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돈은 돌아야 한다 - 돈 이야기로 읽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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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6회 작성일 16-02-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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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글살이에서의 ‘돈’



‘돈’이라는 말은 이미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보인다. 유래가 오래된 말이다. 그만큼 돈과 호응하는 우리말들이 유별나고, ‘화폐’와 ‘돈’은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예컨대 “돈이 죄이다”, “그 사람은 돈이 많다”, “큰돈이 된다”, “돈을 열심히 번다”라고는 해도, “화폐가 죄”라든가 “화폐가 많다”라거나 “큰 화폐가 된다”라거나 “화폐를 번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돈’은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여러 개별적인 삯, 값, 가격, 가치들의 집합이다. 다시 말하면 언중들에게 돈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일상이면서도, 실제의 개별적 경제행위들을 총합하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돈은 ‘있다/없다’, ‘되다/안 되다’, ‘들어오다/나가다’, ‘벌다’, ‘들어가다’ 등의 서술어와 호응하는데 다분히 의인화된 표현으로 활용된다. 우리에게 돈은 살아 있는 존재나 다름없다. 화폐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돈은 마치 우리 주변에서 제 스스로 살아 움직이며 인간과 동고동락하는 그 어떤 존재이다.

돈은 공공재(公共財)라고 한다. 비록 돈에도 가격이 있고 소유주가 있지만, 개별 ‘재화(財貨)’들의 가격을 매김으로써 상대적 가치를 정해주므로 특별히 ‘통화(通貨)’라고 개념화하는 까닭이다. 이는 돈이 공기, 물, 불 등의 자연물과 같이 인간 삶의 절대적 배경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뜻에서 돈은 정해진 주인이 없이 돌아야 하는 것이다. 돈은 소유를 지시하기보다는 가치를 매개함으로써 인간관계를 맺어준다. 돈이 잘 돌면 재화도 공평하게 쓰이고 인간관계도 돈독해진다. 그러나 잘 돌지 않으면 불평이 쌓이고 불신은 커진다. 돈의 어원은 ‘돈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아주 그럴 법하다.



돈의 인문학 – 가능성을 벌고 쓰는 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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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한국은행과 화폐금융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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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한국은행 구관 미니어처.
르네상스 양식의 석조 건물로 현재는 화폐금융박물관으로 쓰인다.



우리나라 돈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국은행을 찾아갔다. 한국은행 본관 빌딩은 뒤에 있고, 구관이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구관은 대한민국 화폐의 상징으로 오백 환권(1961년), 오천 원권(1972년) 등의 뒷배경이 된 곳으로, 현재는 ‘한국 화폐금융박물관’이다. 1912년 1월에 완공된 르네상스 양식의 석조 건물이니 외양으로 보더라도 박물관으로서는 적격이다. 광장을 지나 1층, 중간층, 2층을 모두 돌면서 다리품을 팔고 나니 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화폐금융박물관에서 발간한 도록 [우리화폐 세계화폐](한국은행, 2010)까지 읽고 나니 화폐에 대한 지식이 많이 쌓였다. 하지만 ‘화폐’가 아닌 ‘돈’에 대해서 무엇을 알았는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한국 경제와 관련하여 정성스레 해당 코너를 마련해놓았지만 기존 지식을 훌쩍 뛰어넘는 안목이 생기기는 어려웠다. 내가 알고 싶은 분야는 화폐에 관한 경제학이나 금융학이 아니라, 돈의 인문학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쓴 데 비해 여러 가지로 번 게 많다. 그중에 하나. 돈의 모양에 대해 국내외 전시품을 실컷 구경했다. 특히 옛날 돈에 여러 뜻을 담아 만든 별전(別錢)은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별전은 갖가지 도상들을 앞면에 새기고, 뒷면에는 기원을 담은 글귀를 새겨 넣기 일쑤였다. 오늘날의 기념주화와 엇비슷하지만 무엇을 특별히 기념하기보다는 우리들 삶 가운데 일반적 의미를 담았다. 또 각종 별전을 주렁주렁 엮어 매어 노리개로 ‘별전괴불’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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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쌍복(雙蝠) 오복(五福) 별전, 43×36mm



