리’라는 말과 ‘나’라는 말을 사용함에 있어서 어느 것을 더 사용하기 좋아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십여 년 전 Northwestern 대학 심리학과의 Wendi Gardner 연구팀이 매우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1) Gardner 교수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왕이 전사를 선발하는 이야기가 적혀 있는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두 그룹이 받은 이야기 간의 유일한 차이는 인칭대명사였다. 즉,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야기에서는 모든 인칭대명사가 I, mine등과 같은 1인칭 ‘단수’ 대명사인 반면,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야기에서는 모든 인칭대명사가 we, our 등과 같이 1인칭 ‘복수’ 대명사들이었다. 물론 다른 내용은 완전히 똑같았다. Gardner 교수는 두 그룹 모두에게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인칭대명사가 나올 때마다 거기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 주세요.”라고 지시를 주었다. 즉, 한 쪽 그룹의 사람들은 1인칭 단수대명사들을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은 1인칭 복수대명사들을 계속 보았던 것이다.

Gardner, W. L., Gabriel, S., & Lee, A. Y. (1999). “I” value freedom, but “we” value relationships: Self-construal priming mirrors cultural differences in judgment. Psychological Science, 10, 32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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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 이야기 읽기가 모두 끝난 뒤 두 그룹의 사람들 모두 각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20 개씩 쓰도록 했다 . 1 인칭 단수 대명사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 나는 활동적이다 ” 와 같은 응답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한 반면 , 복수 대명사들만 사용된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 나는 2 남 2 녀 중 둘째이다 .” 와 같이 사회 혹은 가족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는 응답을 더 많이 했다는 것이다 .

또한 두 그룹은 사회와 개인의 딜레마 상황에서 어떤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다른 양상을 보였다 . 단수대명사 그룹은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높았던 반면 , 복수대명사 그룹은 사회구성원 간의 조화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 이후 유사한 결과들이 다수 발표되었는데 학계는 매우 관심 있게 이러한 연구들을 지켜보았다 . 단순히 ‘ 나 ’ 혹은 ‘ 우리 ’ 라는 말 중 어느 하나를 더 빈번히 경험하거나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 잠시나마 ) 충분히 관점의 차이 혹은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느 문화가 ‘ 우리 ’ 라는 말을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보다 아주 많이 쓰는 편이라면 그 문화의 성격을 한 번 예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바로 이 ‘ 나 ’ 와 ‘ 우리 ’ 의 차이를 통해서 말이다 .



우리라는 표현과 개념이 지니는 경계선



‘우리’라는 말은 집단을 표현하기 위해서쓰기 때문에내가 포함된 더 많은 속성을 지닌 구성원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따라서 나만의 색채는 약해지며 우리라는 집단이 지니는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성격이 나를 대신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OO지역 사람들’이라든가, ‘우리는 OOO을 지지하는 모임’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강한 결속력과 ‘우리’라는 말로 같이 묶일 수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착과 배려 등 여러 가지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순기능의 이면에는 ‘우리’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지 않는 혹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 혹은 배타성이라는 어두운 측면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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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타 국가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게 표출된 시기는 2001년의 911 테러사건 직후이다.
<출처:wikipedia>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우리’라는 개념이 쉽고도 무작위적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두 개의 추상화를 보고 어떤 그림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A 혹은 B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그 후 참가자들은 자신들에게 무엇이 주어지든 자신이 속한 집단에 더 유리하게 이를 나누어주려는 경향을 보였으며 심지어는 아예 무작위적으로 집단에 할당된 경우에도 이런 행동을 보이곤 했다.2) 보다 실제에 가까운 예도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타 국가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게 표출된 시기는 2001년의 911 테러사건 직후이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미국의 언론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We’와 ‘Our’라는 단어를 사용한 시기이다.3) 지나친 ‘우리’화는 개인의 자아정체감을 희석시키고 집단의 단순한 몇 가지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작용하여 친구 혹은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증폭시킬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집단 및 계층 간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물론 공동체 의식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배타성을 밑바탕으로 한 집단적 경계감에 몰입되어 자아를 상실하는 악순환은 언제고 일어날 수 있다. 그야말로 ‘우리’의 사회가 이런 상태에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Tajfel, H. (1970). Experiments in intergroup discrimination. Scientific American, 223, 96-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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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hn, M.A., Mehl, M.R., & Pennebaker, J.W. (2004). Linguistic markers of psychological change surrounding September 11, 2001. Psychological Science, 15, 687-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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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회피동기: 소망보다는 방지에 더 민감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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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의 못된 짓을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규제나 제약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출처: gettyimages>


이후의 연구들은 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해준다. 예를 들자면, ‘나’라는 개념이 더 활발할수록 행복 혹은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더 좋은 가치라고 판단하는 반면, ‘우리’라는 개념을 더 자주 떠올릴수록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을 막아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4) ‘오늘의 심리학’ 코너에서 이전에 소개했던 ‘접근과 회피’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전자는 접근동기에 가깝고 후자는 회피동기에 가깝다. 즉, 우리는 나보다 회피동기를 자극하기 더 쉽고 우리문화에서 전반적으로 회피동기에 기반한 사고와 행동들을 상대적으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도 생각될 수 있다. 물론 접근동기와 회피동기는 각자 장단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어느 한쪽만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회피동기가 지나치게 강조될 수 있는 위험을 우리는 그 반대의 위험보다는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회피동기가 사회적으로 지나친 지배력을 가지면 무언가를 바라고 성취하려는 성향보다는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의 방지에만 너무 많은 힘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사회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몇몇 사람들의 못된 짓을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규제나 제약이너무 많다는 것이다.” 몹쓸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그에 대한 방지는 분명히 강력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단순히 방지 차원의 제도들을 남발하여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접근 동기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나 단체 혹은 다양한 조직이 회피동기에 근거하여 쉽고간편하게 (무언가 방지하는)일을 하려고 하면항상 벌어지는 부작용이다. 무엇을 방지하면 그 반대방향으로 촉진된다는 식의 단순한 발상으로부터 벗어나야 우리 문화의 강한 ‘우리’의 개념이 지니는 순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Aaker, J. L., &Lee, A. Y. (2001). "I" seek pleasures and "we" avoid pains: The role of self-regulatory goals in information processing and persuas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28(1), 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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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reasoning(2007) 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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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1.10.17.



주석


1
Gardner, W. L., Gabriel, S., & Lee, A. Y. (1999). “I” value freedom, but “we” value relationships: Self-construal priming mirrors cultural differences in judgment. Psychological Science, 10, 321-326.
2
Tajfel, H. (1970). Experiments in intergroup discrimination. Scientific American, 223, 96-102.
3
Cohn, M.A., Mehl, M.R., & Pennebaker, J.W. (2004). Linguistic markers of psychological change surrounding September 11, 2001. Psychological Science, 15, 687-693.
4
Aaker, J. L., &Lee, A. Y. (2001). "I" seek pleasures and "we" avoid pains: The role of self-regulatory goals in information processing and persuas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28(1), 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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