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엘긴 마블스를 둘러싼 문화 전쟁 - 문화재, 소유냐 공유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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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23회 작성일 16-02-0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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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마블스, 엘긴 마블스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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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파르테논 신전의 전경.



이것을 보고 울지 않는 자, 어리석어라.

너의 벽은 마멸되고, 허물어진 신전은 앗아져버렸다.

이 유적을 보호해야 할 영국인들 손에.

다시는 회복될 수 없으리라.

그것이 고향에서 강탈당했던 그 시간은 저주 받으라.

또다시 너의 불행한 가슴은 상처 나고

너의 쓰러진 신들은 북쪽의 증오스런 나라로 끌려갔도다.- 바이런,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

이 시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유물의 영국 이전에 크게 반대했던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이 폐허가 된 신전을 방문한 후 남긴 것이다.

그는 그리스의 민족 유산을 파괴하고 탈취한 엘긴 경의 비도덕성과 역사적 무책임함을 비판하면서 파르테논 신전 부속물들의 영국 반입을 반대했다.
그리고 1824년, 그의 나이 38세 때 바이런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아테네에 도착했지만 열병에 걸려 곧 사망하고 만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 영국 낭만주의 시인의 죽음은 오스만튀르크 제국(지금의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그리스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혼란을 틈타 그리스인의 상징과 같은 파르테논 신전을 훼손하고 약탈한 영국 정부의 모습과 대비된다.

1816년 영국 의회는 찬성 82표, 반대 30표로 파르테논 마블의 구입을 결정했고, 그것의 정식 명칭을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로 할 것과 영국박물관1)에서 소장한다는 법을 통과 시켰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 ‘엘긴 마블스’는 영국박물관의 대표적인 소장품으로 남아,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그리스의 아테네가 아닌 영국박물관으로 그리스 고전 미술의 정수를 관람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우리가 흔히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르는 박물관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명칭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로, 영국을 대제국으로 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원래 정식 명칭 또한 ‘British Museum’이고, 여기에 ‘Great’ 같은 수식어는 붙어있지 않다. 따라서 ‘영국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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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반환 문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관계의 핫이슈로 떠오르며 정치·경제 분야만큼이나 관련 국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중 엘긴 마블스를 둘러싼 그리스와 영국 사이의 문제는 문화재 반환 갈등의 가장 대표적 사례로,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며 그 사회적 파장 또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에 따라 이후의 반환 문제들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왜 영국은 엘긴 마블스를 돌려주지 않는 것이며, 그리스 정부가 반환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의 핵심은 바로 문화가 가진 권력에서 비롯된다.



그리스 민족의 얼, 파르테논 신전



식민 지배를 겪은 우리나라 또한 일본이나 프랑스와 같은 과거의 열강들을 상대로 문화재 반환 요구를 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로부터 ‘장기 대여’의 형태로 반환받은 외규장각 도서 또한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그것 없이도 별 탈 없이 잘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국가 간 긴장 상태를 만들어가면서까지 과거의 유물을 반환받으려 하는 것일까?
그것은 유물이 단순히 재화적 가치나 학문적 연구 대상이 아닌, 민족의 정신과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시간, 과거의 기억, 그리고 지식은 지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과 생활 방식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그것은 국민이나 민족이라는 집단적 개체의 기억과 무의식 속에서 일종의 동질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과거의 유물, 즉 문화재는 그러한 국가나 민족적 정체성을 구체화한, 그 정신을 담고 있는 시각적인 상징물로서 집단의 구심체가 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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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 정면을 모티브로 한 유네스코의 로고(왼쪽)과 깃발(오른쪽).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에 있어 바로 그러한 상징물이었다. 특히 유럽 문화의 원류 중 하나인 고대 그리스 문화의 상징으로 유네스코의 로고이며 유네스코가 선정한 첫 번째 세계문화 유산이기도 하다.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 전쟁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아테네는 전란 중 파괴된 아크로폴리스를 재건하면서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을 기리기 위한 이 신전을 가장 먼저 세웠다고 한다.
15년의 공사 끝에 기원전 432년에 완성된 이 신전의 건축에는 수많은 유명한 인물들이 참여했는데, 헤로도토스, 프로타고라스, 소포클레스 등 당대 최고의 문화인들이 자문을 했고, 그리스 최고 건축가인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가 설계를, 페이디아스와 같은 최고의 조각가들이 대리석 조각과 부조(지금의 엘긴 마블스)를 담당했다. 파르테논 신전은 그야말로 당대의 드림팀으로 구성된 최고의 건축물로서,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리스의 중심 도시로 부상하기 시작한 아테네의 자신감과 문화력이 응축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13세기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교회로, 15세기 중엽에는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는 베니스 함대의 포격으로 주요 조각품들이 파괴되는 비운을 겪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파르테논 신전은 제자리를 지키며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짜 비극은 19세기 초 영국의 엘긴(Thomas Bruce, 1766~1841)경이 신전의 남은 조각들과 부조들을 파내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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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대저택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꾸미고자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를 뜯어 영국으로 가져온 엘긴 경. 결국 그의 제안으로 영국 정부는 마블들을 매입했고, 여기에 ‘엘긴 마블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엘긴 경은 1799년 터키 주재 영국 대사로 발령받았다. 그 무렵 그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자신의 대저택을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신고전주의 양식(neo-classicism)으로 꾸미고 싶어서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본뜨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801년 그는 본을 뜨느니 차라리 신전의 일부를 뜯어서 자신의 집을 장식하기로 결심한다.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문화 전쟁의 서막이 한 귀족의 집을 꾸미기 위한 욕심으로 시작됐다니, 그리스인들에게는 통탄할 일이었다.
영국 대사라는 신분과 특권을 이용해 허가증을 발부받은 엘긴 경은 10년 동안 무려 253점(남아 있는 조각품들 중 90%에 달하는 양이었다)을 영국으로 실어 날랐다. 그 비용 또한 막대해서 당시 7만 5천 파운드나 들었다고 하니, 이후 그가 파산할 만도 했다.

