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포유류의 탄생 - 인간은 왜 포유류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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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8회 작성일 16-02-0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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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류, 암컷에게만 해당되는 반쪽짜리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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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리쉐(Paul Richer), <젖먹이는 여인(Femme allaitant)>
19세기, 조각, 11.6 x 9.8 x 18 cm, 오르세 미술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초등학교 과학 시간, 동물은 크게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로 나눠지며 척추동물에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어류 등이 있다고 시험에 나올세라 줄줄 읊었던 기억이 있다. 모두들 아마 단어마다 색색깔의 볼펜으로 줄을 치며 달달 외우지 않았을까. ‘포유류(哺乳類)’는 ‘먹일 포(哺)’에 ‘젖 유(乳)’를 사용해 ‘젖을 먹이는 동물’을 의미하며, 인간이 포유류에 속한다는 정도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포유류(Mammalia)의 정확한 뜻은 ‘젖꼭지를 가진 동물’이다.

포유류가 젖꼭지를 가지고 젖을 먹이는 동물이라고? 그렇다면 수컷은? 포유류 수컷은 젖꼭지를 가지고 있지만, 유선이 발달하지 않기 때문에 새끼에게 모유를 먹일 수 없다. 수컷의 젖꼭지란 사실 육아에는 별 쓸모가 없는 셈이다. 오직 암컷만이 태아를 잉태하고 유선이 발달하며 모유를 분비한다. 그렇다면 ‘젖을 먹이는 동물’이란 암컷에게만 해당되는 반쪽짜리 단어가 아닌가. 그렇다면 포유류는 왜 포유류라고 불리게 된 걸까.

포유류라는 단어를 처음 고안한 것은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e von Linné, 1707~1778)였다. 사실 그는 포유류의 여러 가지 특징들 중, 젖꼭지와 젖가슴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아 포유류라고 이름지을 충분한 학문적인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인간을 동물계에 포함시키고 싶었던 린네는 여성이 젖을 먹여 아이를 키운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젖을 먹여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특징’과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동물의 특징’을 연결하여, 인간을 포함하는 포유류의 가장 큰 특징을 ‘유선이 발달한 암컷(여성)의 가슴’이라고 부각시켰다.1) 그가 ‘젖가슴’에 집착했던 것은 유럽 문화에 나타난 젖가슴과 모유에 대한 이중적 시각, 그리고 유모를 두는 18세기의 관행 및 린네의 개인적 경험 때문이었다. 오늘은 ‘포유류’가 탄생하던 18세기 중반, 동물분류표를 놓고 고심하고 있던 린네의 곁으로 가보자.

Londa Schiebinger, “Why mammals are called mammals: Gender Politics in Eighteenth-Century Natural History", The America Historica Review, Vol. 98, No. 2(Apr.,1993), pp. 38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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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네 이전의 포유류




우선, 포유류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기 전, 여기에 속한 동물들은 어떻게 불렸을까.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린네가 포유류라고 부른 대부분의 동물들을 ‘네발동물’로 분류했다. 붉은 피가 있고 네발로 다니는 동물들은 모두 네발동물이라고 불렸는데, 여기에 속한 동물들은 대부분 털이 있었고 태생으로 후손을 낳았다. 이 명칭은 기원전부터 무려 천오백 년이 넘게 정설처럼 사용되다가 17세기에 영국 박물학자 존 레이(John Ray, 1627~1705)에 의해 위기를 맞았다. 그는 네발동물에 포함된 고래, 돌고래 등은 네 발을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런 예외 종들을 제외시키고 남은 종들을 ‘새끼를 배는 네발동물’이라고 불러야 하며, 일률적인 네발동물이란 표현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물론 다른 학자들이 레이의 의견에 바로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린네도 ‘포유류’를 고안하기 전,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 초판(1735)에서는 네발동물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썼으니 말이다.