예컨대 그림 3은 전체적으로 꽃모양에다 전면에는 두 마리 박쥐와 두 개의 별을 부조(浮彫)해 넣었다. 후면에는 꽃문양을 두르고 오복문자와 태극문양을 양각(陽刻)해 넣었다. 박쥐는 한문으로 복(蝠)으로 쓰고 복(福)과 독음이 같아 전통적으로 애용되던 길상(吉祥) 문양이었다. 그런데 그 박쥐가 두 마리이니 ‘쌍복’이다. 거기다 별 문양이 보태졌다. 흔히 칠성(七星)이 많지만, 여기서는 두 마리 박쥐와 함께 두 개의 별이다. 아마도 이를 차고 다니는 사람의 직성(直星)일 터이다. 그것도 부부가 함께 직성이 풀리도록 기원했을 법하다. 아니나 다를까. 뒷면의 오복은 부부가 함께 누려야 할 복의 총칭이다. 음양의 조화를 낳는 태극으로부터 부(富)와 귀(貴), 그리고 다남(多男), 수복(壽福), 강녕(康寧)에 이르기까지. 요즘으로 말하자면 돈 많이 벌고 승진도 제때 하면서 자식들 잘되고 부부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팔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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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문자(文字) 춘화(春畵) 별전(1) 앞뒷면, 36mm



또한 별전을 자세히 살피면 희한한 것이 많아 현대인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른바 춘화전(春畵錢)이란 것도 있다. 그림 4와 같이 둥근 바탕에 네모진 구멍이 뚫린 전통적 공방전(孔方錢) 형태에 전면에는 문자를, 후면에는 갖가지 성희(性戱) 장면을 부조(浮彫)해 넣었다. 뒷면 좌우에는 머리카락을 길게 드리운 여성도 있어 남녀 구분을 하게 했다. 누운 것도 있고, 비스듬히 앉은 것도 있고, 업음질한 것도 있다. 그야말로 <춘향전>의 ‘사랑가’를 시간순으로 이리저리 새겨놓은 듯도 하다. 그림 5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면에는 ‘풍화설월(風花雪月)’이라는 문구가 대독(對讀)의 순서로, 후면에는 이 별전에 다행스럽게도 녹이 덜 끼어서 남녀의 표정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운우지락(雲雨之樂: 남녀가 육체적으로 어울리는 즐거움)이 역력하다. 가짜가 기승을 부려 수집애호가들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게도 하고, 대부분은 중국 민국시대 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19세기경 조선에서도 만들어진 것이 없진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별전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기생들이 부적처럼 품속에 넣고 다녔을까? 아니면 장안의 오입쟁이들이 단골 기방에서 호기 있게 자랑하던 마스코트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중국에서 물 건너온 박래 수집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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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문자(文字) 춘화(春畵) 별전(2) 앞뒷면, 36mm



