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조선 최초의 생활백과전서 『산림경제』와 우리말 살림사상의 성립 - 산림서의 유행과 치생의 자연학에 관한 실학적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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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12회 작성일 16-02-0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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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과 생태자연학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에 대한 인식과 이해는 인간 문명사의 발달과 밀접하다. 우리 역사에는 인간과 자연이 불가분1) 불가리2)한 상관적 존재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였고, 그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교응(交應, 상호작용) 관계론3)을 발달시켰다. 삶이 자연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다채로운 방면으로 개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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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인간의 전반적인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우리 역사가 가꾸어온 이러한 자연에 대한 인식과 대응 기제를 포괄하여 말하자면 ‘전통자연학’이라 이를 수가 있고, 그 교응의 정도에 따라 아래의 감응적 자연학과 유심적 자연학 및 생태적 자연학으로 제시할 만하다.

첫째 감응(感應)의 자연학은 동아시아 고대로부터 개발되어 온 것으로, 하늘의 천체운행이 인간역사의 전개에 동류상응(同類相應)한다는 천인상응론이라든가 자연지리의 기적 감응이 인간생위에 연결된다는 풍수동기론 등을 필두로 여러 형태가 있으며, 인간의 삶이 자연의 물적 원리와 긴밀히 연결된다는 감응적 사유를 기반으로 삼는다. 둘째 유심(唯心)의 자연학은 물적 긴밀성이 완화된 형태로, 노장자의 자연주의 철학이라든가 불교의 몰아화엄사상, 성리학의 윤리적 천인동심론 등 사변적 자연주의를 일컫는다. 셋째 생태(生態)의 자연학은 산악지형이 발달한 한반도의 생태지형 기반 위에 우리 삶의 근거와 문화 양태를 발달시켜 간 자연적응주의적 생활자연학을 지칭하고자 한다.

이상의 갈래는 한국적 자연학을 구성하는 주요 범주로서 주목할 만하며, 특히 후자의 생태자연학적 관심은 우리 주변의 자연물을 관찰하고 그에 적절히 적응하는 일상생활사 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 더욱 중시된다. 생태학(ecology)이 19세기 근대생물학에서 동식물이 서식하는 군집의 환경과 각 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통합적으로 관찰하기를 요청한 분과학이었던 바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삶을 펼쳐가는 생태적 환경과 그 자연 환경에 적응하는 삶의 방식을 유기적 통합체로 보려는 논의를 생태자연학이라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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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과 의식주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이 생태자연학 입론의 거시적 요건으로 첫째는 산악이 발달한 한반도 지형과 주어진 토양조건에 적응하여 자라는 토산물의 특성을 분석하고 조망하는 생태적 물산학4)의 관점에 대한 것이며, 둘째 요건은 한반도적 자연환경 형성에 크게 기여한 온대몬순 기후대 특성에 대한 것으로 사계절이 뚜렷하면서도 여름과 겨울의 극한 기후에 적응하는 기후생태적 의식주 문화에 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생태적 기후학과 물산학 토대 위에서 방풍 방한의 주거문화, 산야채 식단 위주의 식생 생활사, 봄가을에 발달하는 답청의 놀이문화, 계절에 따른 각종 생활의례의 발달 등등 여러 생활사 양태가 수놓인 것이라 봄직하다. 이처럼 우리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주거 공간의 미학, 식생활의 계절과학, 일상생활의 생태문화사 등을 고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생태자연학 관점은 우리 문화가 지향한 자연과 사물에 대한 탐구이자, 우리 삶의 안온한 안착을 위해 노력하는 실학적 사유의 물적 근간이라 할 것이다.




가정생활백과전서 『산림경제』의 편찬과 산림서의 성립



전통시대 저작물 가운데 이와 같은 생태자연학적 문제의식과 설명의 틀을 가장 잘 선보인 책으로 단연 『산림경제』(1715)를 꼽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사중(士中)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은 조선 중기 임란과 호란으로 사회생업 기반이 와해된 17세기 후반기를 살아가면서 성시(城市)가 아닌 시골에서 스스로 자급자영 할 수 있는 산림의 경제학을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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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서의 『산림경제』 표지