집 꾸미다가 파산한 엘긴은 결국 빚을 갚기 위해 영국 정부에 파르테논에서 가져온 마블들을 팔겠다고 제안했다.
영국 정부는 1816년 마블의 구입 문제를 심의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었고, 앞서 언급했듯이 마블의 구입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일견 당연히 돌려받아야 마땅할 엘긴 마블스를 그리스는 왜 돌려받지 못하고 있으며, 영국은 어떤 근거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21세기 문화 전쟁: 그리스 VS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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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파르테논 부조와 조각. 그리스 정부의 지속적인 반환 요청에도 영국 측은 반환 불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출처: (cc) Solipsist at en.wikipedia.org>


그리스는 1832년 오스만튀르크로부터 독립하여 오랜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독립국으로서 국가의 재건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파르테논 신전의 복구와 엘긴 마블스의 반환 운동이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이후 본격적인 반환 운동을 시작했는데, 영국의 입장은 오로지 ‘반환 불가’였다.
1983년 그리스 정부가 외교 창구를 통해 영국 정부에 반환을 공식 요청했으나 영국 측은 반환 불가라는 공식 입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영국의 입장’이라는 한 단어로 말하기에는 복잡한 문제다. 영국의 입장은 정부라는 불특정 집단으로 이루어진 특정한 국가의 대변 기구로서의 입장인 것이지 영국 국민의 입장은 아니었다.
실제로 영국의 몇몇 방송사에서 여론 조사를 실시했을 때, 국민의 절반을 훌쩍 넘는 수가 반환에 찬성했다.
하지만 1998년 노동당 출신의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영국 정부는 영국박물관이 보관 중인 엘긴 마블스를 그리스에 반환할 생각이 없다”며 국민의 뜻과 관계없이 국가의 입장을 고수했으며, 2001년에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엘긴 마블스는 영국박물관의 소유다. 단 하나의 소장품도 원래 있던 나라에 되돌려줄 계획이 없다.
매년 박물관을 찾는 600만 명의 관람객이 아름다운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을 감상하고, 이를 통해 그리스 문명의 위대한 업적을 알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2004년 노동당 출신의 전 외상 로빈 쿡은 자신은 개인적으로 엘긴 마블스의 반환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과거에는 정부의 공식 입장과 반대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지지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영국은 왜 국민의 찬성과 세계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엘긴 마블스를 그리스에 반환하지 않는 것일까? 우선 영국 정부의 주장을 살펴보자. 크게 다음과 같다.



1.


엘긴 마블스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영국에 유입되어 국회의 동의를 거쳐 합법적으로 박물관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반환’의 대상이 아니다.





2.