그림만 가지고는 더 이상의 상상이 허용되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 눈 개인 뒤의 달”이라고? 그래도 ‘風花雪月’, 이 문구가 상상의 나래를 펴게 도와준다. 상투적으로 풍월이나 읊조리는 문필 행위인 ‘음풍농월’과 같은 뜻이다. 하지만 거기에 꼭 끼어드는 것이 주(酒)와 색(色)이다. 그러나 ‘풍화설월’이 본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송(宋)의 소옹(邵雍)은 자신의 시문집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서문에서 “비록 사생영욕의 일이 내 앞에서 여기저기 벌어져도 일찍이 흉중에 들어온 적이 없다면, 네 계절 풍화설월이 눈앞을 한 번 스쳐 지난 것과 뭐 다르겠는가?”라고 했다. 죽고 사는 문제, 즉 영광과 오욕은 우리 삶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한 점에서 인생은 싸움터이다. 이기면 영예를 차지하고 지면 욕됨을 견뎌야 한다. 그 때문에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아니, 인생을 사는 목적이 그런 데 있는 것으로 알고 우리 중생들은 살아간다. 그러나 우주와 진리의 차원에서 보자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도 사시풍경과 다를 게 없다. 깨친 자의 선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을 진행시킬 수 있다. 네 계절 풍경이라도 바람과 꽃은 우호적 관계가 아니다. 눈과 달도 그렇다. 바람에 꽃은 시달리고, 눈이 오는데 달이 뜰 수는 없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은 아름다운 만큼 애처롭고, 눈 개인 뒤의 달은 고즈넉하지만 외롭다. 재능을 가진 기생이 그런 꽃이요, 눈 덮인 달밤에는 헤어진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마음의 한 자락을 흔들고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한때의 풍광일까? 풍월에 파묻혀 사는 삶과 세상 영광을 위해 분투하는 삶.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이 삶의 본격이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사실 모든 것이 산업화되어 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그 둘을 동시에 추구한다. 돈이면 풍월을 누릴 수도 있고, 세상 영광도 길게 차지할 수 있다. 돈이 없더라도 낮에는 직장을 위해 능력을 키우거나 발휘하고,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그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한 시인의 위안처럼 우리는 썩은 샛강물에 삽을 씻으며 도시적 삶의 고단함을 흘려보낸다. 그 강물에도 달이 뜨고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늙은 아비가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는 젊은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하느님이 돈 1억 원이 생기게 해주시거나, 생명을 10년 연장시켜주신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니?”

“10년 연장이요!”

“10년 더 산다고 1억이란 돈이 쉽게 생기지는 않을 텐데?”

“돈보다는 오래 사는 게 나은 것 아닌가요?”

“나 같으면 1억 원 생기는 쪽이 솔깃할 텐데! 오래 산다고 큰돈이 생기는 건 아닐 테니까.”

“아니, 늙은 다음에야 10년이 더 주어지는 건가요?”

“그렇지 않겠어? 자연 수명에 10년이 보태질 수밖에 없잖아……. 별일 없으면 늙어서 10년을 더 사는 거겠지.”

“그럼, 제가 게임하고 있을 때 묻지 마시고 이따 치킨 주문할 때 물어보시지 그랬어요! 그러면 돈을 택했을 텐데…….”

“그러고 보면 모든 게 우리의 바람이고 가능성이구나! 하느님이 주신다 해도 그 돈이 어떻게 어떤 경로로 생길지 모를 일이고, 10년 목숨이 연장된다 하더라도 살고 있는 한에는 그게 자연적인 것인지 보태진 것인지도 구분하기 어렵잖아.”

“아, 그렇군요! 어차피 이 세상에서 사는 게 하느님이 살아보라고 해서 사는 거고, 아버지 덕에 이만큼 돈이고 시간이고 벌고 사는 건데요……. 열심히 할게요! 앞으로 열심히 살다 보면 돈도 벌고 살맛도 날 테니, 그동안 시간을 벌어서 공부는 많이 하고 게임은 조금 하고요. 그게 1억 원이고 10년 더 사는 게 아닐까 싶네요.”

그러고 보니 ‘벌다’와 ‘쓰다’라는 말이 오묘하다. 벌고 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시간을 써서 돈을 벌고, 다시 돈을 쓰면서 시간을 소비한다. 정작 돈 쓸 시간이 없거나 아까워서, 재주는 뚱뚱한 아빠 곰이 부리고 돈은 날씬한 엄마 곰이나 귀여운 아기 곰이 쓴다. 그렇다면 돈을 벌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게 아니라 일을 하다 보니 돈이 제 발로 들어온 것이라 보는 편이 더 타당할 때가 많다.