린네의 포유류




린네는 1758년에 발행된 [자연의 체계](10판)에서 동물계가 크게 포유류(mammalia), 조류, 양서류, 어류, 곤충류, 지렁이류의 여섯 가지 강(綱)으로 구성된다고 분류했다. 포유류를 제외한 다른 용어들은 대부분 기원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해 둔 단어에서 유래한 것들이었다. 린네는 이 책에서 마말리아는 젖꼭지를 가진, 즉 “젖가슴을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며 몸에 털이 있고 중이(中耳)에 뼈가 세 개 있으며 4심실의 심장을 가진 생명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썼다. 이 설명에 열거된 포유류의 특징은 무려 4가지다. 하지만 린네는 젖꼭지가 있고 수유할 수 있는 암컷의 유방을 이 강의 가장 큰 특징으로 삼았다. 린네는 왜 하필 젖가슴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최초로 동물계에 편입된 인간, 그리고 탄생한 포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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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닦은 칼 폰 린네. 린네는 여성이 젖을 먹여 아이를 키운다는 점에 주목해 포유류라는 단어를 고안함으로써 인간을 동물계에 포함시켰다.





1758년 발행된 [자연의 체계] 제 10판. 린네는 이 책에서 ‘포유류(Mammalia)’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린네가 인간을 동물계 안에 포함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야심은 알려진 동물들을 가능한 한 많이 자신의 분류 체계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린네 이전에도 동식물을 분류했던 학자들은 많았는데, 린네는 이들을 뛰어넘어 당시 알려져 있던 대부분의 동식물을 아우르는 방대한 양의 분류 작업을 진행했다. 그의 야심과 노력은 1735년에 처음 출간된 12쪽짜리 [자연의 체계]가 1758년의 10판에 이르면 2,400여 쪽에 달하는 한 권의 책이 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0판에는 인간을 포함해 4,400여 종의 동물이 포함되었는데, 그는 이렇게 수십년을 자신이 만든 분류표를 수정하고 손질하는 데 보냈다.

린네는 처음에 인간을 네발동물에 포함시켰다. 당시 네발동물에 속한다고 알려진 다른 동물들처럼, 인간은 털이 있는 몸과 네 발을 가졌으며 암컷이 새끼를 배고 젖을 먹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주장은 다른 학자들을 화나게 만들고 말았다. 18세기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도대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이성을 가진 멀쩡한 인간이 원숭이나 개, 돼지와 같이 네 발 달린 털 난 동물이라니? ‘인간은 자연보다 천사에 가깝다’는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의 주장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인간이 동물이라는 주장은 많은 벽에 부딪쳤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반대 속에서 린네는 네 발과 털 난 몸을 특징으로 주장하는 대신, 다른 전략을 고민하고 차선책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인간이 처음에 네 발로 걸었다는 것은 믿지 못하더라도, 여자에게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어머니의 젖을 먹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몸에 털이 있는 암컷이 임신하고 젖을 먹인다는 특징은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당연히 알려져 왔던 사실이었다. 린네는 이런 사실을 ‘특히’ 부각시켰으며, 젖을 먹이기 때문에 젖꼭지가 이 부류에 속하는 동물들의 중요한 특성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젖가슴을 접점으로 인간이 포유류라는 동물계에 포함된 것이다.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포유류’는 발표된 후 학계에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졌다.