엘긴 마블스는 지금까지 영국박물관의 최신 시설과 과학적 관리를 통해 보관되어 왔으며, 최상의 상태로 연구·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가 그만한 시설과 관리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단지 원소재지로 돌려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문화재의 보호와 보존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





3.


엘긴 마블스는 그리스의 과거 역사로부터 남겨진 문화유산이지만, 이제 민족의 유산만이 아닌 역사적 가치를 지닌 세계 인류의 보편 유산이 되었다. 따라서 마블스는 그리스의 소유가 아닌 인류 모두의 것이다.





4.


엘긴 마블스는 백년 넘게 영국에 보관되어 오면서 영국인들에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이 되었다. 엘긴 마블스는 이제 영국의 역사ㆍ문화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자, 어떤가? 이 논리에 설득이 되는가? 우리나라의 정서라면 이 논리에 설득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근거들은 매우 허점이 많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약해지고 있다. 이제 이 근거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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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긴 마블스를 전시해놓은 영국박물관. 최신식 시설과 과학적 관리를 통해 최상의 상태로 전시하고 있다는 논리 하에 유물의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그들의 주장은 옳은 것일까. <출처: (cc) Solipsist at en.wikipedia.org>


우선 영국이 주장하는 유물 취득의 합법성은 오로지 영국이 만든 법에 의한 영국 측의 주장일 뿐, 납득할만한 증거는 없다.
당시 엘긴 경은 오스만 정부로부터 파르테논 신전의 본을 뜨기 위한 허가증은 받았지만, 신전 장식물들을 뜯어가기 위한 허가증을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엘긴 경은 그 허가증의 실물을 제시하지 못했고, 영어로 된 번역본만을 의회에 제출했다. 따라서 영국이 주장하는 ‘합법’의 근거는 사실 너무나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영국은 그리스의 미비한 시설과 부족한 관리능력, 아테네 시의 좋지 못한 환경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리스는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the New Acropolis Museum)을 개관하면서 최신 시설을 갖추었다2).
그리고 사실 영국의 주장은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설사 그리스가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문화 협력의 일환으로 박물관의 상호 협조 체제를 통해 유물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물관 설계도를 공모할 때 조건이 ‘영국박물관보다 더 우수한 박물관일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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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입장을 더욱 당황스럽게 한 것은 1998년 역사가 윌리엄 세인트 클레어에 의해 폭로된 영국박물관의 관리 부실 사건이었다.
1936년 박물관 측은 조각들을 깨끗이 닦으려고 쇠 수세미를 사용하였고, 뒤늦게 밝혀진 이 사건을 쉬쉬하기 위해 손상 부분에 갈색 왁스를 발랐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그리스가 즉각 강경한 반환 요청을 하면서 엘긴 마블스의 반환 문제는 다시금 격렬하게 불붙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이 보도가 과장되었으며 마블스가 영국에 있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반환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그리스의 베니젤로스 장관은 “그렇다면 모든 문화재는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베이징 한복판에 갖다놔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영국 측 주장은 그 두 개가 서로 모순된다. 인류의 공동 재산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제는 영국의 문화적 맥락에서 빼 놓을 수 없다니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인류의 문화유산이어도 그것이 왜 영국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오히려 원래 있던 장소에 장소인 파르테논 신전에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역사·문화적으로도 옳은 것이 아닐까. 그리스 측도 이 부분을 강력히 주장한다.
학계에서는 이렇게 원래 있던 곳에서 떨어져 약탈되거나 보관중인 것을 ‘탈맥락화된(decontextulaized)’ 유물이라고 설명하는데, 원래대로 돌아가 지리적·역사적문화적 제자리를 찾는 맥락화의 과정은 유물의 가치를 되살리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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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 <출처: (cc) Airunp at en.wikipedia.org>