결국 돈을 벌든 시간을 벌든, 그것은 쓰임의 가능성을 잠시 맡아두는 것에 불과하다. 반면에 돈이나 시간을 쓴다는 것은 그 가능성의 여분을 줄이면서 다른 대가를 얻는 것이다. 물론 한 개인으로 보면 그 반대급부로 다시 돈과 시간을 더 많이 버는 것일 수도 있고, 완전히 그것을 써버리고 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얽히는 관계로 보자면 내가 쓰는 돈과 시간이 완전히 소진되고 마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적어도 나의 소비는 다른 이에게는 버는 일이 되며, 삶의 공동체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어야 마땅하다.



소통이 안 되면 재앙이 온다




돈은 원래 돌게 되어 있지만 모이기도 마련이다. 물건으로 저장할 때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는 데 비하여 돈의 보관은 그보다 훨씬 용이하다. 예전에는 돈꿰미를 만들어 궤에다 보관하고 남이 알지 못하게 숨겨놓았다. 그러다가 잘못되어 돈궤가 사장되고 소통의 가능성이 묻히고 만다. <돈이 사(邪)가 된 흉가> 이야기는 구비설화에 심심치 않게 구연되는 유형으로 돈궤 혹은 금덩이가 묻혀서 사기(邪氣)가 되고 집안사람이 차례로 죽어나가 흉가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사리를 따지자면 집안사람이 죽어나가고 돈궤가 묻혀버려 흉가가 되었을 터이지만, 설화는 순서를 거꾸로 말하면서 극도로 움츠러든 그 기운에 사람들이 어찌 대처해야 할지 사연을 풀어놓는다.

심지어는 부잣집 주인이 돈을 쓰지 않아 사(邪)가 된 돈이 주인을 해코지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 구비문학 대계](7-1)에서 채록 정리한 <주인을 죽이려고 한 돈>이 그것이다.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주인을 해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느냐?”라고 조사자가 이야기꾼에게 물으니, “그건 모르고 돈이 주인을 해친다는 이야기는 있다!”라고 하면서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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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조선시대 돈궤, 한국은행박물관.



옛날 어떤 부자가 자꾸 엽전을 꿰어 농에다 구렁이처럼 쌓아두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자꾸 재놓으니 사가 일었는데, 그 집 아들이 장가를 들려고 날을 받았을 때 사단이 났다. 아들 타고 갈 말의 죽을 끓이던 하인이 엽전들이 야단스레 작당하는 소리를 들었다. 장가가는 길에 어떤 돈은 맑은 물이 되고, 다른 돈은 딸기밭 독사가 되고, 또 다른 돈은 장인 집 댓돌에 숨은 살모사가 되어 사를 부리자고 떠들어댔다. 하인은 도령의 말을 후려갈겨 길을 재촉하고, 장인 집에 들 때는 도령의 상투를 쥐고 엉덩이를 차서 신방에 처넣었다. 아들은 생각할수록 분하여 삼 일 만에 돌아와 하인을 문초했다. 그랬더니 하인이 궤짝의 돈들을 없는 사람들에게 전부 나눠주라고 말했다. 아들은 집안 살림을 거덜 낼 놈이라고 화를 냈지만, 자초지종을 듣고는 그 말대로 하고 하인도 생명의 은인이라고 용서해주었다.

이 이야기는 이야기든 돈이든 한곳에 머물러서는 못쓴다는 뜻이다. 남의 이야기만 듣다 보면 알게 모르게 부림만 당하기 십상이고,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면 그 돈 때문에 횡액을 당할 수 있다는 점에 수긍이 간다.