여기서 산림(山林)은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서 자족하는 삶을 이르며, 그 산림에 거처하는 생활을 산거(山居)라 표현한다. 이와 비슷한 용법으로 전가(田家), 농가(農家), 거가(居家), 임원(林園), 전원(田園), 민촌(民村) 등이 있고, 모두 도시가 아닌 시골 생활을 칭할 때 흔히 쓰는 표현들이다. 다음으로 경제(經濟)는 이 책에 서문을 붙인 조선 중기의 도교단학홍만종(洪萬宗, 1643~1725)에 따르면, 경(經)은 서무(庶務)를 처리하는 것이고, 제(濟)는 널리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며, 나라에 경제가 있듯이 산림살이에도 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산림경제』가 시골 산림의 실용 경제학을 추구하였듯이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제1 「복거문」에서 제16 「잡방문」까지 모두 16문 구성이다. 여기서 문(門)은 주제별 편장을 이르는 전통용어여서 원문에는 없지만 사용하였다. 각 편명은 복거(주거공간), 섭생(건강한 심신), 치농(농사짓기), 치포(소채짓기), 종수(나무가꾸기), 양화(꽃가꾸기), 양잠(누에치기), 목양(가축 기르기), 치선(음식 만들기, 저장, 가공법), 구급(응급치료하기), 구황(구황음식 마련하기), 벽온(전염병 대응법), 벽충(벌레 퇴치법), 치약(약재 다스리기), 선택(택일·택방법), 잡방(일용 잡일)이다.

우리가 흔히 의식주 생활이라는 말을 쓰는데, 자세히 보면 여기 16문의 편명들이 바로 의식주를 구체적인 세부 범주로 분류한 명칭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실생활적 가치 때문에 홍만종은 서문에서 “이 책은 사람의 일용생활에 관계되어 실로 집집마다 간직해 마땅하다.”라고 하여, 산림에 살면서 필요한 일상생활의 지침서 성격임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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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허각 이씨가 엮은 가정살림에 관한 책이다.



따라서 『산림경제』는 이미 저작 당시부터 일용생활지침서로서 평가되었고, 집집마다 간직할 만하다고 하였듯이 이 책은 17세기 조선사회에 처음으로 등장한 실용성 목적의 생활지침서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가정생활백과서와 같은 성격의 저작물인 것이다. 우리네 6, 70년대 가정에만 하더라도 한 권씩 갖추고 싶어 하였던, 그렇지만 시골 형편이 넉넉지 않아 마을에 한두 집 정도 갖고 있었던 그런 가정생활백과사전 역할을 한 것이 『산림경제』였다. 예컨대, 「잡방문」에 서화배접하는 방법, 깨진 자기(磁器) 붙이는 법, 피 묻은 옷 빠는 법, 기름 묻은 옷 빠는 법 등 말 그대로 생활 중에 요긴한 정보를 나름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필요성 측면에서 『산림경제』는 이후 증보편, 속편, 개량편, 발췌편, 분야편 등 숱한 방식으로 필사 보급되어 널리 읽혔고, 『임원경제지』, 『규합총서』와 같이 체제와 정신을 계승한 책들도 활발히 저작되었다. 이런 유형의 책들을 포괄하여 “산림서(山林書)류”라 일컬을 수가 있고, 『산림경제』는 조선 후반기에 그러한 산림서 저작물이라는 새로운 편찬 방향을 노정한 주목할 만한 책이었던 것이다.




『산림경제』의 16문 구성과 치생(治生)의 산림살이



『산림경제』의 구성 방식은 삶의 전반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려는 치생(治生)5)의 관점으로 매우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편찬 동선을 꾸리고 있다.

첫째 구성은 삶의 물리적 조건으로서 공간구성을 다룬 「복거문」과 삶의 생리적 조건으로서 건강한 심신을 양성하는 「섭생문」이다. 제1 「복거문」에서 산림생활의 공간적 터전인 거주지와 주택지의 구성 요건을 다루었는바, 우리 산하지형에 적합한 배산임수 조건과 한반도 기후특성인 계절풍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풍기(風氣)의 관점 곧 바람의 통기성 측면을 강조하였고, 또한 집과 마루, 방과 부엌, 우물과 측간, 대문과 길, 담장과 울, 방앗간과 마당 등 각종 가옥 요소를 만들고 관리하는 방법을 수록하였다. 제2 「섭생문」은 평소의 음식과 건강 관리를 통해 병에 들지 않고 오래 사는 일락(逸樂)과 청복(淸福)의 삶을 제시하였으며, 그 섭생(攝生)의 생활건강법으로 너그러운 마음을 기르는 양생생활, 건강한 성생활, 적절히 먹는 음식생활, 소금물로 양치하는 등의 건강한 신체 보전, 맑은 기를 호흡하는 단전호흡법과 체조 동작의 안마도인법, 건강한 음료와 약식을 섭취하는 복식법 등의 실천론을 제시하였다.