신전 남쪽에 있던 부조. <출처: (cc) Jastrow at en.wikipedia.org>




이렇듯 반환의 근거가 훨씬 더 설득력 있지만 반환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 반환 문제를 민족주의적인 감정과 단순히 빼앗긴 것은 돌려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로 보고 있지만, 국가 간 갈등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이 문제는 사실 많은 현실적인 논의들을 포함하고 있다.
1970년 유네스코는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에 관한 협약>이라는 국제법상의 협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제법은 국가 간의 합의가 필요하고, 비준국들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에게 강제할 수 없는 데다가, 국제법 자체가 강제력이 약해서 반환을 강제하기 힘들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 1970년 유네스코 협약은 소급되지 않기 때문에 1970년 이전의 문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큰 약점이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법의 문제는 문화재 반환 문제에 있어 2차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반환하고자 하는 의지와 요청국의 문화에 대한 존중이다.
하지만 영국을 비롯한 많은 과거 열강들은 제국의 전리품인 식민지의 문화재들을 제국주의적 논리로 돌려주지 않고 있다.
여러 현실적이고 법적인 이유를 내세우지만, 그 근저에는 제국의 흔적인 인류의 유산을 돌려주지 않으려는 욕심과 문화재가 가진 상징적인 문화 권력을 내어주고 싶지 않은 권력욕이 흐르고 있다. 마치 19세기에 서유럽 열강들이 앞다투어 아테네에 고고학 연구소를 세워 위대한 고대 문명의 후계자가 되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문화가 힘이다’라고 하는 것은 이 문화재 반환 문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영국과 그리스가 서로 갖고자 하는 것은 대리석 조각이 아닌 그것이 가진 역사와 문화의 힘인 것이다.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마블의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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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의 유적 위에 조화롭게 세워진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파르테논 신전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2007년 9월에 완공된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고대 그리스 건축의 구조적 명료성과 현대 건축학을 접합해 만든 건물이다.
이 박물관은 파르테논 신전에서 30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어서 새 박물관의 상층부에서는 고대의 파르테논과 새로운 파르테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이러한 건축적 조성은 과거와 현대의 조화로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바로 ‘과거의 위대한 문명을 품고 미래로 도약하는 21세기의 그리스’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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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내부. 엘긴 마블스는 언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문화재 반환 문제는 법의 문제도 소유권의 문제도 혹은 경제적인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의 문제이며 역사 인식과 존중의 문제다.
그리스는 애타게 반환을 원하고 있지만 영국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이것은 과거 약탈국인 프랑스,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문제에 모든 대형 박물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어느 한 곳이 중요 문화재를 반환하게 되면 도미노 현상이 가속화되어, 결국엔 영국박물관이나 루브르, 게티 박물관 같은 곳은 텅텅 비어버릴 것이다.
사실 대형 박물관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박물관이 비어 더 이상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 하지만 이제 박물관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다시 모색해야 한다.
단지 몇몇 유명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들이 주장하는 전 인류의 문화적 수준 향상을 위해 힘써야 진정한 박물관이 아닐까?

최근까지는 문화재 논의에 있어 양측 모두 ‘소유권’이라는 방향에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관련 학자들은 문화재를 ‘소유’의 문제가 아닌 ‘역사적 가치의 보존과 보호’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내 것 네 것이라는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갈등에서 벗어나 서로 간의 존중과 배려, 양보를 통해 인류의 문화유산을 지키자는 의도이다.

문화재는 재화(財貨)가 아니다. 따라서 누구의 것인지를 따지기 이전에 그것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그 유물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엘긴 마블스’가 엘긴의 그늘에서 벗어나 아크로폴리스의 언덕에서 숨 쉴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 이보아,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 문화재 약탈과 반환의 역사], 서울: 민연, 2002.
  • 김경임,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서울: 홍익출판사, 2009.
  • 박선희, <문화재 원소유국 반환과 프랑스의 입장>, [국제정치논총], Vol. 51, No. 4 (2011), pp. 213-235.
  • Vasiliki Kynourgiopoulou, <National Identity Interrupted: The Mutilation of the Parthenon Marbles and the Greek Claim for Repatriation>, in Contested Cultural Heritage, Helaine Silverman, ed., pp. 155-170.
  • Greenfield, Jeanette, [The Return of Cultural Treasures], Cambridge: Cambridge UP, 2007.
  • Messenger, Phyllis Mauch ed., [The ethics of collecting cultural property : whose culture? whose property?], Albuquerque: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1999.



김경민 | 역사 저술가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제국주의와 고고학: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일국제영국사학회에 발표한 바 있으며 UNIST(울산과학기술대학교)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제국주의와 문화, 학문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발행2013.08.2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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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르는 박물관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명칭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로, 영국을 대제국으로 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원래 정식 명칭 또한 ‘British Museum’이고, 여기에 ‘Great’ 같은 수식어는 붙어있지 않다. 따라서 ‘영국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2
박물관 설계도를 공모할 때 조건이 ‘영국박물관보다 더 우수한 박물관일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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