또한 공부만 하던 아들이 아들로 둔갑한 쥐에게 쫓겨났다가, 돈이 사귀가 되어 흉가가 되어버린 집의 처녀를 구원한 이야기도 있다. 횡액을 당했던 아들은 횡재했을 뿐만 아니라 돈 귓것들로부터 토괴를 얻어 가짜 아들을 내쫓고 아들의 지위를 되찾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6-11)에 수록된 이야기로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어떤 귀한 집 자식이 스무 살 가깝도록 서당에 다녔다. 하루는 집에 와보니 저하고 똑같은 놈이 와 있었다. 진짜 아들은 집안 사정을 잘 몰라 쫓겨났고, 떠돌아다니다 텅 빈 부촌에서 어여쁜 아가씨를 만났다. 아가씨는 석 달 전부터 저녁마다 한 사람씩 죽는데, 오늘이 마지막으로 자기가 죽을 차례라고 했다. 아들은 죽을 결심으로 머리 열둘 달린 탈을 쓰고 밤중을 기다렸다. 머리 둘 달린 귀신부터 열 개 달린 귀신까지 나타났지만 모두 굴복했다. 그 귀신들은 몇 천 년 동안 땅에 묻혀 세상 바람을 못 쐐 사가 된 금궤라며 제 정체를 밝혔고 끄집어내달라는 소원을 말했다. 아들은 다음 날 처녀와 둘이 후원에서 금항아리를 캐내 일약 백만장자가 되었고, 처녀와는 내외간이 되었다.

아들은 전날 밤 귓것들이 ‘토괴’란 놈과 의논하는 소리를 들었다. 불러 물으니 삼천 년 전에 어떤 대사가 언젠가 쓰일 데가 있다면서 흙으로 만든 고양이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묵어 토괴가 됐다고 했다. 금항아리를 싣고 새색시와 함께 금의환향하여 보니 제 집에 열두 명의 아이들이 태어나 있었다. 토괴를 툭툭 털어 내놓으니 토괴는 쥐 열세 마리를 물어 죽여놓고 깨져 흙으로 변해버렸다.

이 이야기는 단락 구성으로 보아 설화 <쥐좆도 모른다> 유형에 속하기는 해도 고양이 혹은 부적을 얻는 대목이 특별하게 확대 부연된 변이형이다. 여기서는 ‘사가 된 돈궤’와 ‘요괴 쥐를 퇴치한 토괴’의 두 화소(話素)가 중첩되어 흥미진진하다. 금항아리가 천 년간 묻혀 햇볕과 바람을 쐬지 못해 귓것이 되었고, 오직 바깥으로 끄집어내달라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었다는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10년간 책상물림으로 공부만 하던 아들이나, 진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가족들이나 애처롭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쫓겨났기에 죽을 각오로 귓것에 맞서 그 정체를 알아내고 그들의 간절함을 풀어주었다는 설정은 통쾌하다. 터무니없는 횡액이 돈과 아내까지 얻는 횡재로 바뀐 종잡을 수 없는 옛날이야기라 치부하지는 말자! 가족관계와 재물이 소통되지 않고 먹통 속에 있다가 광명천지로 나오게 되었을 때,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 뒤따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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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재복 금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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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재복 은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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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변상벽(卞相璧), <묘작도(猫雀圖)>
비단에 옅은 채색, 93.7×4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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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양이’를 다시 생각해본다. 일본 사람에게 고양이는 재물의 상징이다. 한국에도 일본식 라면집에 가보면 그림 7과 그림 8처럼 고양이 상(像)들이 진열되어 있다. 수놈 혹은 암놈 같기도 하고 금이나 은 고양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천만 냥’이라 적혀 있는 부적을 한 손으로 잡아 앞에 세우고, 또 한 손으로는 커다랗게 손짓을 하고 있다. 일본어로 ‘千せん萬まん’이란 ‘무한’을 뜻한다. 흔히 ‘千萬無量(せんまんむりょう)’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을 일컫는다. 결국 이들 고양이는 엄청난 부를 불러들일 재복신(財福神)이다. 이에 비해 우리 이야기에서의 ‘토괴’는 흙괴, 즉 진흙으로 빚은 고양이 상을 지칭한다. 이야기 현장에서는 ‘도괘’, ‘토귀’, ‘토뀌’ 등으로도 일컬어진다.