둘째 구성은 “사람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고, 먹는 것은 농사를 선무로 삼는다.”(民以食爲天. 食以農爲先.)는 식농(食農)의 치생론 위에, 벼, 기장, 조, 수수, 보리, 콩 등의 곡류 재배법을 다룬 제3 「치농문」과 각종 채소의 자연원예법을 다룬 제4 「치포문」을 수록하였다. 이 둘을 합하여 흔히 농포(農圃)라 일컫는데, 우리 먹거리의 주식과 부식으로 곡류와 채소를 제시한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식단이 육류보다 채류 위주가 된 것은 이렇게 『산림경제』 시대에서도 이미 지속된 전통임을 농포문 구성이 잘 보여준다. 이어서 밤, 대추, 은행 등 과실나무 재배법을 다룬 제5 「종수문」과 꽃의 재배를 다룬 제6 「양화문」을 수록하였고, 제7 「양잠문」은 의식주 중 의생활 문제를 다룬 것이며, 제8 「목양문」은 육류와 축력을 위해 필요로 하는 가축 사육법을 다루었다. 이상의 치농, 치포, 종수, 양화, 양잠, 목양은 산림생활의 자급을 위한 재료 장만과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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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경제』에서 곡류 재배법을 다룬 「치농문」



셋째 구성은 치농 등으로 마련한 곡식과 채소, 과실, 육류를 매일의 밥상에 올리는 각종 조리법과 이들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수장법, 차와 술을 빚고 초와 장을 담그는 등의 일용 음식법 전반을 치선(治膳)이라 포괄하여 다룬 제9 「치선문」이다. 그런데 건강한 음식생활이란 먹는 문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먹은 뒤에도 별탈이 없어야 잘 먹은 것이 된다. 이에 음식을 잘못 먹어 토사하거나 복통이 나는 경우, 대소변을 잘 못 보는 경우 등 생활 중에 갑자기 발생하는 각종 병통(病痛)을 어떻게 긴급하게 다스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으며 이를 각종 의료생활에 관한 제10 「구급문」으로 다루었다. 말하자면, 사람에게 먹는 것은 삶의 유지를 위한 필수조건이지만, 치의와 치병으로 사후 병통을 잘 다스리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충분조건인 것이다. 이렇게 홍만선이 음식생활의 「치선문」과 의료생활의 「구급문」을 나란히 편성한 것은 식사와 치의가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본 탁월한 견해라 할 것이며, 이는 다름 아니라 전통시대에 견지된 식의(食醫) 동원의 사상이라 하겠고, 이를 통해 음식으로 치료한다는 식치(食治)의 생활이념을 읽을 수가 있다.