여성의 젖가슴과 모유는 암컷의 그것과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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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건국신화에 따르면 건국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암늑대의 젖을 먹으며 자랐다고 한다. 신화와 전설 속의 이런 이야기들은 여성의 수유가 암컷 동물의 그것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린네가 포유류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젖가슴과 모유를 꼽았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을 네발동물이라고 분류했을 때 그리도 반대하며 날뛰었던 학자들이, 의외로 인간이 포유류에 속한다는 린네의 분류법에는 이전과 같은 반대를 퍼붓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론다 쉬빈저(Londa Schiebinger)같은 과학사학자는 첫 번째 이유로 린네가 서구 문화에서 여성의 가슴과 젖(모유)이 나타내는 이중적 상징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꼽았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여성의 가슴은 다이애나 여신의 가슴처럼 풍요를 상징하는 성스러움으로 이해되기도 했지만, 방종 및 색욕, 악마의 유혹 등 짐승같은 측면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여겨졌다. 또한 서구의 신화와 전설을 살펴보면 모유도 짐승과 비슷한 면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암염소 아말테이아가 어린 제우스에게 젖을 먹였고, 로마 건국의 영웅 로물루스와 레무스에게는 암늑대가 젖을 먹였다는 건국 신화가 있다. 중세부터 17, 18세기까지 곰과 늑대들이 숲에 버려진 아이들에게 젖을 먹였다는 이야기 또한 다수 보고되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양에게 젖을 먹인 베로니카 기우리아니처럼 동물에게 젖을 먹인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온다. 언급한 예들은 인간(여성)의 젖먹이는 행위가 동물(암컷)의 젖먹이는 행위와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여성의 젖가슴과 모유는 기능과 행위 등의 측면에서 포유류에 속하는 다른 암컷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린네는 젖가슴과 모유에 대해 이미 확립된 서구의 관념을 따라 명칭을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당대의 과학자들 역시 이러한 관념에 익숙해 있었기에 동물적 특성을 쉽사리 연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모유를 먹고 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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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유모(Nourrice)>
제작연도 미상, 소묘, 파리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 소장 <출처: 네이버 미술검색>작품 보러가기


린네가 젖가슴과 모유를 강조한 두 번째 배경은, 일곱 아이의 아버지로서 육아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아이가 있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유모를 두고 싶어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19세기 초까지 유모를 두는 관행이 만연했는데, 이는 비단 소수의 부유층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태어났던 약 21,000명(연간) 내외의 영아 중 겨우 30분의 1만이 엄마의 젖을 먹고 컸다.2)

Nancy Senior, "Aspects of Infant Feeding in Eighteenth-Century France", Eighteenth-Century Studies, Vol. 16, No. 4 (Summer, 1983), pp. 368-9; George D. Sussman, "Parisian Infants and Norman Wet Nurses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A Statistical Study", The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Vol. 7, No. 4 (Spring, 1977), p.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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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의 손길을 받은 아이들이 잘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였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한 유모들이 아기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까닭에 18세기 중반은 높은 유아사망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유모로 인해 사회 전체가 시끄럽던 바로 이 시기, 1741년부터 1757년 사이에 린네의 아내는 일곱 명의 아이를 낳았고 린네는 아내가 아이들에게 젖먹이는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린네는 여성의 재생산 과정-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이 법칙을 깨는 것은 어머니와 아이의 건강을 위협에 빠뜨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당시 많은 의사와 산파들은 초유가 태변을 먹어 위험에 빠진 아이를 치료해준다고 믿었고, 또한 린네는 출산 후의 자궁 수축이 임신과 연결된 풍부한 체액을 가슴으로 흐르도록 하기 때문에 산모가 젖을 먹여야 병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린네는 유모 폐지를 위한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는 1752년에 유모를 두는 관행을 비판하는 논문을 썼다. 그는 이 논문에서 유모들은 대부분 가난한 계급 출신이므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술을 많이 마시며, 매독과 성병을 앓고 있으므로 건강한 젖을 만들어 낼 수 없다거나, 아기를 키우는 성스러운 일은 돈을 받는 일로는 감히 할 수 없다는 등 유모에 대한 온갖 단점을 잔뜩 늘어놓았다. 이런 비판의 와중에 린네는 어머니들의 귀감이 될 롤 모델로 짐승을 꼽았다. “유모에게 아이를 맡김으로써 모유를 마실 수 있는 아기의 권리를 박탈하는 엄마는 야만적이며, 이들은 오히려 새끼에게 젖을 기꺼이 내놓는 사자, 고래 등과 같은 짐승들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린네 외에도 유모를 두는 관행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모진 어머니들에게 “출산 후 즉시 자기 아이를 돌보는 동물적 본능”을 따르도록 호소했다.