그런데 토괴는 애초 돈더미와 같이 지하 세계에 속해 있었다. 쫓겨난 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삿된 기운으로 변한 금궤의 부림을 받아 처녀 집안의 문을 열어주는 등 앞잡이 노릇을 했지만, 이 점에서 재복신의 성격을 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계의 존재들끼리는 소통하지만 양계의 집안사람들과는 불통하는 존재였다. 10년간 공부한 아들, 백만장자의 딸, 묻혀 있는 금궤, 오래전 예비되어진 진흙 고양이 등은 가능성이 무궁하지만, 불통의 단계에서는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재앙을 당하거나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반면에 한국 전통회화에서 고양이 그림 <유묘도(遊猫圖)>는 활물(活物)의 신묘함을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흔히 고양이 ‘묘(猫)’는 칠십 살을 뜻하는 ‘모(耄)’와 발음이 비슷하다 하여 장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많이 그려졌다고 한다. 그림 9는 영조 때 활동했던 화원화가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1730~?)의 <묘작도(猫雀圖)>이다. 그는 특히 고양이와 닭 그림을 잘 그려 ‘변괴양(卞怪樣)’ 혹은 ‘변계(卞鷄)’라는 별명을 지녔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 그림에서도 참새들이 날아들고 고양이 두 마리가 호응함은 순간적 포착이지만 마치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천 년 전에 진흙으로 빚은 고양이는 오래 묵은 만큼 잠재된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천지간에 궁해진 쫓겨난 아들을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신물(神物)이 되었다. 막히면 죽을힘을 다해 변해야 하고, 변하면 소통의 길이 열린다.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이다. 이야기나 그림이나 화합과 소통이 있어야 살아 있는 사물이 된다. 불통, 먹통이 되면 재앙이 일어나는 법이다.



신선이 돈을 가지고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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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심사정(沈師正), <유해희섬(劉海戱蟾)>
조선시대 18세기, 비단에 옅은 채색, 22.8×15.6cm,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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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역사와 문학으로도 할 말이 많지만 그림과 더 만나보자. 신선도(神仙圖)에서 유독 돈을 주요한 소재로 그리는 그림이 있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10은 유해(劉海)라는 신선이 두꺼비와 노는 그림인데, 손에 무언가 매달고 있다. 당나라가 망하고 북쪽의 새외(塞外)민족이 잇달아 나라를 세워 군웅할거하던 오대(五代) 시기에 유조(劉操)라는 사람이 후량(後粱)의 재상을 지내다가 관직을 버리고 신선이 되었다. 종리권(種離權)으로 추정되는 정양자(正陽子)라는 도인이 계란 열 개를 금전 위에다 포개어 쌓으면서 이 재상을 일깨웠다. 금전 위에 쌓인 ‘누란지위(累卵之危)’가 많은 녹을 먹으면서 우환을 딛고 사는 위태로움보다는 덜하다고 했다. 이후 그는 이마에 머리카락을 내린 선동(仙童)의 형상을 하고, 손으로는 돈꿰미를 놀리며 두꺼비 등에 타고 다녔다 한다. 이 세 발 달린 두꺼비는 어느 곳이나 데려다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가끔 심술을 부려 물속으로 도망치면, 금전을 끈에 매달아 낚아 올렸다 한다. 그의 호가 해섬자(海蟾子)여서 흔히 ‘유해섬(劉海蟾)’ 혹은 ‘유해(劉海)’라고 애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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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백은배(白殷培), <하마선인(蝦蟆仙人圖)>
조선시대 19세기말, 비단에 채색, 122.5×34cm,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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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심사정의 그림을 보면 유해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다. 금전을 매달았다고는 하지만 간략하게 처리하고 말았다. 두꺼비도 세 발 치켜들고 해괴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그림이 필요하다. 그림 11에서는 유해의 모습이 훨씬 장난스럽게 표현되었고, 금전도 다섯 냥이나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세 발 두꺼비가 큰물에서 낚이고 있는데, 이는 두꺼비의 신화적 이미지를 충실하게 표현한 것이다. 동부여 건국신화에서 금빛 개구리 모양의 ‘금와(金蛙)’가 출생하는 곳도 연못가였다. <두꺼비 신랑>이나 적강형(謫降型) 고소설인 <두껍전>의 모든 이본에서도 두꺼비 아들은 연못에서 출현한다. 두꺼비는 민간신앙에서 재물을 가져다주는 ‘업’의 동물로 여겨진다. 두꺼비 신랑은 부모가 된 늙은 내외에게 주문을 외워 양식을 가져다주고, 선관으로 변신한 두꺼비가 처부모를 모시면서 하늘에서 양식을 내리게 한다. 선관이 적강(謫降)한 장소인 ‘못’은 천상계와 함께 비현실적 ‘성(聖)’의 공간이며 못 바깥은 ‘속(俗)’의 공간이다.