넷째 구성은 그런데 자연재해 등으로 정상적인 농사경영과 음식수급이 원활하지 못하여 기근과 질병이 발생하고, 예기치 않는 전염병과 궁벽한 시골에서 충해의 문제 등이 생기는 바 이를 극복하고 대비하는 방책이 요청된다. 이를 다룬 것이 제11 「구황문」, 제12 「벽온문」, 제13 「벽충문」, 제14 「치약문」이다. 「구황문」에는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하면서 솔잎가루, 느릅나무껍질, 상수리열매 등 각종 자연의 산물에서 구할 수 있는 섭취법과 가공법을 수록하였으며, 「벽온문」은 집안과 마을에 전염병이 도는 것을 방지하고 구제하는 내용이며, 「벽충문」은 숲이 우거지고 궁벽한 곳에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각종 해충에 대한 방재책을 다루었고, 「치약문」은 아플 때 찾아갈 의원이 없는 “향촌에서 더욱 절실한 문제”로서 사람에게 질병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므로, 각 지방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토질에 맞게 미리 재배하고 저장하여 불시의 수요에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실용성 측면에서 각종 약초의 재배법과 약재의 특성을 망라하였다. 이들 약용작물과 그 복용법은 현대에 와서 대부분 건강식재로 재조명되고 있어 약식(藥食) 동원의 주요 텍스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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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사회에서도 관혼상제의 택일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마지막 다섯째 구성은 주술적 측면과 생활지혜 측면이 뒤섞여 서술된 제15 「선택문」과 제16 「잡방문」이다. 「선택문」은 집짓기 좋은 날, 출행하기 좋고 나쁜 날 등 각종 택일(날짜 선택)과 택방(방위 선택)에 관한 주술적 내용을 가득 담고 있어 전형적인 전근대적 한계성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역발상을 하여 왜 이런 편명을 필요로 하였을까를 곰곰이 짚어보면, 비록 주술적이고 속신적인 내용이지만 일상생활 유지에 꼭 필요한 인간의 심미(審美)적 요소를 다룬 부분이라 긍정하게 된다. 가택, 이사, 제방, 매장의 영건과 수리, 혼례, 가례, 축일, 재일(齋日), 고사(告祀) 등에서 연원일시의 적당한 택일 문제는 실상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시하는 민간의 관습체이기도 하다. 무언가 뚜렷한 기준이 없어 결정하기에 난감한 생활상의 순간들을 전통시대 사람들은 역리(曆理, 달력의 시간원리)적인 택일·택방법에 기대임으로써 심미적 안정을 구하려 하였던 것이다. 종교생활이 인간의 의존성과 심미성을 가꾸어 일상생활을 잘 구가하게 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주술적 「선택문」 역시 산림에서 생활하는 삶의 심미성 구축에 적지 않게 기여하였을 것이라 볼 수 있다.

「잡방문」은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취미[淸事, 정신을 맑게 하는 일이란 의미]에 관한 붓과 먹, 종이, 벼루, 연적 다루는 법, 명주천에 글씨 쓰는 법, 서화 보관하고 배접하고 씻는 법, 등촉 만들고 불씨 보존하는 법, 베개와 요 만드는 법, 칼을 갈아 광내는 법, 기와와 자기를 붙이는 법, 피나 먹, 기름 묻은 옷을 빠는 법, 호랑이 물리치는 법, 피란할 때 시장기를 면하는 법 등 생활 중에 만나는 잡다한 일용기물과 갖가지 일용사안을 다루고 있다. 이런 자질구레한 잡방성(雜方性)이 『산림경제』를 더욱 일상생활의 생활지침서 성격으로 돋우고 있다.




조선후기 산림서의 유행과 우리말 살림살이 사상의 등장



지금까지 홍만선이 제시한 일상생활의 동선과 구성 요소를 16문 내용으로 살펴보았다. 이 전체를 끌고 가는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삶의 실현법이 삶을 다스린다는 의미의 치생론(治生論) 관점으로 서술되었고, 이 치생의 궁극적 목표는 건강하고 청복(淸福)한 삶의 구현에 놓여 있었다. 이에 『산림경제』는 치생의 청복한 산림살이를 추구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 청복한 삶이란 건강하고 일락(逸樂)된 오래 맑게 사는 우리 생태적 삶의 양태로서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주목하는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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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경제는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널리 읽혔다.



전체 16문을 크게 다섯 범주로 갈라 그 치생의 산림살이 방식과 규모를 재구성하여 보았다. 제1 범주는 청복의 물적 조건으로서 풍기자연의 주거공간(복거문)과 건강한 심신의 양성(섭생문)을 제시하였고, 제2 범주는 인간의 절대적 생위(生爲) 조건인 음식생활의 토대로서 우리 토양에 적합한 생태적 재배와 관리를 다룬 식농(食農) 방법론에 두어졌으며, 곡류, 채소, 과실, 화훼, 가축 및 양잠을 수록하였다. 제3 범주는 건강한 삶의 유지를 위한 실제로서, 친자연적인 음식 조리와 보관법을 다룬 음식생활편(치선문)과 일상 중의 긴요한 병통을 다스려 건강을 유지하는 의료생활편(구급문)을 다루었으며, 이 둘이 별개가 아니라 동시적 양면이라는 측면에서 식의(食醫) 동원의 치생론이라 간주되었다. 제4 범주는 자연재해로 발생하는 비정상적 기근과 질병 상황에 대처하는 난관 극복의 치생 범주이며, 여기에는 자연산물의 이용에 관한 구황법, 전염병 방제에 관한 벽온법, 시골의 충해를 물리치는 벽충법 및 지역 산지에 적합한 약초의 재배와 약재의 특성을 다룬 치약법이 수록되었다. 제5 범주는 인간이 일상을 영위하면서 만나는 심미성 기반에 관한 범주이며, 생활행위에 관한 심미성 근거로서 주술적인 택일택방론(선택문)과 일상주변에서 만나는 잡다한 사물사안에 관한 생활지혜(잡방문)가 수록되었다.

