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새로운 시대의 시작, 1980년 - 80년대의 글로벌 히트 아이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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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58회 작성일 16-02-0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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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에 힘입어 풍요로운 문화를 자랑했던 1980년대의 아이콘들.


1980년대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없었다면 오늘날 아이팟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1980년대의 워크맨이 없었다면 오늘날 MP3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며 여전히 영감을 주고 있는 80년대 글로벌 빅 이슈와 히트 아이템들을 전자 기기, 대중문화, 스포츠 분야별로 나눠 재조명해 본다.


스티브 잡스의 매킨토시


스티브 잡스는 최초의 매킨토시를 어디서 꺼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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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신제품 발표는 매번 큰 화제를 불러왔다. 1984년 1월, 매킨토시를 선보이고 있는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24~2011.10.5)는 80년대의 히피 세대였습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히피들과는 달리 스티브 잡스는 깨달음을 얻을 다른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는 회사를 차리고 세상을 이끄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싶어 했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을 공동 창업한 잡스는 먼저 회로판을 팔았습니다. 잡스가 판매를, 워즈니악이 개발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워즈니악이 첫 애플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회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신제품은 계속 출시됐고, 애플 1은 666달러 66센트에 팔렸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애플은 월가로 진출하게 됩니다. 1980년 12월 12일, 스티브 잡스의 나이 25살 때 애플은 주식을 상장합니다.

1956년, 포드 자동차 이후로 가장 성공적인 출발이었습니다. 새로운 부류의 기업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잡스의 가치는 하룻밤 사이에 2억 천 7백만 달러로 뛰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6억 달러에 해당합니다.

1984년 1월, 애플은 첫 매킨토시를 선보입니다. 잡스는 이것이 애플이 추구하는 모든 것의 예술적 표현이라 믿었습니다.

한편 잡스의 깜짝 신제품 발표는 매번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서류 봉투에서 꺼냈던 맥북 에어, 청바지 주머니에서 꺼냈던 아이팟 나노.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최초의 매킨토시를 어디서 꺼냈을까요?




스티브 잡스.

패션의 아이콘, 청바지


평범한 작업복이 최고의 디자이너 작품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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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브룩 쉴즈를 내세운 캘빈 클라인의 광고.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광고는 평범한 청바지를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1980년대, 패션은 돈을 따라가고 돈은 패션을 따라갔습니다. 뉴욕의 한 혁명가는 패션이 거리에 있다는 걸 알았고 이런 문화 충돌 속에서 패션 왕국을 이끌어냈습니다.

1980년, 미성년자인 브룩 쉴즈를 내세운 캘빈 클라인의 도발적인 광고는 대중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이 광고 후, 한 달에 2백만 벌의 청바지가 팔렸습니다.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1942.11.19~)은 상업적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노동자들과 히피들의 작업복을 이용해 평범한 청바지를 최고의 디자이너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1985년, 유럽에서는 또 다른 청바지 브랜드가 변신을 꾀하고 있었습니다. 리바이스는 아버지들이 입는 청바지라는 이미지가 문제였습니다.

리바이스는 501을 다시 출시해 10대 반항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던 때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닉 케이먼과 그의 속옷을 보여 주는 광고는 큰 성공을 거뒀고, 판매량은 무려 800% 증가했습니다.

수요를 맞추기가 힘들 정도로 광고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갑자기 리바이스는 멋진 브랜드로 부상했고 패션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캘빈 클라인과 청바지 광고.

혁신적 발명품, 워크맨


개인용 음악 플레이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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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듣는 것이 가능해진 것은 소니 사가 개발한 워크맨 덕분이었다. 이 제품으로 소니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일본 기업이 되었다.


워크맨은 일본의 소니 사에 근무하는 기술의 귀재들이 만들어낸 제품으로, 1970년대에 가전제품이 한창 유행할 때 일본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일본이 생산한 제품이 형편없다고 취급되던 시절을 완벽하게 지우고, 소니는 일본 기업 중에서 처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기업이 됐습니다. 오늘날의 애플 사와 같은 명성이었습니다.

소니 사의 공동 창립자인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 1921~1999)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는 동안 오페라를 들을 수 없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결국 걸어다니면서도 좋은 음질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향 기기를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해 조그만 워크맨을 만들어냈습니다.

워크맨은 휴대가 용이해서 주머니에 넣고 조깅하며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었고, 체육관이나 출근길은 물론 놀러가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처음으로 음악을 개인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소니의 워크맨.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최고의 스포츠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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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헤비급 복싱계를 장악했던 마이크 타이슨.


1980년대에는 잔인한 스포츠인 권투계를 장악한 천하무적의 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세계적으로 가장 악명이 높았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Michael Gerard Tyson, 1966.6.30~)입니다.

사람들은 그 당시 그가 절대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타이슨은 자신의 꿈을 향해 승승장구하며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통합시키면서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챔피언이 됐습니다.

그에게 남은 상대는 마이클 스핑크스뿐이었습니다. 1988년 6월 27일 애틀랜틱 시티에서 최고의 대결이 펼쳐졌었는데, 모두 그곳에 가길 원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마이클 스핑크스는 겁에 질려 있었고, 결국 몇 회전이 아닌 몇 분 만에 승패가 갈렸습니다. 타이슨은 1라운드 1분 31초만에 스핑크스를 쓰러뜨리고 헤비급 경기 역사상 가장 빠른 KO승을 거두게 됩니다.

스핑크스와의 대결로 타이슨은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곧 그의 스승인 커스 다마토의 죽음이 링 밖에서 그의 집중력을 방해하며 타이슨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는데, 1990년 일본에서 버스터 더글러스와의 경기에서 그 영향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그 경기에서 버스터는 마이크 타이슨을 최초로 KO 시키며 권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경기는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더글러스에게 패한 타이슨은 좌절했으며, 그 후 강간죄로 형을 살게 되면서 핵주먹 마이크의 전성기는 끝났습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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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힛트! 1980” | 2013년 9월 8일 일요일 밤 11시



1980년대,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혁신적인 첨단 기기 워크맨과 벽돌만한 크기의 휴대전화,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원조 책받침 여신’ 소피 마르소. 그리고 전격 Z작전, A특공대, 개인용 컴퓨터, 브레이크 댄스까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시대의 시작, 1980년!


발행201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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