이러한 주장은 여성의 출산과 육아가 동물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더 나아가 여성이 동물(암컷)과 연결되는 접점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유모에 반대했던 린네와 이에 동조했던 많은 의사, 관료들의 이러한 주장은 몇 년 뒤, 린네가 인간을 동물계에 포함시켜 포유류란 이름으로 분류하게 되는 또 하나의 배경이 된다. 앞서 살펴본 여성의 젖가슴과 모유뿐만 아니라 출산과 육아까지, 여성의 신체적 특징과 재생산 과정에 속하는 여성성의 요소들은 동물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이런 여성적 특징을 매개로 인간은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이해되었던) 동물계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었다.

린네를 통해 우리는 ‘포유류’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살펴봤다. 얼핏 생각하면 이 용어는 과학계에서 사용되는 분류명이기에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며 엄정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린네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ㆍ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포유류’라는 단어가 과연 얼마나 객관적인 것인가를 의심하게 된다. 이 단어는 유독 여성(암컷)의 가슴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진 단어였으며, 사실 포유류의 여러 특징들 중 가슴이 부각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합리적 요소보다는 여성의 젖가슴과 모유에 대한 서구의 오랜 문화적 관념, 그리고 유모를 두는 관행으로 인해 빚어진 18세기의 비극, 일곱 아이의 아버지였던 린네의 개인적 경험이라는 문화적ㆍ사회적ㆍ개인적 요소 등의 주관적 요인들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글은 ‘포유류’라는 용어의 탄생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과학사와 과학기술사회학 등을 필두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에 도전하고 회의하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 지식은 때론 해체되기도, 전복되기도 한다. 자, 그렇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과학계의 지식을 하나 떠올려 보라. 과연 그 지식은 얼마나 객관적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참고문헌

이상욱, 홍성욱, 장대익, 이중원, [과학으로 생각한다] (서울: 동아시아, 2007); 앤드루 웹스터, 김환석ㆍ송성수 옮김, [과학기술과 사회] (서울: 한울아카데미, 1998); 이종욱, 김창환, 문태영, [동물계통학] (서울: 형설출판사, 2000); Ludmilla Jordanova, Sexual Vision, (Wisconsin: The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89); Londa Schiebinger, “Why mammals are called mammals: Gender Politics in Eighteenth-Century Natural History", The America Historica Review, Vol. 98, No. 2(Apr.,1993), pp. 382-411; Nancy Senior, "Aspects of Infant Feeding in Eighteenth-Century France", Eighteenth-Century Studies, Vol. 16, No. 4 (Summer, 1983), pp. 367-388; George D. Sussman, "Parisian Infants and Norman Wet Nurses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A Statistical Study", The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Vol. 7, No. 4 (Spring, 1977), pp. 637-653.





김지혜
글쓴이 김지혜는 문화사 전반에 관심이 많다. 연세대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문화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석사논문으로 <19세기 후반 영국 정기간행물에 나타난 남성 히스테리>를 제출한 이후, 남성사 및 젠더사 등을 문화사적 관점으로 읽고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쉽고 대중적이며 재미있는 역사 쓰기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으며, 이런 관심사의 연장선상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 [르네상스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2010)를 썼다.


발행2013.04.19.



주석


1
Londa Schiebinger, “Why mammals are called mammals: Gender Politics in Eighteenth-Century Natural History", The America Historica Review, Vol. 98, No. 2(Apr.,1993), pp. 382-411.
2
Nancy Senior, "Aspects of Infant Feeding in Eighteenth-Century France", Eighteenth-Century Studies, Vol. 16, No. 4 (Summer, 1983), pp. 368-9; George D. Sussman, "Parisian Infants and Norman Wet Nurses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A Statistical Study", The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Vol. 7, No. 4 (Spring, 1977), p.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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