이처럼 『산림경제』는 일상생활에 관한 종합지침서이자 생활백과서 성격을 담았고, 그 범주와 구성도 세밀하여 매우 구체적인 삶의 현실 낱낱을 수록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편찬물을 앞서 필자는 산림서류라 부르고자 하였는데, 이 같은 산림서의 편찬이 조선후기 동안 더욱 활발해짐에 따라 『산림경제』가 지닌 생활사적 창안성과 의의가 더욱 높아졌다.

『산림경제』의 산림서 성격은 이후 영조대 편찬된 유중림(1705~1771)의 『증보산림경제』(16권 12책, 1766)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여기에는 원전에 없던 「가정편(家庭篇)」과 「구사편(救嗣篇)」이 크게 증보되어, 성리학적 생활실천원리인 의관정제, 충효 도리, 부모 봉양, 자손 훈육, 처첩제의 정당화, 아들을 낳아 후사를 잇는 법, 태교법, 딸과 여자의 삼종지도 등이 수록되었고, 이러한 조선 후기 시대이념을 보강한 때문에 산림서는 요긴한 수신서(修身書)로서 생활서로서 매우 폭넓게 읽히는 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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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림은 산림경제를 증보하여 증보산림경제를 엮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산림경제를 인용하여 임원경제지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불과 50년 뒤에 나온 『증보산림경제』에서부터 이미 저자 홍만선의 이름은 묻혀 졌고, 원전에 표기된 인용서목은 삭제된 채 유통되었다. 정조조 규장각 초대 제학을 역임한 서명응(1716~1787)의 『고사신서(攷事新書)』(1771) 중 권10 이하의 농포문(農圃門), 목양문(牧養門), 일용문(日用門), 의약문(醫藥門) 부분은 원전의 인용서목과 언문(諺文)이 없어진 채 『산림경제』를 그대로 전재하였고, 아들 서호수(1736~1799)가 쓴 『해동농서』(8권 12책, 1798), 두암(斗庵)의 『민천집설(民天集說)』(2권 1책, 1822), 찬자 미상의 『군학회등(群學會騰)』(1책, 19세기 중엽) 등에서도 배열만 바뀌었을 뿐 『산림경제』가 거의 전재되었다.
박지원(1737~1805)의
과농소초(課農小抄)』(15권 6책, 1798)에도 대폭 인용되었고, 조선 후기 최대의 생활백과전서라 불리는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113권 52책, 1827)도 『해동농서』라 인용한 부분이 실은 『산림경제』가 전재된 것이다.

이처럼 『산림경제』가 조선 후기 산림서의 성립과 전개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하며, 그러한 와중에 조선 후기 이백 년을 지나는 동안에 산림은 산거(山居)하는 산림(山林)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전반을 뜻하는 우리말 ‘살림’으로 변모되었고, 그런 끝에 우리말 ‘살림살이’가 출현한 것이라 짚어볼 수 있다(산림 > 살림). 의미상 ‘산림+경제’에서 앞의 말이 ‘살림’으로, 뒤의 말이 ‘살이’에 대응한다.

얼핏 보기에 ‘살림’이 ‘살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보이기도 하지만, ‘살림+살이’ 할 때의 ‘살이’가 ‘살다’에서 온 말이며, 우리말에서 시집살이, 하루살이, 숨살이 등 어간 뒤에 붙어 살아가는 방도를 한정하는 접미사 성격의 단어와 같다. ‘살림’은 국어사전 정의로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또는 집 안에서 주로 쓰는 세간’으로 설명된다. 이는 ‘살림’이 독립된 명사임을 의미한다. 또 ‘살림’ 자체는 숟가락, 밥그릇 등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구체적 기물들의 총합을 지칭하고 있어 ‘살다’와 직접 연관되지는 않는다. 나라 살림, 집안 살림, 마을 살림, 신혼살림, 세간 살림 등의 용법이 모두 구체적 살림들의 집합적 모음을 뜻하는 것도 그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을 ‘살림사상’이라 부를 수가 있고, 그 기반은 지금까지 살펴본 산림서의 성립, 전개, 유행에 말미암은 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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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은 인간의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출처: By CC BA Juilie @Wikimedia Commons (CC BY BA)>