유해섬은 세속에서 사는 신선이다. 민간을 떠돌아다니며 백성들을 돕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널리 돌아다닐 신통력과 두루 도울 재력이 필요하다. 달의 정령인 세 발 두꺼비를 굴복시켜 그 두 가지 능력을 민초들과 함께 나눈다. 두꺼비 등에 올라타 갈 곳을 마음대로 가고 두꺼비 입에 물린 금전을 필요한 대로 쓴다. 두꺼비가 가끔 말썽을 피우면 그림 10처럼 을러대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위하자는 데 뜻이 있다.그림 11의 화제시를 보라! “풍자소쇄무심월 기도융화유각춘(風姿瀟灑無心月 氣度融和有脚春)” 그의 풍모는 맑아서 무심한 달이요, 그의 도량은 무르녹아 걸어 다니는 봄기운이다.

유해에게는 입성이 날개가 아니다. 그는 방랑객이다. 머리 모양은 어떤가? 아이들처럼 상고머리다. 청나라 말기에 부랑아들은 변발을 하면서도 제비꼬리 식으로 짧게 앞머리를 남겨놓았고 부녀자들은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머리 모양을 즐겼다 하니, 이름하야 ‘전유해(前劉海)’가 유행했다 한다. 무심한 달처럼 꾸미지 않고 어디에나 나타나니, 오히려 훤하게 보이는 그의 모습을 대중들이 ‘효빈(效顰: 남을 흉내 냄)’한 셈이다. 또한 그는 고허함을 좇는 자가 아니다. 백성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일을 소박하게 찾는다. 마치 봄기운이 모든 이를 따듯하게 품어주듯이. 민간에서 머슴으로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기에 훌륭한 목민관이라도 미처 다 하지 못할 일을 그는 알고 행한다. 백성들의 고된 삶을 함께 나누며 돕는 것. ‘선정비(善政碑)’가 없어도 그게 진정한 ‘유각춘(有脚春)’이다. 돈은 그러한 사람의 손에서 제대로 돌고 두루 소통한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海神)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14547415861590.png  http://www.thaehaksa.com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도서 출간
네이버캐스트에 연재되었던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시리즈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시대 인문학자 32인이 옛 그림을 호명해 되살려낸 한국학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윤주필
한국고전문학 전공. 단국대학교 국문과 교수. 우언문학 연구에 주력하면서 우언의 인문학적 효용성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한문 문명권의 동아시아 우언문학과 세계 알레고리 문학의 비교론으로 연구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의 방외인문학], [남호거사 성춘향가], [틈새의 미학 – 한국 우언문학 감상], [윤리의 서사화 - <오륜전비> 수용 연구] 등이 있고, [한국 우언산문 선집 1·2]과 [우언의 인문학적 위상과 현대적 활용] 등을 주편하였으며 [세계의 우언과 알레고리]를 우리말로 옮겼다.


발행20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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