아직 성글지만 ‘산림’이 음운동화 하여 우리말 ‘살림’이 되었다는 필자의 새로운 가설은 전적으로 홍만선의 『산림경제』가 지닌 종합생활사적 의의와 광범위한 보급성으로 인한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말 하나가 생성되는 것에도 다 시대적 맥락과 배경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산림 곧 살림사상의 등장과 전개는 생활 전반을 구체적인 실물 중심으로 통합적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말 그대로 일용적 실학 관점의 성립을 야기하였고, 이것이 조선 후기에 크게 굽이친 생활백과전서적 산림서류 저작물의 유행으로 전개된 것이라 요약된다. 관념의 실학이 아닌 실용의 실학을 살림사상에서 찾을 수가 있고, 이 점이 우리 학계와 사회가 앞으로 더욱 주목할 지점이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 김일권, 「전통시대 치생의 문화론과 생태자연학적 산림사상」(한국학중앙연구원 ‘글로벌시대 한국적 가치와 문명 연구’ 공동과제 <동아시아 자연과 인간의 교응관계론 탐색에 관한 한국적 자연학과 치생의 문화론 연구> 국제학술회의 발표문, 2014.10.27.)
  • 「조선시대 민속문화 관련 류서류 편찬물 현황과 특성」 (『역사민속학』 제32호, 한국역사민속학회, 2010.3)
  • 「조선후기 류서류의 세시풍속과 세시사상」 (『역사민속학』 제34호, 한국역사민속학회, 2010.11)
  • 「근현대 민속의 변동과 한국민속종합조사」(『한국민속종합조사의 성과와 민속학사적 의미』, 국립문화재연구소·한국민속학회, 2011.9)
  • 「『성호사설』 「만물문」의 실학적 만물관과 자연학」(『동아시아고대학』 제26집, 동아시아고대학회, 2011.12)
  • 「성호사설의 문물학적 민속문화 콘텐츠」(『성호학보』 제12호, 성호학회, 2012.12)
  • 「조선시대 飮食門 류서류와 음식생태학」(『김치와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 세계김치연구소, 2013.12)

불가분(不可分)


나눌 수 없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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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不可離)


떨어질 수 없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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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응관계론


인간과 자연이 서로 교감하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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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산학(物産學)


향토와 지형에 따라 다르게 생산되는 생산물을 포괄하여 연구하는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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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생(治生)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는 정도의 의미를 넘어서서, 우리 일상생활의 전반적 경영과 우리 심신의 건강한 유지를 통해, 맑고 건강히 오래사는 제반 삶의 다스림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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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권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인문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민속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분야는 한국문화사ㆍ민속학, 종교ㆍ사상사, 고구려 고분벽화, 동아시아 천문사상사이며, 특히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융합한 역사천문학 분야를 개척하였다. 최근에는 전통시대 “하늘과 자연과 삶의 자연학 연구실”을 학문의 줄기로 삼아, 천문과 기상, 생태와 식물, 문화와 생활의 역사자료를 더듬는 중에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 역사에서 전개된 ‘자연학’(naturology)의 갈래와 면모를 생활문화사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목표로 매진 중이다. 학술논문 130여 편과 저서로는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2007),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2008),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2009)』, 『고려사의 자연학과 오행지 역주(2012)』 등이 있다.


출처
실학,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다
실학은 18세기 한국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지만, 여전히 실체와 환상이라는 상반된 시각 속에서 실학을 바라보고 있다. 실학은 실패한 개혁의 꿈인가? 아니면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고자 했던 학문이었던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 찾아 17명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개혁사상이자 문화사조로서 실학을 조명해 본다.


발행2015.09.15.



주석


1불가분(不可分)


나눌 수 없는 관계
2불가리(不可離)


떨어질 수 없는 관계
3교응관계론


인간과 자연이 서로 교감하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뜻
4물산학(物産學)


향토와 지형에 따라 다르게 생산되는 생산물을 포괄하여 연구하는 체계
5치생(治生)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는 정도의 의미를 넘어서서, 우리 일상생활의 전반적 경영과 우리 심신의 건강한 유지를 통해, 맑고 건강히 오래사는 제반 삶의 다스림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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